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관리자가 바꾼 것이다.
독일에서 조국에 바치는 글(제66신)
이합집산(離合集散)을 시작한 한국의 좌파(左派)들
A형! 5·31 지방선거에서 대참패(大慘敗)를 당한 좌파(左派) 열린우리당이 한동안 우왕좌왕하더니 결국 이합집산(離合集散)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더군요. 2006년 정기국회가 끝나고 나면 무언가 형체를 드러내겠지요? 그러나 그들은 실정(失政)에 대해 반성은커녕 지저분한(dirty) 정치행각을 획책하고 있더군요. 그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한 행태(行態)를 놓고 더러는 빅뱅(big bang, 대폭발)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디다만 그것은 잘못된 표현이지 않습니까? 대폭발(大爆發)이란 확대재생산을 기대하고 하는 말일 터인데, 5·31 지방선거와 여러 차례 재보선(再補選)에서 대참패(大慘敗)를 당한 이후 이반(離反)된 민심을 붙잡아 보겠다고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선택한 것이므로 이것은 빅뱅이 아니라 자폭(自爆)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요? 존립(存立)명분조차 사라져버린 좌파정당의 간판은 어차피 내리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기고만장(氣高萬丈)하여 안하무인(眼下無人)격으로 설쳐대던 그들이었지만 종말(終末)이 다가오니, 초라하고 추하기 그지없군요.
집권여당이라 해서 “정계개편(政界改編) 운운”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들 멋대로 놀아나는 것을 탓할 수는 없겠지요.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고 물러날 채비를 해야 할 사람들이 정권재창출이라는 허몽(虛夢. 헛꿈)을 꾸고 있으니, 그것은 국민을 향해 협박공갈을 넘어 헛발질까지 저지르는 만행이 아닙니까? 짐작컨대 그들은 아직도 패배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워낙 큰 패배라서 패닉(panic. 공황 또는 갑작스럽게 닥친 공포)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상태에 빠져있는 듯합디다.
“흰 개꼬리 삼 년 묻어 놓아도 황모(黃毛) 못된다”는 말도 있는데, 그들이 아무리 반성했다고 한들 불과 반년 남짓한 동안 무엇이 달라졌겠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여전히 “my way”만 질주하는 속에서 열린우리당은 실정(失政)을 반성하기는커녕 “한나라당이 반대하여 국정이 파행으로 치닫게 되었다”는 변명만 늘어놓더군요. 그러니 달라진 것이라고는 민심이반(民心離反)이 더욱 심화되어 11월 22일 현재 정당 지지도 한나라당 43.3%, 열린우리당 8.8%, 민주당 8.5%, 민주노동당 8.3%로 급락한 것이 아닙니까? 2004년 4월 총선에서 42.0% 정당득표율, 42% 중 33.2%는 떠나고 8.8%만 남자 급기야 여(與)·야(野)·정(政)이 정치협상회의를 하자고 제안했더군요.
대한민국 헌법(憲法)상 국회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 옥상옥(屋上屋)이나 마찬가지인 정치협상회의라니 말이나 되는 수작입니까? 그것은 「참여정부」(「노무현정부」)가 좌파(左派)정권이 아니랄까봐 중화인민공화국의 그것《정치협상회의(政治協商會議). 중화인민공화국의 인민민주통일전선(人民民主統一戰線) 형태의 독특한 조직》을 본뜬 정부기구를 만들자는 게 아니었습니까? 다행히 제1 야당인 한나라당에서 반대했으니까 망정이었지 하마터면 사회주의(공산주의)국가제도를 그대로 베껴와 결국은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를 신봉하는 대한민국을 사회주의(社會主義. 공산주의) 인민공화국으로 전락시킬 수도 있는 우(愚)를 범하고 말았을 겁니다.
중국의 정치협상회의(政治協商會議)라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제(日帝)를 중국대륙에서 무장해제(武裝解除)시킨 직후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 사이에 벌어진 국공내전(國共內戰)을 종식시키고자 장개석(蔣介石. 국민당 대표)과 모택동(毛澤東. 공산당 대표)이 1945년 8월 28일부터 10월 10일까지 중경(重慶)에서 벌인 40여일 간의 지루한 회담《중경담판(重慶談判)》을 마치고 발표한 쌍십협정(雙十協定)에 따라 1946년 1월 10일에 처음 소집한 회의였습니다. 당시 중국에는 국내외적으로 대표성을 인정받은 국민당정부가 존재하고 있었지만 내전(內戰) 상황이었으므로 사실상 정통성을 갖춘 정부가 없는 것(의회도 물론이고)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국론(國論)과 국권(國權. 국가권력)을 통일(확립)하기 위한 대책이 절실했습니다. 그리하여 소집한 것이 정치협상회의였지요.
