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무병장수와 타인의 생명부양에 도움이 되는 정상적 인간의 선심을 도덕성(morality)이라고 한다. 그러나 마땅히 인간이 가져야 할 도덕성을 자신의 이익과 권력 등을 위하여 교조적 이념으로 惡化시킨 것을 도덕주의(moralism)라고 한다. 도덕주의는 인간의 일반적 도덕성을 절대화시킨 것으로, 자신의 이기심을 속이고 他人의 생명부양에 해를 끼치는 惡德행위에 근거 이념이 된다. 개인의 권리와 집단의 이익을 고려한 훌륭한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가 살짝 악하게 변하여 개인의 권리가 말살된 악독한 공산주의(communism)가 된 것처럼, 정상적인 도덕성이 살짝 악하게 변질되어 악독한 도덕주의가 될 수 있다.
인간의 도덕성이 악한 도덕주의로 변질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자신의 이기심과 유한성을 무시하거나 망각하는 교만 때문이다. 인간은 끝까지 이기적이다. 자기 몸을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희생하는 救國투사도 이기적이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화를 위하여 노력하다가 분신자살을 한 민주투사도 자신에 대한 과격한 집착과 이기심을 포기하지는 못한다.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광신적 자기희생(fanatic self-surrender)이야말로 가장 강압적인 자기주장(aggressive self-assertion)의 변형적 표현이라는 사실을 군중연구가들은 일찌감치 파악했다. 지독한 민주화 운동가들보다 더 악독하고 이기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항상 最惡은 最善에서 잉태된다. 最惡의 악덕은 선(善)이 교만에 칵테일 되어서 살짝 변형된 獨善과 僞善이다. 권익이 무자비하게 충돌하는 정치판에서 도덕을 중시해야 하나, 잘못 도덕을 찾으면 쉽게 독선자나 위선자가 된다. 특히 자신의 政敵을 죽이기 위해 동원된 교조적이고 편협된 도덕주의는 가장 부도덕하다.
역사적으로 의로운 정치인들이 희생될 때에, 항상 교조적 도덕주의자들의 도덕적 모함이 악용되었다. 善도 惡도 아닌 자연스러운 도덕가들이 지나치게 선한 독선가나 善을 가장한 위선자에 의해서 희생된 사례들은 惡으로 얼룩진 한국정치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부도덕하고 망국적이기 그지없는 집권 좌파세력과 이에 부역하는 어용언론, 그리고 일부 극우세력이 불륜적으로 코드가 맞아서, 한나라당 경선을 도덕군자들의 경연장으로 만들고, 결국 위선자들이 설치게 만들고 있다. 이들 좌우파 도덕주의자들은 교조적 도덕주의를 기준으로 들이대며 李明博 경선주자를 매도하는 비윤리적 정치폭력을 계속 연출하고 있다. 도덕적으로 깨끗하다고 착각하는 좌파세력과 이에 동조하는 우파세력이 협공하는 李明博 죽이기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매우 부도덕하다. 집권 좌파세력의 공작정치로 벌어지는 '이명박 인격 죽이기'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서민들에게 정치혐오증을 유발시킨다.
이제 이명박의 개인적 생활과 정책에 정말 문제가 있는지, 아니면 이명박의 윤리적 문제에 매달리는 정치세력의 의도와 행각에 더 윤리적 문제가 있는지를 국민들이 꼼꼼히 따져봐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도덕성과 자질검증의 이름으로 이명박의 삶과 꿈을 범죄행위로 몰아가는 좌파세력과, 이에 부화뇌동하는 한나라당의 경선주자, 그리고 이명박을 좌익인사로 모는 일부 극우세력은 이명박보다 훨씬 더 부도덕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서울시장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李明博 경선주자의 출생지나 이름까지 매도하는 극우세력과 열심히 노력해서 부자가 된 이명박을 도둑으로 채색하려는 좌파세력의 과도한 도덕성 검증이 이제 부도덕을 넘어 범죄행위로 굳어지고 있다. 멀쩡하게 서울시장직을 잘 수행한 李明博을 어느 날 좌파세력의 强敵이라는 이유로 범죄자 취급하는 집권 좌파세력의 공작정치에 악랄한 극우세력이 적대적 공존관계를 잘 유지하며 놀고 있다.
