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5년 사이 줄기차게 진행된 레이건 대통령의 對蘇강경정책은 소련 지도부를 고민에 빠뜨렸다. 소련 지도부는 레이건과 상대할 인물로서 54세의 새로운 형의 지도자 고르바초프를 공산당 서기장으로 뽑았다. 고르바초프는 레이건의 작품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고르바초프는 레이건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체제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동시에 레이건이 시작한 군비경쟁을 끝내어 소련경제의 내출혈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레이건-고르바초프 대화가 시작되었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월남전으로 변한 아프가니스탄 전선에서 소련군을 철수시키기로 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게릴라들에게 무기와 돈을 대어준 레이건 행정부는 월남전의 복수를 한 셈이었다.
고르바초프는 레이건의 '별들의 전쟁' 계획을 중단시키는 것을 최우선 외교목표로 삼았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소련은 놀랄 만한 양보를 하지만 레이건은 '별들의 전쟁' 계획에 대해선 양보를 거부한다. 그는 이것이 승부처임을 깨달았다.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은 인간적으로 친밀해졌다. 레이건은 소련을 붕괴로 몰아가면서도 항상 웃는 얼굴로 고르바초프를 대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정책에 대해서는 정치적, 외교적 지원을 했다. 레이건은 비로드로 감싼 쇠주먹으로 소련을 친 것이다. 웃으면서 소련을 죽여간 것이 레이건이었다. 여기에 이 대전략가의 위대성이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레이건의 對蘇정책이 스탈린類의 강경파를 지도자로 등장시킬 것이라고 걱정했으나 오히려 개혁파인 고르바초프가 등장하여 스스로 체제를 붕괴시켜나갔던 것이다. 이런 체제자살을 레이건이 유도한 셈이다.
비로드로 감싼 쇠주먹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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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1-28, 01: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