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淳: "國語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말의 힘만큼 개인도, 국가도 발전한다.
[특별기고] 한국 교육의 재건은 國語 교육에서 출발해야 한다
(월간조선)
말이 풍부해야 思想도 풍부해지고, 말의 힘만큼 개인도, 국가도 발전한다.
국어 교육이 수학·과학·영어 교육보다 더 중요하다.
漢字 교육 없이는 國語 교육 없다

趙 淳 서울大 명예교수(민족문화추진회장)
1928년 강원도 강릉 출생. 서울상대 美 보오든大 졸업. 경제학 박사(버클리大). 육사교관, 美 뉴햄프셔大 조교수, 서울상대 부교수·교수·사회과학대학장,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한국은행 총재, 초대 민선 서울시장, 국회의원(15代 강릉) 역임.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한국


한국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밝은 얼굴과 어두운 얼굴이 그것이다. 밝은 얼굴을 보자.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엄청나게 많은 발전을 했다. 경제적으로는 세계 경제사에 유례가 드문 壓縮(압축) 성장을 달성함으로써, 1996년에는 선진국의 클럽인 OECD에 가입했다. 정치적으로도 開發年代(개발연대)의 암흑을 헤치고 학생과 민주화 투사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민주화를 쟁취했다.

교육은 양적으로 팽창하여, 문맹이 일소되고, 人口對比(인구대비) 대학생 수는 세계의 선두에 서 있다. 정보화시대에 진입해서는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이 세계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 각종 운동경기를 비롯하여, 개인적 숙련을 위주로 하는 많은 영역에 있어서 한국인의 능력 발휘는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가. 또 하나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정치는 과거 어느 때에 비해 非생산적이고 개선의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內實 없는 민주주의를 위해, 국민은 너무나 많은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분단된 이 나라의 국토는 마치 19세기 말에 있어서와 같이 열강의 각축장으로 변하는 양상을 띠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집안싸움에 바쁘고, 識者(식자)라고 하는 사람들도 나라의 命運(명운)이 걸린 외교문제에 대해서는 近視眼的(근시안적)이기만 하다.

사회는 건전한 가치관의 失踪(실종) 속에서 집단이기주의의 히스테리에 빠져 있고, 매일같이 터져 나오는 非理 속에서 서로의 不信만 자라고 있다. 南北(남북)이 갈리고, 東西(동서)가 찢어져,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老少의 사이에는 벽이 쌓이고, 歡樂街(환락가)에는 20代 젊은이들이 넘쳐흐른다. 가정이 파괴되어, 이혼율은 대부분의 선진국보다도 높다. 국민의 심리는 뿌리 없는 浮萍草(부평초)와 같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교육은 양적으로는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보급되었으나, 질적으로는 낮고, 사회의 수요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인구비례 대학생 수는 세계최고지만 세계에 자랑할 만한 대학은 없다. 幼兒(유아) 때부터 외국유학을 보내니 아동은 정상적인 정서와 지능의 발육을 기대할 수 없고, 「기러기 아빠」가 이끄는 가정은 정상적인 행복을 이룰 수 없다. 인터넷의 보급은 세계 제일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자랑하는 대로 나라발전에 창조적인 도움이 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경제도 한강의 기적이 一朝에 돌변하여, IMF라는 신탁통치를 받는 동안 國富의 노른자위는 외국인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국민이 단결하여, IMF를 극복한 듯이 보였지만, 알고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IMF 「극복」의 소리에 도취되어, 국민의 고질인 「放漫(방만)」이 도지고 있다. IMF 5년을 헛되게 보낸 지금, 국민의 빚은 늘어만 가고, 경제는 IMF 때에 못지않은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밝은 얼굴도 있고 어두운 얼굴도 있는 법이며, 한국이 이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한국에 있어서처럼 밝은 얼굴과 어두운 얼굴이 兩極(양극)을 이루면서, 예기치 못한 때에 번갈아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왜 이렇게 되는가. 이 나라 사람들의 마음이 항상 중심 없이 극에서 극으로 요동치기 때문이다. 고쳐야 할 것을 제때에 고치지 못하고 있다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야, 부랴부랴 180도로 방향을 바꾸는 습성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교육이 不實해서 생기는 문제들

