[NSC 68]이란 유명한 문서가 있다. 1949∼50년 사이에 입안된 백악관 안보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의 전략문서이다. 이것을 기초한 사람은 폴 니츠, 당시 국무부의 정책기획부장이었다. 애치슨 국무장관의 후원을 받아 작성되어 트루먼이 서명함으로써 미국의 對蘇기본전략으로 채택된 이 문서는 그 뒤의 냉전전략과 역대 美 대통령의 思考에 큰 영향을 끼쳤다. [NSC 68 때문에 미국은 냉전에서 이겼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이 문서가 작성되고 있던 때 트루먼 대통령은 군비를 감축하고 국내 복지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려고 했다. 폴 니츠는 NSC 68에서 소련이 서구문명을 파괴하려는 惡의 세력이라고 단정한 뒤에 對蘇 강경론을 주장하고 군비증강을 요구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1950년 4월7일에 이 문서에 서명은 했지만 군비증강 건의에 대해서는 냉담했다.
군사력은 방패, 인권은 창
그러다가 두 달 뒤에 6·25 남침이 일어났다. NSC 68에서 소련의 팽창주의를 예언한 폴 니츠의 예언이 맞아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트루먼은 다시 이 문서를 꺼내보고는 당장 다음 회계연도의 국방예산을 세 배로 늘리도록 했다. NSC 68과 한국전쟁의 이런 타이밍이 미국의 본격적인 냉전 전략을 출범시켰다는 해석이 主流를 이루고 있다. 냉전은 한반도에서 시작되었고 한반도 통일은 그 냉전을 최종적으로 종식시킬 것이다.
소련 공산주의는 서구의 개인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非문명적, 非서구적, 非기독교적, 反개인주의적 이단 세력이란 것이 이 문서가 서두에서부터 강조하고 있는 도덕적 관점이다.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고 부른 근거가 여기에 있다. 폴 니츠는 소련의 침략노선으로부터 방어해야 할 미국의 가치를 개인주의에 두었다.
<자유로운 사회는 개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본다. 개인의 자율(自律)과 자중(自重)만 있으면 개인과 개인의 권리 사이에는 층돌 없이 공존할 수가 있다. 이런 자유사상에서 놀라울 정도의 다양성과 깊은 관용, 그리고 法治의 전통이 생겨난다. 이것이 자유 사회의 통합성과 활력을 조성하는 것이다>
폴 니츠는 또 [공산주의는 이런 장점을 악용하여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인간의 非이성적인 측면을 선동하여 사회를 파괴하려고 드는,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가치관이다]고 단정했다.
<소련공산주의의 가치관만큼 우리와 화해가 불가능한 게 없다. 우리를 파괴하려는 집념이 그토록 강한 이념도 없다. 우리 사회의 위험하고 분열적인 성향을 악용하는 데 그토록 유능한 이념도 없다. 인간본성에 내재된 비이성적인 면을 그토록 기술적으로 강력하게 선동할 수 있는 가치관도 없다>
NSC 68은 공산주의자들이 즐겨 쓰는 '평화'를 기만이라고 단정했다.
<소련 공산당 전당대화가 정의한 대로 '평화정책'이란 것은 '자본주의와 싸울 때 쓰는 더 유리한 방식'이며 非공산주의 국가를 분열시키고 마비시키기 위한 장치이다. 그들이 말하는 평화는 소련의 정책에 대한 완벽한 승복을 뜻한다>
요사이 남북한 사이비 좌익들이 쓰는 평화의 뜻도 같다. 한국사회를 분열시키고 자유수호 의지를 마비시키기 위해서 쓰는 것이고 북한정권의 對南적화전략에 대한 저항력을 죽이려는 말이다.
NSC 68은, 자유세계의 약점을 지적했다. 그것은 불가피한 최후 수단으로서가 아니면 전쟁이나 폭력수단을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자유로운 사회에서 허용되는 폭력의 사용은 두 가지 경우이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다른 개인들의 기본권을 파괴하려고 할 때, 또 다른 사회가 자유사회에 대해서 자신의 의지를 강제하려고
할 때이다. 따라서 對蘇 전략도 자유세계의 이런 약점을 직시한 바탕에서 저들의 군사적 모험주의와는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자유사상의 우월성을 과시함으로써 [러시아 인민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니츠는 [소련 체제의 본질적인 성격을 바꾸어놓는 것이 승리의 첩경]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본질적인 성격변화가 외부로부터 강요되어서가 아니라 [소련 내부의 자체적인 動力에 의하여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라고 니츠는 강조했다. 그는 군사력을 방패로 보고 인권을 槍으로 해석한 것이다. 미국의 군사력을 증강하여 소련의 침략을 저지한 다음에는 자유세계의 강점인 人權과 자유를 무기로 삼아 전체주의의 反인간성을 폭로함으로써 敵의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NSC 68은 보고서의 끝에서 몇 가지 정책 건의를 하고 있다.
