檀君 숭배의 역사적 退行

단군은 한민족의 시조가 아니다. 正史를 부정하고 설화를 따르는 것은 역사적 퇴행이다.
[시론] 개고기·舊正·檀君 숭배의 역사적 退行 ; 金正剛 사회批評家

世界動物愛好協會의 呼訴를 비웃는 개고기 食用立法


프랑스 女優(여우)로 세계동물애호협회 대표인 브리지트 바르도는, 한국에서 개를 식용하고 있고 그 도살방법이 잔인한 데 대하여, 동물 중에도 인간과 가장 가깝고 지능이 높은 개를 잔인하게 죽이지 말 것과 개를 식용으로 하지 말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한국의 국회의원은 이 호소를 비웃기라도 하듯, 개고기가 「민족의 전통 음식」이라고 억지를 쓰면서, 개고기 식용입법을 제출했다. 이것도 「민족주체사상」인가.

과거에 먹었던 것을 전통음식이라고 하면서 무조건 고수해야 한다고 하면, 고대 東아시아에서는 人肉(인육)을 먹는 습관이 널리 퍼져 있었다. 孔子(공자)도 인육을 먹은 일이 있었다는 史說(사설)도 있다. 孔子의 시대에만 하더라도 人肉食이 괴이한 행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엥겔스도 고대사회의 광범한 人肉食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인육 먹는 습관은 삼국지나 수호전에서도 그 잔재가 형상화되어 있다.

고대를 넘어서 거슬러 올라가면 東아시아의 원시시대에 네안데르탈人, 북경原人은 약자나 어린이를 먹었다. 그들의 주거지에서 발견된 약자나 어린이의 두개골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 구멍에 빨대를 끼워 넣어 腦髓(뇌수)를 빨아 먹었다는 것이 인류고고학의 연구 결론이다. 지금도 세계의 일부 야만족은 人肉을 먹고 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同種·근친종을 먹는 것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DNA에 입력되어 있는 종족보존의 본능이 同種食(동종식)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東아시아人이 인육을 먹은 것은 생산력의 미발전으로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생산력이 발전됨에 따라서 인간의 지성과 윤리의식도 발전되어 인육을 먹지 않게 되었고, 나아가 인간과 가장 친밀한 동물 동반자인 개까지도 먹지 않게 된 것이다.

지난 1월 초순 클린턴의 개가 뉴욕에서 배회하다가 차에 치어 죽었다. 이 사건을 미국의 全언론이 보도했는데, 개가 실수한 것이므로 운전사에게는 법적인 책임은 없다고 하는 것을 상세히 논증하면서, 정치투쟁으로 날이 새고 지는 백악관의 살벌한 환경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 「Former first dog Buddy(前 퍼스트 도그 버디, 버디는 죽은 개의 이름)」의 공로를 찬양했다. 클린턴은 슬픈 얼굴로 텔레비전에 나와 『힐러리가 없을 때에는 같은 침대에서 잤던 나의 친밀한 친구』라고 하면서 버디의 죽엄을 애도했다.

이런 사람들이 개고기 먹는 사람을 어떻게 보겠는가? 개고기 먹기는 이미 「아름다운 전통문화」가 아니다. 버려야 할 악습에 불과하다. 개는 때려 잡아야 그 고기가 맛있다는 미신 때문에, 개를 나뭇가지 등에 목매달아 놓고 몽둥이로 때려 죽이는 사람도 있는데, 이 얼마나 잔인한 짓인가. 잔인은 용기가 아니다. 비열일 뿐이다.


舊正復活은 역사적 退行


日帝가 조선에서 양력과세를 강요한 것은 舊正과세를 해 온 조선인의 얼을 빼놓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있다. 일본 자신도 有史 이래 음력을 써 오다가 富國强兵(부국강병)을 위한 明治(메이지) 근대화 유신 이후 양력을 시행하고 있는데, 그러면 일본은 스스로 자기네의 얼을 빼기 위해서 일본에서 음력과세를 철폐했는가.

음력의 절기가 양력보다 더 정확하므로 음력이 양력보다 더 우수한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양력을 쓰게 된 이유는 西勢東漸(서세동점)에 따른 서양 외세의 억압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물론 한국, 중국, 일본에서 써 온 음력은 중동 지역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순수한 음력이 아니고, 태양과 달의 운동을 함께 연관시킨 太陰曆(태음력)이므로 절기를 맞추는 데에서 태양력보다 우수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東아시아의 음력이 모든 면에서 서구의 양력보다 더 우월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금년(2002)만 보아도 年中 가장 추워야 하는 大寒(대한)에 서울이 영상 8℃이었지 않았는가. 위성과 컴퓨터에 의해 기상을 관측하여 일기를 예보하는 현대에는, 고대처럼 달력의 절기에 의해서 기상을 경향적으로 추측하여 생활에 적용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음력의 절기 관념은 큰 의미가 없다. 서구의 양력은 그 구성이 간편하게 규칙화되어 있으므로 실제 생활상에 적용하기에 압도적으로 편리하다.

