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國交정상화 40년 뒤, 오늘의 韓日 관계

趙甲濟 기자의 현대사 강좌 5:巨大한 物的·人的 교류가 외교갈등을 中和시켜(5월28일)
오늘은 1965년 6월 韓日(한일) 수교 이후, 40년 동안 한일 관계가 어떻게 진행되었고 이것이 약 20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전체의 한일 관계 속에서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이 관계를 잘 지속시켜 나갈 수 있겠는가에 대해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韓과 日, 숙명적인 관계

한일 관계에는 기본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사를 가지 않는 한, 그리고 일본이 침몰하지 않는 한, 한국과 일본은 영원히 이웃나라로 존재해야 하는 숙명적인 관계인 것입니다. 그것은 곧, 절대로 적대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죠. 적대관계로 가면 양쪽이 다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친하게 지내기도 참 어려울 겁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나라치고 친하게 지내는 나라가 별로 없죠. 더구나 우리는 일방적으로 당한 역사가 더 많지 않습니까?

결국 한일 관계는 경쟁 속에서 협력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西歐(서구) 유럽에서 그런 관계를 찾는다면, 프랑스와 영국, 또는 프랑스와 독일간의 관계가 있겠죠. 특히 프랑스와 독일은 요새 가장 친한 나라가 됐습니다. 유럽에서 프랑스 사람에게 ‘어느 나라가 가장 친한 나라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여론조사를 하면 독일이 나오고, 독일 사람에게 물어보면 프랑스에 가장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됐는가. 두 나라가 싸워서 스코어가 2대 2가 된 겁니다. 나폴레옹 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나폴레옹 시대에는 프랑스가 일방적으로 독일을 짓밟았습니다. 그 뒤인 1870년 普佛戰爭(보불전쟁) 때는 비스마르크가 복수를 했죠. 빌헬름 1세는 파리를 점령한 후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황제 대관식을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1차 세계대전 때는 다시 프랑스가 이겨서 알사스(Alsace), 로렌(Lorraine) 지방을 되찾고 복수를 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초장에 독일이 이겼는데, 드골의 지휘 하에 반격에 성공하여 프랑스가 패전국에서 전승국으로 바뀌었습니다. 두 나라 사이의 스코어가 비슷해졌죠. 치고받으며 서로 화풀이하는 과정에서 兩國관계가 성숙한 셈이죠.

자유통일 돕는 것이 일본이 빚 갚는 길

한일관계가 그렇게 되려면 우리가 대마도를 점령하든지 해서 일본과의 싸움에서 한 번 이겨야 되는데 그것은 불가능하죠. 그렇다면 어떻게 건전한 관계로 갈 것인가. 먼저 한국이 남한 뿐 아니라 북한까지 자유화를 해서 한반도에 강력하고 안정된 민주주의 국가를 확립하고 일본과 대등한 국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 바탕에서 일본에 대해 열등감을 갖지 않고 과거의 원한에 집착하지 않는 건강한 정신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통일은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북분단은 일본에 상당한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패전 후 일본 식민지를 戰後(전후) 처리하는 과정에서, 소련이 북쪽을 차지하고 미군이 남쪽을 차지하면서 분단이 시작됐기 때문에 남북분단의 50% 이상의 책임은 일본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식민지배가 없으면 분단이 없었어요. 우리가 식민지가 됐기 때문에 戰後처리에서 분단이 됐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본 사람들을 만나면, 일본이 한반도가 자유통일을 하도록 돕는 것이 한국에 빚을 갚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일본 사람들은 여기에 선뜻 납득하지는 않습니다. 한반도 통일 과정에 있어서 일본이 협력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를 만들 의무는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韓-美-日 삼각형을 완성하기 위해 독촉받은 韓日수교

1965년의 韓日(한일)수교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내용을 요약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당시는 冷戰體制(냉전체제)였죠.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과 소련을 저지해야 되는데, 아시아 대륙에서는 유일하게 남한이 자유의 前哨基地(전초기지)로 10만 km2를 확보하고 있었어요. 그 당시의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시아 대륙은 전부 빨갛게 됐고, 적화된 유라시아 대륙의 꼬리표처럼 남아있었던 것이 한국이었어요. 6·25 때 유엔군의 도움으로 국제 공산주의의 확장을 휴전선에서 저지했기 때문에 남아있게 된 전초기지였습니다.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남한과 일본과 미국을 연결하는 삼각동맹을 맺어야 극동이 지켜질 수 있고,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확장을 막을 수 있겠다 하는 絶體絶命(절체절명)의 명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1953년, 韓美(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한미동맹이 만들어졌고, 그 뒤에 美日(미일) 동맹이 만들어졌습니다. 삼각형을 그리려면 변이 세 개가 되어야 되는데 두 개밖에 없죠. 한미동맹과 美日동맹은 있지만, 한일 동맹이 없으니까 삼각형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李承晩(이승만) 정부에 압력을 넣었습니다. 제발 일본과 수교를 해 달라고 오랫동안 부탁을 했습니다. 나름대로의 계산이 있었던 이승만 대통령은 1954년 워싱턴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났을 당시 정색을 하고 말했습니다. ‘내가 살아있는 한 일본하고는 절대 相從(상종) 안 한다’는 것이었죠. 때문에 한일 회담은 계속됐지만 별 진전이 없었습니다.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이 그렇게 나왔을까. 아닙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계산이 있었습니다. ‘한국이 아직 戰後 복구가 안 되고 경제력이 미약한 상황에서 일본과 수교를 하면 다시 일본의 식민지로 갈 것이다, 이런 일은 내 세대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죠. 그러나 國力이 팽창된 후의 다음 세대에서는 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외교를 귀신처럼 잘했다고 하는 이승만 대통령이 단지 고집 때문에 일본과의 수교를 거부한 것은 아닙니다.

