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12월29일자 글 再錄
남로당 학살자의 사위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대한민국의 건국을 '분열정권의 수립'이라고 저주하고 그 과거와 약점을 캐는 데 국민세금을 낭비해가면서 국가기관을 총동원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다. 정확한 표현은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李의장이 말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趙甲濟
自業自得(자업자득)이란 말이 있다. 사전에 따르면 '자기가 저지른 일의 果報(과보)를 자기 자신이 받음'이란 뜻이다. 2004년 헌법재판소의 비겁한 결정에 의해 겨우 파면을 면하고 대통령직에 복귀한 盧武鉉 대통령은 반성의 기미도 없이 연세대학교 학생들 앞에서 '별놈의 보수'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한국 주류층을 비방했다. 그는 이로써 다수 국민들에 대해서 '놈'자를 쓴 유일한 정치인이 된 것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이 있다. 어제 在野애국세력의 원로인 李哲承 비상국민회의 대표의장이 직격탄을 날렸다.
'조국의 역사도 모르는 노무현 정권은 상놈의 정권이다'
'별놈의 보수'와 '상놈의 정권' 사이엔 타협이 불가능하다. 이 싸움의 발단은 盧대통령이고 책임을 져야 할 사람도 그다. 卑賤(비천)한 대통령의 말이 부른 禍(화)가 '상놈의 정권'이다. 李哲承 의장은 건국과정에서 애국우파학생들을 조직하여 좌익과 거리에서 싸웠다. 李承晩대통령이 독재로 치닫자 야당에 입당하여 선봉에서 투쟁했다. 그는 朴正熙 장군과 친했으나 朴소장이 쿠데타를 감행하자 이에 반대하여 7년간 정치를 포기했다.
정치에 복귀한 다음에도 그는 朴정권을 전면 부정하지 않고 외교 국방문제에선 협력하되 국내정치 분야에선 맞서는 애국적, 대승적 자세를 취했다. 이 때문에 그는 金泳三, 金大中 세력으로부터는 공격을 받았으나 지금 뒤돌아보면 평가가 달라진다.
李의장은 1988년 이후 政界에서 은퇴하고도 愛國투쟁의 중심에 섰다. 일부 사람들은 '年老하신 분이 거리로 나오는 것이 보기 좋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지만 그는 '건국세대의 嫡者인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자세로 온몸을 던지고 있다.
항상 국가를 지역이나 당파성보다 우선시킨 李哲承 의장은 盧武鉉 대통령과 그 추종자들을 사이비 민주투사로 보고 있다. 李의장은 정치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약속과 예절을 잘 지키는 분이다. 나이 적은 사람들을 대할 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런 깔끔한 자세로 해서 그는 '호남양반'의 전형으로 불린다. 이런 분이기에 어제 노무현 정권을 '상놈의 정권'이라고 욕할 수 있었을 것이다. 李의장은 그런 자격이 있는 분이다. '상놈의 정권'은 또한 정확한 표현이기도 하다. '참여정부'나 '열린우리당'은 사기적인 作名이지만 '상놈의 정권'은 적확한 표현이다. 남로당 학살자의 사위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대한민국에 대해서 감사하기는커녕 '분열정권의 수립'이라고 저주하고 그 과거와 약점을 캐는 데 국민세금을 낭비해가면서 국가기관을 총동원하고 있는 사람. 그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다. 정확한 표현은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李의장은 말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李哲承선생은 왜 노무현을 '상놈'으로 보는가?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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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2-22, 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