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총리 연형묵에게 한 말: "잘못에 대한 죄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가 잘 되면 죄를 벗는다"
남북관계에서 남한측이 확실하게 주도권을 잡고 회담을 이끌어간 것은 盧泰愚 대통령 시절이었다. 이 기간에 북한정권은 한번도 對南무력도발을 하지 않았고, 한국측이 주도한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했다.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세 가지 문서가 있다. 1972년 7.4공동성명,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 그리고 2000년 6.15선언이다. 이 가운데 한국측에 가장 유리하게 되어 있는 것이 남북기본합의서이다. 북한이 7.4공동성명과 6.15선언만 들먹이고 그 두 개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진전된 기본합의서를 거론하지 않는 것은 그 합의내용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盧대통령이 6.29 민주화선언을 통해 1987년12월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뒤 물태우라는 욕을 먹어가면서도 민주화를 실천해간 과정은 역사적인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매우 높은 점수를 받을 것이다. 그는, 적어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의 소위 민주투사 출신 대통령보다도 한국의 민주화 실천에 더 기여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 틀림없다.
민주화 실천과 함께 盧대통령의 2대 업적이라면 북방정책이다. 그의 在任中 동서화합의 서울올림픽이 성공했다. 이 올림픽의 유치와 준비를 주도한 것도 盧泰愚씨였다. 이 88 올림픽이 개막식 구호 '벽을 넘어서'란 말로써 예견한대로 1989년에는 동구 공산국가에서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졌고, 이듬해엔 동서독이 평화적으로 통일되었다. 1991년엔 소련까지 해체되어버려 한반도를 제외한 세계적 규모면에서 냉전은 자유진영의 승리로 끝났다.
이런 국제정세를 잘 이용한 것이 盧泰愚 대통령이었다. 그는 金宗輝 안보특보와 朴哲彦 특보를 투 톱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외무부를 실무진으로 부려서 공세적인 북방외교를 펼쳤다. 헝거리와 수교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그의 재임중에 한국은 동구권 국가, 중국, 소련, 월남과 수교했다. 이로써 북한에 대한 遠交近攻(원교근공)의 체제를 갖추었다. 북한의 배후를 포위한 꼴이었다. 북한은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대화의 場으로 나온다. 남북고위급 회담이 열린 것이다. 이 회담의 결과물이 남북기본합의서이다.
1990년 9월6일 오후4시 북한측 대표단 10명을 청와대로 초청한 盧泰愚 대통령은 연형묵 북한총리와 개별면담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김일성 주석은 6.25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6.25는 우리 민족을 그렇게 많이 죽이고 피를 흘리게 했으므로 그만큼 그 죄의 당사자이다. 나는 당시 학생이었다. 나 자신 전쟁터에 나가 싸웠다. 많은 친구가 죽었다. 나는 피해자이다. 이런 잘못에 대한 죄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가 잘 되어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안겨준다면 죄를 벗는 큰 일을 하는 것이다. 김 주석이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는가. 내 뜻을 솔직하게 전해주었으면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을 만났을 때 6.25 전쟁 책임을 거론하지 않았다. 이것은 용서할 수 없는 민족배신행위이다. 戰犯집단의 책임자를 만났을 때 6.25라는 민족사 최대의 범죄행위에 대해서 피해자의 대표가 따지지 않았다는 것은 김대중씨를 평가하는 데 가장 치욕적인 要点이 될 것이다. 소위 민주투사들이 입만 열면 비난해마지 않는 군인출신 대통령의 의연한 자세와 비교하면 김대중, 노무현 두 사람의 對北자세는 F학점도 못된다. 主敵을 상대로도 自主하지 못하는 사람이 동맹국을 상대로 自主하겠다니 이런 말장난이 어디 있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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