‘외교의 달인’ 이승만, 평화선 그어 후세 협상카드 제공

이승만 대통령은 1960년대 朴正熙(박정희)가 對日(대일) 수교 협상을 할 때 굉장히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카드를 하나 만들어 두었습니다. 바로 평화선이죠. 1952년에 우리가 일방적으로 동해에 평화선을 딱 긋고는, 이 안에 들어오는 일본 배를 다 잡겠다고 선포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국제법 위반에 가까운 것이죠. 일방적으로 한 것이니까요. 이승만 대통령은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魚族(어족)자원을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통통배 정도뿐이었는데, 일본 어민들이 우리나라 근해까지 와서 다 잡아가니까 어족자원을 보호하겠다는 목적이 있었던 겁니다. 또 하나는, 후에 한일 수교협상을 하게 될 때 이 평화선이 아주 유용한 협상 카드가 돼서 이것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우리가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것은 현실화 됐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평화선 때문에 욕을 많이 먹었지만 평화선 덕분에 얻은 우리의 국가 이익도 많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도 독도를 영유하고 있는 것도 평화선 덕분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反日(반일)외교에 이러한 의미들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한일 수교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공산주의 팽창에 대해 저지선을 친다, 곧 韓美日(한미일) 동맹이 제대로 기능을 하도록 삼각형을 완성한다는 의미가 컸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린다면, 당시 미국의 입장에서는 중국을 저지하는 데 있어서 일본이 중요한 역할을 해 주어야 하는데, 일본은 헌법상의 제약 때문에 외국에서 전쟁이 벌어졌을 경우 직접 참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駐日(주일) 미군의 작전이 마음대로 진행되려면 韓日 관계를 정상화하는 국교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으로서는 이런 경제적 계산도 있었을 겁니다. 한국과 일본을 경제적으로 수직적인 관계로 만드는 것입니다. 일본의 상품이 한국으로 들어가고, 일본의 기술이 한국으로 들어가도록 해서 한국 위에 일본을 놓겠다는 계산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965년부터 2004년까지 40년 동안의 한일 간의 무역성적표는 어떤가. 단 한 해도 우리나라가 일본에 대해 무역흑자를 본 적은 없습니다. 40년 동안 일본이 한국에 물건을 팔아서 2,414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봤습니다. 2,414억 달러가 얼마나 큰돈인가 하면, 작년에 우리나라의 수출 총계가 2,500억 달러였으니까 그만한 흑자를 본 셈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일본에 무역수탈을 당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선진 기술이나 중간재, 기계, 엔진 등을 수입해서 완제품을 만들고 이것을 중국 등지에 팔았죠. 중국에 대해서는 우리나라가 작년에 244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봤어요.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의 40년이 결국 한국과 일본을 경제적으로 묶는 역할을 한 겁니다.

세계무대에서 한국에 날개를 달아준 韓美 동맹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1953년의 韓美(한미)동맹은 미국과의 유대관계입니다. 미국과의 유대관계를 험프리 부통령이라는 사람이 아주 재미있게 표현했어요. “한국의 힘은 미국과 한국의 힘을 합친 것처럼 강하고, 미국의 힘 역시 한국과 미국의 힘을 합친 것처럼 강한 것이 한미동맹이다”

한미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한국이 자유세계 어디에서든 미국의 배경을 믿고 활동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쉬운 예를 하나 든다면, 1977년에 피아니스트 白建宇(백건우)와 尹靜姬(윤정희) 두 사람이 당시 공산 국가였던 유고슬라비아에 가서 피아노를 치려고 했는데, 북한 공작원이 그들을 납치하기 위해 함정을 파놨습니다. 그것을 알고 기적적으로 탈출을 한 두 분이 어디로 갔겠습니까? 그 나라에 있던 미국 영사한테 피신을 했고, 미국 영사는 부부를 비행기에 태워서 탈출하도록 도와줬습니다. 말하자면 급할 때 미국의 힘을 빌리는 것, 미국의 무대에서 우리가 공짜로 놀 수 있었다는 것이 한미동맹 덕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도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해외로 나가기 위해서는 일본을 딛고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을 지나지 않으면 미국으로 갈 수 없고, 또 동남아시아로도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共助(공조) 관계가 이루어져야 해양 문화권에 들어 갈 수가 있는 것이죠. 한국은 한일 수교와 한미 동맹으로 韓美日의 동맹 체제를 완성했고, 이것은 선진-해양-자유 동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선진국과의 동맹관계이지 후진국과의 동맹관계가 아닙니다. 북한이 망한 이유는 소련이라는 후진국, 중국이라는 후진국과 손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우리는 미국, 일본, 유럽이라는 자유진영, 선진국과 손잡았기 때문에 흥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친구와 손잡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처럼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는 두 개의 동맹관계 또는 우호관계에 의해서 확실하게 선진국 대열에 소속이 됐는데, 이 나라들은 해양문화권입니다. 흔히 대륙문화권과 해양문화권으로 크게 나누는데, 대륙문화권은 쉽게 말하면 유라시아 대륙, 러시아, 중국 같은 나라입니다. 이 나라들은 역사의 발전에서 뒤떨어져서 독재국가가 됐고 그 중에서도 사회주의로 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후진국이 되어버렸죠.

역사적으로 보면 대륙문화에 소속되어 있을 때 한국은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이 해양국가群에 소속되어 있을 시기에만 발전할 수 있었죠. 우리나라가 미국과 일본과 손을 잡았다는 것은 세계의 선진국인 해양문화권 속에 들어갔다는 의미입니다. 해양문화권은 어떤 나라인가. 영국, 미국, 유럽과 같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만들어 낸 나라가 해양국가입니다. 해외와 교류하고, 식민지를 개척하고, 무역을 하고, 나라를 개방하고, 외국과의 접촉을 통해서 국가를 발전시킨다는 생각을 가진 나라, 그런 나라가 시장경제도 발전시키고 자유민주주의도 발전시켰습니다.

한국-미국-일본과의 동맹관계는 선진국과의 동맹관계, 해양문화권과의 동맹관계 그리고 자유진영과의 동맹관계였습니다. 덕분에 한국 사람들의 행동반경이 넓어졌죠. 우리나라는 38선으로 북쪽이 막히는 바람에 사실상 섬이 되었습니다. 섬이 되었으니까 얼마나 외롭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북쪽을 포기하는 대신에, 세계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동맹 관계를 맺었습니다. 북한을 잃은 대신에 세계를 얻은 거죠. 세계를 얻도록 한 것이 韓美동맹과 韓日수교였다 하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965년 6월에 서로 사인한 한일 기본조약의 全文(전문)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양국의 공통의 복지 및 공동의 이익을 증진하고 국제평화 및 안전을 유지하는데 국제헌장의 원칙에 합당하게 긴밀히 협력함이 중요하다’ 이 내용이 한일 간 기본 조약의 정신입니다.

대한민국만을 한반도 내 유일한 정통국가로 인정한 韓日 수교

다음으로 韓日기본조약에서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연합 결의 제195호에 따라 한반도에 있어서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확인한다’는 내용입니다. 한일 수교에서 일본은 한반도를 대표하는 주권국가는 한국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협상과정에서 오랫동안 시비가 붙었죠. 일본 측은 ‘북한도 있으니까, 북한을 놓고 어떻게 대한민국만 정통성 있는 유일한 합법국가로 인정할 수 있느냐’며 여러 가지로 발을 뺐는데, 우리 정부는 양보하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일본이 북한과 수교를 하게 된다면 이 조항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 한반도에서 유일한 정통성 있는 국가는 대한민국뿐이라는 것은 우리 헌법에 정해진 바입니다. 이 헌법의 정신을 한일 기본조약에 포함시키기 위해 박정희 정부가 애를 썼고 그것이 성공을 했다는 점, 이것이 한일 기본 조약의 두 번째 의미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한일 기본조약을 만드는 데 있어서 시비가 가장 많았던 부분은, 식민지배에 대한 보상액수 문제였습니다. 요새 일본과 북한이 수교를 하면 북한에 얼마를 줄 것이냐 하는 액수를 가지고 여러 가지 논의가 있는데, 50억 달러 아니면 100억 달러라는 설이 있습니다.