각 개인의 소질이 탁월한 이 나라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가시지 않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궁극적으로는 교육에 그 근본원인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나라의 교육을 산업에 비유해 보자. 교육을 하나의 큰 산업으로 보고, 각 학교를 기업으로 비교해 보자. 그렇게 하는 데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示唆(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교육을 어떻게 산업과 비교하느냐! 신성한 학교를 어떻게 기업과 비교해! 라는 거부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만이 신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교육은 나라의 根本이고, 따라서 국가적으로 보아서 많은 다른 분야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교육만이 신성한 것은 아니다. 다른 산업도 신성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의 생계가 달려 있는 곳이 산업이다, 숱한 사람들이 일생을 바쳐 일하는 곳이 산업이다. 그런 곳이 신성하지 않다면, 어디가 신성하겠는가.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는가.

우리나라 교육산업의 현황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엇이 될까. 그것은 「不實」이 아닌가 생각된다. 교육산업은 하나의 不實(부실)산업이고 그 산업을 구성하는 많은 학교는 부실기업으로 비유할 수 있다. 우리나라 경제가 고도성장 과정에서 많은 부실산업을 만들어 냈던 것과 같이, 우리나라 교육산업도, 급팽창 과정에서 많은 부실을 만들어 냈다.

「부실」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생산요소의 투입(input)에 비해 산출물(output)의 질이 나빠서 잘 팔리지 않기 때문에, 생산자가 利潤(이윤)을 내지 못하고 구조적으로 항상 赤字를 보는 상태를 말한다. 교육산업은 이윤을 내는 산업이 아니기 때문에 부실이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거기에도 생산성의 개념, 實不實의 개념이 유용하기는 일반산업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교육기관의 생산요소란 무엇인가. 교원과 교재, 그리고 학교의 시설이다. 산출물은 무엇인가. 그것은 「人材」다. 학교는 人材를 생산하는 업체이다. 교육이 부실하다는 것은 비용은 많이 드는데도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과 건전한 가치관을 갖춘 人材를 충분히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人材라 함은 사회의 엘리트, 즉 지도급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는 지도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현대사회는 무수히 많은 직종 내지 직업이 있다. 나라가 잘 되자면, 모든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다같이 그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맡은 바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人材이다. 은행원도 人材이고, 간호사도 人材이며, 청소부도 人材다.

흔히, 지금의 시대를 「競爭시대」라고 한다. 「경쟁」이라는 것은 상대방보다 生産性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말한다. 우리는 후진들에게 경쟁시대를 살아 나가는 데 필요한 능력, 즉, 많은 사람에 비해 생산성을 높게 유지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 능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하나의 기술이나 斷片的인 지식은 아니다. 왜냐하면, 현대사회에서는 어제 필요했던 지식이나 기술이 오늘에는 이미 불필요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교육은 「좋은 습관을 갖게 하는 일」

따라서 불확실한 시대의 경쟁력이란 어려운 경우에 봉착해도 그것을 극복하여 새로운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능력(體力, 德性, 知力)을 말한다.

그 능력은 구체적으로 어떤 능력인가.

첫째는 튼튼한 신체이다. 튼튼한 몸,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경쟁력이다. 선천적으로 건강한 사람도 물론 있지만, 건강한 신체는 각자가 만들어 내야 한다. 둘째, 어려움을 극복하여 轉禍爲福(전화위복)을 일구어 낼 수 있는 강한 정신력, 인내심이 중요하다. 사실, 능력 있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轉禍爲福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셋째, 다른 사람, 다른 환경에 잘 적응 할 수 있는 적응력, 응용력이 필요하다. 모르는 생소한 사람과 대할 때 (또는 생소한 문화에 접할 때),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통찰력과 자기를 상대방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설득력이 이것이다. 넷째, 어떠한 시대가 와도, 창조적으로 자기의 방향을 찾아내고, 자기의 영역을 확보할 수 있는 진취성과 창조력이 경쟁시대에는 대단히 중요하다.

다섯째, 자기와 사물을 客觀的(객관적), 大局的(대국적)으로 보고, 恒心(항심·변하지 않는 마음가짐)과 지혜를 가지고 살 수 있는 知力이 필요하다.

그 밖에도 또 있겠으나, 대충 이러한 능력을 구비한 인재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경쟁시대 교육의 목적이다.