*소련의 영향력과 國力을 축소시킬 것.
*러시아가 유엔 헌장의 국제적 행동규범을 따르도록 한다.
*소련 내부에서 反정부 운동이 일어나도록 권장한다.
*군사적 대비태세를 강화한다.
*미국의 보안태세를 강화하여 간첩, 태업, 반역을 저지한다.
*경제력을 강화한다.
*非소련권 국가들이 미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도록 유도한다.
*소련 권력층에서 긴장과 분열이 생기도록 유도한다.
*미국 시민들에게 안보 위협 상황을 알려 경계심을 갖도록 한다.
위의 건의사항은 소련을 북한, 미국을 한국으로 바꾸면 지금도 유효하다.
三國史記엔 김유신의 말이 소개되어 있다. '우리의 곧은 것으로 敵의 굽은 곳을 치면 백전백승이다'라고 金庾信은 말했다. 신라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우리의 곧은 것]을 니츠는 개인주의의 인권존중으로 보았고 [적의 굽은 것]을 공산주의의 反인륜성으로 해석한 것이다. 金庾信과 니츠의 대전략을 관통하는 핵심 원리를 한반도 상황에 적용하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우리는 1953년 이후 韓美동맹군의 군사력을 방패삼아 敵인 북한당국의 도발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다음 단계의 공격은 인권이란 창으로써 적의 사령부를 찔러 북한 주민들을 우리 편으로 돌려세우는 것이다. 그러면 인권을 어떻게 창으로 변화시킬 수가 있는가. 우리의 통일 원칙은 [인권의 원칙] 하나로 족하다. 인권, 즉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3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통일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3대 조건이란 평화, 즉 한반도에 동족상잔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는 것, 복지, 즉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의 확보, 자유, 즉 인간의 정신적 품격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이다. 이 3대 조건으로 갖추어진 인권의 원칙은 남북한에 동시에 차별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친북세력이 흔히 말하는 논리-[북한은 우리와 발전단계도 다르고 체제의 성격도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인권을 요구할 수는 없다]는 말은 북한 주민들에 대한 차별대우이다.
이 인권의 원칙을, 북한 인민을 해방시키기 위한 공격무기로 이용하려면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종국적으로는 북한 지배층을 약화시키고 주민들을 우리 편으로 돌려놓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식의 對北퍼주기는 김정일 정권을 강화시켜주고 북한 주민의 고통을 연장시킬 뿐이다. 북한에 대한 원조는 평화, 복지, 자유의 3대 조건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이용해야 한다. 식량원조의 조건으로서 북한군의 군비축소를 요구하고, 생산성이 낮은 집단농장을 私有化하도록 유도하며, 아우슈비츠보다도 더한 인간 도륙의 현장 정치범수용소의 폐쇄를 주장할 수가 있다. 이 모든 요구 조건은 북한 지배층과 체제의 약화를 목표로 한다.
이런 전략적 思考가 결여된 퍼주기는 북한 지배층을 연명시켜 흡수통일을 지연시킬 뿐이다.
인권의 무기화가 가능하려면 한국 안에서 먼저 위선적 평화론과 사대적 현상유지론이 정리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지금 북한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지원을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은 북한의 인권 탄압에 대해서는 애써 침묵해왔던 사람들이다. 북한 지배층에 대해서 인권의 창을 들이댈 수 없는 사람들이 북한 주민의 인도적 조건을 향상시킬 수 있겠는가. 人道만 알고 人權을 모르는 사람이 부르짖는 人道란 것도 알고 보면 기만적 선의(善意)이다.
우리나라는 朝鮮朝 이후 상무정신이 거세된 탓으로 침략전을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 희한한 기록을 갖고 있다. 이런 전통의 나라에서 자위적 목적의 전쟁론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전쟁을 부추기는 국수주의자]로 몰아서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집단이 있다. 이런 변태적 지식인은 우리 사회의 굽은 부분을 이루고 있다. 이 굽은 것을 우리의 곧은 것, 즉 자유와 人權이란 槍으로 쳐서 바로 편 다음에야 敵의 굽은 것을 제대로 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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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전쟁 危機가 아니라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好機
趙甲濟 月刊朝鮮 편집장(mongo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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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3월8일 플로리다州 올랜도에서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 협회의 전국 대회가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서 소련을 「악의 제국」(The Evil Empire)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단어 때문에 이 연설은 역사적인 연설이 되었습니다. 이 연설이 소련 및 동유럽 공산권을 무너뜨린 한 계기가 되었다고 보는 역사가들도 있습니다.
