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FTA의 함정으로부터 탈출해야

한나라당은 FTA의 함정으로부터 조속히 탈출해야 한다
李東馥(전 국회의원ㆍ명지대 초빙교수)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 타결 이후에 전개되고 있는 작금의 국내 정치상황은 세 가지 사실을 보여준다. 첫째로는 이번의 FTA 협상 타결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대선(大選)용 카드라는 사실이다. 둘째로는 이를 통하여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정치 투기사(鬪技士)로서의 진면목(眞面目)을 여지없이 과시(誇示)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셋째로는 이에 대처하는 한나라당의 행태(行態)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아마추어리즘의 극치(極致)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한-미 간에 타결된 FTA 협상 결과에 관해서는 우리가 확실하게 이해해야 할 사실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이해해야 할 일은 FTA는 이번에 그 내용에 관한 양국 정부 간의 협상이 타결된 것이지 협정 체결 절차가 완결되어 발효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FTA가 발효되기까지는 앞으로도 넘어야 할 몇 개의 고비가 있다. 우선 양국 정부는 이번에 타결된 내용을 담은 협정에 조인(調印)을 해야 한다. 그리고 양국의 의회가 이를 비준(批准)해야 한다. 그런 뒤에라야 FTA는 협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FTA가 양국 정부 간의 조인까지 가는 길조차 순탄스러울 것 같지 않다. 우선 문제로 부상(浮上)하고 있는 것은 한-미 양국 정부 사이에 벌써 부각되고 있는 타결된 협정 내용 일부에 관한 이견(異見)이다. 예컨대, ‘개성공단’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문제라든가, 엄격하게 말한다면 FTA 테두리 밖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 허가 문제에 관한 이견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이 같은 ‘이견’에 관한 문제들은, 아직 그러한 것들이 표면화에 이른 것이 없기는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양국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이해(利害)의 상충을 해결하지 못한 채 ‘이면합의(裏面合意)’의 형태로 처리한 것이 혹시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만의 하나, 그 같은 ‘이면합의’의 존재가 사실로 확인되기라도 한다면 FTA가 마저 가야 할 남은 길이 더욱 험난해질 수 있다.

그러나, FTA의 앞길에 등장하는 진짜 장애물은 양국 의회의 ‘비준’이지 정부 간의 ‘조인’이 아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미국 의회로부터 이미 심상찮은 경고음(警告音)이 들려오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들려오는 미국 의회로부터의 경고음은 쇠고기 문제에 국한되어 있는 것처럼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미국도 내년에 공화ㆍ민주 양당이 정권교체 여부를 놓고 격돌하는 대선(大選)을 마지하게 되어 있고 작년 말에 있었던 중간선거를 통해 상ㆍ하 양원에서 다수 의석을 점령한 민주당이 만사(萬事)를 내년 대선에 연계시키는 정치적 행보(行步)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한-미 FTA를 비준해 줌으로써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치적 업적으로 승화(昇華)시켜 내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입장을 유리하게 만드는 정치적 자산(資産) 목록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면 이것을 민주당이 과연 용납할 것이냐 하는 의문이 당연히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경우도 앞으로 ‘비준’까지 이르는 상황은 밝은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이유는 미국과는 판이(判異)하다. 한국 쪽 상황의 특이(特異)한 점은, 물론 여ㆍ야를 가릴 것 없이 주로 농촌 출신 의원들이 동조(同調)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경우와는 정반대로, 대체로 노무현 대통령과 동지적(同志的) 관계에 있는 ‘여권(與圈)’이 이번에 정부가 타결한 FTA에 대한 반대 대열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는 데 있다. 최근 노 대통령의 탈당으로 형식논리상으로는 “‘여당(與黨)’이 아니다”라는 공허(空虛)한 논란의 여지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원내 제2당으로 축소된 열린우리당과 이 당으로부터 2회에 걸쳐서 집단탈당한 의원들로 구성된 ‘중도개혁통합신당추진모임(통합신당)’과 ‘민생정치추진모임(민생그룹)’이 통 털어 여전히 ‘여권’ 정당으로 분류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문제는, 물론 여기에는 스스로 자인(自認)하는 ‘친북ㆍ좌파’ 정당인 민주노동당과 함께 이 나라 ‘친북’ 세력의 대부(代父)인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정신적 적자(嫡子)’를 자처(自處)하는 민주당의 소수 의원들이 가세(加勢)하고는 있지만, 열린우리당 소속의원의 거의 절반과 얼마 전 이 당으로부터 이탈한 ‘통합신당’ 및 ‘민생그룹’ 소속의원들이 한-미 FTA 반대 투쟁에 가담하고 있다는 데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상황에 담겨져 있는 메시지이고 그 메시지는 지극히 간단하고 명료하다. 그것은 이 나라의 ‘친북ㆍ반미ㆍ좌파’ 세력은 한-미 FTA를 ‘대미 종속(從屬)’으로 인식하고 그 같은 인식에 입각하여 이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타결된 한-미 FTA는 지금 제17대 국회에서 본의 아니게 제1당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野黨)’이라는 입장에 변동이 없는 한나라당의 도움이 없이는 국회의 비준동의 표결에서 가결될 전망이 없게 되어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한-미 양국 정부 간의 FTA 협상이 타결된 뒤 지금 이 나라에서는 각계각층의 수많은 전문가(?)ㆍ비전문가들이 신문 지면과 TV 화면에 등장하여 한-미 FTA가 우리에게 가져다 줄 무지개 같은 ‘신기루(蜃氣樓)’들을 그려내노라고 호들갑을 떠는 데 여념(餘念)이 없다. 그러나, 이들의 호들갑에는 두 가지의 필수적(必須的)인 화두(話頭)가 누락(漏落)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 하나는 이번에 타결된 한-미 FTA의 내용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그 같은 한-미 FTA가 이 나라의 국익(國益)에 도움이 되려면 앞으로 대내적으로 많은 적응(適應)과 대비(對備)와 함께 시장경제와 한미동맹에 기초한 한-미 FTA의 건실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금처럼 한-미 FTA에 반대하는 ‘친북ㆍ반미ㆍ좌파’ 세력이 이 나라의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 같은 적응과 대비는 물론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내용이 타결된 한-미 FTA의 성공적인 국회비준과 성공적인 실천ㆍ이행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노무현 대통령이 반드시 선택해서 실행해야 할 일들이 있다. 열린우리당과 ‘통합신당’ 및 ‘민생그룹’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친북ㆍ반미ㆍ좌경’ 노선과 결별(訣別)하게 하든가 아니면 노 대통령이 그들과의 정치적 관계를 청산할 뿐 아니라 금년 12월의 대선에서는 한나라당이 승리하여 ‘보수ㆍ친미ㆍ우파’ 정권을 출범시키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것은 물론 오히려 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그의 정치적 입장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입장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 한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에 한-미 FTA 협상 타결을 이끌어낸 의도의 순수성에 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즉, 그의 진정한 의도는 한-미 FTA 협상 타결은 물론 이의 비준과 발효까지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협상을 타결시키는 것으로 대선 정국에서 한나라당의 ‘보수ㆍ친미ㆍ우파’ 성향을 ‘물 타기’하여 그 지지기반을 잠식(蠶食)하면서 오히려 한나라당을 국회 비준 투쟁의 ‘용병(傭兵)’으로 고용(?)할 뿐 아니라 한-미 FTA 반대세력의 비준 반대 투쟁을 방관(傍觀)ㆍ조장(助長)하는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반미’ 정서를 자극ㆍ증폭시킴으로써 대선 정국에서의 한나라당의 독주세(獨走勢)를 무너뜨리는 국면전환용 카드로 이를 이용하겠다는 정치적 ‘함정 파기’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다.

