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충북음성군 감곡면에 오궁리의 '외할머니집'이란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朴正熙 대통령 초상화가 벽에 붙어 있었다. 주인을 불러 물어보니 '저의 아버님께서 존경하는 분이라 산 것이다'고 말했다. 음식점 벽엔 눈에 익은 漢文이 걸려 있었다.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論語에 나오는 孔子의 말이다.
<君子는 서로 화목하나 다르고 소인은 같으나 화목하지 못한다>
君子는 생각이나 출신이 다른 사람들과도 잘 화합하지만 소인배는 생각이나 출신이 같은 사람들끼리도 화합하지 못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같은 편끼리 더 치열하게 싸우는 이는 소인배이고 다른 편과도 사이 좋게 지내면서 自我와 主見을 지켜가는 이가 君子라는 뜻이다.
민주주의는 생각이나 출신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기술이다. 孔子는 '和而不同'이란 말로써 민주주의 시민의 윤리를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요사이 중국의 지도부가 이 말을 자주 쓴다. 같은 편끼리 싸우느라고 조국의 主敵에 대한 싸움을 잊어버린 한나라당과 李明博, 朴槿惠씨한테 선물하고 싶은 문장이었다. '和而不同'이란 단어를 구글로 검색하니 철학자 安秉煜 선생의 글이 있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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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種類의 社會
安秉煜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社會가 있다.
첫째는 정글사회요, 密林社會다.
아프리카 밀림에 가면 온갖 野獸와 動物이 산다. 밀림사회에는 暴力과 鬪爭의 法則이 지배한다. 사자가 사슴을 만나면 즉석에 죽여버린다. 사느냐 죽느냐, 먹느냐 먹히느냐의 殘忍한 殺生이 벌어진다.
中國의 文人 蘇東坡가 갈파한 바와 같이 '弱之肉은 强之食'이 된다. 약한 자의 고기는 강한 자의 밥이 된다. 정글사회는 弱肉强食의 殺伐한 투쟁이 전개되는 야만사회다.
파리는 개구리에 잡아먹히고, 개구리는 독사한데 잡아먹히고, 독사는 악어한데 잡아먹힌다. 밀림사회는 對話도 없고 同情도 없고 協同도 없고 禮節도 없고 學校도 없다. 그것은 道德以前, 道德以下의 사회다. 가장 비참한 下等社會다.
動物은 生理構造가 暴力的이다. 사자의 억센 鬪爭力, 호랑이의 사나운 이와 발톱, 코뿔소의 무서운 뿔, 독사의 날카로운 혀, 고슴도치의 예리한 피부, 코끼리의 억센 힘, 악어의 흉악한 모습, 모두 무서운 鬪爭의 武器다.
人間은 生理構造가 平和的이다. 간난아기의 微笑, 처녀의 맑은 눈동자, 어머니의 따뜻한 손, 할머니의 仁慈한 마음, 少年의 밝은 표정, 모두 평화로운 것이다.
인도의 위대한 聖者 간디는 이렇게 외쳤다.
'暴力(힌사)는 동물의 법칙이요, 非暴力(아힌사)는 인간의 법칙이다.'
인간은 平和의 動物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人間社會에도 정글사회의 폭력이 존재한다. 그것이 戰爭이다. 强한 나라는 武力과 軍事力으로 弱한 나라를 征服하고 侵略한다. 강한 나라는 帝國主義者가 되어 약한 나라를 植民地로 만든다. 사회학자의 調査에 의하면 과거 2000여년동안에 戰爭이 약 3000번 일어났다고 한다. 전쟁이 없었던 해는 겨우 268년 밖에 안된다.
人類의 역사는 平和의 歷史가 아니고, 戰爭의 歷史였다. 아세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대부분의 나라는 歐美의 帝國主義 列强 세력의 植民地로 전락하여 다년간 온갖 不幸과 비극을 겪었었다. 언제 일류는 전쟁에 終止符를 찍고 永遠한 平和의 세계를 構築할 것인가.
전쟁을 발명한 자에게 詛呪가 있으라.
라고 平和의 哲學者 럿셀은 외쳤다. 독일의 大哲 칸트는 1795년에 『永久平和論』을 쓰고 이 글은 나의 夢想曲이라고 하였다. 지상에서 전쟁을 없게 하는 것, 이것이 人類의 가장 크고 간절한 念願이다.
둘째는 스포츠 社會다.
스포츠 사회에는 公正과 競爭의 법칙이 지배한다. 鬪爭과 競爭은 槪念과 次元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투쟁은 動物的이고 잔인하다. 투쟁은 상대방의 存在를 부정하고 抹殺하려고 한다. 競爭은 人間的이고 平和的이다. 경쟁은 相對方의 존재를 認定하고 公明正大한 게임을 通하여 서로 룰과 規則을 지키면서 正正堂堂하게 勝負를 가린다.
스포츠는 弱肉强食의 세계가 아니고 優勝劣敗의 세계다. 힘과 技術이 優秀한 자는 이기고 劣等한 자는 敗北한다. 투쟁은 野獸的이고 動物的이요, 競爭은 人間的이고 紳士的이다.
公正을 原則으로 삼는 스포츠는 반드시 두가지의 原則을 지켜야 한다. 첫째는 審判에 절대로 복종해야 하고, 둘째는 게임의 룰을 꼭 지켜야 한다. 반드시 fair play, 公正한 경쟁을 해야 한다. foul play, 不正한 경기를 해서는 안된다.
