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선조들이 위선적 평화를 거부하고 정의로운 전쟁을 선택했다.
1. 한민족과 대한민국은 우리의 위대한 선배들이 전쟁과 평화의 기로에서 전쟁을 선택했기 때문에 생존하고 있다.
2. 서기 668년 신라와 당이 평양을 함락시켜 삼국통일이 완성된 것처럼 보였을 때 당은 야욕을 드러내 평양에 안동도호부라는 한반도 통치 사령부를 설치하고 백제땅과 문무왕의 신라를 속국으로 삼아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고 했다. 신라 지도부는 唐의 이 정책에 순응하면 평화를 구가하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음을 알았지만 이 유혹을 물리치고 對唐 결전을 선택한다. 670년까지 계속된 전쟁에서 신라군이 승리하여 당은 평양에서 철수하고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이 완성된 것이다. 만약 신라가 전쟁이 두려워 평화를 선택했다면 민족통일국가를 세우지 못한 한민족은 중국인에 동화되어 지금은 중국인이 되어 살고 있을 것이다.
3. 서기 1592년 왜병이 부산항에 상륙하면서 쳐들어왔을 때 그들은 明으로 가는 길을 빌리려 한다면서 협조를 당부했다. 조선은 이 요구를 묵살하고 결사항전을 선택하였다. 이때 만약 왜병의 요구에 굴복했다면 평화는 얻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일본의 한 부속지역이 되어 지금은 일본말을 쓰는 일본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4. 1950년6월25일 김일성이 압도적 무력으로써 기습해왔을 때 중과부적의 우리 국군은 후퇴하면서도 굴복하지 않았다. 이때 국군이 평화를 위해서 항전을 포기했더라면 우리는 지금 김정일 치하에서 맞아죽고 굶어죽으면서 전쟁보다 못한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촛불 시위도 못하고 계란을 던질 자유도 박탈당하고서 말이다.
5. 이상의 역사적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정의로운 전쟁은 비겁한 평화보다 낫다. 정의로운 전쟁은 항구적 평화를 보장하고 비겁한 평화는 전쟁상태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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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적 정권교체의 어려움
한 국가가 민주주의인가 독재인가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선거를 통해서 평화적 정권교체를 하고 있는가의 여부이다. 평화적 정권교체의 역사가 그 나라의 민주주의 성숙도 지표이다.
유럽에선 영국이 1688년의 명예혁명을 통해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을 확립했다. 미국은 1776년 건국시부터 이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프랑스는 1871년 普佛전쟁에 져서 나폴레옹 3세 황제가 쫓겨난 뒤 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정권교체기에 들어갔다.
독일과 일본은 1945년 패전 이후부터 선거를 통한 권력교체가 가능한 나라가 되었다. 스페인은 철권통치자 프랑코가 죽은 2년 뒤인 1977년부터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舊소련과 동구권 나라들은 1989년경부터 이 시기로 들어갔다. 필리핀은 1986년 마르코스 추방 이후 그렇게 되었으나 아직도 불안해보인다.
한국은 1988년 全斗煥 퇴임으로부터 이 전통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놓고본다면 민주주의의 발달사는 길지만 의외로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은 길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민주화의 과정에서 평화적 정권교체는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가능해진다는 의미이다. 17년밖에 되지 않는 한국의 평화적 정권교체 역사는, 민주주의의 기반이 충분히 다져졌다고 볼 수 없는 조건에서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주기도 한다. 북한과 중국은 아직도 정권교체의 꿈도 꿀 수 없는 곳이다.
정권교체는 옛날엔 전쟁이나 암살, 쿠데타를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 정상이었다. 민주주의 시대엔 선거가 전쟁을 통해서 했던 일을 대신한다. 그만큼 선거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아직 17년밖에 되지 않은 정권교체의 전통을 국민 모두가 소중히 가꿔나가야겠다. 동시에 全斗煥 정권이 만든 이 평화적 정권교체의 선례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 2005-08-06, 01: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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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목표는 '평화통일'이 아니다
평화중에는 독재자를 위한 평화, 즉 공동묘지의 평화나 기만을 통한 赤化통일도 있기 때문이다
<제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통일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이며 이를 평화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가 목표로 삼는 통일은 자유통일이지 평화통일이 아니다. 평화통일이란 말에는 목표가 들어 있지 않다. 우리는 평화를 통일정책의 수단으로 삼을 수는 있지만 목표로 설정할 수는 없다. 평화중에는 독재자를 위한 평화, 즉 공동묘지의 평화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은 독재자에겐 평화이고 주민들에겐 전쟁보다도 더 심한 억압과 학살이 일상이 된 非평화이다.
전쟁을 수단으로 삼지 않고 기만을 통한 평화적 적화통일도 가능하기 때문에 평화통일은 우리가 지향하는 통일이 아니다. 우리 헌법은 '평화적 자유통일'을 규정하고 있다. 북한까지 자유화하여 한반도 전체를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만들되 전쟁은 피하라는 명령이다. 따라서 '우리의 통일은 뭐냐?'라고 물을 때는 '자유통일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맞다.
[ 2006-06-17, 06: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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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보다 못한 평화
평화지상주의, 통일지상주의--그 가공할 실체!
최성재
전쟁보다 못한 평화
북한주민의 한결같은 바람은 전쟁이다. 굶어 죽고 맞아 죽고 시달려 죽는 게 일상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육이오 동란으로 죽은 사람이 중공군 100만, 남한 사람 100만, 북한 사람 100만,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이 5만, 이렇게 약 300만인데, 북한 땅에서만 이미 굶어 죽은 사람이 300만이요, 맞아 죽고 시달려 죽은 사람이 100만이다. 2차대전 때보다 많은 화약을 쏟아 부었던 동족상잔이란 미증유의 전쟁 상황에서도 북한 주민이 100만 죽었을 따름인데, 외국 군대가 단 한 명도 쳐들어오지 않은 평화시에 400만이 같은 민족의 탈을 쓴 자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학살당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조선시대보다 훨씬 못한 것이 그 숱하던 민란조차 일으킬 수 없다. 두세 명이 모여서 쑥덕거려도 즉시 잡혀가니까! 일제시대보다 훨씬 못한 것이 그 때는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는 것은 자유였지만, 노동자농민의 '지상낙원'에서는 그 두 강을 넘는 것이 곧 민족반역행위가 되어 말 그대로 목숨을 걸어야 한다. 아마 일제시대 정도의 자유만 있어도 한 달 안에 2천만이 두 강을 건널 것이다.
평화의 깃발 아래에서, 내정불간섭의 철조망 안에서 김씨공산왕조는 노동자든 농민이든 부르주아든 지식인이든 물증은커녕 심증만으로 다름 아닌 동족을 무장해제 시켜 놓고 400만을 죽였다. 김일성의 두 선구자 스탈린과 모택동을 능가했다. 인구 대비로 보면, 김일성과 김정일이 훨씬 많이 죽인 것이다. 김일성의 애걸복걸로 일으킨 전쟁으로 북한주민은 이미 100만이 죽었다. 전쟁으로 100만, 평화로 400만, 북한주민만 도합 500만이 학살당했다.
김대중 정부 이래로 이런 김일성 부자가 민족공조란 허울을 덮어쓰고 평화의 사도로 행세하고 있다. 가당찮게도 미래의 민족대학살을 예방하는 가장 강력한 억지력인 주한미군의 우두머리 부시는 전쟁광으로 낙인 찍혔다. 미군만 철수하면 평화는 절로 오는 것처럼 지난 10년간 김정일과 김대중과 노무현은 음으로 양으로 한국의 여론을 주도했다.
6.15공동선언에 입각하여 미군을 몰아내거나 차선책으로 군사작전권을 빼앗아 주한미군을 '열중쉬어' 시켜 놓고 평화적으로 자주적으로 연방제로 통일되면, 김정일이 휴전선의 북쪽에 큼직하게 쓰인 대로 통일대통령이 되어 무장해제된 남한의 동족을 상대로 본격적인 민족대학살에 들어갈 것이다. 실은 스스로 청와대, 정부, 국회, 법원, 경찰, 군대, 노조, 한총련, 공기업 등 가진 것이 더 많으면서 재벌(노조가 사실상 장악)과 버블 세븐(친여 고위관료와 노동귀족 등 친북좌파가 득실거림) 등 실체가 애매모호한 부르주아에 대한 친북좌파의 사무친 증오심을 미루어 보아, 김정일의 4백만 학살을 미루어 보아, 자주평화통일된 새 정부는 김정일의 손가락 움직임에 맞춰 북한에서처럼 인구의 4분의 1 곧 1천만 이상을 학살할 것이다.
평화지상주의, 통일지상주의--그 실체는 이렇게 가공스럽다.
(2007.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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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냐, 평화냐에 대한 반대 질문
적대감과 우호감. 노무현 대통령의 지난 두 달 동안의 언행은 이 두 말로 분류된다. 그가 우호감을 표시하는 상대는 누구인가. 고영구, 서동만, 한총련, 전교조, 노조, 안티 조선, 네티즌. 어용 또는 친북 언론. 그가 적대감을 표시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反김정일 세력, 反核세력, 한국의 주류층, 조선일보, 한나라당, 국회.
