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에서 소개된, 북한의 조선노동당 출판사가 2003년 9월에 펴낸 對外秘 「간부 및 군중 강연자료」에서도 한국의 친북좌파 세력을 북한에선 '진보세력'이라고 부르고 있다.
세계적으로 '진보'란 공산주의자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역사의 진보라고 미화해서 써먹는 용어이다. 진보진영이라고 하면 공산주의, 사회주의 계열의 좌파진영을 가리킨다.
북한노동당도 그런 의미로 한국의 친북세력을 '진보'라고 불렀다.
한국에서 진보라고 자처하는 세력도 위의 用例에 맞다. 즉 親北反美의 좌경이념 소유자들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자칭 진보세력을 좌경세력, 친북세력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맞다.
일반 국민들은 '진보'라는 명칭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위장용, 미화용으로 조작된 것임을 잘 모른다. 그들은 보수보다도 '진보'가 좋게 들리니 여론조사 때 '당신은 보수냐, 진보냐'고 물으면 보수이면서도 진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진보'라고 대답하는 것이 '나는 親北이다'고 말하는 것임을 알게 되면 결코 자신이 진보라고 답하지 않을 것이다. 언론은 좌익들이 불러달라는대로 불러주면 안된다. 그들의 정체에 맞는 호칭을 써야 한다. 그래야 독자나 시청자들이 좌익들의 사기극에 넘어가지 않게 된다. 좌익을 진보라고 미화해주는 언론은 對국민 사기의 방조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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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정권에 협공당한 한국 중산층의 活路는 싸워야 열린다
趙甲濟 月刊朝鮮 편집장 (mongol@chosun.com)
북한의 조선노동당 출판사가 작년 9월에 펴낸 對外秘 「간부 및 군중 강연자료」를 입수했다. 제목은 「력사적인 6·15 북남공동선언 발표 이후 남조선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데 대하여」이다. 8쪽의 이 글을 요약하면 이렇다(全文은 별도 게재).
<위대한 장군님께서 마련해 주신 역사적인 6·15 북남공동선언이 발표된 후 남조선에서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남조선에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성 선전이 합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남조선에서는 보천보 전투를 비롯하여 어버이 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항일혁명투쟁이 백과사전에는 물론 학생들의 교과서에까지 공개적으로 서술되고 있다.
우리의 선전물을 전하는 親北 인터넷 사이트가 무려 2천여 개나 있는데 이 통로를 통해 위대한 장군님의 문헌과 「로동신문」 등이 당일로 게재되고 있다. 학계에서는 평양이 통일조국의 수도로 되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울려 나오고 있다. 수도를 남쪽으로 정했던 역대 봉건국가들은 예외없이 쇠퇴몰락되었다고 하면서 이런 의미에서 볼 때도 마땅히 평양이 통일조국의 수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괴뢰 외교부문에서는 「우리 식대로」 외교를 해야 한다는 말이 생겨나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반미자주」 「통일의 꽃」 「승리의 대오」라는 우리 식 표현들이 널리 수용되고 있다. 남조선에서는 반공보수세력에 비해 친북연공세력이 역량상 우세를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 민족끼리」라는 대명제 아래 남조선 인민들의 민족자주의식, 반미자주의식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지난 시기 자기를 반공보수라고 했던 사람들은 사회의 80%였고 진보라고 했던 사람들은 20% 미만이었다. 그나마 우리의 사상에 공감하고 우리를 따르고 동조하였던 세력들은 지하의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반대로 변하였다. 괴뢰 대통령 선거에서 극우익보수세력인 한나라당의 후보가 패하고 진보세력의 지지를 받은 후보가 당선되는 극적인 일이 벌어진 것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
결국 보수세력들은 더욱 더 사회의 기슭으로 밀려나고 민주화운동에 나섰던 것으로 하여 당국의 탄압을 받아왔던 운동권 출신들이 지금은 권력의 칼자루를 쥐었다. 386세대들이 사회의 중추에는 물론 청와대에까지 진출하는 등 지난 시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보수세력들 속에서는 앞으로 10년 후면 남조선에 「조선노동당정권」이 등장할 것이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역대 파쇼 당국이 우리와 연결시켜 수많은 애국자들을 학살 처형하였던 각종 사건들이 오늘에 와서 탄압사건으로 재규명되고 오히려 지난 시기 탄압사건을 조작하였던 교형리들을 처벌하고 있다.
