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1월10일 여의도 한나라당 黨舍에서 李會昌 후보와 마지막 인터뷰를 했다. 당시 그는 여론조사에서 1위를 독주하고 있었다. 그는 여유만만했다. 대통령이 되었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도 거침 없이 대답했다. 요약하면 이러했다.
'황장엽 선생을 풀고, 對北현금지원은 끊되, 국방비는 늘리며, 남북기본합의서로 돌아가겠다'
'불법 폭력 시위를 근절하기 위한 입법 조치를 취하고, 정부내의 초법적 위원회는 정리하며, 6.15 선언 2항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 대통령 명령이 부당하면 거부할 수 있도록 검찰을 독립시킬 것이다'
나는 이렇게 물어보았다.
'鄭夢準 후보와 단일화할 가능성도 있습니까'
그의 대답은 차고 짧았다.
'그 분에게 한번 여쭤봐 주시지요. 이쪽으로 올 의향이 있다면 물론 저희들은 환영합니다'
이때 李會昌 후보가 한반도의 본질적 대결구도가 김정일 세력과 대한민국 세력의 대결이며, 정몽준 후보는 대한민국 세력일 수밖에 없고, 反대한민국 세력인 친북좌파에 이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손을 잡아야 할 상대임을 깊이 인식했더라면 정몽준씨가 좌파편으로 달려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고 大選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한반도의 가장 큰 전략은 이념인 것이다. 이념은 누가 敵이고 누가 同志인가를 알게 해준다. 이념은 또 공동체의 이해관계에 대한 自覺이다. 이런 自覺에 이르면 행동하게 된다.
李會昌씨의 차가운 반응
기자는 2002년 11월10일 여의도 한나라당 黨舍에서 李會昌 후보와 선거일 전 마지막 인터뷰를 했다. 당시 그는 여론조사에서 1위를 독주하고 있었다. 그는 여유만만했다. 대통령이 되었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도 거침 없이 대답했다. 요약하면 이러했다.
'황장엽 선생을 풀고, 對北현금지원은 끊되, 국방비는 늘리며, 남북기본합의서로 돌아가겠다'
'불법 폭력 시위를 근절하기 위한 입법 조치를 취하고, 정부내의 초법적 위원회는 정리하며, 6.15 선언 2항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 대통령 명령이 부당하면 거부할 수 있도록 검찰을 독립시킬 것이다'
기자는 이렇게 물어보았다.
'鄭夢準 후보와 단일화할 가능성도 있습니까'
그의 대답은 차고 짧았다.
'그 분에게 한번 여쭤봐 주시지요. 이쪽으로 올 의향이 있다면 물론 저희들은 환영합니다'
2002년 대통령 선거를 40일 앞둔 그 시점의 月刊朝鮮 여론조사에서 李會昌 후보는 모든 측면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있다는 수치가 나왔다. 그는 3者 대결과 1 對 1 대결에서 모두 큰 차이로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3者 대결에선 李후보 32.2%, 盧武鉉 후보 16.4%, 鄭夢準 후보 18.6%였고, 李會昌-盧武鉉 가상대결일 때(당시는 鄭夢準 후보와 단일화되기 전임)는 40-26%로, 李會昌-鄭夢準 가상대결에선 37-32%로 앞섰다.
이 여론조사가 발표된 보름 뒤 盧武鉉-鄭夢準 사이에 단일화가 이뤄졌다. 그 다음날 여론조사에서 뜻밖에 盧武鉉 후보가 李會昌 후보를 7% 이상 앞섰다. 浮動票가 단일화 드라마에 감동하여 盧武鉉 후보 지지로 선회했고 鄭夢準 후보 지지층이 가세한 덕분이었다.
이 사실이 보여주는 의미는 크다. 李會昌 후보가 진 것은 병역의혹 폭로 때문이 아니다. 그때는 이미 김대업의 폭로가 거짓임이 드러난 후였다. 李會昌 후보는 폭로의 충격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유권자들의 65%가 李會昌 후보의 당선을 예상하고 있었다.
李會昌 후보가 진 것은 盧武鉉-鄭夢準 단일화(보수 분열) 때문이다. 李 후보가 보수세력일 수밖에 없는 鄭夢準씨에 다가가지 않고 그의 이탈을 허용한 때문에 진 것이다. 李 후보가 나서서 鄭씨의 애국심에 호소하고 권력을 나누어 갖는 약속도 했다면 反좌파 연합전선의 구축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했다면 수백만 표 차이로 이겼을 것이다. 병역의혹 선동은 수십만 표에 영향을 주었다면 보수 분열은 수백만 표에 영향을 주었다. 李會昌 후보가 발벗고 나서서 鄭夢準 후보와 연대를 모색하지 않은 것이 결정적 敗因이었다. 그는 57만 표 차이로 盧武鉉 후보에게 졌다. 보수 분열을 감안하면 많이 받은 표이다.
도덕성 검증는 좌파의 논리이고 함정
1997년에 李會昌 후보는 39만 표 차이로 金大中 후보에게 졌다. 신한국당 競選에서 지고도 탈당하여 출마한 李仁濟 후보가 약490만 표를 가져가고, 對국민 사기극으로 드러난 내각제 개헌 약속을 믿고 김대중의 신원보증자로 넘어간 金鍾泌씨가 적어도 100만 표를 가져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李會昌 후보는 표를 많이 얻은 셈이다.
지난 두 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진 것은 도덕성 검증 때문이 아니다. 도덕성 검증을 무력화시킬 사상검증을 하지 않아 수비만 했기 때문에 졌고 보다 본질적인 敗因은 보수세력의 분열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大選에서 大同團結은 전략이고 폭로는 전술이다. 전략은 수백만 표를 좌우하고 전술은 수십만 표를 좌우할 뿐이다.
지난 두 차례 大選에서 지고도 한나라당은 敗因 분석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도덕성 검증에서 졌다고 誤判했다. 좌파가 내세우는 도덕성 검증론이 본질적으로 위선이며 함정이란 점을 몰랐다. 1997년과 2002년에 좌파와 언론이 도덕성 검증을 열심히 하여 등장시킨 두 대통령은 지극히 부도덕한 정치인이었다. 선동이 정치판의 가장 중요한 기술이 되어 있는 한국의 선거판에서 도덕성 검증이란 것은 도덕적 인간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으로 뽑자는 의도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政敵을 말살하려는 것이다.
도덕성 검증이 敗因이었다고 착각한 한나라당은 이번엔 이 도덕성 검증을 한층 강화하여 黨內의 동지를 상대로 펼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기 어려운 같은 당의 경쟁자를 상대로 한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한나라당의 폭로게임을 변호하는 논리가 있다. 이렇게 싸워야 本選에서 여권이 폭로 작전을 펼 때 면역력이 생겨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착각이다. 李明博, 朴槿惠 두 사람이 단결만 하면 그런 폭로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도덕성 검증 공방으로 두 사람이 분열하고 좌파가 단합하면 그런 폭로가 없더라도 진다.
도덕성 검증의 치명적 함정은 이것이 반드시 분열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권력을 잡은 남북한의 좌파연합세력과 대항하여 대한민국 세력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大同단결인데 도덕성 검증은 이 단결을 파괴한다. 동지들끼리 도덕성 검증을 하기 시작하면 적대적으로 변한다. 외부의 敵보다도 黨內의 同志를 더 미워하는 사람과 조직은 분열하여 망한다.
정치판에서 동지란 상호 약점을 덮고 보완하는 사이이다. 동지끼리 더 잔인하게 싸운다면 이미 동지가 아니라 敵對관계이다. 이명박-박근혜 사이가 동지적일 때만 한나라당은 大選에서 이길 수 있다. 敵對的인 관계가 競選 후에도 이어지면 좌파의 분열공작에 넘어가는 쪽이 생길 것이다. 朴, 李 캠프 안에선 상대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좌파가 당선되는 것이 더 낫다는 이야기가 더러 흘러 나온다.
朴正熙는 도덕적이었을까?
기자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한나라당 競選과정에서 소위 도덕성 검증 공방을 주도하고 있는 朴槿惠 전 대표가 李明博 전 서울시장에 대해서 들이대는 잣대를 아버지 朴正熙 전 대통령에 대해 적용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朴正熙, 李明博 두 사람은 나이는 20여세 차이이지만 동시대인으로 볼 수 있다. 두 사람은 개발연대를 만들고 뛴 상징적 인물이고, 논평자가 아니라 건설자였다.
朴正熙 전 대통령을 도덕성 검증에 걸면 도덕적 인물이었다는 평점이 나올까? 그는 李明博씨보다 도덕적으로 월등하게 우월하다는 평가를 받을까?
통상적인 의미에서 朴正熙는 도덕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장교 시절 朴正熙는 청렴결백했다. 대통령 朴正熙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불법적으로 정치자금을 모았고, 부정하게 사용했다. 정보부를 때로는 私兵처럼, 때로는 비밀경찰처럼 운용하여 政敵을 괴롭혔다. 여자 문제에 있어서도 깨끗한 사람만은 아니었다. 스캔들의 세 요소인 돈, 권력, 여자 문제에서 朴正熙는 결코 도덕적이지 않았다. 그는 불법-부당한 돈과 권력남용을 통해서 자신의 정권 안정을 꾀했다. 그리하여 18년간의 집권이 가능했 다.
이 18년간 그는 한국인들을 대체로 도덕적 존재로 만들었다. 한국인들은 이 기간 굶주림의 문제를 해결했다.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도둑질하고 사기를 치던 일도 없어졌다. 1977년 7월1일 의료보험이 실시된 이후엔 돈이 없어 병원 구경도 못하고 죽는 이들도 사라졌다. 이 기간 한국인들은 민족적 자존심을 되찾았다. 먹고 살 만하고 國力이 충실해지니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한다”는 자주적 태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기간 한국은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물질적, 제도적 기반을 갖추었다. 이런 업적만 놓고 본다면 朴正熙는 도덕적이지는 않았지만 위대한 인물이었다.
도덕적이지 않는 정치가가 국민들을 도덕적으로 만들고 위대할 수 있다는 逆說的 결론에 이른다. 朴正熙의 경우엔 그가 도덕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자칭하면서 도덕을 무기화했던 金大中씨는 돈, 권력남용, 여자 문제에서 결코 도덕적이지도 양심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 좌경적 성향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권력의 힘으로써 자신의 반역적 정책을 덮었다. 대통령으로서 그가 저지른 가장 큰 부패사건은 反국가단체 수괴 김정일과의 회담을 매수하기 위하여 현대그룹을 앞세워 4억5000만 달러를 김정일의 해외비자금 계좌 등으로 불법송금한 일이다. 송금업무를 간첩 잡는 국가정보기관에 맡김으로써 國情院을 김정일의 하수기관으로 전락시켰다. 이보다 더한 부도덕과 반역은 없을 것이다.
敵의 무대에서 敵의 규칙으로 싸우면 진다
한나라당 競選 과정의 가장 큰 규칙이 되어버린 도덕성 검증과 폭로는 이 부도덕한 金大中 세력이 한국 정치에 도입한 게임의 룰이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세력은 李會昌 한나라당 후보의 아들에 대한 병역기피 의혹을 제기했다. 李會昌 후보는 이 도덕성 검증에 휘말려들었다. 김대중 세력이 설정한 도덕성 검증 무대판에서 선거전이 진행되었다. 李會昌 세력은 자신들의 논리와 무대를 만들지 못했다. 남이 만든 무대에서 남이 만든 규칙에 따라서 게임을 하면 진다. 지금 한나라당이 바로 좌파가 만든 게임의 규칙을 수용하여 共滅의 게임을 하고 있는 경우이다.
李會昌 후보는 金大中씨의 좌경성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을 활용하지 못했다. 金大中씨의 이념적 색깔에 대한 정면공세를 펴지 못했다. 좌파에 대해서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면 ‘색깔론’이라는 비명이 터져 나온다. 그러면 이념무장이 되어 있지 않은 우파진영은 ‘容共조작세력’으로 몰릴까 봐 물러난다. 金大中씨의 반역적 국가관이나 통일관에 비한다면 李會昌씨 아들에 걸린 병역기피의혹은 사소했다. 더구나 부정이 있었다는 증거는 지금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다.
李會昌 본인은 군 장교로 근무했으나 김대중씨는 6․25 전쟁중에 현역근무를 하지 않았고 의혹이 많다. 李會昌씨는 도덕성 검증이란 金大中 세력의 규칙을 수용하여 게임을 하다가 수비로 시종했다. 李씨가 도덕검증 대신에 사상검증이란 자신의 게임 규칙을 만들어 공격했다면 선거에서 이겼을 것이고 ‘잃어버린 좌파 10년 세월’도 없었을 것이다.
2002년 大選 기간에도 李會昌씨는 자신의 게임 규칙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盧武鉉 세력은 1997년에 써먹었던 도덕성 검증 카드를 또 다시 꺼냈다. 李會昌씨 아들에 대한 김대업의 폭로가 있었다. 처음부터 사기적 폭로임이 명백한데도 여기에 어용언론과 일부 검사들이 합세했다. 李會昌씨는 盧武鉉 후보의 좌경성과 비정상적 행태를 공격하지 못했다. 사상검증이란 必勝의 규칙을 갖고도 써 먹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李會昌 본인이 한반도 상황의 본질인 이념대결 구도를 직시하지 못했다. 좌파의 도덕성 검증론엔 사상검증론으로 대결했어야 했다. 이런 대결자세는 한반도의 대결구도를 김정일 對 대한민국, 민족사의 정통국가 對 이단세력으로 보는 사람만이 취할 수 있다. 그런 확신을 가진 李會昌씨였다면 필연적으로 反좌파 연합 구도를 만들려 했을 것이다. 즉, 보수세력일 수밖에 없는 鄭夢準씨와 손을 잡았어야 했다.
대한민국 세력의 무기는 도덕성 검증이 아니고 사상(이념)검증이어야 한다. 한반도에서 이념은 간단하다. 누가 공동체의 敵이고 누가 同志인지를 구분하게 해주는 논리와 신념이 이념이다. 이념은 복잡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해관계에 대한 自覺’이다. 2007년 대통령 선거의 본질은 김정일 세력( 및 추종세력)과 대한민국의 대결이다. 이런 인식에 철저하지 못한 사람들일수록 同志에 대한 도덕성 공격엔 열심이다. 강한 敵에게 비겁한 자는 만만한 친구에게 잔인하다. 유태인의 論語인 탈무드에 적힌 대로 “잔인한 자를 동정하는 자는 동정 받아야 할 사람에게 잔인하다”
지난 7월 초 한나라당에서 일어난 두 가지 사건이 탈무드의 가르침을 확인시켜준 셈이다. 黨內의 치열한 도덕성 공방전과 한나라당판 햇볕정책 발표이다. 이 두 사건은 상호 연결성이 있다. 김정일 정권을 민족반역세력으로 규정할 용기와 이념무장이 없는 한나라당이므로 黨內 투쟁을 더 치열하게 하는 것이다. 大義를 모르는 인간들일수록 小利를 탐한다. 김정일-김대중-노무현 연합 세력에 포위된 한나라당이 밖으로는 白旗투항하면서 안으로는 존속살해 같은 내부투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는 세 번째의 보수층 분열로 이어져 세 번째 좌파정권을 등장시킬 가능성이 있다.
한나라당의 白旗투항-새 對北정책이란 코미디
'7월초에 鄭亨根 최고위원이 발표한 ‘한반도평화비전’이란 새 對北정책에 대해서 기자는 문화일보에 개인 의견 광고를 냈다. 제목을 ‘한나라당의 白旗투항-새 對北정책이란 코미디’라고 붙였다.
<한나라당은 이념무장이 부족하여 敵과 동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바람에 大同단결에 실패함으로써 질 수 없는 두 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단합된 좌파에 패배했다. 이 한나라당이 또 다시 기회주의적 웰빙정당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틀 전 한나라당이 발표한 새 對北정책은 이념도 전략도 없고 헌법도 무시한 투항주의의 쓰레기이다. 한나라당이 對北정책에서 좌파와 닮아간다면 굳이 이 정당을 지지할 이유도 없어진다. 對北정책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 한나라당은 사실상 좌파정권과 공조해 왔기 때문이다.