연설문 작성자 안토니 돌란이 기초한 연설문 초안을 검토한 국무부와 백악관 안전보장회의 등은 이 자극적인 용어를 삭제했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레이건 대통령이 직접 다시 써 넣었다는 것입니다. 레이건은 할리우드에서 노조 활동을 할 때의 체험으로써 공산주의자들의 전술을 알았다고 합니다. 공산주의자들에게는 개별적인 선악 개념이 없다는 것을. 그들에게는 당(인민)의 승리와 패배, 역사에 대한 반동인가 진보인가가 판단 기준일 뿐이란 것을.
레이건은 이 연설에서 레닌의 말을 인용하여 『(공산주의자들은) 도덕성이란 것은 계급의 이익에 종속되는 것이며, 舊사회체제를 말살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도덕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또 『공산주의자들은 현 세계에서 악의 중심이다』고 못박았습니다. 그는 『악의 제국이 가진 공격적 본능을 애써 무시하고서 美蘇 양국을 똑같이 비판해야 자신이 우쭐해지는 위선에서 벗어나 옳은 것과 그른 것, 선과 악을 직시하자』고 강조했습니다.
레이건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부름으로써 소련을 守勢로 몰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기자들은 소련 지도자들에게 물을 것입니다.
―소련이 악의 제국이란 말이 사실입니까.
소련 지도자들은 물론 부인할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 질문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스탈린의 대숙청은 악이 아닙니까.
―1930년대의 재판극(show trial)은 악이 아닙니까.
―인위적인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악이 아닙니까.
소련 지도자들이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순간부터 그들은 레이건이 판 함정에 빠지는 것입니다. 소련의 실력자들이 『스탈린의 대숙청은 과오였지만 지금 소련은 인권을 존중한다』고 대답한 이후에는 실제로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생기는 것입니다. 美蘇 관계가 惡과 善의 대결로 그려지고 미국은 善이 되고 소련은 惡이 됩니다. 소련이 惡이 아니라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내부 개혁을 해야 하고 惡이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소련이 붕괴된 몇 년 뒤 미국과 러시아 군축회담에 참석했던 한 러시아 장군이 술을 마신 뒤 갑자기 흥분상태에 빠져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치면서 미국 측 대표들을 향해서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들은 소련이 왜 망했는지 아십니까?』
『…』
『그 망할 놈의 「악의 제국」 연설 때문이랍니다. 소련은 정말 악의 제국이었단 말입니다!』
소련 사람들도 레이건의 연설을 통해서 소련 체제가 악이란 것을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전략적 말의 힘을 잘 알려 주는 사례입니다. 영국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중 윈스턴 처칠의 명연설이 「대포의 힘」보다 더 센 「영어의 힘」을 동원하였다고 말합니다.
지난 1월 말 조지 부시 대통령이 연두 교서 연설에서 북한, 이라크, 이란을 「악의 축」(The Axis of Evil)이라고 지칭한 것이 세계적인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레이건 때처럼 논란 그 자체가 「악의 축」에게는 타격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악이 아니다」고 항변하면 할수록 악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고 악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시 대통령은 바로 이것을 노렸을 것입니다.
한국內 친북 좌파 세력도 부시의 함정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부시를 비판하기에 앞서 金正日을 향해서, 대량살상 무기 개발에 돈을 쓰지 말고 그 돈으로써 인민들을 먹여살리라고 요구했어야 했습니다. 머리 나쁜 국내 좌파들은 金正日 정권의 온갖 악행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오직 부시만 전쟁광인 것처럼 몰아세우는 실수를 저질러 자신들의 본색만 드러냈습니다. 이런 편향된(어떻게 보면 순진한) 자세는 『우리는 親北(친북)이다. 고로 우리는 바보이다』고 자백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의 혈맹인 부시 행정부가 우리의 主敵과 대결 자세를 취할 때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은 미국 편에 서는 것입니다. 더구나 부시가 걱정한 대량살상 무기 개발은 우리의 가장 큰 걱정거리이니까 우리를 대신해서 걱정해 준 이에게는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金大中 정부는 부시의 연설을 받아서 金正日 정권을 향해 각성을 촉구하는 의미 있는 논평을 낼 만도 한데 동맹국으로서의 그런 의리 표시도 없이 여당과 정부가 나서서 오히려 부시 대통령을 비판하고 북한정권의 무기 개발을 이해해 주는 식의 발언을 했습니다. 李哲承 총재의 민족회의가 金大中 정부를 「親北反美 정권」이라 부르면서 규탄성명을 냈고, 육해공군 예비역 대령 연합회와 대한민국 특전동지회와 밝고 힘찬 나라 운동은 공동으로 「金正日 옹호에 나선 통일부 장관의 정체는 무엇이냐」는 성명을 냈습니다.
