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유신’은 어떤 시대인가

유신시대만큼 강한 추진력과 역동성을 가진 ‘발전의 시대’가 있었는가.
[송복 칼럼]‘維新시대’를 말한다(2004년 조선일보)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느닷없이 ‘유신(維新)시대’가 대통령과 여당 중진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벌써 4반세기 전 일이다. 직선제 민주화가 이룩된 지도 20년에 가깝다. 우리처럼 변화가 가파르고 템포가 빠른 사회에선 10년도 까마득한 옛날이다. 그 몇 배의 세월이 흐른 유신시대는 우리 모두의 ‘기억 저편’에 있다. 그러나 이왕 나온 김에 한 번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정치적인 목적으로만 보는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학자 혹은 여타 분야의 학자들을 통해, 이 시대를 객관적으로 비춰보는 작업은 언젠가는 있어야 할 일이다.

우리에게 ‘유신’은 어떤 시대인가. 이론의 여지 없이 가혹한 탄압과 엄청난 인권유린이 있었던 시대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연발된 ‘긴급조치’가 그 산 증거다. 그에 맞서 어느 시대에서도 보기 어려운 극렬한 저항이 있었다. 그 저항으로 공고화된 저항세력이 지금 우리 사회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그 축이 바로 저항극렬성의 산 자료다. 그렇다면 탄압과 유린, 그리고 저항이 유신시대의 전부인가. 그것이 전부라면 대통령도 여당도 그 시대를 다시 거론할 가치는 없다.

분명히 유신시대에는 다른 것이 있었다. 유신시대만큼 강한 추진력과 역동성을 가진 ‘발전의 시대’가 있었는가. 오늘날 한국의 중공업은 이 시대에 모두 만들어지고 다져졌다. 제철·전자·전기·자동차·조선·기계·석유화학 등이 모두 이 시대에 발전했다. ‘한강의 기적’은 바로 이 시대의 산물이다. 해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가난―보릿고개도 이 시대에 없어졌고, 남쪽의 1인당 GNP가 북쪽을 능가한 것도 이 시대였다. ‘박정희·김일성의 경쟁’에서 북쪽을 메울 수 없는 간격으로 아득히 뒤로 따돌린 것도 이 시대였고, ‘일면 건설, 일면 안보’의 양 날개를 넓게 펴고 높게 날면서, 매년 10%가 넘는 고도성장을 30년 이상 지속케 한 것도 이 시대였다.

유신시대가 아무리 기억의 저편에 있다 해도, 그 시대의 독재와 탄압, 인권유린을 잊지 못하는 그만큼, 그 시대가 만들어낸 이 발전의 치열한 다이너미즘(dynamism) 또한 잊지 못한다. 그 거대한 몸부림이 있었기에 우리는 세계의 제일 밑바닥권에서 세계 상층권으로 뛰어오를 수 있지 않았을까. 그 맵고 치열함을 온몸으로 맞으며 극복할 수 있었기에,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 내에 고도산업화를 달성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그 시대와 같은 독재탄압이 없음에도 살고 싶은 나라가 아니고, 그 시대의 인권유린이 없는데도 떠나고 싶은 나라가 돼 있다. 90만명의 청년실업에 450만의 극빈자, 400만명의 신용불량자에 그 비슷한 수치의 잠재 신불자, 전 국민의 4분의 1 이상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국내기업의 설비투자는 해마다 떨어지고, 외국기업의 직접투자는 몇 년 새 바닥을 기고 있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는 일용근로자에, 고임금의 노조원들은 그것도 적다 하고 임금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수도 이전, 의문사위 조사, 과거사 청산, NLL 사건 등으로 나라는 유례 없이 갈기갈기 찢겨 있다. 그럼에도 정부 정책은 끝없이 불확실하고, 국가정체성은 그지없이 혼돈상태다. 오죽하면 국민 70%가 ‘희망 없이 산다’는 대답이 나오겠는가.

천하의 저항세력이 다 ‘유신’을 규탄해도 현 집권세력만은 입을 다물어야 한다. 오히려 ‘유신’으로부터 그 강한 추진력과 성장에너지가 어디서 나왔는지 배워야 한다. ‘박정희’는 확실히 포퓰리스트는 아니다. 포퓰리스트가 아니었기에 ‘김영삼·김대중’ 양 정권을 거치면서 그의 리더십은 새롭게 평가되고 재평가되고 있다. 마치 ‘소나무가 소나무인 것을 아는 것은 추운 겨울이 지나면서(歲寒然後 知松栢之後彫)’라는 경구와 너무 흡사하다. 유신시대만큼 업적을 내고 ‘유신’을 말해야 한다.
--------------------------------------------

김인숙(sese1000)
202 4 유신시대를 정치적으로 떳떳한 시절이라고 할 사람은 없다.그러면서 그 시절이 유독 이 정권에 들어 와서 왜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지금 희망이 있고 민생이 활기찬 세상이라면 유신시절이 왜 거론되겠는가.계속되는 실정을 교묘히 독재시절과 희석시키려는 현 정권의 음모로 밖에 안 보인다.그러나 그럴수록 대부분 국민들은 그 시절의 향수만 새록새록 더 할 뿐이다 (08/15/2004 19:15:58)

정원기
143 1 속이 후ㅡ련한 이야기 입니다. 진실을 호도하는 어떤 강한 세력에도 굽히지 않는 게,선비의 기질 입니다.이상하게도 요즈음에는 진짜 선비가 잘 보이지 않더군요. 어떤 선비는 권력의 핵심부에 가더니 갈보가 되어 버렸더군요. 진짜 선비 한분을 뵙게 됨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08/15/2004 22:08:55)

전영임(2493a)
74 0 인권유린의 시대였었나요?? 누가/어느만큼의 국민이 당했나요?? 혹시 정치판 진출희망자들 만의 몸부림이 아니었는지요?? 유신을 지켜보니까 한동안 정권(금권- 도둑?) 못잡을것같으나까 ??? 극소수의 정치인과 그 아류들의 후예들인 현재인들의 시기섞인 절규는 아닌지요 (08/15/2004 22:15:42)

박희찬(gihanghe)
40 0 유신시대눈 분명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못한 시절이 었다. 우리는 그 시대를 교훈으로 같은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집권당은 유신시대에 대한 화풀이를 당사자가 아닌 피해자였던 국민들에게 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거리에 넘치는 실업자들의 물결은 그래도 그 시절에는 없었다는 것은 무엇인가... (08/15/2004 21:30:58)

김동석(mcamp)
25 1 [1]유신시대에 법의 집행과정에서 실무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가혹행위 등 인권유린 사례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신은 터무니없이 왜곡되고 매도되어 온 감이 있다. 정치적 반대파들에 의해 수십년 동안 변호인단 없는 법정에서 일방적으로 무차별하게 난도질 당해왔다. 예컨대 유신헌법이 객관적 입장에서 박정희의 대통령당선을 담보하는 필연적 보증수표가 (08/15/2004 21:05:47)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