대충 분류하면 대한민국의 가치관과 헌법을 수호하자는 세력에겐 적대적이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김정일에게 호의적인 세력에겐 우호적이다. 그는 대한민국의 건국을 분열정권의 수립이라고 해석한 사람이다. 대한민국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발언을 한 적도 있다.
어제 밤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그가 보인 조선일보에 대한 적대감과 한총련에 대한 호의는 盧대통령의 이념 성향을 단적으로 설명한다. 이 두 관점을 연장하면 대한민국적인 것에 대한 적대감과 反대한민국적인 것에 대한 호의 내지 이해로 이어진다.
그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김정일의 핵개발에 대해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을 전쟁론자로 몰았다. 김정일의 핵개발에 대해 굴종적으로 대하려는 세력을 평화주의자로 추켜세웠다. 전쟁이냐, 평화냐란 대담한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이제 우리는 이런 반문을 던질 권리를 가진다.
노무현 대통령은 애국이냐 반역이냐! 대한민국에는 좌도 우도 없다. 보수도 진보도 없다. 반역이냐 애국이냐가 있을 뿐이다. 여기엔 중립과 방관이 허용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편에 서면 애국이요 김정일과 친북세력 편에 서면 반역이다.
[ 2003-05-02, 1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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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개혁세력으로 위장한 전쟁守舊 집단
정동영, 김근태가 만들겠다는 정당의 정체는?
노무현의 擧手機 역할에 충실했던 열린당의 정동영, 김근태 두 전현직 의장이 오늘 만나 소위 '평화개혁세력과 미래 세력의 대통합을 결의함과 동시에,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각계 각층의 양심있는 인사들과 함께 준비 작업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정동영, 김근태 두 사람은 경쟁적으로 김정일 정권에 굴종, 아부하고 이 反국가단체의 미사일 도발과 핵실험을 감쌌던 사람이다. 그리하여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그런 이들이 말하는 평화란 무엇인가? 戰犯인 김정일이 장기집권하면서 비무장한 주민들을 향해서 전쟁을 펼쳐 굶겨죽이고 때려죽일 수 있게 하는 자유를 주겠다는 것, 즉 공동묘지의 평화가 아닌가.
그들이 말하는 개혁은 뭔가? 4년간 세금을 낭비하여 국가부채를 두 배로 늘린 무능집단이 말하는 개혁은 뭔가? 정동영씨는 작년 통일부 장관 때 對北송전 200만 kw를 약속했던 이다. 10년간 25조원이 들어가는 공짜 電力을 미쳤다고 김정일 정권에 공급한단 말인가. 그것도 국민과 국회의 동의도 받지 않고 독단으로 결정했다. 25조이면 건축비 1억이 드는 근사한 집을 25만 채 지을 수 있는 돈이다. 즉 약70만 명의 무주택자를 도울 수 있는 돈이다. 이 국민 돈을 멋대로 학살자에게 주겠다는 발상을 할 수 있는 공직자는 독재자이든지 반역자이든지 정신이상자이다.
미국 일본과 공조했더라면 해결했을 북한 핵문제를 소위 민족공조 노선으로 대응하다가 핵무장을 허용하고만 무능하고 반역적인 열린당이 말하는 개혁은 변혁이나 혁명이 아닌가? 그들의 개혁은 적화혁명노선에 동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열린당이 위장폐업과 신장개업을 제대로 하려면 그 속에 있는, 전향한 증거가 없는 386 극좌파 김정일 추종세력을 추방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그 세력이 주동하여 만드는 신장개업 정당은 개혁정당이 아니라 守舊좌파 정당일 뿐이다. 따라서 정동영-김근태가 만들겠다는 정당은 평화개혁세력으로 위장한 전쟁守舊세력의 집합체가 될 것이다.
그 증거가 있다. 정동영씨는 작년 북한정권의 對南사업 담당자를 만났을 때 '우리는 동지'라고 했던 사람이다. 동지는 뜻을 같이한다는 의미이다. 북한정권과 뜻을 같이 한다는 것은 對南적화에 동조한다는 뜻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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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한 '평화의 댐' 관광
국내 최고 높이 125m의 거대한 댐이 단풍으로 물든 한국판 그랜드 캐년을 가로막고 있었다.
趙甲濟
강연을 하기 위해 지방을 찾는 회수가 늘었다. 나로선 목표지를 오고가면서 國土를 감상하는 기회이다. 최근 석 달 사이 충북 단양, 강원 속초, 경북 청송, 강원 양구군을 다녀왔다. 지방으로 나가면 대한민국의 저력과 발전상을 더 실감할 수 있다. 우선 도로망이 대단하다. 고속도로도 직선으로 뻗어 있는 구간이 길고 터널도 많은 데 4, 5km짜리도 있다. 한적한 고속화 도로를 달리다가 보면 굳이 이렇게 투자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요사이 농촌은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중이다. 아기울음과 어린이들의 노는 소리도 끊어진 지 오래이다. 모처럼 아기가 태어난 마을은 경사난 듯하다고 한다. 작은 교회에 아기가 엄마 품에 안긴 채 나타나면 교인들이 몰려들어 아기 구경으로 법석이란 것이다. 농촌에선 아기들이 그야말로 희귀동물이 되었다.
농촌의 자동차 보유대수는 가구당 1.3~1.5대이다. 자가용이 없으면 농촌생활은 불가능하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가는데 걸어서 가야 하니까.
농촌마다 인구가 줄어도 공무원수는 줄지 않는다. 인구가 약 2만 명으로 울릉도를 제외하면 전국에서 가장 작은 楊口郡의 군청공무원은 약 400명, 경찰서 직원들은 약 200명이다. 농촌일수록 행정서비스가 좋다.
농촌마다 회관이 많고 시설도 좋다. 郡단위로 주민들을 상대로 '郡民대학' 같은 것을 열고 서울에서 좋은 강사들을 초빙하여 듣는다. 여기 모인 분들의 옷차림, 질문수준, 청강태도는 서울과 다름 없다. 중앙과 지방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며칠 전 楊口에 가서 민족통일협의회 주최의 강연회에 참석했다가 오는 길에 평화의 댐에 들렀다.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에 있는 북한강 상류 계곡을 막은 이 댐은 보는 이의 숨이 막힐 정도로 거대하다. 댐의 높이가 125m로서 국내에서 가장 높다. 댐의 길이는 601m. 최고 저수량은 26억3000만t이다. 이 평화의 댐 상류 36km 지점에 북한이 지은 금강산댐(임남댐)의 최고 저수량은 26억2000만t이다. 북한의 금강산댐이 무너지더라도 평화의 댐만으로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평화의 댐은 사연이 길다. 全斗煥 정권이 북한 금강산댐 水攻위협을 과장했다는 이야기를 지금까지도 듣고 있다. 평화의 댐 현장에서 알아본 바로는 이는 사실이 아니다. 全斗煥 정권은 할 일을 했다. 金大中 정부가 2002년 평화의 댐 확장, 증설 공사를 시작함으로써 그 점을 인정했다.
1986년 10월21일 북한은 금강산발전소 착공을 발표했다. 한 달 뒤 全斗煥 정부는 북한의 水攻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평화의 댐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1987년2월28일 1단계 공사를 시작하여 1989년 5월27일 높이 80m의 댐을 완공했다. 북한은 1992년 1월26일에 상류 가물막이 공사를 끝냈고, 1999년에 본댐 공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북한은 임남댐(금강산댐) 1단계 공사를 2000년 10월에 완공했다. 댐의 높이 88m였다.
북한측은 본댐 공사를 계속했는데 우리 정보기관은 공사가 아주 부실하여 무너질 위험이 있다는 판단을 했다. 2002년 1월엔 댐에서 훼손부위가 발견되었다. 김대중 정부는 2002년 9월3일 평화의 댐을 확장하기로 하고 2단계 공사에 착수했다. 북한측 임남댐은 2003년 12월에 완공되었다. 댐 높이는 121.5m이다. 평화의 댐 2차 공사는 올해 6월15일에 준공되었다. 이젠 금강산댐이 무너져도 우리는 발을 뻗고 잘 수 있게 되었다. 평화의 댐 공사에 지금까지 약 4000억원이 들었다. 역시 국방엔 돈이 들어간다.
이런 경과를 보면 全斗煥 정부가 북한의 水攻위협을 과장하여 짓지 않아도 될 평화의 댐을 지었다는 모함은 헛소리임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초기 대응이 부족하여 김대중 정부 시절 댐의 높이를 45m나 더 높여야 했을 정도이다. 요사이도 좌익들과 일부 어용언론은 全斗煥 정부가 금강산댐이 터지면 여의도의 63빌딩이 물에 잠긴다는 과장을 했다고 비판하면서 평화의 댐을 짓지 말았어야 했을 댐으로 비하하곤 한다. 사소한 문제점을 트집잡아 본질을 부정하려는 선동이다.