이 모든 변화들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역사적인 6·15 북남공동선언을 마련하시어 남조선에서 진보세력의 활동공간을 넓혀 주시고 극소수 반공보수분자들을 철저히 고립시키신 결과이다. 지금 남조선 인민들은 외세와 공조할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끼리 공조해야 한다는 우리의 주장을 받아 물고 「민족공조」냐 「한미공조」냐를 결정하는 오늘의 현 시점에서 대부분이 「민족공조」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반미투쟁 속에 서울의 음식점들에 「미군출입금지」라는 표쪽이 나붙고 미군병사들이 대낮에 거리에서 얻어맞고 미군기지들이 습격당하는 등 지난 날 미군의 천국이었던 남조선이 오늘은 미군이 가장 가기 싫은 곳으로 변모되었다. 이상의 모든 사실들은 6·15 북남공동선언이야말로 남조선에서 그가 누구이든 민족적 화해와 단합, 조국통일이라는 대세를 함부로 거역할 수 없도록 거대한 변화를 안아온 민족통일의 보검이라는 것을 웅변으로 보여준다>
북한 노동당 보고서는 자신감에 차 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북한군의 내부 보고서가 북한 군대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軍紀문란에 대해서 걱정하고, 외부세계로부터 들어오는 개방의 바람을 경계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두 보고서를 읽어 보면 金正日은 북한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접하면 한숨이 나오고, 남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받을 때는 미소를 지을 것 같은 그림이 떠오른다.
북한 노동당 보고서는 보수반공세력이 守勢에 몰리고 친북연공세력이 攻勢를 취하고 있으며 이런 분위기를 타고 金正日 선전이 합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親北 인터넷 사이트가 2000개나 된다고 자랑도 했다. 이런 지적은 국정원, 검찰, 경찰, 기무사 등 한국의 공안기관에 대한 경멸이고 모욕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이 기관들에 국가보안법이라는 「체제수호의 칼」을 쥐어 주었으나 이들은 정권 안으로 진입한 좌파세력의 눈치를 보면서 이 칼을 쓰지 않고 있다. 녹슨 칼을 겁내지 않는 친북연공세력들이 운동권이 장악한 「권력의 칼」을 믿고 이제는 공개적으로 대한민국 수호세력을 몰아붙이고 있다는 이 보고서의 지적은 상당 부분 정확하다. 이 보고서는 오늘날 이런 상황을 만든 功(공)을 6·15 남북頂上회담을 통해 金大中 당시 대통령을 만나 주었다는 金正日에게 돌리고 있다.
이 보고서는 「6·15 북남 공동선언이야말로 남조선에서 그가 누구이든 민족적 화해와 단합, 조국통일이라는 대세를 함부로 거역할 수 없도록 거대한 변화를 안아온 민족통일의 보검이라는 것을 웅변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6·15 공동선언 제2항은 金正日의 對南적화통일방안과 金大中의 친북적인 무허가 통일방안을 억지로 연결시켜 이를 남북이 함께 지향할 통일방안이라고 규정한 반역적 합의였다. 李長春 대사는 이를 「국가변란 기도」라고 규정했다.
이제 북한정권은 『赤化통일하자』는 말 대신에 『6·15 선언을 실천하자』는 말만 하면 된다. 대한민국이 두 金씨의 반역적 합의를 무효로 만들려면 金大中씨를 국가반역혐의로 법정에 세우고 6·15 선언과 남북頂上회담을 둘러싼 음모를 단죄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다. 金正日의 손에 들어간 적화통일의 이 寶劍을 빼앗아 오기 위한 투쟁을 반공보수세력이 어떻게 벌여 나갈 것인가. 벼랑에 몰린 반공보수세력(또는 대한민국 수호세력·애국세력)의 再生과 반격은 과연 가능한가.
이 보고서는 남한 국민들이 金正日 정권이 제시한 「민족공조」라는 선동을 「받아물고」는 反美투쟁에 나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과장이라고만 볼 수 없는 것은, 동맹국인 미국을 한국에 대한 더 큰 위협으로 생각한다는 여론이 金正日을 위협으로 생각한다는 여론보다 많아진 작금의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3년 전에 예언한 북한 측 문서가 있다. 나는 2001년 초 중국 공안기관의 내부 문서를 하나 입수했었다. 이 문서는 중국 측이 북한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소개한 내용이었다. 그 요지는 이러했다.
