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실천 시대 20년 略史

한국인은 민주주의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나?
1. 6.29 선언의 배경

*1980년 봄의 좌절된 민주화 꿈이 1985년 2.12 총선을 통해서 재발하다.
*야당과 학생, 중산층이 민주화의 핵심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1987년 들어 일련의 사태가 임계폭발점을 향해 달려간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4.13 護憲 선언, 6월10일 시위.
*1987년 6월에 들어와 학생 시위에 일반 시민층이 대거 가담하기 시작했다. 6월18일 부산 대시위, 19일 군출동 준비, 26일 대시위
*全斗煥 정권과 여당인 民正黨 안에서도 직선제 수용 의견이 높아지고 있었다.

2. 6.29 선언의 역사적 의미

*全斗煥-盧泰愚 합작에 의한 여론 업어치기.
*직선제 개헌, 언론자유보장, 김대중 사면 복권 등 전면적인 민주화 선언.
*권위주의 정권과 민주화 세력의 극적인 타협.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한국형 민주화의 모델. 富國强兵派와 인권파의 합작품
*현대사의 가장 성공적 정치 게임.
*여권의 단합과 야권의 분열로 盧泰愚 대통령 당선.

3. 6.29 이후 사태: 욕구분출 시대의 고민

*87년 하반기 노동운동의 폭력화로 중산층 불안감 증대. 이것이 盧泰愚 후보 당선에 기여.
*12월 大選의 후유증: 김대중 세력과 운동권이 컴퓨터 부정설 제기. 노태우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민주화 세력과 부정하는 좌파세력으로 분리.
*1988년 4월 총선에서 與小野大: 국회가 사실상 야당 주도로 넘어가 5共 청산이란 구호가 힘을 얻게 되고 정치는 오히려 활성화되었다.
*언론자유의 滿開, 노동운동의 과격화, 안기부 연행 시절의 종언.
*88 서울 올림픽의 대성공: 군사문화의 능률성과 민간의 창의성이 결합된, 근대화의 화려한 피날레. '벽을 넘어서'란 구호가 시대정신이 되어 동구 공산권 붕괴에 일정한 역할.
*88년 가을의 5共 청문회: 복잡한 민주화 시대의 서곡. 노무현, 이인제 등 이른바 청문회 스타의 등장.
*권력의 퇴각: 全斗煥 전 대통령 백담사行으로 全 세력의 무력화, 불법 시위 현장에 경찰투입 자제-法治의 훼손 초래.
*1989년의 反轉 기미: 중간평가 문제로 야권 분열, 서경원 간첩 사건과 동의대 사건으로 국민여론의 보수화.

4. 3黨 합당

*1990년 초의 민정당, 민주당, 공화당 합당은 근대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군인출신과 민간정치인의 이상적인 결합체.
*3당합당의 문제점은 이념적 결합성이 약하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했으며 김대중=호남세력을 포위한 형국이었다는 점.
*盧泰愚 대통령의 大勢순응식 인식: '다음 수상 또는 대통령은 군인 출신이어선 안된다.' 이에 따라 김영삼씨가 代案으로 떠올랐다.
*내각제 약속의 무산: 김영삼측의 고집을 盧 대통령이 꺾지 못했다. 이것이 김영삼 시절에 들어와 三黨합당 구조의 해체로 진행되는 결과를 빚었다.
*盧 대통령의 김영삼의 이념과 능력에 대한 誤判

5. 공산권 붕괴와 능동적 북방정책

*북방정책을 위해서 준비된 대통령: 정무장관 시절 서울올림픽 유치 지휘. 올림픽 준비과정을 통해서 공산권 접근로 확보.
*튼튼한 韓美관계를 근거로 對北압박의 주도권 확보. 韓美관계가 좋으니 韓日관계에서도 한국이 주도권을 잃지 않았다.
*韓中, 韓러, 韓동구권 수교로 민족의 활동공간 확장. 작년에 韓中 무역액이 1200억 달러, 곧 韓美-韓日무역액 합친 것을 초과할 것.
*남북기본합의서 도출: 한국이 주도한 對北정책의 결과물. 6.15 선언을 폐기하고 남북기본합의서로 돌아가야 주도권 회복한다.
*7.7 공동성명의 문제점: 북한정권을 대한민국과 대등한 존재로 대우함으로써 대한민국만이 한반도의 유일한 정통 합법국가라는 원칙이 훼손되었다.
*어린 민주주의는 공산당 침투 공작에 이용된다. 김일성의 예언: '反共민주주의라도 군사독재보다 유리하다'.

