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8일 북한의 핵실험은 盧武鉉 정권 실세들의 오판과 방관, 은폐 속에서 가능했다.
盧대통령은 집권 이후 북한의 核무장을 허용할 수 없다는 원론을 되풀이하면서도, 평화적 해결만을 절대불변(不變)의 원칙으로 주장해왔다. 채찍 없는 당근 속에서 북한의 核보유선언은 核실험선언이 됐고, 核실험강행으로 진행됐다.
<『北 핵실험 아무런 징후 없어』>
盧대통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이라는 주장이 일리 있다(2004년 11월12일 미국 LA)』『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은 선제공격용이 아니라 방어용이다(2006년 5월29일 향군지도부초청환담 中)』는 등 북한의 핵무장을 정당화하는 언동을 보여 왔다.
또『국정을 책임진 사람이 그런(핵실험) 예측을 단정적으로 하는 것이 적절하진 않다(2006년 9월28일 MBC100분토론)』『북한의 핵실험은 아무런 징후나 단서를 갖고 있지 않다(2006년 9월8일 핀란드)』는 등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을 부인해왔다.
한편『북한은 핵을 포기할 용의가 있다. 미국이든 북한이든 딴생각 말고, 거짓말하고 있지 않은 이상 결국 이 문제는 풀린다(2004년 4월12일 독일)』『참여정부가 내세울 만한 정책분야가 북핵 문제와 한미동맹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그야말로 지혜롭고 균형 잡힌 대처를 해왔다(2005년 8월26일)』는 등 北核 문제가 해결된다며 비판여론을 무마해왔다.
<미사일 도발 후 계속된 金正日감싸기>
2006년 7월5일 북한의 미사일 도발 이후에도 盧대통령의 「金正日 감싸기」는 지속됐다. 그는 7월14일 미국 개신교의 릭 워렌 목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북한의 不安을 대화와 설득을 통해 해소해줘야 북한이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릭 워렌 목사의 『어떤 나라든 위협이나 두려움을 느낄 때 공격적 행동을 하게 된다』는 발언에 대한 답변으로서, 북한도발에 대한 비판 대신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며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盧대통령은 7월11일 열린우리당 지도부 및 당 소속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들과의 청와대 만찬 회동에서도 미국의 對北압박을 「선참후계(先斬後戒)」라는 고사성어에 비유했다. 선참후계란 「군율을 어긴 사람을 먼저 처형한 다음 임금에게 아뢴다」는 뜻으로서 역시 북한의 불법행위 대신 미국의 대북압박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盧대통령은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등을 언급하며 『북한의 잘못이 드러나 대북 금융 제재조치를 취한 게 아니라 장부를 보기 위해 동결한 것이다』『부시 대통령은 북한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 대화에 어려움이 있다』『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미국에 양보를 요구하는 정치적 압박행위라고 본다』고 말했다.
<핵실험 후에도 『포용정책 지속』>
盧대통령의 對北인식은 석 달 후 북한의 핵실험이 벌어진 상황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북한의 핵실험 이튿날인 10월9일 기자회견에서 『이제 한국이 제재와 압력이라는 국제사회의 강경 수단에 대해 대화만을 계속하자고 강조할 수 있는 입지가 없어진 게 아닌가...한국 정부도 이 마당에 와서 포용정책을 계속 주장하기는 어려운 것 아니겠는가, 포용정책 효용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어렵게 됐다』며 기존 입장의 변화를 보여줬다.
그러나 같은 기자회견에서 『(포용 정책은) 궁극적으로 포기할 일은 아니지만...안보불감증도 곤란한 것이지만 지나친 안보민감증도 위험한 것이다...(북핵실험은) 당장의 안보의 위협은 아니라 할지라도...이와 같은 작은 문제에 있어서도 증권시장은 아주 민감하게 움직인다...우리는 이후에도 평화적 해결 그리고 대화에 의한 해결을 결코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등 애매한 표현을 덧붙혔다.
10월10일 이후에는 작은 변화의 조짐마저 사라져 버렸다.
盧대통령은 10일 여야 5당 대표 초청 오찬에서 『포용정책이 핵 실험을 가져왔다는 지적은 여유를 갖고 인과관계를 따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퍼주기 일변도의 포용정책이 핵실험을 불렀다는 한나라당 주장에 대한 반박이었다.
같은 날 전직 대통령들과의 간담회 이후엔 햇볕정책 고수 필요성을 역설한 金大中 前 대통령에게만 따로 전화했다. DJ측이 공개한 바에 따르면, 김 前 대통령은 『포용정책이 긴장을 완화시켰지, 악화시켰느냐』고 했고, 盧 대통령은 『전적으로 동감이다. 오늘 참모회의에서 그 문제를 논의 하겠다』고 했다.
급기야 盧대통령은 11일 청와대에서 가진 외교안보 전문가들과의 만찬 간담회에서 『對北포용정책을 포기할 수 없다』며 『유엔안보리 제재결의안이 통과되면 어떤 수준에서 북한제재를 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12일 알려졌다.
11일 민주평통 자문위원들과의 간담회에서는 『남북관계가 이처럼 화해와 협력 분위기로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핵실험이 일어났다면 국민이 얼마나 불안하겠느냐』고 포용정책의 효과를 부각했다.
결국 북한의 핵실험 3일 만에 盧대통령은 기존의 포용정책 기조로 되돌아 온 것이다.