사실 한국민 속에서 舊正(구정) 폐지 新正(신정) 과세는 거의 정착되었는데, 盧泰愚 정권이 당돌하게 「설은 민족최대의 명절」이라는 논리로 俗流(속류)에 영합하면서 구정을 3일 連休로 부활시켜 버렸다. 그 결과 미국, 일본, 서구 등 세계를 주도하는 선진 중심과 생활 리듬이 맞지 않게 되고 관습 및 사회 의식이 봉건시대로 逆정체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舊正도 놀고 新正도 놀자로 되어 경제 운영에 지장을 가져 오고 국제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舊正 부활은 소련에 대한 30억 달러 원조와 더불어 盧泰愚 정부의 실패작의 하나다. 舊正은 再철폐되어야 한다.


韓民族國家創出의 正統性은 檀君이 아니라, 新羅의 三韓一統이다


북한은 1993년 갑자기 단군릉과 단군 부부의 유골을 발견했다고 발표하면서, 『단군은 5011년 전에 태어났다』고 선언했다. 5000년 전 것이라는 유골 사진도 공개했다. 이어 엄청난 규모의 단군릉까지 축조하고 인민들을 참배하게 했다. 그 전까지 북한 사학계는 고조선의 건국연대를 B.C. 7∼8세기(조선통사), 또는 B.C.10세기 경(조선역사)으로 규정하고, 檀君(단군)은 실존 인물이 아닌 신화로 규정해 왔다. 유물사관에 따라 고조선을 고대 노예제 국가로 규정하여, 고조선(古朝鮮, 箕子朝鮮)의 8조 법금마저 「고조선의 통치배들이 노예를 비롯한 인민들의 반항을 무자비하게 억누르기 위하여 만들어 내었다」면서 극히 부정적으로 기술했다.

그렇게 하던 북한은 단군유골 발견에 이어 소위 단군릉을 축조하면서, 金正日이 1960년대에 발표했다는 논문 「삼국통일 문제를 다시 검토할 데 대하여」를 진리라고 선전하면서, 「金正日 동지는 정설로 굳어져 있는 신라의 삼국 통일론을 뒤집은 탁월한 사상가」라고 대대적으로 찬양하였다. 이에 따라 「고구려가 삼국 통일의 주체」라고 주장하면서, 「신라가 삼국통일을 했다는 견해는 반동적인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북한이 신화인 단군 설화의 단군을 평양에 실존한 것으로 역사를 조작하는 목적은, 단군이 평양에 실존한 것으로 꾸밈으로써 평양을 한민족의 역사적인 정통 수도인 것처럼 조작하고, 「신라의 삼국 통일 非정통성론」을 만들어 내어 지리적 의미에서 북한 지방과 북한에 세워진 정권이 한반도의 중심인 것처럼 조작해 내려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런 조작은 사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고구려의 중요한 성씨는 王姓(왕성)인 高(한국에 거주하는 제주의 高씨와는 다름, 고구려의 高씨는 현재 후손이 만주에 거주하고 있음)씨 외에 克, 仲室, 位, 乙支, 泉 등이 있었으며, 백제에는 왕성인 夫餘씨 외에 沙, 燕, 解, 眞 등 여러 성씨가 있었다. 신라에는 왕성인 朴, 石, 金 외에 李, 崔, 孫 등, 역시 여러 성씨가 있었다.


韓민족의 출발점은 三韓


그런데 오늘날 한반도人의 압도적 다수가 신라 성씨 중의 어느 하나에 속하는 반면 고구려, 백제의 성씨들은 모두 절멸되고 말았다. 좀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삼국통일이란 민족창출의 大사변 속에서 백제와 고구려의 지배계급은 계급 전체로서 신라에 의하여 물리적으로 소멸되고 만 것이다.

한민족의 출발점은 三韓(삼한)이다. 한반도 남부에서 부족연맹체의 상태로 작은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토착 세력인 삼한에서 新羅(신라=斯盧)가 나와, 고대국가를 창출하여 힘을 결집한 후, 북방으로부터의 流移(유이) 세력인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흡수하고, 고구려 소멸 후 唐과 싸워 당의 평양도호부를 요동으로 몰아냄으로써, 한민족이 오늘날과 같이 한반도 전역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한민족의 역사는 삼한의 展開史(전개사)요 확장사이다. 고구려와 백제는 모두 북방으로부터 유입해 와서 토착 세력인 신라(=삼한)를 궤멸하고 한반도를 차지하려고 했으나 실패하여 逆흡수되고 만 것이다.

단군 설화는 正史로서 과학적이고 정통적인 「三國史記」에는 나오지 않고 野史인 「三國遺事」에만 나온다. 崔南善이 갈파한 바와 같이 단군은 우리말 「당굴」의 音表(음표)이며, 몽골어의 拜天者(배천자)를 뜻하는 Tenglli(뎅글리)에서 온 것으로 天君(천군)·巫를 뜻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민족의 淵源(연원)인 삼한 사회는 단군을 건국의 시조로 받들지 않았다. 그래서 삼한의 후예인 신라나 가야는 각자가 독자적인 天君始祖(천군시조=박혁거세, 김수로왕)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며, 三國史記는 단군을 기술하지 않은 것이다.

신화적인 존재로서 巫인 단군을 북한에서 실존인물로 조작한 이래 한국 사학계에서는 이상한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종교계에도 미묘한 파장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허위가 진실을 압도할 수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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