회의 참가대표들은 각 당파(黨派)에서 스스로 선출했는데, 국민당 8명, 공산당 7명, 민주동맹(民主同盟) 9명《민주동맹 2명, 국가사회당(國家社會黨) 2명, 구국회(救國會) 2명, 직업교육파(職業敎育派) 1명, 향촌건설파(鄕村建設派) 1명, 제3당(第三黨) 1명》, 청년당(靑年黨) 5명, 무당파(無黨派) 9명 등 모두 38명이었습니다. 우파(右派)인 국민당과 좌파(左派)인 공산당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중도파(中道派)《중간파(中間派)》를 자처했지만 중도파라는 건 언제 어디서나 시소게임(seesaw game)을 즐기는 기회주의자들이기 마련이므로 역학관계(力學關係)가 변화하는 데에 따라 춤을 출 수밖에 없지요. 정치협상회의에서도 역시 예외는 없었습니다. 이 정치협상회의에서는 몇 가지 중요한 문제를 의결하기도 했지만 국공내전(國共內戰)이 악화되면서 공산당으로 무게중심이 쏠리자 중도파들은 공산당의 들러리로 전락했고, 정치협상회의 자체도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대립하고 있던 국공(國共)양대세력과 시류(時流)에 따라 이쪽저쪽 눈치를 보게 마련인 중간파들이 아무 법적(法的) 뒷받침이 없이 모여서 의결한 것이었으므로 힘있는 어느 쪽에서든 토라져버리면 아무 쓸모가 없게 되는 의결을 하고 만 것이었습니다. 소모성논쟁만 한 셈이었지요.
중국공산당은 대륙의 패권이 가시권(可視圈)에 들어오자 1949년 2월 25일 민주제정파(民主諸政派. 국민당을 제외한 모든 정파) 인사 35명을 북평(北平)《오랫동안 연경(燕京)·북경(北京)으로 부르다가 1928년에 중화민국이 북평시(北平市. 베이핑)로 정함.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성립과 함께 수도로 정하면서 북경시(北京市. 베이징)개칭》으로 불러들여 새로운 정치협상회의《신정치협상회의(新政治協商會議)》설치문제를 협의하고 6월 15일에는 제1차 전체회의를 개최하였습니다. 중국공산당의 각본에 따라 최고 의결·집행기관으로 상무위원회(常務委員會)를 구성하고 모택동(毛澤東)을 주임(主任), 주은래(周恩來)·이제침(李濟琛)·심균유(沈鈞儒)·곽말약(郭沫若)·진숙통(陳叔通)을 부주임(副主任)으로 추대하고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공동강령(中國人民政治協商會議 共同綱領)」을 비롯하여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에 필요한 기본제도를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권력은 총구(銃口)로부터, 그리고 공산당으로부터 나온다”는 공산주의사회에서 정치협상회의라는 것은 겉치레(장식품)에 불과했습니다. 이미 공산당에서 결정해놓은 것을 추인(追認)하는 방식으로 요식행위(要式行爲)만 갖추어준 것이었지요. 그러므로 중화인민공화국은 대한민국의 경우처럼 제헌국회(制憲國會)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인민정치협상회의(人民政治協商會議)에서 태어난 것이었지요. 그로부터 중국대륙은 공산당 일당통치시대를 맞게 되었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공산당세상이라 해서 일사불란(一絲不亂)할 수는 없었지요. 공산당 내부에서조차 다른 의견이 나온 것이었지요
권력독점(權力獨占)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한 모택동이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을 제거하고자 누군가의 말을 모방하여 표현하자면 “깽 판을 놀은” 것이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이라는 대변란(大變亂)이었지요. 모택동도 혁신(革新)과 개혁(改革)을 코빼기에 걸고 문화대혁명이라는 것을 일으켰지만 결과는 “깽 판”으로 끝나고 말았지요. 좌파특유의 “내부모순(內部矛盾)”을 타개하려다가 “교각살우(矯角殺牛. 뿔을 바로 잡으려다가 소를 죽임)”의 더 큰 모순을 불러온 것이지요. 다행히 등소평(鄧小平)이라는 명의(名醫)가 부활하여 뿔도 바로잡고 소(牛)도 살려냈지만 우리나라 좌파들 중에 과연 그런 명의가 출현할 수 있을까요? 어림없는 말씀이지요. 등소평이란 명의는 본격적인 공산주의를 수습《修習. 모스크바공산대학 수학》전에 근공검학(勤工儉學)을 통해 파리에서 서구자본주의세례를 흠뻑 받았으나 한국의 좌파들은 “나는 미국에 한번도 안 가보았다”는 리더의 말을 교조(敎條)처럼 떠받드는 우물안 개구리(井底蛙)들이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지요.