公正의 原則, 正義의 秩序, 遵法의 精神, 이것이 스포츠의 정신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떳떳하고 얼마나 훌륭한가. 스포츠는 平和의 祭典이요, 感激의 드라마요, 熱狂의 도가니다.
세상에 스포츠처럼 우리를 感激하게 하고 興奮시키고 陶醉시키는 것이 없다. 國家와 人種을 초월하고, 宗敎와 言語와 피부의 障壁을 넘어 손에 손을 마주 잡고 인류가 한 마음이 되어 한마당에서 평화와 기쁨의 祝祭를 벌인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感激스럽고 幸福한 일이다.
스포츠의 精神은 全力 투구의 정신이다. 운동선수는 個人의 명예와 국가의 榮光을 위하여 자기의 最善을 다한다. 勝者는 머리에 月桂冠을 쓰고 목에 金메달을 걸고 우레와 같은 喝采를 받는다. 敗者에게는 激勵의 따뜻한 拍手를 보내고 다시 만날 것을 期約하면서 서로 惜別의 악수를 나눈다.
이것은 참으로 따뜻한 人間關係다. 세상에 스포츠맨쉽처럼 자랑스러운 것이 없다. 스포츠맨은 明朗하고 闊達하고 光明正大하고 浩然之氣가 넘친다. 우리는 스포츠맨쉽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이번 월드컵에서 世界四强에 進出하여 强烈한 民族的 自尊心과 矜持를 體驗했고 뜨거운 응원과 秩序있는 행동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체험은 우리의 가장 貴重한 체험이다.
셋째는 심포니 社會요, 交響樂 社會다.
심포니 사회에는 協同과 調和의 法則이 지배한다. 交響樂은 모든 樂器가 저마다 다르고 제각기 소리가 틀리다. 피아노는 피아노 소리를 내고, 바이올린은 바이올린 소리를 내고, 나팔은 나팔 소리를 내고, 색스폰은 색스폰 소리를 낸다. 여러 악기가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면 여러 소리가 서로 妨害하고 서로 侵犯하여 混亂과 無秩序의 亂脈相을 이루기 쉽다.
그러나 교향악은 그렇지 않다. 서로 다른 여러소리가 相互 衝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어울리어 協同의 美를 자아내고 아름다운 調和를 이루어 音樂이라는 위대한 價値를 創造한다. 심포니는 놀라운 가치 창조의 世界다.
교향악은 모든 樂士가 저마다 제멋대로 演奏하는 것이 아니다. 콘닥터의 指示에 따라 一絲不亂하고 秩序整然하게 연주한다.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움 하모니의 세계다.
교향악의 모든 소리는 淸音이요, 和音이다. 騷音과 雜音이 아니다. 우리는 심포니와 같은 秩序와 調和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농민은 농민의 목소리를 내고 기업가는 기업가의 목소리를 내고 근로자는 근로자의 목소리를 내고 知識人은 지식인의 목소리를 내되, 여러 목소리가 어지럽게 다투는 것이 아니라 서로 牽制와 均衡을 이루면서 협동과 조화의 사회를 創出해야 한다.
심포니 사회는 나도 살고 너도 사는 常生의 世界요, 서로 調和를 이루는 共生共和의 세계다. 우리가 건설해야 할 사회는 共鬪共滅하는 相剋相爭의 세계가 아니고 協同과 調和의 共同體 사회다. 심포니 사회의 原理를 가장 簡潔明快하게 要約한 것은 孔子다.
孔子는 이것을 '和而不同'의 네 글자로 표현했다. 남과 附和雷同하지 않고 서로 調和하고 서로 親和하는 것이 和而不同이다. 同은 附和雷同하는 것이다. 一定한 識見과 主體性도 없이 남의 意見에 경솔하게 盲從하는 것이 附和雷同이다.
우리는 確固한 自主的 判斷力을 가지고 賢明하게 행동해야 한다. 人間關係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과 和를 이루는 것이다. 和는 調和의 和요, 和睦의 和요, 親和의 和요, 平和의 和다. 우리는 附和雷同 하지말고 서로 親密하고 和睦한 人間關係를 이루어야 한다. 이것이 和而不同이다.
심포니는 여러 樂器가 不同하지만 서로 협동과 조화를 이루어 음악이라는 뛰어난 價値를 창조한다.
孔子는 音樂을 지극히 좋아했다. 孔子는 韶라는 名曲을 듣고 음악에 心醉하고 感動하여 고기 맛을 잊어버릴 地境에 이르렀다고 述懷했다.
聞韶 三月 不知肉味(論語 述而篇)
스포츠 사회는 대단히 좋지만 勝者와 敗者가 있다. 모두 승자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심포니 사회에서는 모두가 勝者가 된다. 敗者가 없다. 심포니 사회는 저마다 創造的 自己表現을 하는 사회다.
이 세상에서 가장 最高의 사회는 어떤 사회냐. 모두가 勝者가 되는 和而不同의 심포니 사회다. 이것이 가장 理性的인 사회다. 우리는 이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심포니 사회를 건설하려면 모든 國民의 意識水準, 敎養水準, 經濟水準, 道德水準, 人格水準이 높은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국민의 人格水準과 敎養수준이 낮으면 결코 심포니 사회는 건설할 수 없다. 우리는 심포니 같은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우리의 精神水準을 높은 경지에까지 높이 끌어 올려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가장 重要하고 가장 切實한 것은 國民水準 向上運動이다. 훌륭한 國民만이 훌륭한 國家를 만들 수 있다.
君子의 和而不同과 小人의 同而不和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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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5-24, 2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