타협이 불가능한 남북한 무력 및 이념 대치 상황에서 反美는 親北으로 연장되고 親北은 反美로 이어질 개연성이 매우 높습니다. 親美하면서 親北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은 국제관계를 「힘의 관계」로 보면서 동시에 선악 개념으로도 보려는 대담한 시도입니다. 돌이켜 보면 미국이 냉전에서 총 한 방 쏘지 않고도 소련을 무너뜨린 비결은 힘으로 뒷받침된 도덕적 우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는 악이고 자유민주주의는 선이라는 공식의 연장선상에서 소련은 惡이 되고 미국은 善이 되었던 것입니다. 도덕적 우월감으로 무장한 군사력은 혁명적 열정으로 무장한 군사력보다도 더 강력한 법입니다.
미국이 냉전의 최종 승자가 되는 것을 크게 도왔다는 문서가 있습니다. 국무부 정책기획실장 폴 니츠가 기초한 NSC(National Security Council) 68이란 문서입니다. 6·25 남침 몇 달 전에 트루먼 대통령이 서명한 對蘇 전략 건의서입니다. 이 문서는 소련 공산주의가 서구 문명세계의 敵이란 점을 전제로 하고 출발합니다.
<자유 사회는 개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본다. 개인의 自重과 자율만 있으면 개인과 개인의 권리 사이엔 충돌 없이 공존할 수 있다. 이런 자유 사상에서 놀라울 정도의 다양성과 깊은 관용, 그리고 법치의 전통이 생겨난다. 공산주의는 이런 장점을 악용하여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인간의 非이성적인 측면을 선동하여 사회를 파괴하려고 드는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가치관이다>
이렇게 간파한 폴 니츠는 對蘇 전략은 군사적 모험주의가 아닌 자유 사상의 우월성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건의했습니다. 즉, 「러시아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 소련 체제를 내부로부터 본질적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 승리의 지름길」이란 것입니다. 소련 사회의 변화는 외부로부터 강요될 것이 아니라 「소련 내부의 자체적인 동력에 의하여 이루어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는 것입니다.
레이건 및 부시(아버지) 행정부는 고르바초프가 등장하여 개혁 개방을 감행하고 있을 때 고르바초프를 정치적, 외교적으로 지원함으로써(경제적 지원은 하지 않았다) 개혁을 가속화시켜 드디어 그의 손으로 소련 체제가 해체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金大中 정부가 아닌 정상적인 대한민국 정부였더라면 9·11 테러와 「악의 축」 발언을, 통일을 앞당기는 好機로 이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정부가 부시 행정부와 손잡고 한반도에서,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金正日 정권을 악의 축으로 확실하게 못박아버리는 것은 對北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는 길입니다. 그렇게 해놓으면 金正日 정권은 우리는 악이 아니라고 변명할 것이고 악이 아니란 입증을 해야 할 것이며 그러다 보면 문을 열든지 약화되든지 망하든지 할 것입니다.