<남북頂上회담과 6·15 평양선언으로 베일에 싸였던 金正日 국방위원장은 영화 속의 주연 역으로 변신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으며 남북한의 권력투쟁에 있어서 주도적 선두주자가 되었다. 북한통일전략본부(조민통)의 분석에 따르면 남북頂上회담 이후 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인기는 날로 상승하고 60% 이상의 남반부 인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남반부에서 활동하는 지하조직 통일 일꾼들은 조국과 金正日 국방위원장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활동하고 있으며 100만의 좌경세력, 300만의 진보세력, 200만의 동조세력 등 600만의 인민들은 金正日 국방위원장을 영도자로 모시는 통일전선에 동참하고 있다.
金大中 정부 출범 이후 일부 시민단체들은 북한의 동조세력이며, 노동단체와 학원·언론사 등 각계각층에도 핵심 인물은 우리의 통일일꾼이며 직능단체와 공직자 사회에까지 침투하고 있다. 남한에서는 4·3 제주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였으며, 국가보안법도 개정될 것이고, 거창사건과 여순사건도 재조명될 것으로 본다. 우리의 통일일꾼들은 지하에서 거리로 활보하여도 아무런 제약이나 제한을 받지 않고 있다. 남한의 정보, 수사기관 등에서도 6·15 평양선언의 국민적 정서에 따라 속수무책이다.
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을 계기로 환영분위기가 성숙되면 정상회담에서 통일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할 것이며 金大中 대통령의 임기 중에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체결하고 군비축소 문제를 협의하게 될 것이며 한국군은 主敵 개념을 상실하고 사기가 저하되고 유명무실한 평화유지군으로 전락할 것이다.
남한의 보수세력은 노쇠화하고 무기력하며 말로만 국가안보, 체제수호를 외칠 뿐 행동하지 않으며 남한의 정치권과 공직사회는 무능하고 부패되었으며 여·야는 갈등과 대립, 극한투쟁으로 민생을 외면하고 있어 국민의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다.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초당적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여·야 국회의원 중에 북한의 동조세력이 다수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6·15 정신은 화해와 협력의 시대이므로 적대행위와 상호비방을 하지 않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북한을 자극하는 언행과 비판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며 북한을 고무 찬양하는 방향으로 방송매체는 총동원될 것이고, 언론기관은 통일홍보에만 전념하게 된다. 그러므로 6·15 정신을 준수하는 쪽은 북한이 될 것이고, 위약하는 쪽은 남한이 될 것이다. 남한은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로 국론이 통일되지 않는다. 남한의 언론 기관들은 대체로 6·15 정신에 따라 북한에 협조하고 있다>
중국 공안기관의 이 보고서는 또 金大中 당시 대통령의 정책을 이렇게 비판했다.
<金大中 대통령은 남북頂上회담으로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지도자로 부상되었고, 민주주의와 세계평화에 공헌하는 데 급급하였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우월적 가치를 과신한 나머지 많은 것을 양보하였고, 남북간의 대화에 있어서 공동우승의 개념에서 남한이 패하는 누를 범할지 모른다>
이 보고서의 핵심은 남북頂上회담을 통해서 金正日은 金大中 정권과 언론을 조종할 수 있는 고삐를 쥐게 되었고, 이를 통해서 한국의 좌파세력을 강화시킴으로써 「무기력하고 노쇠한 보수세력」을 몰아붙여 한국을 親北化할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2001년 초의 이 분석은 2003년 가을에 나온 북한 노동당의 한국정세 분석에 의해서 그 정확성이 追認(추인)된 셈이다. 그 사이 2002년 大選이 있었다. 이 大選을 전후한 한국사회의 변화가 북한정권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였던 것이다.
