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용어사전: 自主
自主: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의 힘으로 결정하고 개척할 수 있는 힘과 자세. 남의 도움을 받아도 자존심과 自我를 잃지 않는다. 신라가 唐의 도움을 받아 삼국을 통일한 다음 唐이 신라를 식민지로 만들려하니까 결전을 벌여 한반도에서 추방한 것이 역사상 대표적인 自主이다.
자주는 스스로의 책임하에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다. 자주는 자유를 위해 존재한다. 국가가 자주하려면 자유를 구현하기 위해 국가이익을 증진시켜야 한다. 박정희가 대한민국의 자주를 위해 미국의 도움을 받은 것, 그리고 월남전 때는 미국을 도와준 자세, 그로부터 많은 국가이익을 도모한 것이 대표적인 自主이다. 따라서 자주는 자유와 국익을 도모할 때만이 의미가 있다. 자유 없는 자주는 김정일식의 독재자를 위한 자주가 된다. 국익 없는 자주는 반미운동 같은 기분풀이식 감상적 자주가 된다. 자주는 자유와 국익 안에서만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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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主와 事大
명치유신 이전에 일본의 무사들은 서양의 서적을 통해서 선진된 외국문물을 받아들일 때 이상한 행동을 하곤 했다고 합니다. 서양책을 발로 밟으면서 '너까짓 것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중얼거리곤 했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심리전인데 비록 내가 후진 일본인으로 태어나 서양의 문물을 배워야겠지만 나의 혼을 절대로 너희들에게 팔아넘기지는 않는다, 너를 배워서 우리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데 수단으로 이용할 뿐이다, 내 속을 내놓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하기 위한 하나의 의식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자세를 잘 보여주는 말이 和魂洋才입니다. 일본인으로서의 혼(즉 주체성 또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그것을 중심으로 삼고 서양의 기술과 재주를 활용하겠다는 뜻이지요. 서양문물을 배운다고 일본인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팔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말입니다. 이런 정신이 명치유신이란 주체적인 근대화의 철학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체적인 개혁 개방에 실패하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여러 원인중의 하나는 주체를 세우지 못하고 혼마저 선진국한테 팔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도쿠가와 막부 시절 일본의 유명한 유학자가 제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만약 공자와 맹자 선생님이 군대를 이끌고 일본에 상륙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학생들이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공자와 맹자를 포로로 잡아야 한다'
만약 조선조 시대의 유학자가 제자들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면 제자들은 선생을 사문난적, 즉 주자학의 이단이라고 하여 고발했을 것입니다.
공자든 맹자든 민주주의든 시장경제이든 그것들은 우리의 역사속에서 성장한 제도도, 이념도, 가치관도 아니다. 그것들은 수단일 뿐이다. 하느님도 아니고 신주단지도 아니다. 우리, 그리고 국민들의 복지와 안전과 자유를 증진시켜주는 수단일 뿐이지 공자를 위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시장경제를 위해서 우리의 소중한 것들-역사, 전통, 미풍양속,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희생시킬 수는 없다.
대충 이런 생각을 우리는 주체성이라고 부릅니다. 그러지 않고 외국에서 발생한 이념과 제도를 하느님으로 절대화하여 우상숭배하면서 우리의 것들을 희생하는 행태를 우리는 사대주의라고 부릅니다. 주자학을 섬기면서 국익을 희생시킨 조선조의 선비들, 사회주의를 섬기면서 북한 주민들을 생지옥으로 끌고간 김일성과 그 아들을 사대주의자로 분류할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외래 사상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짓밟는 사람들이지요.
우리는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면서 그 형식을 절대화하고 그 목적과 내용을 소홀히 하였습니다. 민주주의의 형식은 선거입니다. 우리는 선거를 많이 하는 것이 바로 민주적이란 착각을 가지고 편집국장도, 대학총장-학장도 선거로 선출하려고 하였습니다. 선거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지도자를 뽑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하며 선거가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최선의 방법이라면 선거를 해야 하는 것이지요. 신문사 편집국장이나 회사 사장이나 대학 총장은 선거를 통해서 뽑히는 경우보다 임명, 지명, 추천 등에 의해 뽑히는 것이 좋은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민주주의가 무조건 좋다면서 선거가 아니면 독재라고 아우성을 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고향이라고 하는 미국이나 영국에 와 보고 대학총장을 선거로 뽑는 곳이 전무하다는 것을 알고 머쓱해지기도 합니다.
대체로 사대주의는 형식을 추종하며 자주파와 실용주의자들은 목표와 내용을 중시합니다. 최근 의약분업 파동을 보면 이 정책을 기획한 사람들이 과연 주체적인 판단을 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의약분업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의료소비자인 국민들의 편의와 안전이어야 했습니다. 우선 현행 제도가 오랫동안 한국인의 생활속에서 정착되어 있다는 것에 주목하여 그 제도의 장점을 인정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방식을 취해야 했습니다.
선진국에서 하니까 우리도 해야 한다는 것은 전형적인 사대주의입니다. 선진국의 제도를 한국의 현실에 접목시키면서 변형하고 소화해야지 '선진국의 제도니까 무조건 따르라. 그러지 않으면 수구세력이고 反개혁세력이다'는 식으로 몰아부치는 것은 혼을 외국의 제도에 팔아버린 사대주의자의 행동과 다름없습니다.
사대주의자들은 필연적으로 위선자가 됩니다. 외국의 선진제도나 가치관을 후발국에다가 일률적으로 적용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그들은 위선자가 됩니다. 한국에서 시장경제의 원리를 적용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시장경제란 구호를 놓지 않으면서 하는 행동은 관치경제입니다. 그러면서 시장경제를 위해서 시장에 개입한다, 시장경제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당분간 관치경제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논리가 정치에 적용되면 민주주의를 위해서 권위주의 정책을 편다고 말하게 됩니다. 그들은 인권을 외치지만 정권을 잡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지 인권을 자신의 보편적 가치관으로 신념화하지 못하고맙니다. 소위 인권지도자란 사람이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일본인 납치범을 비호하면서 납치된 피해자의 안전에 대해서는 내 몰라라 하는 것도 그가 부르짖는 인권이란 것이 형식으로서의 인권이었지 목표나 내용으로서의 인권이 아니었음을 反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벌개혁도 그렇습니다. 그 개혁의 목표는 기업이 법률을 잘 지키고 이익을 많이 남겨 세금을 많이 내며 많은 사람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지 무조건 상호지급보증을 해소하고 계열회사를 정리하고 회장 비서실을 없애는 일이 아닙니다. 상호지급보증이란 것은 금융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자금 동원을 위해서 긍정적인 기능을 합니다. 상호지급보증이냐 아니냐의 형식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목표-법률을 잘 지키고 이익을 많이 내어 고용을 많이 하는 것-에 충실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여러 가지 형식과 경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허용할 때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이든 국가이든 형식에 집착하면 편협해집니다. 반드시 흰 고양이만 쥐를 잡을 수 있다는 형식을 강요하면 쥐잡기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고지를 점령하면 되었지 반드시 기관총만 사용하라고 형식까지 지정해두면 작전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사대주의자는 대체로 형식주의자들이고 주체성이 강한 사람들은 형식에 대해선 관용한 대신 목표나 결과를 중시합니다.
넥타이는 한국인이 발명한 것도 아닌데 세계에서 넥타이란 형식을 한국인처럼 잘 지키는 사람들도 없을 것입니다. 주자학, 민주주의를 하느님으로 만든 행태의 연장선상에서 넥타이를 하느님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요. 한국여자들처럼 화장을 짙게 하는 이들도 없을 것입니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길이 어찌 짙은 화장이란 한 가지 방법밖에 없을까요. 이 또한 형식을 중시하는 사대주의적인 발상과 관계 있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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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由를 지키는 것이 自主
노무현식 自主는 自由를 포기하는 自殺이다.
自主의 대상인 북한정권과 중국에 대해서는 事大굴종해온 노무현 대통령이 협력 대상인 미국을 상대로 自主하겠단다. 이는 자신의 본질인 事大반역분열성을 감추려는 위장술이다. 그는 李承晩, 朴正熙의 실용적 自主가 아니라 말장난으로서의 自主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이 정도의 번영과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은 自主노선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自主로써 自由를 지켰고, 그 自由가 번영을 만들어냈다. 김정일 정권이 저 모양인 것은 事大노선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親北的 역사관에 물든 盧씨의 머리엔 스탈린, 일본 天皇, 조선의 왕을 합쳐놓은 것처럼 守舊反動的인 김정일 노선이 自主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런 가짜 自主의 결과가 600만 명의 죽음이었음을 모른다면 바보이고 알면서도 自主타령을 한다면 민족반역자이다.
동족을 치기 위하여 모택동, 스탈린 등 외세를 끌어들였고, 그리하여 일단 나갔던 미군까지 다시 불러들인 자를 自主로 보는 무리들이 대한민국의 조종실을 점거하고 있다. 그들의 눈엔 국군과 유엔군의 北進으로 통일이 눈앞에 왔을 때 모택동 군대를 불러들인 자가 自主의 화신으로 보인다. 그 모택동을 존경한다고 말한 자가 입만 열면 自主타령을 하고 있다. 좌경이념의 소유자인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승만, 박정희의 自主노선 덕분이었다. 은혜를 모르는 그는 진정한 自主의 화신인 두 지도자를 욕되게 하는 일에 國力과 國富를 쓰고 있다.
민족의 3大 원수인 모택동, 스탈린, 김일성의 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준 미국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르고 이 恩人에 대해서 온갖 행패를 부리는 것을 自主라고 생각하는 집단이 대한민국의 조종실을 점거하고 있다. 세계사가 폐기한 사회주의에 매달려 개혁 개방을 거부함으로써 북한주민 300만 명을 굶겨죽인 김정일을 自主의 인물로 보고 이 자와 공조하는 것을 '민족공조' '우리민족끼리'라고 외쳐대는 자들이 한미연합군을 해체하여 국군을 고립시키고 북한군을 결정적으로 이롭게 만들면서 자신들의 事大와 반역성을 自主라고 위장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자랑스런 自主노선을 걸어왔다. 自主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강한 적과 싸울 때는 더 강한 친구와 손잡고 자유를 지키는 것, 이것이 自主이다. 강하고 악한 적이 더 강해지고 악랄해질 때를 맞추어 친구와 잡았던 손을 놓고 스스로 고립되는 것, 그리하여 자유를 잃는 것, 이것은 自主가 아니고 미친 짓이고 바보 짓이며 반역이고 항복이다. 자유 없는 自主는 독재자와 선동꾼의 사기이다. 自主는 自由를 지켜내기 위한 수단이다. 노무현식 自主는 自由를 포기하는 自殺이다. 한국인으로 살면서 자유를 희생시키는 것을 自主라고 선전하는 자는 事大반역분열세력의 두목 김정일을 위해 복무하는 자이다.
[ 2006-09-30, 1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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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美가 自主, 反美가 事大인 이유
노무현 같은 관념의 포로와 박정희 같은 실천의 주인공 중 누가 事大이고 누가 自主인가?
지난 60년간 한반도에서 검증된 너무나 간단한 논리를 盧武鉉 대통령만 모른다. 그것은 親美自主이고 反美事大라는 진실이다.
盧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관념의 포로가 되고 말장난에 취해 反美自主라는 위선의 논리를 믿는 것 같다. 李承晩 대통령의 親美는 현실을 직시한 실용적 전략이었다. 그의 親美정책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수립, 韓美 상호방위조약 체결로 나타났다. 朴正熙의 親美는 對外개방적인 근대화 전략과 월남파병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한국의 親美정책에 대하여 6.25때의 파병, 경제지원, 한국의 수출상품 사주기 등으로 보답했다.
한국의 親美 정책으로 한국인은 국가를 지켜냈고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리하여 공산당의 노예로 살지 않고, 일본의 식민지로 다시 전락하지 않고 번영을 누릴 수 있었으니 이것이 自主의 구체적 실천이 아니고 무엇인가.
북한정권의 反美는 자신들을 스탈린의 꼭두각시로 전락시켰다. 김일성은 스탈린과 모택동의 힘을 빌어 동족을 치려다가 국제사회의 응전을 불러 한반도를 국제전장으로 만듦으로써 300만 명을 죽게 했다.