자, 그러면 이러한 소양은 언제 누가 길러야 하나. 우선 무엇보다도 가정, 그리고 유치원 교육이 중요하다. 신체 건강하고, 예의와 인내성, 그리고 공평과 절제를 생활화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가르쳐야 한다. 동서양의 철인들이 모두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孔子는 「性相近也.習相遠也」(사람의 본질은 다 비슷하지만, 습관이 사람을 아주 다르게 만든다)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훌륭한 일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의 습관이 쌓여서, 그것이 어떤 순간에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1632~1704)는 1693년의 저서, 「교육에 관한 고찰(Some Thoughts Concerning Education)」에서 「교육이란 기본적으로 좋은 습관을 기르는 일」이라는 취지의 말을 여러 번 반복하였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가장 중요한 일, 이를테면 일상생활의 예의, 남을 위한 배려, 정직의 중요성 등은 가정과 유치원에서 터득하도록 해야 한다. 모든 것은 배워야 할 시기가 있다. 가정과 유치원에서 배워야 할 것을 거기서 못 배우면 다시는 배울 기회가 없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유치원에서 배워야 할 것을 배울 수는 없다.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자녀들이 경쟁사회에서 이기기 위해 어떤 便法을 가르치려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을 가르친다는 것은, 나중에 형무소에 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디까지나 正道에 따라, 튼튼한 몸과 지성과 덕성의 기초를 기르도록 해야 한다. 나는 우리나라의 모든 학부모에게 상술한 존 로크의 「교육에 관한 고찰」을 一讀하기를 권고하고 싶다.


國語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부모와 친구들과의 정상적인 대화와 접촉이 이루어져서, 眞善美에 대한 이해가 자연스럽게 터득되도록 해야 한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이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피아노를 가르친다, 속셈을 가르친다 하면서 분주를 떨지 말아야 한다. 경제교육은 10代부터 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한다.

이 나라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과목이 무엇인가. 수학인가? 물론 수학은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도덕인가? 그것도 중요하지만, 도덕은 말만으로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국어를 잘 가르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論理整然(논리정연)하게 말할 수 있고, 적절한 어휘를 골라 자기의 의사를 잘 표현하여 남을 설득시킬 수 있는 능력. 사실 이것이 모든 교육의 근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 미국의 저명한 대학의 학부를 다녔기 때문에 미국교육의 장단점을 알고 있다. 거기 학생을 보면 수학을 모르고 자질구레한 지식이 적은 학생도, 나름대로 적절한 어휘를 쓸 줄 알고 논리 정연한 사고를 하고, 조리 있는 말을 할 줄 아는 것을 보고 아! 이것이 교육이고 미국의 힘이라는 것을 느낀 바 있다.

미국 사람들은 흔히 자기네들은 아이들을 語文계통에 치중해 가르치는 데 비해, 한국이나 일본은 수학, 과학 등을 많이 가르치기 때문에 미국학생들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말을 가끔 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결국 그네들의 교육이 옳다고 나는 본다. 나는 미국의 수학자나 과학자들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고, 한국이나 일본의 수학자, 과학자들이 더 우수하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다. 결국 보통 미국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영어(English)인 것이다. 같은 이치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한국어다.

내가 국어를 잘 가르쳐야 한다고 하는 것은 민족주의 사상이나, 전통의 중요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우리 민족을 존중하지만 민족주의자는 아니다. 다만 강조하는 것은 인간은 말의 매개를 통하지 않고는 사고를 할 수도 없고, 사상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말이란 문화를 만들어 내는 도구상자와 같다. 좋은 집을 짓자면, 건축도구의 상자 속에 다양한 도구가 차 있어야 한다. 같은 이치로 좋은 사상을 만들어 내자면, 말의 상자 속에 좋고 다양한 말이 가득 차 있어야 한다. 쓰는 말이 빈약하다는 것은 생각이 빈약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생각이 빈약한 민족은 풍부한 문화를 창조할 수 없다. 글을 똑바로 쓰지 못하는 사람의 머리에는 論理가 없다.