북한의 對南공작 기관이 「100만의 좌경세력, 300만의 진보세력, 200만의 동조세력 등 600만의 인민들은 金正日 국방위원장을 영도자로 모시는 통일전선에 동참하고 있다」고 분석한 것도 거의 사실에 가까웠다. 2002년 月刊朝鮮은 매월 유권자를 상대로 여론조사를 하면서 「金正日을 惡으로 보는가, 善으로 보는가」라고 물었다. 10~12%가 항상 「金正日을 善으로 본다」고 대답했다. 이들은 적극적인 親北좌익세력이라 할 것인데, 인구수로는 약 400만 명으로 북한정권이 분석한 「좌경세력 100만+진보세력 300만」과 거의 일치했다.
2002년 여론조사를 통해서 우리 한국사회는 약 10%의 親北세력, 약 30%의 이념적 浮動層, 그리고 약 60%의 反共보수세력으로 갈려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60% 가운데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애국자유세력(혹은 대한민국 수호세력)은 반 정도로 추정된다. 즉 한국사회에서 약 30%가 믿을 수 있는 자유민주 수호세력이란 이야기이다. 이는 金正日 정권과 남한의 좌파정권이 방송 등을 선동기관화하여 국민들을 끌고 가려고 작심하면 일시적이라도 약 70%의 국민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위에서 소개한 두 북한 문건의 시각을 들여다보면 金正日 정권은 金大中·盧武鉉 세력을 「진보세력」이라고 규정하고 이들을 이용하든지 이들과 연합하든지 하여 한국의 反共親美자유애국세력을 약화, 고립시킨 뒤 親노동당 정권을 수립하려는 전략을 줄기차게 추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金大中·盧武鉉·金正日, 이 세 사람은 각자의 이념과 계산은 달라도 한 가지 방향에서는 일치하고 있다. 한국의 정통 주류세력에 대한 적개심이 그것이다. 이 공통적인 성향 때문에 대한민국의 주류층은 남북한 정권으로부터 협공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한국의 보수 주류층을 대표하는 「反核反金 국민대회」가 개최했던 2003년 8월15일 국민대회(서울시청 광장)에서 애국단체가 인공기를 불태웠을 때 金正日정권은 이를 규탄했고, 盧武鉉 정권도 북한 측에 사과하는 한편, 인공기를 보호하기 위하여 애국단체의 집회장에 경찰을 투입하여 반란 깃발을 육탄방어하였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러한 남북한 정권 사이의 공조는 왜 일어났는가. 金大中·盧武鉉 두 정권은 金正日 정권을 대하면서 헌법의 원칙, 민주의 원칙, 국가의 원칙, 인간의 원칙을 저버렸다. 법과 휴머니즘과 정의감을 저버린 것이다. 盧武鉉 정권이 승계한 金大中의 對北정책의 핵심은 자유통일(즉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북한동포의 인권을 외면하겠다는 것이고, 민족반역자를 통일의 파트너로 간주하겠다는 것이었다. 즉, 金正日 정권을 主敵으로 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국민은 主敵을 공유하는 공동체이다. 金正日을 主敵으로 보지 않으려는 국민은 대한민국에서 탈퇴하여야 한다.
이런 對外的 원칙 포기는 곧바로 對內的 원칙의 혼란으로 나타났다. 金大中·盧武鉉 정권의 행태에서 대한민국 수호세력을 主敵으로 보는 듯한 증상이 감지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主敵의 교체현상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것이 단편적인 현상이 아닌 전면적인 현상으로 진행되면 혁명이나 내전이 일어난다. 북한노동당의 한국정세 보고서는 이런 우려가 杞憂(기우)만이 아님을 보여 주었다.
이제 대한민국을 만든 정통 주류세력은 남북한 정권의 협공구도에서 조국과 자유와 재산을 지켜낼 수 있는가 하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동안 자신들을 지켜 주던 국가기관이 「우리 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체제·자유·재산을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몰린 것이다.
