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由黨의 ‘24 보안법 파동’과 盧 정권의 新種 ‘언론 파동’
1958년11월 동료 14명과 함께 견습기자 8기로 한국일보에 입사한 필자는 4명의 동료들과 함께 한국일보의 영자 자매지 The Korea Times 국회ㆍ정당 출입기자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필자가 국회ㆍ정당 출입을 시작한 그해 12월 서울시내 태평로의 국회의사당(현 서울시 의회)은 민주당 등 야당 소속 의원 70여 명이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농성 중이어서 국회 운영이 마비되어 있었다. 쟁점은 여당인 자유당이 추진하는 ‘국가보안법 개정안’이었다.
성탄절(聖誕節) 전야(前夜)인 12월24일 저녁 야당 의원들의 농성 현장을 취재 중이던 국회 출입기자들은 인근 무교동(武橋洞) 소재 식당들로 흩어져서 저녁 식사를 해결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국회 쪽으로부터 “야단났다. 큰 일이 벌어졌다”는 전갈이 왔다. 식사를 중지한 기자들은 국회 의사당으로 달려갔다. 본회의장 2층의 기자석으로 달려 올라간 기자들의 눈앞에서는 믿기 어려운 광경이 전개되고 있었다. 아수라장(阿修羅場)이었다. 농성 중이던 야당 의원마다 4-5명의 우람한 체격의 사복(私服) 인물들이 덤벼들어서 본회의장 밖으로 끌어내는 중이었다.
300여명의 이들 사복 인물들은 자유당 정권이 이날을 위하여 특별히 가려내서 훈련시킨 이른바 ‘무술경위(武術警衛)’들이었다. 이들에 의하여 들려나가는 야당 의원 중에는 조병옥(趙炳玉)ㆍ장택상(張澤相)ㆍ박순천(朴順天) 등 원로 및 여성 의원들도 있었다. 사복 인물들은 이들 원로ㆍ여성 의원들도 사정없이 달랑 들고 나와서 마치 짐짝을 부리듯이 본회의장 밖의 지하층으로 연결되는 계단 쪽으로 집어 던지고 있었다. 이들 야당 의원들이 모두 들려나간 본회의장에는 아마도 어느 곳에 미리 모여서 대기하고 있었음이 분명한 자유당 의원들이 열을 지어 들어와서 5분도 안 걸리는 시간 안에 한 건의 법률안을 가결하여 통과시킨 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것이 우리 정치사의 한 페이지를 얼룩지게 만든 ‘24 보안법 파동’이었다.
이날 자유당이 이렇게 강행 통과시킨 법안은 ‘국가보안법 개정안’이었다. 그러나 이날 자유당이 강행 통과시킨 국가보안법 개정안의 문제가 된 조항은 언론 관계 조항이었다. 당시 국가보안법의 언론 관계 조항은 “북한에 이로운 내용의 기사”를 보도함으로써 “국가안보에 위해를 끼친” 언론 보도를 처벌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당시 자유당은 1년 반 뒤로 박두하고 있는 정ㆍ부통령선거에서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4선 연임(連任)과 이기붕(李起鵬)의 부통령 선출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의 장기집권(長期執權)과 자유당 정권의 누적된 실정(失政)으로 인한 민심이반(民心離反) 및 이기붕의 건강악화 등의 악재(惡材)가 겹친 자유당 정권은 거기에 더하여 언론의 비판 성향으로 인하여 1960년에 있을 정ㆍ부통령 선거에 대해 도저히 낙관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여기서 자유당 정권이 생각해 낸 것이 국가보안법의 언론 관련 조항을 이용하여 겁박(劫迫)함으로써 언론의 비판적 성향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구(舊) 국가보안법으로는 이 법의 언론 조항을 가지고 언론을 처벌하려면 문제 삼는 보도 내용이 “북한을 이롭게 할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진 것을 법정에서 ‘입증’하는 것이 필요했고 이 ‘목적’을 ‘입증’하는 것은 실제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 구법의 조항으로 언론을 재갈 물리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여기서 자유당 정권이 고안(考案)해 낸 것이 이 언론 조항을 ‘목적범’이 아닌 ‘결과범’ 처벌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 개정안에 의하면 이제는 그러한 ‘목적’을 가지지 않았었더라도 보도의 내용이 “결과적으로 북한을 이롭게 한 것”으로 ‘인정’되면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누가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개정된 국가보안법에 의하면 그 ‘인정’은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의 몫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전체 언론이 이 같은 국가보안법 개정에 반대했고 민주당 등 야당은 이 같은 국가보안법 개정의 이면(裏面)에 숨겨진 자유당의 정치적 흑심(黑心)을 간파(看破)했기 때문에 본회의장 점거(占據)라는 초강수(超强手)로 이를 저지(沮止)하려 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언론에서는 문제의 ‘24 보안법 파동’을 ‘언론 파동’이라고 일컫기도 했었다.