평화의 댐은 콘크리트 피라미드를 연상시킨다. 크기는 피라미드 두 개를 붙여놓은 규모이다. 협곡을 차단한 댐이라서 더 장대하게 보인다. 주변의 산들은 단풍으로 물들었고 깊은 계곡의 맑은 물은 '아, 이곳이 한국의 그랜드 캐년이구나'하는 탄성이 나오게 했다. 서울에서 평화의 댐까지는 약3시간 30분 걸린다. 하루를 시간 내어서 이곳에 도착한 뒤 주위를 느긋하게 즐기다가 돌아가면 좋은 안보관광이다. 이곳은 한국에서 가장 깊은 산골이다. 도로는 잘 닦여 있다. 지난 10월 초의 폭우로 산사태가 난 곳이 몇 군데 있으나 막힌 곳은 없었다.
이 깊은 산과 계곡이 품은 물이 춘천방향으로 흘러내리면서 화천댐, 소양강 댐, 청평 댐, 팔당 댐을 거쳐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으로 커지는 것이다. 이 산악지대는 한강의 水源이자 2000만 수도권의 배후지이다. 이 산들이 없으면 2000만 명이 마음껏 마실 수 있는 물은 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夕陽 때 화천군의 해산(日山)전망대에 서 보았다. 해산은 1190m 산이다. 주위의 깊은 계곡에서는 물소리가 들렸다. 滿山紅葉(만산홍엽)이었다. 화천군에서 관리하는 전망대는 쓰레기 투기장으로 변해 있었다.
양구에서 화천을 거쳐 춘천-서울로 돌아올 땐 밤이었다. 여러 호반을 지나왔다. 전깃불에 비친 호수의 물빛은 항구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렇게 근사한 대한민국을 공짜로 먹어치우려는 자들이 청와대와 주석궁에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한국수자원공사가 관리하는 평화의 댐 사무소는 033-480-1532, http://pyeonghwa.kwater.or.k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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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통일조항: '평화는 수단, 목표는 자유'
평화적 방법으로 자유통일을 이루라는 명령이다. 따라서 평화통일은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趙甲濟
<헌법 제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통일의 이념과 철학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것'이라여 하며 통일은 그 바탕에서 평화적 정책으로 이룩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목표는 자유통일이고 수단은 평화적 정책이다. 따라서 우리의 목표는 평화통일이 아니다. 남북한이 같이 쓰는 평화통일이란 말에는 가치관도 목표도 들어 있지 않다. 우리는 평화를 통일정책의 수단으로 삼을 수는 있지만 목표로 설정할 수는 없다. 평화중에는 독재자를 위한 평화, 즉 공동묘지의 평화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은 독재자에겐 평화이고 주민들에겐 전쟁보다도 더 심한 억압과 학살이 일상이 된 非평화이다.
전쟁을 수단으로 삼지 않고 기만을 통한 평화적 赤化통일도 가능하기 때문에 평화통일은 우리가 지향하는 통일이 아니다. 우리 헌법은 '평화적 자유통일'을 규정하고 있다. 북한까지 자유화하여 한반도 전체를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만들되 전쟁은 피하라는 명령이다. 따라서 '우리의 통일은 뭐냐?'라고 물을 때는 '자유통일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맞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평화보다 더 높은 가치는 없다는 무식한 말을 했다. 이런 평화至上주의는 반드시 좌익들의 선동에 넘어간다.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좌경화된 인간이란 고백이다. 자유는 평화보다 우선하는 개념이다. 자유 없는 평화는 독재자의 평화이다. 평화는 독재자의 밥이지만 자유는 독재자의 毒이다. 신라는 전쟁이냐, 평화냐의 기로에서 唐과의 전쟁을 선택했기 때문에 민족통일국가를 만들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6.25 남침시 자유를 위한 전쟁이냐, 굴욕적 평화냐의 기로에서 전쟁을 선택했기 때문에 자유와 평화를 지켜낼 수 있었다. 평화는 자동적으로 자유를 보장해주지 않으나 자유는 자동적으로 평화를 낳는다. 자유나 正義는 보통 평화보더 우선하는 가치이다.
[ 2006-11-03, 2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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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의 평화보다는 正義의 전쟁을!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명연설
趙甲濟
「역사에 남은 위대한 연설들」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미국 신문 뉴욕 타임스의 컬럼니스트인 윌리엄 새파이어란 분이 편집하고 해설한 책입니다. 이 책에 실려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연설입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1858년, 링컨이 남북전쟁을 결심하기 3년 전 뉴욕의 부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하버드 대학을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습니다. 루스벨트는 몸이 허약했습니다. 시력도 나빴습니다. 그는 이런 신체적 악조건을 순전히 의지력으로 극복하였습니다. 그래서 권투선수가 되었고 레슬링도 했으며 사냥꾼, 등산가, 鳥類관찰자, 탐험가를 겸하였습니다. 그는 항상 「스트레뉴어스 라이프(Strenuous Life)」, 즉 과감하게 도전하는 긴장된 생활의 미덕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또 역사학자였고, 수필가였으며 도덕론자였습니다.
그가 스물여섯 살 되었을 때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마흔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그의 어머니가 죽은 바로 그 집에서 10시간 뒤 이번엔 스물두살 되는 아내가 첫 아이를 낳다가 루스벨트의 품에 안겨서 숨을 거둔 것입니다. 그는 이날 일기장에 십자가를 그려놓고 이렇게 써놓았다고 합니다. 「나의 삶으로부터 빛이 사라졌다」. 그는 이 슬픔을 잊기 위해서 뉴욕의 도시생활에서 벗어나고싶었습니다. 서부로 옮겨갔습니다. 다코타 주에서 목장을 차리고 카우보이가 되었습니다. 무법자들과 싸우고 사냥을 하고다니면서 그는 자연속의 생활을 즐겼습니다.
그는 밤에는 등잔 아래서 톨스토이를 읽었습니다. 심신을 새롭게 한 루스벨트는 뉴욕으로 돌아와서 시장에 출마했다가 낙선했습니다. 그는 뉴욕 경찰청장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검은 코트를 입고 창이 넓은 모자를 쓰고는 한밤중에 혼자서 순찰을 하곤 했습니다. 졸고 있는 경찰관을 발견하면 몽둥이로 사정없이 갈겼다고 합니다. 그는 1897년 서른 아홉 살에 해군성 차관보가 되었습니다. 미국과 스페인 사이에서 전쟁이 터졌습니다.
그는 「러프 라이더」라는 별명이 붙은 자원병들을 모집하여 쿠바에 상륙, 명성을 떨쳤습니다. 실제로는 전쟁에 크게 기여하지는 않았지만 언론에 잘 보도되는 바람에 루스벨트는 뉴욕지사 선거에서 무난하게 당선되었습니다. 1900년 대통령 선거에서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 맥킨리의 런닝 메이트가 되어 부통령 후보로 입후보하여 당선되었습니다. 1년 뒤 맥킨리 대통령이 암살되자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마흔 세 살에 대통령직을 인수하였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그 60년 뒤에 등장할 때까지는 최연소 대통령이란 기록을 세운 것입니다.
루스벨트는 대중적인 인기가 높았습니다. 아마도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 중 대중으로부터 가장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는 「미스터 임페리얼리즘」, 즉 「미스터 제국주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미국사람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는 또 환경보호운동에도 앞장을 서 국립공원 제도를 창안했습니다. 그는 두 번 대통령직을 수행한 다음 은퇴했다가 세번째로 출마하여 민주당의 위드로 윌슨에게 패배하였습니다. 이 선거운동기간중 그는 권총저격을 받았는데 총알이 가슴에 박힌 상태에서도 연설을 강행하고나서 수술을 받아 생명을 구했습니다.
이런 루스벨트가 남긴 유명한 연설 중에서 1899년에 한 것이 있습니다. 뉴욕주지사 선거에 나오기 전의 연설인데 「치욕스러운 평화보다는 고통스러운 투쟁」을 선택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평화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다'고 말했지만 루스벨트는 正義 있는 평화라야 진정한 평화라고 역설합니다. 이 연설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연설중에 들어갑니다. 중요 대목을 뽑아보았습니다.
<실패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성공해보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은 실패보다도 더 치욕적인 것입니다(It is hard to fail, but it is worse never to have tried to succeed). 최근의 분석에 의하면 국가는 그 구성원들이 깨끗하고 활력있고 건강한 생활을 할 때만이 건전한 국가로 존립할 수가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난관을 피하지 않고 그것을 돌파하도록 훈련되어야 합니다.