鄭亨根 의원이 발표과정에서 '헌법3조에 규정된 영토조항 수정 여부를 놓고 가장 큰 논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야말로 한나라당이 기회주의자들의 패거리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코미디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 전체로 규정한 헌법제3조는 개정불가 조항이다. 이 조항을 개정하여 영토를 휴전선 이남으로 한정시키면 북한정권을 독립국가로 인정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통일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자유민주화해야 한다는 헌법제4조의 국가목표도 날아간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헌법제3조를 개정하면 대한민국의 반인 북한지역을 포기하고 그곳에는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사회주의 독재를 허용하겠다는 이야기가 되어 대한민국의 國體가 변경된다. 國體변경, 영토포기, 자유통일 포기로 이어지는 헌법제3조 개정 여부를 놓고 고민했다니 이 무슨 망발인가? 반역과 애국을 놓고 고민했다는 말이 아닌가? 이런 한나라당이 지금 내부적으로 벌이고 있는 적대적 검증 공방전은, 한반도에서는 이념이 가장 큰 전략이란 사실을 외면한 데서 빚어진, 사소한 데 목숨 거는 전형적인 共滅게임이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자신들이 너무 심하게 對北강경정책을 펴왔다고 반성하고 있는 듯하다. 이보다 더한 희극적 비극은 없다. 그들이 언제 對北퍼주기를 막은 적이 있는가? 노무현 대통령의 간첩비호를 비판이라도 한 적이 있는가? 통일부가 利敵, 反국가세력에 대해서 국민 세금을 대주고 있는 작금의 반역적 사태에 대해서 의미 있는 항의 한 번 한 적이 있는가? 민족사의 정통성을 포기하는 遷都에 찬성한 것도 한나라당 아닌가? 우직하고 순수한 애국단체들을 극우라고 부르면서 외면한 것도 한나라당 아닌가? 선거에 유리하다고 판단될 때는 나라도 팔아먹을 각오가 되어 있는 집단이 한나라당 아닌가?
자신의 무능과 비겁함과 게으름을 덮기 위하여 그동안 너무 강경한 對北정책을 폈으므로 좀더 부드럽게 나가야 한다고 자신을 먼저 속이려 드는 한나라당의 가증한 모습은 악랄한 친북좌파보다도 더 부도덕하다. 정당의 가장 큰 부패는 지지층을 배신하고 국가이념을 黨利당략보다 아래에 두는 것이다.
김정일 정권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對南공작을 강화하고 있어 국가보안법을 더 강화해야 할 시점에서 이것까지도 改廢할 수 있다고 나온 것이 한나라당이다. 한국인중에서 지금 국가보안법 때문에 생활이 불편한 이들이 누가 있나? 한나라당은 간첩과 공작원의 활동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 태어난 정당인가?
북한의 신문과 방송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데 이르면 한나라당은 집단치매에 걸렸는가 하는 의심이 생긴다. 한국인중에 노동신문과 평양방송을 보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그런 거짓말을 읽고 보는 데 왜 시간과 돈을 써야 하나? 한나라당이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북한도 남한 언론에 대해 개방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여야 할 것이 아닌가? 거짓말은 오염물질과 같아서 이와 접할 때마다 인간의 心性은 망가진다. 한나라당은 국민들까지 망치기로 작심했단 말인가.
한나라당 안에 친북좌파가 침투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든다. 그것이 아니라면 한나라당 의원들의 정보부족, 공부부족이 부른 白旗투항이다. 좌익과 대결하는 데는 확고한 국가관과 역사관에 기초한 이념무장이 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사소한 외부변화에도 불안해하고 자신이 없어진다. 理念은 이론화된 신념이다. 독서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것이 이념무장이다.
뜻 있는 한국인이라면 이런 한나라당을 대체할 진정한 反共민주정당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를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이런 한나라당과 이런 후보들이라면 집권해도 대한민국은 계속해서 외로움을 탈 것이다. '야윈 늑대' 같은 김정일 세력에 먹히기 시작한 ‘살찐 돼지’ 같은 한나라당을 믿고 사는 것은 썩은 새끼줄을 잡고 인수봉을 오르는 일과 같다.>
현정권 지지자들중 16.5%만이 승리예감
7월초 발표된 조선일보와 TNS-Korea 합동 여론조사에서 李明博 지지율은 39.4%, 朴槿惠 지지율은 27.6%였다. 흥미로운 것은 朴槿惠 지지층이 “李明博씨가 더 本選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朴槿惠 지지층의 68.5%가 大選의 本選에서 李明博씨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20.1%만이 질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李明博 지지층의 48.2%는 朴槿惠씨가 本選에서 이길 것이라고 대답했고 36.5%는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李明博씨가 朴槿惠씨보다도 범여권 후보에 대한 경쟁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난 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결과이다.
한나라당 지지자만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李明博 48.3%, 朴槿惠 45%였다. 이는 李明博씨가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층이 아닌 中道성향의 지지를 많이 얻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나라당이 집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전체의 56.5%인 데 반해 집권해선 안된다고 생각하는 비토층은 10%였다. 27.9%는 누가 집권하든 상관 없다고 했고 5.6%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汎여권 지지자들 가운데서 16.5%만이 汎여권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반면에 36.8%는 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47%는 모름 또는 무응답이었다. 한나라당 지지자의 88.6%는 한나라당 후보가 이길 것이라고 대답했고, 1.6%만이 질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9.8%는 모름 또는 무응답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盧武鉉 대통령이 지지하는 후보를 찍지 않겠다는 사람이 78.8%나 되었다는 점이다. 盧 대통령은 마이너스 효과를 부르는 변수임이 확인된 셈이다. 그는 자신이 싫어하는 후보에 대해서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그를 떨어뜨릴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런 압도적 여론의 흐름 속에서 한나라당이 진다면 그 원인은 內紛 이외엔 없다. 한나라당을 패배시킬 세력은 한나라당밖에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 여론조사를 통해서 유권자의 약63%가 고정지지층을 형성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약40%는 한나라당 고정지지, 약23%는 고정적인 한나라당 반대층이다. 나머지 37%는 流動層이다.
한나라당 승리를 보장하는 듯한 이 여론구조를 뒤집을 수 있는 변수는 李明博-朴槿惠 분열과 좌파 단일후보 등장이다. 위의 여론조사가 보여주듯이 한나라당 경선이 치열한 또 다른 이유는 이 競選에서만 이기면 거의 틀림 없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양쪽에서 하기 때문이다. 고생을 함께 하긴 쉽지만 영광을 함께 누리기란 매우 어렵다고 한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몇 번의 사례가 있었다.
분열로 정권을 날린 네 번의 사례
정권이 눈앞까지 굴러왔는데도 분열하였기 때문에 이를 놓치거나 잡고 있던 정권을 빼앗긴 경우가 네 번 있었다.
1. 1960년 4․19 학생의거로 李承晩 대통령이 하야한 뒤 치러진 총선에서 3분의 2라는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은 新派, 舊派로 분열했다. 舊派 출신으로 대통령이 된 尹潽善씨는 내각책임제 하의 實權을 가진 국무총리 후보로 구파의 金度演씨를 지명했으나 국회에서 부결되었다. 尹씨는 할 수 없이 신파의 張勉씨를 지명했고 근소한 표차로 당선되었다.
이때부터 新舊派 싸움이 격화되었다. 한민당에 뿌리를 둔 민주당은 反共자유민주 노선을 따르고 있었다. 新舊派라고 하더라도 이념과 정책상 차이는 거의 없었다. 순전히 자리싸움이었다. 기어코 舊派는 신민당을 차려 나가 張勉 총리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지하에 있던 좌익들이 들고 일어나 대중조직을 만들고 파업, 횃불집회, 과거사 폭로 등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학생들이 가세했다. 그들은 판문점으로 달려가 북한 학생들과 통일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나섰다. 주부, 어린이들도 데모를 했다. 데모 그만하자는 데모도 있었다. 성숙되지 못한 민주주의가 선동세력에 악용되어 국가와 법질서를 自害하기 시작했다.
좌익의 준동으로 무정부 상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군인들이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휴전한 지 7년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民心도 군인들이 나와야 한다는 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민주당, 신민당은 이런 사회혼란을 목도하고서도 거국적 대책을 내어놓지 못했다. 舊派 출신 尹潽善 대통령과 新派 출신 張勉 총리는 사사건건 충돌했다.
이런 내분 속에서 朴正熙 장군의 쿠데타 계획은 거의 공공연하게 진행되었다. 육군본부 식당에서도 포섭공작이 이뤄졌다. 수사, 정보기관에서도 쿠데타 정보를 수집하여 張 총리에게 보고했으나 그는 과단성 있는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쿠데타 계획을 분쇄하여야 할 張都暎 육군참모총장이 朴 장군의 거사계획을 알면서도 張 총리에게는 아무 일도 없다는 식의 허위보고를 하면서 나름대로의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상층부의 분열은 新舊派가 단결하였다면 막을 수 있었다. 新舊派가 의회의 3분의 2 의석을 차지한 바탕에서 여론을 업고 질서를 잡아나가기 시작했다면 5․16의 명분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들이 몰아준 표와 만들어준 권력을 정치인들이 집안싸움으로 날려버린 것이다.
2. 10․26 사건으로 朴正熙가 사라진 뒤인 1980년 봄에 金泳三, 金大中씨가 분열하여 신군부의 집권을 허용했다. 金大中씨는 야권 분열을 선도했다. 그는 선명한 투쟁으로 대통령 有故 상황을 만든 金泳三의 신민당에 들어가지 않고 在野세력과 손을 잡고 별도의 정당을 만들려고 했다. 만약 이때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신민당을 강화해가면서 국민들 속에서 불붙기 시작한 민주화의 열망을 이어갔다면, 동시에 학생-노조의 극단적 행동에 브레이크를 걸었다면 상황의 주도권을 잡았을 것이다. 두 사람이 단합했다면 金鍾泌의 공화당도 합세하여 민간정치 세력 주도의 改憲이 가능했다.
3. 1987년 6․29 선언으로 직선제 개헌이 이뤄지고 12월 선거가 공고되자 金泳三, 金大中 두 사람은 또 분열했다. 이때도 金大中씨가 신민당을 깨고 평민당을 만들어 후보로 나왔다. 두 金씨가 단합하여 단일후보를 내었다면 민정당의 盧泰愚 후보한테 樂勝했을 것이다. 12월 선거에서 盧 후보는 36%의 지지율을 얻고서도 당선되었다. 兩金氏의 표를 합하면 50%를 넘었다. 金泳三, 金大中 두 사람의 분열은 민주화 시기에 하나 되었던 국민들을 지역감정으로 갈라놓았다. 반면 군인출신 全斗煥, 盧泰愚씨는 6․29 선언을 기획, 주연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하여 단합했다.
4. 1997년 신한국당 경선에서 李會昌씨가 큰 표차로 당선되었는데도 2위를 한 李仁濟씨가 탈당하여 독자 출마를 강행했다. 金泳三 당시 대통령은 신한국당 총재이면서도 이 사태를 방관했다. 李會昌 후보는 이런 金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여권의 이런 분열속에서 김대중 후보는 내각제 약속을 미끼로 던져 金鍾泌 자민련 총재를 끌어들였다. 분열한 여권은 패배하고 단합한 김대중씨 측은 승리했다. 보수층이 70%인 나라에서 좌파 대통령이 등장한 것이다.
좌파 宿主 김영삼의 3黨 합당 구도 해체
1990년대 이후 보수층의 분열은 좌익의 영향 내지 공작으로 일어났다. 보수층이 좌파의 논리를 받아들이면 분열주의자가 된다. 소수 좌파의 고전적 집권전략은 우파 분열이다. 한국 보수층을 분열시키는 데 앞장섰던 金泳三씨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온건한 민주투사였고 누가 봐도 한국 보수정치세력의 元祖인 한민당의 맥을 잇는 嫡子(적자)였다. 그의 어머니는 고정간첩에게 피살되었고 집안도 부유했다. 대통령이 된 직후 이 사람 머리에 좌파적인 역사관이 들어갔다. 그는 취임연설을 할 때 “어떤 동맹이나 이념보다도 민족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북한정권의 對南적화전략에서 핵심인 가짜 민족주의 선동에 넘어간 것이었다.
이 좌파적 視覺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한국 현대사의 정통성을 깡그리 부정하고 자신의 문민정부가 상해임시 정부에서 바로 연결되는 正統性의 맥을 잇는다고 큰 소리 쳤다. 그가 작명한 문민정부란 이름이 바로 대한민국 세력 분열의 신호탄이었다.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주도한 군인 세력을 배제한 문민세력만의 보수층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출신성분은 보수이나 공부와 이념무장이 전혀 안되어 있던 그는 머리를 좌파에게 빌려주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좌파가 원하는 일을 찾아가면서 했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건물인 옛중앙청을 친일 건물이라고 때려 부수고 근대화 시절에 지었던 남산 외인아파트를 폭파시켰으며 무엇보다도 3黨합당 구도를 해체시켰다. 盧泰愚 대통령이 만든 3黨합당의 민자당은 산업화 세력(민정당과 공화당)과 온건한 민주화 세력(金泳三의 민주당)이 이상적으로 결합한 안전판이었다.
민자당이 일본의 自民黨처럼 안정적인 보수정당으로 기능했더라면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나올 수 없었다. 金泳三 대통령은 분열적이고 좌파적이며 독선적인 역사관의 연장선상에서 金鍾泌 세력을 밀어내었고 비자금 사건을 확대시켜 盧泰愚-全斗煥 세력을 제거함으로써 경북세력의 원한을 사더니 나중엔 李仁濟 의원의 탈당 출마를 사실상 방조했다. 자신의 지지기반을 허물고 보수 분열에 앞장 선 좌파 宿主 대통령이었다. 좌파 10년 시대를 위한 整地작업, 즉 보수층 때리기를 열심해 했던 金泳三씨가 중용했던 이들이 盧武鉉, 李仁濟, 孫鶴圭씨였다. 이들은 과거와 지금도 보수분열에 앞장 서고 있다. 지도자는 사람을 알아보아야 하고 참모는 일을 알아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인간이 인간의 도덕성을 검증할 자격이 있나?
金泳三 대통령이 보수층의 분열에 앞장서게 된 것은 좌파적 역사관을 받아들인 때문이듯이 지금 한나라당이 벌이고 있는 도덕성 검증이란 논리도 左派發이기 때문에 보수층을 분열시키게 될 것이다. 좌파적 역사관과 도덕성 검증론은 본질적으로 위선이므로 필연적으로 분열지향이다. 결벽, 지조, 正義 등 관념적인 구호를 내걸고 이에 미달하는 이들을 모조리 부도덕한 변절자로 모는 도덕공세는 자신도 지킬 수 없는 기준을 남에게 강제한다는 점에서 凶器이다. 한국인들은 조선조 500년을 지배한 주자학적 관념론에 뼈속까지 침투당하여 도덕이란 말 앞에서는 주눅이 든다. 도덕이란 無所不爲의 무기를 든 사람은 정치적 우위에 선 것처럼 행동하면서 政敵을 죄인으로 몰고간다.
직업의 속성상 도덕적이기가 가장 어려운 것이 정치인이다. 교사나 聖職者는 도덕적이기 쉽지만 利害관계와 利權을 다루는 정치인은 어렵다. 이들에게 상식인 이상의 도덕성을 강제하는 순간 도덕검증은 僞善의 게임으로 변한다.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도덕성을 검증하겠다고 하는 것은 오만하고 위험하다. 재판보다도 더 살벌한 표현이다. 재판관은 罪人의 도덕성을 재판하지 않는다. 罪人을 인간적으로 평가하지도 않는다. 罪만 평가한다. 한 인간이 남의 도덕성을 검증하려면 스스로 하느님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도덕성이 본질적으로 우월한 사람이라야 도덕성을 검증할 자격이 있다. 漢字능력을 검증하는 사람이 한글밖에 모른다면 그 검증이 제대로 될 것인가. 인간의 도덕성을 검증할 자격을 갖춘 그런 완벽한 도덕적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능력을 검증할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야 많지만.