盧대통령은 12월21일 ‘민주평통’연설에서도 “중국에서 9·19 성명을 서명하고 있는데, 그 2, 3일 전에 미국 재무부에서는 이미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대한 계좌 동결 조치를 해 버린 것”이라며, 북한의 핵실험이나 미사일도발에 대한 비판 없이 미국의 대북금융제재를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며 이렇게 비아냥댔다.
“아무리 봐도 지금 보기에는 국무부가 미처 몰랐던 것 아닌가, 북경에서 모르는 상태에서 그 하루 이틀 전에 제재는 나와 버렸고, 나온 것을 풀지 못하고 여기까지 와 버린 것 아닌가 이렇게 볼 수도 있고, 또 나쁘게 보면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어떻든 그렇습니다”
<참고 : 盧武鉉의 北核 관련 발언>
『북한의 의도를 잘 파악해 핵실험을 하는 상태에 이르지 않도록 대화를 통한 노력을 강화하고, 또 한편으로는 실제로 실험을 강행했을 때 초래될 상황에 대해 북한이 분명히 알게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2006년 10월3일 북한이 「핵실험 계획」을 발표했을 땐 국무회의 中)』
『국정을 책임진 사람이 그런(핵실험) 예측을 단정적으로 하는 것이 적절하진 않으며, 우리는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 대비하는 것이 옳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그런 일이 없도록 여러 외교적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전시 작전통제권 문제가 북한이 어떤 핵 실험 상황이냐, 아닌 상황이냐, 그것과는 직접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며, 전쟁 가능성의 높이, 그런 것하고 작전통제권하고는 별개 문제이다. 작전통제권은 그냥 한국이 가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 그런 능력이 있기 때문에 한국이 작전통제권 전환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2006년 9월28일 MBC 특집 「100분토론」)』
『북한 핵무기 보유에 대해 중국은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핵무기 기술도 높게 보지 않는 것 같다(2006년 8월13일 언론인초청환담 中)』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은 선제공격용이 아니라 방어용이며 남한의 지원 여부에 따라 핵 개발을 계속하거나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북한이 핵을 선제공격에 사용하게 되면 중국의 공조를 얻지 못하는 등 여러 제약이 따를 것(2006년 5월29일 향군지도부초청환담 中)』
『아직도 우리가 예를 들어 한미 연합훈련을 하고 있는데, 훈련 내용이 북한에서 보기에 불안한가 봐요. 반격이긴 한데, 반격이 원체 단호해서 보기 따라 불안하게 볼 수 있고, 어찌 보면 시비일 수도 있고, 실제로 불안할 수 있는 여러 사정이 있습니다...
많은 양보를 하려고 합니다. 양보를 원칙 없이, 국민 보기에 따라 자존심 상하게, 원칙 없이 양보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전쟁이라는 것, 한국전쟁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백지화하고 모든 것을 북한 뜻대로 하자, 북한에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이런 방식으로 양보할 수 없지만, 본질적인 정당성의 문제, 이런 문제에 대해서 그것을 양보하는 것이 아닌 다른 제도적 물질적 지원 이런 것은 조건 없이 하려고 합니다.(2006년 5월9일 몽골 방문 中)』
『대한민국 대통령이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될지 안 될지 모르겠다, 북한은 도대체 예측할 수 없다고 말 하면 판 다 깨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확신을 심어가는 것이 결국 정치하는 사람, 책임을 가장 크게 진 사람들이 할 수 밖에 없는 행동입니다...칼을 마주 든 것은 서로 불신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칼을 놓지 못합니다. 여기서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은 땅 바닥에 칼을 버리는 것입니다. 영화에서도 그 장면이 멋지게 보이는 이유는 선택의 용기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2005년 9월17일 기자간담회)』
『생각하면 2003년 했던 걱정은 고비를 넘겼다. 북핵 문제는 북경에서 다루고 있다. 적어도 결말이 날지 안 날지 모르지만, 한 발짝씩 좋은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 북핵 문제를 다루는 방향이 어렵게 어렵게 한 단계 한 단계 좋은 방향으로 와서 상당히 희망을 가질 수 있는데, 누가 굳이 판을 깨기야 하겠나? (2005년 9월13일 미국 뉴욕 방문 中)』
『북한 핵문제를 풀어가면서 우리 정부의 한미관계 역량을 증명해 나가고 있다고 봅니다. 이 문제는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서 아무도 뒤로 돌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 문제는 반드시 풀립니다. 또 그렇게 저도 믿고, 또 그렇게 믿기 때문에 여러 가지 지표들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그런데 참여정부가 내세울 만한 정책분야가 북핵 문제와 한미동맹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그야말로 지혜롭고 균형 잡힌 대처를 해왔습니다.(2005년 8월26일 KBS)』
『金正日(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가 고 김일성(金日成) 주석의 유훈이라고 강조한데 대해 유의하며 빠른 시일 내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2005년 6월23일 장관급회담 북한 대표단 면담 中)』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외부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북한의 주장은 여러 가지 상황에 비추어 일 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다. 북한이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6자회담 당사국들, 나아가 全세계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2004년 11월12일 미국 LA 방문 中)』
『북한은 핵을 포기할 용의가 있다. 미국이든 북한이든 딴생각 말고, 거짓말하고 있지 않은 이상 결국 이 문제는 풀린다(2004년 4월12일 독일 방문 中)』
(자료)盧대통령 北핵무장 오판·방관·은폐 사례-2
- 金成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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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1-04, 11: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