한나라당 경선에서 후보자들에 대한 도덕성 검증은 가장 부도덕한 정치놀음으로 전락하고 있다. 국민들은 이제 '불의한 이명박의 도덕성'이 문제가 아니라, 이명박을 도덕적으로 매도하는 '의로운 세력의 부도덕성'을 더 문제삼고 있다. 오늘날 도덕성 검증을 핑계로 마치 이명박에게 치명적인 도덕성 문제가 있다고 떠드는 정치세력의 야비한 의도를 국민들이 문제삼기 시작했다.
깨끗한 척하면서 이명박의 도덕성을 따지는 정치인들은 매우 독선적이고 위선적이다. 이명박의 도덕성에 문제를 삼는 정치세력의 동기는 철저하게 정치적 이익 때문이다. 정치판에서 政敵의 도덕성을 따지는 것은 윤리논쟁의 문제가 아니라, 필히 권력투쟁의 문제이다. 이명박의 도덕성을 따지는 모든 말은 윤리적 발언이 아니라 정치적 발언이다. 이회창을 도덕적으로 매도한 모든 도덕성 검증은 결과적으로 도덕적으로 惡貨가 良貨를 구축하는 부도덕한 정치게임이었다. 그만큼 정치판은 철저하게 정치적이다.
이명박의 도덕성을 따지는 세력은 크게 두개이다. 집권 좌파세력과 극단적 우파세력이다. 극우세력과 집권 좌파세력은 역학관계의 외관상으로 대립적 관계이지만, 의식구조의 양상에 있어서는 공히 극단적이고, 교조적이고, 이분법적이고, 교만하다. 지금 한국정치에서는 집권 좌파세력과 극우세력이 공조하여, 윤리도덕의 이름으로, 합리적 우파인 이명박의 도덕성을 악랄하게 검증하는 부도덕한 정치게임을 연출하고 있다. 극우와 극좌는 하나 같이 인간사의 애매성을 인정하지 않는 매우 선명한 도덕주의적 심판기준을 가지고 있다. 극우와 극좌는 서로 상극적으로 싸우지만, 극단적이고 교조적인 윤리기준을 상대에게 들이댄다는 점에서 서로 적대적 共生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명박과 같이 실리주의적 죄인을 죽이는 데에 좌파와 우파에 '의로운' 극단주의자들은 쉽게 동지적 관계를 형성한다. 지금 극우성향의 인터넷언론에는 좌파세력이 이명박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게재해두었다.
지금 이명박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세력은 집권 좌파세력과 극우세력인데, 이들은 처음에는 매우 直善的이다가, 차차 獨善的이 되다가, 그리고 결국에는 매우 僞善的일 수밖에 없는 도덕적 가치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 독선적이고 위선적인 행동양태를 '이명박 죽이기' 협공에서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 개인적 취향(好-不好)에 따라 특정인에 대한 우상화와 惡魔視를 되풀이 하는 것이 바로 이분법적 도덕주의에 빠진 극우와 극좌 교조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인간의 유한성을 경시하면서, 자신들의 도덕적 능력을 절대시한다. 그리고 이들은 인간이 가진 도덕성(morality)을 경직되고 교조적인 도덕주의(moralism)으로 경직시키고 악화시키는 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기호와 이익에 따라 정치인들은 二分化시켜서 선호하는 정치인은 우상화하고, 혐오하는 정치인을 악마시한다. 극우와 극좌 빠돌이/빠순이들의 특징은 자신들처럼 극단적이고 맹목적이지 않은 합리적 우파와 좌파 인사들을 마치 이단자처럼 매도한다는 점이다.
이분법적 세계관과 도덕적 교만에 빠진 극좌와 극우의 교조적 도덕주의자들은 공히 '모든 인간들을 하느님 같은 위대함과 짐승과 같은 비천함을 가진 존재'로 보지 않는다. 자신의 호감과 이익에 부합하는 정치인을 우상화하고 자신에게 비호감적이고 이익이 되지 않는 정치인을 도덕적으로 매장하는 정신구조와 행동양태를 극우와 극좌 광신주의자들은 보여주고 있다.
