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제1진실: 金日成이 동족을 치기 위하여 모택동과 스탈린의 외세를 끌어들여 국제전쟁터로 만드는 바람에 300만 명이 죽었다. 그의 아들은 집권의 편의를 위해서 개혁 개방을 거부하고 구제수단을 동원하지 않음으로써 약300만 명의 동족을 굶겨 죽였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한국인들은 金日成-金正日에 대한 정의감이 결여된 정권을 선택함으로써 북한주민 외면을 정책화했다. 이런 비겁하고 어리석은 국민들에게 미래가 있는가?
1. 金正日의 대학살: 金正日 정권은 대외적으로는 테러집단-조직범죄집단의 본성을 드러내고 대내적으로는 학살집단이다. 테러집단, 조직범죄집단, 戰犯집단, 학살집단의 본질을 가진 북한정권의 인권탄압은 그 유일한 책임자인 김정일의 이름을 따서 ‘金正日의 대학살’로 부르는 것이 맞다.
2. 金正日이 대량살상무기: 김정일의 지령에 의하여 100~300만명이 饑餓살인을 당했다. 지난 30년간 약40만 명이 강제수용소에서 죽었다(하벨 대통령 등). 그의 명령으로 아웅산 테러가 일어나 17명의 한국 장관급 엘리트가 미얀마에서 爆殺당했다. 중동 노동자들이 대부분인 115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대한항공 폭파로 죽었다. 핵폭탄이 열개 터진 것보다 더 많은 殺傷者가 金正日 한 사람 때문에 일어났다. 金正日의 대학살은 毛澤東, 스탈린, 히틀러級이다. 따라서 김정일의 無力化 없이는 핵개발도 대학살도 중단되지 않는다.
3. 實感의 실종: 1998년 이후 좌파정권과 어용언론은 북한인권실태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음으로써 金正日의 대학살에 대한 국민들의 實感을 마비시켰다. 북한정권에 대한 경계심 해체와 북한주민들에 대한 동정심의 실종이 동시에 왔다. 이는 국민윤리를 붕괴시켰다. 정의감이 사라진 밭에서 이기심과 분열심과 증오심이 꽃피고 있다. 탈무드: “잔인한 자를 동정하는 자는 동정 받아야 할 사람에게 잔인하다”
4. 국가기관의 외면: 盧武鉉 정권과 국가인권 위원회는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인 북한주민들의 인권 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정책화함으로써 국가를 협회 차원으로 전락시켰다. 이는 집권세력의 反헌법적-反국가적-反인도적 가치관의 자연스런 반영이다. 남북한 守舊좌파 정권의 본질은 인권과 생명의 존귀함을 부정하는 점에서 일치한다. 이는 사회주의식 唯物사상과 계급투쟁 사상에서 유래한다. 남북한 정권은 反인권파로서 인간정신의 소중함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을 도구로 본다.
5. 북한인권문제의 各論: 수만 명의 억류 국군포로, 약15만 명의 전쟁중 납북자, 500명이 넘는 戰後 납북자, 약20만 명이 수용된 북한판 아우슈비츠, 공개처형 등 야만적 사법제도, 최소 12개국 시민 납치, 특히 일본인 집중 납치. 북한주민들 굶기면서 김정일과 측근들은 호화판 생활. 인류역사상 최악의 계급차별(군인과 평양시민들에게만 식량공급 등), 장애인 말살정책, 그리고 이산가족 문제 등. 특히 영양부족으로 북한사람들의 인종적 劣等化가 일어났다. 남자 평균키가 한국은 173.5cm, 북한은 158.5cm. 북한사람들의 평균키는 해방 당시보다 6cm 이상 줄었다. 생활수준은 日帝 때보다 못하고 고종, 철종 때보다도 劣惡.
6. 국제사회의 대책: 미국과 일본이 북한인권법 제정, 한국 정부가 외면한 한국민, 즉 탈북자 등을 돕기 시작. 일본은 북한인권계몽주간을 법제화. 유엔에서도 문제제기. 특히 하벨 체코 전 대통령 등은 북한의 인권문제를 핵문제와 같은 수준의 국제적 위기로 규정하여 유엔 안보리가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 최종적인 해결책은 金正日의 제거 등 無力化에 의한 북한의 민주화임.
