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육사56기 출신으로 군번 1번을 부여받았던 李亨根(육군참모총장 역임)은 이렇게 회고했다.
'일본천황이 항복을 선언한 바로 그날 나는 일본육군대위로서 도쿄에 있었는데 바로 영친왕 李垠을 찾아갔다. 조국이 없는 군인으로 서 충성을 바칠 대상을 찾아 헤매던 나는 가끔 (고종의 아들인) 그 분을 찾았는데 그때마다 일본말을 쓰고 일본식으로 응대해주어 기분 이 별로 좋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뜻밖에도 청산유수 와 같은 유창한 우리 말로 열렬하게 충고하는 것이었다.
'조선과 일본은 다 같은 유교국가이면서도 일본은 상무 정신을 발전시켜 무사 도를 전통으로 삼았는데 조선은 武를 천시하여 문약에 빠지고 文尊 武卑라는 폐습을 이어오다가 결국은 무사를 존중하는 일본에 병탄당 하고 말았소. 나는 언젠가는 우리 조상들, 즉 조선왕가를 대표하여 文弱풍조를 없애지 못하여 망국을 초래한 잘못을 우리 동포들 앞에 서 깊이 사과하고 싶었소.''
영친왕 李垠의 열변은 이형근대위에 대한 당부로 끝났다.
'그러니 李대위는 급히 귀국해서 독립을 수호할 국군 창설에 힘써주 길 바라오. 처음부터 무에서 유를 창조할 각오가 단단해야 할 것이오.'.
이형근은 李垠의 이 고백이 '일생 잊지 못할 교훈'으로 남았다고 말 했다.
일본 육군포병대위이던 이형근은 일본에 있던 한국인 장병1천2백명 을 데리고 1945년10월2일에 부산에 상륙하였다.
(박정희 傳記에서)
조선王家의 고백: "文弱이 망국의 원인"
- 趙甲濟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07-03-02, 16: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