한국의 좌파(左派)들도 모택동과 그의 추종자들처럼 혁신(革新)과 개혁(改革)을 코빼기에 걸고 마치 자신들의 전유물(專有物)인 것처럼 행세하고 나선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러나 좌파(左派)정부의 효시(嚆矢)인 김대중(金大中)정부 집권이후 과연 혁신(革新)하고 개혁(改革)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오로지 “퍼주기”로 대한민국의 정체성(正體性)을 흐리게 만들고 서민경제를 벼랑 아래로 떨어뜨려 기본생활조차 어렵게 만들었으며 북한의 미사일과 핵무기개발을 부추겨준 것뿐이 아니었습니까? 미사일발사와 핵무기실험으로 그들의 마각(馬脚)이 드러나자 “햇볕정책”이네 “포용정책”이네 하는 것들이 속임수라는 게 만천하에 들통나고 말았지 않았습니까? 여기에서 좌파(左派)의 낯두꺼운 변신(變身. 속임수)이 꿈틀대기 시작하더군요.
혁신(革新)이네 개혁(改革)이네 하는 것이 좌파(左派) 또는 좌익(左翼)인 것을 감추려는 위장(僞裝)용 탈바가지라는 게 밝혀지자 스스로 염치가 없었던지 즉각 용어를 바꾸고 있더군요. 얼마 전에는 “혁신(革新)·개혁(改革)세력”이라는 말을 슬그머니 감춰버리고 “중도개혁세력”이라는 용어를 쓰더니, “평화개혁세력”이라는 뚱딴지같은 구호를 내세운 게 바로 그것입니다. “국민당은 세금이 많고 공산당은 말(회의)이 많다”는 중국사람들의 말을 기억하시지요? 말많은 좌파(左派)들인지라 구호도 재빨리 갈아치워 버리더군요. 하지만 “혁신(革新)·개혁(改革)세력”이라든가 “중도개혁세력”, 그리고 “평화개혁세력”이라는 허장성세(虛張聲勢)에 말려든 대한민국국민들은 “수구골통”인 친북반미좌파(親北反美左派)들 뿐이다 보니 자기들끼리 보따리 찢는 자중지란(自中之亂)이 벌어지고 말았더군요. 통합신당파(統合新黨派)와 당사수파(黨死守派)로 갈려 피 터지는 싸움을 계속하더니, 노무현 대통령이 곁 달고 나서자 연일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치닫던데요.
보수(保守)와 진보(進步)의 개념이 모호한 게 저간(這間)의 사정이었기 때문에 한동안 위장(僞裝)전술이 가능했지만 좌파(左派)들이 말하는 진보(進步)라는 것이 혁신(革新)과 개혁(改革)으로 위장(僞裝)한 좌익(左翼)세력이라는 사실이 명백히 밝혀지면서 지지율이 급락하자 당황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한국 좌파(左派)들의 진보(進步)사상이라는 건 퇴보(退步)사상이라는 사실을 더 이상 감추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또 다른 속임수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지요. 도대체 무엇이 진보(進步)이고 무엇이 퇴보(退步)입니까? 어렵게 생각할 게 없습니다. 앞으로 나가는 것이 진보이고 뒤로 물러나는 것이 퇴보이니까요. 그러므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는 소위 진보(進步)세력이라는 한국의 좌파(左派)들은 퇴보(退步)세력이라는 게 들통났고 사사건건(事事件件) 트집만 잡고 앞을 향해 매진(邁進)하려는 국가와 민족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좌파(左派)를 지지할 리 만무하지요.