사회주의적 좌파 정책의 본질인 평등, 평준화, 획일화, 국가개입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면 가난한 사람들만 피해를 본다는 것이 소련, 북한 등 도처에서 확인되었다. 이제 한국에서도 그런 확인이 이뤄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전 기획관리실장인 金鍾大씨(계명대학교 초빙교수)에 따르면 金大中 정부의 획일적 의료개혁 실험인 의보 통합-의약분업의 파탄으로 지난 5년간 국민들은 18조4551억원의 의료비 추가 부담을 져야 했다고 한다. 그러함에도 의료혜택은 줄고 서비스의 질은 떨어졌다는 것이다. 작년 한 해만 해도 6조5497억원이 늘었는데 이 돈이면 모든 입원환자들이 무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이 대학 입학생 집안의 분석 결과 高소득자, 高학력자, 전업주부, 강남 8학군 집안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가난한 수재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고교 평준화 교육으로 학교 교육이 부실해져도 부자 집안은 돈의 힘을 빌어 과외수업과 학원수업을 시켜 만회를 할 수 있다. 가난한 집안은 그러나 학교 교육만 받아야 하니 경쟁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개천에서 龍이 나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래도 평준화가 좋다고 우기는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평준화를 이용함으로써 서민들의 이익을 짓밟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 발표된 통계청의 2003년 12월 고용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盧武鉉 대통령의 경제실패로 해서 주로 우리 사회의 下層 사람들, 즉 못사는 사람, 학력이 낮은 사람, 나이가 젊은 사람, 일용직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음이 밝혀졌다.
●지난 12월 현재 고졸 학력자 중에서 실업률은 4.6%인데 이는 전년도 같은 기간의 3.4%에 비교하여 36.5%나 증가한 실업률이다. 중졸이하 실업률도 1년 전에 비해 3.6% 증가했다. 大卒 이상에선 실업률이 오히려 3.7% 줄었다.
●일용 근로자는 1년 사이에 32만3000명이나 줄었다.
●지난 12월 현재 15~19세 연령층의 실업률은 16%로서 1년 전보다 33%가 늘었다. 20~29세 실업률은 8%로서 1년 전보다 19%가 늘었다.
低학력, 低연령, 서민층은 盧武鉉 후보 지지층과 많이 겹친다. 盧대통령은 대기업과 高소득자들을 주로 견제하고 노동자 농민들을 보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잘 사는 사람을 보호하고 못사는 사람들을 더 못살게 만든 셈이다. 경제불황이 오면 富者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 기업을 신나게 만들어 富者가 더 돈을 많이 벌게 해야 서민층도 돈을 많이 벌게 된다는 너무나 간단한 공식을 무시하고 돈 있는 사람들을 몰아세우는 것이 正義라고 생각한 결과는 사회 평등의 악화라는 不正義로 나타났다. 盧武鉉 대통령은 결국 그의 지지층을 배신한 셈이다. 이런 말이 생각난다. 「혁명가들은 모두 출신 계급을 배신한다」
한국 현대사의 진정한 혁명가·개혁가·진보세력을 꼽으라면 나는 네 손가락을 꼽는다. 국민국가 건설의 主役 李承晩, 조국 근대화의 騎手 朴正熙, 자본주의의 개척자 李秉喆, 근대화의 産物이자 민주화의 주류세력이었던 중산층. 여기서는 이들을 총칭하여 한국의 정통 주류세력이라고 부른다. 보수층이나 기득권층이란 말로써는 이 세력의 개혁성과 생동성을 표현할 수 없다.
李承晩 대통령은 젊었을 때는 과격한 급진행동파였다. 高宗을 守舊세력으로 단정하고 그를 타도하려다가 5년이 넘게 옥살이를 했다. 그는 예수의 역할을 정치적으로 해석하여 한국의 개화를 기독교 국가 건설로 연결시키고자 했다. 李承晩의 혁명성은 조선왕조 지배층의 守舊性에 절망하면서도 백성들의 先進性에 확신을 가지고 이들을 교육하고 啓導(계도)하면 국민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점이다. 그는 국민여론을 조직하고 동원하는 것이 政治의 근본임을 알았다. 그런 점에서 그는 한국 최초의 대중정치인이다. 언론과 강연을 통한 그의 정치투쟁은 국민들의 마음을 갈고 닦아서 그 여론의 힘으로 역사를 바꾸겠다는 전략의 실천이었다.
朴正熙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우상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이 한국식으로 變用되어야 현실에 쓸모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국력의 조직화, 능률의 극대화를 통한 경제·안보 중심의 근대화만이 민주주의의 토양과 울타리를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적 불가피성은 인정했지만 무장대치 상황의 한국적 현실에서는 자유의 永續과 共同善을 위해서 그 자유를 일시적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富國强兵에 기초한 진정한 自主를 꿈꾸었다. 우리 민족이 신라통일 이후 처음 가졌던 비전이었다.
