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에 갈라디아서가 있다. 사도바울이 갈라디아 지방의 교회사람들을 위하여 쓴 편지형식이다. 갈라디아 지방은 지금의 터키 동부 내륙을 가리킨다. 기원 전후에 이 지방엔 이스라엘에서 이주해온 유태인들이 많이 살았다. 이곳의 유태인들중에 예수를 믿고 기독교인이 되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기독교인이 되었으나 舊約에 따라서 남자 아이들에게 포경수술(할례)를 해주어야 한다는 교리를 고집했다. 여기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고민했던 것이다. 사도바울은 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어가고 퍼져나가게 하려면 유태인만의 종교가 아니라 세계인 누구나 믿을 수 있는 보편적 종교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믿었다. 유태인들의 풍속인 할례를 외국인들에게 강요한다면 기독교는 유태인 속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유태인들의 할례 고집을 반박하는 편지를 썼다. 그것이 갈라디아서이다. 이 갈라디아서는 한 마디도 빠뜨릴 것이 없다고 할 만큼 논리적이고 아름답다.
6장으로 되어 있는 갈라디아서는 ‘루터의 책’이라고도 불린다. 마틴 루터가 16세기 초 바티칸의 부패한 가톨릭 권력을 비판할 때 신학적 근거를 갈라디어서에서 구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지금까지 두 번 큰 개혁을 했다.
첫 번째는 예수와 바울에 의한 개혁이었다. 구약과 율법에 의존한 유태인 종교를 汎세계적인 보편적 고급종교로 만든 것이 예수와 그의 신앙적 후계자 바울이었다. 물론 바울은 예수를 생전에 만난 적이 없고 오히려 그리스도 교도들을 이단으로 몰아 처벌하고 다닌 이였다.
두 번째 개혁은 권력과 결탁하여 부패해가는 교황에 도전한 루터에 의해서였다. 루터의 종교개혁에 의해서 프로테스탄트, 즉 신교가 만들어졌다. 이 신교가 그 뒤의 세계역사에 끼친 공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발전, 즉 인권사상의 확산으로 설명된다. 신교의 등장은 기존 가톨릭에도 큰 자극이 되었다. 가톨릭도 신교와 경쟁하기 위하여 자체 개혁을 단행해야 했다. 기독교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자체개혁을 통해서 거듭 남을 했기 때문이다. 한편 이슬람은 이런 자체개혁이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필자가 갈라디아서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李承晩 대통령이 갈라디아서 5장1절을 자주 인용하면서 연설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주께서 너희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쓰지말라”는 이 말은 광복하여 대한민국을 세운 뒤에도 계속해서 싸움박질만 하는 한국인들에게 건국 대통령이 준 경고일 것이다.
갈라디아서 5장의 主題는 자유와 책임의 문제이다. 예수가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심으로 인간은 자유를 얻었다. 인간은 자유를 낭비하고 남용하는 속성이 있다. 주로 육체적 향락을 위해서 자유를 헛되이 쓴다. 바울은 자유를 얻은 인간이 주예수님의 종이 되는 것이 진정한 자유 누리기라고 말한다. 갈라디아서는 할례를 고집하는 유태인들에 대항하여 쓴 이론서이므로 바울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해서 너희에게 자유를 주었는데 다시 구약 율법의 종이 되어 그 자유를 잃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자유는 예수 속에서 믿음을 통하여 얻는 것이지 낡은 율법에 복종하여 얻는 것이 아니란 이야기이다. 갈라디아서 5장의 핵심은 “예수 한 사람한테만 종이 되면 다른 모든 분야에서 진정한 자유민이 된다”는 메시지이다.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자유민주주의가 꽃핀 나라는 이런 선의의 권위를 만든 나라이다. 영국 같은 입헌군주국은 왕이 권위의 상징이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는 대통령이 권위의 상징이다. 일본은 천황이 그렇다. 물론 이 권위의 상징으로 되어진 왕이나 대통령은 국민들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는 사람이지 억압하는 이들이 아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또 자유와 사랑의 관계를 설명한다. 예수의 희생으로부터 인간이 공짜로 얻은 자유를 가장 고귀하에 사용할 수 있는 길은 서로를 섬기는 것이다. 서로에게 종이 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14장에서 바울은 “전체율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너의 이웃을 너의 몸같이 사랑하라’이다”라고 말한다. 기독교인은 “너의 이웃을 너의 몸같이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성경중 가장 아름다운 말이면서도 가장 따르기 힘든 가르침이기도 하다. 진정한 이웃사랑은 이웃을 나처럼 아끼고 돌보고 위하는 일이다.
김일성 김정일은 “너의 몸처럼 나를 사랑하라”고 가르친 이다. “너의 몸같이 나의 초상화를 사랑하라”고 가르친 이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불이 나면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를 가슴에 품고 탈출한다. 이웃을 너희 몸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기독교와 모든 주민들이 자신들의 몸보다도 더 수령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主體狂信敎, 이 대결은 남북한의 대결이기도 합니다. 한국엔 기독교가 주류종교가 되었고, 기독교의 인간존중 사상이 들어 있는 것이 대한민국 헌법이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너의 몸같이 사랑하라"(바울)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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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3-12, 11: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