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가 본 4.19와 5.16

"4.19학생혁명은 표면상의 자유당 정권을 타도하였지만 5.16혁명은 민주당 정권이란 가면을 쓰고 망동하려는 내면상의 자유당 정권을 뒤엎은 것이다."
근대화 혁명가 朴正熙의 진정한 혁명성은 그가 生前에 자신의 혁명논리를 체계화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던 점에 있다. 혁명이 이념화되면 우상숭배로 전락하고 혁명을 타락시킨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 어떤 주의나 학설의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고 그 어떤 주의나 학설도 거부하지 않고 자유자재로 활용했던 실용성과 주체성이 그의 진정한 혁명논리였다. 그는 섣부른 이념이 없을 때 영구혁명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박정희의 혁명적 발상은 그 당시 한국의 지배층과 지식인들이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던 '민주주의는 신(神)이다'는 신앙에 도전했다는 점이다.

그는 1963년에 쓴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한민당에 뿌리를 둔 해방 후의 정치세력을 '민주주의의 탈을 쓴 봉건적 守舊세력'으로 규정했다. 그들 구정치인(舊政治人)이야말로 '덮어놓고 흉내낸 식의 절름발이 직수입 민주주의'를 맹신하는 사대주의자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그의 혁명적 역사관은 서구식 민주주의 맹신자들이야말로 조선시대의 당파싸움 전문가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위선적 명분론자라고 규정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4.19와 5.16혁명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고 있다. 즉, 4.19혁명은 '피곤한 5천년의 역사, 절름발이의 왜곡된 민주주의, 텅 빈 폐허의 바탕 위에 서서 이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라는 명제를 던졌고 이 명제에 해답하기 위한 '역사에의 민족적 총궐기'가 5.16이란 것이다. 4.19와 5.16을 동일선상에 놓는다는 것은 자유당과 민주당을 똑같은 봉건적.수구적 세력, 즉 근대화 혁명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뜻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4.19학생혁명은 표면상의 자유당 정권을 타도하였지만 5.16혁명은 민주당 정권이란 가면을 쓰고 망동하려는 내면상의 자유당 정권을 뒤엎은 것이다.'

다수의 국민들과 지식인들이 자유당을 독재, 민주당을 민주세력으로 보고 있었던 데 대하여 박정희는 그런 형식논리를 거부하고 그들의 본질인 봉건성을 잡아채어 둘 다 역사 발전의 反動세력이라고 단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 어디에도 합헌(合憲)정권을 무너뜨린 데 대한 죄의식과 변명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당시에 박정희가 이런 혁명적 시각을 자신의 신념으로 내면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원(不遠)한 장래에 망국의 비운을 맛보아야 할 긴박한 사태를 보고도 인내와 방관을 미덕으로 허울 좋은 국토방위란 임무만을 고수하여야 한단 말인가. 정의로운 애국군대는 인내나 방관이란 허명(虛名)을 내세워 부패한 정권과 공모하고 있을 수는 도저히 없었다. 말하자면 5.16혁명은 이 공모를 거부하고, 박차고 내적(內敵)의 소탕을 위하여 출동한 작전상 이동에 불과하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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