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는 변명할 수 없다

누가 대통령이 되고 어떤 정권이 탄생할 것이냐는 전적으로 유권자 자신들의 몫이고, 길흉(吉凶) 간에 국민들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일이다.
[류근일 칼럼] '2007 대선'은 유권자들의 싸움
요란한 政治 상품 홍수 속 국민이 리더를 택하는 시대
어떤 정권 탄생하든 간에 전적인 책임은 유권자 몫

‘2007 대선(大選)’을 계기로 매사를 정치인 탓으로 돌리는 국민들의 타성도 이제는 마감했으면 한다. 과거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같은 카리스마가 지배하던 시대엔 리더가 국민을 틀어쥐고 갔기 때문에 매사 ‘그들 덕’ 아니면 ‘그들 탓’으로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부터는 국민이 정치인을 리더 자리에 앉혀주는 시대가 되었다. 노무현씨가 대통령 자리에 앉은 것은 그가 일정한 국민을 틀어쥐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51%만큼의 유권자들이 그를 그 자리에 올려 준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시대’가 정말로 ‘실패한 시대’였다면, 그 책임은 그래서 범여권 사람들처럼 노무현씨에게만 몽땅 뒤집어씌울 일이 아니라, 그를 들어 올려준 51%의 유권자들이 스스로 져야 할 일이다. 예컨대 20대의 취업난이 최악이라고 할 때도, 양심있는 젊은이들이라면 “노무현씨 당신 때문이야”라고 전가(轉嫁)하기 이전에 그에게 표를 준 자신들의 자업자득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국민이 만들어 가는’ 세상은 2007년 대선 때부터 본격화돼야 한다. 옛날 정치 지도자들은 당선을 위해 관권선거, 금권선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방식은 통할 수 없고, 그대신 자기 ‘상품’을 어떻게 근사하게 포장해서 어떻게 요란하게 판촉해야 유권자들을 매혹시킬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하게 되었다. ‘내륙운하’ ‘열차 페리’ ‘수구냉전 배척’ ‘중도개혁’ ‘평화냐 전쟁이냐’ ‘우리도 남북 정상회담 반대 안 해’ 운운하는 각종 정치상품들이 그래서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각자 자기 상품을 개발해서 재주껏 ‘호객(呼客)’하고 ‘판매’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직업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그런 상품들 중 어느 것을 고르느냐 하는 것일 뿐이다.

1950년대 같으면 “최인규 내무장관 때문에…” 1960년대 같으면 “중앙정보부가 무서워서…” 내키지 않은 상품을 억지로 떠맡았다고 변명할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좋은 상품을 택하든 나쁜 상품을 사든 그것은 전적으로 정치 소비자들 자신의 책임이다. 그런데도 ‘2007 유권자’들이 냉철한 소비자로서 정밀하게 상품 감정(鑑定)을 하고 있는지는 아직은 확실하지 않다.

“이명박, 박근혜씨의 ‘내륙운하’ ‘열차 페리’ 등은 타당성, 경제성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 “손학규씨가 ‘냉전수구’를 배척했는데, 한반도에 김정일 수령독재보다 더한 ‘냉전수구’가 또 있는가?” “범여권의 ‘중도개혁’이란 ‘노무현 개혁’과 다른 것인가, 비슷한 것인가, 같은 것인가?” “‘상대방이 이기면 전쟁 난다’고 협박하는 쪽이야말로 누가 되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사람들 아니고 무엇인가?” “한나라당은 왜 갑자기 기절초풍해 가지고 ‘대북정책 변경’ 타령인가?” “북은 핵을 가져도 괜찮고 우리는 손 놓고 있어도 되는가?” “이번 대선에서도 정계와 유권자들이 또 북풍에 놀아날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 더 치열하게 논란되어야 할 터인데, 이렇게 저렇게 색칠당할 것이 두려워 그저 피해가는 게 상책이라는 분위기가 오피니언계(界)를 주눅들게 하고 있고 그것이 올바른 상품선정을 방해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 매장(賣場)의 판촉광고에 현혹당하지 않으려는 ‘깨어 있는 유권자’들도 분명히 있기는 있을 것이다. 예컨대 3월 15일 전주에서 있었던 ‘통합신당 추진모임’이 주최한 한 세미나에서 그곳 지식인들은 “국민이 왜 열린우리당을 버렸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정치적 폼(form)만 바꾼다고 국민이 신당을 지지하겠느냐?”고 물었다. 또 한나라당과는 달리 각종 여론조사에서 70% 이상의 응답자들은 김정일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2007 대선’은 여·야의 싸움이기 전에 ‘제정신 바짝 차린 유권자’들과 ‘무엇에 홀린 유권자’들 사이의 싸움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누가 대통령이 되고 어떤 정권이 탄생할 것이냐는 전적으로 유권자 자신들의 몫이고, 길흉(吉凶) 간에 국민들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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