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과 천당을 오간 한국의 운명

1951년 1월 유엔의 對中 휴전제안을 중공이 받았다면 한국은 소멸되었을 것이다.
6.25 전쟁중 한국인의 운명이 외국정부에 의해서 몇 번이나 지옥과 천당을 오간 사실을 요사이 한국인들은 잘 모른다. 1951년 1월 중공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한강을 건너 수원을 향해서 밀려내려오고 있을 때 영국이 중심이 되어 캐나다. 인도 등 자유진영 소속 국가들을 끌어모아 중국에 대한 휴전안을 마련하여 유엔에 제출했다.

그 골자는 현위치에서 휴전, 평화회복을 위한 정치회담, 모든 외국군의 단계적 철수, 남북한 관리행정을 위한 준비, 휴전 후 미국 영국 소련 중공이 참여하는 정치회담을 열어 대만문제와 중공의 유엔가입을 논의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내심 이 결의안의 내용을 걱정했으나 우방국 영국이 주도함으로 명시적으로 반대하기가 어려웠다. 영국은 유엔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전쟁에서 손을 떼고서 유럽 방위에 전념하기를 원했다.

미 국무장관 딘 에치슨은 고민에 빠졌다. 이 제안을 거부하면 미국은 우방국과 갈라서게 되고 유엔에서 소수파로 전락할 수 있다. 유엔이 이 제안을 했을 때 중공이 받으면 더 큰일이 난다. 현위치 휴전이란 수원 以南까지 중공군과 북한군이 진출한 상태의 휴전이므로 서울이 공산군 수중에 넘어간다. 이는 사실상 남한의 소멸을 의미한다.

애치슨은 중공이 이 제안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트루먼 대통령에게 이 제안을 지지하자고 설득했다. 미국도 휴전안을 지지하니 유엔은 1951년 1월13일 휴전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중공은 4일 뒤 이 제안을 거부했다. 애치슨은 한숨을 내 쉬었다. 만약 중공이 이때 휴전안을 받아들였으면 한국의 수도권은 북한측으로 넘어가 버린 상태에서 휴전했을 것이다. 공산측은 일단 治下에 들어온 지역을 절대로 내어놓지 않았을 것이다. 이 무렵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은 워싱턴에 대해서 중공본토로 전쟁을 확대시키지 못한다면 한국에서 撤軍할 것을 건의하고 있을 때였다.
중공이 이 제안을 거부한 것은 승승장구하던 당시 戰況에 취해서 미군을 완전히 밀어낼 수 있다고 過信했기 때문일 것이다.

對中휴전안을 제안했던 나라들도 중공이 이를 거부하자 미국 노선으로 복귀하여 2월1일 유엔이 중공을 침략자로 규정하는 결의에 동참했다. 한국의 운명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지옥까지 갔다가 생환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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