당시에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받은 것은, 3억 달러의 무상지불과 2억 달러의 차관 제공, 그 외에 3억 달러의 상업차관 제공까지 합쳐서 8억 달러였습니다. 이는 1962년에 金鍾泌(김종필) 정보부장과 오히라 외무장관이 ‘김-오히라 메모’를 통해 대충 합의된 내용이었습니다. 요새는 이 액수가 너무 적지 않았느냐며 문제가 되고 있는데,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많은 액수였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8억 달러는 요즘 가치로 계산하면 아마 100억 달러 이상이 되는 돈인데, 당시 일본의 외화 보유고는 몇 십억 달러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회담을 할 때 미국은 오히려 일본 편에 서 있었습니다. 미국은 일본이 한국에 지어놓은 공장 등을 모두 포기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새삼스럽게 일본에 대해 청구권을 주장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평화선은 국제법에 위반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對日(대일)수교를 해서 이 정도 얻어낸 것은 아주 성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십 몇 년이 지난 지금, 왜 그 때 종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느냐 등등 여러 가지 시비가 붙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 기준으로 보면 그런 비판을 할 수 있죠. 1965년 당시 상황에서 우리가 그것을 관철시킬 수 있었겠느냐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저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교 서두른 것은 한국, 일본은 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일수교를 제일 서둘렀던 것은 미국이기도 하지만, 일본보다는 朴正熙(박정희) 정부가 더 서둘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외화 보유고가 떨어져서 1963년에는 거의 부도상태가 됐고, 경제개발을 해야 되는데 內資(내자)를 동원하려고 화폐개혁을 해보니 돈이 별로 없는 상태였습니다. 外資(외자)를 끌어 들여와야 되는데 미국의 對韓(대한) 원조 역시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러면 일본 밖에 없지 않느냐’ 해서 우리는 마음이 급했습니다. 일본은 급한 편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미국이 계속 일본에 빨리 수교하라며 등을 미는 상황이었지, 일본은 한국과 수교하지 않으면 당장 부도가 난다든지 하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약한 입장에서 진행된 것이 한일 수교였다는 이야기죠.

이 수교협상에서 독도문제는 정식의제로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독도문제를 논의하자고 했지만, 박정희 정부는 일관되게 독도는 협상대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1962년 9월 3일 예비 접촉 당시, 일본 외무성의 이세키 아시아 국장은 ‘독도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섬이다. 히비야 공원 정도 밖에 안 되는데 이것은 폭발이라도 해서 없애버리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말에는 아주 재미있는 의미가 있는데, 성경에 보면 솔로몬의 재판이라는 게 있죠. 한 아기를 놓고 두 어머니가 서로 자기 아기라고 하니까, 솔로몬은 ‘그러면 아기를 두 동강 내서 나누어 가지라’고 했고, 그러자 진짜 어머니는 ‘차라리 저 어머니에게 주겠다’고 얘기합니다.

마찬가지로 일본도 독도가 자기 영토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폭파시키겠다는 말을 한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죠.

어쨌든 한일 수교 협상에서 일본은 독도문제를 계속 카드로 이용하려고 했지만, 우리 정부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독도는 분쟁지역화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일본에서 독도 문제를 끄집어내니까 우리가 과잉대응 하는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 독도를 국제분쟁지역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독도는 현실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느긋하게 대해도 됩니다. 일본이 전쟁을 하지 않는 한 독도를 가져갈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너무 신경질적으로 대응을 하면 결국 우리에게 손해가 온다는 말입니다. 잘못하면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자는 여론까지 일어날지도 모르죠. 물론 국제사법재판소로 가는 것은 어느 한 쪽이 갈 수 없고, 쌍방이 합의를 해야 됩니다만, 독도는 명백하게 우리 영토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문헌적으로 확실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방방 뜨면 오히려 약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청구권 자금의 최대 수혜가 된 포항제철

1965년은 우리나라에 중요한 해입니다. 1965년에 최초로 월남파병을 했고, 또 한일 수교를 했습니다. 이것은 朴 정권이 해외 개방 정책을 써서 한국 사람들의 활동무대가 그만큼 넓어졌다는 의미입니다.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했던 1960년대에 우리나라는 외국에서 돈을 많이 끌어와야 했는데, 특히 두 군데에서 많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는 월남戰線에 가서 건설을 하고 용역을 하는 과정에서 현금이 많이 들어왔고, 또 하나는 한일수교 협상에 의한 請求權(청구권) 자금으로 돈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양쪽에서 돈이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1960년대의 경제성장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포항제철이죠. 포항제철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금을 얻으려고 유럽, 미국 쪽으로 뛰었는데, 그 쪽에서 여러 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붙였습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종합제철의 규모가 기껏해야 年産(연산) 30만 톤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이 조건으로는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 수가 없다고 해서 고민을 하던 중 마지막으로 일본에 부탁을 잘 해서 청구권 자금을 쓰자는 대안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일본 쪽에 로비를 했죠. 결국 일본의 철강회사로부터 설비와 기술면에서 도움을 받고, 초기 1억 달러 이상의 청구권 자금을 쓸 수 있게 되면서 포항종합제철이 만들어졌습니다.

포항종합제철 社史(사사)에 보면 ‘민족의 血債(혈채)를 썼다’고 되어 있습니다. 피로 산 채권이란 뜻입니다. 청구권이라는 것이 우리가 고통을 받으면서 피로 산 것이 아닙니까? 8억 달러는 일제시대 고생했던 사람, 징용에 끌려갔던 사람, 종군위안부로 고통당한 사람 등 이런 분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만든 것인데, 박정희 정부는 이 돈을 허비하지 않고 잘 썼습니다. 이 돈을 허비했으면 그만큼 억울한 게 없을 텐데, 8억 달러를 일종의 seed money(종잣돈)로 한국경제 개발에 썼습니다. 그래서 한일 수교가 잘못됐다고 비판하는 사람은 있지만, 8억 달러를 왜 낭비했느냐, 8억 달러를 왜 뇌물로 썼느냐, 왜 가로챘느냐는 등의 시비는 없죠. 민족의 혈채로 만든 것이 포항종합제철이라고 보면 한일수교 40년의 의미가 그렇게 부정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청구권 자금 8억 달러를 받으면서 우리는 ‘양쪽 관계에서 그 이외의 권리, 이해관계에 대한 시비는 이것으로 끝낸다’고 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從軍慰安婦(종군위안부) 문제로 다시 보상을 청구할 수는 없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2천 여 년의 역사상 가장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현재의 韓日

이렇게 해서 지난 40년간의 한일관계는 그 전의 한일관계와는 다르게, 독립국가와 독립국가 간의 대등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2,000년에 걸친 兩國 역사상 지금의 한일관계가 가장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시기입니다. 전쟁과 갈등, 침략과 저항의 관계가 너무 길었는데,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가 할 말을 다하는 지금은 우리 역사상 두 번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언제인가. 한일 관계가 좋았던 때가 고대사에 한 번 있었습니다. 삼국통일 직후였는데, 신라가 삼국통일을 완성한 것이 676년이죠. 신라는 唐(당)나라를 평양에서 쫓아낸 후 한반도 전체는 아닙니다만 평양-원산선 이남의 통일을 이뤘습니다.

