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인 소녀 안네 프랑크가 숨어 살았던 암스테르담의 집은 기념관으로 되어 있다. 며칠 전 이 소녀가 그 집에서 숨어살면서 창밖으로 몰래 바라보았던 나무가 병이 들어 자르게 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 나무가 뉴스꺼리가 된 것은 안네 프랑크가 본 나무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도 뉴스가 되는가라고 갸우뚱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는 것도 보지 못하고 유태인 강제수용소에서 죽은 안네 프랑크 소녀는 숨어서 쓴 일기로써 나치의 만행을 고발했다. 이 소녀를 기념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소녀가 바라본 나무도 소중한 대접을 받은 셈이다. 소중한 것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소중하게 여기면 사소한 것도 소중하게 된다.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도 같이 소중하게 된다. 작은 것을 아끼는 마음이 큰 것을 만들어낸다.
가장 소중한 존재는 인간이고 특히 위인이다. 우리 민족사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힐 것이 분명한 이승만, 박정희를 우리는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가? 좌파정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일반 국민들조차도 이 두 위인을 망각하고 외면한다면 결국 대한민국과 한국인이 외면, 망각당할 것이다. 역사로부터, 세계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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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는 1차 세계 때는 중립을 지킬 수 있었으나 2차 세계 대전 때는 독일군이 프랑스로 쳐들어가는 길목으로 삼았다. 5년간 계속된 나치 독일의 점령기간에 네덜란드의 저항은 미미했다. 네덜란드에 많이 와서 살던 유태인들은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도 큰 피해를 입었
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나치의 유태인 사냥에 협조한 탓이라고도 한다. 안네 프랑크 가족도 희생자들 중 일부였다.
戰前에 네덜란드에서는 14만 명의 유태인들이 살았다. 그 가운데 약9만 명이 암스테르담에 살았다. 이는 이 도시 인구의 약13%나 되었다. 독일에서 박해가 심해지자 유태인들은 옛날부터 종교자유가 널리 보장되었던 네덜란드로 피해왔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14만 명
의 유태인들 중 戰後에 알아보니 2만5000명만이 살아 남았었다고 한다.
필자가 소속된 尙美會여행단(02-734-1245) 30여명은 2004년 3월 말 전자회사 필립스의 고향인 네덜란드의 공업도시 아인트호벤에 가서 이 도시 축구팀 감독인 히딩크 부부를 만나 아인트호벤 스타디움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 일행중 20명 정도가 미리 갖고 다니던 축구 공과 티 셔츠 등에 히딩크의 사인을 받았다. 일행중 한 분은 암스테르담의 안네 프랑크 기념관에서 산 책을 내밀면서 사인을 부탁했다.
나의 맞은편 자리에 있던 히딩크 감독은 책을 펴놓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만년필로 문장을 써서 돌려주는 것이었다. 내가 보니 그 내용은 「귀하가 이 책을 통해서 우리 역사의 아주 심각한 부분을 알게 된다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입니다」였다. 안네 프랑크 가족 등 많은 유태인들이 네덜란드 사람들의 密告에 의해 나치에 끌려가 희생되었다는 점에 대한 이 나라 사람으로서의 반성이 담긴 글이었다. 그냥 습관적으로 사인을 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깊이 한 다음 의미 있는 글을 써준 히딩크 감독의 人格에 새삼 느끼는 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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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희한한 기사가 토론방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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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를 중등학교 교재로 채택
북한은 “안네의 일기”를 학생들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히틀러와 같은 악마적인 존재로 믿도록 세뇌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북한 전역의 중등학교에서는 나치 치하의 네덜란드에서 2년간 숨어살아야 했던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의 처지를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과 직접 비유하고 부시 미국 대통령이 현대판 히틀러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현지 취재를 했던 노바 TV의 바텔스만 기자는 학생들이 '전쟁광 부시는 히틀러와 같이 악한 인물이며 부시 때문에 우리가 항상 전쟁의 공포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하고 또 다른 학생은 '안네의 가족들은 숨어 살았다. 그래서 존경하지 않는다. 우리는 거지 같이 살기보다는 나아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면서, 북한은 평화와 자유에 대한 갈구를 담은 안네의 일기를 전쟁을 부추기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보도에 대해 안네의 친척들은 북한이 안네의 일기를 악용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안네의 사촌 버디 엘리어스는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은 끔찍하고 극도로 혐오스러운 짓'이라면서도 '안네의 일기는 자유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북한 학생들이 어떤 식으로 배우든 안네의 일기가 주는 진정한 메시지를 깨달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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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네 프랑크의 집안은 원래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살던 독일계 유태인이었다. 안네 프랑크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는 1차 세계 대전 때 독일군 장교로 참전하여 독일을 위해 싸웠다.
2. 히틀러는 독일국민이 된 유태인을 인종적으로 차별하여 非국민으로 만들어 박해했다. 이는 김정일이 같은 민족을 계급으로 분류하여 소위 적대계급을 말살, 박해하는 것과 같다. 북한의 유태인은 적대계층으로 분류된 사람들로서 김정일 정권은 1995년 이후 이들에게는 식량 공급을 끊어 주로 이 계층에서 수백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다.
3. 김정일이 가진 정치수 수용소는 히틀러가 만든 아우슈비츠 같은 유태인 수용소와 동일 원리로 관리되고 있다. 김정일은 히틀러를 존경한다고 한다(황장엽 증언)
4. 히틀러의 아유슈비츠는 59년 전에 없어졌으나 북한의 아우슈비츠는 살아 있다.
5. 히틀러는 유태인을 학살하는 데 히틀러 유겐트 같은 철부지 홍위병들을 앞세워 거짓 선동을 사용하였고 김정일은 동족을 학살하는 데 선동과 폭력을 사용했다. 권력이 특정 집단을 말살하는 데 선동적 숫법을 썼다는 점에서 히틀러와 김정일과 모택동은 같다.
6. 따라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가정에서 2년간 숨어살면서 안네 프랑크가 쓴 일기는 선동과 폭력에 대한 고발장이다. 이는 곧 김정일 정권에 대한 고발장인 것이다.
7. 김정일은 안네 프랑크 일기를 통해서 자신을 고발하고 있는 셈이다. 김정일 정권은 북한 주민들을 바보로 알고 안네 프랑크 일기를 교재로 쓰는 모양인데 북한 주민들은 이 일기를 통해서 북한의 진실에 다가갈 것이다. 김정일은 안네 프랑크 유령의 보복을 당할지도 모른다. 독재권력에 대한 탄압의 상징을 독재권력 보호에 이용하는 숫법이야말로 공산당식 거짓 선동의 대표적인 사례인데, 안네 프랑크가 목숨을 바쳐가면서 증언하려고 한 그 진실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8. 참고로 안네 프랑크 일가는 숨어살다가 1944년8월에 독일군에게 들켜 아우슈비츠 수용소(폴란드)로 끌려갔다. 안네 프랑크의 아버지만이 살아서 돌아왔고 나머지 가족들은 가스실에서 죽었다. 안네 프랑크의 꿈은 기자였다고 한다. 진실을 전하는 기자! 요사이 한국의 선동방송 기자가 아닌 말 그대로의 기자!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어야 소중하다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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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1-20, 00: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