어린이들은 안락을 추구하는 것을 경멸하고 땀을 흘리고 모험을 감행하는 데서 승리의 도취감을 맛보도록 훈련받아야 합니다. 남자들은 사나이들의 일을 기꺼이 감당하고 노동하고 인내하여야 합니다. 남자들은 자신을 지켜내고 자신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여자들은 가정을 가꾸는 데 있어서 남편의 충실한 배우자가 되어 어린이들을 건강하게 키우는 현명하고 대담한 주부가 되어야 합니다. 남자가 일을 기피하고 정당한 전쟁을 두려워하고 여자가 어머니됨을 싫어하는 나라는 속깊이 병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나라는 차라리 사라지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런 국민들은 강하고 용감하고 氣槪가 높은 사람들의 경멸을 받아 마땅합니다. 가끔 실패를 하더라도 영광된 승리와 위대한 성취를 하는 것이, 고통도 별로 받지 않고 성취도 별로 할 줄 모르는 불쌍한 인간들보다는 낫습니다. 만약 1861년에 미합중국을 사랑한 사람들이 평화가 至高至善의 가치이고 전쟁은 萬惡의 근원이라고 믿었다면 그리하여 그 믿음대로 행동하였더라면 우리는 수십만의 생명과 수억 달러의 재산을 소모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아끼던 재산과 핏줄을 잃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수많은 여인들의 斷腸의 슬픔과 수많은 가정의 해체도 예방할 수 있었으며 우리 군대가 패전을 거듭할 때 겪었던 그 고통과 치욕의 세월들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고통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 투쟁을 두려워하여 위축되어버림으로써 우리는 그 고통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런 고통을 피하는 데 성공하였더라면 우리는 우리가 허약한 비겁자들이라는 것을 만방에 보여주었을 것이고 우리 나라는 세계 강대국의 반열에 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폭로하였을 것입니다.
나는 우리 아버지 세대들의 핏속을 흘렀던 강철과 같은 투지에 감사합니다. 링컨의 지혜를 지지하고 그란트 장군의 군대에 들어가 총칼을 들었던 아버지들에게 감사합니다. 위대한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세대의 후손들이여, 치욕적인 평화를 거부하고 암흑같은 슬픔과 고통스러운 인명과 재산의 손실을 정면으로 받아넘긴 우리 선조들의 하느님을 찬양합시다. 왜냐 하면 결국 노예들은 해방되었고 미합중국은 복구되었으며 아메리카는 수많은 나라들 가운데서 투구를 쓴 여왕으로서 다시 빛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국민 여러분들에게 말하고싶습니다. 우리의 조국은 여러분으로부터 안락한 생활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조국은 여러분으로부터 불굴의 연마와 단련을 요구합니다. 20세기는 수많은 국가들의 운명과 함께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가 한가하게 구경만 하고 있다면, 우리가 굼벵이처럼 안락함과 치욕스런 평화만 추구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국민들의 생명과 소중한 것들을 바쳐서 이겨내야 하는 저 경쟁을 회피한다면 과감하고 강인한 다른 나라 국민들은 우리를 추월하여 이 세계를 제패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이 생존경쟁을 용감하게 직시합시다.
우리의 의무를 사나이답게 완수할 수 있도록 맹세합시다. 솔선수범으로써 우리의 善과 正義를 지켜갑시다. 용감하고 정직하게 이상을 구현하기를 맹세합시다. 동시에 우리는 실용적인 방법을 채택하여야 한다는 것을 잊어선 안되겠습니다. 투쟁이 정당하다는 확신을 가진다면 우리는 국내외의 어떤 투쟁으로부터도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겁을 집어먹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위대한 국가를 건설하는 길은 이런 투쟁과 고통스럽고 위험한 시련을 통과해야 된다는 걸 명심합시다>
[ 2003-01-23, 22:19 ] 조회수 : 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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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위에 자유와 正義가 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요 선동이요 말장난인 盧씨가 또 천금같은 말을 해야 할 자리에서 '십전짜리'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趙甲濟
입만 열면 거짓말이요 선동이요 말장난인 노무현 대통령이 또 천금같은 말을 해야 할 자리에서 '십전짜리'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김정일의 핵개발에 자금, 시간, 정보를 제공해 '핵개발 共犯'으로 불리는 그는 또 김정일의 핵무장을 비호했다. 김정일이 선제공격하지 않을 것이란 뉴앙스의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아직은 남북한 사이에 군사력의 균형이 깨어지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그는 또 핵무장한 북한과 계속해서 우호적으로 놀 것이라고도 했다. 칼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와 아내를 인질로 잡으려 하는 살인범에 대해서 경찰의 출동을 요청하지도 않고 '사이 좋게 지내겠다'고 말하는 남편은 아내를 강도에게 바치겠다는 사람이다.
그는 '어떤 가치도 평화 위에 두지 않겠다'는 말 같지 않은 말을 했다. 그렇다면 당장 김정일이 핵무기를 배경으로 남한에 공갈을 칠 때, 예컨대 386 간첩단 사건 수사를 중단하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위협할 때 盧대통령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김정일이 시키는대로 하겠다는 말인가? 평화 위에 자유가 있고 正義가 있다. 盧대통령은 6.25 남침 때 국군이 항복하여 평화를 유지하지 왜 抗戰하여 피를 흘렸는가 라고 원망하고 있는 모양이다. 盧씨는, 신라의 지도부(문무왕과 김유신)가 굴욕적인 평화를 거부하고 당시의 세계최대帝國인 唐을 상대로 전쟁을 결단했기에 오늘 그가 중국인이 아니라 한민족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史實을 모르는가? 盧씨가 말하는 평화는 공동묘지의 평화요 독재자의 평화요 노예의 평화이다.
국가의 자존심과 민족의 영혼을 지키고 가꾸어가야 할 대통령이 유치원생 수준에도 미달하는 막말을 태연히 하고 언론은 이것도 뉴스라고 보도하니 국민들의 영혼도 망가지고 있다. 자존심과 정의감이 美德으로 사라지고 있다. 어린이들이 이런 대통령을 보고 무엇을 배울지 겁이 난다. '간첩비호' 노무현 고발 퇴진 국민대회가 오는 11월10일 오후 2시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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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 핵실험에 따른 안보위협을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현재로선 한반도의 군사적 균형이 깨지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밝혔습니다.
보도에 정승민 기자입니다.
<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외국인 투자유치보고회를 주재한 자리에서 북한 핵실험으로 안보위협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를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 과연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한반도를 선제공격할 것인가 이런 문제를 냉정하게 짚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를 계속 개발해 나갈 경우 일방적으로 도발할 수 있을만큼 한반도의 군사적 균형이 깨질 것인지 여부에 대해 현재로선 깨지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군사적 균형은 계속 유지해나가되 북한을 상대로 결코 위험한 도박은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북한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감정이 그리 좋진 않지만 동시에 영원한 적이 될 수 없다는 인식도 갖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 우리는 우리의 자유와 안정을 지키기 위해서 북한과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해나갈 것입니다. 어떤 가치도 평화 위에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북한 핵무기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핵폐기를 위해서 노력하겠지만 폐기를 위한 노력이 또 다른 충돌의 계기가 되지 않도록 관리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승민 minmi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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核무장을 옹호하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김대중의 김정일에 대한 이런 일편단심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趙甲濟
아래 동아닷컴 기사를 읽고 나서 혈압이 올라가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심장이 약한 사람들은 차라리 읽지 않는 것이 좋겠다. 대한민국의 안보에 치명적인 위해가 되는 核실험을 강행한 것이 북한이다. 유엔안보리가 전원일치로 통과시킨 對北제재안에 북한 선박에 대한 검색 항목이 있다.
김대중씨는 북한이 武力대응할 테니 검색도 하지 말고 금강산 관광도 계속해주고 김정일을 소외시키기보다는 포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김정일의 비자금을 최소한 4억5000만 달러나 불려주어 핵개발을 밀어준 자가, 그래서 김정일의 비자금책으로 불리는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사실상 독재자의 核무장을 비호하고 있다. 학살자의 核무장을 옹호하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김대중의 김정일에 대한 이런 일편단심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열차 訪北도 허락해주지 않아 국제망신을 시킨 김정일에 대해서 말 한 마디 하지 못한 그가 왜 미국과 유엔에 대해선 온갖 惡談을 연일 내뱉는가? 그는 왜 이토록 아들뻘 되는 김정일에 대해서 비굴한가? 결정적 약점을 잡혔기 때문인가? 같은 사상을 가진 同志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이렇게 충성을 바쳐야 평양行 티켓을 받을 수 있다고 계산한 것인가?
김정일-김대중-노무현은 '핵개발共犯'으로 불린다. 이들은 韓민족을 內戰의 피바다로 몰고갈 연방제 사변을 꿈꾸고 있을지 모른다. 진정한 민족공조는 7000만 민족이 궐기하여 이 세 사람을 無力化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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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北, 제재에 무력 대응 가능성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1일 북한이 유엔의 제재에 맞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북한을 소외시키기보다는 포용해줄 것을 국제사회에 촉구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AP통신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 '북한은 (유엔의) 경제제재에 대응하는 방안을 준비중이며 군사력으로써 제재를 물리치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북한 선박들이 검색을 당한다면 북한은 무력을 사용해 이에 저항할 수 있으며 남북한 간 국경지대에서 '약간의 문제(some trouble)'를 일으킬 가능성도있다'면서 '이런 종류의 작은 분쟁이 미래에 어떻게 확대될지 정확히 알 수 없다'고말했다.