일본은 신라의 통일을 막으려고 했죠. 그 때 일본은 백제와 동맹관계였는데, 660년에 신라와 羅唐(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키니까 3년 뒤인 663년에 倭가 약 400척의 배에 3만 명을 태워서 백제에 구원군으로 보냈습니다. 지금의 금강 하구에서 羅唐 연합군과 결전을 벌여서 일본의 大(대)함대가 전멸했습니다. 이 일을 일본 역사에서는 白村江의 해전이라고 합니다. 이후 일본은 한반도에 대한 개입을 포기해 버렸고, 또한 걱정이 많아졌습니다. 당나라와 신라가 손을 잡고 일본으로 쳐들어 올 것이라는 생각에 곳곳에 성을 쌓았습니다. 대마도에 다녀와 보신 분은 아실지 모르겠는데 대마도에 가면 그 때 쌓은 성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고, 규슈 같은 곳 역시 바다에 방벽을 쌓아서 신라군이 쳐들어올 경우에 대비했습니다.

670년에는 일본에서 쿠데타, 즉 壬申(임신)의 亂(난)이 일어나서 天武天皇(천무천황)이라는 사람이 집권을 하게 됩니다. 천무천황은 일본에서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던 유명한 천황입니다만, 천무천황의 집권 과정에서 신라가 그를 지원했습니다. 그는 일본에 와 있던 신라 渡來人(도래인) 세력의 힘을 빌어서 쿠데타에 성공한 것입니다. 백제 세력을 누르고 천무천황이 집권하자 일본은 親(친)신라정권이 됐습니다. 친무천황은 일본 역사에서 고대국가를 완성한 천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대 국가의 기본적인 체제를 완성한 사람입니다. 그 때 국호를 倭에서 일본으로 바꾸죠.

당시 동아시아에서는 사신을 중국으로 보냈습니다. 당나라에 보내는 사신을 遣唐使(견당사)라고 했죠. 그런데 일본은 천무천황이 집권한 30년 동안 견당사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신라와 당나라가 싸워서 서로 적대관계가 되었기 때문에 당나라 편을 들지 않고, 대신 30년 동안 자신의 집권을 도와준 신라에 사신을 몇 백 명 단위로 계속 보냈죠. 사신들이 통일국가를 건설한 신라의 국가운영방식 등을 배워 가서 일본의 그때 헌법인 大寶律令을 반포했다는 것은 우리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닌, 일본 역사학자들의 주장입니다. 한 30여 년 동안 한일관계가 굉장히 좋았는데, 그 뒤 成德大王(성덕대왕) 때부터 관계가 나빠지기 시작하죠.

韓國이 강력할 때 韓日관계도 좋아진다

통일신라나 대한민국이 강한 나라가 됐기 때문에 한일 관계가 이렇게 서로 말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대등한 관계가 된 것입니다. 반대로 한반도가 분열된다든지 한반도가 약해지면 반드시 일본이 한반도에 참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중국도 가만있지 않게 돼서 한반도가 국제 전쟁터로 변하는 경우가 우리 역사에는 많았습니다.

삼국시대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삼국으로 나눠지니까 일본 군대도 들어오고 당나라 군대도 들어와서 한반도는 국제 전쟁터가 됐습니다. 고려시대로 내려오면, 몽고 군대가 자꾸 쳐들어와서 고려를 식민지로 만들었는데 그 뒤 고려군과 몽고군이 손을 잡고 일본을 치기 위해 두 번 원정을 했습니다. 물론 다 실패를 했지만 말입니다.

淸日戰爭(청일전쟁) 역시 한반도의 지배권을 놓고 일어난 전쟁이었습니다. 올해(2005년)가 일본 입장에서는 러일전쟁 승리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만, 러일전쟁은 한반도가 약해지니까 사방에 있던 강대국들이 개입하면서 일어난 전쟁이었습니다. 6·25전쟁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한반도가 강하지 않으면 한국만 전쟁에 휘말려드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강대국들이 진공상태에 공기가 들어가듯 개입을 해서 한반도가 국제전쟁터로 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통일을 해서 강력한 나라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은 우리 민족만이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고 동북아시아, 나아가서 이 세계 전체의 평화를 위해서입니다. 韓日수교 40년의 의미를 통해서 강력한, 통일된, 민주화된 한국을 건설하는 것이 우리민족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점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날의 한일관계를 숫자로 표시하면 이렇습니다. 2004년 작년에 한국에서 일본으로 간 관광객, 일본에서 한국으로 온 관광객을 합치면 400만 명입니다. 상호 방문자가 400만 명이니까 하루에 만 명 이상이 되는 셈입니다.

1965년에는 양국 방문자가 1년에 만 명도 안됐습니다. 40년 사이 왕래객이 400배가 늘어난 것이죠. 제주도 가는 시간이나 히로시마 가는 시간이나 비행시간은 비슷합니다. 부산에서는 오히려 대마도에 놀러가는 것이 서울로 오는 것보다 더 편해요. 쾌속선을 타면 규슈까지 세 시간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이런 物的·人的 교류를 통해서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습니다만, 무역액 면에서 일본은 우리나라 제1의 수입국이죠. 작년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461억 달러의 수입을 했습니다. 일본으로 217억 달러를 수출했습니다. 일본은 우리의 제1의 수입국이자 제3의 수출국입니다. 우리나라가 제일 수출을 많이 한 나라는 중국이고, 두 번째가 미국, 세 번째가 일본입니다.

무역을 통한 韓中日 관계를 보면 아주 재미있습니다. 작년의 경우, 한국은 일본에 대해 244억 달러의 무역 적자를 기록했고, 일본은 중국에 대해 204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중국은 한국에 대해 202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서로 엮여 있는 것이죠. 중국은 한국과 장사해서 손해를 보고, 한국은 일본과 장사해서 손해를 보고, 일본은 중국과 장사해서 손해를 보는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관계, 사실 아주 이상적인 경제구조죠.