분열(分裂)과 내분(內紛), 그리고 투쟁(鬪爭)이 좌파(左派)의 본질(本質)이라는 것을 대다수 국민들이 깨닫기 시작하고 등을 돌려버렸으므로 더 이상 “진보(進步)세력”이네 “혁신(革新)·개혁(改革)세력”이네 따위로는 국민들 속에 위장잠복(僞裝潛伏)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슬그머니 “중도개혁세력(中道改革勢力)”이라는 탈바가지로 바꿔 쓰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또 한번 대한민국(大韓民國)국민의 눈을 가림으로써 마음을 흩트리려는 속임수를 쓰기 시작한 것일 뿐입니다. “중도개혁세력”이네 “평화민주세력”이라는 건 바로 그것이 그것이므로 자신들이 “좌파(左派)세력”이라는 것을 내외에 선포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름표《명찰(名札)》만 바꿔 달았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좌파(左派)들에게 더 이상 속지 않도록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지키려는 “참국민”들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좌파(左派)들이란 원래 위장(僞裝)전술에 능숙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본색(本色)을 감추고 교묘하게 우파(右派)속으로 파고 들어와 분열(分裂)과 파괴공작(破壞工作)을 획책하기 때문에 정신차리지 않으면 이회창(李會昌):김대중(金大中), 이회창(李會昌):노무현(盧武鉉)의 대선(大選)에서처럼 또 당하기 십상(十常)이이지요. 이회창(李會昌):김대중(金大中)의 대결에서는 이인제(李仁濟)라는 잔대(‘잔대가리’) 굴리는 훼방꾼이 나서서 망쳐버렸지만 이회창(李會昌):노무현(盧武鉉)의 대결에서는 좌파(左派)의 위장전술에 대한민국이 철저히 놀아나고 만 것이 아니었습니까?
한국의 좌파(左派)들은 일제강점기의 신간회(新幹會. 1927~1931)에서 이미 드러났듯이 언제나 분열을 획책하는 무리였습니다. 8·15광복이후 지금껏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려댄 것밖에 아무 것도 없지 않았습니까? 분열과 파괴를 기본강령(基本綱領)으로 삼고 있는 게 좌파(左派)의 본령(本領)이므로 언제 어디서나 발전이라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었지요. 대표적인 게 한반도 북부에서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김일성(金日成)으로부터 김정일(金正日)로 이어져온 부자(父子)세습왕국 북한이고, 그들을 열심히 뒤따라가는 대한민국의 친북좌파(親北左派)들이지요. 노무현 대통령 식으로(또는 패러디해서) 말하자면 “친북좌파(모든 국내 좌파들도 마찬가지이지만)들은 북한 엉덩이 뒤에 숨어서 형님 백만 믿겠다. 이게 남북 대치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안보의식인가? 배(梨)주고 배속 빌어먹자는 짓이냐?”라고 물어보아야겠지요?
유감스러운 것은 최근에 이르러 모든 한국의 좌파(左派)들은 “50보(步) 100보(步)”차이일 뿐이지 친북좌파(親北左派)이긴 매일반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2월 21일 노무현 대통령이 제50차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약칭 평통(平統)》에서 행한 격정적(激情的)인 연설을 쏟아냈더군요. 더구나 대한민국의 국방이 튼튼하다고 큰소리치며 국군원로들을 비난까지 했더군요. 노 대통령이 워낙 식견이 짧아서 핵(核)보유와 비핵(非核)의 차이를 모르더군요. 북한이 핵실험(그것이 완벽했는지 미완이었는지는 장담할 수는 없더라도)을 한 지금 우리의 국방은 결코 안심할 상황이 아니지 않습니까? 핵무기와 재래식무기의 차이는 하늘과 땅차이니까요. 노무현 대통령의 실정(失政)은 일일이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지만 북한 핵무기개발 기미(機微)가 나타나고 있다는 우방 미국의 귀띔에도 불구하고 햇볕정책에 이어 포용정책이라는 미명(美名)아래 “퍼주기”를 계속한 것일 겁니다.
아마 미국공화당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덜레스(J. F. Dulles) 국무장관이 밀어붙였던 롤 백 정책(Roll-Back policy. 상대자를 방어하는 입장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공세로써 상대자의 힘을 돌려 치는 정책)을 모방한 듯하더군요. 미국 트루먼 정부의 페어 딜 정책《Fair Deal. 루스벨트의 New Deal정책에 이어 실시한 정책. 대외적으로는 공산세력과 벌인 냉전(冷戰)에서 미국의 우위를 확보하고 국내적으로는 경기를 진흥시키었음》에 뒤이어 공산주의의 팽창을 억제한 정책이 롤 백 정책이었지 않습니까? 훗날 레이건 정부가 밀고 나간 반공투쟁(反共鬪爭)의 밑거름이 되어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를 상대로 한 경쟁에서 완승을 거둘 수 있게 해주었지 않았습니까? 그 결과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의 붕괴와 함께 “공산주의 실험 끝(共産主義終末)”을 선언하게 만들었지요.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몹시 착각하고 있더군요. 소련의 스탈린과 더불어 극좌파(極左派) 중에서도 극좌파인 모택동이 “인민은 물이고 빨치산(공산당)은 물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지요? 그것은 아무리 강력한 사상(思想)으로 무장한 좌파(左派)일지라도 국민의 지지를 잃으면 설 땅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까? 모택동과 더불어 중국의 공산혁명을 이룩하고 기틀을 다진 Mr. Communist(공산주의자 중의 공산주의자)인 주은래《周恩來, 1898~1976. 중국공산당 정치국원(政治局員). 외교무장(1949~1958) 겸 총리(總理, 1949~1976). 중국사에서 최고의 명재상(名宰相)으로 꼽히는 3천년 전 상(商)나라의 재상 이윤(伊尹)과 비견(比肩)한다는 영원한 총리(?)》는 1972년 8월 한 연설에서 좌파《左派, 극좌사상(極左思想)》에 대해 “공허(空虛)하고 극단적(極端的)이며 형식주의적(形式主義的)이고 추상적(抽象的)이다”라고 지적한 다음 “극좌(極左)사상을 철저히 배격하지 않으면 또 다시 과오(過誤)를 범(犯)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경고한바 있습니다.