유엔 안보리가 이달 초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안에 따르면 유엔은 북한에 대한 군사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했으나,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 불법 반입을 금지하기 위해 회원국들에 북한 선박 검문을 요청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그러나 인근 해상이나 국경지대에서 북한과 충돌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미국이 주도하는 이같은 제재조치 이행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고 AP는 지적했다.
김 전 대통령은 북한 압박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미국과 북한이 양자회담을열고 양보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의 핵 프로그램폐기 대가로 대북 경제제재 해제와 안보 보장을 제공하는 '주고받기'식 북-미 회담에 해 미국이 응해줄 것을 요구했다.
또 남북한 간의 화해 노력에 진전이 없다고 비판하면서 그 원인이 미국에 있다고 지목했다.
그는 '햇볕정책은 성공적이었으나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유는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의 세부사항을 이행하는 방식에는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 북한의 무기구입에 자금이 유입되지 않도록 개성공단 근로자들에게 직접 임금을 지급하거나 북한 관광 비용을 물품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대북 식량지원에 관한 감시강화도 한 방법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AP=연합뉴스)
[ 2006-10-22, 22: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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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衛(자위) 없는 곳에 평화 없다'
마키아벨리의 名言: '실력에 기초하지 않는 권세만큼 허무한 것은 없다'
권력의 본질을 직시함으로써 근대 정치학의 문을 연 15~16세기 이탈리아 사람 마키아벨리는 이런 말을 남겼다.
<머리에 넣어두지 않으면 안되는 사실은 신질서를 만들어내는 것만큼 어려운 사업은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런 개혁의 실행자는 현체제 아래서 단물을 빨아먹고 사는 사람들 전체를 적으로 돌려야 하며 신질서로부터 득을 보는 사람들로부터는 아주 미미한 지지밖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체제를 즐기는 사람들은 공포감을 갖게 되고, (다른 사람들은)새로운 것에 대한 불신감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여기서 개혁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개혁으로 손해볼 사람의 저항은 확실하고 끈질긴데 개혁으로 득을 볼 사람들은 아직 그 구체적 혜택에 대한 체험이 없으므로 반개혁 세력을 잠재울 만한 지지를 개혁자에게 보내주지 않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또 이런 말을 남겼다.
<권력을 가진 인간들 사이에서 최근에 베풀어준 은혜에 의해서 이전의 원한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인간은 은혜를 쉽게 잊지만 원한을 좀처럼 잊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말을 또 들어보자.
<자신의 안전을 자신의 힘에 의하여 지킬 의지를 갖지 않은 경우, 어떤 국가라고 해도 독립과 평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신을 지키는 데 있어서 힘에 의존하지 않고 운에 의존하려들기 때문이다. 「인간 세계에선 자신의 실력에 기초를 두지 않는 권세나 명성만큼 허무한 것은 없다」는 타키투스의 말은 어느 시대에나 유용한 현명한 생각이다>
마키아벨리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란 존재는 자신을 지켜주지도 못하고, 자신의 잘못을 질책하지도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충성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말은 계속된다.
<군주로서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과 두려움을 받는 것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당연한 일이지만 거의 모든 군주는 양쪽을 다 원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사랑과 두려움을 동시에 받을 수는 없다.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 나는 사랑보다는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 군주로서는 안전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무서운 사람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용서없이 짓이겨버리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은혜나 의리와 같은 유대(紐帶)로써 맺어진 애정 같은 것은 이해관계가 개재되면 태연히 끊어버린다. 반면 공포에 의해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엔 복수가 두려워 쉽게 관계를 단절하지 않는다. 군주가 사랑받는 모습의 군주型을 포기한다고 해도 하나 주의할 점은 증오와 원한을 사는 행동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두려움의 대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면서도 증오를 사지 않는 것은 양립 가능하다. 예를 들면 家臣이 가진 재산이나 여자에 손을 대는 무법을 저지르지 않으면 된다. 인간이란 것은 자기 재산을 빼앗아간 사람보다도 아버지의 죽음을 더 빨리 잊어먹는 존재이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내용의 핵심은 군주가 부하들로부터 외경의 대상이 되면서도 증오와 원한을 남겨선 안된다는 강조입니다. 법률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은 공포를 주는 행위이지만 부하의 사유재산을 강탈한다든지 부하의 아내를 탐낸다든지 하는 행동은 증오를 사는 행위입니다. 공적인 제재는 공포를 부르지만 사적인, 즉 개인감정이나 욕심에 의한 제재는 증오나 원한을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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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유행했던 우스개 한 토막.
김정일이 남침하지 못하는 이유는?
1. 한국에는 집집마다 核을 가진 核가족이 있다.
2. 골목마다 대포집이 있다.
3. 택시중엔 총알택시가 많다.
4. 남자들은 폭탄주를 마신다.
요사이 김정일이 남침하지 못하는 이유는?
盧정권이 김정일보다 더 잘해주고 있으니까.
그래도 김정일이 武力남침하면 盧정권은 국군에 무슨 명령을 내릴까?
'제발 평화적으로 진압하라' '적이 폭력을 쓰더라도 우리는 어디까지나 평화적으로 대응하여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하라(그리고 죽어라)'
[ 2006-01-07, 2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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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평화적으로 진압하라?!
이런 논리가 남북한관계에 적용된다면 김일성이 6.25남침을 했을 때 국군이 평화적으로 대응하지 왜 폭력으로 맞섰느냐고 비방하는 강정구식 억지로 비약한다
좌익들의 불법폭력시위에 대해서 경찰이 평화적으로 진압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신장애자에 가까운 위선자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설득해야 하니 국가적 낭비가 초래된다. 그 노력을 생산과 건설 부문에 투입한다면 나라와 국민의 살림살이가 그만큼 좋아질 것이다.
폭력배가 몽둥이로 덤빌 때, 강도가 칼을 들고 덤빌 때 경찰이 평화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은 얻어맞고 찔리면서 방패를 덮어쓰고 엎드리는 길밖에 없다. 경찰이 왜 얻어맞지 폭력시위대를 때렸느냐고 나무라는 인간들이 많아지면 사회는 질서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다. 법보다는 주먹이 더 가까운 정글로 전락한다. 盧정권처럼 경찰의 엄정진압에 대해서 못마땅한 반응을 보이고 좌익폭력시위를 관용하는 것처럼 비쳐지면 국가의 치안기능은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국가가 국가의 윤리와 논리를 파괴하는 자살적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盧정권의 행태에 대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국가의 경영자가 된 뒤에도 노조위원장의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점이 그것이다.
폭력에 대해서도 평화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억지가 남북한관계에 적용된다면 김일성이 6.25남침을 했을 때 국군이 평화적으로 대응하지 왜 폭력으로 맞섰느냐고 비방하는 강정구식 억지로 비약한다. 6.25 때 국군이 평화적으로 대응했다면 대한민국은 赤化되었다. 이런 억지를 부리는 위선자들의 本心은 왜 國軍이 대항하여 赤化를 저지했느냐는 원망이다.
좌익폭력시위에 대해서 경찰이 평화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고 화를 내는 자들도 같다. 그들은 좌익들이 폭력으로 이 사회를 赤化시키는 것을 막고 있는 경찰에 원한이 많은 것이다.
경찰이 애국단체들의 평화적 시위에 대해서 폭력적 진압을 했을 때는 침묵한 자들, 특히 어용언론이 좌익단체의 폭력시위를 경찰이 엄정하게 진압하자 일제히 억지를 부린다.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 2005-12-22, 1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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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평화의 댐, 18년만에 준공
<앵커 멘트>
말도 많았던 평화의 댐이 공사를 시작한 지 18년만에 완공됐습니다. 박진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평화의 댐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높이 125미터, 길이 601미터의 크기로, 26억 톤의 물을 가둘 수 있습니다. 소양강댐과 충주댐에 이어 국내에서 3번째로 큰 댐입니다.
<인터뷰>김은미 (평화의 댐 인근 주민): '18년만에 완공됐다고 해서 왔는데, 댐 잘 지어놓은 것 같아요'
이처럼 20년 가까이 공사가 오래 진행된 것은 평화의 댐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끊이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1986년, 5공 정권은 직선제를 요구하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금강산 댐'이라는 카드를 내놓습니다. 639억 원의 국민성금이 투입된 평화의 댐 공사는 그러나 지난 90년, 강산 댐 위협이 과장됐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중단됩니다. 10여 년이 흐른 2002년, 임남댐으로 이름을 바꾼 금강산 댐의 안전에 이상이 있다는 징후가 포착되면서 정부는 2단계 증축 공사를 선언하고 공사를 재개합니다.
<인터뷰>곽결호 (수자원공사 사장): '북한강 지역의 홍수 대비는 물론 한강 본류의 치수 대책에도 여유가 생겼습니다.'
수자원공사는 댐 주변에 물 문화관과 연못 등을 조성해 남북 대치 상황에서 태어난 평화의 댐을 관광 명소로도 개발한다는 계획입니다. KBS 뉴스 박진영입니다.