美를 능가하게 된 韓中日의 경제규모

韓中日(한중일)의 국력을 합하면 어떨까요? 2003년 통계인데, GDP 기준, 구매력 기준으로 계산하면 세계에서 가장 경제규모가 큰 나라는 11조 달러의 미국이었습니다. 2등은 6조4460억 달러의 중국이고, 3등이 약 4조 달러의 일본, 한국은 약1조 달러입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경제규모를 합치면 미국과 같아집니다. 2005년부터는 韓中日의 경제규모가 미국을 능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경제성장이 빠르니까, 韓中日 세 나라의 경제규모가 미국과 점점 격차를 벌여가게 되고, 세 나라의 국력을 합치면 세계에서 미국, 유럽 전체를 능가하게 될 겁니다. 엄청난 경제성장이죠.

이런 농담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일본을 우습게 아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우리 옆에 있고, 또 일본에 대해서 감정이 있으니까. 축구 같은 것 하면 대충 우리가 이기니까. 그런데 수치로 보는 일본의 국력은 어마어마하죠. 일본의 GDP는 독일하고 프랑스를 합친 것과 같습니다. 이런 나라를 우리가 이웃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통계가 또 하나 있는데, 세계 185개국의 국민 평균 아이큐 랭킹을 보면, 韓中日이 1, 2, 3등입니다. 이 통계는 아일랜드 교수가 만든 것인데, 세계에서 국민 평균 아이큐 1위를 차지한 나라는 홍콩으로 IQ가 107입니다. 2위는 한국으로 106, 3위가 105를 기록한 북한과 일본이고, 중국 본토는 100으로 15등을 차지했습니다. 세계에서 IQ가 제일 좋은 나라가 韓中日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아이큐만큼 잘 살고 있지는 않죠. 아이큐가 좋다는 것은, 언젠가 그만큼 잘 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큐가 높다는 것은 정보화 사회에서 바로 高附加價値(고부가가치) 생산을 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죠. 요새 경제구조를 보면 머리가 좋은 사람은 리어카를 끌지 않고 컴퓨터를 두드려서 돈을 많이 벌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합쳐진 韓中日은 결국 세계에서 가장 다이나믹한 경제지역으로, 앞으로 100년, 200년 이상 번영할 것이라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여기에 미국을 합해야죠. 韓中日만 잘 먹고, 잘 살 수 있습니까? 반드시 미국과 합쳐서 태평양 연안 4개국인 韓美日中(한미일중)이 서로 의논을 하고, 안보를 유지하고, 민주화를 해나가면서 잘 먹고 잘 살아야 공동 번영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현재의 가장 큰 걸림돌은 북한입니다. 韓中日은 이렇게 잘 나가고 있는데 거꾸로 가고 있는 유일한 집단이 북한입니다. 북한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韓中日과 미국의 공동번영도 유지가 안 된다는 것을 이제 국가 지도층은 다 알 수 있을 겁니다. 주변 국가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발전하는 나라가 되고 있는데 김정일 정권이 암덩어리처럼 딱 중간에 끼어서 발전을 저해하고 있습니다. 넓게 보면 결국은 북한을 자유화, 개방화 시키는 쪽으로 역사의 大勢가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언론에서는 일본이 헌법을 고쳐서 軍國主義(군국주의)로 가려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 말이 맞느냐. 저는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오늘날의 일본은 도조 히데키(東修英機)의 軍部가 지배하던 1930년대, 1940년대의 일본이 아닙니다. 민주화된 일본이죠. 일본이 아시아에서 가장 선진된 민주주의 국가라는 점에는 모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國家끼리는 전쟁이 없다

민주주의 국가가 군국주의화된 경우는 없습니다. 이런 통계가 있다고 합니다. 지난 150년 동안 민주주의 국가와 민주주의 국가 사이에 전쟁이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겁니다. 민주주의 국가와 독재국가 사이에 전쟁이 있고, 독재국가와 독재국가 사이에는 전쟁이 있었지만 민주주의 국가와 민주주의 국가 사이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지난 150년 동안 하나의 원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주의 국가는 전쟁을 결심하기가 힘들지 않습니까? 전쟁이라는 것은 기습전을 하고 국민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지도자 몇 사람끼리 작당을 해서 전쟁을 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런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불가능합니다. 함부로 전쟁하는 정권은 선거로 교체됩니다.

지금의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던 때처럼 군국주의화 될 것인가. 일본이 보수화, 우경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이 민주주의 국가로 남아있는 한 군국주의화는 어려울 것입니다. 즉 오늘날의 일본은 군국주의 시대의 일본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일본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과 한국은 인종적으로 가장 가깝습니다. 한국 사람과 인종적으로 가장 가까운 것은 중국 사람이 아닌 일본 사람입니다. 우리의 인종적인 뿌리는 본래 북쪽의 몽골 인종입니다. 몽고 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했던 사람들의 일부는 한반도를 거쳐서 일본까지 들어갔습니다. 물론 남쪽으로부터 올라온 남방계통 민족도 섞여있지만, 한국과 일본은 압도적으로 몽골系입니다. 우리가 외국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보면 한국과 일본 사람이 만났을 때 가장 친해지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일본의 여성 저널리스트 사쿠라 요시코 씨가 쓴 책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일본은 몽골과 한국의 分家(분가)다. 일본 사람은 항상 本家(본가)인 몽골과 한국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本家 사람은 일본으로 건너가서 찬란한 문명을 만든 일본 사람들의 진취성을 평가해줘야 한다.”

한글 專用으로 漢字 문화권에서 이탈 조짐

우리가 같은 인종인 것을 인정하고, 또 서로 다른 것 역시 인정한다면 싸우더라도 조금 덜 각박하게 싸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전제는 우리가 힘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힘이 없이 친하게 지낼 수는 없는 것이죠. 힘없는 사람이 강한 사람과 친하게 지내겠다는 것은, 강한 사람 밑에 가서 屈從(굴종)하겠다 하는 뜻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본인과 한국인은 경쟁하면서 공존할 수밖에 없는 지리적 운명에 처해 있다고 봅니다.

漢字(한자) 문화권에 간이 몸담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韓中日이 한자 문화권 아닙니까? 요새 우리가 한글전용을 하는 바람에 한자 문화권에서 이탈하려고 합니다. 韓美동맹에서 이탈하고 韓日 관계가 나빠지고 있는 것과 동시에, 우리나라만 한자를 쓰지 않아서 한자 문화권에서 이탈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한자를 쓰지 않는 것은 한자 문화권에서만 이탈하는 것이 아닌, 우리 조상들의 전통문화로부터 이탈하는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이 한글로 적혀 있지 않은 것처럼, 우리의 전통문화는 거의 모두 한자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2,000년 역사 중 1,900년 동안의 공용어는 한자였습니다. 한글이 공용어였던 것은 최근 100년 사이의 일입니다.