김정일의 反美는 경제파탄의 원인이 되어 300만 명의 동포들을 죽게 만들었다. 父子가 600만 명의 희생에 책임이 있다. 그래서 얻은 것은 自主가 아니라 외국에 구걸하여 식량을 얻지 않으면 주민들을 먹여살릴 수도 없는 극단적인 事大의 상황이다. 김정일은 지금 해외로 빼돌린 비자금을 동결시키지 말아달라고 핵실험을 해가면서 미국을 상대로 구걸을 하고 있다.
김정일의 自主놀음으로 북한주민들은 노예가 되었다. 김정일 한 사람만 自主를 얻었고 그 代價로 북한인민들은 노예, 걸인, 도적, 탈출자가 되었다. 이것이 反美自主라는 것의 실상이다. 盧대통령이 말하는 自主는 語法상 反美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김정일식 自主 개념이다. 좌파적 자주는 독재자를 위한 사기임이 600만 명의 人命희생으로 입증되었다. 盧武鉉式 自主의 위선을 입증하기 위해서 또 그런 희생을 해야 한단 말인가. 600만이 自主라는 미명하에서 죽었는데도 아직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한국을 이끌고 있단 말인가.
진정한 자주론자는 實事求是하는 현실주의자들이다. 이들은 현실을 직시하는 실천의 주인공들이다. 가짜 자주론자, 즉 사대주의자들은 관념론자들이다. 이들은 관념과 말장난의 노예가 되는 바람에 실천, 건설, 생산에선 무능력자이다. 노무현 같은 관념의 포로와 박정희 같은 실천의 주인공 중 누가 事大이고 누가 自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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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自主와 노무현의 事大
自主는 自由를 지켜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자유 속에서 번영이 이뤄지므로 自主는 결국 번영의 울타리이다. 노무현식 가짜 自主는 자유와 번영을 무너뜨리는 반역이다.
*박정희식 自主의 논리 구조
朴正熙는 집권 18년간 自助-自立-自主의 3自 정책을 일관되게 썼다. 自助란 정신적인 것으로서 국민들이 스스로 일을 하려는 의욕을 갖추도록 하지 않으면 만사가 무효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 생각에 따라 朴대통령은 가난한 사람이 아나리 의욕이 있는 사람을 집중적으로 도와주었다(새마을 운동).
自立이란 경제적 측면으로서 미국의 원조를 받지 않고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정도의 경제발전을 이룩해야 나라다운 나라가 된다는 생각이었다. 自立경제가 그 말이다.
自主란 국방개념인데, 무릇 국가는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때 진정한 독립국가, 주권국가라고 할 수 있다는 신념의 표현이었다. 朴대통령의 자주국방은 反美가 아니라 用美에 기초했다. 그의 자주국방 개념정의에 따르면 북한이 단독으로 남침했을 때는 한국군의 실력만으로써 이를 저지, 격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이 중공이나 소련의 도움을 받아 남침했을 때는 미군의 도움을 받아 이를 격퇴한다.
*노무현식 自主
이 부분에서 盧武鉉式 자주와 다르다. 盧武鉉 대통령이 추구하는 對美자주는 기본적으로 反美감정을 깔고 있다. 그의 소위 對美自主노선의 뒷면은 對北굴종노선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
對北굴종이 목표이고 소위 對美자주는 그런 굴종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가 느껴지기도 한다.
미국은 핵개발 시도까지 간 朴대통령의 自主노선을 경계했으나 내심으로는 그의 애국심과 비전을 존경했다. 朴대통령이 죽은 직후 평소 朴대통령을 괴롭혔던 글라이스틴 駐韓미국대사는 본국에 보고한 電文에서 朴대통령을 격찬하고 야당정치인들을 경멸했다. 이 글을 읽어보면 미국의 냉정한 對韓정책을 알 수 있다. 미국은 朴대통령을 존경하면서 견제했고, 야당정치인들을 경멸하면서 밀어주었다. 다 미국의 국익을 위한 일이었다.
지금 미국 정부는 盧武鉉 대통령의 自主노선을 경멸하면서 지켜보고 있다. 그는 사나운 독재자 金正日에게는 꼭 해야 할 말도 못하고 북한의 군사동맹자이자 한반도 통일의 방해자였던 중국에 대해서도 어물어물하면서(중국의 역사왜곡과 어선의 영해침범에 대해서는 미온적이다) 유독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감정적인 말들을 쏟아놓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朴대통령의 反美的 성향은 식민지 체험과 만주군 생활, 그리고 남로당 모험과 미군과의 갈등을 통해서 배양되었다. 그는 反美的 성향을 대통령이 된 다음에도 私的으로 유지했으나, 공적으로는 미국의 역할에 대해서 감사하면서 월남파병처럼 미국의 도움에 보답하는 것이 또한 자주국방의 길이라고 믿었다. 公과 私를 구별했다.
盧武鉉 대통령은 公과 私가 뒤죽박죽이 되는 감상적 저급 발언을 외교적으로,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 공개강연에서 다수 보수층 국민들을 향하여 '별놈'이라고 말한 사람의 말버릇을 우방국가를 향해서도 퍼붓고 있다. 그는 용산미군 기지를 '침략의 상징'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朴대통령은 말을 신중하고 정확하게 했다. 국가의 실력 범위안에서 말했다. 외교는 군사력의 범위안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盧대통령은 외교적 不渡가 우려될 만큼 과도한 말을 한다. 그는 우방국가를 상대로 '외교전쟁'을 선포하기도 한다.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고 공언했다가 외환위기 때 일본에게 당했던 金泳三 전 대통령과 매우 닮았다.
깡패에게 굴종하면서 어수룩하게 보이는(실제로는 무서운 실력을 갖고 있지만) 친구에게는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외치는 自主란 비겁의 다른 표현이다.
자주정신은 개인에게도, 조직이나 국가에게도 소중하다. 이는 아주 고매한 정신력이자 自我의 구현이다. 이 자주정신의 핵심은 자만심이 아니다. 균형감각에 기초한 정의감, 그리고 실력이다. 이런 교양이 뒷받침하지 않는 自主는 감상적으로 흐르고 조직과 개인을 망친다. 盧대통령이 진정으로 자주를 이야기하려면 金正日과 從金세력으로부터의 자주를 먼저 말해야 한다. 金正日이 애국단체의 인공기 소각에 대해 비난하면 대통령이 나서서 사과를 하는 식의 굴종적 자세. 그 연장선상에서 나오는 對美자주선언은 균형감각도 정의감도 없는 말장난이든지 다른 의도를 가진 행동일 것인데 그 결과는 한국과 대통령을 동북아의 균형자가 아닌 동네북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自主는 自由를 지켜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자유 속에서 번영이 이뤄지므로 自主는 결국 번영의 울타리이다. 노무현식 가짜 自主는 자유와 번영을 무너뜨리는 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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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국방과 관련한 朴正熙의 語錄.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철저히 해놓고, 그 안에서 비로소 건설이나 생산도 있을 수 있다. 이 도둑을 누가 막느냐? 두말 할 것도 없이 그 집에 사는 사람이 1차적으로 막아야 한다. 도둑의 힘이 너무 강대할 때는 남의 힘을 빌어야 한다. 이것이 국방의 기본 개념이다>(1968년3월7일 전국 지방 장관, 시장, 군수, 구청창 대회 유시에서)
<자주국방이란 것은 이렇게 비유해서 얘기를 하고싶다. 가령 자기 집에 불이 났다. 이랬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 우선 그 집 식구들이 일차적으로 전부 총동원해서 불을 꺼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는 동안에 이웃 사람들이 쫓아와서 도와주고 물도 퍼다가 주고, 소방대가 쫓아와서 지원을 해준다. 그런데 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 그 집 식구들이 끌 생각은 안하고 이웃사람들이 도와주는 것을 기다리고 앉았다면, 소방대가 와서 기분이 나빠서 불을 안 꺼줄 것이다. 왜 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 멍청해 가지고 앉아 있느냐? 자기 집에 난 불은 일차적으로 그 집 식구들이 총동원해 가지고 있는 힘을 다해서 꺼야 한다>(1972년1월11일 기자회견에서)
한반도에 지금 독재자의 핵개발이란 불이 났다. 일차적으로 이를 진화해야 할 한국의 지도부는 지금 그 불을 끄지 않고 달려온 소방대가 물을 뿌리려 하는 것도 막고 있다. 불은 계속 타들어간다. 어이 없는 소방대는 이 불이 이웃집으로 번지는 것만 막으려 하고 있다.
<우리 모든 국민이 자신과 자신의 후손들의 안녕을 위한 국방 과제는 오직 자신들의 책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스스로의 생존을 모름지기 남에게 의존해 온 타성으로부터 탈피하여야만 한다. 이러한 주체성의 확립만이 민족의 산 보람을 일깨워주는 것이다>(1968년2월27일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유시에서)
<현 시점에서 자주 국방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생존과 자유를 지킨다는 뚜렷한 목표와, 이 목표달성은 1차적으로 우리의 힘으로 한다는 自主와 自助의 자세를 그 접근방법으로 한다는 것을 우리는 새삼 명심할 필요가 있다>(1971년3월31일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유시에서)
<또 다시 김일성이가 자신의 힘을 과신하거나 또는 어떠한 오산을 해서 전쟁을 도발하고자 할 때, 이를 만류하거나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지금 북한에는 하나도 없다>(1970년7월23일 국방대학원 졸업식 유시에서)
<우리는 결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에 6.25와 같은 적의 침략을 또 다시 받을 때에는, 전국토를 초토화하는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최후까지 싸워야 한다>(1968년3월7일 전국 지방장관, 시장, 군수, 구청장 대회 유시에서)
위와 같은 경고를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을 상대로 할 수 있을 때 한반도에서 평화는 보장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김정일의 善意나 한국측의 김정일에 대한 好意에 기대하는 자는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직급이 아무리 높아도 철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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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自主”
“작전권으로 '자주' 따지면 히딩크는 왜 데려왔나”
북한민주화동맹 황장엽 위원장은 9일 청년•대학생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정부가 자꾸 ‘자주’라고 그러는데 민족의 이익을 포기하는 행위가 무슨 자주인가”라며 한미동맹 약화를 초래하는 정부를 강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위원장은 “임진왜란 당시 지원군을 이끌고 온 명나라 장수 진린(陳璘)은 조-명 연합함대의 지휘권을 이순신 장군에게 맡겼다. 이순신 장군이 일본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데다 해전에서 단연 돋보였기 때문이다. 작전권으로 ‘자주’냐 ‘비(非)자주’냐를 가르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합전력으로 싸우자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가 작전권을 가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며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지 동맹간에 자리다툼이나 하는 것처럼 비춰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황 위원장은 참석자가 젊은 층임을 감안해 “작전권을 우리가 가져야 자주국가라고 하면, 그럼 한국 축구는 히딩크에게 왜 맡겼는가”라고 설명해 대학생들의 이해를 돕기도 했다.
그는 작통권 문제는 단순하게 전시를 대비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미동맹과 직결되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이 문제를 ‘자주권’과 연결시켜 한미동맹에 금이 가도록 하는 자들은 다 민족반역적인 행동을 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했다.
황 위원장은 “미국이 우리나라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또 미래를 생각할 때 미국과의 동맹은 우리의 생명선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북한의 급변사태와 재건, 그리고 통일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이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를 조율하며 발전해가기 위해 한미동맹은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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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北-中 상대로 自主해야
盧武鉉 대통령의 18번이 된 自主는 사전적으로 잘못 쓰여지고 있다. 自主는 북한과 중국처럼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을 위협한 적이 있고 지금도 위협하고 있는 상대에 대해서 예속에서 벗어나 독립적 자세를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을 지켜주고 촉진시킨 나라이므로 협력과 협조의 상대이지 自主의 대상이 될 수 없다. 自主국방이란 말을 처음 쓴 朴正熙 대통령은 그 의미를 정확히 定義했다. 즉, 북한군이 단독 남침하면 한국군만으로 이를 격퇴시키고 북한군이 소련과 중공의 지원하에 남침하면 미군의 도움으로 대응한다는 것이 자주국방의 定義였다.
盧武鉉 대통령은 자신이 50% 정도의 지분(나머지는 미국 대통령)을 갖고 있는 연합사의 戰時작전통제권을 미국이 독점하고 있는 듯이 왜곡한 다음 이를 회수하는 것이 자주국방인 것처럼 열을 올린다. 협력대상인 미국과는 갈등을 일으키면서까지 自主를 강조하는 그가 온갖 억지를 부리고 내정간섭을 시도하는 북한독재정권에 대해서는 해야 할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 굴욕적인, 非자주적인 모습을 보인다. 악당에게는 굴종하면서 친구를 상대로 自主를 외치니 사람이 우습게 보이는 것이다. 사람이 균형감각을 상실하면 공정성과 정의감을 다 같이 잃는다.