7. 金正日에 대한 경고와 압력 집중: 한국의 국회나 유엔이 김정일 정권의 인권탄압자들에 대해서 공소시효 없이 처벌할 것임을 천명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식으로 압력을 행사하고 김정일을 북한주민과 그 측근으로부터도 고립시키는 전략을 채택하여야 함. 김정일 한 사람을 표적으로 하여 국제적 압력을 가하면 북한주민들은 희망을 가지고 측근들도 용기를 내어 反金正日 움직임과 조직이 만들어질 수 있음. 김정일을 국제형사재판소에 고발하는 운동을 국제적으로 펼치는 것도 한 방법임.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을 북한인권 개선에 쓰도록 압박하고 金正日 一家의 호화판 생활에 타격을 주는 사치품 禁輸 조치를 확대. 결국 북한사람들 사이에 人權의식이 생겨야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8. 對北지원은 반드시 북한인권 개선과 연동: 서독은 東獨의 政治囚 2만 명 이상을 데리고 왔음. 특히 미귀환 국군포로, 납북자 송환과 對北지원을 반드시 연계해야.
9. 국제연대로 對中압박: 일본, 미국, 유럽과 연대하여 중국정부를 압박, 탈북자 강제송환을 중지시키고,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북한인에 의한 탈북자 납치행위를 금지시킨다면 대량 탈북사태가 일어날 것임.
10. 기독교인은 빌라도의 방관의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은 지금 맞아죽고 굶어죽어가는 북한주민들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참고 자료1: 김일성과 김정일이 죽인 屍身은 9000km
김일성은 동족을 치기 위하여 모택동, 스탈린을 불러들인 남침전쟁을 벌였다가 한반도를 국제전쟁터로 만들었다. 약300만 명이 죽었다. 300만의 시체를 일렬로 고속도로 위에 눕혀놓으면(평균키 150cm 기준) 그 길이가 약4500km이다. 시체가 깔린 서울-평양-북경-상해 도로를 차로써 며칠을 달려도 屍身 위이다. 그 300만의 생명 하나 하나는 이 지구보다 무거운 값을 가졌다. 그 한 구 한 구의 시체가 발견될 때마다 울부짖었을 아내, 아버지, 어머니, 남편의 고통이 지금도 한반도의 하늘과 땅속을 덮고 있다. 이 김일성의 남침을 찬양하거나 옹호하는 자들이 집권세력이 되었다. 김일성의 남침에 가담하여 시체쌓기에 협력했던 부모를 둔 자녀들도 집권세력 사이엔 많다.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은 군사비 감축-비자금 사용-집단농장 개혁 등 여러 가지 구제 수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권의 편의를 위해서 개혁 개방을 거부함음으로써 300만 명을 또 굶겨죽였다. 父子가 약600만 명을 죽였다. 600만 명의 屍身을 도로위에 일렬로 깔면 서울에서 파리까지 그 주검 위로만 달릴 수 있다. 그 600만 명이 죽으면서 지른 비명, 품은 원한, 지고간 고통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이 생기지 않는 자들이 노무현 세력이다.
도덕적으로 규정하면 노무현 세력은 김일성 김정일보다 더 악한 존재이다. 김정일의 인간말살 행위를 멈추게 할 수 있는 수단과 힘이 있음에도 이를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여러 모로 살인집단을 도와줌으로써 동족학살을 방치, 격려했기 때문이다.
동족학살에서 세계 1위는 모택동이다. 약4000만 명 이상의 중국인을 죽였다. 노무현씨는 모택동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한 바 있다. 盧대통령은 사람을 많이 죽인 사람일수록 그 앞에만 서면 존경심이 우러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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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2: 북한주민의 手記
(아내 장모가 굶어죽은 뒤) 우리 셋 중에서 죽으려면 내가 죽게 하고 저애들은 살아남게 해 주십사 하고 생각하였다. 그후 우리의 목숨은 끈질기게도 붙어 있었다. 죽을 날을 기다려도 그날까지 살아 있었으니 그날이 바로 잊혀지지 않는 1995년 11월15일이었다.
막내딸 ○○이가 비칠거리며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나는 변소에 가겠지 하고 혼미상태에 빠져 있었다. 얼마 후 어디선가 나를 찾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막내딸이 방긋이 웃는다.
『아버지, 아- 하세요』 하길래 멋도 모르고 입을 벌리는데 딸애의 고사리같은 작은 손이 펴지는 순간 쌀알 20 여알이 손 안에 있었다. 나는 그 쌀알을 보고 어디서 났느냐고 물으니 저 건너집 돼지우리 옆에 볏짚이 있는 것을 본 기억이 나서 펼쳐보니 벼알이 몇 알 있더라는 것이었다.