李秉喆은 淸貧을 미화하고 돈벌이를 죄악시하는 위선의 풍토, 不毛의 토양에서 서구식 자본주의와 동양적 유교문화를 결합한 한국식 기업문화를 만들었다. 그의 아들 李健熙 代에 와서 우리는 三星이란 세계 일류 기업을 갖게 되었다.
위의 세 巨人이 가진 공통점은 외래의 先進 문화와 사상을 모방하지 않고 한국식으로 再해석하여 우리 것으로 再창조했다는 점일 것이다. 외래문화의 주체적인 수용과 응용,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위대한 정신력! 李承晩식 국민국가 건설, 朴正熙식 국가 근대화, 李秉喆식 자본주의 정신은 대한민국이 세계에 내놓을 만한 독창적인 성취이다.
이 세 사람과 그들이 육성한 국가 엘리트들이 앞장섬으로써 대한민국은 불과 50여년 만에 석기시대-철기시대-농경시대-산업혁명-정보화시대를 관통하면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6위권의 군사강국, 30~40위권의 삶의 질을 만들어 내었다. 인류역사상 처음 보는 전광석화의 巨步였다. 오늘의 한국인들은 현재 당면한 분열과 停滯(정체)와 반역의 그림자를, 빛에 따라다니는 숙명적 陰影으로 담담히 받아들일 필요도 있을 것이다. 성취가 빠르고 컸던 만큼 그에 따른 反動의 골짜기도 깊을 것이다.
李承晩, 朴正熙, 李秉喆의 작품은 현대사의 주류세력으로 등장한 중산층이었다. 이 중산층은 지도자에 순응하는 모범생이 아니라 李承晩의 몰락, 朴正熙의 피살, 李秉喆의 궤도수정을 가져온 반골정신과 전문성과 균형감각을 두루 갖춘 진보세력이었다.
1960년대 중산층의 견해를 대변하던 신문이 학생들과 손을 잡으니 軍部도 동조하여 李承晩 정권이 무너졌다.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의 중산층이 대학생 시위에 가담하니 열흘 뒤 朴正熙 피살사건이 생겼다. 1980년 봄, 경제불안에 휩싸인 중산층이 학생들로부터 멀어지자 新군부는 고립된 학생시위를 진압하고 집권할 수 있었다. 1985년 2·12 총선에서 중산층은 선명야당을 밀어 줌으로써 민주화를 大勢로 만들었다. 1987년 6월 넥타이 맨 중산층은 학생들과 손을 잡고 6·29 선언을 끌어내었다. 그해 12월 선거에서 金泳三·金大中이 분열하자 다수 중산층은 盧泰愚를 대통령으로 뽑아 군인 출신 대통령에게 민주화의 실천을 맡기는 놀라운 균형감각을 발휘했다.
한국 중산층의 역사적 역할은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 좌파의 득세로 모호해졌다. 2002년 大選을 전후하여 한국사회의 헤게모니가 20, 30代와 직업적 좌파선동가들에게 넘어갔고, 그 힘을 이용한 좌파정권이 들어서서 이 세력을 더욱 확장시키면서 한국 현대사의 중심을 잡았던 중산층의 역할이 약화되었다.
중산층의 특징은 恒産에서 우러나는 恒心일 것이다. 恒産이란 재산뿐 아니라 전문성이고, 恒心이란 공동체의 생활규범인 염치일 수도 있으며 교양이기도 하다. 恒心은 전통적 문법으로는 忠孝事親愛로 요약된다. 국가에 대한 충성, 가정사에서의 孝, 상급자에 대한 섬김, 친구에 대한 의리, 하급자에 대한 사랑. 건전한 중산층은 이러한 전통과 역사의 계승자이면서 동시에 그 전통을 현대적으로 變用시킬 수 있는 혁신성과 전문성을 가진다.