한국에서 벌어지는 '도덕성 검증'의 과정을 보면 의혹을 제기한 쪽에서 예외 없이 '고백하라'고 대어든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약점을 숨길 권리가 있다. 때로는 자신의 약점을 숨기든지 비밀로 하는 것이 가족을 위해서, 조직을 위해서 의무가 될 때도 있다. 그런데 무조건 고백하라고 한다. 지금은 돌아가신 金南洙 주교는 '하나님도 인간에게 죄를 고백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공평성의 원칙상 同志에게 도덕성 검증을 요구하는 사람은 그 자신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 자신을 모범적으로 벌거벗겨야 한다. 朴槿惠씨는 최태민 목사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서 정직하게 고백한 뒤 李明博씨의 재산 축적과정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야 여론의 지지를 얻을 것이다.
국가관, 정신, 추진력 검증은 안하나?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고 국가의 進路를 설정하는 자리이다. 이런 자리에 앉으려는 인물에게 따져야 할 검증 목록 1호는 국가관이다.
국가관은 역사관과 직결되어 있다. 한국의 현대사를 부정하면 한국을 부정한다. 그런 인물은 대통령은커녕 국회의원 자격도 없다. 국가관은 主敵觀 및 對北觀과도 깊게 관련된다. 대한민국 헌법이 국민들에게 '국가의 敵'이라고 지정한 김정일 정권을 친구로 보는 자는 청와대가 아니라 감옥으로 가야 한다.
국가관은 헌법觀과도 직결된다. 대한민국 헌법을 우습게 여기는 자는 反국가적 민주주의 파괴자이므로 청와대가 아니라 학교로 보내야 한다.
추진력은 조직경영력이다. 효율성과 생산성이다. 시간의 단축이고 낭비 요소의 제거이다. 이 추진력은 삶 속에서 증명되어야 한다. 國政운영능력으로 연결되는 추진력은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선동력은 강한데 조직경영력이 약한 노무현씨를 대통령으로 뽑아놓으니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그는, 한 여승이 도롱뇽이란 것을 살리겠다면서 억지 단식을 하니 멋대로 경부고속철도 공사를 중단시켜 2조5000억원을 날렸다. 무능하고 국가관이 약한 인간은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역자가 대통령이 되지 않도록 하는 국가관 검증, 무능력자를 가려내는 경영능력 검증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다. 정신 이상자가 대통령이 되는 길을 막는 정신감정이 그것이다. 유권자들이 선동에 넘어가기 쉬운 어린 민주주의하의 대통령 중심제에선 거짓말쟁이나 정신이상자가 대통령이 되는 길을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선관위가 후보자로 하여금 정신감정서를 첨부하도록 해야 한다.
反共만으로는 안된다. 反共민주주의자라야 한다
도덕성 검증을 주도하는 朴槿惠 전 한나라당 대표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 특히 인터넷에 글을 쓰는 지지자들이 보이는 특징이 하나 있다. 朴씨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에 가까운 反感이 그것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다른 사람이 지지하지 않거나 그 경쟁자인 李明博씨를 지지하는 것이 이들의 눈에는 범죄행위처럼 보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朴槿惠씨가 주도한 도덕성 검증 공방은 한나라당내를 敵對的 분위기로 몰고갔을 뿐 아니라 극성 지지자들은 보수시민층 사이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있다. 민주국가에서 선거는 유권자들이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 행위이다. ‘지지한다’는 말은 ‘줄을 선다’나 '편들다'라고 쓸 수도 있다. 어떤 후보를 편드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숨길 일도 아니며 민주국가 유권자들의 권리이고 의무이다. 이런 권리행사를 당당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사회 일각에 자신이 미는 정치인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나쁜 사람' '빨갱이' '敵'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다. 민주주의는 생각과 利害가 다른 사람들끼리 오손도손 살아가기 위하여 만든 제도이다.
누가 봐도 李明博, 朴槿惠 두 사람은 盧武鉉 좌파정권을 상대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열심히 투쟁했던 이다. 朴 전 대표는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잘 이끌었고, 私學法 재개정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겨울에 장외집회를 주도했고 결국 이뤄냈다. 李 전 시장은 한나라당도 동의했던 遷都 계획에 대해 違憲 판결을 받아내 민족정통성의 말뚝인 서울을 지켜냈다.
두 사람은 같은 정당에 몸을 담았으니 同志이다. 이 두 사람을 지지하는 이들도 反좌파적 자유민주 이념을 가지고 있을 터이니 同志라고 봐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同志의 관계인데 敵처럼 싸운다면 반드시 敵에 이용당한다. 同志를 치기 위하여 외부의 敵을 이용하려는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共滅의 길이 열린다.
反헌법적 좌파와 싸울 때는 反共만으로는 안된다. 反共민주주의자가 되지 않으면 반역좌파에게 이길 수 없다. 민주주의는 불법을 고발하고 인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제도일 뿐 아니라 사생활과 개인의 자유를 엄격하게 보호하고 불법이 아닌 도덕적 문제에 대해선 관용하는 정신이다.
논어에 나오는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을 생각한다. 君子(신사)는 다르지만 화합하고 小人은 같으면서도 不和한다.
정치에서 도덕론은 非도덕을 부른다
대통령을 뽑는 일은 윤리교사나 성직자를 뽑는 일이 아니다. 정치는 국민들을 도덕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일은 1차적으로 종교나 교육의 영역이다. 대통령 선거는 거대한 국가기관을 운용하여 국민들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먹고살도록 하는 일을 맡길 사람을 뽑는 일이다. 도덕군자가 이런 일을 하겠는가? 정치에서 도덕을 너무 강조하면 비도덕적 결과를 빚는다는 것은 교회가 정치를 지배했던 중세 유럽과 도덕주의 정치 이데올로기인 朱子學을 교조적으로 수용했던 조선조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1636년 後金이 淸으로 이름을 바꾸고 조선에 대해서 國書를 보냈다. “앞으로는 왕이 아니라 황제라고 불러달라”는 요지였다. 仁祖의 신하들은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듯이 두 사람의 황제가 있을 수 없다”면서 이를 거부했다. 明에 대한 의리를 지키겠다는 사대주의의 발로였다. 知行合一을 주장하는 陽明學에 밝았던 崔鳴吉 등은 오랑캐라도 그들이 불러달라는 대로 불러주면 될 것이라고 했으나 斥和派는 大義명분이란 도덕론을 앞세웠다. 1636년 여름 가면 전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일부 신하가 “그렇다면 전쟁 준비를 해야 한다”고 왕에게 건의한다. 斥和派는 전쟁을 불러놓고도 전쟁준비엔 반대한다. “이 여름에 전쟁준비를 하면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백성들을 위한다는 도덕론이 등장했다.
할 필요도 없는 전쟁을 비현실적 도덕론이 불러들인 게 병자호란이다. 정치에서 도덕론은 반드시 현실과 유리된다. 도덕론은 관념론이다. 관념은 항상 극단화된다. 관념의 유희에는 경계가 없다. 당시 동아시아 사정은 급변하여 明이 망해가고 淸이 일어서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斥和派의 도덕주의는 이런 현실을 떠난 관념적 大義명분론이었으므로 현실에 적용하니 파탄이 난 것이다. 斥和派는 도덕이 淸의 군대를 막아줄 것이라고 믿은 모양인데 전쟁에선 힘이 도덕이다. 淸의 기마군단은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서울로 直進했다. 이들이 서울 근교에 도달했을 때 敵의 출현을 알게 된 仁祖는 강화도로 피하지 못하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수개월 뒤 항복한 仁祖는 얼어붙은 삼전도에서 淸태종을 향해 이마가 땅에 닿도록 굴욕의 절을 아홉 번 해야 했다. 약20만 명의 부녀자들이 淸으로 끌려갔다. 도덕론이 부른 가장 비도덕적 결과였다. 전쟁을 불러들인 도덕군자중 그 누구도 자살하지 않았다. 단 한 사람,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자살 쇼를 하다가 구출된 신하는 있었다.
긍정과 건설의 논리는 패배할 것인가?
위선적 도덕론이 지배하는 사회에선 비판과 약점캐기가 유행하고 때론 덕목이 된다. 긍정과 건설은 늘 守勢로 몰린다. 한국 사회에선 어느 모임에 가더라도 누구를 비판하는 데서는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마음대로 한다. 비판자는 스스로 도덕적 우월감을 느낀다. 대통령을 비판하면 대통령보다 더 우월해지는 기분이 된다. 기업인을 비판하면 正義를 세우는 것으로 착각한다. 兩非論이 유행한다. 이명박, 박근혜 둘 중 한 사람을 지지하고 싶어도 그러면 “왜 줄을 섰나”라는 욕을 먹을까 봐 이, 박 두 사람을 모두 비판한다. 그러면서 지지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지엽적인 비판을,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선 본질적인 비판을 한다. 한 사람을 비판하는 것보다는 두 사람을 비판하는 것이 더 용감하고 양심적인 일인 것처럼 생각한다.
나중에 북한 간첩으로 드러난 지식인들의 글과 말을 분석해보면 북한정권에 대해선 지엽적인 비판을, 한국에 대해선 본격적인 비판을 하는 兩非論의 틀을 갖고 있다. 누가 “왜 북한 편을 드는가”라고 공격하면 “보라, 나는 양쪽을 다 공평하게 비판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빠져나오기 위해서이다.
李承晩, 朴正熙, 李秉喆, 鄭周永, 李明博 같은 건설자를 옹호하는 것은 비판하기 보다 어렵다. 金九, 申采浩 같은 투사들을 비판하는 것은 옹호하기보다 어렵다. 비판과 도전이 덕목이 되는 사회는 억압과 침략을 많이 받아본 사회이다. 개인이 주인의식을 갖지 못하고 국가가 勝者가 되어본 적이 없는 곳에선 건설과 긍정과 생산의 논리는 외롭다.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국, 세계 8대 군사강국이고, 민주국가이다. 富國强兵의 자유의 나라이다. 자유통일만 하면 非서구-非기독교 국가로선 일본에 이어 두번째로 一流국가 클럽에 들어갈 수 있는 대단한 나라이다. 이런 나라에 어울리는 一流의 논리, 생산과 건설과 긍정의 논리, 즉 성공자와 勝者의 논리가 정착될 때도 되었다. 긍정의 논리가 좌파식 부정과 비판 일변도의 논리를 이기는가 아니면 패배하는가의 여부도 이번 대통령 선거의 한 觀戰 포인트이다.
폭로에 목숨을 걸어라!
일반인의 폭로와 국회의원이란 헌법기관의 폭로는 달라야 한다. 일반인은 공직자에 대해서만은 의혹 단계에서 폭로할 수 있다. 일반인은 힘이 약하고 공직자는 강하므로 이런 식으로라도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공직자의 공직자에 대한 폭로는 그럴 수 없다.
폭로를 한 정치인들은 立證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 노력도 없이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상태, 즉 의혹 단계에서 폭로하는 것은 게으름의 표상이고, 무엇보다도 '생 사람 잡을' 가능성이 높다. 전현직 국회의원의 폭로에 대해서는 언론이 우선적으로 보도해주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정보를 수집하는 데 상당한 法的, 정치적 권한을 갖고 있다. 일반인이나 기자들보다도 더 수월하다. 그렇다면 폭로를 뒷받침할 증거를 수집하는 데도 유리하다. 그런 능력을 가진 이들이 증거 수집 노력을 하지 않고 단순한 의심을 갖고 사실인 것처럼 폭로하는 것은 헌법기관과 정치인을 선동꾼으로 타락시키는 反정치적 自害행위이다.
선진국에선 전현직 국회의원이 非理의혹을 폭로하였다가 입증이 되지 않는다든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면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의원직을 사퇴하거나 政界를 떠난다. 막강한 권한에 따른 당연한 문책인 것이다.
與黨이 野黨을 상대로 폭로하거나 野黨員이 동료 野黨員을 상대로 폭로하는 일은 세계적으로 매우 드물다. 與黨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힘이 野黨보다 훨씬 강하다. 그러므로 與黨은 野黨에 대한 폭로를 자제하는 것이 정치 도리로 여겨졌다. 與黨이 정보 접근권을 남용하여 野黨을 공격하는 것은 불공정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8년 이후엔 집권세력이 野黨을 공격하는 데 앞장 서고 있다. 이렇게 야비한 게임은 독재국가가 아니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더구나 野黨에 대한 집권세력의 폭로는 대부분이 허위로 밝혀졌었다. 그럼에도 與黨의 野黨에 대한 폭로가 계속되고 있다. 허위폭로를 해도 문책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이제부터는 폭로 정치인이 폭로 내용의 眞僞에 정치적 생명을 걸어야 한다. 지금 한나라당에서 이뤄지는 폭로가 국민들을 혼란속으로 몰고가는 이유는 폭로의 질이 낮아 입증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카더라' 수준의 정보를 익히지도 않고 폭로하니 소리는 높은데 사실로 확인되는 것은 없다.
허위폭로를 한 정치인에 대해서는 유권자들이 代價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 낙선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생활이 불가능하게끔 인격적으로 매장시켜버려야 한다.
결국 국민 수준이다!
한나라당의 폭로식 검증공방은 고소사태로 비화하여 검찰이 수사를 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결국 내부 문제에 검찰의 개입을 자초한 셈이다. 동지끼리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그 해결을 외부에 맡긴다는 것은 정당임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 없다. 부부싸움의 해결을 경찰에 맡기는 가정이 깨지지 않으면 기적이다.
黨의 동료를 상대로 계좌추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동료가 아니라 수사관 같은 어법이다. 개인의 계좌를 멋대로 추적한다는 것은 私生活 침해이다. 더구나 동료를 상대로 그런 뒷조사를 하라고 盧 정권에 요구하는 판이니 콩가루 집안도 정도 문제이다.
한국인들은 싸우기 시작하면 泥田鬪狗(이전투구)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싸움의 한계를 긋지 못하고 共滅의 길을 간다.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 전쟁을 마지막으로 1300년 동안 한번도 스스로 전쟁을 결심, 계획해본 적이 없는 한국인이다. 원천적으로 전략감각이 무디고 감정에 휩쓸린다. 한번 싸움을 한 뒤엔 원수가 된다. 싸움의 기술이 너무나 치졸하다. 더구나 정권을 눈앞에 두고 싸우는 李明博-朴槿惠 게임은 반드시 분열의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경선에서 진 후보는 출마가 불가능하지만 탈당을 막을 법은 없다. 黨에 남아서 勝者를 계속 괴롭히고 여기에 외부세력이 가세하면 탈당하는 것보다 더 파괴적이다.
李, 朴 양쪽이 뱉어 놓은 극렬한 말로 보아 敗者 편에 줄을 선 정치인들은 앞으로 공천을 받기 어렵다고 판단할 것이고 自救수단을 쓸 것이다. 그 수단이 한나라당 大選 패배의 길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大同단결할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싸우진 않는다. 과거 金泳三, 金大中씨가 같은 당에서 싸울 때도 이렇게 하진 않았다.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서로의 약점을 알고 있었지만 치명적 폭로는 하지 않았다. 이념무장에 근거한 애국심이 약하니 싸움이 도를 넘는다.
결국 여론이 승부처이다. 7월 중순 현재로선 朴槿惠씨의 지지율이 많이 오르지 않았다. 10% 이상의 격차가 유지되고 있다. 李明博씨를 지지하는 이유는 그가 깨끗하기 때문이 아니라 유능하기 때문인 듯하다. 이 추세가 계속되면 競選에서 李明博씨가 유리하다. 李씨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뽑힌 뒤에도 폭로는 계속될 것이다.