딸애는 그 벼알 한 알 한 알을 손톱으로 까서 모아 가지고 나를 깨운 것이었다. 아버지가 이걸 잡숫고 일어나야 우리가 산단다. 나는 딸애의 그 말에 심한 가책을 느끼며 그 귀여운 딸애를 붙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어린 나이의 딸애가 정말 이 미련한 아버지보다 나았다. 나는 그 쌀알을 막내가 큰딸과 함께 나누어 먹게 하였다. 그러나 아이들은 죽기살기로 거부하고 나섰다. 내가 먹는 척이라도 하지 않으면 이 쌀알을 아이들에게 먹일 수가 없었으니…. 그날 이 지구촌 위에서 돈을 주고도 볼 수 없는 쌀알 나누어 먹는 신기한 장면이 우리 집에서 연출되었다.
그날 밤. 나는 아이들을 살려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이 생겼다. 종전에 죽기만을 기다리던 방식에서 죽는 날까지 아이들을 위하여 무슨 짓인들 다 해보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곰곰 누워서 생각하니 아파트 어느 1층집에 쥐이빨 강냉이종자를 매달아 놓은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났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아파트 골목을 누비다가 끝내 그 집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창문을 만져보니 다행히도 유리가 아닌 비닐방막이였다. 허기에 지쳤던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먹이를 구했다는 안도감으로 마음은 설다.
나는 준비해 가지고 갔던 칼로 비닐을 째고 옥수수종자를 움켜 쥐었다. 먹이를 눈앞에 둔 야수의 흥분으로 내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때의 그 쾌감을 나는 적절히 표현할 길이 없는 것이 유감이다. 艱難辛苦(간난신고) 끝에 옥수수종자를 떼내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발걸음은 비칠거리기는 했어도 가벼웠다. 이것이 내 일생에 처음으로 내짚은 도적생활이었다. 성공하고보니 나도 꽤 노력하면 훔쳐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그때부터 나는 어디에? 무엇을? 하며 손에 닿는 대로 가능성이 있는 대로 훔쳐내어 자식들을 먹여살리는 도적무리의 한 일원이 되어 버렸다.
이날 밤 우리 집에서는 근간에 보기 드문 성대한 연회가 벌어졌다. 「눈물은 내려오고 밥술은 올라간다」는 격언이 틀리지 않았다. 연달은 초상으로 푹 꺼져 들어갔던 생기가 옥수수종자 다섯 이삭이 생기면서 집안에 和氣(화기)가 돌았다. 죽은 건 죽은 것이고 산 놈은 살아야 한다는 삶의 요구가 우리들을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들었다.
나는 옥수수종자 한 이삭을 아이들에게 날 것으로 먹도록 배려해 주었다. 음식이 익는 동안 아이들의 고통을 생각해서 그렇게 하였는데 두 딸애는 그 돌덩이 같은 옥수수알을 맛있게 씹어먹었다. 아이들은 아버지와 함께 살아남은 긍지로 오랜만에 웃고 떠들었다.
이때부터 우리 세 식구는 빌어도 먹어 보고 훔쳐도 먹어보고 땅에서 주워도 먹어보면서 신성천~고원, 원산~단천 등지로 방랑하면서 인간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며 인민이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가를 직접 목격하면서 파리 목숨 같은 인생을 유지하였다.
이 길 위에 고원에서 맏딸이 숨을 거두었고 그후 순천역의 쓰레기장에서 막내딸애의 시체가 발견되어 나를 질식케 하였다. 막내딸은 마지막까지 나의 곁에 남아 아버지께 충직했던 나의 혁명동지였으며 이 세상에서 나를 고아로 만들어 버린 유일한 마지막 혈육이었다. 그의 屍身(시신)을 집에 가져다 헤쳐보니 그의 가슴속에는 깨끗한 비닐봉지에 정성 들여 골라놓은 배 껍질과 배 송치(편집자 注:씨가 들은 속), 명태껍질, 돼지뼈 한 개가 들어 있었다. 아마도 나를 만나면 함께 먹으려고 그렇게 먹고 싶은 것도 참고 건사했을 딸애를 생각하여 나는 울고 또 울었다. 나는 양지바른 산기슭에 딸애를 안장하고 그 비닐봉지를 입가에 얹어 주었다. 그때 나의 막내딸의 나이가 12세였다.
발표요지: 북한인권 문제의 본질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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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2-18, 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