[ 2005-10-05, 0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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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국방을 포기한 우파는 가짜이다
위대한 민족지도자 이승만(李承晩)의 생애에 있어서 1950년 6월25일 김일성의 남침이 시작되자 서울과 시민, 그리고 군인들을 버리고 몰래 한강을 건넌 뒤 다리를 끊은 행위는 일대 오점(汚點)으로 남게 되었다.
대통령은 국회까지도 버리고 감으로써 2백10명의 의원들 가운데 62명이 서울에 잔류하게 되었다. 이들 중 8명이 피살되고 27명이 납북되거나 실종되었다. 당시 육군본부 정보국 문관이던 박정희는 대통령이 된 뒤 이 역사의 교훈에서 「서울사수(死守)」란 안보개념을 확립하는 한편으로 자주국방력 건설을 추진하게 된다.
박정희는 여러 번 『전쟁이 일어나면 나는 서울에 남아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다』는 말을 했다. 1975년4월29일 월남패망을 하루 앞둔 날 박정희 대통령은 「서울사수(死守) 서약」을 발표한 뒤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자기 나라를 자기들의 힘으로 지키겠다는 결의와 힘이 없는 나라는 생존하지 못한다는 엄연하고도 냉혹한 현실과 진리를 우리는 보았다. 충무공의 말씀대로 필사즉생(必死卽生)필생즉사(必生卽死)이다. 이 강산은 ··· 우리가 살다가 이 땅에 묻혀야 하고 길이길이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 주어서 지켜가도록 해야 할 소중한 우리의 땅이다. 영원히 영원히 이 세상이 끝나는 그날까지 지켜가야 한다. 저 무지막지한 붉은 오랑캐들에게 더럽혀져서는 결코 안된다. 지키지 못하는 날에는 다 죽어야 한다>
박정희의 뇌리에는 국가지도부의 서울포기가 가져온 지옥도(地獄圖)가 찍혀 있었다. 그런 상황을 예상하여 막아보려고 애썼던 입장에 있었던 그로서는 뼈에 사무치는 경험이었다. 「한국전쟁사」 제1권은 이렇게 적고 있다.
「한강인도교 폭파로 한수(漢水)이북에서 싸우고 있던 장병들 가운데 4만4천 명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7사단의 경우 (약1만 명 가운데) 장병5백 명과 기관총4정만 도강(渡江)할 수 있었다. 1사단은 5천 명만 도강하고 각종 대포는 유기되었다. 제2, 3, 5사단 역시 흩어진 채 도강하였기 때문에 부대의 편제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이 책은 이어서 「군작전을 신뢰하다가 피난길이 막히게 된 정부요원들과 시민들은 학살되거나 지하로 숨어들지 않으면 안되었고 미처 반출하지 못한 정부 재산은 적의 좋은 먹이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의 국가지도부는 끝발 순서대로 몰래 서울을 빠져나갔다.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은 27일 새벽2시에, 신성모(申性模)국방장관은 오후2시에, 채병덕(蔡秉德)육군총참모장은 28일 새벽2시에. 채병덕은 서울을 빠져나가기 전에 일선 전투부대에 철수명령을 하달하지도 않았다. 명령을 전투부대에 전달할 만한 통신체제도 유지하지 못했다.
버려진 군인들 가운데 가장 비참한 운명을 맞은 것은 부상자들이었다. 6월24일 현재 서울시내 육군병원에 입원중인 환자는 약1천3백 명이었다. 여기에다가 3일간의 전투에서 다친 3천2백 명의 군인들은 서울대학 부속병원 등 민간병원에도 분산되었다.
서울대학병원은 1개 소대 병력이 지키고 있었다. 28일 인민군이 서울에 진입하자 서울대학병원에선 움직일 수 있는 전상자 80여 명이 한 장교의 지휘하에 뒷산에 올라가 싸우다가 모두 전사하였다. 남아 있던 전상자들은 인민군에 의하여 학살당했다(한국전쟁사 제1권).
박정희는 신라통일 이후 처음으로 자주국방이란 문제의식을 가졌던 지도자였다. 신라통일 이후 약1200여년간 우리 역대 왕조는 사대주의를 외교 국방정책으로 받드는 과정에서 안보는 중국에 맡기면 된다는 생각에 너무 오랫동안 젖었다.
국가지도층의 의식속에서 자주국방이란 개념 자체가 실종되어 버렸다. 박정희는 북한 정권의 위협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그의 자주국방은 북한군에 1 대 1로 맞설 수 있는 군사력의 건설인 동시에 주한미군에 너무 의존하지 않는 군사력 건설이기도 했다. 對美 자주란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박정희는 주한미군으로 상징되는 對美의존이 불가피하게 국내 정치에 대한 미국의 간섭을 부른다는 것을 절감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反美로 돈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으면서도 미국에 너무 의존할 때 생기는 자주성의 상실과 한국인들의 무책임성을 걱정했던 것이다.
한국의 우파는 지금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고 있으나 자주국방을 우파의 목표로 포기해서는 안된다. 자주국방은 우파의 필수적 도덕률이 되어야 한다. 북한을 압도하는 이만한 경제력이면 우리는 미국의 도움 없이 북한군과 맞설 수 있어야 하고 김정일의 핵개발에 우리 힘만으로써도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력에 자주국방의 정신력만 더한다면 가능한 이야기이다. 악랄한 김정일은 지금 자주국방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은 지금 비겁한 죄로 해서 악랄한 세력에게 끌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권력투쟁의 세계에서는 비겁함이 악랄함보다 더 나쁜 것이 아닐까.
물론 당장 주한미군을 철수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주국방을 목표로 삼아 지금부터 자주국방 의식을 함양하면서 주한미군 없는 국방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反김정일 자주국방 의지'를 확립하려면 한국내 김정일 세력을 약화시켜야 한다. 그 뒤에 주한미군 철수와 자주국방 체제가 들어서야 하는 것이다. 한국내에 반역세력을 온존시킨 상태에서 주한미군 철수가 이뤄져서는 안된다.
한국내 김정일 추종세력을 무력화시켜가는 방향의 종착지가 자주국방이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자주국방을 포기한 우파는 미국의 힘에 기생하는 또 다른 사대주의 세력이 될 우려가 있다. 인류 역사상 이 정도의 경제력 격차를 가진 나라가 외국군대의 주둔에 힘입어 경제규모가 수십분의 1도 안되는 집단을 상대로 쩔쩔 맨 사례가 있을까. 우파의 각성은 이런 무책임성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 2003-09-12, 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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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正熙의 自助, 自立, 自主의 정신
근대화혁명가 朴正熙의 사상을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세 단어는 自助, 自立, 自主이다.
1963년 8월30일의 轉役式에서 朴正熙는 자주적 주체의식과 자립성을 역설했다.
『우리는 국민 각자가 자주적 주체의식을 함양하며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자립정신을 확립해야 하겠습니다. 「정치적 자주」와 「경제적 자립」을 성취하고야 말 우리의 목표를 향하여 범국민적 혁명을 전개시켜야 할 것이며, 번영과 민주공화의 樂土를 기약하는 혁명과업은 국민 전체의 주체성과 자발적 정신자세로 수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1965년 5원2일 진해 제4비료공장 기공식에서 朴대통령은 自信과 용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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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이승만 對美자주, 김일성의 對蘇굴종
조갑제
앞서 소개한 [조선전쟁의 수수께끼와 진실]이란 책에는 1952년8월 周恩來 중공 수상과 스탈린의 회담록이 실려 있다. 스탈린은 毛澤東의 휴전 의사를 전하면서 소련측의 의중을 탐색하는 周恩來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전쟁은 미국인들을 괴롭히고 있다. 북한은 이번 전쟁으로 인명 손실 이외엔 전혀 패배한 구석이 없다. 미국인들은 이번 전쟁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고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잘 알고 있다. 버티고 견디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북한사람들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수많은 희생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은 위대한 일이라고 설명해주어야 한다. 북한사람들을 지원하여 버틸 수 있다록 해주어야 한다.>
周恩來는 이렇게 보고한다.
'북한 동지들은 새로운 공세를 펴야 할 것인가 라고 묻었는 데 대해 중국 정부는 전략적 공세라면 해선 안된다고 이야기했다'
스탈린의 대답은 이랬다.
'휴전교섭기간엔 전략적이든 전술적이든 공세를 펴선 안된다라고 전해달라'
스탈린은 북한군측이 이기는 것도 원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공세가 미국을 자극하여 미국이 대공세로 나올까 두려웠던 것이다. 지금 상태대로 내출혈을 계속하는 인명소모전을 즐겼던 것이다.
모택동은 1952년12월17일 스탈린에 전문을 보내 한국전선에서 더 많은 군수물자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서도 스탈린은 냉담했다. 그는 모택동이 요청한 양의 4분의 1정도만 보내줄 수 있겠다고 답했다. 스탈린은 중공군이 이기는 것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스탈린은 1953년 3월6일에 사망했다. 소련 지도부는 후계자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둘러 한국전쟁을 휴전시키는 쪽으로 방향선회를 하여 김일성과 모택동에게 통보한다. 3월29일 아침 소련 쿠즈네초프 특사로부터 이 새 방침을 전달받은 김일성은 흥분했다고 한다. 쿠즈네초프가 모스크바로 보고한 戰文.
<우리의 설명을 듣고 김일성은 대단히 흥분했다. 그는, 좋은 뉴스를 들어서 대단히 기쁘다면서, 이 문서를 더 연구한 뒤 다시 한번 만날 기회를 줄 수 없느냐고 말했다. 이날 두번째 회담에서 김일성은 '소련의 조선문제에 관한 제안에 완전히 동의한다. 이 이상 전쟁을 끄는 것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이익에도, 전민주주의 진영의 이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김일성이 이처럼 스탈린의 개처럼 굽신굽신하면서 자신이 일으킨 동족의 유혈사태를 저지하지 못한 채 끌려가고 있는 동안 李承晩대통령은 휴전하려는 미국의 멱살을 잡고 처절한 자주외교를 벌이고 있었다. 李承晩 박사는 미국이 휴전으로 전선을 봉합한 뒤에는 철수하여 한국의 운명을 대륙 공산세력에게 맡겨버릴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휴전에 반대하고 단독으로도 북진통일을 하겠다고 미국을 위협하였다. 그는 이 위협이 공갈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유엔군이 관할하고 있던 반공포로들을 국군이 몰래 석방해주도록 지시했다. 미국은 이런 이승만을 달래기 위해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고 한국군 현대화 등 많은 지원 약속을 해주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미동맹체제는 그 뒤 50년 한국의 번영, 즉 근대화와 민주화가 가능하도록 한 큰 울타리가 되었던 것이다. 이승만이 이처럼 苦鬪하고 있을 때 김일성은 스탈린의 명령은 '나의 法'이라면서 독재자에게 맹종함으로써 전쟁의 계속을 저지하지 못하고 수많은 동족의 목숨을 바쳤던 것이다. 한국의 일부 젊은이들은 이런 김일성을 이승만 대통령보다 더 좋아한다고 한다. 죄받을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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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自主 관련 발언록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철저히 해놓고, 그 안에서 비로소 건설이나 생산도 있을 수 있다. 이 도둑을 누가 막느냐? 두말 할 것도 없이 그 집에 사는 사람이 1차적으로 막아야 한다. 도둑의 힘이 너무 강대할 때는 남의 힘을 빌어야 한다. 이것이 국방의 기본 개념이다>(1968년3월7일 전국 지방 장관, 시장, 군수, 구청창 대회 유시에서)
<자주국방이란 것은 이렇게 비유해서 얘기를 하고싶다. 가령 자기 집에 불이 났다. 이랬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 우선 그 집 식구들이 일차적으로 전부 총동원해서 불을 꺼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는 동안에 이웃 사람들이 쫓아와서 도와주고 물도 퍼다가 주고, 소방대가 쫓아와서 지원을 해준다. 그런데 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 그 집 식구들이 끌 생각은 안하고 이웃사람들이 도와주는 것을 기다리고 앉았다면, 소방대가 와서 기분이 나빠서 불을 안 꺼줄 것이다. 왜 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 멍청해 가지고 앉아 있느냐? 자기 집에 난 불은 일차적으로 그 집 식구들이 총동원해 가지고 있는 힘을 다해서 꺼야 한다>(1972년1월11일 기자회견에서)
한반도에 지금 독재자의 핵개발이란 불이 났다. 일차적으로 이를 진화해야 할 한국의 지도부는 지금 그 불을 끄지 않고 달려온 소방대가 물을 뿌리려 하는 것도 막고 있다. 불은 계속 타들어간다. 어이 없는 소방대는 이 불이 이웃집으로 번지는 것만 막으려 하고 있다.