朴槿惠씨가 역전승하여 한나라당 후보가 되어도 친북좌파들의 본격적인 폭로가 이뤄질 것이 뻔하다. 특히 최태민 사건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면서 폭로의 深度(심도)가 달라질 것이다. 이런 폭로엔 정권이 독점하고 있는 정보들이 제공될 가능성이 높다.
汎여권으로 불리는 좌파의 離合集散(이합집산)에 대해서 국민행동본부는 失政의 책임을 피하기 위한 '위장폐업, 야반도주, 신장개업'이라고 표현하면서 원천적으로 후보를 낼 자격이 없다고 공격했다. 올해 與野가 보여줄 어지러운 게임은 유권자들을 흥분시키고 짜증나게 하고 종국에 가서는 냉담하게 만들 것이다. 정권을 놓고 이 정도로 싸운다는 것은 그래도 발전이다. 정권의 향방을 말싸움으로 결정하는 관행이 정착된 것은 한국의 경우 20년밖에 안된다.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면 정권은 암살, 쿠데타, 전쟁 등 폭력을 동원하여 빼앗아 오는 것이 보통이다. 총으로 하는 정권싸움을 말로써 하니 치열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유권자들의 얼굴이다. 盧武鉉 대통령은 한국 유권자들의 수준을 반영한다. 보통선거에선 李健熙 회장도 한 표이고 노숙자도 한 표이다. 碩學도 한 표이고 19세도 한 표이다. 결국 유권자들의 평균 수준에 맞는 대통령이 뽑힌다.
보통사람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 사업가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 정치인은 '인간이 해선 안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란 농담이 있다. 李承晩, 朴正熙 같은 위대한 인물들은 인간이 해선 안되는 일도 하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만 하는 보통사람들을 격동시켜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대중정치시절엔 그런 위대한 인물이 대통령으로 뽑히기 어렵다.
1993년 김영삼 정부 이후 한국사회를 왼쪽으로 밀어갔던 좌경화의 흐름이 15년만에 反轉되고 있다는 통계는 많다. 이런 변화를 몰고온 것은 좌파의 위험성과 무능에 대한 국민들의 각성이었다. 한나라당은 이 각성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애국세력은 이 각성이 反核反金의 여론으로 대세화되었다고 좋아하는데 한나라당은 여론이 좌경화하고 있다고 불안해 한다. 상황 인식이 완전히 다르다.
한나라당의 두 후보 지지율은 약65%, 좌파 후보군 지지율은 다 합쳐도 15% 이하이다. 전교조 회원수가 줄고 있다. 폭력 시위나 불법파업에 대한 여론의 압력이 주동자들을 주눅 들게 하고 있다. 40대의 反좌파 성향이 가장 두드러진다.
이래도 한나라당이 자신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희미한 對北정책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 투항주의를 선택한 것은 애국심(이념무장) 부족과 여기서 기인한 黨內의 분열성 때문이다. 여론의 대세화는 이뤄졌으나 한나라당의 기회주의성과 분열성은 치유되고 있지 않다. 대한민국은 아직 외롭다. 대한민국 수호를 다짐한 당이 대한민국의 敵이 김정일 세력에 추파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각성한 유권자들만이 이런 답답한 상황을 극적으로 타개할 수 있다. 투표날까지 계속될 선거판의 泥田鬪狗(이전투구)를 물끄러미 구경하다가 투표장으로 들어가서 결정적 한 표를 던질 때 역사가 움직일 것이다. 1945년에 李承晩이 귀국 직후 한 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경고는 아직 유효하다. 올해는 '뭉치면 살고 속으면 죽는' 해이다.
미국 메이저 리그 야구 게임 중계를 많이 본 분들은 패싸움을 더러 구경했을 것이다. 투수가 타자에 빈볼(고의 死球)을 던지면 타자가 마운드로 돌진하여 그의 멱살을 잡는 순간 양팀 선수들이 몰려와서 뒤엉킨다. 야구선수들은 주먹질은 좀처럼 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큰 부상을 입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패싸움을 영어로 bench clearing brawl이라고 표현한다. 벤치에서 대기중인 선수들까지 모두 그라운드로 뛰쳐나와 싸움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이때 어느 선수가 그 패싸움에 참여하지 않고 혼자 벤치에 남아 있으면 그 팀에서 따돌림을 당한다고 한다. 이성적인 미국인들도 싸울 때는 일단 편을 확실하게 든다.
어느 소년이 살인사건을 저질러 경찰이 수사를 시작하면 미국의 가정에선 변호사를 선임한 뒤 일단 기자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철저하게(때로는 후안무치하게) 살인소년을 감싼다. 확정판결을 받기 전에는 가족구성원을 무죄로 보고 변호한다.
정치인 남편이 부정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을 때는 이혼단계에 들어간 부인조차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남편을 다정하게 同行하면서 옹호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것들이 '싸움의 윤리'일 것이다. 개미연구자들이 관찰한 행태도 비슷하다. 개미의 사회는 잘 조직되어 있는데 조직에 따라다니는 권력투쟁이 치열하다.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쿠데타, 암살, 매복, 전쟁, 合縱連橫(합종연횡)이 개미사회에서도 일어난다.
약한 집단이 강한 집단을 공격할 때는 여러 약한 집단이 연합한다고 한다. 이들은 일단 강한 집단을 누른 다음에는 자기들끼리 또 권력투쟁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강한 집단과 싸울 때는 절대로 弱者끼리는 싸우지 않는다고 한다. 일단 大同단결하여 목표 달성을 한 다음 서로 싸운다는 것이다. 이것이 개미도 지키는 '싸움의 윤리'란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이 추운 한데에 나가서 私學法 개정 반대라는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다. 상대는 盧정권 및 친북守舊좌파세력이다. 웰빙당이란 비판을 받아왔던 한나라당으로서는 늦지만 바른 길을 선택한 것이다. 기독교 세력과 사학법인, 그리고 애국단체도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을 밀어주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대한민국 수호세력이 戰列을 갖추었다. 分進合擊, 大同團結, 白衣從軍이란 애국단체의 3대 행동원칙이 한나라당의 시위현장에서 적용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에 비판적이던 애국단체들도 시위에 조용히 동참하고 있다.
문제는 한나라당 내부의 소수 인사들이 제기한 '場外투쟁 반대론'이다. 盧정권은 官權과 어용언론과 친북守舊 홍위병 세력을 총동원하여 反헌법적인 법률을 합당한 토론절차 없이 변칙적으로 통과시켰는데도 한나라당이 국회안에서, 실내에서만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슨 토를 달아도 그 속셈은 '열린당에 항복하자'는 의미이다.
힘을 합쳐도 부족한 점이 많은 한나라당인데, 反헌법세력과의 싸움을 사실상 포기하자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하여 싸우는 사람들의 사기를 망치고 발을 거는 행위는 일반적인 '싸움의 윤리'에도 맞지 않는다. 한나라당과 애국단체의 연계투쟁은 잘 되면 오랜 숙원이었던 '싸우는 자유진영'의 모태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역사적 기회를 포기하라고 속삭이는 내부의 유혹으로부터 朴槿惠 대표를 지켜내고 그녀를 격려해주는 것은 그동안 한나라당에 비판적이었던 애국단체의 몫이기도 할 것이다.
자신의 조직이 命運을 걸고 巨惡과 싸우는데 그 전열에서 이탈하여 반대와 불평을 드러내놓고 하는 행위는 개미보다도 못한 敵前분열이다. 反대한민국 세력과 싸울 줄 모르는 사람에겐 절대로 정권이 가지 않을 것이다. 체제의 死活을 건 싸움이 전개되고 있는 한반도에서 지도자가 되려면 우선 제대로 싸우는 방법부터 배워야 한다. 한국 정치인의 가장 큰 부패는 싸워야 할 때 물러나는 것이다. 그런 이들은 개미보다 못한 사람이니까.
한국의 민주화는 민주투사들이 이룩했다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국민국가로 건국시킨 이승만 등 건국세력, 공산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호국세력, 박정희 등 산업화 세력, 학생 등 민주투사들의 합작품이다.
2. 민주주의는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이다.
-민주주의는 안전, 복지,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와 法治를 만드는 이념이다. 평화적 정권교체는 민주주의의 일부이며 수단이다.
3. 군사문화는 민주주의의 敵이다.
-군사문화가 강한 나라, 즉 유럽과 일본에서 민주화가 먼저 이뤄졌다. 군사문화가 富國强兵과 法治를 만들고 이 토양에서 질서 있는 민주주의가 꽃핀다. 진정한 군사문화는 민주주의의 온실이다. 한국에서도 군인출신들이 산업화와 민주실천을 주도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적은 관념론, 명분론, 그리고 위선이다.
4. 민주주의는 자동적으로 공산주의를 이긴다.
-어린 민주주의는 공산주의에 추행당한다. 성숙한 민주주의만이 공산주의를 이길 수 있다.
5. 가난한 나라라도 민주주의를 하는 데는 지도자의 결심만 있으면 된다.
-민주주의는 부자 나라만 할 수 있다. 가난한 나라가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시도하면 반드시 후퇴하고 혼란에 빠져 독재화된다.
6. 민주주의는 당장 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富와 경험의 축적이 필요하다.
7. 민주주의는 약하다.
-민주주의는 실수를 견딘다. 유연하기 때문에 충격을 흡수한다.
8. 민주주의는 투쟁이다.
-민주국가에서 민주주의는 준법이다.
9. 민주주의는 도덕주의이다.
-민주주의는 관용이다.
10. 민주주의는 집단주의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주의이다. 개인의 사생활, 사유재산, 양심의 자유를 신성불가침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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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나라당과 朴槿惠 李明博씨를 지지하는 현재의 국민 여론은 압도적이다. 70% 정도이다. 정권을 잡을 기회가 오니 고질병이 도지고 있다. 한국 정치사장 보기 드문 집안싸움이 공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저렇게 감정적으로, 폭로적으로 싸우면 후보 경선에서 누가 당선되든지 단합은 불가능할 것이다. 신라통일 이후 스스로 전쟁을 결심해본 적이 없는 한국인은 싸움의 기술이 유치하다. 폭로와 음해의 기술은 세계적이지만 戰略이 없다. 한반도에서 가장 큰 전략은 이념이다. 이념은 누가 국가의 敵이고 누가 친구인지를 알게 해준다. 이념무장이 약한 한나라당, 李, 朴씨가 좌파정권을 종식시킬 기회, 국민의 대각성이 만들어준 이 절호의 기회를 분열로 놓치고 말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許政 전 내각수반은 抗日투쟁보다 내부투쟁을 더 치열하게 하는 해외 독립운동 단체를 둘러보고 개탄했다.
'분열은 한국인의 原罪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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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씨와 단일화할 생각이 있습니까'
이회창: '그 분에게 한번 여쭤봐 주시지요. 이쪽으로 올 의향이 있다면 물론 저희들은 환영합니다'
趙甲濟
2002년 11월10일 여의도 한나라당 黨舍에서 李會昌 후보와 마지막 인터뷰를 했다. 당시 그는 여론조사에서 1위를 독주하고 있었다. 그는 여유만만했다. 대통령이 되었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도 거침 없이 대답했다. 요약하면 이러했다.
'황장엽 선생을 풀고, 對北현금지원은 끊되, 국방비는 늘리며, 남북기본합의서로 돌아가겠다'
'불법 폭력 시위를 근절하기 위한 입법 조치를 취하고, 정부내의 초법적 위원회는 정리하며, 6.15 선언 2항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 대통령 명령이 부당하면 거부할 수 있도록 검찰을 독립시킬 것이다'
나는 이렇게 물어보았다.
'鄭夢準 후보와 단일화할 가능성도 있습니까'
그의 대답은 차고 짧았다.
'그 분에게 한번 여쭤봐 주시지요. 이쪽으로 올 의향이 있다면 물론 저희들은 환영합니다'
이때 李會昌 후보가 한반도의 본질적 대결구도가 김정일 세력과 대한민국 세력의 대결이며, 정몽준 후보는 대한민국 세력일 수밖에 없고, 反대한민국 세력인 친북좌파에 이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손을 잡아야 할 상대임을 깊이 인식했더라면 정몽준씨가 좌파편으로 달려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고 大選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한반도의 가장 큰 전략은 이념인 것이다. 이념은 누가 敵이고 누가 同志인가를 알게 해준다. 이념은 또 공동체의 이해관계에 대한 自覺이다. 이런 自覺에 이르면 행동하게 된다.
2002년 대통령 선거를 40일 앞두고 한 월간조선 여론조사에서 李會昌 후보는 모든 측면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있다는 수치가 나왔다. 그는 3者 대결과 1 對 1 대결에서 모두 큰 차이로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3者 대결에선 李후보 32.2%, 盧무현후보 16.4%, 鄭몽준후보 18.6%였고, 이회창-노무현 가상대결일 때(당시는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되기 전임)는 40-26%로, 이회창-정몽준 가상대결에선 37-32%로 앞섰다.
이 여론조사가 발표된 보름 뒤 노무현-정몽준 단일화가 이뤄졌다. 그 다음날 여론조사에서 뜻밖에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7% 이상 앞섰다. 浮動票가 단일화 드라마에 감동하여 노무현 후보 지지로 선회했고 정몽준 후보 지지층이 가세한 덕분이었다.
이 사실이 보여주는 의미는 크다. 이회창 후보가 진 것은 병역의혹 때문이 아니다. 그때는 이미 김대업의 폭로가 거짓임이 드러난 후였다. 이회창 후보는 폭로의 충격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65%가 이회창 후보의 당선을 예상하고 있었다.
이회창 후보가 진 것은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때문이다. 李 후보가 보수세력일 수밖에 없는 정몽준의 이탈을 허용한 때문에 진 것이다. 병역의혹 선동은 수십만 표에 영향을 주었다면 보수 분열은 수백만 표에 영향을 주었다. 이회창 후보가 발벗고 나서서 정몽준 후보와 연대를 모색하지 않은 것이 敗因이었다. 그는 57만 표 차이로 노무현 후보에게 졌다. 보수 분열을 감안하면 많이 받은 표이다.
다가오는 12월 大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보수층이 단결하여 단일후보를 밀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 여기서 분열이란 의미는 敗者가 黨에 남아 있으면서 勝者의 약점을 계속적으로 폭로하는 등 利敵행위를 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승만 대통령이 1945년에 말했던 대로 한국 정치게임의 원리는 간단하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한나라당 폭로게임을 변호하는 논리가 있다. 이렇게 싸워야 本選에서 여권이 폭로 작전을 펼 때 면역력이 생겨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착각이다.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이 단결만 하면 그런 폭로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검증공방으로 두 사람이 분열하고 좌파가 단합하면 그런 폭로가 없더라도 진다. 수십만 표를 지키려다가 수백만 표를 잃는다. 두 사람의 단합은 전략이고 폭로는 전술 수준이다. 전술과 전략을 혼동하여 전술에 집착하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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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싸움으로 정권 놓친 경우가 네 번 있었다!
5·16을 부른 新舊派 분열, 신군부의 집권을 허용한 金泳三-金大中 분열, 盧泰愚 당선을 허용한 87년의 兩金 출마, 그리고 李仁濟.
趙甲濟
한국 정치사에서 정권이 눈앞까지 굴러왔는데도 분열하였기 때문에 이를 놓치거나 잡고 있던 정권을 빼앗긴 경우가 네 번 있었다.
1. 4.19 학생의거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뒤 치러진 1960년 총선에서 3분의 2라는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은 新派, 舊派로 분열했다. 舊派 출신으로 대통령이 된 尹潽善씨는 내각책임제 하의 實權을 가진 국무총리 후보로 구파의 金度演씨를 지명했으나 국회에서 부결되었다. 尹씨는 할 수 없이 신파의 張勉씨를 지명했고 근소한 표차로 당선되었다.
