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족주의의 마지막 과제: 김정일 제거

남북한의 守舊좌익을 제거하고 북한동포를 해방하여 7000만 민족이 공존공영하는 것이 민족주의의 사명이다.
한국 민족주의의 始源은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이다. 신라는 唐과 손잡고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唐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려고 하자 세계최대의 제국인 唐을 상대로 결전하여 그들을 축출하고 한반도를 민족의 생존공간으로 확보했다. 對唐결전을 신라가 회피했더라면 한반도는 唐의 영토나 식민지로 넘어가 韓民族은 형성도 되기 전에 漢族으로 흡수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신라는 對唐결전시 백제, 고구려의 遺民들과 손을 잡았다. 신라는 이 유민들을 심하게 차별하지 않고 거의 평등한 동화정책을 썼다. 여기서 최초의 민족주의적 감정이 싹튼 것이다. 신라에 의한 자주적인 삼국통일에 의해서 한민족은 같은 공간, 같은 풍습과 종교, 같은 정치제도, 같은 언어를 공유하면서 모듬살이를 해가면서 서서히 민족의식을 굳혀갔다. 통일한 지 약250년 뒤 新羅末期에 후삼국 시대가 잠시 있었으나 고려로 재통합되면서 민족통일국가의 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고려가 요, 금, 몽골의 침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민족의식이 강화되었다. 고려를 이은 조선조는 중국의 漢族 정권에 대해서 사대주의 정책을 썼으나 民族魂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문화적으로 중국에 사대한 것일 뿐 國權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세종대왕에 의한 한글창제는 民族魂을 담는 그릇을 만든 쾌거였다. 민족을 규정하는 여러 조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고유한 言語의 존재이다.
신라는 對唐결전으로써 자주성을 확보한 뒤엔 그 唐과 화해하고 唐의 지도력을 인정함으로써 그 뒤 1000년 이상 중국의 漢族 국가와 한반도의 韓族국가 사이에는 친선관계가 유지되었다(이 친선관계를 깬 것이 毛澤東의 침략이었다).
丙子胡亂으로 조선은 오랑캐라고 경멸해마지 않았던 淸에 무릎을 꿇었다. 淸이 중국의 지배자가 되자 조선조의 朱子學 선비들은 事大의 대상을 현실의 强者인 淸으로 바꾸지 않고 없어져버린 明에 대한 의리를 관념적으로 이어갔다. 이런 소아병적인 관념의 유희가 조선조 지배층의 自閉症을 강화했고, 자기 개혁의 동력을 뺏어갔다. 그 결과는 신라 이후 처음으로 나라를 잃고 異民族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이었다.
日帝하에서 한국의 민족주의는 獨立自主自强운동으로 나타났고 대한민국의 建國으로 그 꿈의 일부를 이뤘다. 대한민국은 민족사 최초의 국민국가이다. 신라에 의한 민족통일국가가 약1300년간 진화한 끝에 대한민국이란 국민국가로 나타난 것이다. 북한에선 朝鮮朝보다 더 전제적인 수령독재체제가 등장하여 한국 민족주의의 발전 궤도를 이탈하고, 신라통일 이전의 야만상태로 돌아갔다. 이로써 국민국가 대한민국이 민족사의 정통국가요, 야만적 수령독재체제인 북한정권이 민족사의 異端이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統一新羅期로부터 시작되는 한국 민족주의의 발전과정에서 정치제도도 발전하여 참여의 폭을 계속 확대해갔다. 聖骨, 眞骨, 貴族, 士大夫, 군인, 평민, 국민들이 차례로 정치에 참여하여 나라의 운영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 국민국가가 만들어진 이후엔 국가라는 울타리 속에서 경제발전과 민주화도 이룩했다. 민족주의의 핵심은 제국주의가 아니라 富國强兵과 자유민주의 달성인데 대한민국은 이를 거의 이룩한 것이다.
한국 민족주의의 남은 과제는 민족반역집단인 김정일 정권을 우리 손으로 제거하고 김정일에 의해 인질로 잡혀 있는 2100만 同族을 구출함으로써 7000만 민족이 평화와 자유를 누리면서 共存共榮하는 나라, 즉 一流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김정일은 민족사의 진보를 방해하고 인권을 말살하고 복지를 박탈한 守舊反動세력이자 민족반역자이다. 한국 민족주의의 가장 큰 과제가 金正日과 남한내 從金세력을 제거하는 것이다.

[ 2007-02-20, 22:32 ] 조회수 : 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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