극우와 극좌 도덕적 교조주의자들은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절대화하는 知的 오류를 저지르면서, 결국 도덕적 혹은 정신적 교만에 빠져서 가장 악독한 인간이 된다. 이 세상의 만물에 대한 상대화(relativization)를 모르고 자신의 도덕적 기준과 정치적 이익을 절대화(absolutization)하는 것이 극우와 극좌 교조주의자들의 특징이다. 이러한 교조적 도덕주의자들이 오늘날 좌우편에서 적당하게 부패하고 적당하게 어진 이명박을 죽으라고 도덕적으로 매도하고 있다. 특히 극우세력의 지극한 도덕주의는 정치적 명분만 쫓다가 결국 정치적으로 엄청난 손해를 보는 전형적인 한국의 고질적 명분주의이다.
오늘날 집권 좌파세력이 정권연장을 위하여 벌이고 있는 도덕주의적 정죄게임에 휘말려서 이명박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교조적 극좌와 극우 도덕주의자들은 하나 같이 '나는 善, 너는 惡'이라는 이분법(dichotomy)에 빠져있다. 그리고 이들은 남의 눈에 있는 '티'는 보지만, 자신들의 눈에 있는 '대들보'는 보지 못한다. 이명박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자들의 삶과 주장을 관찰하면, 하나 같이 부도덕하고 사특하다. 이명박의 삶과 성취를 모두 부도덕한 것으로 채색해가는 극우와 극좌 도덕주의자들은 도덕적 교만에 빠져있다. 자기교만의 독선에 빠진 그들은 항상 '나는 절대적 선이고, 너는 절대적 악'이라는 교만한 이분법에 빠지게 마련이다. 좌우세력의 극단주의자들은 자기는 구세주이고 상대는 악마라는 二分法的 윤리의식에 빠져서 자기 패거리가 아닌 자들을 모두 악마(빨갱이 혹은 수구꼴통)로 정죄하는 착란에 시달리게 된다.
이명박을 부도덕한 악한으로 몰아서 죽이려는 극좌와 극우 교주주의자들은 사실상 자신들의 이익확보에 가장 악착 같은 이기주의자들이며, 자신들의 판단을 절대화하는 부도덕하고 교만한 악한들이다. 모든 인간들이 약점과 부도덕을 안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상대방에 대하여 도덕적 심판자로 나타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짓은 없다. 그것도 정치인이 정치인을 도덕적으로 정죄하려고 달려드는 것은 참으로 쉽게 위선적인 상황에 빠지기 싶다. 정치적 현실주의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정치인의 모든 동기는 권력욕과 탐욕이기 때문에, 정치인의 일거수 일투족은 모두 정치적 타산에 근거한 것이지 도덕적 판단에 의거한 것이 아니다. 정치인의 정치적 결단과 행동이, 자신의 이익과 욕망에 의하지 않고, 도덕에 근거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장사하는 사람이 이익을 남기지 않고 물건을 팔기를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한나라당에서 벌어진 이명박에 대한 도덕성 검증도 다 정치싸움이지 도덕싸움이 아니다.
고로 정치인이 정치인을 도덕적으로 매도하고 사장시키려는 모든 도덕적 비판은 단순한 권력게임이지 순수한 도덕논쟁이 아니다. 오늘날 이명박에 도덕성 검증을 들이댄 것은 정치권력을 위하여 도덕이라는 고상한 잣대를 끌고 들어왔을 뿐이다. 모든 정치인은 깨끗하지 못하고 정치판에서 모든 논쟁과 게임은 오직 권력을 위한 투쟁에 불과하다는 정치적 현실주의자(political realist)의 관점을 무시하는 도덕주의자들은 정치적 판단에 오류와 위선이 생기기 마련이다. 맹목적 도덕주의에 젖은 정치인은 자신의 政敵을 제거되어야 할 악마로 보고, 자기 스스로를 정의의 구세주로 보는 가장 악덕한 교만에 빠지게 마련이다. 오늘날 부도덕한 이명박을 매도하고 제거하려는 집권 좌파세력과 극우세력은 이명박보다 훨씬 더 야비하고 위선적이다. 정치판에서 극도로 깨끗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이 좌우파 위선자들은 한국정치에 계산할 수 없이 많이 해롭다.