북한의 金正日 수령지배체제가 무서운 것은 남북한 7000만 동포의 安危가 변덕스러운 한 인간의 마음에 너무나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金正日이 내일 아침 갑자기 발작하여 남침을 명령한다면 주변에서 말리기가 거의 불가능함으로써 대참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金正日 체제를 붕괴시키거나 무력화시키는 것은 전쟁의 위험성을 낮추는 평화 보장 조치인 것입니다. 金正日이 거세된 다음 집단지도체제가 등장하면 전쟁 위험은 줄어든다는 말입니다. 집단지도체제는 수령체제보다, 민주국가는 집단지도체제보다도 침략 전쟁을 결정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金正日을 히틀러와 같은 악의 축으로 규정한 바탕에서 미국과 한국이 중심이 된 국제사회가 압력을 가하면 내부 분열이 생길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돈줄을 죌 수도 있습니다. 이미 북한은 조총련을 통해서 매년 들어가던 수억 달러의 돈 줄이 최근의 조총련 계열 은행에 대한 수사로 인해서 막혀버리게 되었습니다.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수출을 국제 범죄 행위로 규정하고 공해상에서 저지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중동 국가들에게 미사일을 수출하여 벌던 돈도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국제사회가 합의만 한다면 金正日이 스위스 은행에 숨겨 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40억 달러 내외의 비자금도 테러범죄자금이라면서 동결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다가 金正日 정권의 인권 및 종교 탄압 실태를 세계적인 관심거리로 만들어 놓으면 구태여 군사력을 동원할 필요도 없이 金正日은 쓰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金正日을 육체적으로 정치적으로 거세하거나 무력화시키는 것이 북한동포를 구출하고 통일을 앞당기는 일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런 거세 공작을 우리의 힘만으로 한다면 여러 가지 위험 부담을 지게 되지만 부시 행정부가 앞장서겠다는데 왜 우리가 말립니까. 옆집 불량소년에게 맨날 얻어맞고 돈을 뜯겨 온 부잣집 소년이 경찰관 아저씨가 나서서 불량소년을 붙들어 가려니까 경찰관을 욕하면서 불량소년 편을 든다면 세 가지 추리가 가능합니다. 부잣집 소년은 불량소년이 刑을 살고 나와서 자신에게 보복을 할까 봐 미리 쇼를 해두는 비열한 아이든지, 맨날 얻어맞고 뜯어먹히다가 보니까 노예 근성이 굳어진 것이든지, 말 못 할 약점을 불량소년에게 잡혀 있는 경우입니다.
부시의 발언을 두고 통일을 앞당길 好機가 왔다고 보는 사람과 전쟁의 위기라고 움츠려 드는 사람 사이엔 근본적이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선악 개념입니다. 선악 개념이 분명하면 金正日을 악으로 보게 되어 있고, 악의 축 발언을 악의 처단 쪽으로 활용하려는 정의감이 발동할 것입니다. 한국인과 세계사람들이 각각의 정부와 함께 金正日 정권을 향해서 정의감을 표출시킨다면 이 정권은 변하든지 무너질 것입니다. 金正日 정권은 북한 체제 개혁의 걸림돌입니다. 이것이 치워지면 毛澤東이 죽은 이후 鄧小平이 등장하여 개혁의 길로 중국을 끌고갔듯이 실용적인 정권이 북한에서 등장하여 對南적화를 포기하고 북한 주민을 먹여살리는 문제에 매달릴 것입니다. 이런 정권과는 진정한 교류·협력이 가능해지고 통일도 논의할 수 있습니다.
남북관계에서 자유 대한민국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정의감과 선악개념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군사력·경제력보다 더 강한 道德力(Moral Power)을 동원하는 전략입니다. 月刊朝鮮 이번 3월호에 특종으로 실린 인민군 총정치국의 내부 자료-「金正日의 무력 통일 준비 지시 全文」은 남북한의 현실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문서입니다. 金正日은 남북 頂上회담 직후임에도 「나의 통일관은 무력통일. 당이 평화통일의 구호를 높일수록 계급의 총창을 날카롭게 벼려야 한다」고 군인들을 독려했습니다. 역대 우리 정부도 겉으로는 교류와 협력을 내세웠지만 안기부와 군사 조직을 통해서는 金正日 정권 붕괴 또는 金正日 거세 공작을 펼쳤습니다. 국가가 반란집단을 향해서 꼭 해야 할 당연하고 믿음직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金大中 정부는 국가로서의 이 의무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金正日을 악으로 보지 않으면 그런 공작을 할 만한 배짱도 신념도 용기도 나오지 않으니까요. 그러면서도 이 정부는 북한이 변하고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 놓고는 국가보안법 대폭 개정, 추진 「북한정권=주적론」 再검토 등의 자해적 행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金正日 한 사람의 행복은 7000만 동포의 불행이며 金正日 한 사람의 불행은 7000만의 행복입니다. 이런 극단적 대치 상황에서도 누가 惡이고 누가 善인지, 누가 타도 대상이고 누가 구출대상인지, 지금 우리가 당장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나라나 사회는 크게 병든 상태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우리의 지도자라면 우리는 지금 매우 위험합니다. 그러므로 남북대치 상항에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둑 아래에서 살아야 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대통령이 적과 내통하고 있지나 않는지 감시할 권리와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공산주의를 멸망시킨 문서 NSC 68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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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0-06, 14: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