한자에 대해 조금 더 말씀드린다면, 이제 한자는 중국의 문자가 아니라 韓中日의 공통된 문자입니다. 라틴어가 이탈리아 사람들만의 문자를 넘어 유럽사람 전체의 문자가 된 것처럼 한자는 한국, 중국, 일본의 공통된 문자입니다.

그 증거가 어디에 있느냐. 민주주의라는 말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민주주의라는 말은 중국 사람들이 만든 단어가 아니라 일본 사람이 만든 단어입니다. 요새 우리가 쓰는 현대적인 단어는 거의 전부가 明治維新(명치유신) 이후 일본사람들이 작명한 겁니다. 民主主義(민주주의), 資本主義(자본주의), 市場(시장), 電波(전파), 기준을 세운다 할 때의 基準(기준), 哲學(철학), 學校(학교), 이런 말 전부가 옛날부터 있었던 한자가 아니고 일본 사람들이 만든 한자입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북한의 국호입니다. 여기에서 조선이라는 말만 빼면 나머지는 전부 일본 사람들이 만든 漢字 용어입니다. 민주주의, 일본 사람이 만든 용어입니다. 人民(인민)과 共和國(공화국), 역시 일본 사람들이 만들었어요. 大韓民國(대한민국)이라는 이름에는 일본 사람이 만든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民國(민국)은 중국, 즉 中華民國(중화민국)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은 日帝(일제)를 淸算(청산)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이 국호에서부터 日帝를 청산한 셈이죠.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도 ‘中華’만 빼면 전부 일본 사람들이 만든 용어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毛澤東(모택동)이 그 국호를 싫어했다고 해요. 먼저 선진화된 일본 때문에 중국에서 만든 한자와 일본에서 만든 한자가 같이 쓰이고 있습니다. 한자 문화권을 이탈하면 韓中日의 공동번영 대열에서 탈락한다는 점을 강조드립니다.

일본인과 일본 정부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일본인과 일본 정부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정부는 못된 짓을 참 많이 하고 있어요. 특히 일본 지도층 중에서 한국에 대해 오만한 우월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일본 전체는 아닙니다. 良識(양식) 있는 日本 국민들이 더 많죠. 때문에 일본 정부 또는 일본 지도자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일본 사람 전체를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일본에도 우파와 좌파가 있는데, 이게 아주 묘합니다. 일본의 우파는 현재 일본의 주도권을 잡고 있어요. 자민당이라든지, 신문사로 치면 요미우리 신문사 등이 우파입니다. 김정일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 때문에 일본 사회가 더 우경화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편을 많이 들었던 아사히신문 같은 언론은 좌파인데, 이쪽의 영향력은 많이 줄었습니다. 최근 요미우리신문, 산케이신문 같은 우파가 힘을 얻게 된 것은 김정일 때문입니다.

일본의 우파는 과거사 부분에서 우리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일수교를 한 사람들이 이 우파였습니다. 박정희 정부 때 우리나라를 경제적으로 제일 많이 도와준 것이 이 우파입니다. 남북과의 관계에서 남한 편에 서서 북한을 흡수 통일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파에요. 교과서 문제나 과거사 문제에서 우리 편같이 여겨지는 좌파는 오히려 북한 편을 듭니다. 지금도 김정일 편을 들고 있어요. 우리가 순진하게 ‘아, 교과서 문제나 독도문제에 대해서 우리한테 유리하게 말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 편이다’라고 생각하는 건 오해죠.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한일 관계는 굉장히 이중적이라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일관계가 갑자기 나빠진 2005년 3월에도 한국에 들어온 일본 사람들의 숫자가 작년 동기에 비해 20%가 늘었고, 4월에도 13%가 늘었습니다. 이 현상은, 정부와 정부는 싸우더라도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서로 믿는 구석이 생겼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믿는 구석은 뭐냐. 일본 사람이 한국에 와서 중국에서처럼 얻어터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 안전하게 관광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역시 한국 사람도 일본에서 어이없는 일은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일관계의 제일 중요한 자산입니다. 지난 40년 동안의 교류가 양국 국민 사이의 신뢰·협력관계를 만들어 놨습니다. 정치적인 분쟁을 오히려 민간인 간의 관계가 중화시키고 완충시키고 있는 셈이죠.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외교전쟁을 불사하겠다고 했지만, 외교전쟁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외교전쟁을 제대로 하려면 우리가 일본상품 불매 조치를 취하든지, 일본 사람이 입국할 때 비자를 받고 오라든지 하는 조치를 취해야 되는데 그렇게 하면 우리가 손해 아닙니까? 일본도 마찬가지죠. 한국에 대해서 강경조치를 취하면 자기들이 손해입니다. 이처럼 딱 엮여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韓日 상호 신뢰관계의 끈은 바로 ‘民主主義’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서로 상호 신뢰관계를 맺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라는 사실입니다. 일본 사람 입장에서 중국에 관광하러 가는 것은 위험하고 한국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국은 민주주의이고 중국은 一黨(일당)독재라는 점 때문이죠. 한국에서는 法治(법치)가 있으니까 일본 사람이 봉변은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중국은 법이 안 통하는 곳이기 때문에 봉변을 당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서 중국에 들어가는 일본 관광객은 최근 줄었습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더 발전시키고, 일본도 민주주의를 더 성숙시킬 때 한일관계가 진정한 장기적인 협력체제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나라의 민족감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묘한 게 있습니다. 첫째, 일본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서 우월감을 갖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 우월감은 무엇이냐. ‘명치유신을 해서 우리가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선진국이 됐다, 특히 조선과 비교해서 우리가 잘났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우월감을 주장하기 위해서 한국의 후진성을 강조합니다. 우월감을 만족시키기 위해 한국을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하는 아주 잘못된 심리구조가 있습니다.

명치유신을 하면서 일본이 제국주의로 변했습니다. 근대화를 해서 민주국가를 만들면 좋았을 텐데, 일본 사람들이 뒤늦게 서양의 제국주의를 배우더니 아시아 주변 국가를 침략해서 이웃을 희생시키면서 자신들의 근대화를 추진했습니다.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라고 하면 일본에서는 제일 인기가 있는 大 정치인인데, 한국에서는 사이고 다카모리 하면 征韓論者(정한론자), 나쁜 놈입니다. 일본의 영웅은 한국에 오면 逆徒(역도), 나쁜 사람이 됩니다. 伊藤博文(이등박문)은 명치유신의 大 정치가이지만 한국에서는 韓日合邦(한일합방)을 가져온 元兇(원흉)이 됩니다. 반대로 안중근 義士(의사)는 우리나라에서는 義士이지만 일본에서는 테러리스트가 됩니다.