<우리 모든 국민이 자신과 자신의 후손들의 안녕을 위한 국방 과제는 오직 자신들의 책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스스로의 생존을 모름지기 남에게 의존해 온 타성으로부터 탈피하여야만 한다. 이러한 주체성의 확립만이 민족의 산 보람을 일깨워주는 것이다>(1968년2월27일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유시에서)
<현 시점에서 자주 국방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생존과 자유를 지킨다는 뚜렷한 목표와, 이 목표달성은 1차적으로 우리의 힘으로 한다는 自主와 自助의 자세를 그 접근방법으로 한다는 것을 우리는 새삼 명심할 필요가 있다>(1971년3월31일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유시에서)
<또 다시 김일성이가 자신의 힘을 과신하거나 또는 어떠한 오산을 해서 전쟁을 도발하고자 할 때, 이를 만류하거나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지금 북한에는 하나도 없다>(1970년7월23일 국방대학원 졸업식 유시에서)
<우리는 결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에 6.25와 같은 적의 침략을 또 다시 받을 때에는, 전국토를 초토화하는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최후까지 싸워야 한다>(1968년3월7일 전국 지방장관, 시장, 군수, 구청장 대회 유시에서)
위와 같은 경고를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차기 대통령이 김정일을 상대로 할 수 있을 때 한반도에서 평화는 보장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김정일의 善意나 한국측의 김정일에 대한 好意에 기대하는 자는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직급이 아무리 높아도 철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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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主의 화신 李承晩의 미국 비판
“일본은 미국군인도 일본법에 의하여 처치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러한 대접을 못받으면서도 섭섭하다는 생각이 없다는 것은 독립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국무회의 제 97 회 기록
일시 : 1958년 10월 21일(화)
장소 : 경무대(전반) 중앙청(후반)
1. 서독경제상 내한에 관하여
○조정환 외무 (일정에 대한 보고)
○김현철 재무 “그와 협의 또는 그에게 요청하는 사항은 부흥부가 주가 되어 ‘메모랜덤’을 만들고 있으므로 회담 시에 외무부장관이 이것을 수교(修交)하게 될 것이라”는 보고.
○이승만 대통령 “그의 방문의 목적은?” 하시는 하문에
○김현철 재무 “동남아 각국을 돌아서 한국에 들르는 것이며 후진국가에 대한 경제원조사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는 보고.
○이승만 대통령 : “그에게 이런 말을 하여주어야 한다. 한국이 본래 자급자족하던 나라이다. 그것을 이 같이 어렵게 만든 것은 영국과 미국이 일본을 원조하여 한국을 침략케 한 소치이며 세계는 공평한 입장에서 모든 문제를 봐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리도록 하고 구차한 사정을 하며 원조를 요청하느니 보다 자존심과 위신을 지키고 상대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전후 서독이 베를린을 복구한 것과 같이 우리도 주택을 많이 건축하고자 하니 자금을 적당한 이자로서 대부하여 달라”고 청하여 보는 것이 좋겠다. 물론 그에 의하여 건설된 건물은 담보로 하고…. 그리고 기술자를 고용하는 문제도 의논하여 보라”고 하시는 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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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국채 및 미군표 위조범 체포에 관하여
○김일환 내무 “국채위조범을 체포한 바 전 민의원 신하순 집에 잠복하였었던 관계로 신도 이를 구속 조사 중이며 미군표(10만 불) 위조자 일당을 검거한 바 그 중 1명은 미군인이므로 미군 수사기관에 이첩하였다”는 보고.
○이승만 대통령 “일본은 미국군인도 일본법에 의하여 처치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러한 대접을 못받으면서도 섭섭하다는 생각이 없다는 것은 독립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우리 수사기관에서 잡아넣고 나서 전부가 일어나서 항의하면 해결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치외법권은 지상에서 없어져버린 이때이다”라고 하시면서 장택상 씨가 경찰에 있을 당시에 의연한 태도로 외국인의 항의를 일축하여 경찰의 권위를 보여준 선례를 말씀하심.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국민 여러분께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 국민은 확실히 못사는 국민이다. 뒤떨어져 있는 국민이다. 후진국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는 멀지 않은 장래에 다른 선진국가에 못지 않게끔 우리도 자력으로써 자립해서 남과 같이 떳떳하게 잘 살 수 있는 그런 국민이 되겠다는 그러한 꿈과 우리의 자신과 그러한 용기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가든지 「남한테 원조 받아야 되고, 남한테 동냥을 해야 되고, 남한테 얻어 먹어야 산다」는 그런 「거지정신」을 가진 국민이라면, 우리는 또 해봐도 안된다 하는 이러한 용기와 자신이 없는 국민이라면, 영원히 우리는 자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1963년 9월23일 중앙방송을 통한 政見發表에서 그의 自助와 自立 그리고 민족의식에 대한 생각은 좀더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도 이 연설에서 드러난다.
『…남들이 그렇게도 좋다는 민주주의, 또 우리가 가져보려고 그렇게도 애쓰던 자유 민주주의가 왜 이 나라에서는 꽃이 피지 않는 것인지 아십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주」와 「자립」을 지향한 민족적 이념이 없는 곳에서는 결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는 꽃피지 않는 법입니다.
민족의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유민주주의는 항상 잘못 해석되고 또 잘 소화되지 않는 법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주와 자립의 민족의식을 가진 연후에야 올바른 민주주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인은 지난 2년 동안 이 자유와 자립의 민족의식을 되살리기 위해 무한히 애써왔습니다…. 이번 선거도 사상과 사상을 달리하는 개인과 개인의 대결이 아니라, 더욱 폭 넓게 사상과 사상을 달리하는 세대의 대결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민족적 이념을 망각한 가식의 자유민주주의 사상과 강력한 민족적 이념을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사상과의 대결입니다』
朴대통령은 1966년 6월8일 駐韓 외국 민간원조단체 연합회 제10차 연차대회에서 한국에 원조활동을 하는 외국인들에게 「도와주는 것은 고맙지만 자조와 자립의 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것은 자주 자립의 정신무장이며, 자조 갱생의 생활신조인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적 자세와 생활 태도의 확립 없이는 결코 자립의 영광을 쟁취할 수 없으며, 언제나 남의 도움만을 받아야 하는 빈곤의 멍에를 영영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지난 수년 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 국민들에게 국민 개개인의 자주 자립정신이야말로 국가발전의 관건이며 의타심과 무기력과 나태심이야말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가장 무서운 적이라는 점을 강조해왔습니다.
따라서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특히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그 숭고한 봉사원조사업도 우리 정부의 이러한 정책과 보조를 같이하여, 被救護者들로 하여금 여러분의 도움을 헛되이 함이 없이, 스스로 도와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자조·자립사업」으로 직결되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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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3단계 전략: 自助-自立-自主
박정희의 自主는 진짜이고 노무현의 自主는 가짜인 이유.
趙甲濟
근대화혁명가 朴正熙의 근대화 전략사상을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세 단어는 自助, 自立, 自主이다.
1963년 8월30일의 轉役式에서 朴正熙는 자주적 주체의식과 자립성을 역설했다.
『우리는 국민 각자가 자주적 주체의식을 함양하며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自立정신을 확립해야 하겠습니다. 「정치적 自主」와 「경제적 自立」을 성취하고야 말 우리의 목표를 향하여 犯국민적 혁명을 전개시켜야 할 것이며, 번영과 민주공화의 樂土를 기약하는 혁명과업은 국민 전체의 주체성과 자발적 정신자세로 수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1965년 5원2일 진해 제4비료공장 기공식에서 朴대통령은 自信과 용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국민 여러분께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 국민은 확실히 못사는 국민이다. 뒤떨어져 있는 국민이다. 후진국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는 멀지 않은 장래에 다른 선진국가에 못지 않게끔 우리도 自力으로써 自立해서 남과 같이 떳떳하게 잘 살 수 있는 그런 국민이 되겠다는 그러한 꿈과 우리의 자신과 그러한 용기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가든지 「남한테 원조 받아야 되고, 남한테 동냥을 해야 되고, 남한테 얻어 먹어야 산다」는 그런 「거지정신」을 가진 국민이라면, 우리는 또 해봐도 안된다 하는 이러한 용기와 자신이 없는 국민이라면, 영원히 우리는 자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1963년 9월23일 중앙방송을 통한 政見發表에서 그의 自助와 自立 그리고 민족의식에 대한 생각은 좀더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도 이 연설에서 드러난다.
『…남들이 그렇게도 좋다는 민주주의, 또 우리가 가져보려고 그렇게도 애쓰던 자유 민주주의가 왜 이 나라에서는 꽃이 피지 않는 것인지 아십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自主」와 「自立」을 지향한 민족적 이념이 없는 곳에서는 결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는 꽃피지 않는 법입니다.
민족의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유민주주의는 항상 잘못 해석되고 또 잘 소화되지 않는 법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自主와 自立의 민족의식을 가진 연후에야 올바른 민주주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인은 지난 2년 동안 이 자유와 자립의 민족의식을 되살리기 위해 무한히 애써왔습니다…. 이번 선거도 사상과 사상을 달리하는 개인과 개인의 대결이 아니라, 더욱 폭 넓게 사상과 사상을 달리하는 세대의 대결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민족적 이념을 망각한 가식의 자유민주주의 사상과 강력한 민족적 이념을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사상과의 대결입니다』
朴대통령은 1966년 6월8일 駐韓 외국 민간원조단체 연합회 제10차 연차대회에서 한국에 원조활동을 하는 외국인들에게 「도와주는 것은 고맙지만 自助와 自立의 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것은 自主 自立의 정신무장이며, 自助 갱생의 생활신조인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적 자세와 생활 태도의 확립 없이는 결코 자립의 영광을 쟁취할 수 없으며, 언제나 남의 도움만을 받아야 하는 빈곤의 멍에를 영영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지난 수년 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 국민들에게 국민 개개인의 자주 자립정신이야말로 국가발전의 관건이며 의타심과 무기력과 나태심이야말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가장 무서운 적이라는 점을 강조해왔습니다.
따라서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특히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그 숭고한 봉사원조사업도 우리 정부의 이러한 정책과 보조를 같이하여, 被救護者들로 하여금 여러분의 도움을 헛되이 함이 없이, 스스로 도와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自助·자립사업」으로 직결되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朴대통령은 국민들이 스스로를 돕는 自助정신이 있어야 自立경제를 만들 수 있고, 그런 경제력의 뒷받침 속에서 自主국방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독립국가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새마을 운동을 할 때 自助의 원칙을 정책 수단으로 이용했다. 마을이 스스로 개혁을 하고 나서 정부에 도움을 청할 때만 받아주었다.
요사이 노무현 대통령은 自主의 대상인 김정일에겐 사대굴종하면서 협력의 대상인 미국을 상대로 온갖 억지를 부리는 것을 가지고 自主라고 거짓말하여 국민들을 속이려 하고 있다. 박정희의 빛나는 自主를 도둑질해와서 쓰레기로 만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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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自主와 노무현의 事大
'自主는 自由를 지켜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자유 속에서 번영이 이뤄지므로 自主는 결국 번영의 울타리이다. 노무현식 가짜 自主는 자유와 번영을 무너뜨리는 반역이다.'
*박정희식 自主의 논리 구조
朴正熙는 집권 18년간 自助-自立-自主의 3自 정책을 일관되게 썼다. 自助란 정신적인 것으로서 국민들이 스스로 일을 하려는 의욕을 갖추도록 하지 않으면 만사가 무효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 생각에 따라 朴대통령은 가난한 사람이 아나리 의욕이 있는 사람을 집중적으로 도와주었다(새마을 운동).
自立이란 경제적 측면으로서 미국의 원조를 받지 않고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정도의 경제발전을 이룩해야 나라다운 나라가 된다는 생각이었다. 自立경제가 그 말이다.