제가 2006년 3월에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은 극좌(極左)를 벗어나 중도좌파(中道左派)를 건너 중도우파(中道右派)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실리(實利)를 추구하는 이성(理性)을 지닌 지도자들이 이끄는 사회가 됐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지요. 극좌파(極左派)의 극좌(極左)사상을 철저히 배격한 주은래와 등소평으로 이어져온 합리주의(合理主義) 내지는 실용주의(實用主義) 노선이 승리한 때문에 오늘날 중국경제가 고도성장가도(高度成長街道)를 질주하고 있지 않습니까? 중국은 세세연년(歲歲年年) 대한민국의 박정희(朴正熙)시대에 버금가는 경제성장률(經濟成長率)을 보이고 있는데, 우리 대한민국은 좌파(左派)집권 이후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실업률(失業率), 그것도 청년실업률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A형! 좌파집권《김대중(金大中)·노무현(盧武鉉)정부》내내 청년실업률을 해마다 줄어들지 않고 늘어나기만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공부(고등학교와 대학)를 마치고 국민의 의무인 군복무를 마치고 나면 20대 중반이 되는데, 일자리(취직)를 잡지 못한 젊은이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10년 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반거들충이(반거충이)가 되고 말지요. 머지않아 좌파정부가 물러나고 경기가 회복되어 기업의 투자가 늘어나면 분명히 일자리는 늘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좌파정부 아래에서 경기후퇴로 말미암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늘어난 일자리에도 불구하고 속수무책일 겁니다. 매년 70여만 명이 넘게 쏟아져 나오는 새내기들에게 밀려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좌파정부 집권 10년 동안 반거충이로 만들어 놓은 젊은이들을 누가 어떻게 책임져야 하겠습니까?
그러나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마련해주지 못하는 대한민국 좌파정부는 반성은커녕 날이면 날마다 권력투쟁만 일삼고 있습디다. 통합신당파(統合新黨派)와 열린우리당 사수파(死守派)로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고 있는 진흙 밭으로 노 대통령도 뛰어들어갔으니, 도대체 이게 무슨 꼴입니까? 레임덕에 빠져 안간힘을 쓸게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본분을 다함으로써 권위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단견(短見)인지 모르지만 길이 보이지 않는군요. 우리나라 헌법상 좌파(左派)정권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는 달리 돌파구가 없지 않습니까? 2007년 2월 25일까지 참고 기다릴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머지않아 2006년이 다가올 것이고, 연말쯤에 대선(大選)을 치르게 될 터인데, 문제는 그 때에 투표를 잘해야 합니다. 두 번이나 좌파(左派)대통령을 뽑아 이처럼 곤경에 빠졌으므로 실수를 세 번이나 반복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
올해가 병술년(丙戌年)이지요?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올해는 북한핵실험을 비롯하여 병(病)과 술(酒)에 빠져 지낸 해인 듯합니다. 며칠 안 남았으니까 묵은해의 악몽(惡夢)을 훌훌 떨쳐내 버리고 새해 대선(大選)에서는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심정”으로 새로운 대통령을 잘 뽑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집시다. 새해는 돼지해 정해(丁亥年)이므로 돈공(豚公)처럼 저돌적으로 나아가 좌파(左派)정부를 물리치고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 대한민국(大韓民國)을 기필코 쟁취합시다. 새해에 다시 뵙겠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길 기원(祈願)합니다.
2006년 12월 27일 도이칠란트 본에서 대한민국 예비역 육군병장 金學培 드림
E-mail∶hong-sek@hanmail.net
한국의 극좌파, 自滅의 길을 달린다
- 김학배(在獨)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06-12-28, 06: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