이때부터 신구파 싸움이 격화되었다. 한민당에 뿌리를 둔 민주당은 反共자유민주 노선을 따르고 있었으므로 新舊派라고 하더라도 이념과 정책상 차이는 거의 없었다. 순전히 자리싸움이었다. 기어코 舊派는 신민당을 차려 나가 張勉 총리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지하에 있던 좌익들이 들고 일어나 대중조직을 만들고 파업, 횃불집회, 과거사 폭로 등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학생들이 가세하여 판문점으로 달려가 북한 학생들과 통일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나섰다.
좌익의 준동으로 무정부 상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군인들이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휴전한 지 7년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民心도 군인들이 나와야 한다는 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민주당, 신민당은 이런 사회혼란을 목도하고서도 거국적 대책을 내어놓지 못했다.
이런 내분 속에서 박정희 장군의 쿠데타 계획은 거의 공공연하게 진행되었다. 육군본부 식당에서도 포섭공작이 이뤄졌다. 수사, 정보기관에서도 쿠데타 정보를 수집하여 張 총리에게 보고했으나 그는 과단성 있는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쿠데타 계획을 분쇄하여야 할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이 朴 장군의 거사계획을 알면서도 張 총리에게 허위보고를 하면서 나름대로의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상층부의 분열은 新舊派가 단결하였다면 막을 수 있었다. 신구파가 의회의 3분의 2 의석을 차지한 바탕에서 여론을 업고 질서를 잡아나가기 시작했다면 5.16의 명분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들이 몰아준 표와 만들어준 권력을 정치인들이 집안싸움으로 날려버린 것이다.
2. 1980년 봄에 金泳三, 金大中씨가 분열하여 신군부의 집권을 허용했다. 金大中씨는 야권 분열을 선도했다. 그는 선명한 투쟁으로 대통령 有故 상황을 만든 金泳三의 신민당에 들어가지 않고 在野세력과 손을 잡고 별도의 정당을 만들려고 했다. 만약 이때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신민당을 강화해가면서 국민들 속에서 불붙기 시작한 민주화의 열망을 이어갔다면, 동시에 학생-노조의 극단적 행동에 브레이크를 걸었다면 상황의 주도권을 잡았을 것이다. 두 사람이 단합했다면 金鍾泌의 공화당도 합세하여 민간정치 세력 주도의 改憲이 가능했다.
3. 1987년 6.29 선언으로 직선제 개헌이 이뤄지고 12월 선거가 공고되자 金泳三, 金大中 두 사람은 또 분열했다. 이때도 김대중씨가 신민당을 깨고 평민당을 만들어 후보로 나왔다. 두 金씨가 단합하여 단일후보를 내었다면 민정당의 盧泰愚 후보한테 樂勝했을 것이다. 12월 선거에서 盧 후보는 36%의 지지율을 얻고서도 당선되었다. 兩金氏의 표를 합하면 50%를 넘었다. 김영삼, 김대중 두 사람의 분열은 민주화 시기에 하나 되었던 국민들을 지역감정으로 갈라놓았다. 반면 군인출신 全斗煥, 盧泰愚씨는 6.29 선언을 기획, 주연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하여 단합했다.
4. 1997년 신한국당 경선에서 李會昌씨가 큰 표차로 당선되었는데도 2위를 한 李仁濟씨가 탈당하여 독자 출마를 강행했다. 金泳三 당시 대통령은 신한국당 총재이면서도 이 사태를 방관했다. 李會昌 후보는 이런 金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여권의 이런 분열속에서 김대중 후보는 김종필씨를 내각제 약속을 미끼로 끌어들였다. 분열한 여권은 패배하고 단합한 김대중씨 측은 승리했다. 보수층이 70%인 나라에서 좌파 대통령이 등장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왜 국가관과 추진력 검증을 하지 않는가?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하니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金泳三 정부: 좌파宿主 정권의 현대사 파괴, 국가의 본질 훼손
-한국 현대사의 정통성 부정: 중앙청 파괴, 남산 외인아파트 철거.
-군사문화 부정. 권위와 기율의 파괴를 민주화로 오해.
-'민족이 이념과 동맹보다 우선한다'-좌파식 對北觀
-한완상, 김정남의 영향
-韓美 균열, 北核 대처 실패로 對北주도권 상실.
-전교조 복직 허용
-3당 합당 구도 파괴로 김대중 집권 길 열다: 김종필 탈당, 나중에는 이인제 탈당 방조
-12.12 사건, 5.18 사건 수사로 대구-경북세력 이탈
-개방경제의 관리실패로 외환위기 초래, 좌파집권 돕다.
5. 한나라당과 朴槿惠 李明博씨를 지지하는 현재의 국민 여론은 압도적이다. 70% 정도이다. 정권을 잡을 기회가 오니 고질병이 도지고 있다. 한국 정치사장 보기 드문 집안싸움이 공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저렇게 감정적으로, 폭로적으로 싸우면 후보 경선에서 누가 당선되든지 단합은 불가능할 것이다. 신라통일 이후 스스로 전쟁을 결심해본 적이 없는 한국인은 싸움의 기술이 유치하다. 폭로와 음해의 기술은 세계적이지만 戰略이 없다. 한반도에서 가장 큰 전략은 이념이다. 이념은 누가 국가의 敵이고 누가 친구인지를 알게 해준다. 이념무장이 약한 한나라당, 李, 朴씨가 좌파정권을 종식시킬 기회, 국민의 대각성이 만들어준 이 절호의 기회를 분열로 놓치고 말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許政 전 내각수반은 抗日투쟁보다 내부투쟁을 더 치열하게 하는 해외 독립운동 단체를 둘러보고 개탄했다.
'분열은 한국인의 原罪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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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요사이 자주 쓰는 말이 있다. '도덕성 검증'이다. 주로 公職에 나서는 이들에게 이걸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말은 좋은데 섬찟한 느낌이 온다.
月刊朝鮮+오픈소사이어티 정기 여론조사 (19)
(월간조선 2002년 12월호)
당선 가능성 李會昌 64.7%,鄭夢準 7.3%, 盧武鉉 7.2%
● 이번 大選 성격은「부정부패에 대한 심판」35.1%
● 4000억원 對北 비밀 지원「믿는 편」이 53.4%
▲조사대상 : 전국(제주 제외)의 만 20세 이상 성인유권자 1000명
▲조사방법 : 구조화된 설문지를 통한 전화조사
▲표본추출 : 지역별 다단계 추출 후, 인구비례에 의한 무작위 할당추출
▲조사기간 : 2002년 10월8~9일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에서 ±3.1%
▲조사기관 : 오픈 소사이어티(주)
[해설 金胤鎬 오픈 소사이어티·디 인포메이션 대표]
유보층 늘어나는 추세
한 달 후면 16代 大選. 흥미있는 것은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유보층이 오히려 더 늘어났다는 점이다. 지난 달까지 약 15∼20% 정도였던 유보층이 30% 정도까지 늘어났다. 한나라당 李會昌후보의 지지율은 변동이 없는 상황에서 盧武鉉·鄭夢準 후보의 지지율이 빠지면서 유보층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현재 「꼭 투표하겠다」는 응답은 68.5%. 「아마도 투표할 것이다」라고 답한 14.1%까지 합치면 82.6%이나<그림1>, 이전 선거에서의 경험을 보면 실제 투표율은 「꼭 투표하겠다」 쪽의 응답비율을 약간 상회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1997년 15代 大選 때의 투표율 80.7%와 비교해 이번 16代 大選의 투표율이 더 낮아지지 않을까 하는 예상도 해 볼 수 있다. 이유는 1강(李會昌) 2중(盧武鉉·鄭夢準)구도가 전개되면서 투표결과에 대한 흥미가 줄어든 탓이라고 판단된다.
현재 출마를 선언한 후보가 모두 출마하는 多者구도를 상정해 보자<그림2>. 『금년 말에 있을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 민주당 盧武鉉 후보, 국민통합 21 鄭夢準 후보, 민주노동당 權永吉 후보 그리고 張世東 후보, 李漢東 후보 등 여섯 사람이 출마할 경우 어느 후보에게 투표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결과는 李후보 32.2%, 盧후보 16.4%, 鄭후보 18.6%, 權후보 2.4%, 張世東 후보 1.0%, 李漢東 후보 0.3%였고 유보층이 29.2%나 됐다. 유권자 10명 중 3명은 선거에 관심이 없거나 지지후보를 정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선거에 맥이 빠졌다. 이 구도에선 당연히 李후보의 압승이 예상되는 싱거운 선거가 될 것이다.
TV 토론 봐도 李후보 지지자 변심 적어
혹여 변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현재 지지하는 후보가 바뀔 가능성이 있는가』를 물었다. 25.4%가 「많은 편」이라고 했고 67.7%는 「없는 편」이라고 했다. 지지후보 변동가능성을 지지후보자별로 보면 李會昌 후보 지지자들의 경우 「많은 편」이라는 답변은 17.8%. 다른 후보에 비해 상당히 적은 수치다. 그만큼 지지율의 견고성이 강하다는 의미도 된다. 반면 盧후보 지지자들의 변동 가능성은 22.9%, 鄭후보는 20.4%, 權후보는 37.2%, 張世東씨는 33.8%, 李漢東씨는 18.8% 등으로 李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다. 만약 막판에 지지후보가 바뀐다면 어느 후보가 보다 유리해질까. 『바뀐다면 누구로 바뀔 것인가』도 물었다. 「李會昌 후보 쪽으로 바뀔 것」이라는 응답은 12.1%, 盧후보 쪽 8.1%, 鄭후보 쪽 14.9%, 權후보 쪽 1.8%, 그리고 張世東 후보 0.6%, 李漢東 후보 0.3%였다. 鄭夢準 후보가 가장 기대해 볼 만하고 그 다음은 李會昌 후보라는 말이다.
TV 합동토론회를 보고 지지후보가 바뀔 가능성도 살펴보았다. 「많은 편」 29.1%, 「없는 편」 66.0%였다<그림3>. 지지후보자별로 보면 李후보 지지자의 경우 「많은 편」이라는 답변이 20.1%이고, 盧후보 26.1%, 鄭후보 21.7%, 權후보 31.0%, 張世東 후보 28.0%, 李漢東후보 18.8%로 유력 세후보 중만 보면 역시 李會昌 후보 지지자들의 변화 가능성이 가장 낮았다. 李후보로선 반색할 만한 수치다.
候補單一化해도 李會昌 후보가 유리
대결구도가 바뀌는 경우도 가정해 보았다. 盧후보 쪽으로 候補單一化가 되는 상황이다<그림4의 가상대결 2>. 『盧武鉉 후보, 鄭夢準 후보, 張世東 후보, 李漢東 후보가 모두 합쳐 盧武鉉 후보를 新黨의 단일후보로 내세워 한나라당의 李會昌 후보, 新黨의 단일후보로 盧武鉉 후보, 민주노동당의 權永吉 후보가 출마할 경우 어느 후보에게 투표하겠는가』를 조사했다. 李후보 40.1%, 盧후보 26.3%, 權후보 3.5%, 유보층 30.2%였다. 마찬가지로 1위가 뚜렷한 싱거운 판세다.
新黨의 단일후보로 鄭夢準 후보를 내세우면 어떻게 될까<그림4의 가상대결 3>. 李후보 37.1%, 鄭후보 32.1%, 權후보 4.6%, 유보층 26.3%다. 이 경우 李후보와 鄭후보의 지지율 차이는 5%포인트. 李후보가 오차범위인 ±3.1%포인트를 넘는 수준에서 鄭후보를 앞선다. 역시 李후보가 유리한 판세다. 하지만 이 구도가 그나마 현재의 판세에 역전 가능성이 보이는 유일한 구도다.
이 구도에서의 유보층은 연령별로 볼 때 20代 32.2%, 30代 24.4%, 40代 17.9%, 50세 이상 28.4%로 조사되었다. 鄭후보 쪽의 지지가 상대적으로 강한 20·30代층에 유보층이 더 많다는 것은 鄭후보 쪽이 지지표 확산을 위한 개척의 여지가 그만큼 더 남아 있다는 분석도 된다. 그러나 <가상대결 1, 2, 3>을 모두 종합해 볼 때 이번 大選의 가장 유리한 고지는 李會昌 후보가 점령했다는 판단이다.
鄭후보 쪽 단일화 경우 이탈표 적어, 『이번 大選은 부정부패에 대한 심판』
이쯤에서 잠깐, 候補單一化가 盧후보 쪽으로 되는 경우와 鄭후보 쪽으로 되는 경우 지지율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를 분석해 보자. 먼저 盧후보 쪽으로 단일화되는 경우. 이 때는 鄭후보 지지자들 가운데 27.3%가 李후보 지지로 돌아서고 盧후보쪽으로 가는 지지자는 39.3%에 불과하다. 33.1%는 유보층으로 빠져 버린다.
반면 鄭후보 쪽으로 단일화되는 경우 盧후보 지지자들이 李후보 쪽으로 가는 비율은 17.0%, 유보층으로 빠지는 비율은 21.8%로 상대적으로 적고 과반수인 55.4%가 그대로 鄭후보 지지쪽으로 선회한다. 다시 말해 鄭후보로 단일화되는 경우가 두 후보 지지표의 합산에서 빠져나가는 표가 더 적은 것이다.
이유는 盧후보 지지자들은 反昌감정이 워낙 강한 개혁성향의 호남중심의 지지표인 반면 鄭후보 지지자들은 온건 보수노선의 수도권지지표가 더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鄭후보가 빠질 경우 그의 표는 지지성향으로 볼 때 보수 쪽인 李후보 쪽으로 상당부분 이탈하는 것이다. 鄭후보 지지자의 상당수는 개혁노선을 표방한 盧후보 쪽으로 정치적 색깔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정부패·경제정책·햇볕정책 심판
당선 가능성도 살펴보자. 『이번 선거에서 누구를 지지하는 것과 상관없이 이번 大選에서 누가 이길 것으로 판단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 李후보가 64.7%를 얻어 압도적이었다<그림5>. 그 다음은 鄭夢準 후보 7.3%, 盧武鉉 후보 7.2%, 權永吉 후보 0.9%, 張世東 후보 0.1%, 李漢東 후보 0.1%순이었다.
왜 이번 大選은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결과가 뻔해지면서 맥이 풀려버리는 것일까. 이유는 이번 大選의 성격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現 정부의 여러 정책에 대한 심판과 관련해 이번 大選의 성격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하고 물었더니 「부정부패에 대한 심판」이 35.1%로 가장 많았다. 결국 金大中 정권의 부정부패가 民心離反의 결과를 가져왔고 그 최대의 수혜자가 제1야당의 대통령후보인 李會昌 후보가 된 것이다. 그 밖에는 「경제정책에 대한 심판」 28.8%, 「햇볕정책에 대한 심판」 12.7%, 「지역편중인사에 대한 심판」 6.6% 등이었다.
「候補單一化」엔 찬성, 「反昌연대」엔 반대 여론 높아
이같은 金大中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실망은 정당지지율에서도 잘 나타난다. 현재 정당지지율은 한나라당 27.0%, 민주당 14.9%, 자민련 1.1%, 민노당 1.9%, 기타정당 3.7%, 잘모르겠다/없다 51.3%였다.
그렇다면 與圈이 실오라기만큼의 희망을 걸고라도 역전을 꾀해 볼 수 있는 「候補單一化」에 대한 여론을 들어보자. 『민주당의 盧武鉉 후보와 국민통합21의 鄭夢準 후보가 단일화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바람직」 47.8%, 「바람직하지 않다」 40.9%로 「바람직하다」는 쪽이 다소 우세했다. 단일화의 방법과 관련해서는 「여론조사상 지지율이 높은 후보」가 36.5%로 가장 많았고, 「국민경선」 32.9%, 「후보간 담판」 18.3%순이었다.
단일화의 목적이 李會昌 후보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데에 있다면 「여론조사상 지지율이 높은 후보 쪽으로의 단일화」에 동의하는 응답자가 더 많은 것은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드러내 놓고 反昌연대를 구성하자는 데는 매우 비판적이다. 『李會昌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서는 모든 정파와 세력이 합쳐야 한다는 일부 정치권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입장이 58.4%. 「공감한다」쪽은 33.6%에 불과했다<그림7>.