自主란 국방개념인데, 무릇 국가는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때 진정한 독립국가, 주권국가라고 할 수 있다는 신념의 표현이었다. 朴대통령의 자주국방은 反美가 아니라 用美에 기초했다. 그의 자주국방 개념정의에 따르면 북한이 단독으로 남침했을 때는 한국군의 실력만으로써 이를 저지, 격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이 중공이나 소련의 도움을 받아 남침했을 때는 미군의 도움을 받아 이를 격퇴한다.
*노무현식 自主
이 부분에서 盧武鉉式 자주와 다르다. 盧武鉉 대통령이 추구하는 對美자주는 기본적으로 反美감정을 깔고 있다. 그의 소위 對美自主노선의 뒷면은 對北굴종노선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
對北굴종이 목표이고 소위 對美자주는 그런 굴종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가 느껴지기도 한다.
미국은 핵개발 시도까지 간 朴대통령의 自主노선을 경계했으나 내심으로는 그의 애국심과 비전을 존경했다. 朴대통령이 죽은 직후 평소 朴대통령을 괴롭혔던 글라이스틴 駐韓미국대사는 본국에 보고한 電文에서 朴대통령을 격찬하고 야당정치인들을 경멸했다. 이 글을 읽어보면 미국의 냉정한 對韓정책을 알 수 있다. 미국은 朴대통령을 존경하면서 견제했고, 야당정치인들을 경멸하면서 밀어주었다. 다 미국의 국익을 위한 일이었다.
지금 미국 정부는 盧武鉉 대통령의 自主노선을 경멸하면서 지켜보고 있다. 그는 사나운 독재자 金正日에게는 꼭 해야 할 말도 못하고 북한의 군사동맹자이자 한반도 통일의 방해자였던 중국에 대해서도 어물어물하면서(중국의 역사왜곡과 어선의 영해침범에 대해서는 미온적이다) 유독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감정적인 말들을 쏟아놓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朴대통령의 反美的 성향은 식민지 체험과 만주군 생활, 그리고 남로당 모험과 미군과의 갈등을 통해서 배양되었다. 그는 反美的 성향을 대통령이 된 다음에도 私的으로 유지했으나, 공적으로는 미국의 역할에 대해서 감사하면서 월남파병처럼 미국의 도움에 보답하는 것이 또한 자주국방의 길이라고 믿었다. 公과 私를 구별했다.
盧武鉉 대통령은 公과 私가 뒤죽박죽이 되는 감상적 저급 발언을 외교적으로,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 공개강연에서 다수 보수층 국민들을 향하여 '별놈'이라고 말한 사람의 말버릇을 우방국가를 향해서도 퍼붓고 있다. 그는 용산미군 기지를 '침략의 상징'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朴대통령은 말을 신중하고 정확하게 했다. 국가의 실력 범위안에서 말했다. 외교는 군사력의 범위안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盧대통령은 외교적 不渡가 우려될 만큼 과도한 말을 한다. 그는 우방국가를 상대로 '외교전쟁'을 선포하기도 한다.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고 공언했다가 외환위기 때 일본에게 당했던 金泳三 전 대통령과 매우 닮았다.
깡패에게 굴종하면서 어수룩하게 보이는(실제로는 무서운 실력을 갖고 있지만) 친구에게는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외치는 自主란 비겁의 다른 표현이다.
자주정신은 개인에게도, 조직이나 국가에게도 소중하다. 이는 아주 고매한 정신력이자 自我의 구현이다. 이 자주정신의 핵심은 자만심이 아니다. 균형감각에 기초한 정의감, 그리고 실력이다. 이런 교양이 뒷받침하지 않는 自主는 감상적으로 흐르고 조직과 개인을 망친다. 盧대통령이 진정으로 자주를 이야기하려면 金正日과 從金세력으로부터의 자주를 먼저 말해야 한다. 金正日이 애국단체의 인공기 소각에 대해 비난하면 대통령이 나서서 사과를 하는 식의 굴종적 자세. 그 연장선상에서 나오는 對美자주선언은 균형감각도 정의감도 없는 말장난이든지 다른 의도를 가진 행동일 것인데 그 결과는 한국과 대통령을 동북아의 균형자가 아닌 동네북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自主는 自由를 지켜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자유 속에서 번영이 이뤄지므로 自主는 결국 번영의 울타리이다. 노무현식 가짜 自主는 자유와 번영을 무너뜨리는 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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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국방과 관련한 朴正熙의 語錄.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철저히 해놓고, 그 안에서 비로소 건설이나 생산도 있을 수 있다. 이 도둑을 누가 막느냐? 두말 할 것도 없이 그 집에 사는 사람이 1차적으로 막아야 한다. 도둑의 힘이 너무 강대할 때는 남의 힘을 빌어야 한다. 이것이 국방의 기본 개념이다>(1968년3월7일 전국 지방 장관, 시장, 군수, 구청창 대회 유시에서)
<자주국방이란 것은 이렇게 비유해서 얘기를 하고싶다. 가령 자기 집에 불이 났다. 이랬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 우선 그 집 식구들이 일차적으로 전부 총동원해서 불을 꺼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는 동안에 이웃 사람들이 쫓아와서 도와주고 물도 퍼다가 주고, 소방대가 쫓아와서 지원을 해준다. 그런데 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 그 집 식구들이 끌 생각은 안하고 이웃사람들이 도와주는 것을 기다리고 앉았다면, 소방대가 와서 기분이 나빠서 불을 안 꺼줄 것이다. 왜 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 멍청해 가지고 앉아 있느냐? 자기 집에 난 불은 일차적으로 그 집 식구들이 총동원해 가지고 있는 힘을 다해서 꺼야 한다>(1972년1월11일 기자회견에서)
한반도에 지금 독재자의 핵개발이란 불이 났다. 일차적으로 이를 진화해야 할 한국의 지도부는 지금 그 불을 끄지 않고 달려온 소방대가 물을 뿌리려 하는 것도 막고 있다. 불은 계속 타들어간다. 어이 없는 소방대는 이 불이 이웃집으로 번지는 것만 막으려 하고 있다.
<우리 모든 국민이 자신과 자신의 후손들의 안녕을 위한 국방 과제는 오직 자신들의 책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스스로의 생존을 모름지기 남에게 의존해 온 타성으로부터 탈피하여야만 한다. 이러한 주체성의 확립만이 민족의 산 보람을 일깨워주는 것이다>(1968년2월27일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유시에서)
<현 시점에서 자주 국방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생존과 자유를 지킨다는 뚜렷한 목표와, 이 목표달성은 1차적으로 우리의 힘으로 한다는 自主와 自助의 자세를 그 접근방법으로 한다는 것을 우리는 새삼 명심할 필요가 있다>(1971년3월31일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유시에서)
<또 다시 김일성이가 자신의 힘을 과신하거나 또는 어떠한 오산을 해서 전쟁을 도발하고자 할 때, 이를 만류하거나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지금 북한에는 하나도 없다>(1970년7월23일 국방대학원 졸업식 유시에서)
<우리는 결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에 6.25와 같은 적의 침략을 또 다시 받을 때에는, 전국토를 초토화하는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최후까지 싸워야 한다>(1968년3월7일 전국 지방장관, 시장, 군수, 구청장 대회 유시에서)
위와 같은 경고를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을 상대로 할 수 있을 때 한반도에서 평화는 보장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김정일의 善意나 한국측의 김정일에 대한 好意에 기대하는 자는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직급이 아무리 높아도 철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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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語錄(1)-자주국방에 대하여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철저히 해놓고, 그 안에서 비로소 건설이나 생산도 있을 수 있다. 이 도둑을 누가 막느냐? 두말 할 것도 없이 그 집에 사는 사람이 1차적으로 막아야 한다. 도둑의 힘이 너무 강대할 때는 남의 힘을 빌어야 한다. 이것이 국방의 기본 개념이다>(1968년3월7일 전국 지방 장관, 시장, 군수, 구청창 대회 유시에서)
<자주국방이란 것은 이렇게 비유해서 얘기를 하고싶다. 가령 자기 집에 불이 났다. 이랬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 우선 그 집 식구들이 일차적으로 전부 총동원해서 불을 꺼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는 동안에 이웃 사람들이 쫓아와서 도와주고 물도 퍼다가 주고, 소방대가 쫓아와서 지원을 해준다. 그런데 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 그 집 식구들이 끌 생각은 안하고 이웃사람들이 도와주는 것을 기다리고 앉았다면, 소방대가 와서 기분이 나빠서 불을 안 꺼줄 것이다. 왜 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 멍청해 가지고 앉아 있느냐? 자기 집에 난 불은 일차적으로 그 집 식구들이 총동원해 가지고 있는 힘을 다해서 꺼야 한다>(1972년1월11일 기자회견에서)
한반도에 지금 독재자의 핵개발이란 불이 났다. 일차적으로 이를 진화해야 할 한국의 지도부는 지금 그 불을 끄지 않고 달려온 소방대가 물을 뿌리려 하는 것도 막고 있다. 불은 계속 타들어간다. 어이 없는 소방대는 이 불이 이웃집으로 번지는 것만 막으려 하고 있다.
<우리 모든 국민이 자신과 자신의 후손들의 안녕을 위한 국방 과제는 오직 자신들의 책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스스로의 생존을 모름지기 남에게 의존해 온 타성으로부터 탈피하여야만 한다. 이러한 주체성의 확립만이 민족의 산 보람을 일깨워주는 것이다>(1968년2월27일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유시에서)
<현 시점에서 자주 국방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생존과 자유를 지킨다는 뚜렷한 목표와, 이 목표달성은 1차적으로 우리의 힘으로 한다는 自主와 自助의 자세를 그 접근방법으로 한다는 것을 우리는 새삼 명심할 필요가 있다>(1971년3월31일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유시에서)
<또 다시 김일성이가 자신의 힘을 과신하거나 또는 어떠한 오산을 해서 전쟁을 도발하고자 할 때, 이를 만류하거나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지금 북한에는 하나도 없다>(1970년7월23일 국방대학원 졸업식 유시에서)
<우리는 결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에 6.25와 같은 적의 침략을 또 다시 받을 때에는, 전국토를 초토화하는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최후까지 싸워야 한다>(1968년3월7일 전국 지방장관, 시장, 군수, 구청장 대회 유시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김정일의 善意나 한국측의 김정일에 대한 好意에 기대하는 자는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직급이 아무리 높아도 철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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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1일 월요일(조갑제. 再錄)
노무현, '용산기지는 침략의 상징'
오늘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盧武鉉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듣고 있던 한 탈북자의 부인이 말했다.
'조마조마해서 듣고 있을 수가 없다. 오늘은 또 무슨 실수를 할는지'
盧대통령은 이런 한심한 표현을 또 했다(청와대 인터넷 사이트 인용).
'이제 용산기지 이전이 결정되었다. 몇년 지나면 용산기지는 우리 국민들, 우리 서울시민들에게 반환될 것이다. 간섭과 침략과 의존의 상징이던 그 용산기지가 우리 국민들의 손에 돌아온다'
'(용산기지가) 간섭과 침략과 의존의 상징이었다'는 이 대목만 읽어보면 金正日의 연설로 착각할 것이다. 주한미군이 내정에 간섭하고 한국을 침략하고 한국인은 그런 미국에 의존했는데, 그런 시절을 자신이 청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해된다.
주한미군은 남침을 당한 대한민국의 요청에 의해서 한국에 들어왔다. 미군이 철군이나 감군을 하려고 할 때마다 노무현 정부를 포함한 역대 정부는 미국 정부에 재고를 요청하거나 보완대책을 요구했다. 그런 미군의 역할을 간섭과 침략이라고 규정한 것은 친북좌익 세력의 논리이지 동맹국 국군통수권자가 할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과도 다르다. 이는 한미동맹을 와해시키겠다는 작심을 한 집단의 선동논리가 아닌가.
용산기지는 동맹과 자유와 협조의 상징이었다. 대외의존적 요소가 있었다 해도 그것은 우리가 자초한 것이고 우리가 원했던 것이며 긍정적인 요소에 따라다니는 불가피한 부작용이지 본질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름도 모르는 나라를 지켜주기 위하여 수십만의 젊은이들을 희생시키고도 그 나라 대통령으로부터, 용산미군 기지가 [간섭과 침략과 의존의 상징]이었다는 악담을 들어야 했던 미국인이 한국인을 어떻게 볼 것인가. 盧武鉉 대통령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의리도 고마움도 모르는 민족이란 손가락질을 국제사회에서 듣게 생겼다. 盧대통령을 상대로 정신적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집단소송을 낼 만하다.