기자는 이 평화의 댐을 5공 정권이 직선제 개헌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금강산댐의 위협론을 제기해 만든 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평화의 댐은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에 지어졌다. 최대 저수량 26억 3천만 톤으로 북한이 금강산 댐(現 임남댐, 최대 저수량 26억 2천만 톤)을 붕괴시켜 水攻(수공)을 할 경우 서울이 물바다가 된다는 예측이 1987년 나온 후, 북한 금강산댐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댐이다. 한때 효용성 논란이 제기되어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지만 2002년 북한 임남댐이 붕괴할 수 있다는 소식이 언론에 나온 이후에 약 45m를 높이는 공사를 시작,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평화의 댐은 이처럼 북한의 水攻(수공)에 대응한다는 목적으로 만든 댐이다. 이를 왜 직선제 개헌이라는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만든 댐이라고 소개했는지, 그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해 이 보도를 취재한 박진영 기자와 통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해당 기자와는 통화를 할 수가 없었다.
[ 2005-10-20, 1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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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브리의 전쟁과 평화
프랑스의 부르고뉴 지방에는 「샤브리」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인구는 2600명이지만 白포도주의 대명사로 유명합니다. 여기서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三星(회사가 아니고 등급) 호텔에서 자고 나와 광장에 갔더니 전몰자 추모탑이 있었습니다.
이 마을 출신 청년들로서 전쟁에 나가서 죽은 사람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1914~18년 사이 1차세계대전 때 전사자가 78명, 1939~45년 사이 2차세계대전 전사자가 14명, 1950년대 월남전 전사자 2명, 알제리 독립전쟁 때 전사자 1명, 그리고 1870~71년 普佛(보불) 전쟁 때 전사자가 13명이었습니다. 포도원으로 둘러싸인 이 평화로운 마을의 풍요와 안정도 결국 젊은이들의 피로써 지켜진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55만㎢의 국토를 가지고 있는데 유럽의 가장 비옥한 농토입니다. 이를 빼앗으려고 덤벼든 로마, 게르만족, 영국, 독일로부터 이 옥토를 지키기 위해 싸워온 프랑스 사람들의 역사는 예술로 쓰여진 것일 뿐 아니라 피로 쓰여진 것임을 이 작은 白포도주 마을에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1차세계대전 때 프랑스의 20代 남자중 반이 전사했다고 합니다. 전쟁은 어른이 결정하지만 죽는 것은 젊은이들입니다. 전쟁은 거의가 히틀러 같은 민간 독재자들이 결정하지만 죽는 것은 군인들입니다. 대체로 군인들이 민간 정치인보다 더 전쟁을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金正日이도 군대 복무 경험이 전혀 없으니까 더 무모하게 전쟁狂이 되려 하고 있나 봅니다.
「전쟁을 일으키면 金正日 너가 제일 먼저 죽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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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번영의 우산 韓美동맹
柳永益
李承晩 연구의 1인자인 柳永益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석좌교수는 최근 발표한 '한미동맹 성립과 역사적 의의'라는 논문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1. 1953년의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한 한미동맹 성립은 조선-대한제국이 추구하던 聯美정책의 실현이다. 李承晩 대통령이 예견했던 대로 '우리의 후손들이 앞으로 累代에 걸쳐 이 조약으로 말미암아 갖가지 혜택을 누릴 것이다'. 지금까지의 혜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 한반도 및 그 주변의 장기적 평화가 유지되었다.
3. 한미동맹에 따른 미국의 확고한 對韓방위보장에 힘입어 한국은 1970년대 전반기까지 평균 GNP의 4%라는 비교적 적은 국방비만을 써가면서 경제개발 우선정책으로써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4. 한미동맹은 국군의 비약적인 팽창을 초래하였다.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탄되었을 때 보유병력이 8000명 정도였던 데 비해 한미동맹조약에 따라 한국은 20개 사단을 현대화했고, 70만 대군을 갖게 되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에서 무시못할 군사강국이 되었다.
5. 한미동맹은 한국의 민주화를 도왔다. 미국은 동북아권의 안정에 도움이 되는 한국의 민주화를 후원했다.
6. 한미동맹으로 미국의 지원을 받게 된 한국은 외교망을 확대했다.
7. 한미동맹으로 과거 동양에서 가장 폐쇄적이었던 은둔국 한국은 '팍스 아메리키나'를 구가하는 미국과 맹방이 됨으로써 서구문명에 완전히 개방되었다. 원래 대륙국가였던 한국은 이 과정에서 해향지향의 태평양국가로 탈바꿈했고 아시아 굴지의 기독교 국가로 浮上했다.
결론: 요컨대 1953년 이래로 남한은 한미동맹의 보호우산 아래 군사,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문화 등 인간생활의 모든 면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는데 이러한 변화는 19세기말-20세기 초 조선-대한제국의 위정자들이 추구했던 '문명개화' '부국강병'이라는 이상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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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적, 외교적 해결'이란 속임수
盧정권과 한국의 좌파들이 金正日 정권의 핵무장 문제를 평화적으로, 외교적으로만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金正日의 핵무장을 방치하여 金을 편들고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하는 행동이다.
이는 칼을 들고 시민을 위협하는 무장강도에 대해 경찰이 무력을 행사해선 안되고 말로써만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과 꼭 같다. 이 경우 말로써 해결하는 방법은 경찰관이 강도에게 돈을 주어 보내는 것뿐이다. 즉, 경찰이 강도방조를 하는 길이다.
핵무장한 金正日에 대해서는 외교적으로 평화적으로 대응해보다가 안되면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테러리스트이자 전쟁광인 김정일에 대해서 말로 해서 듣지 않을 때 실력을 동원하는 것은 국가의 상식이다. 유엔을 통한 국제적 경제봉쇄는 군사력의 뒷받침이 필요한 準군사작전이다. 민족공멸의 무기를 가진 김정일에 대해 이것마저 반대하는 자는 대한민국의 국민과 국익에 반대하고 민족반역자의 이익에 복무하는 자임이 분명하다. 盧정권은 對北지원 중단, 송금 중단 등 여러 제재수단을 갖고 있다. 강도를 잡을 수 있는 권총을 쥔 경찰이 총을 쓰지 않고 강도에게 뇌물을 준다면 이 자는 경찰로 위장한 공범자이다. 盧정권이 北核 문제를 남의 집에 난 불구경하듯 한다면 자신의 운명을 남에게 맡기는 사대주의자, 의타주의자가 된다. 취임 직후 북핵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큰 소리 쳤던 그 기개는 어디로 갔는가.
평화와 외교가 절대선이라고 주장하는 자는 천치가 아니다. 억지로 金正日을 비호하려다가 보니까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태연히 하는 것이다. 김정일의 핵무장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외교적, 경제적, 군사적 노력을 총동원해야 한다. 평화적, 외교적으로써만 해결하자고 억지를 부리는 자들은 전쟁광의 편을 드는 평화의 敵이다. 외교적, 경제적 압력이 먹히지 않으면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군사적 압력을 넣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하는 일이다. 막강한 군대를 비싸게 유지하는 것이 이때 써먹자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전쟁을 결심해야 할 때 전쟁을 결심할 수 없는 민족은 노예가 되었다. 조선조가 그렇게 해서 식민지가 되었고, 신라는 국가존망의 위기에서 당시 세계최강국 唐과 전쟁을 결심함으로써 민족을 보존하고 삼국통일을 성취했다는 점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 2005-02-12, 0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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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노래하며 전쟁을 부르는 盧武鉉
1. 북한의 핵무장은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을 높인다. 핵무기를 없애려는 미국의 공격 가능성과 핵무기를 배경으로 한 북한의 남한 공격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2. 따라서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을 줄이는 오직 하나뿐인 방법은 북한의 핵무장을 포기시키는 것이다.
3.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한미동맹의 강화이다.
4. 두번째 방법은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장을 포기하지 않으면 군사적 공격이나 경제봉쇄를 당할 것임을 인식하도록 하고, 만약 포기하면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을 받을 것임을 약속하는 것이다.
5. 세번째 방법은 韓美日이 동맹관계의 입장에 서서 한 목소리로 중국에 대하여,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책임감을 갖고 압력을 행사하도록 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6. 盧武鉉 대통령은 한미동맹도, 韓美日 협조도 깨고, 북한에 대해서 어떤 제재도 반대한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핵무장을 하도록 방치하자는 주장으로 들린다. 김정일의 핵무장이 일리가 있다고 변호하는 거의 정신착란적인 증세도 보인다.
7. 결국 盧武鉉 대통령의 정책은 북핵 허용 정책이고 이는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가 지금 평화를 노래하면서 실은 전쟁을 부르고 있다.