『중부권 新黨 大選 영향 미칠 것』 53.3%
그렇다면 일각에서 거론되는 중부권 新黨에 대한 국민시각은 어떠한가.
『최근 정가에서는 민주당의 李仁濟 의원과 탈당파, 자민련, 李漢東씨 등 중부권에 기반을 둔 정치인들이 新黨을 만들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런 중부권 新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하고 물었다. 「반대」가 67.6%로 압도적. 「찬성」은 17.6%에 불과했다<그림8>.
그런데 만약 중부권 新黨이 독자적인 후보를 내지 않고 鄭夢準 후보를 지지할 경우 鄭후보에 지지율 상승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쪽이 53.4%나 되었고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은 36.3%였다. 좀더 세분해서 보면 정당지지자별로 볼 때 한나라당 지지자의 52.4%가, 민주당 지지자의 58.5%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지지후보자별로 봐도 李후보 지지자의 49.7%, 盧후보 지지자의 59.8%, 鄭후보 지지자의 67.3%가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다면 중부권 新黨이 비록 그 모양새는 바람직하지 않더라도 鄭후보를 지지할 경우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분명했다.
『중부권 新黨이 만들어질 경우, 이 중부권 新黨이 大選판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하는가』에 대해 「영향을 미칠 것」(53.3%)이라는 응답이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40.3%) 쪽을 상회했다<그림9>.
여성 유보층 35%의 변수
지금까지의 판세를 종합해 보자. 지금의 상황이 그대로 전개된다면 「1강 2중구도」로 李후보의 당선은 확정적이다. 그렇다면 역전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가. 전제는 그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이런 전제 아래 그래도 가능한 몇가지 경우를 상정해보겠다.
①<가상대결 3>에서 보듯 鄭夢準 후보로 단일화되는 경우다. 이 구도에서 현재 李후보와 鄭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5%포인트. 그러나 현재의 여론조사로는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를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지난 大選 때 金大中 후보로의 단일화로 약 7%의 지지율 상승이라는 시너지효과가 있었다. 만약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된다면 플러스 알파도 노려볼 만하고, 현재 유보층으로 돌아선 盧·鄭의 과거 지지자들이 되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②중부권 新黨 또는 후단협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의 탈당파가 일정 규모 이상이 돼 鄭후보의 지지를 선언하는 경우다. 이 경우도 여론조사에서 보듯 경기·충청으로 대변되는 중부권의 지지자들이 적지 않게 鄭후보 쪽으로 몰려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런 과정에서 1강 2중 구도가 2강 1중 구도로 재편될 움직임이 보이면 호남유권자들도 막판에 鄭후보 쪽으로 힘을 몰아 줄 가능성이 크다.
③30%에 달하는 유보층, 특히 현재 여성유권자의 경우 유보층의 규모가 35%에 가깝다. 유보층과 女心을 잡으면 막판 대세를 잡을 수 있다. 물론 鄭후보 쪽으로 단일화된다는 전제 아래서다. 이 때 鄭후보가 유보층, 특히 여성표를 공략할 수 있으면 그에게도 희망이 있을 수 있다.
이같은 구도가 과연 실현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는 여론조사 밖의 일이다. 단, 현재까지의 여론조사를 과학적으로 정밀 점검해 보면 그나마 범여권이 꾀해볼 만한 유일한 시나리오라는 얘기다.
이같은 시나리오가 가능한 이유는 바로 李會昌 후보의 지지율 때문이기도 한다. 현재 盧·鄭 후보의 지지율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과정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李후보의 지지율은 여전히 35%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아직도 「魔의 40%」를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틈새가 있는 것이다.
北核 개발 대응 『對北지원 중단』 의견 74.7%
그밖에 對北관계와 金大中 정권 대한 여론도 짚어보았다. 먼저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對北지원과 관련된 의견은 어떠한가』를 물었더니 「對北사업 경수로 건설 지원 전면 중단」 31.5%, 「일체의 對北지원 전면 중단」 28.3%, 「현금지원만 중단」 14.9%등 강경한 자세가 74.7%에 달했고, 「어떤 것도 중단하면 안됨」쪽은 19.0%에 불과했다<그림10>.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아 미국이 對北 경제봉쇄를 단행할 경우, 우리 정부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에도 「부분적으로 동참」 45.3%, 「적극 동참」 24.0% 등으로 미국 쪽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했고 「동참하지 말아야」는 25.0%였다.
이런 여론에도 불구하고 부시 대통령에 대한 우리 국민의 선호도가 높다고는 볼 수 없다. 『미국의 현재 대통령인 부시와 클린턴 전임 대통령의 對北政策 중 누구의 對北政策이 더 바람직하다고 보는가』에 대해서는 對北강경노선을 취하고 있는 「부시 대통령」(32.0%)보다는 북한에 보다 유화적이었던 「클린턴 전임대통령」(41.1%) 쪽이 더 바람직하다는 쪽이 우세했다. 때문에 지금의 對北여론이 형성된 것은 부시 대통령의 노선에 발맞춘 결과라기보다는 金大中 정권의 햇볕정책에 대한 실망과 북한의 핵개발 의혹에 대한 분노가 어우러진 탓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이 거센 가운데서도 우리 국민은 북한이 곧 무너질 것으로는 보질 않는다.
『金正日 정권이 얼마나 더 존속할 것으로 보는가』에 대해 「3년내 무너질 것」 4.2%, 「5년내 무너질 것」 11.9% 등 15% 내외 선이고 나머지 대다수는 「10년내 무너질 것」(25.8%), 「무너지지 않을 것」(31.5%) 등에 속해 있었다. 金正日 정권에 대해서는 62.1%가 「惡이라고 생각」하는 가운데 늘 10% 정도의 「善이라고 생각」(9.8%)하는 국민이 있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對北 4000억 비밀 송금설, 「믿는 편」 53.4%
현재 정치권의 이슈가 되어 있는 對北 4000억 비밀 송금설에 대한 여론도 들어보자.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4000억원이 북한 정권에 비밀리에 전달됐다는 주장에 대해』 과반수(53.4%)가 「믿는 편」이라며 의심을 감추지 않았다. 「믿지 않는 편」은 26.2%로 소수<그림11>. 『4000억 對北 지원설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검찰이나 금감원이 계좌를 추적하는 것』에도 압도적으로 「찬성」(78.2%)했다. 「반대」는 16.1%로 매우 작은 목소리.
金大中 정권 부정부패 심판은 『정치보복 아니다』 압도적
국민들은 金大中 대통령에 대해서도 준엄했다. 『金大中 정권이 끝난 후 다음 정권에서 퇴임한 金大中 대통령 개인에 대한 불법사실이 밝혀질 경우, 이를 수사하는 것이 정치보복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해서는 「정치보복이 아니다」(60.6%)라고 태도를 분명히 했다. 「정치보복」이라는 의견은 27.8%로 소수견해.
『金大中 정권이 現代그룹을 통해 북한에 비밀리에 자금을 지원한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金大中 대통령을 수사하는 것이 정치보복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해서도 「정치보복이 아니다」(64.2%)라는 일관된 자세를 견지했다. 「정치보복이다」(22.9%)라는 쪽은 10명 중 2명 정도에 불과했다.
金大中 대통령의 측근들에 대해서는 더욱 냉정했다. 『다음 정권에서 金大中 정권의 측근이 권력을 이용하여 불법적으로 금품을 받았을 경우, 이를 수사하는 것이 정치보복이라고 생각하는가』에는 무려 76.4%가 「정치보복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정치보복이다」라는 쪽은 겨우 14.4%.
내년 2월 새 정권이 들어선 후, 누가 정권을 담당하게 되든 간에 만약 金大中 대통령 본인과 그 측근들의 비리가 밝혀질 경우 그 누구도 그에 대한 심판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 아닌가.●
대한민국이 大選에서 승리하는 길
1. 대한민국은 무엇을 바라는가?
*대한민국의 국가이념인 헌법을 존중하는 세력이 집권할 것을 바란다.
*대한민국의 敵인 김정일과 맞서 대한민국의 안전과 복지와 자유를 지켜줄 세력과 대통령을 바란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김정일의 유혹과 협박에 넘어간 從金세력을 제거하거나 약화시킬 세력과 대통령을 바란다.
*김정일을 無力化시키고 자유통일을 앞당겨 一流국가로 달려가는 길을 열 수 있는 대통령을 바란다.
*대한민국의 안전과 복지와 자유를 증진시킬 수 있는 직무능력을 가진 이를 대통령으로 원한다.
2. 대한민국은 어떤 사람을 대통령으로 원하는가?
*건전한 국가관과 역사관을 가진 사람
*뛰어난 국가운영능력을 가진 사람
*상식적인 도덕 수준에 미달되지 않는 사람
3. 차기 대통령의 임무는 무엇인가?
*국가정상화: 헌법을 수호하고 한법파괴세력을 제어함으로써 민간부문의 자유와 자율을 증진시켜 민주적인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한다.
*국가반역세력의 색출: 反국가단체인 김정일 정권과 내통해온 반역세력을 가려내어 사법처리하고 공직사회에서 영구적으로 추방한다.
*韓美동맹 복원: 연합사 해체 작업을 중단시키고 FTA 발효를 앞당긴다.
*교육 정상화: 교육부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전교조의 親北反美反韓 교육을 금지시키며 학교의 자율성을 드높이고 漢字 교육을 의무화한다.
*法治의 준수: 法과 질서를 회복시키고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한다.
*국가엘리트와 교양 있는 국민들: 국가大事를 國益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하는 애국적 엘리트층이 있어야 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시민윤리가 정착되어야 한다.
4. 2007년 大選의 몇 가지 시나리오
*最善의 선택: 김정일과 맞설 수 있는 유능한 지도자의 당선
*次善의 선택: 헌법파괴세력이 아닌 유능한 지도자의 당선
*次惡의 선택: 무능하고 부패해도 김정일 세력에 넘어가지 않을 지도자의 당선
*最惡의 선택: 從金세력의 영향권에 든 인물의 당선, 또는 우파 후보에 대한 암살이나 테러로 內戰的 상황 야기.
5. 한나라당의 두 차례 패배 요인 분석
*절대적 요인: 한나라당과 보수층의 분열과 좌파의 단합-수백만 표를 좌우
*상대적 요인: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에 대한 좌파와 어용언론의 집중 공격-수십만 표 좌우
6. 한나라당 승리의 필요충분 조건
*필요조건: 치명적 상호 폭로와 경선 불복 사태가 없을 것
*충분조건: 勝者와 敗者의 협력. 후보의 正體性 확립
7. 한나라당 패배의 필요충분 조건
*필요조건: 치명적 상호폭로와 경선불복
*충분조건: 대한민국 수호정당으로서의 正體性 포기, 反한나라당 전선의 후보 단일화
8. 李明博, 朴槿惠의 本選 경쟁력 평가
*모든 여론조사에선 李씨가 상당한 차이로 本選 경쟁력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한나라당 경선과정에서 부동산 문제 등으로 치명적 폭로를 당할 경우나 本選과정에서 朴씨의 협력을 얻지 못할 경우 위기가 닥칠 것이다.
*朴槿惠씨가 약점이 적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本選 과정에서 남북한 좌파로부터의 치명적 폭로나 李씨의 비협조로 중도표가 이탈할 경우 위기를 맞는다.
*李, 朴씨가 모두, 또는 한 사람이 보수적 정체성을 포기하고 좌파에 영합할 경우, 여기에다가 두 사람이 경선 후 분열할 경우, 벼랑에 선다.
9. 한나라당과 경쟁할 만한 反共자유민주정당이나 후보가 등장할 것인가?
*경쟁적 정당은 어렵고 10% 정도의 지지율을 확보하여 견제력을 가진 정당의 등장은 가능할 것이다. 이는 反좌파-우파의 정치 여론시장 점유율을 전반적으로 높힐 것이다.
10. 김정일의 계산: 노무현-김정일 회담의 타이밍은 놓쳤고, 成事되더라고 선거에 유리한 영향을 끼친다는 보장이 없다. 9월 이후 野黨의 승리가 대세화로 굳어지면 野黨 후보에 대한 접근과 회유 공작을 시작할 것이다. 보수파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체제단속의 명분을 잡을 수 있다는 유리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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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조사: 李-朴 격차, 다시 벌어져
汎여권 후보를 상대로 한 가상대결에서도 이명박씨가 크게 앞서.
趙甲濟
오늘 발표된 중앙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李明博, 朴槿惠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34% 대 24.1%. 지난 주의 격차는 5.4%였는데 이명박씨에 대한 朴 캠프의 검증 공세가 강했던 때 오히려 격차가 커졌다는 것이 흥미롭다. 汎여권 후보를 상대로 한 가상대결에서도 李明博씨가 朴 전 대표보다 경쟁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李 후보에게 집중되는 소위 도덕검증에 대해서 여론이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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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ins.com 풍향계 7월5일 여론조사.
■ 정기지표 관련
● 이명박 前시장 34.0%로 선두 유지, 박근혜 前 대표와 격차는 다시 벌어짐.
-박근혜 前대표 24.1%, 두 후보간 격차 지난주 5.4%p → 이번주 9.9%p로 벌어짐
● 한나라당 지지도 50.5%로 압도적 1위 유지
■ 차기대선 후보 적합도
● 범여권 대선후보로 적합한 인물, ‘손학규’ 21.6% > ‘정동영’ 12.8%
●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적합한 인물, ‘이명박’ 45.5% > ‘박근혜’ 30.3%
-한나라당 지지층에서는 이명박 52.1% vs 박근혜 40.1%
■ 가상대결
● 가상대결 결과,
- (가상대결1) 대선후보 지지도 이명박 59.2% > 손학규 22.1%
- (가상대결2) 대선후보 지지도 이명박 60.6% > 정동영 19.2%
- (가상대결3) 대선후보 지지도 박근혜 54.1% > 손학규 26.6%
- (가상대결4) 대선후보 지지도 박근혜 57.4% > 정동영 22.3%
■ 정치현안 관련
● 범여권 대선후보 호감도, 손학규 24.4% 정동영 15.4%
● 범여권의 후보단일화에 따른 지지여부,
‘지지하지 않을 것 39.4%’ vs '지지할 것 36.9%‘
● 재외국민 선거투표권 부여, ‘찬성한다 57.8%’ > ‘반대한다 33.7%’
■ 사회현안 관련
● 휴면예금의 저소득층 지원사업 활용에 대해, ‘찬성한다’ 75.7% > ‘반대한다’ 19.9%
● 비만 아동에 대한 살빼기 비용 지원, ‘찬성한다’ 38.5% < ‘반대한다’ 53.7%
● 김승연 회장의 실형 선고에 대해, ‘적절한 처벌이다’ 43.3% 로 가장 많아
● 여성의 군 복무에 대해,
‘군대에 가서는 안된다’ 39.5% -‘기초군사 훈련만 받도록’ 27.6%
실제로 여성이 군대에 가야한다는 의견도 24.5%나 돼
● 영어교육의 중요성, ‘중요함’ 88.9% vs. ‘중요하지 않음’ 7.9%
● 우리 국민 68.8% ‘나는 사회경제적으로 중간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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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시대에도 大運河가 있었다!
낙동강-조령-남한강으로 연결된 大水路는 만주의 심양과 일본의 하카다(후쿠오카)까지 연장된 한반도의 從貫교통로였다.