하도 어이가 없어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盧武鉉 대통령이 말한 용산기지는 혹시 일본의 조선주둔군 사령부가 있었던 일제시대의 용산기지를 두고 한 말은 아닐까. 이 정도로 국민들이 대통령을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걱정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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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自主”
“작전권으로 '자주' 따지면 히딩크는 왜 데려왔나”
데일리엔케이
북한민주화동맹 황장엽 위원장은 9일 청년•대학생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정부가 자꾸 ‘자주’라고 그러는데 민족의 이익을 포기하는 행위가 무슨 자주인가”라며 한미동맹 약화를 초래하는 정부를 강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위원장은 “임진왜란 당시 지원군을 이끌고 온 명나라 장수 진린(陳璘)은 조-명 연합함대의 지휘권을 이순신 장군에게 맡겼다. 이순신 장군이 일본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데다 해전에서 단연 돋보였기 때문이다. 작전권으로 ‘자주’냐 ‘비(非)자주’냐를 가르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합전력으로 싸우자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가 작전권을 가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며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지 동맹간에 자리다툼이나 하는 것처럼 비춰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황 위원장은 참석자가 젊은 층임을 감안해 “작전권을 우리가 가져야 자주국가라고 하면, 그럼 한국 축구는 히딩크에게 왜 맡겼는가”라고 설명해 대학생들의 이해를 돕기도 했다.
그는 작통권 문제는 단순하게 전시를 대비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미동맹과 직결되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이 문제를 ‘자주권’과 연결시켜 한미동맹에 금이 가도록 하는 자들은 다 민족반역적인 행동을 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했다.
황 위원장은 “미국이 우리나라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또 미래를 생각할 때 미국과의 동맹은 우리의 생명선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북한의 급변사태와 재건, 그리고 통일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이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를 조율하며 발전해가기 위해 한미동맹은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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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이승만 對美자주, 김일성의 對蘇굴종
앞서 소개한 [조선전쟁의 수수께끼와 진실]이란 책에는 1952년8월 周恩來 중공 수상과 스탈린의 회담록이 실려 있다. 스탈린은 毛澤東의 휴전 의사를 전하면서 소련측의 의중을 탐색하는 周恩來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전쟁은 미국인들을 괴롭히고 있다. 북한은 이번 전쟁으로 인명 손실 이외엔 전혀 패배한 구석이 없다. 미국인들은 이번 전쟁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고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잘 알고 있다. 버티고 견디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북한사람들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수많은 희생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은 위대한 일이라고 설명해주어야 한다. 북한사람들을 지원하여 버틸 수 있다록 해주어야 한다.>
周恩來는 이렇게 보고한다.
'북한 동지들은 새로운 공세를 펴야 할 것인가 라고 묻었는 데 대해 중국 정부는 전략적 공세라면 해선 안된다고 이야기했다'
스탈린의 대답은 이랬다.
'휴전교섭기간엔 전략적이든 전술적이든 공세를 펴선 안된다라고 전해달라'
스탈린은 북한군측이 이기는 것도 원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공세가 미국을 자극하여 미국이 대공세로 나올까 두려웠던 것이다. 지금 상태대로 내출혈을 계속하는 인명소모전을 즐겼던 것이다.
모택동은 1952년12월17일 스탈린에 전문을 보내 한국전선에서 더 많은 군수물자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서도 스탈린은 냉담했다. 그는 모택동이 요청한 양의 4분의 1정도만 보내줄 수 있겠다고 답했다. 스탈린은 중공군이 이기는 것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스탈린은 1953년 3월6일에 사망했다. 소련 지도부는 후계자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둘러 한국전쟁을 휴전시키는 쪽으로 방향선회를 하여 김일성과 모택동에게 통보한다. 3월29일 아침 소련 쿠즈네초프 특사로부터 이 새 방침을 전달받은 김일성은 흥분했다고 한다. 쿠즈네초프가 모스크바로 보고한 戰文.
<우리의 설명을 듣고 김일성은 대단히 흥분했다. 그는, 좋은 뉴스를 들어서 대단히 기쁘다면서, 이 문서를 더 연구한 뒤 다시 한번 만날 기회를 줄 수 없느냐고 말했다. 이날 두번째 회담에서 김일성은 '소련의 조선문제에 관한 제안에 완전히 동의한다. 이 이상 전쟁을 끄는 것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이익에도, 전민주주의 진영의 이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김일성이 이처럼 스탈린의 개처럼 굽신굽신하면서 자신이 일으킨 동족의 유혈사태를 저지하지 못한 채 끌려가고 있는 동안 李承晩대통령은 휴전하려는 미국의 멱살을 잡고 처절한 자주외교를 벌이고 있었다. 李承晩 박사는 미국이 휴전으로 전선을 봉합한 뒤에는 철수하여 한국의 운명을 대륙 공산세력에게 맡겨버릴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휴전에 반대하고 단독으로도 북진통일을 하겠다고 미국을 위협하였다. 그는 이 위협이 공갈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유엔군이 관할하고 있던 반공포로들을 국군이 몰래 석방해주도록 지시했다. 미국은 이런 이승만을 달래기 위해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고 한국군 현대화 등 많은 지원 약속을 해주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미동맹체제는 그 뒤 50년 한국의 번영, 즉 근대화와 민주화가 가능하도록 한 큰 울타리가 되었던 것이다. 이승만이 이처럼 苦鬪하고 있을 때 김일성은 스탈린의 명령은 '나의 法'이라면서 독재자에게 맹종함으로써 전쟁의 계속을 저지하지 못하고 수많은 동족의 목숨을 바쳤던 것이다. 한국의 일부 젊은이들은 이런 김일성을 이승만 대통령보다 더 좋아한다고 한다. 죄받을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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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由를 지키는 것이 自主
노무현식 自主는 自由를 포기하는 自殺이다.
趙甲濟
自主의 대상인 북한정권과 중국에 대해서는 事大굴종해온 노무현 대통령이 협력 대상인 미국을 상대로 自主하겠단다. 이는 자신의 본질인 事大반역분열성을 감추려는 위장술이다. 그는 李承晩, 朴正熙의 실용적 自主가 아니라 말장난으로서의 自主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이 정도의 번영과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은 自主노선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自主로써 自由를 지켰고, 그 自由가 번영을 만들어냈다. 김정일 정권이 저 모양인 것은 事大노선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親北的 역사관에 물든 盧씨의 머리엔 스탈린, 일본 天皇, 조선의 왕을 합쳐놓은 것처럼 守舊反動的인 김정일 노선이 自主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런 가짜 自主의 결과가 600만 명의 죽음이었음을 모른다면 바보이고 알면서도 自主타령을 한다면 민족반역자이다.
동족을 치기 위하여 모택동, 스탈린 등 외세를 끌어들였고, 그리하여 일단 나갔던 미군까지 다시 불러들인 자를 自主로 보는 무리들이 대한민국의 조종실을 점거하고 있다. 그들의 눈엔 국군과 유엔군의 北進으로 통일이 눈앞에 왔을 때 모택동 군대를 불러들인 자가 自主의 화신으로 보인다. 그 모택동을 존경한다고 말한 자가 입만 열면 自主타령을 하고 있다. 좌경이념의 소유자인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승만, 박정희의 自主노선 덕분이었다. 은혜를 모르는 그는 진정한 自主의 화신인 두 지도자를 욕되게 하는 일에 國力과 國富를 쓰고 있다.
민족의 3大 원수인 모택동, 스탈린, 김일성의 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준 미국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르고 이 恩人에 대해서 온갖 행패를 부리는 것을 自主라고 생각하는 집단이 대한민국의 조종실을 점거하고 있다. 세계사가 폐기한 사회주의에 매달려 개혁 개방을 거부함으로써 북한주민 300만 명을 굶겨죽인 김정일을 自主의 인물로 보고 이 자와 공조하는 것을 '민족공조' '우리민족끼리'라고 외쳐대는 자들이 한미연합군을 해체하여 국군을 고립시키고 북한군을 결정적으로 이롭게 만들면서 자신들의 事大와 반역성을 自主라고 위장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자랑스런 自主노선을 걸어왔다. 自主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강한 적과 싸울 때는 더 강한 친구와 손잡고 자유를 지키는 것, 이것이 自主이다. 강하고 악한 적이 더 강해지고 악랄해질 때를 맞추어 친구와 잡았던 손을 놓고 스스로 고립되는 것, 그리하여 자유를 잃는 것, 이것은 自主가 아니고 미친 짓이고 바보 짓이며 반역이고 항복이다. 자유 없는 自主는 독재자와 선동꾼의 사기이다. 自主는 自由를 지켜내기 위한 수단이다. 노무현식 自主는 自由를 포기하는 自殺이다. 한국인으로 살면서 자유를 희생시키는 것을 自主라고 선전하는 자는 事大반역분열세력의 두목 김정일을 위해 복무하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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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自主는 왜 가짜인가?
그는 對北사대주의자이다. 깡패한테 얻어맞고 다니는 남자가 만만한 누나를 상대로 自主하겠단다.
趙甲濟
여러번 강조해온 바이지만 노무현씨의 선동과 거짓말은 공식이 있다. 좌회전하려고 할 때는 꼭 우회전 깜빡이를 켠다. 국민을 분열시킬 때는 꼭 통합을 이야기한다. 특정 계층의 국민들을 배제시키려 할 때는 꼭 참여를 이야기한다. 事大굴종하려고 할 때는 꼭 自主를 이야기한다.
노무현씨가 말하는 自主는 가짜이다. 대한민국이 자주해야 할 대상은 북한과 중국이어야 한다. 한국에 대한 침략과 간섭의 前歷을 갖고 있고 지금도 독재적, 침략적 본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주의 대상이 아니라 협력의 대상이다. 동맹국이고 미국이 한번도 한국을 침략, 정복하거나 식민지로 지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씨가 自主인가 事大인가를 가리는 기준은 간단하다. 그가 북한정권에 대해서 취한 태도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는 북한 김정일 정권의 핵무기 개발, 미사일 발사, 인권탄압, 서해 NLL 침범 등에 대해서 한번도 항의한 적도, 사과를 받아본 적도 없다. 국민과 조선일보와 야당에 대해서는 온갖 야비한 언사를 다 동원해서 저주해온 그가 이상하게도 김정일 앞에선 그렇게 초라하고 비열해보일 수가 없다. 호랑이 앞에 선 고양이처럼 기가 죽는다. 김정일이 쌀을 달라고 하면 쌀을 주고, 침묵하라고 하면 침묵한다. 이는 그가 對北사대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독재자와 민족반역자에 대한 사대주의자가 동맹국에 대해서 억지를 부린다고 自主로 둔갑할 순 없다. 그는 事大의 본성을 숨기기 위하여 自主로 위장하고 있는 것이다. 좌회전하는 것을 감추기 위하여 우회전 깜박이를 켜는 것처럼.
악랄한 김정일에 대해선 굴종하는 사대주의자 노무현씨가 진정한 自主의 챔피언 이승만이 만든 대한민국의 생명줄을 끊어놓으려 한다. 자주의 상대가 아닌 미국을 상대로 自主를 확보하겠다고 국민들을 속인 뒤 韓美연합군을 해체하려 공작하다가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쳤다. 이 저항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므로 盧정권을 날려버릴 만한 폭발력이 있다. 깡패한테 얻어맞고 다니는 남자가 집안의 만만한 누나를 상대로 화풀이를 하면서 심리적 보상을 받으려고 하다가 아버지한테 혼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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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0년간 한반도에서 검증된 너무나 간단한 논리를 盧武鉉 대통령만 모른다.
그것은 親美自主이고 反美事大라는 진실이다.
盧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관념의 포로가 되고 말장난에 취해 反美自主라는 위선의 논리를 믿는 것 같다. 李承晩 대통령의 親美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수립, 韓美 상호방위조약 체결로 나타났다. 朴正熙의 親美는 對外개방적인 근대화 전략과 월남파병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한국의 親美정책에 대하여 6.25때의 파병, 경제지원, 한국의 수출상품 사주기 등으로 보답했다.
한국의 親美 정책으로 한국인은 국가를 지켜냈고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리하여 공산당의 노예로 살지 않고, 일본의 식민지로 다시 전락하지 않고 번영을 누릴 수 있었으니 이것이 自主의 구체적 실천이 아니고 무엇인가.
북한정권의 反美는 자신들을 스탈린의 꼭두각시로 전락시켰다. 김일성은 스탈린과 모택동의 힘을 빌어 동족을 치려다가 국제사회의 응전을 불러 한반도를 국제전장으로 만듦으로써 300만 명을 죽게 했다.
