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

트루먼 대통령은 순전히 개인적인 결심으로 한국인을 구했다. 한 사람의 도덕적 결단으로 4800만명이 自由民으로 산다.

1950년 6월25일 김일성이 스탈린과 모택동의 지원을 약속받고 소련 장군이 써준 남침작전계획서에 따라 동족을 치는 전면 남침을 해왔을 때 해리 S.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주말을 맞아 고향인 미조리주 인디펜던스에 가 있었다. 딘 에치슨 국무장관이 '이번 사태는 전면적인 대규모 군사행동이다'라고 보고하자 트루먼은 이렇게 말했다.
'딘, 그 자식들을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저지해야 합니다'
(Dean, we've got to stop the sons of bitches no matter what'
트루먼은 미국의 첨전을 결심하는 데 1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회고했다(A History of the American People by Paul Johnson). 이 결단으로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게 되었고, 지금 4800만 명이 자유와 번영속에서 살고 있다. 6.25 전에 이미 미국 합참은 무력침략에 맞서 미군을 투입할 정도로 한국이 전략적 가치가 높은 곳이 아니란 판단을 내렸다. 1950년 초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 클럽 연설에서 미국의 방어선이 한국과 대만을 포함하지 않는 것처럼 설명하여 김일성이 미군의 개입이 없을 것이라고 오판하도록 만든 것도 이런 군부의 판단을 반영한 것이었다. 아이젠하워 장군은 육군참모총장이던 1947년 주한미군을 빨리 철수시켜야 한다고 건의했고, 1949년 미군은 철수를 끝냈다.

6.25 남침시 미국이 한국을 지키기 위해서 대군을 보내야 할 이유는 별로 없었다. 상호방위조약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미군의 餘力도 크지 않았다. 더구나 미국은 약30만 명이 전사한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낸 지 5년밖에 되지 않았다. 대규모 전쟁에 개입하여 젊은이들을 희생시킬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미국 사람들 가운데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때였다. 미국이 한국을 구하기 위하여 전쟁을 결심한 것은 거의 순전히 트루먼 대통령 한 사람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지난 2000년의 민족사에서 한민족의 운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한 사람을 꼽으라면 트루먼을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자신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의 이 운명적 결정은 도덕적 결단이었다는 점에서 고귀하다. 그는 자유의 소중함과 공산주의의 악마성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미국이 나치 독일군과 싸우는 스탈린의 소련을 지원하고 있을 때도 그는 루스벨트나 국무부 고관들처럼 소련과 공산주의에 속지 않았다. 그는 스탈린과 히틀러는 똑 같은 독재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아내에게 쓴 편지에서 '스탈린도 히틀러나 알 카포네 같이 믿을 수 없는 자'라고 했다. 트루먼은 또 히틀러의 나치군대가 소련을 침략하자 '만약 독일이 이기고 있으면 러시아를, 러시아가 이기면 우리는 독일을 지원해야 한다. 그리하여 자기들끼리 가능한 많이 죽이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1차 세계대전 때 참전했고 소령으로 전역한 뒤에도 주방위군에서 일하면서 예비역 대령까지 올랐던 트루먼은 소련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組暴(갱스터)국가라고 보았다.

공산주의의 본질에 대해 정확한 시각을 가진 그였기에 스탈린이 2차대전의 여세를 몰아 세계赤化 전략을 추진할 때 단호하게 이를 저지하는 결의를 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냉전은 트루먼이 혼자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스탈린이 유럽의 점령지를 공산화하고 세계 곳곳에서 정부전복 활동을 벌이자 자유진영을 수호하기 위하여 미국이 나서면서 냉전의 막이 올랐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호국 과정 때 미국의 지도자가 트루먼이었다는 점이 우리를 구했다. 소련에 유학한 바 있는 黃長燁 선생에 따르면 김일성 김정일 독재에 비교할 때 스탈린식 독재는 양반중에도 상양반이라고 한다. 악마적 독재자 김정일에 대해 트루먼처럼 '저런 자식은 어떤 경우에도 몰아내야 해'라고 내뱉을 수 있는 신념의 지도자가 한국에서 대통령이 될 때 국민들은 다리를 뻗고 잘 수 있을 것이고 북한동포들도 희망을 갖게 될 것이다. 지도자의 도덕적 결단은 역사를 움직인다.
朴대통령은 여러번 일기와 연설에서 김일성을 '만고역적' '전쟁광' '미친 개'라고 저주했다. 그는 김일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이런 도덕적 우월감이 김일성을 코너로 몰아 남한이 對北 우위에 서도록 만든 원동력이었다. 입이 거칠어 국군과 老兵들에 대해서 욕지거리를 서슴지 않는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을 향해서 '위원장'을 떼고 '저 자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사석에서라도 말이다.

한국엔 트루먼 동상이 없다. 맥아더 동상은 있다. 맥아더의 인천상륙 작전을 재가한 것은 트루먼이었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맥아더가 유엔군에 대해서 총퇴각을 명령하고 워싱턴의 정책부서에서 한국포기를 검토하고 있을 때, 또 여기에 영국이 가세했을 때 한국死守를 결단한 사람도 트루먼이었다. 그는 두 번 한국을 구했다. 擴戰을 주장하는 맥아더 사령관을 해임했다고 해서 트루먼을 욕하는 한국인들이 있다. 당시 국제정세하에서 맥아더 노선을 트루먼이 따르기는 어려웠다. 중국뿐 아니라 소련을 상대로 한 세계전쟁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소련은 원자폭탄을 개발한 직후였다.

맥아더는 솔직담백한 시골사람이었다. 그는 한국인들로부터 감사를 요구한 적도 없다. 1963년 외유중이던 金鍾泌 전 정보부장이 은퇴중인 트루먼을 찾아가자 그는 오히려 '내가 한국을 통일시켜드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트루먼을 기억하기 위한 거리이름도, 동상도, 賞도, 건물도, 책도, 또 감사하는 정치인도 없는 한국이 다시 위기에 빠질 때 미국이 과연 우리를 도와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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