[ 2004-11-15, 2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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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유: 잔학성에 이기는 평화는 없다
조갑제
www.natizen.com(조갑제 홈 페이지)
프랑스의 여성 사상가 시몬느 베이유(1909-43년)는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으로 야기된 2차세계 대전을 목도하면서 1939년9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먼저 우리가 확실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있다. 적보다 잔학하지 않고, 폭력적이지 않고, 비인간적이지 않다고 해서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잔학성, 폭력, 비인간적 행위에는 더 이상 갈 데가 없을 정도의 신망이 따라다닌다. 어린이들이 읽는 교과서에는 그런 내용이 적혀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실을 부정할 도리는 없다. 그 반대의 美德이 같은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정력적으로 지속적으로 그 德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된다. 단순히 잔학, 폭력적, 비인간적이지 않다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그것을 대체할 만한 美德을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은 내면적인 강인함과 믿음성에 있어서 상대보다 뒤떨어지고 대결했을 때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잔학성, 폭력, 비인간성에 인간이 존경을 보낸다는 것은 히틀러와 김정일에 대한 많은 독일과 북한주민들의 맹목적(강제된 것, 광신적인 것이지만)인 열광을 보면 이해가 갑니다. 인간은 강력하고 폭력적인 힘에 넘어가는 본성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순하고 평화롭기만 한 성품이나 자세로써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잔학과 폭력과 비인간됨을 누를 수 있는 단호함, 강력함, 정의감이 있어야 이런 악랄한 자와 대결했을 때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김정일의 잔학하고 폭력적이며 비인간적인 행동에 이 땅의 어느 지도자가 단호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까. 폭력에 평화로 대응하는 것이 비겁이 아니라 善이라고 거짓말 하는 인간뿐이지 않습니까. 베이유의 관찰에 의하면 그런 자는 악랄한 자와 대결했을 때 반드시 진다는 것입니다. 저의 관찰에 의한다면 위선자는 간교한 자에게 반드시 지고 간교한 자는 정직한 사람에게 반드시 집니다.
많은 소시민들은 친북좌익 세력의 악랄한 선동에 기가 질리지만 '내가 저런 자들과 싸우면 내만 손해지. 나는 점잖게 놀아야지. 저런 놈들은 결국 망하게 되어 있다고.'라고 말하면서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악랄한 자들이 강하고 착한 사람들의 응징 없이 저절로 망한 예를 역사에서 하나만 꼽아보십시오.
[ 2003-01-06, 20:32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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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正義·평화가 통일 3원칙
햇볕정책의 총괄과 代案
1. 총괄
가. 추진세력의 사상문제: 對北 정책의 추진자인 金大中 대통령 및 그 측근들의 사상과 가치관에 대한 의심과 그 實證이 主流 세력의 반대를 불렀다.
나. 전략의도 노출: 이솝우화에서 따온 햇볕정책이란 말이 전략적 의도를 드러냈다. 고의적인 노출인가.
다. 핵심 가치관 포기: 헌법정신, 역사관, 정의감, 敵我 구분을 포기한 추진으로 「애국심과 反金正日」을 축으로 하는 한국의 핵심 가치관을 약화시키고 國論 분렬을 자초했다.
라. 內敵(親北 좌파)의 활성화: 햇볕정책의 틈을 타서 정부의 비호 아래 친북좌파 세력의 공공연한 활동이 본격화되었으며 親與 및 어용 언론과 사회단체들이 좌파의 대한민국 공격-金正日정권 옹호 행태를 응원하였다.
마. 主敵 강화: 검증기능과 상호주의가 빠진 일방적 對北 현금 및 물자 지원이 북한정권에게 집중됨으로써 군사력과 체제유지력을 강화시켰고 그만큼 한국의 안보는 약화되었다.
바. 군과 對共기관의 약화: 군, 국정원, 검찰, 경찰 등 對共武力의 수뇌부와 심장부가 햇볕정책의 영향을 받아 헌법질서 수호 및 국가 保衛의 기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사. 韓美동맹 약화: 주한미군의 성격에 대한 대통령의 신뢰할 수 없는 발언, 친북 세력과 친여 세력이 벌인 反美운동, 부시 정권의 對테러 전쟁에 대한 정권측의 미온적(또는 적대적) 자세로 韓美 동맹 관계가 악화되었다.
아. 재벌과의 유착: 金大中 정권은 對北퍼주기의 창구로 현대그룹을 이용함으로써 권력과 재벌의 유착이 가진 惡을 그대로 답습했다. 산업은행을 통한 현대상선에 대한 4천억 원 편법 대출, 현대 하이닉스 및 현대 건설에 대한 무리한 지원이 그 예이다.
자. 기만과 선동술: 金大中 정권은 햇볕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 국회 및 국민들을 상대로 金正日의 주한미군에 대한 발언, 연방제와 연합제 공통성 인정 등 한국 안보의 가장 중대한 사안에 대해 앞뒤가 맞지 않는 보고를 하는 등 기만적 행태를 보이는가 하면 어용단체 친북단체 어용언론이 선동적으로 통일열기를 확산시켜 국가의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였다.
차. 남북간 人的 物的 교류 증대: 남북간의 人的, 物的 교류가 증대한 것은 남한보다는 북한사회에 더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바깥 세상의 정보가 북한에 流入되고 바깥 세상, 특히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몸과 눈으로써 확인한 것은 장기적으로 북한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할 것이다.
카. 對外 의존도 증가: 북한정권은 1995년 이후 식량 부족 문제를, 외국과 외부단체로부터의 지원으로 대처해가는 과정에서 외국에 의존하는 경제체제로 바뀌었다. 金大中 정부로부터 받고 있는 현금 및 식량 지원은 이런 외부 의존 정도를 더욱 심화시켰다. 이런 외부의존 현상의 심화가, 식량배급체제의 붕괴로 암시장이 전국적으로 생기는 바람에 시장경제화하고 있는 내부적 변화와 겹칠 때 북한체제의 본질적 변질은 불가피해질 것이다.
타. 결론: 金大中 정부의 對北 햇볕정책은 正義感·애국심·反金正日 기조를 포기함으로써 主敵과 內敵을 결과적으로 강화시키고 대한민국 수호세력과 韓美 동맹관계를 약화시켰다. 이는 남북한 무장·이념대치상황에서 북한정권을 유리하게, 한국을 불리하게 만들었다. 다만, 金大中 정부하에서 일어난 남북한 人的, 物的 교류의 확대는 앞으로 북한체제를 변질시키는 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2. 代案
가. 남북문제의 본질에 대한 直視: 남북문제의 본질은 「삶의 양식과 민족사적 정통성을 놓고 다투는 타협이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이다.
나. 敵과 我에 대한 명확한 구분: 북한정권이 對南赤化통일을 포기하기 전까지는 북한정권과 이 정권에 조종당하는 한국내 친북좌익세력은 국가의 敵이다. 어떤 경우에도 敵의 파괴력을 강화시켜줄 위험성이 있는 성격의 경제원조, 외교적 지원, 교류, 국가보안법 개정이 이뤄져서는 안된다. 대한민국 수호세력과 미국은 대한민국 편이므로 이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동맹관계도 강화해야 한다.
다. 內敵 단속: 金大中 정부 시절에 들어서 활성화된 친북좌익 세력의 불법활동을 헌법과 법률의 규정에 따라 철저하게 단속하여야 한다. 특히 金大中 정부하에서 자행되었던 불법적인 對北접촉, 對北뇌물·정보 제공은 엄하게 단속하여 內敵을 약화시켜야 한다.
라. 통일전략의 목표와 수단에 대한 합의 도출: 남북통일의 핵심적인 목표는 맞아죽고 굶어죽고 있는 북한동포들을 압제로부터 해방시켜 인간적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그 수단은 평화적으로 통일의 걸림돌인 金正日 정권을 거세(또는 무력화)시키는 것이라는 데 정부와 국민이 합의하고 재확인하여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흡수통일을 하겠다는 말을 할 필요는 없지만 안 하겠다는 말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마. 통일전략의 핵심:
a.남북한의 평화정착=對北경제지원을 對南군사도발 포기와 연계시켜 핵무기 및 化生무기 개발 포기, 휴전선에 배치된 재래식 군사력의 後進을 관철시킨다.
b.평화적 경쟁 가속화=평화적 경쟁으로써 남북한의 군사력, 경제력, 정신력의 차이를 확대시켜 북한정권의 對南의존도를 증대시킴으로써 對南 도발·적화 능력을 제거한다. 평화적 교류의 전략적 목적을 북한체제의 자유화, 민주화 유도에 둠으로써 북한주민들의 각성으로써 북한체제를 본질적으로 변화시키도록 유도한다.
c. 북한내부에 민주화기지 건설: 북한체제를 내부로부터 변화시키기 위하여 外力을 가함으로써 내부에 민주화 세력(또는 反體制 세력)이 성장하도록 한다. 한국의 경제력과 자유가 북한체제 내부로 들어가도록 촉진하는 것, 탈북자 문제 등 인권문제를 계속 제기함으로써 북한내부에서 인권에 대한 의식이 자라나도록 하는 일, 金正日 정권에 대하여 인권탄압을 계속할 때는 통일 후 공소시효에 관계 없이 처벌하겠다는 국회 결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압력을 가하는 일이 그런 外力들이다.
d. 자유·正義·평화: 요컨대 대한민국의 무력으로써 북한정권의 남침의지를 꺾어놓고 있는 사이 대한민국의 경제력과 자유민주주의의 힘으로 북한주민들을 변화시킴으로써 내부로부터 북한정권을 변질시켜 평화적으로 붕괴되도록 유도한다. 통일의지의 바탕은 민족주의이고 이 민족주의는 정의감과 휴머니즘에 기초해야 하며 따라서 압제하의 북한동포를 구출하는 데는 한국국민의 일시적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놓고 국민들을 설득시켜야 한다.