國語의 70~80%를 차지하는 漢字는 반드시 배워야

특히 漢字는 중요하다. 우리말의 70~80%가 漢字語이기 때문에, 한자어를 뽑아내 버리면, 아침저녁 쓰는 일상어 밖에 남는 것이 없다. 우리말은 남는 것이 없고, 우리말의 바구니는 텅텅 비게 된다. 한자를 모르고는 한자어를 이해할 수 없고, 배우기가 무척 어려워진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語文정책이 한글專用이기 때문에, 우리의 후진은 말의 바구니에서 좋은 말을 뒤져도 모두 한자어 뿐이니 쓸 수 있는 도구는 턱없이 부족하게 됐다. 우리 후진들은 우리말을 제대로 모르고, 또 제대로 모른다는 것도 제대로 모르고, 좋은 소질을 타고났음에도, 높은 수준의 문화를 창출할 능력을 원초적으로 박탈당한 채, 일생을 살게 됐다.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나라의 대학은 진정한 知性人, 전문지식을 갖춘 인재를 충분히 배출하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대답은 역시 「否」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일류대학 졸업생들이 외국의 일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는 사람들을 나는 많이 알고 있다. 그들은 모두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문 분야에 대해서는 논문도 많이 쓰고 지식도 있으나, 그들 중에는 간혹 전반적인 식견이 좁고 엷어서 지성인답지 않은 경우가 없지 않다.

그 이유는 이 사람들이 제때에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하고, 특히 우리의 대학 학부교육이 빈약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학부시대 때에 배워야 할 것을 잘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리 세계 일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아도 知性人이라는 인상을 주기가 어려운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나라에서는 가정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교육이 실패하고 있다. 국민의 교육관이 불건전하기 때문에 교육열이 높으면 높을수록, 교육은 비례하여 부실화되어 있다. 일반 기업에 있어, 투자의 기준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투자를 하면 할수록 不實기업이 많아진 일반산업의 경우와 완전히 똑같다. 기업의 경우에는 IMF가 와서 싫든 좋든 임시적으로나마 그 부실을 털어 주었다. 그러나 교육의 부실을 털어 줄 IMF는 없다. 우리 스스로가 국산 IMF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한국은 일류국가가 될 수 없다.

한국 교육을 부실로 이끈 원인으로 다음과 같이 일곱 가지를 들 수 있다고 나는 본다.

첫째, 교육에 대한 국민의 가치관이 잘못돼 있다. 교육을 출세 내지 돈벌이의 수단으로 보는 관념이 이것이다. 왕조시대에 유학의 목적이 科擧에 오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결과, 학문이 죽었고, 끝내는 나라가 망했다.

둘째, 가정교육부터 고쳐야 할 점이 많다. 어린이에게 규율과 인내, 공평과 양보와 절제를 가르치지 않고, 남에게 폐를 끼치더라도 기를 죽이지 말라는 취지에서 방종과 무례를 가르치고 있다. 문명인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야만인이 되라는 것이다. 남을 밟고 올라서야 이길 수 있다는 그릇된 관념이 어린이를 망치고 끝내는 이 나라를 망칠 것이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유아에게, 갖가지 레슨을 강제함으로써 아이를 정서 장애자로 만들면서, 부모는 스스로 교육에 정성을 들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優越」을 인정하자

셋째, 주로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사항이지만, 「平準化」가 교육을 망치고 있다. 凡庸(범용·mediocrity)을 위해, 優越(우월·excellence)을 포기하자는 것이니, 凡庸이 어떻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平等主義(평등주의)가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대학에 있어서도, 年功序列(연공서열)에 의해, 승진이 이루어지고, 봉급도, 담당과목도 다 똑같다. 우월(Excellence)에 대한 배려는 거의 없다.

넷째, 한글 전용의 정책이 이 나라의 수준을 낮추고 있다. 이 나라 後進이 漢字 문맹이 된다면, 이 나라의 문화 수준은 동양에 있어서는 중국, 일본을 따를 수 없으며, 서양나라에 비견할 만한 문화는 영영 도저히 창출할 수 없다. 서양이나 다른 동양 국가에 비해 우리에게 문화에 관한 「比較優位(비교우위)」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서양 사람보다 漢字를 손쉽게 알 수 있고, 漢字圈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뿐일 것이다. 이것을 모르고, 편협한 민족주의의 관념에서 한글전용을 하게 됐으니, 스스로 문화적 自害(자해)의 길을 택하고 있다.