대한민국의 오늘날 위기는 사회의 중심세력이 건전한 중산층에서 교양 없는 좌파세력으로 바꿔치기 당한 데서 연유한다. 선진화를 지향하는 근대세력이 守舊좌파에게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건국-호국-근대화-민주화의 全과정을 주도해 온 한국 현대사의 진정한 진보세력, 중산층의 무기력은 챔피언의 상실과 스스로 정당방위의 용기를 잃어버린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한국 중산층이 역사의 주체세력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서는 국가와 역사의 주인이 「우리」이고 「나」라는 자기 확신, 거기서 우러나는 행동과 용기를 體化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중산층을 보호 육성한 챔피언들은 李承晩·朴正熙로 상징되는 역대 정권이었다. 중산층은 역대 정권의 성공적 국가건설로 인한 産物이기도 했지만, 그들은 자유를 갈구하면서 권력에 반항하여 결국은 그들의 代父들을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시킬 정도의 힘도 가졌다.
李承晩·朴正熙는 그리하여 자기 성공의 희생자가 되었는데, 자기 실패의 향유자가 된 金日成·金正日 치하의 북한 주민들에게 비교하면 한국의 중산층은 얼마나 위대하고 다행이었나.
한국 중산층의 챔피언이란 결국 보수정치인이란 이야기인데, 1993년의 金泳三 대통령 취임 이후 知行合一의 보수 챔피언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 한국사회 좌경화의 한 원인이 되었다. 金泳三 대통령은 출신성분이나 걸어온 길이 온건한 민주투사·보수정치인의 歷程이었으나 이념문제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여 좌파참모에게 이용당하고 말았다. 그는 한국 현대사를 부정하는 좌파적 역사관으로 洗腦(세뇌)당하여 자신의 지지기반을 분열시키고 파괴함으로써 한국 보수정치의 정치기반을 약화시켜 그는 결국 좌파정권 등장의 길을 열었다고 해석된다.
李會昌, 崔秉烈 두 사람은 엘리트 코스를 밟은 정상인들이었으나 남북의 무장이념 대치 상황에서는 이념이 가장 큰 전략이란 한국 정치의 근본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념과 전략을 전술에 부속시키는 크나큰 실수를 저질렀다.
이념의식이 투철하지 못했던 李會昌씨는 彼我를 갈라야 하는 한국의 정치판에서 黨內의 좌파를 友軍으로, 黨外의 右派를 기피대상으로 설정하여 우파의 外延(외연)을 확장하지 못하더니, 촛불시위라는 좌파선동에 편승하는 기회주의적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멸했다. 작년에 등장한 崔秉烈 한나라당 대표도 李會昌씨와 비슷한 행태를 드러냈다. 작년 10월에 盧武鉉 대통령이 측근 비리를 자백하면서 재신임 투표를 요구했을 때 崔대표의 선택 여지는 단순명료했다. 盧대통령의 정면승부 요구를 받아들이든지, 재신임 투표의 초헌법적 발상과 여러 失政을 들어 탄핵을 추진하든지. 崔대표는 그 어느 것도 하지 않고 대결의 시간을 뒤로 미룸으로써 政局 주도권을 상실하여 逆攻의 기회를 주고 말았다.
崔秉烈 대표는 또 盧武鉉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든, 행정수도 이전으로 위장된 遷都계획에 찬성하도록 黨論을 몰아가 관련 법안의 국회통과를 가능케 했다. 이는 정권의 對국민 사기극에 가담한 행위였다. 국민들은 안보와 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수도이전을, 국가이익의 편에 서서 막아 줄 정치세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보수층이 믿었던 챔피언이 敵將에 투항해 버린 꼴이다. 국가와 국민의 안전에 치명적인 해악을 미칠지도 모를, 이처럼 거대한 國策을 특정지역의 표와 바꾸겠다는 발상을 하는 이는 절대로 보수세력의 챔피언이 될 수 없다. 어느 나라나 좌파는 인기영합의 정강정책을 내세우지만 右派는 원칙과 국익을 양보하지 않는다.
전술적 기회주의는 그러나 전략적 성공을 위한 것이라면 용서될 수도 있다. 崔秉烈 대표의 遷都찬성이 한국 좌파세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는 결과를 거둔다면 보수 중산층은 변절을 용서할지도 모른다.
결과는 반대일 것이다. 충청도에서 한나라당은 열린당이나 자민련에 밀릴 것이고, 수도권에선 총선의 가장 큰 무기를 잃었으며, 특히 서울에선 지역주민을 배신한 代價를 치러야 할 것이다. 서울의 유권자들이 한나라당 의원들을 당선시킬 때 수도를 서울에서 충청권으로 이전하도록 위임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李會昌 崔秉烈 두 사람의 실패는 좌파득세에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지지기반인 약 60%의 중산층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산층으로부터 熱火와 같은 지지 대신 배신감을 삼으로써 崔秉烈 대표는 黨內의 입지를 스스로 좁혀 버렸다.