통일비용 운운하면서 한국인의 이기주의에 호소하여 자유통일의 걸림돌인 金正日 정권을 존속시켜주려는 일부 보수층의 생각과 민족과 평화를 운운하면서 金正日정권의 反인류, 反민족 전쟁범죄행위를 덮어놓고 가려는 책동을 다같이 경계해야 한다. 통일의 원칙은 자유, 正義, 평화여야 한다. 즉, 대한민국 主導下에 정의로운 평화에 기초하여 자유가 永續할 수 있는 민족통일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한반도 통일의 비전이다.
[ 2002-10-16, 1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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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평화상 받은 사나이의 寓話
<어느 마을에 한 살인강도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강도 집 옆에는 부자 집이 있었습니다. 옛날엔 이 부자 집이나 강도 집이나 다 가난했습니다. 한쪽은 온 가족이 家長의 지도하에 열심히, 정직하게 일하여 오늘날의 富를 이룩했고, 다른 쪽은 도둑질, 강도질만 하고돌아다니다가 마을에서 '상종못할 놈'으로 낙인찍혀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몇 년 전엔 이 강도가
부자집에 침입했다가 뭇매를 맞고 쫒겨났습니다.
이 강도는 요사이 부자집 주인한테 '당신 담이 너무 높다. 일조권을 침해하니 좀 낮추어라'라고 대들고 있습니다. 담 높이가 2미터밖에 안되는데 무슨 일조권 침해냐 하고 주인은 무시해버렸습니다.
강도는 이 마을의 조무래기 깡패, 게으름뱅이들을 선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마을에서 좀 홀대를 받았던 이들은 강도의 선동에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그들은 富者가 성실하게 일해서 돈을 번 점을 본 받을 생각은 안하고 '저 부자놈은 부정을 해서 저렇게 축재했고, 20미터나 되는 담을 쌓아 이웃을 깔보고 있다'고 소리치고 다닙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들의 억지가 말이 되지 않는 과장이고 속임수란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지만 어느 한 사람 나서서 이들을 제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주인이 경찰에 신고해도 경찰은 '조용하게 처리해주시오'라고 하면서 중립을 취합니다.
피, 땀, 눈물로 富를 쌓아올렸던 富者는 죽고 아버지의 고생과 희생을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 아들이 家長이 되었습니다. 이 젊은 家長은 강도가 소리치고 다니는 것이 창피하여 그 자의 요구대로 담을 부수어버리고싶습니다. 그렇게 하면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약하게 볼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명분을 만듭니다.
담을 허물어 일조권을 이웃한테 선물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닌가, 그렇게 하면 마을사람들로부터 마을의 평화를 위해서 일했다고 상을 받을지도 모른다, 강도도 나의 선행에 감동하여 달라지겠지....
부자 아들이 담을 허문 다음날 강도는 유유히 부자 집으로 걸어서 들어와 금품을 털고 부녀자들에겐 못된 짓을 했습니다. 富者 아들은 이 사실이 마을에 알려지면 자신의 무능과 비겁함이 폭로될까 봐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강도 집과 친한 것처럼 행동하면서 마을사람들한테는 '그 강도 친구 말이야, 내가 담을 허물었더니 아주 좋아하고 마음을
고쳐먹었어. 알고보니 그 친구도 원래부터 나쁜 사람은 아니더군. 역시 이쪽에서 선하게 대해주니 그 친구도 선하게 나오더군'이라고 말하고다닙니다.
과연 마을 사람들은 이 철없는 부자 아들에게 이웃평화상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부자집은 밤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강도는 이제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주인이 신고를 하지 않으니 안심하고 제 집처럼 들락거립니다. 예쁜 주인 아내를 자기 물건처럼 갖고 놉니다. 주인 아내도 자신을 지켜주지 못하는 위선자 남편보다는 폭력적이지만 본능적인 건장한 강도를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강도는 부자 집으로 아예 이사를 해버렸습니다. 부자 아들, 즉 주인은 강도의 종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내 잃고 집도 잃은 이 富者 아들은 그래도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다행이다. 모든 일이 평화롭게 이루어졌으니. 내가 저항했다면 인명 피해가 많았을 거야. 내가 죽으면 묘비명에는 그래도 마을의 평화를 위해서 애쓰다가 간 사람이란 문장 하나는 확실하게 새겨질 거야. 강도 그 친구도 잘 먹고 잘 살면 언젠가는 달라질 거야. 내가 죽은 뒤의 일이겠지만 말이야'>
이 寓話의 속편.
<평화란 말을 病的으로 좋아하는 A라는 사람이 살인마와 이웃하여 살고 있었다. 이 살인마에게 큰 아들을 희생당한 A씨는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그 살인마를 효심이 지극하고 견식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A씨에게 이웃 평화상을 주었다. 그들은 A씨가
헛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살인마가 행패를 부리지 않도록 하려는 뜻이 있었다. 최근 A씨 집안에서는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A씨가 살인마에게 눌려지내는 데 대하여 자존심이 상한 작은 아들이 反旗를 들고 나온 것이다. 작은 아들은 살인마를 무력화시켜야 집안의 안전은 물론이고 마을의 평화가 유지된다고 주장하여 아버지 A씨와 不和하였다.
그 불화의 단초가 된 것은 살인마가 A씨 집안에 대해서 이런 요구를 해왔기 때문이다.
『앞으로 당신네 집안에서 절대로 나를 살인자니 主敵이라니 하고 불러선 안된다. 만약 그
렇게 부르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리고 하나 더, 경비원을 增員할 때는 반드시 내 허가를 받아야 돼』
A씨는 집안 사람들을 불러모아놓고 살인마가 주문하는 대로 하도록 지시했으나 작은 아들이 반발하여 시끄러웠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대들었다.
『아버지, 전에 이렇게 자랑하셨잖아요. 그 자를 만나고 왔는데 아주 견식과 효심이 있는 사람이더라. 우리는 이제 서로 싸우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그 분이 우리 경비원들이 계속 있어도 좋다고 하더라, 이제 우리 마을에 평화가 왔다, 이렇게 말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경비원을 늘리고 하는 것을 살인 전과자한테서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겁니까. 형님을
찔러 죽인 원수를 보고 살인자라고 부르지도 못합니까. 더구나 우리 집안에서 우리끼리 그렇게 부르는 것도 못한단 말입니까』
살인마는 어느 날 담을 넘고 들어와 A씨의 작은 아들을 칼로 찔러 죽이고 달아났다. 경비원들이 살인마를 잡을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면 이웃평화상을 받은 A씨의 명성에 손해가 될까 봐 놓아주었다. 이 만행이 알려지자 마을 사람들도 흥분하고 A씨 집안 사람들도 들고 일어나 살인마를 응징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당황한 것은 살인마가 아니라 A씨였다.
그는 喪中임에도 동네 어른들을 찾아다니면서 살인마를 변호하였다. 그 사람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느니, 아마도 술김에 저지른 실수라느니 하는 사리에 닿지 않은 말들을 쏟아놓았다.
동네 어른들이 그 자를 추방해야 한다고 서두르자 A씨는 드디어 막말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내 아들도 맞아죽을 짓을 하긴 했지요. 왜 저항을 하느냐 이겁니다. 내가 그토록 당부를 했는데 말입니다. 살인마가 칼을 들고 집에 들어오더라도 절대로 먼저 찔러선 안된다. 찌르면 찔려 죽어라. 그것이 집안과 마을의 평화를 유지하는 길이다. 그런데 이 놈이 찔린 다음에 저항하다가 죽었단 말입니다. 내 말을 안 듣고. 그러니 죽을 짓을 한 것이죠』
어안이 벙벙해진 마을 사람들은 A씨에게 말했다고 전한다.
『야 이 사람아, 그 애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살인한 놈을 변호하고 다니는 거니. 너 혹시 무슨 약점이라도 잡혔니, 아니면 그 이웃평화상을 회수당하지 않으려고 그토록 구차하게 살인마를 변호하는 거니. 너는 아들 장례나 잘 치르고 정신을 차려라. 그 동안 우리가 그 놈을 손봐줄터이니 너는 구경만 해. 제발 방해만 하지 말아. 저 놈이 우리 마을에 사는 한 평
화는 없어. 그러나 너한테 준 그 상은 말이야 돌려받지 않을 것이니 안심해. 그 상패는 말이야 아들 관 속에 넣어서 같이 파묻어 버려』>
[ 2002-07-10, 17:58 ]
가이드 북/'평화'라는 말에 속지 않으려면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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