趙甲濟
누가 '우리나라 三國시대에도 大運河가 있었다'고 말하면 '무슨 잠꼬대인가'라는 반응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삼국시대에도 서울에서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남한강과 낙동강 水路를 이용하여 김해를 지나 대마도를 거쳐 일본 규슈의 하카다(지금의 후쿠오카)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부연설명을 하면 '어디 한번 들어보자'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삼국시대의 이 대운하를 이용하여 낙동강변의 弁韓-가야에서 생산된 철이 북으로는 낙랑(지금의 평양부근)과 대방(지금의 황해도 부근)까지 수출되고 남으로는 바다를 건너 倭에까지 팔려갔다'는 설명에 이르면 귀를 쫑긋하면서 듣기 시작할 것이다.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지리교육과 교수 崔永俊씨의 力著인 '한국의 옛길-嶺南大路'(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남한강과 낙동강은 소백산맥을 分水界로 하여 정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따라서 두 하천 사이의 약40km를, 連水陸路를 연결할 경우에 약500km가 넘는 從貫수송로가 한반도의 중앙에 형성되는 것이다. 고대로부터 두 하천을 연결해온 대표적인 교통로는 단양과 안동, 충주와 상주 사이에 발달하여 왔다. 한강~낙동강 從貫교통로를 북쪽으로 연장하면 예성강, 대동강, 압록강 하류를 지나 만주의 심양에 이른다. 이 線上에는 북쪽으로 한양, 개성, 황주, 평양, 안주, 의주가 있고 남쪽으로는 광주, 충주, 상주, 대구, 동래 등 주요도시들이 배열되었다. 이러한 전략적 관점에서 볼 때 한강유역을 차지하는 자가 한반도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결정론적 논리가 성립된다.>
崔 교수가 이 책을 쓴 것은 1990년이므로 李明博 전 서울시장의 대운하 계획과는 무관하다. 李 전 서울 시장은 충주-문경을 연결하는 약40km의 터널을 뚫어 남한강과 낙동강 상류를 연결하면 약540km의 물길이 열린다는 주장을 한다. 李明博씨의 대운하 계획에 반대하는 이들중엔 서울에서 부산까지 大運河를 새로 판다고 오해하는 이들이 더 많다. 남한강 上流와 낙동강 上流를 40km만 연결해주면 두 강물이 서로 이어져 500km가 넘는 水路가 형성된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한 데서 李씨의 苦戰이 시작되었다. '40km만 이어주면 500km의 물길이 열립니다'라고 간단하게 요약해주지 않은 탓이다.
崔 교수는 삼국시대 이전의 古代부터 남한강-낙동강의 水路는 서로 연결되어 이용되었음을 일깨워주었다. 서울에서 물건을 실은 배가 충주에 닿으면 그 물건을 내려서 말이나 수레에 싣고 鳥嶺(문경 새재)을 넘는다. 약40km만 육로를 이용하면 경북 상주에 이른다. 여기서 다시 배에다가 물건을 옮겨 싣고 낙동강을 타면 김해까지 갈 수 있다. 김해에서 배를 바꾸든지, 정비를 하면 멀리 보이는 대마도를 거쳐 현해탄을 건너 규슈의 후쿠오카에 이른다. 대마도에선 일본의 이키섬이 보이고 이키섬에 이르면 후쿠오카가 보인다. 바다가 거치지만 눈으로 목표지점을 정해놓고 항해하는 것은 쉽다.
낙동강 주변의 창령, 고령, 함안, 김해 등지에서 가야부족국가가 일어났다. 가야는 낙동강 水路를 이용하여 현해탄을 건너 규슈로 진출했다. 가야 세력이 규슈에서 힘을 길러 다시 일본의 심장부인 오사카-나라-교토 지방으로 나아가 고대 일본을 세우는 主力세력이 되었다는 것은 이젠 상식화되고 있다.
낙동강-남한강 水路를 북으로 연장하면 그 교통로는 낙랑, 대방지역을 지나 압록강을 건너 만주의 瀋陽으로까지 연결된다. 즉 만주심양에서 대각선으로 한반도를 지나 일본의 규슈에 이르는, 1000km가 넘는 從貫수송로가 형성된다. 고대에 대륙-한반도-일본열도에 걸쳐 명멸했던 고조선, 낙랑, 대방,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왜는 이 종관수송로를 이용하여 交易하고 전쟁했다.
신라는 낙동강-남한강 水路를 장악함으로써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진흥왕은 소백산맥을 넘어 충주에 있던 고구려의 전초기지를 점령했다. 거의 동시에 지금의 옥천 지방(당시는 관산성)에서 백제의 聖王이 이끄는 백제, 왜, 가야 연합군을 전멸시켰다. 이로써 신라는 소백산맥 북쪽으로 진출하여 남한강 水路를 장악할 수 있었다. 그 북진정책의 주인공인 진흥왕은 서울까지 차지하여 漢江 유역을 통제하에 넣었다.
漢江 河口는 바로 서해로 이어진다. 신라는 서해를 지나 직접 중국과 교통할 수 있게 되었다. 진흥왕은 낙동강 水路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서 가야연합국의 마지막 거점이던 고령의 대가야를 멸망시킨다. 신라는 가야의 생명선이던 낙동강 水路도 완벽하게 장악함으로써 전통적으로 적대적 관계에 있던 倭에 대해서 우위에 서게 된다. 한강-낙동강 유역을 동시에 점령한 신라는 여기서 파생된 생산력과 제철능력과 무역의 힘을 바탕으로 하여 100년 뒤에는 삼국을 통일한다. 낙동강-남한강의 水路는 국가 흥망의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신라는 낙동강-남한강의 水路를 통제함으로써 그 연장선상에서 서해와 남해까지 이용할 수 있었다. 반도인 한국의 대운하는 바로 바다와 연결된다는 장점이 있다. 내륙지방에 있던 가야의 철제품이 이 水路를 이용하여 바다를 건너 일본에까지 수출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李明博 캠프에서 주장하는, '대운하가 뚫리면 충주가 항구가 된다'는 말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고 삼국시대부터 있어왔던 현상이다.
李明博씨의 대운하 계획은 결국 남한강과 낙동강을 서로 연결시키고 준설을 하여 강이 제대로 흐르게 하고 배를 띄우겠다는 이야기이다. 요사이 낙동강 상류는 물이 부족하여 걸어서 건널 수 있을 정도이다. 강은 흘러야 강이고, 배가 다닐 수 있어야 水路 역할을 한다. 大운하 계획은 물을 흐르게 하여 낙동강-남한강이 三國시대 상태로 복원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강을 흐르게 하는 것은 환경파괴가 아니라 환경복원이 아닌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힘이, 낙동강과 남한강을 연결시킴으로써 국가의 생산력과 군대의 기동성을 획기적으로 증진시킨 데서 나왔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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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 대한 한국인의 10가지 오해
민주주의는 투쟁이다? 민주국가에서 민주주의는 준법이다.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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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강좌]'경제발전의 선결조건은 치안과 법질서 확립'
'이승만·박정희 두 대통령의 전통을 이어가야'
요즘 햇볕정책 지지하는 자들이 계속 박정희 대통령을 헐뜯는 그런 발언을 합니다. 저는 그 박정희 대통령을 만난 적도 없고 만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여기 와서 좀 알아봤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훌륭한 것 같습니다. 왜 그런가요. 이승만 대통령은 해방 직후에 우리나라가 어디로 갈 것인가 여기에서 미국하고 동맹하고 민주주의 길로 나가야겠다, 소련의 공산주의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양반이 미국 가서 오래 있었고 또 기독교 신자고 그러니까 그런 길로 확고하게 나가고, 또 그것이 남북이 이렇게 차이를 가져온 데 있어서 기본 조건으로 됐고 그것 때문에 6·25 전쟁 때도 우리 민주주의 체제를 보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때 우리의 사회발전 수준이 어땠습니까. 그것은 미국하고 아예 대비도 안 됩니다. 그런 조건에서 만약에 미국의 민주주의를 그냥 갖다 도입했더라면 우리나라 수습 못했습니다. 아마 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과의 대결에서 어려운데 그런 식으로 미국식 민주주의를 갔다 해서 되겠습니까?
미국 사람들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자유를 누렸습니까?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노예제를 폐지하기 위해 전쟁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서부 활극을 봐도 얼마나 상태가 복잡합니까. 지금 와서 인종차별도 없어지고 민족차별도 없어지고 그런 대합중국을 건설한 그 자유를 그냥 우리 해방 직후에 거기다 갖다 대서 되겠소, 안되죠. 아마 이승만 대통령이 계속 그런 식으로 정치했으면 여기도 너무 일어나서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실 또 4·19라는 것이 그래서 일어난 것 아닙니까. 거기 적합하지 않다고.
정전직후 아주 어려웠습니다. 이산가족은 많았습니다. 천만이나 되는 이산가족에다가 전쟁피해를 본 사람들이 많고 생활형편은 북한보다도 더 못했고 그런 형편에서 거기다가 또 북한 측에서는 정전이다, 이런 시기를 타고 계속 공작을 해야 하겠다 해서 자꾸 파괴자를 내려 보내고 내부 와해시키기 위해서 모든 장난을 다 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치안이 말이 아니고 비상사태에 들어갔습니다. 그것을 보다 못해서 이러다가는 망한다. 그러니까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고 비상대책을 세웠습니다. 비상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비상대책을 세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를 발전시킨 공로에 대해서만 얘기하지 이 비상사태를 수습했다는 이 공로가 그보다 못지 않게 더 큰 공로입니다. 영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쿠데타라는 게 생명을 내놓고 하는 일입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몇 번 암살당할 뻔 했고 마지막에는 암살을 당했습니다. 가족까지 다 희생됐죠. 이렇게 해서 수습을 했습니다.
경제나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우선은 치안부터 유지해야 됩니다. 나쁜 놈들이 마음대로 행동하는 데서 어떻게 문화를 발전시키고 경제를 발전시키겠습니까. 경제발전을 시키고 문화발전을 시키고자 한다면 우선 치안부터 확고하게 법적질서부터 세워야 합니다. 어떤 방법을 세우든지 말입니다.
그렇게 비상대책을 세웠습니다. 비상대책을 세우다 보니까 거기서 우리 문화수준도 낮고 정치수준도 낮고 더군다나 경제가 그런 상태에 있을 때 일률적으로 취급함으로써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억울하게 피해를 본 것보다도 그때 治安을 바로 잡았기 때문에 경제 건설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공산주의의 침투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때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 지금 명예도 회복시켜주고 보상을 해주는 것은 반대 안합니다. 또 그 이후에 우리 수준이 높아진 다음에 우리 김영삼 대통령처럼 문민정권을 세우기 위해서 노력한 것도 평가합니다.
그러나 그때 비상상태에 있을 때 비상대책을 세운 공로 이것을 독재라고 하면서 자꾸 깎아 내리는 것, 아주 나쁜 놈들입니다. 애국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정당하게 문제를 평가하지 않는 그런 양심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럼 그 비상대책을 세우는 데서 사람이 얼마 죽었습니까. 이런 큰 영단을 내려갖고 그 만한 용기를 낸 사람이 쉽지 않습니다.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세우고서 강력한 대책을 세웠는데 그런 것을 다 나쁘다고 하게 되면 역대 왕들 가운데서 일 잘하는 사람들 다 나쁘다고 봐야 합니다. 자기 견해를 갖고 치안을 세우고 말하자면 富國强兵策을 쓴 사람들이 정치를 잘 했지요. 실제 우리들이 우리와 같이 독재를 실제로 경험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격분하지 않을 수 없고 격분하다 못해 슬픈 감이 나옵니다. 왜 우리 민족이 이런가. 문제를 옳게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물에 빠져 죽으러 들어가는 아이를 때려서 끌어 내오는 것이 뭐가 나쁩니까. 도적놈이 우글우글하고 거기 간첩들이 와서 자꾸 흐르는 판에서 자유를 제한하고서 그것이 나라를 구원했습니다. 경제발전 위해서는 첫째는 치안을 유지해서 법적 질서를 세우는 것이고 둘째는 거래에서 부정 없이 일한 것만큼 차려지도록 질서 세우는 것입니다.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도 둘째로도 나쁜 일들 못하게 파괴분자들이 날뛰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미국 군대가 여기 와서 주둔하고 있는 것이 이것이 우리가 경제발전에서도 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감히 어디 전쟁도 못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正義를 펴기 위해서는 不正義를 억제할 수 있는 강력한 법적 힘이 필요합니다. 공권력이 필요합니다. 이거 뭐 간첩이 와도 잡지 못하고. 파이프 갖고 경찰도 때리고 국군까지 때려도 가만 내버려둡니다. 그러니까 자꾸 노동자들이 임금 달라 그러지, 파업하죠. 그러니까 시끄럽다 해서 우리 자금이 자꾸 외국으로 나갑니다. 그럼 여기 공동화됩니다. 여기 실업자 많아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중요한 것이 여기서 질서를 세우는 것입니다. 법적 질서를 세우고 여기서 안전하게 기업가들이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줘야 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여기서 일하게 되면 그렇게 이윤을 볼 수 있게 조건을 만들어주고 그래서 질서를 세워놓고 거기서 또 다른 것보다도 그때 우리의 생명이 어디 있었습니까? 우선 먹고 살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만사를 제치고 경제발전에다가 힘을 돌렸습니다. 그래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습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100년 200년 걸려야할 것을 몇 십 년 만에 해냈습니다.
왜 이런 위대한 인물을 어째서 그렇게 소홀히 하는 것입니까. 우리 민족적 자랑으로서 자꾸 선전을 해야 할 사람인데 말입니다. 사적 감정 갖고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객관적인 사실에 의해 그때 비상사태다, 비상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비상대책을 세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 비상사태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은 정당하게 평가해주고 명예도 회복시켜줘라 우리는 그것을 반대 안합니다. 또 그 이후에 우리나라가 수준이 높아진 다음에 문민정권을 세우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노력도 평가해 줘야 합니다.
그러나 그때 경제건설을 할 때에 불도저 앞에 누워서 포항제철소 울산공업단지 건설 반대했던 사람, 그것이 또 김정일 찾아가서 햇볕정책이오 한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겠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좋은 의도에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투쟁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은 그 사람들에게는 우리 공업 상품들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 분들의 행적을 봐서 내가 와서 물어봤는데 돈 한 푼도 다르게 쓴 것 없고 일밖에는 몰랐습니다. 그렇게 단호하게 해 나갔습니다. 하여튼 우리 나라를 건설하는 데서 그래도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우리가 계승해서 계속 지켜야 됩니다. 지금 뾰족한 수가 필요 없습니다. 이런 전통을 잘 지켜만 나가면 우린 그냥 승리하게 돼 있습니다.
우리같이 걱정이 없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경제발전 했고, 미국과 동맹만 강화해 나가게 되면 중국이 또 전쟁을 반대하는 조건에서 전쟁을 일으키지도 못합니다. 김정일이라는 녀석 핵무기 아무리 갖고 있어도 소용 있습니까? 그 건사하기나 힘들었지 소용 있습니까. 내 필리핀 가서 거기서 필리핀이 한때 우리보다 앞섰습니다. 근데 지금 꼼짝 못하지 않습니까. 계속 공산당 때문에. 공산당이 그런 것 하는 데는 아주 발전됐습니다. 그런 지하공작하고 내란 조작하는데 아주 여기 민주주의 사회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발전했습니다. 김정일도 그런 두뇌는 아주 발전됐습니다.
자유주의, 우리 북한에서는 자유가 필요합니다. 무조건 자유가 필요한 것입니다. 저렇게 압박하고 자유가 없는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난 거기 있을 때도 체코나 동독에 가 보면 이 정도면 무슨 자유가 없다고 하는가 했습니다. 뭐 부러운 게 없지 않았습니까. 체코하고 동독이 제일 수준이 높았습니다. 루마니아는 좀 자유를 제한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도 87년인가 그 전에는 난 루마니아 갈 때마다 부러웠습니다. 다른 데는 너무 자유가 많아서 야단인데. 소련도 그렇지 소련도 가 봐도 무슨 자유가 없다고 하겠습니까.(konas)
황장엽/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前 북한노동당 비서
출처:자유북한방송 http://www.freen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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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실천 시대 20년 略史
한국인은 민주주의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나?
