歲初의 ‘舌禍’ 2題 有感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모든 임금이 다 그랬던 것은 아니겠지만, 임금과 신하들 사이에도, 긴장해소 및 피로회복과 파한(破閑)을 목적으로, 여가(餘暇)의 시간을 이용하여 음담패설을 주고받는 일이 금기(禁忌)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주석(酒席) 등을 이용한 음담패설의 교환은, 물론 양풍미속(良風美俗)은 아니었겠지만, 남녀(男女)와 상반(常班)의 구별 없이 즐기던 관행(慣行)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번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겪은 ‘설화’ 파동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그러한 관행과 풍류(風流)(?)를 즐기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음을 말해 준다. 반겨 할 일인가, 아니면 서운해 할 일인가, 잘 모르겠다.
歲初의 ‘舌禍’ 2題 有感

1.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舌禍’

대통령선거의 해라서 특히 그런가보다. 새해가 밝자마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설화(雪禍)’ 아닌 ‘설화(舌禍)’ 파동으로 정가(政街) 주변이 온통 시끄럽다. 그 가운데서 가장 난처한 ‘설화’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한나라당 강재섭(姜在燮) 대표의 이른바 ‘음담(淫談)’ 파동일 것 같다. 강 대표는 결국 5일 나경원((羅卿瑗) 대변인을 통해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 ‘공개사과’하는 ‘모양’을 취함으로써 진화(鎭火)(?)를 시도하고 나섰다는 소식이다. 그런데도,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한나라당에 ‘성(性)나라당’이라는 ‘별명’까지 작명해 주면서 놓아주려 하지 않고 있다. 강 대표와 한나라당을 싸잡아서 ‘파렴치범’으로 낙인(烙印) 찍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연상(聯想)되는 일이 있다. 그것은 이씨조선(李氏朝鮮) 최고의 명군(明君)이었던 세종대왕(世宗大王)(1397-1450)과 집현전(集賢殿) 학사들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 훈훈한 이야기다. 세종은 집현전 학사들을 엄청나게 혹사(酷使)하고 있었다. 집현전 학사들은 야근(夜勤)을 밥 먹듯이 하고 있었다. 이 같은 사정을 안타깝게 생각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학사들의 야근 실태(實態)를 감시ㆍ감독하기 위해서였는지, 세종은 툭하면 밤중에 집현전으로 미행(微行)을 나가서 야근 중인 학사들에게 술상을 내리고 술동무를 해 주었다. 판서(判書) 직을 악수 교대한 구치관(具致寬)과 신숙주(申叔舟)와 술상을 사이에 두고 앉아 구(舊) 판서, 신(新) 판서, 구(具) 판서, 신(申) 판서 놀음으로 밤샘 벌주(罰酒) 파티를 벌이던 일화(逸話)도 유명하지만 임금이 집현전 학사들과 터놓고 음담패설(淫談悖說)을 주고받았다는 구수한 일화도 역시 전해 내려온다.

세종 치세(治世)(1418-1450)에 특히 임금과 집현전 학사들 사이에 일상적(日常的)으로 오갔던 음담패설들은 실전(失傳)되지 않고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 적지 않다. 그 이유는 근엄하고 고루하기 짝이 없던 유학자(儒學者)들인 집현전 학사들이 임금과 주고받으며 즐기던 음담패설을 문제의 학사들이나, 아니면 그의 제자들이, 기록하고 이를 서책으로 저술하여 후세(後世)에 전했기 때문이다. 서거정(徐居正)(1420- 1488)의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이라던가 강희맹(姜希孟)(1424- 1483)의 <촌담해이(村談解頤)ㆍ성현(成俔)(1439-1504)의 <용제총화(慵齊叢話)>ㆍ송세림(宋世琳)(1479- ? )의 <어면순(禦眠楯)>ㆍ성여학(成汝學)( ? - ? )의 <속어면순(續禦眠楯)> 등이 그러한 책들이다.

이렇듯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모든 임금이 다 그랬던 것은 아니겠지만, 임금과 신하들 사이에도, 긴장해소 및 피로회복과 파한(破閑)을 목적으로, 여가(餘暇)의 시간을 이용하여 음담패설을 주고받는 일이 금기(禁忌)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주석(酒席) 등을 이용한 음담패설의 교환은, 물론 양풍미속(良風美俗)은 아니었겠지만, 남녀(男女)와 상반(常班)의 구별 없이 즐기던 관행(慣行)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번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겪은 ‘설화’ 파동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그러한 관행과 풍류(風流)(?)를 즐기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음을 말해 준다. 반겨 할 일인가, 아니면 서운해 할 일인가, 잘 모르겠다.