‘24 보안법 파동’ 다음 날은 크리스마스였다. 이날 아침 도하(都下) 신문들은 전날 밤 국회 본회의장에서 있었던 드라마를 대서특필(大書特筆)했다. 한국일보와 The Korea Times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일보와 The Korea Times의 이날 사설 제목은 “언론의 자유와 책임”(The Korea Times 사설 제목은 “Press Freedom versus Responsibility”)이었다. 그리고 당시 The Korea Times는 사설의 하단(下段)에 영국의 최대 신문 The (London) Times의 100년 전 같은 날 사설을 요약하여 게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인 웬 일인가? 1858년12월25일자 The Times의 사설 제목이 “Press Freedom versus Responsibility”가 아닌가? 그때 필자의 뇌리(腦裏)를 스쳐간 상념(想念)이 지금도 머리를 때린다. “아, 영국과 우리나라 사이에는 최소한 100년의 격차(隔差)가 있구나!”
‘24 보안법 파동’은 지금부터 49년 전의 일이다. 내년이면 반세기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신종(新種) ‘언론파동’이 머리를 들고 있다. 이 나라 대통령이 새로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직계 하수(下手) 세력인 청와대의 지시로 이 정권은 정부 각 부처의 ‘기자실’을 폐쇄할 뿐 아니라 기자가 정부 청사에서 공무원을 만나려면 ‘취재 목적’과 ‘취재원(取材源)’을 사전에 신고하고, 취재가 이루어질 경우에는, ‘전자 패스’ 등의 방법으로 누가 누구를 얼마 동안 만났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려 하고 있다. 당(黨)과 ‘빅 브라더(big brother)’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조지 오웰의 ‘1984년 식 통제’의 세계가 이 땅에 펼쳐지려 하는 것이다.
이것은 1958년 자유당 정권이 국가보안법 개정을 통해 시도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지능적이고 원천적인 언론 재갈 물리기다. 그때의 수법은 ‘결과’를 가지고 ‘처벌’을 위협하여 언론을 겁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노무현 정권이 동원하는 수법은 보다 직접적이다. ‘취재’를 제약하는 것이다. ‘언론자유’의 핵심은 ‘취재’다. ‘정보’에의 ‘제한 없는 접근’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 ‘언론자유’는 원천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정보’에의 ‘제한 없는 접근’이 보장되지 않고 ‘당국’이 ‘제공하는 정보’만을 보도하는 사회는 북한 사회와 똑 같은 사회다. 그런 뜻에서 본다면 이번 노무현 정권의 ‘취재 제한’ 조치는 지난 9년간의 좌파 정권 치하에서 대한민국 사회가 “이미 적화(赤化)되었다”는 일부 보수세력의 극단적인 표현에 일면의 진리가 담겨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서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1958년 ‘24 보안법 파동’은 1960년 자유당 정권의 몰락(沒落)을 예보(豫報)하는 풍향계(風向計)가 되었다. 역사적 필연성(必然性)의 차원에서 본다면, 지금 노무현 정권이 시도하는 새로운 ‘언론 파동’은 오는 12월에 있을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지난 9년 동안 대한민국을 흔들고, 부수고, 망가뜨리고 깨뜨리는 일에 전념(專念)해 온 친북(親北)ㆍ좌파(左派) 정권의 몰락을 예보하는 풍향계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保障)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1958년12월의 ‘언론 파동’이 공짜로 1960년의 ‘4.19 학생혁명’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상기(想起)할 필요가 있다. ‘24 보안법 파동’ 이후 이 나라 야당은 “못 살겠다, 갈아 보자”는 구호를 앞세워 원내외(院內外)를 가리지 않는 치열한 대정부ㆍ대여 투쟁을 전개했고 이 같은 야당의 대정부ㆍ대여 투쟁과 주로 학생들이 주축이 된 반정부 투쟁 사이에 접목(接木)이 이루어짐으로써 1960년 3.15 정ㆍ부통령 선거 날 일어난 ‘마산(馬山) 시위’를 기점(起點)으로 ‘4.19 학생시위’ㆍ‘4.25 교수 데모’ㆍ‘4.26 이승만 하야(下野)’ㆍ‘4.28 이기붕 일가 자살(自殺)’ 등으로 숨 가쁘게 이어진 ‘4.19 학생혁명’의 드라마가 펼쳐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새로이 막을 여는 신종 ‘언론 파동’의 와중에서 이 나라 유일야당(唯一野黨)(?)인 한나라당의 역사 공부와 온고지신(溫故知新)에 입각한 분발(奮發)을 촉구해 본다. [끝]
'1984년'을 연상시키는 노무현 식 언론탄압
- 이동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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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5-24, 10: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