이처럼 근대화의 과정에서 일본이 제국주의로 가는 바람에 주변국가에 큰 재앙을 불렀습니다. 일본이 1945년의 패망으로 가는 발단이 한국 침략에서부터 시작된 것 아닙니까? 한국을 먹겠다는 생각을 하니까 한국에 대한 청나라의 지배권을 배제시키기 위해서 淸日 전쟁을 했습니다. 그 후에 더 욕심이 나서 만주로 간 것이죠. 만주를 확보하기 위해서 러시아와 싸우게 됐습니다.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이겼습니다.

사실, 러일 전쟁 때 일본이 이긴 것은 대단하죠. 러시아는 영국, 프랑스, 미국과 대등한 국력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세계 제1의 육군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근대화를 한 지 30년밖에 안된 일본이 그런 러시아와 싸워서 이겼다는 것, 그리고 황인종이 이겼다는 사실의 파급효과는 대단했습니다. 간디나 네루 같은 인도 사람들도 일본이 러시아에 이기는 것을 보고 ‘우리도 열심히 하면 독립할 수 있겠다’면서 고무됩니다. 제3세계의 독립운동에 러일전쟁의 승리가 상당한 자극제가 된 것이죠.

일본은 러일전쟁을 이기는 과정에서 두 나라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일 큰 도움을 준 나라는 英日(영일) 동맹을 맺은 영국이었는데, 영국이 러시아를 견제해줬습니다. 러일 전쟁은 오래 계속되었으면 일본이 결국 질 전쟁이었어요. 일본은 國力을 다 쏟아 부어서 초장에 끝내려고 했는데, 전쟁이 질질 끌게 되면 러시아가 시베리아 철도를 통해 계속 물자와 군대를 보낼 수가 있었기 때문에 장기전으로 가면 러시아가 이기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 미국의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나서서 중재를 했습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일본 사람에 대해서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미국이 러시아와 일본의 휴전협상을 중재해서 조기에 전쟁을 끝내도록 만들어줬습니다. 결국 미국, 영국의 도움을 받아서 일본이 러시아에 이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일본이 그 여세를 몰아서 만주사변을 일으켜서 만주를 먹었고, 한 걸음 더 나가서 中日(중일)전쟁을 일으켜서 중국을 점령하겠다고 하니까 일본을 도와줬던 미국과 영국은 일본을 저지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서 견디지 못한 일본이 진주만 공격을 하면서 터진 전쟁이 태평양 전쟁입니다. 일본이 패망하는 과정을 보면, 그 원인은 한국에 대한 야욕으로부터 출발해서 결국 1945년의 패전으로 끝났다는 것이 큰 흐름입니다.

일본 공사와 깡패의 작당으로 明成皇后(명성황후)를 시해하고, 그 사체에 모욕을 보이는 짓까지 한 결과가 결국 자신들의 패망으로 돌아온 셈입니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에 대해 일본 지식인들 중에서는 동의하는 사람도 있고 변명하는 사람도 있는데, 요새는 변명하는 사람들이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변명의 논리는 뭐냐. 한반도는 일본을 향한 短刀(단도)와 같아서 한반도가 적대국가의 영향권에 들면 일본의 안보는 위협을 받게 되기 때문에 한반도에는 반드시 일본과 친한 국가가 있어야 된다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러시아와 전쟁을 했다는 것인데, 변명이 안 되는 내용이죠.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남을 침략해도 좋다는 면허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外敵에게 한 번도 침략 당해본 적이 없는 日本

일본은 外敵(외적)으로부터 한 번도 침략 당해본 적이 없는 아주 특이한 나라입니다. 세계에서 그런 나라는 일본밖에 없습니다. 일본은 외국군대에 의해서 수도가 점령되어 본 적이 없어요. 물론 미국에 항복해서 맥아더가 점령군 사령관으로 온 적은 있지만, 그 때도 초토화되면서까지 전쟁을 한 것도 아니고 본토는 안전하게 유지됐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전쟁의 패전 맛을 잘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일본 사람들과 대화를 해 보면, 일본 사람들의 논리는 가해자 또는 강자의 논리입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피해를 많이 당해서인지 피해자의 논리에 얽매여 있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둘이 대화를 해 보면 평행선상을 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화가 제대로 되려면 한 번 우리가 승리자가 되고 일본이 패배자가 되어야 되는데, 그럴 수도 없고.

문제는 통일입니다. 한반도가 통일이 되어서 강력하고 자유로운 국가를 만들지 못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일본의 간섭을 받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일본에 대해 계속 열등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통일이 되면 7,000만의 인구를 가지게 됩니다. 일본은 인구가 줄어들고 있어서 어느 순간이 되면 우리나라와 인구가 비슷해질 수도 있어요. 국력 면에서도 우리가 7,000만 시장을 가지게 되면, 프랑스 정도가 돼서 세계 6~7大 경제 강국이 될 겁니다. 그렇게 됐을 때 일본과 대등한 관계가 되는 것이죠.

지금도 한국 사람들 중에서 특히, 젊은 사람들은 일본에 대한 콤플렉스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통일이 되면 우리가 더 자신 있게 일본을 대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통일이 관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자료를 찾아보니까, 한일기본조약에 조인을 한 1965년 6월 22일 그 날 박 대통령이 담화문을 발표했는데, 그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나는 우리 국민 일부 중에 한일교섭의 결과가 굴욕적이니, 저자세니, 심지어 매국적이라고까지 극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이 진심으로 우리가 또다시 일본의 침략을 당할까 두려워하고 경제적으로 예속이 될까 걱정을 하는 데서 나온 것이라면,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어찌하여 그들은 그처럼 자신이 없고 피해의식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일본이라면 무조건 겁을 집어먹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비굴한 생각, 이것이 바로 굴욕적인 자세라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 기회에 일본 국민들에게도 한 마디 밝혀둘 일이 있습니다. 과거에 일본이 저지른 죄과들이 오늘의 일본 국민이나 오늘의 세대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역시 믿을 수 없는 국민이다 하는 對日(대일) 불신감정이 우리 국민들 가슴 속에 또다시 싹트기 시작한다면 이번에 체결된 모든 협정은 아무런 의의를 지니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이 기회에 거듭 밝혀두는 바입니다.>

40년 뒤인 지금 읽어봐도 이 경고 혹은 충고가 아직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일본인에 대한 패배의식은 상당히 사라졌는데, 일본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우월감 같은 것은 아직 지도층에 상당히 남아있다고 봅니다.