다섯째, 대학을 너무 많이 세웠다. 그 결과, 이제는 대학 신입생 정원이 고교 졸업생 수를 능가하게 됐다. 대학 교육의 質이 올라갈 도리가 없다. 교육부 당국은 가급적 대학 수를 지금의 절반으로 줄이고, 학과의 수를 줄이고, 교수의 수를 줄이고, 모집인원을 줄이도록 다양한 誘因(유인)을 설정하기 바란다.

여섯째, 우리나라의 교육은 거의 대부분 「供給者 爲主(공급자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학생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학교의, 또는 선생의 필요에 의해, 강좌가 개설되고, 학과가 설치되고 학생 정원이 책정되고, 수업시간이 배정되고 있다. 학문이 生氣(생기)를 잃고, 학생이 교과내용에 대하여 흥미를 잃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곱째,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官(관)의 통제가 너무나 많다. 획일적인 기준에 따라, 행정에 편리하도록 교육행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나라의 문화가 살자면 교육에 (그리고 사회에)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문화의 최대 敵은 劃一性이다. 官治교육의 가장 큰 폐해 중의 하나는 관청의 잣대는 언제 어디에 있어서나 획일적이라는 데 있다.

흔히, 한국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대학 入試에 관련돼 있다고 말한다. 물론 대학 입시에도 문제가 많다. 그러나 대학입시의 문제는 上記 일곱 가지의 문제가 파생한 결과다. 보다 기본적인 上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대학 입시의 문제는 해결될 길이 없다.


모든 교육은 對話이다

교육에 관한 기성세대의 가치관이 개선되어야 한다. 거듭 말하거니와 교육의 목적은 인재를 기르는 데 있지, 출세의 편법을 익히는 데 있지 않다. 오직 正道만이 인재를 기른다.

인간의 교육 중에서 가정교육이 아마 가장 중요할 것이다. 교육이란 대화 없이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공자, 맹자,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의 對話를 통한 교육이 모든 훌륭한 교육의 原型(원형)이다. 문명의 利器(이기)의 엄청난 발달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받는 교육의 感化는 대화를 통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간 후로는 학교교육은 학교선생에게 맡겨야 할 것으로 본다. 물론 학교선생이 모두 聖人君子(성인군자)는 아니지만 학부모가 사사건건 학교 일에 간여하는 한, 학교교육은 실패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공기업의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는데, 정작 민영화가 절실히 필요한 분야는 교육이다. 교육의 官治는 교육을 성공으로 이끌 수 없다. 교육은 교육자에 맡겨야 한다.

대학의 운영, 이를테면 학생의 선발, 성적의 평가, 졸업, 그리고 교수의 채용, 승진, 예산의 책정과 집행 등은 총장에게 맡기는 것이 옳다. 교육부의 역할은 학교의 보호, 재정의 원조와 감독의 책임을 수행하는 데 있다.

중·고등학교의 學群制를 폐지하는 것이 좋다. 學群制를 폐지하면, 물론 폐해도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 폐해는 교육을 망치는 평등주의보다는 낫다. 경쟁이 이루어지자면, 코스트가 없을 수 없다.

중·고등학교장에게도 학생지도에 대한 자율의 폭을 넓히는 것이 좋다. 이를테면, 선택과목을 마련한다든가, 특별지도를 한다든가, 그 밖에 학생지도에 관하여 다양성을 도입하면 교육이 살아날 것이다.

교육에는 무엇보다도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사립 중·고등학교는 물론, 사립 초등학교의 설립을 장려하는 것이 좋다. 초등학교 교장에게 漢字를 가르치는 선택권은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떤 제도를 도입하고자 할 때에는 일정기간 동안, 일정지역 내지 학교를 선발하여 일정기간 동안 실험을 해 보고, 결과가 좋으면 대상 지역을 확대하는 방법이 좋을 것이다. 이를테면, 고등학교에 선택과목을 마련한다거나, 理工系 졸업생을 공무원으로 채용한다거나 초등학교에 한자를 가르치는 효과를 알려고 할 때, 일정 학교에 대해 일정기간 동안 시험적으로 실시하는 방법이 좋다.

거듭 말하거니와 우리의 교육에는 자체 IMF가 필요하다. IMF를 만들어 내서 창조와 파괴의 원리를 과감히 도입해야 한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