김정일의 反美는 경제파탄의 원인이 되어 300만 명의 동포들을 죽게 만들었다. 父子가 600만 명의 희생에 책임이 있다. 그래서 얻은 것은 자주가 아니라 외국에 구걸하여 식량을 얻지 않으면 주민들을 먹여살릴 수도 없는 극단적인 事大의 상황이다.
自主로 해서 북한주민들은 노예가 되었다. 김정일 한 사람만 자주를 쟁취했고 그 대가로 북한인민들은 노예, 걸인, 도적, 탈출자가 되었다. 이것이 反美自主라는 것의 실상이다. 盧대통령이 말하는 自主는 語法상 反美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좌파적 자주 개념이다. 좌파적 자주는 독재자를 위한 사기임이 600만 명의 인명희생으로 입증되었다. 盧武鉉式 自主의 위선을 입증하기 위해서 또 그런 희생을 해야 한단 말인가. 600만이 自主라는 미명하에서 죽었는데도 아직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한국을 이끌고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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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主와 事大
명치유신 이전에 일본의 무사들은 서양의 서적을 통해서 선진된 외국문물을 받아들일 때 이상한 행동을 하곤 했다고 합니다. 서양책을 발로 밟으면서 '너까짓 것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중얼거리곤 했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심리전인데 비록 내가 후진 일본인으로 태어나 서양의 문물을 배워야겠지만 나의 혼을 절대로 너희들에게 팔아넘기지는 않는다, 너를 배워서 우리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데 수단으로 이용할 뿐이다, 내 속을 내놓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하기 위한 하나의 의식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자세를 잘 보여주는 말이 和魂洋才입니다. 일본인으로서의 혼(즉 주체성 또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그것을 중심으로 삼고 서양의 기술과 재주를 활용하겠다는 뜻이지요. 서양문물을 배운다고 일본인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팔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말입니다. 이런 정신이 명치유신이란 주체적인 근대화의 철학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체적인 개혁 개방에 실패하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여러 원인중의 하나는 주체를 세우지 못하고 혼마저 선진국한테 팔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도쿠가와 막부 시절 일본의 유명한 유학자가 제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만약 공자와 맹자 선생님이 군대를 이끌고 일본에 상륙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학생들이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공자와 맹자를 포로로 잡아야 한다'
만약 조선조 시대의 유학자가 제자들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면 제자들은 선생을 사문난적, 즉 주자학의 이단이라고 하여 고발했을 것입니다.
공자든 맹자든 민주주의든 시장경제이든 그것들은 우리의 역사속에서 성장한 제도도, 이념도, 가치관도 아니다. 그것들은 수단일 뿐이다. 하느님도 아니고 신주단지도 아니다. 우리, 그리고 국민들의 복지와 안전과 자유를 증진시켜주는 수단일 뿐이지 공자를 위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시장경제를 위해서 우리의 소중한 것들-역사, 전통, 미풍양속,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희생시킬 수는 없다.
대충 이런 생각을 우리는 주체성이라고 부릅니다. 그러지 않고 외국에서 발생한 이념과 제도를 하느님으로 절대화하여 우상숭배하면서 우리의 것들을 희생하는 행태를 우리는 사대주의라고 부릅니다. 주자학을 섬기면서 국익을 희생시킨 조선조의 선비들, 사회주의를 섬기면서 북한 주민들을 생지옥으로 끌고간 김일성과 그 아들을 사대주의자로 분류할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외래 사상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짓밟는 사람들이지요.
우리는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면서 그 형식을 절대화하고 그 목적과 내용을 소홀히 하였습니다. 민주주의의 형식은 선거입니다. 우리는 선거를 많이 하는 것이 바로 민주적이란 착각을 가지고 편집국장도, 대학총장-학장도 선거로 선출하려고 하였습니다. 선거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지도자를 뽑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하며 선거가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최선의 방법이라면 선거를 해야 하는 것이지요. 신문사 편집국장이나 회사 사장이나 대학 총장은 선거를 통해서 뽑히는 경우보다 임명, 지명, 추천 등에 의해 뽑히는 것이 좋은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민주주의가 무조건 좋다면서 선거가 아니면 독재라고 아우성을 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고향이라고 하는 미국이나 영국에 와 보고 대학총장을 선거로 뽑는 곳이 전무하다는 것을 알고 머쓱해지기도 합니다.
대체로 사대주의는 형식을 추종하며 자주파와 실용주의자들은 목표와 내용을 중시합니다. 최근 의약분업 파동을 보면 이 정책을 기획한 사람들이 과연 주체적인 판단을 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의약분업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의료소비자인 국민들의 편의와 안전이어야 했습니다. 우선 현행 제도가 오랫동안 한국인의 생활속에서 정착되어 있다는 것에 주목하여 그 제도의 장점을 인정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방식을 취해야 했습니다.
선진국에서 하니까 우리도 해야 한다는 것은 전형적인 사대주의입니다. 선진국의 제도를 한국의 현실에 접목시키면서 변형하고 소화해야지 '선진국의 제도니까 무조건 따르라. 그러지 않으면 수구세력이고 反개혁세력이다'는 식으로 몰아부치는 것은 혼을 외국의 제도에 팔아버린 사대주의자의 행동과 다름없습니다.
사대주의자들은 필연적으로 위선자가 됩니다. 외국의 선진제도나 가치관을 후발국에다가 일률적으로 적용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그들은 위선자가 됩니다. 한국에서 시장경제의 원리를 적용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시장경제란 구호를 놓지 않으면서 하는 행동은 관치경제입니다. 그러면서 시장경제를 위해서 시장에 개입한다, 시장경제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당분간 관치경제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논리가 정치에 적용되면 민주주의를 위해서 권위주의 정책을 편다고 말하게 됩니다. 그들은 인권을 외치지만 정권을 잡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지 인권을 자신의 보편적 가치관으로 신념화하지 못하고맙니다. 소위 인권지도자란 사람이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일본인 납치범을 비호하면서 납치된 피해자의 안전에 대해서는 내 몰라라 하는 것도 그가 부르짖는 인권이란 것이 형식으로서의 인권이었지 목표나 내용으로서의 인권이 아니었음을 反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벌개혁도 그렇습니다. 그 개혁의 목표는 기업이 법률을 잘 지키고 이익을 많이 남겨 세금을 많이 내며 많은 사람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지 무조건 상호지급보증을 해소하고 계열회사를 정리하고 회장 비서실을 없애는 일이 아닙니다. 상호지급보증이란 것은 금융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자금 동원을 위해서 긍정적인 기능을 합니다. 상호지급보증이냐 아니냐의 형식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목표-법률을 잘 지키고 이익을 많이 내어 고용을 많이 하는 것-에 충실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여러 가지 형식과 경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허용할 때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이든 국가이든 형식에 집착하면 편협해집니다. 반드시 흰 고양이만 쥐를 잡을 수 있다는 형식을 강요하면 쥐잡기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고지를 점령하면 되었지 반드시 기관총만 사용하라고 형식까지 지정해두면 작전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사대주의자는 대체로 형식주의자들이고 주체성이 강한 사람들은 형식에 대해선 관용한 대신 목표나 결과를 중시합니다.
넥타이는 한국인이 발명한 것도 아닌데 세계에서 넥타이란 형식을 한국인처럼 잘 지키는 사람들도 없을 것입니다. 주자학, 민주주의를 하느님으로 만든 행태의 연장선상에서 넥타이를 하느님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요. 한국여자들처럼 화장을 짙게 하는 이들도 없을 것입니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길이 어찌 짙은 화장이란 한 가지 방법밖에 없을까요. 이 또한 형식을 중시하는 사대주의적인 발상과 관계 있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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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는 민족사의 정통성을 주장할 수 없다'
李基白 교수의 生前 마지막 인터뷰-'신라는 唐을 축출한 독립정신이 강한 나라. 사대주의 아니다'
鄭淳台(월간조선)
―黃長燁씨는 「南北대결의 핵심은 민족사에 있어서의 正統性을 놓고 벌이는 타협 불가능한 권력투쟁」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민족사의 正統이고, 누가 민족사의 異端입니까.
『독재국가는 韓國史에서의 正統性을 주장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독재를 뒷받침해 주고 있는 이른바 「주체사학」은 韓國史學을 타락시키고 있습니다』
―北韓의 「朝鮮全史」나 「朝鮮通史」에서는 고구려가 우리 역사상 中世 봉건시대를 열고 이끌어간 나라, 즉 삼국시대의 主役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또한 4세기에 들어서면서 본격화하는 고구려의 남진정책은 삼국통일을 위한 통일의지의 표현이라 되어 있는 반면, 백제나 신라의 북진정책은 反통일적인 것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3國 중에서 고구려가 선진국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고구려가 당연히 3國을 통일할 자격이 있는 나라요, 백제와 신라는 당연히 고구려에 병합되어야 할 나라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가 선진국가였다고 해서, 세계가 당연히 그들에 의해서 통일되어야 한다고 규정하는 것이 잘못인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고구려는 독재정치에 의해서 국가가 분열되었기 때문에 패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백제 또한 그러했습니다. 이에 반해 신라는 약간의 시련이 있기는 했지만, 국내의 단결이 굳건해서 통일의 기반이 어느 나라보다도 강했습니다』
통일은 민족의 理想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어야만 의미
―우리 사회 일각에서도 新羅가 唐과 동맹한 것을 反민족적 事大主義라고 비난하는 데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문제가 있는 시각입니다. 3·1운동을 事大主義라고 규정한 日帝 어용학자의 억지 주장과 마찬가지인 겁니다. 신라는 고구려와 동맹하기를 원했지만, 고구려가 거절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唐과 동맹을 했던 것입니다.
설마 新羅더러 비록 망하더라도 가만 있어야 하는 게 옳다고 주장할 사람은 없겠지요. 더욱이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 신라는 唐과 치열한 전쟁을 하여 唐을 축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신라는 독립정신이 강한 나라였습니다』
―民族史에 있어서 삼국통일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나라 역사의 시초부터 이미 민족이 형성되어 있었고, 또 그것이 하나의 국가로 형상화되고 있었다는 낡은 사고방식이 아직도 잔존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객관적인 역사적 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멉니다.
처음에는 滿洲와 한반도에 걸쳐서 수없이 많은 씨족공동체가 산재해 있었고, 靑銅器시대에는 각기 독립된 수백 개의 城邑國家 혹은 部族國家들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정복과 동맹의 과정을 거치면서 고구려, 백제, 신라로 통합 정리되어 삼국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러다 신라의 통일에 의해 민족의 틀이 거의 완성된 것입니다』
―그런데 金大中 대통령이 지난 10월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金日成의 6·25 남침을 신라의 삼국통일, 고려의 후삼국통일에 이은 세 번째의 「통일 시도」라고 발언한 바 있습니다. 이런 역사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통일은 민족의 理想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어야 의미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민족의 理想은 자유와 평등의 실현입니다. 북한에서는 6·25 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르며 그것이 무력 통일의 시도임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에 있어서 그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침략전쟁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사의 최대 비극이었던 6·25 전쟁의 책임을 묻는 것이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부과된 임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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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산책/신라의 自主 연구
역사 산책/新羅의 自主 연구: 무사도가 자주를 가능케 했다
몇년 전 서라벌군사연구소 소장 이종학씨를 경주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종학씨는 국방대학원 교수를 지내신 분으로 지금은 고향인 경주에서 살면서 군사학적 관점에서 본 신라에 대해서 많은 논문과 저서를 내고 계시는 분입니다. 이종학 소장은 나이가 일흔(당시)인데도 한 50대로 보일 만큼 젊은 표정이고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그 비결을 물었더니 하고싶은 것을 하고 있으니 늙을 시간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나이가 일흔이 되어도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생활을 할려면 아무래도 전문분야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전문가들이 대체로 관리자들보다 덜 늙고 건강한 것은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가장 행복한 상태는 자신의 취미와 자신의 직업이 일치할 때라고 합니다. 즉,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것이 즐거워서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경주에서 태어나서 신라를 연구주제로 삼아 책도 쓰고 사적지도 답사하면서 老後를 보내고 있는 이종학씨가 행복하게 보였습니다. 이종학씨는 몇년 전에 「신라화랑 軍事史 연구」라는 책을 썼습니다. 제가 이분을 만나보고싶어진 것도 이 책을 읽고난 뒤였습니다. 왜 신라가 통일을 할 수 있었는지를 군사적 관점에서 쓴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식인들이 대체로 군사문제에 무지합니다. 군사를 뺀 역사는 헛것인데도 역사학자들도 전쟁이라든지 군대에 대해서는 의식적으로 연구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선이 망한 가장 중요한 이유도 自主國防을 못했기 때문인데 이 점을 직시하지 않으려 합니다. 自主國防을 못한 나라는 사대주의에 취한 나라라고 분류할 수 있는데 그런 역사 문화적 전통에서 나고 자란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무의식적으로도 생각이 사대주의로 기울고 있습니다.