6. 국토改造: 사회간접자본 투자 확대

*5대 신도시 건설로 273만호 주택 건설, 주택난 획기적 개선.
*KTX, 인천공항, 서해안고속도로, 항만 건설.

7. 기타: 全敎組 불법화, 범죄와의 전쟁, 재벌 비업무용 토지 매각 추진

8. 비자금 사건의 그림자

9. 통상적인 盧泰愚 비판의 논리

*의리가 없다, 물태우-너무 약하다, 추종자들이 적다, 너무 짜다 등등. 이런 비판의 논리가 한국인의 非민주적인 속성의 반영인 면이 있다.

10. 1993~2007년: 좌경화의 도전 15년

*金泳三 정부: 좌파宿主 정권의 현대사 파괴, 국가의 본질 훼손
-한국 현대사의 정통성 부정: 중앙청 파괴, 남산 외인아파트 철거.
-군사문화 부정. 권위와 기율의 파괴를 민주화로 오해.
-'민족이 이념과 동맹보다 우선한다'-좌파식 對北觀
-한완상, 김정남의 영향
-韓美 균열, 北核 대처 실패로 對北주도권 상실.
-전교조 복직 허용
-3당 합당 구도 파괴로 김대중 집권 길 열다: 김종필 탈당, 나중에는 이인제 탈당 방조
-12.12 사건, 5.18 사건 수사로 대구-경북세력 이탈
-개방경제의 관리실패로 외환위기 초래, 좌파집권 돕다.

*金大中 정부: 권력의 좌경화
-6.15 야합으로 김정일에 굴종, 하수인화.
-6.15 선언으로 친북세력에 반역면허증 발급한 셈.
-4억5000만 달러 對北불법송금으로 김정일에 약점 잡히다.
-反共언론사 세무조사로 좌파 강화.
-호남편중 인사로 지역주의 강화.
-헌법무시, 좌파단체 예산 지원.
-野圈 분열시켜 노무현 정권 탄생.
-김종필의 신원보증 역할

*盧武鉉 정부: 전면적이고 사회적인 좌경화
-청와대, 국회 등 정권 핵심에 김정일 추종자 포진.
-국가 공권력의 無力化, 또는 반역화
-국가이념 변조 기도
-韓美동맹 와해 단계
-남북한 정권의 反대한민국 공조
-헌법 파괴 솔선
-선동의 일상화, 정책화: 양극화, 계급갈등 선동
-對北퍼주기, 북한인권 외면, 국가채무 倍增, 낭비적 복지정책

11. 한국 민주주의의 반격: 反좌파 여론의 大勢化


*여론의 실용화: 경제중시, 능력중시
*여론의 우경화: 反김정일, 韓美동맹 중시, 현대사 긍정
*민주주의 제도의 작동: 언론자유, 선거의 자유, 사유재산 제도
*좌경화 15년에 대한 반동
*대한민국 세력과 김정일 세력, 무능 세력과 유능 세력, 헌법파괴 세력과 헌법수호 세력의 대결.
*쟁점: 한국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힘으로 이길 수 있는가? 반공주의의 힘만으로는 안된다. 反共민주주의자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지난 15년은 한국 민주주의가 抗體를 만들어간 시기였나? 아니면 회복이 불가능한 타격을 입은 시기였나? 두 차례 선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2.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 자유통일과 一流국가 건설

*한국의 민주주의는 富國强兵派(제도파)와 인권파의 경쟁과 견제로 이뤄졌다. 민주투사의 독점물이 아니라 두 세력의 합작품이다.
*어린 한국의 민주주의는 공산세력에 의해 추행당했다.
*한국에서 정상적인 정부가 다시 들어서면 김정일 정권을 약화시키고 자유통일을 한 다음에 一流국가 건설로 나아가야 한다.
*쟁점: 한국의 민주주의가 국가엘리트와 교양 있는 국민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13. 우리는 민주시민인가?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白衣從軍, 大同단결, 分進合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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