한-미 FTA 협상 타결 이후 한나라당과 ‘보수ㆍ우익’ 세력이 보여 준 반응은 순진하게도 노 대통령이 파놓은 ‘함정’에 스스로 빠지는 아마추어리즘을 보여주었다. 지금의 상황은 본래 노 대통령의 지지세력이었던 ‘친북ㆍ반미ㆍ좌파’ 세력의 대다수는 비준 반대 대열에 가담하여, 사실상 정부가 제공하는 자금까지 사용하면서, 풀뿌리 유권자 층을 상대로 ‘반 한나라당 포위전선’을 확충하는 가운데 역설적으로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지지세력이 한-미 양국에서 문제의 FTA의 의회 통과를 주도하는 실질적인 ‘용병’ 역할을 자임(自任)하고 있는 형국이 전개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사실은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게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특히, 한-미 FTA에 관한 한,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엄밀하게 말한다면, 협상 타결까지가 그의 몫이지 국회비준은 물론 비준 이후 FTA의 운용과 관리는 더더구나 그의 몫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선택해야 할 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한나라당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우선, 한나라당은, 한-미 FTA에 대한 찬ㆍ반의 차원을 떠나서, 이를 국회에서 비준하는 것이야말로, 책임정치의 차원에서, 노 대통령과 노 대통령의 정치적 지지세력들의 몫이지 한나라당의 몫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에게 한-미 FTA 국회비준 표결에서 찬성투표를 하겠다는 방침을 채택하도록 열린우리당과 ‘통합신당’ 및 ‘민생그룹’ 소속 의원들을 설득할 것을 요구하고 한나라당은 이들 노무현 정권의 소위 ‘여권’ 진영이 확실하게 찬성투표를 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을 경우에만 국회에서의 비준 표결에 참가하겠다는 것을 분명하게 해 주어야 한다.

만약 문제의 소위 ‘여권’ 세력이 그 같은 한나라당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때는 국회에서의 비준 표결은 오는 12월의 대선 이후 또는 내년 6월에 출범하는 제18대 국회로 미루어야 하지 공연히 한나라당이 주도하여 비준을 강행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한나라당은 그렇게 함으로써만 특히 오는 12월의 대선에서 FTA 문제로 ‘친미’ㆍ‘반미’ 편 가르기에 본의 아니게 끼어들어서 불필요한 시비의 대상이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문제의 FTA의 국회 비준에 시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칠레와의 FTA도 국회에서 비준되기까지 17개월이 걸렸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에게 요구할 일이 또 있다. 한나라당은 비단 노 대통령뿐 아니라 국민들에게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해 주어야 한다. 그것은 한-미 FTA가 원만하게 실천ㆍ이행되어서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으려면 대한민국 정부가 ‘보수ㆍ친미ㆍ우파’ 정부여야 하지 ‘친북ㆍ반미ㆍ좌파’ 정권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에게 만약 한-미 FTA를 추진하는 그의 입장에 진실로 진정성이 있는 것이라면 문제의 FTA를 오는 대선에서 ‘친북ㆍ반미ㆍ좌파’ 정권 재창출용 카드로 활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다짐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그러한 다짐의 징표로 노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그가 ‘친북ㆍ좌파’ 정권의 재창출에 도움을 줄 목적으로 그 동안 우격다짐으로 추진해 온 대통령 임기 문제에 관한 소위 ‘원 포인트 개헌’ 제안을 철회해야 하고 아울러 그의 임기 중에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 대선까지 남은 8개월 동안에는 더 이상 새로이 일을 저지르지 않고 오로지 공정한 대선 관리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 같은 조건들이 충족될 때라야 비로소 이번에 타결된 한-미 FTA을 대선에 앞서 국회에서 비준하는 데 한나라당이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깊이 명심할 필요가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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