이러하다 보니까 朴正熙 대통령처럼 자주국방을 외치는 사람을 군사문화 찬양자라로 욕을 하는 것이 사대적인 지식인들입니다. 전쟁과 군대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되어 있지 않는 사람이 논하는 정치학이나 외교학, 또는 역사학은 공허하기 짝이 없습니다. 정치란 것은 전쟁의 연장이며 전쟁은 정치의 연장입니다. 외교는 군사력의 뒷받침을 받는 범위 안에서만 효과가 있고 역사란 것은 결국 전쟁과 평화의 교차입니다. 즉 사회 과학을 공부할 때 전쟁이란 요소를 빼버리면 반쪽밖에 보지 못하기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일류지식인이 드문 것이 전쟁과 군대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말한다면 그런 이류 지식인들이 대한민국을 끌어가고 있기 때문에 이 나라는 이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군사학에 대한 지식을 깔고서 신라역사를 연구하는 이종학 선생이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종학 선생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군사력의 바탕은 화랑의 세속5계로 상징되는 무사도정신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사도정신으로 무장한 지배층이 삼국통일의 주도세력이 되었기 때문에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 나라와 결전하여 자주독립국가를 지켜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 글만 아는 조선왕조 지식인들과 같은 지배층이 신라를 이끌었다면 당의 속국이 되든지 백제나 고구려한테 멸망당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신라를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도 이 작은 한반도를 기반으로 하여, 아시아 대륙을 석권한 당나라를 상대로 당당하게 민족의 자존을 지켜낸 비결이 어디 있었던가에 대한 호기심 때문입니다.
이종학 선생은 그런 점에서 원광법사가 만든 화랑세속5계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원광법사는 중국 수 나라에서 공부를 하고 귀국한 뒤에 귀산과 추항이란 사람의 방문을 받습니다. 두 사람은 圓光에게 화랑도로서 종신토록 지킬 계명을 지어달라고 말합니다. 원광법사가 지어준 세속5계는 이러했습니다.
첫째, 事君以忠, 즉 임금을 섬기되 충성으로써 하고, 둘째, 事親以孝, 즉 어버이를 섬기되 효도로써 할 것이며, 셋째, 交友以身, 즉 벗을 사귐에 있어서는 신의 있게 하고, 넷째, 臨戰無退, 즉 전쟁터에 나가서는 물러남이 없어야 한다, 다섯째, 殺生有擇, 즉 죽임은 잘 분간해서 하여야 한다.
이 계명을 받은 귀산과 추항은 그 2년 뒤인 서기 602년에 아막성 싸움에서 포위공격을 받았는데 이때 원광법사의 이 세속5계명을 떠올렸습니다. 두 청년은『내가 일찍이 스승에게 들으니 무사는 싸움터에서 물러서지 않는다고 하였다. 어찌 감히 달아날까 보냐』 라고 외치면서 싸우다가 전사했다고 합니다.
圓光의 이 가르침은 말장난이 아니라 바로 신라화랑의 좌우명이요 행동철학이 되었던 것입니다. 김충렬 교수는 세속5계를 이렇게 평했습니다.
<생각컨대 원광법사의 세속5계는 불교의 수렁에 빠지지 않고 유교에 치우치지도 않고 오로지 국가의 현실에 입각하여 그 견지에서 시대에 적합하기도 하고 필요한 도를 설파했다. 身命(신명)을 가볍게 여긴 점이 신라인의 정신생활상의 특징이다. 이런 특색은 후세의 조선인 사이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다>
만약 신라 화랑도가 조선조 선비들의 생활태도를 보았다면 경멸해마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활쏘기 등 군사기술을 연마하는 것은 선비들이 할 짓이 아니라 하고 경제나 과학기술에 대해서도 무지하고 오로지 낡아빠진 고전을 달달 외는 것을 지식인의 자격요건이라고 생각하여 독서에만 전념하다가 보니까 실천력이란 도무지 없는 화성인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선비집단, 입만 크게 달려 있고 팔다리가 없는 가분수 같은 선비집단, 이들이 끌고 가는 조선왕조의 운명에 대해서 신라인들은 기가 막힌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우리나라의 기풍이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한탄했을 것입니다.
이종학 선생은 화랑5계는 오늘날 우리가 생활신조로 채택해 써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행동철학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런 식으로 화랑의 세속5계를 현대적으로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첫째,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 둘째, 부모를 효도로써 섬긴다. 셋째, 벗과 이웃에게 믿음으로 사귄다. 넷째, 전쟁터에서는 물러서지 않는다. 다섯째, 자원을 보호한다.
원광법사가 지은 화랑오계중 가장 의미가 심장한 것이 殺生有擇이란 말입니다. 전쟁에 나가서 사람을 죽이지 않을 수 없을 경우에라도 가려서 죽이고 죽임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원광법사는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승려였습니다. 그러나 불교의 교리를 고집만 하기에는 당시 신라가 처한 상황은 너무나 각박하고 살벌했습니다. 불교에 충실하여 젊은이들에게 살생하지 말라는 교리를 가르치다가는 신라를 망치는 결과를 빗고 말 것입니다.
요사이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조건적인 평화주의자, 즉 위선적 도덕론자였다면 아마도 조국이야 어찌 되건말건 살생을 금한다고 가르쳤을 것입니다. 원광법사는 殺生有擇이란 말로써 불교와 현실을 절묘하게 타협시켰습니다. 중용지도의 균형을 취한 것입니다. 불교신도로서의 고민과 신라인으로서의 의무감을 담고 있는 殺生有擇이란 말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자원을 보호한다라고 한 것도 재미있는 발상일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은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의 공통 서식처입니다. 인간만이 독점하고 독식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인간과 짐승과 새들과 꽃들이 다 같이 공유하고 공생하며 함께 이용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殺生有擇의 개념을 인간에서 동물계 더 나아가서 생명체 전부에게로 확대한다면 그것은 훌륭한 환경운동의 이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화랑의 세속5계를 읽어보면 불교적인 것도 있고 유교적인 것도 있으면서도 불교도 유교도 아닌 그 무엇이 있습니다. 이 그 무엇이 무엇인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라적인 것입니다. 불교와 유교는 당시 동아시아에서는 가장 선진된 이념이었습니다. 요사이 민주주의와 시장원리가 이 세계의 지도이념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신라인들은 불교와 유교를 무조건적으로 추종하지는 않았습니다.
불교와 유교를 받아들이되 新羅라는 현실에 맞게끔 응용했습니다. 殺生有擇이란 말이 그런 응용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당시의 先進이념이고 제도인 중국의 불교와 유교를 자주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이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와 구별되는 점인 것입니다. 불교가 한반도로 들어올 때 백제와 고구려에서는 저항이 없었습니다. 신라에서는 저항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법흥왕의 아들 이차돈이 순교합니다. 이차돈의 순교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면 신라가 불교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지 않고서 신라의 현실에 맞게끔 받아들일 것과 거부할 것을 가려내려는 노력을 했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가 해방되고 나서 미군을 통해서 민주주의가 들어왔습니다. 헌법을 만들 때 민주주의를 우리의 지도이념으로 받들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논리에 대한 저항이 있었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은 미국식 민주주의란 나무를 그냥 그대로 정치토양이 다른 우리나라에 옮겨다 심는 것은 사대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한국식으로 응용해야 한다면서 한국적 민주주의란 말을 발명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김대중 김영삼으로 대표되는 세력은 미국식 민주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면서 박정희의 한국적 민주주의를, 독재를 위한 변명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김대중 김영삼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민주화세력을 사대주의자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런 갈등과정을 통해서 민주주의가 우리나라에서 정착되고 있습니다. 이런 갈등은 무조건 서구식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훨씬 건강한 모습일 것입니다. 이런 갈등을 거쳐야 서구식 민주주의의 어떤 점이 우리나라에 맞지 않고 어떤 점이 맞다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김영삼 김대중 두 사람이 우리나라 민주화에 가장 큰 공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이승만 박정희 두 사람의 공이 더 크다는 평가가 나올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무조건 받아들이자는 사람과 따지고 가려서 받아들이자는 사람 사이엔 엄청난 철학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1998년 봄 미국의 시사 잡지 타임이 김대중 대통령을 표지기사로 실었을 때 그 다음 호에서 뉴델리에 산다는 라마나탄이란 독자가 이런 투고를 한 것이 실렸습니다. 제가 한번 그 독자투고 내용을 읽어보겠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는 민주주의를 방해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군사독재를 부추겼던 미국은 지금도 그런 영향력을 아시아에서 행사하고 있다.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강요하는 수단으로서 인권과 민주주의란 개념이 어떻게 이용되어왔는지를 보여주는 보기이다. 大英帝國은 기독교라든지 백인의 임무란 말을 이용하여 제국주의를 정당화했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정부형태로서 선호하는 제도인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한때는 권력의 종교였다>
이 인도인은 민주주의나 인권이란 것이 미국에 의해서 미국의 국익을 증진시키는 수단으로 선별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소위 민주화세력이 민주주의를 외친 사람들은 분명하지만 이 사람들이 진정한 민주주의 실천가들인가 하는 의문은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외친 인권이란 것도 결국은 자기편의 인권보호를 의미하는 것이지 상대방의 인권이나, 북한주민들의 인권까지 고려해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의심이 드는 행동들이 많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선동에 놀아나서 대한민국을 파괴하기로 맹세했던 사람들을 양심수라고 주장하면서 그들의 인권을 위해서 그토록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들은 북한이 아직도 억류하고 있는 국군포로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말하는 인권이란 것도 결국은 자신들의 행패를 보장하고 부정부패를 허용하는 인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서라벌의 벌판을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세워진 이 統一殿은 1977년에 박정희 정부가 신라의 통일의지를 남북통일의 이념으로 승화시켜보자는 뜻에서 만들었습니다. 위치도 좋고 건물도 아름답게 지었지만 건립목적과는 다소 거리가 먼 관리 상태였습니다. 묵념하는 촛대에는 불꽃이 꺼져 있었고 향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삼국통일을 기록한 그림은 벽에 걸려 있었지만 유리에 반사되어 들여다보기가 어려웠고 그림도 성의를 다한 것이란 느낌이 들지 않아 도무지 감동이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이 통일전에 세워진 삼국통일기념비문을 읽어보았습니다. 노산 이은상 선생이 짓고 김충현씨가 쓴 글이었습니다.
<우리 손으로 이 거룩한 민족과업을 못이룬다면 저 뒷날 역사가 물을 적에 무슨 말로 대답할 것이냐. 온갖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고 국민전체가 일치단결하여 다시금 통일의욕에 불을 붙이자, 통일을 향해서 전진하자>
이 통일전에는 김유신, 문무왕, 태종무열왕의 사적비가 서 있습니다. 김유신의 계급은 태대각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太大角干이란 말은 아주 재미 있는 단어입니다. 크다는 뜻을 가진 글자가 세 개나 있습니다. 태 대 간, 이 세 한자는 다 크다는 뜻입니다. 간은 몽골 - 투르크 유목민들이 쓰는 칸, 즉 징기스칸의 칸을 한자로 표기한 것인데 크다는 의미, 또는 왕이라는 뜻입니다. 신라에 태대각간이란 관직이 있었고 마립간이란 명칭도 있었습니다. 마립간은 왕을 가리켰습니다. 한자가 들어오기 전에는 왕이라 하지 않고 임금을 麻立干이라 불렀습니다. 麻立干의 干도 징기스칸의 칸처럼 왕이나 크다는 뜻입니다. 太大角干이나 麻立干이란 말은 신라의 지배층이 몽골지방에 살다가 한반도로 내려온 기마민족 출신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신라 지배층은 북방 기마민족이었고, 이들의 후손은 화랑도처럼 이념으로 무장된 동양 최초의 무사집단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신라통일의 한 비결인 기마민족의 상무정신과 가치관을 분석해보면 통일의 원동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2003-04-29, 12:34 ]
自主라는 말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하여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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