공부가 없는 보수정치인은 좌파에게 이용당하고, 이념이 없는 보수정치인은 기회주의의 함정에 빠짐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중산층을 배신한다는 것이 1993년 이후 우리가 목격한 바이다. 新우파, 또는 新보수를 待望하는 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이런 허전함에서 나온다.
작년에 한나라당을 대체할 만한 애국세력이 등장하는 氣運이 느껴진 적이 있었다. 反共 기독교 계통, 재향군인회, 우파 시민단체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 낸 3·1, 6·25, 8·15 국민대회는 수많은 시민들을 모으는 데 성공하였으나 지속적인 애국운동으로 정착되지는 못했다. 우파운동의 약점인 名望家 중심의 한계, 大同團結 정신의 不在, 청년층과 법조인과 기업인의 참여 不振으로 해서 공격성이 유지되지 않았다.
이제는 국민들이 자신들의 챔피언을 찾아 헤매는 식의 정치 의존적 애국운동으로써는 새로운 상황에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들이 李承晩·朴正熙·全斗煥 같은 체제유지의 챔피언들에게 국가의 운명을 맡겨 놓고 그 뒤에서 논평자로 있으면서 이들이 실수하면 그것을 비판하기만 하면 되었던 시절은 지나갔다. 국민들이 스스로 각자의 분야에서 陣地(진지)를 지켜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가정에서는 자녀들과, 직장에서는 직원들과, 학교에서는 학생들과 격론을 벌이면서라도 그들을 교양과 애국심 있는 한국인으로 만들어 내지 않으면, 그렇게 하면서 기성세대도 스스로를 바꿔 놓는 全人的인 노력으로써만이 좌경화를 저지하고 상황을 反轉시킬 수 있을 것이다. 좌파정권의 등장 이후 국군을 제외한 全공권력이 무기력해지고 있는데도 자신의 자유와 재산을 그 누군가가 지켜 줄 것이라고 막연한 기대를 하면서 自衛하지 않으려는 기득권층은 악랄한 소수 친북좌익의 밥이 될 운명인 것이다.
나무 한 그루, 지렁이 한 마리도 생존을 위해서는 투쟁하는데 대한민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 한국의 중산층이 공익은커녕 私益조차 스스로 지키지 않고 논평과 분석만 하고 있다면 생존의 자격을 상실하고 만다. 모든 생명체는 정당방위의 의무가 있다.
중산층이 그들의 챔피언 없이도 국가를 지켜 낼 수 있다면 한국은 선진화의 길을 확실하게 밟아 갈 것이다. 중산층의 수단은 많다. 지난 60년의 국가건설 과정에서 우리가 만들어 낸 헌법, 법치, 자유언론, 자유선거, 기업, 군대, 공무원 제도, 가치관, 과학과 합리정신이 애국의 武器이다. 이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이용하면 되는 것이다. 기자는 사실을 쓰고, 검사는 법대로 하며, 기업인은 투명한 영업을 하고, 군대는 주적과 內敵을 감시하며, 유권자는 정권이 헌법을 떠나 반역하려고 할 때는 선거를 통해서 교체하든지 비상시엔 저항권을 행사하고, 시청자는 親北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송사를 고발하며, 종교인은 종교의 자유를 탄압하는 세력과 그런 세력을 편드는 자들을 교화·견제하고, 변호사는 자신들의 밥벌이를 가능케 하는 헌법체제를 부정하려는 친북반역세력 고발센터를 운영한다.
중산층이 가진 武器는 머릿수와 나이와 돈과 전문성과 직위이다. 이것들을 활용하면 親北정권도 反김정일 정권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 우리를 지켜 줄 한 사람의 챔피언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운명과 가족과 직장의 챔피언이 되는 것이 「전투적 민주주의」의 철학인 것이다. 자유는 너무나 귀중하므로 싸워서만이 지켜 낼 수 있는 가치이다.●
親北을 진보라고 미화하는 언론의 문제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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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2-22, 01: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