지금 일본에서 우파 또는 보수 본류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과거에는 親韓派(친한파)라고 불렸던 사람들입니다. 남북 간의 대결에서 항상 한국 편을 들었기 때문인데, 친한파로 불렸던 사람들이 이제는 反韓派(반한파)로 가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 이유에 대해 물어보면, 일본은 ‘천황이 나오고 수상이 나서서 한국에게 열여섯 번 정도 사과를 했는데, 또 사과를 하라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불평을 합니다. 그럼 우리 쪽에서는 ‘아니, 천황이 나오고 수상이 나와서 사과한 것은 인정을 한다. 그러나 그 사이사이에 장관들이 나와서 창씨개명은 한국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했다느니, 일본이 한국을 점령한 것은 러시아의 조선 정복을 미리 막아준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잘 된 것 아니냐는 식으로 소위 망언 시리즈를 계속한다. 총론은 사과하면서 각론적으로는 변명만 하기 때문에 우리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사실이죠.

세계적으로도 드문 해방 후의 조용한 결별

저는 한일 간의 문제가 있을 때마다 1945년 8월 15일 安在鴻(안재홍)선생의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안재홍 선생은 우리 민족지도자 중 한 분이신데, 조선일보 사장을 지내시고 해방 후 軍政(군정)시절에 민정 장관도 하시다가 납북되어 북한에서 돌아가신 분입니다. 한국에서 살다가 일본으로 물러간 이들이 한 150만 명 됐습니다만, 이 분들이 안재홍 선생에게 매우 고맙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어요. 1945년 8월 15일 천황이 항복방송을 한 다음, 안재홍 선생이 지금의 KBS인 경성방송에 나와서 이런 당부를 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고맙게 생각한 부분을 제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끝으로 국민 여러분께서는 각별히 유의하시어 일본 거주민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40년 간의 총독정치는 이미 과거의 일이 되었습니다. 조선, 일본 양 민족의 정치형태가 어떻게 변천하더라도 두 나라 국민은 같은 아시아 국민으로서 엮여있는 국제조건 아래서 각자의 사명을 수행하여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을 바르게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 일본에 있는 500만 조선 동포가 일본 국민들과 똑같이 수난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조선에 있는 수십만 일본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총명한 국민 여러분께서는 잘 이해해 주실 것으로 의심하지 않습니다.’

미군에 항복한 일본 사람들은 주눅이 들어있을 때니까 틀림없이 보복의 선풍이 불게 되어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일본 사람들이 많이 맞아 죽고 했습니다.

안재홍 선생이 여기서 핵심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우리가 여기서 일본 사람들을 때려죽이든지 하면, 일본에 남아있었던 사람들 -500만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한 250만 명 정도였습니다- 이 또한 당하지 않겠느냐’는 지적과, 일본과 한국은 지리적으로 옆에 붙어 있기 때문에 영원히 서로 서로 도와가면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 있으니까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라는 당부였습니다.

안재홍 선생의 이 방송은 영향이 있어서, 남한에서 일본 사람들에 대한 보복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었습니다. 강제결혼을 했다가 이혼하는 과정에서 이 정도로도 매끄럽고 조용하게 헤어진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물어요. 독일이 1945년 패전한 후 러시아나 東歐(동구)에 있던 독일의 민간인들이 본국으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300만 명이 학살됐습니다. 이 부분은 기사로 다뤄지지 않았고, 역사학자들이 신경 쓰지도 않습니다. 수천만 명을 죽인 독일이니, ‘뭐, 너희 300만 명 죽은 것쯤이야’라고 생각하는 거죠. 독일을 점령한 소련 군대는 그 동안 워낙 소련 군대가 독일군에게 많이 당했기 때문에 마음대로 약탈, 강간 등을 했습니다.

여기에 비하면 한일 관계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잘 헤어졌습니다. 잘 헤어졌다는 것은 역시 민족적으로, 인종적으로 가까운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한자 문화를 공유했다는 경험이 위기 때 이런 식으로 나타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명치유신 이후 일본을 여행한 서양 사람들이 남겨놓은 글을 보면, 일본 사람들에 대해 호평을 한 경우가 꽤 많습니다. 호평의 내용을 보면 대충 이렇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부드럽다, 일본 사람들은 서로 겸양한다, 서로 겸손하다는 뜻이죠. 러일 전쟁 전후의 글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요새 이 말을 인용하면서, 오늘날의 일본이 과연 그 때의 일본처럼 겸손하고 부드러운가에 대해 반성을 하는 것을 봅니다.

일본 사람들에게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것이죠. 일본이 요새 유엔 상임이사국이 되려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이웃나라로부터 평가를 받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한국과 중국으로부터의 평가 없이, 이웃에서 인심 못 얻은 국가가 어떻게 세계의 지도자가 되려고 합니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가끔씩 일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합니다만, 겉으로는 예예 하지만 좀처럼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 일본 사람들이라 설득하기가 어렵습니다. 남의 설득이 잘 안통하고, 스스로 생각해서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바꾸는 것이 일본 사람이라는 것이죠.

오늘 제가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오늘날 한일관계가 정치상에서나 신문에 나오는 것처럼 절대로 나쁜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관계이고, 또한 東北亞의 경제발전 때문에 이 관계는 계속 지속될 것인데 다만 문제는 북한입니다.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韓中日의 공존, 공영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가 판명나게 되어있습니다. 통일을 하는 과정에서 일본 사람들이 반드시 남한 편을 들어 주어야 한일관계가 좋아질 것입니다.

며칠 전에 중국의 어선이 우리 영해로 들어와서 단속하러 온 해양경찰대 경찰관들을 쇠파이프로 폭행하고 한 사람을 바다로 내던지고 했지 않습니까? 그렇게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反中(반중)데모가 일어납니까? 일어나지 않죠. 이상하지 않습니까? 만약 일본이나 미국 배가 그런 짓을 했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마 미국 대사관이나 일본 대사관을 점령했을 겁니다.

왜 중국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렇게 굴욕적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됩니다. 反日(반일)과 反中(반중)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反美(반미)와 反北(반북)이 균형이 맞아야 될 것 아닙니까? 균형이 안 맞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한국 사람들의 마음속에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가 아직 남아있는 것입니다. 중국의 행패에는 화가 나지 않지만, 일본의 행패에는 화가 난다는 것은 한국이 오랫동안 중국의 문화적인, 정신적인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중국에 대해 심리적으로 무장해제 되어있다는 뜻입니다. 일본은 민주화된 나라입니다. 중국은 민주화된 나라가 아니고, 중국은 지금도 북한 편입니다. 1950년 10월에도 통일을 이루려던 찰나에 중공군이 들어와서 우리의 통일을 저지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중국 편을 들어서 과연 국가 이익이 얻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다시 대륙세력으로 돌아가서 중국, 러시아, 북한과 유대를 맺고, 일본, 미국과 대항을 해서 우리의 국가 이익을 지킬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하나의 화두인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토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시간 경청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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