2. 이용훈 대법원장의 ‘舌禍’

이용훈 대법원장의 변호사 시절 사건수임료에 대한 세금 탈루 문제는 점차 대형 ‘설화’ 사고로 키를 키워가고 있다. 원래 이 대법원장을 둘러싼 시비는 변호사 시절 수임사건 성공보수금 5천만 원에 대한 세금신고를 하지 않아 이에 대한 세금을 탈루했다는 의혹에 관한 것이다. 그는 연초 언론을 통해 이것이 문제화되자 이를 “세무사의 사무착오”였다고 설명하면서 가산금을 포함한 2,700여만 원의 세금을 납입했다. 그러나 그의 ‘설화’ 파문은 거기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 대법원장이 작년 11월19일 한 일간신문과의 회견 때 “10 원이라도 (탈세)했다면 직을 그만 두겠다”고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10 원’의 ‘270만 배’에 해당되는 세금탈루가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고, 또 스스로 인정한 이상, 밝혀진 탈루세액의 ‘270만분의 1’만 들어나도 “직을 그만 두겠다”고 했던 그의 ‘말’에 대한 ‘책임’ 문제가 당연히 제기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 ‘말’에 대한 그의 뒷설거지 발언이 이번에는 문제가 되었다. 이 대법원장은 문제의 탈루세액에 대해서는 “탈세가 아니라 사무착오였다”는, 듣는 이들의 귀에 익숙한, ‘변명’으로, 그리고 문제의 ‘10원’ 운운의 발언에 대해서는 “그때는 세금탈루가 있는 줄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라는, 누가 들어도 수긍하기 어려운, ‘설명’으로 얼렁뚱땅을 시도함으로써 엉뚱한 ‘설화’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10 원’은 엄청난 부메랑이 되어 그에게 돌아 온 것이다. 이 대법원장이 아닌 범인(凡人)들의 경우 세금탈루라는 탈법 또는 불법행위가 있었을 때 이번에 이 대법원장처럼 처리하고 또 이 대법원장처럼 ‘해명’하면 사법당국이 그 정상(情狀)을 어느 정도 참작(參酌)하는 것이 관행(慣行)인지 궁금하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인가. 자신의 ‘결백’을 ‘과시’하기 위한 수사학적(修辭學的) 표현이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이 대법원장은 5일 또 하나의 ‘설화’ 소재(素材)를 덜컥 제공했다. 그는 “당사자(사건 의뢰인)가 동의하면”이라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어도, “변호사로 일할 당시 받았던 사건수임료와 성공보수금 등의 내역을 모두 공개할 수 있다”고 말을 쏟아 놓았다. 그러나 그가 변호사 시절 사건수임 당사자들과 맺은 계약서 5년분을 대법원장에 취임하면서 모두 파기한 사실이 밝혀진 것은 바로 같은 날이었다. 대법원장이 아닌 다른 사람 같으면 ‘증거인멸(證據湮滅)’ 시비가 일어나도 할 말이 없게 된 것이다.

이번 이 대법원장의 경우가 연상시키는 일이 있다. 2002년 대통령선거 자금과 관련하여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관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2003년12월14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4당 대표들과의 회동(會同) 석상에서 “노무현 캠프인 선대위의 대선불법자금이 한나라당 그것의 10% 이상이면 내가 직접 알았건, 몰랐건 책임을 지겠다”면서 그렇게 되면 “대통령 직을 걸겠다. 대통령 직을 그만 두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었다. 그 뒤 검찰의 2002년 대선 불법자금 수사 결과에 의하면, 정확한 액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민주당의 노무현 캠프가 사용한 불법적 대선 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은 훨씬 초과하는 것으로 들어났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그의 ‘대통령 직 사퇴’ 약속을 시침 뻑 따고 식언(食言)했다. 이번 이 대법원장의 경우도 그때 노 대통령이 보여주었던 처신(處身)의 ‘짝통’이 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이것도 ‘코드 문화’의 한 단면(斷面)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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