趙甲濟
1. 6.29 선언의 배경
*1980년 봄의 좌절된 민주화 꿈이 1985년 2.12 총선을 통해서 재발하다.
*야당과 학생, 중산층이 민주화의 핵심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1987년 들어 일련의 사태가 임계폭발점을 향해 달려간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4.13 護憲 선언, 6월10일 시위.
*1987년 6월에 들어와 학생 시위에 일반 시민층이 대거 가담하기 시작했다. 6월18일 부산 대시위, 19일 군출동 준비, 26일 대시위
*全斗煥 정권과 여당인 民正黨 안에서도 직선제 수용 의견이 높아지고 있었다.
2. 6.29 선언의 역사적 의미
*全斗煥-盧泰愚 합작에 의한 여론 업어치기.
*직선제 개헌, 언론자유보장, 김대중 사면 복권 등 전면적인 민주화 선언.
*권위주의 정권과 민주화 세력의 극적인 타협.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한국형 민주화의 모델. 富國强兵派와 인권파의 합작품
*현대사의 가장 성공적 정치 게임.
*여권의 단합과 야권의 분열로 盧泰愚 대통령 당선.
3. 6.29 이후 사태: 욕구분출 시대의 고민
*87년 하반기 노동운동의 폭력화로 중산층 불안감 증대. 이것이 盧泰愚 후보 당선에 기여.
*12월 大選의 후유증: 김대중 세력과 운동권이 컴퓨터 부정설 제기. 노태우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민주화 세력과 부정하는 좌파세력으로 분리.
*1988년 4월 총선에서 與小野大: 국회가 사실상 야당 주도로 넘어가 5共 청산이란 구호가 힘을 얻게 되고 정치는 오히려 활성화되었다.
*언론자유의 滿開, 노동운동의 과격화, 안기부 연행 시절의 종언.
*88 서울 올림픽의 대성공: 군사문화의 능률성과 민간의 창의성이 결합된, 근대화의 화려한 피날레. '벽을 넘어서'란 구호가 시대정신이 되어 동구 공산권 붕괴에 일정한 역할.
*88년 가을의 5共 청문회: 복잡한 민주화 시대의 서곡. 노무현, 이인제 등 이른바 청문회 스타의 등장.
*권력의 퇴각: 全斗煥 전 대통령 백담사行으로 全 세력의 무력화, 불법 시위 현장에 경찰투입 자제-法治의 훼손 초래.
*1989년의 反轉 기미: 중간평가 문제로 야권 분열, 서경원 간첩 사건과 동의대 사건으로 국민여론의 보수화.
4. 3黨 합당
*1990년 초의 민정당, 민주당, 공화당 합당은 근대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군인출신과 민간정치인의 이상적인 결합체.
*3당합당의 문제점은 이념적 결합성이 약하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했으며 김대중=호남세력을 포위한 형국이었다는 점.
*盧泰愚 대통령의 大勢순응식 인식: '다음 수상 또는 대통령은 군인 출신이어선 안된다.' 이에 따라 김영삼씨가 代案으로 떠올랐다.
*내각제 약속의 무산: 김영삼측의 고집을 盧 대통령이 꺾지 못했다. 이것이 김영삼 시절에 들어와 三黨합당 구조의 해체로 진행되는 결과를 빚었다.
*盧 대통령의 김영삼의 이념과 능력에 대한 誤判
5. 공산권 붕괴와 능동적 북방정책
*북방정책을 위해서 준비된 대통령: 정무장관 시절 서울올림픽 유치 지휘. 올림픽 준비과정을 통해서 공산권 접근로 확보.
*튼튼한 韓美관계를 근거로 對北압박의 주도권 확보. 韓美관계가 좋으니 韓日관계에서도 한국이 주도권을 잃지 않았다.
*韓中, 韓러, 韓동구권 수교로 민족의 활동공간 확장. 작년에 韓中 무역액이 1200억 달러, 곧 韓美-韓日무역액 합친 것을 초과할 것.
*남북기본합의서 도출: 한국이 주도한 對北정책의 결과물. 6.15 선언을 폐기하고 남북기본합의서로 돌아가야 주도권 회복한다.
*7.7 공동성명의 문제점: 북한정권을 대한민국과 대등한 존재로 대우함으로써 대한민국만이 한반도의 유일한 정통 합법국가라는 원칙이 훼손되었다.
*어린 민주주의는 공산당 침투 공작에 이용된다. 김일성의 예언: '反共민주주의라도 군사독재보다 유리하다'.
6. 국토改造: 사회간접자본 투자 확대
*5대 신도시 건설로 273만호 주택 건설, 주택난 획기적 개선.
*KTX, 인천공항, 서해안고속도로, 항만 건설.
7. 기타: 全敎組 불법화, 범죄와의 전쟁, 재벌 비업무용 토지 매각 추진
8. 비자금 사건의 그림자
9. 통상적인 盧泰愚 비판의 논리
*의리가 없다, 물태우-너무 약하다, 추종자들이 적다, 너무 짜다 등등. 이런 비판의 논리가 한국인의 非민주적인 속성의 반영인 면이 있다.
10. 1993~2007년: 좌경화의 도전 15년
*金泳三 정부: 좌파宿主 정권의 현대사 파괴, 국가의 본질 훼손
-한국 현대사의 정통성 부정: 중앙청 파괴, 남산 외인아파트 철거.
-군사문화 부정. 권위와 기율의 파괴를 민주화로 오해.
-'민족이 이념과 동맹보다 우선한다'-좌파식 對北觀
-한완상, 김정남의 영향
-韓美 균열, 北核 대처 실패로 對北주도권 상실.
-전교조 복직 허용
-3당 합당 구도 파괴로 김대중 집권 길 열다: 김종필 탈당, 나중에는 이인제 탈당 방조
-12.12 사건, 5.18 사건 수사로 대구-경북세력 이탈
-개방경제의 관리실패로 외환위기 초래, 좌파집권 돕다.
*金大中 정부: 권력의 좌경화
-6.15 야합으로 김정일에 굴종, 하수인화.
-6.15 선언으로 친북세력에 반역면허증 발급한 셈.
-4억5000만 달러 對北불법송금으로 김정일에 약점 잡히다.
-反共언론사 세무조사로 좌파 강화.
-호남편중 인사로 지역주의 강화.
-헌법무시, 좌파단체 예산 지원.
-野圈 분열시켜 노무현 정권 탄생.
-김종필의 신원보증 역할
*盧武鉉 정부: 전면적이고 사회적인 좌경화
-청와대, 국회 등 정권 핵심에 김정일 추종자 포진.
-국가 공권력의 無力化, 또는 반역화
-국가이념 변조 기도
-韓美동맹 와해 단계
-남북한 정권의 反대한민국 공조
-헌법 파괴 솔선
-선동의 일상화, 정책화: 양극화, 계급갈등 선동
-對北퍼주기, 북한인권 외면, 국가채무 倍增, 낭비적 복지정책
11. 한국 민주주의의 반격: 反좌파 여론의 大勢化
*여론의 실용화: 경제중시, 능력중시
*여론의 우경화: 反김정일, 韓美동맹 중시, 현대사 긍정
*민주주의 제도의 작동: 언론자유, 선거의 자유, 사유재산 제도
*좌경화 15년에 대한 반동
*대한민국 세력과 김정일 세력, 무능 세력과 유능 세력, 헌법파괴 세력과 헌법수호 세력의 대결.
*쟁점: 한국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힘으로 이길 수 있는가? 반공주의의 힘만으로는 안된다. 反共민주주의자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지난 15년은 한국 민주주의가 抗體를 만들어간 시기였나? 아니면 회복이 불가능한 타격을 입은 시기였나? 두 차례 선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2.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 자유통일과 一流국가 건설
*한국의 민주주의는 富國强兵派(제도파)와 인권파의 경쟁과 견제로 이뤄졌다. 민주투사의 독점물이 아니라 두 세력의 합작품이다.
*어린 한국의 민주주의는 공산세력에 의해 추행당했다.
*한국에서 정상적인 정부가 다시 들어서면 김정일 정권을 약화시키고 자유통일을 한 다음에 一流국가 건설로 나아가야 한다.
*쟁점: 한국의 민주주의가 국가엘리트와 교양 있는 국민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13. 우리는 민주시민인가?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白衣從軍, 大同단결, 分進合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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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북한인권운동가 마이클 호로위츠는 필자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한국의 위대한 기성세대는 근대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세계사적인 영웅들입니다. 그렇지만 젊은이들에게 '너희들은 우리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면 안듣습니다. 그 대신 '너희들이 하고 있는 것은 이래 저래 잘못했다'고 살명해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언젠가는 잘못을 깨닫게 될 것이고 그때 비로소 기성세대의 업적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엉터리 대통령과 젊은 세대의 실수를 견디어낼 수 있는 제도입니다.'
토마스 제퍼슨은 '각 세대는 자신들에 대한 主權을 갖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이 많은 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미래를 맡기고 충고를 하는 정도는 좋지만 이래라 저래라 하여서는 안된다는 뜻인 것 같다. 미래는 젊은 세대의 主權지대이기 때문이다.
이단과 정통을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은 누가 전통을 존중하고 누가 전통을 부정하는가이다. 이단은 전통을 부정하고 정통은 전통을 존중한다. 전통을 존중한다는 것은 전통을 무조건 추종한다는 뜻이 아니다. 전통, 즉 조상으로부터 이어받은 역사 예절 미풍양속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이를 현대적으로 되살려냄으로써 오늘의 삶을 다양하고 풍요하게 만들자는 것이 전통 존중의 자세일 것이다.
한국의 근대화를 이룩한 위대한 기성세대와 정보화의 神器로 무장한 무서운 젊은 세대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40代이고 언론이다. 몸을 부드럽게 하는 허리와 도시를 생동하게 하는 광장의 역할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이들이 전향한 386 운동권 출신들이다. 이들은 지옥(김일성 父子)을 보았기 때문에 천당(대한민국)의 고마움을 잘 안다.
이들은 전통을 부정해보았으므로 또 그런 부정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기성세대의 勞苦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경향이다. 사물을 부정과 긍정 양쪽 시각으로 들여다 본 사람은 입체적인 이해력이 생긴다.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한 사람들이 원래 우파보다도 더 단호한 자유민주주의 신념을 갖게 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지옥을 본 40대가 건국 60주년을 맞는 대한민국 기성세대의 勞苦를 천당밖에 보지 못한 20, 30대에게 잘 전달해준다면 한국은 괜찮은 나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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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殉敎者'의 작가가 본 40여년 전의 한국
민주주의란 게임을 가장 무도회처럼 즐기는 한국인들. 연극을 자주 하면 實演이 될지도 모른다.
미약하나마 희망은 있다. 20여년간 자유민주주의체제 아래에 서 살아왔다는 것, 이러한 경험에서 무엇인가 얻은 게 있으며 이것이 장기적으로 이 나라를 구할 가능성도 있다
趙甲濟
미국의 저명한 월간잡지 애틀랜틱 1966년 2월호에 在美작가 金恩國(리처드 킴)이 쓴 「오 마이 코리아」란 기사가 실렸다. 그 몇년 전 「순교자」란 영문소설을 써 유명해진 金씨는 매사추세츠 대학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중 1965년 6월에 한국을 방문하여 한일국교정상화 반대 데모가 휩쓸고 있던 서울을 취재했다. 이 기사의 발췌문은 신문에서 연재되기도 했고 全文은 잡지에 번역되어 실렸다. 지금 읽어보아도 문학가의 깊은 통찰력에 감탄할 만한 대목이 많다.
6·25 전쟁 때 국군장교로 근무했던 金恩國은 평양에서 같이 학교를 다녔던 대령 친구와 서울대 정치과에 다니는 동생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실감나게 소개하기도 했다. 대령 친구는 金씨에게 동생을 만나달라는 말을 하면서
『그놈이 무정부주의자 흉내를 내는 것은 참을 수 없어』라고 했다. 대령, 동생, 동생의 친구(대학생), 金씨 네 사람은 중국음식점에서 만났다. 화제가 학생시위와 군인의 역할에 미치자 동생은 대령에게 『형님은 그 군복 입은 것이 창피하지 않수?』라고 말하는 바람에 언쟁이 시작되었다.
『네가 고아가 됐을 때 난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서 싸웠단 말이야. 너희들을 위해서』
『누가 날 위해 싸워달랬어요? 우린 새 세대예요. 기성세대의 일그러진 가치관, 부패한 사회엔 신물이 났어요』
『너희가 새 세대란 한 가지 이유만으로 자동적으로 사회의 심판관이 되는 게 아니란다』
金恩國이 물었다.
『4·19 혁명이 성공한 후 학생들이 한 역할을 어떻게 생각하나?』
『무정부 상태였지』라고 대령은 말했다. 『부패를 쓸어내는 건데 바보 같은 군인들이 뛰어들었어요』라고 동생이 받았다.
『우린 이 비참한 나라에 새 질서가 세워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어. 국민들은 무정부 상태를 바란 게 아니야. 학생봉기도 군사혁명도 한 번씩으로 족해. 힘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버릇을 만들면 우리나라가 라틴 아메리카 꼴이 난다는 것을 우리 장교들은 잘 알고 있어』
金恩國은 학생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들은 혼란 상태에서 느낄 수 있는 짜릿한 감각에 선동되고 덧없는 영웅주의에서 스릴감을 찾으며 세상이 뒤죽박죽되는 것을 볼 때의 찰나적인 기쁨에 매혹되는 듯도 했다」
그는 朴대통령을 만나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가 굉장한 자신감에 차 있어 아무것도 그의 신념을 흔들 수 없다. 그는 굳세고 어쩌면 신비롭기까지 했다.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완전한 건강 상태라서 국가원수로서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옳다는 자신감 속에 착 가라앉아 있는 듯이 보였다.
『학생들은 자기네들이 뭘 바라는지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야당은 이들 학생을 조종하고 있어요. 곧 잠잠해질 겁니다』
그가 이 나라의 밝은 미래에 대해서 설명할 때 그의 자신감과 침착함은 나에게 전염되어 오는 듯했다>
金恩國은 「추하고 수치스런 옛날을 영광스런 역사라고 과장하고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을 찬란한 문화유산이라고 기만하는 태도를 버리고 환상, 망상, 자기 기만에서 깨어나면 거기에 엄숙한 현실이 있다」고 충고했다.
<수세기 동안 권력의 압박을 받았고 정치사기꾼의 달콤한 말에 속아왔으며 공산주의자들에게 유린당하고 사이비 민주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해 절망의 끝까지 밀려나온 가난하고 비참하고 고통스런 민족이란 현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미약하나마 희망은 있다. 20여년간 자유민주주의체제 아래에서 살아왔다는 것, 이러한 경험에서 무엇인가 얻은 게 있으며 이것이 장기적으로 이 나라를 구할 가능성도 있다>
金恩國은 한국인이 민주주의란 게임을 가장무도회처럼 즐기고 있다고 했다. 이 게임이 습관이 된다면 언젠가는 한국인들이 진지하게 게임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환상과 기만에서 기적이 탄생할 희망은 있다는 것이다.
<반대자의 날카로운 항의는 없는 것보다 낫다. 한국의 선동적이고 제멋대로인 신문도 없는 것보다 낫다. 규율 없이 하는 데모학생도 길게 보면 조용하고 겁에 질린 학생들보다 낫다. 한국인의 삶에는 조잡하고 야생적인 것, 그러면서도 마음을 사로잡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 불행한 나라와 사랑싸움 같은 것을 계속할 수 있는가 보다. 서로 싸우는 것이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때 한국에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자신들의 實存(실존)을 직시하고 존재하지도 않았던 황금기에의 망상을 버릴 때 가냘픈 희망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남한 사람들은 개인주의의 경직성과 신축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것이 상호불신과 자기중심적인 思考(사고)에서 생긴 것이라 해도 언젠가는 순수하고 성실한 생활의 바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은 있다>
(박정희 전기에서 뽑음)
"정몽준씨와 단일화할 생각이 있습니까"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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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7-07, 12: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