多元주의시대에 살아가는 우리가 내리는 도덕적 판단은 철저하게 이기적일 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상대적이고 다원적일 수 밖에 없다. 전통적으로 유교윤리가 강하게 지배한 한국사회에서 정치인의 도덕성을 따지면 거의 개인적 비리나 실수를 따지는데, 정치인의 도덕성에는 개인적 비리 이외에도 따져보아야 할 많은 것들이 있다. 도덕적 명분은 정치판에서 가면에 불과하고, 정치는 전쟁만큼 결과를 중시하는 인간활동의 영역이다. 전쟁과 정치에서는 승자만 도덕적이 되고 패자는 무조건 부도덕한 자가 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전쟁과 정치에서는 승리에 방해가 되는 모든 행위는 곧 부도덕한 것으로 취급될 수 있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교조적 지역주의와 악마적 선전선동이라는 용서할 수 없는 정치적 악덕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집권한 세력이 됨으로써, 패배한 이회창의 악덕만 지금 공식적으로 통하는 것이다.
정치판과 전쟁터에는 명분과 핑계는 큰 소용이 없고, 오직 결과만이 도덕적 판단의 근거를 마련해준다. 그래서 한반도의 역사는 이승만과 김일성의 역사이지, 김구의 역사가 아니다. 한국인들은 정치와 정치인들을 판단하는 데에 너무 개인적 인격이나 품위를 따지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지도자 개인의 덕목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의 합의과정에 근거한 것이다. 그래서 합리적인 합의과정이 제대로 제도화되어 있는가가 정치윤리의 중요한 과제가 아닌가. 지금 한국에서 정치가 개판인 것은 정치인들의 개인적 윤리에도 문제가 많지만, 집권자들이 행정기관과 언론기관 등을 동원하여 비민주적, 불합리적, 불법적인 공작정치를 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이명박의 비리의혹도 문제이지만, 이 비리의혹을 정부기관과 언론기관이 앞장서서 주야로 국민들에게 선전선동하는 정치풍토와 구조가 더 큰 문제이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명분론에 빠져서 내리는 도덕적 판단의 단순성도 문제가 있다. 정치판에서는 정치적 명분은 실리와 승리를 위한 가면에 불과하다. 정치판에서 도덕적 명분을 우파가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위선에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좌파세력만 기승을 부리게 되어있다. 우리는 서양윤리에서 명분과 실리를 조화시키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 서양사회에서는 윤리적 판단을 크게 둘로 나눈다. 명분론적(deontological) 판단과 결과론적(consequential) 판단이 있다. 종교와 윤리의 영역들에서는 명분론이 크게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쟁, 기업, 정치에서는 명분론보다는 결과론이 훨씬 더 중시되어야 한다. 칸트나 키에르케고르가 명분론자라면, 벤담이나 밀은 실리론자이다. 벤담의 공리주의(utilitarianism)는 바로 영국이라는 제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서 식민지 통치를 정당화시켜준 지배이론이다. 정치적 현실주의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치판의 명분과 구호는 實利와 결과를 위한 포장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反美자주, 평화통일, 선진미래 등의 구호를 앞세우는 좌파세력의 정치적 동기와 결과는 오직 집권이다. 마찬가지로, 이회창의 병역문제, 이명박의 재산문제, 박근혜의 유산문제를 부각시키는 좌파세력의 도덕게임의 목표는 오직 하나, 좌파세력의 집권연장이다. 집권연장이라는 정치적 이익을 위한 핑계와 수단이 바로 오늘날 좌파세력과 어용언론들이 대대적으로 부각시키는 자질검증이다.
이 좌파세력의 자질검증 도덕게임에 더 깊이 빠지면 빠질수록, 한나라당은 좌파세력에게 더 불리한 정치게임을 벌일 뿐이다. 좌파세력이 조종하고 극우세력이 부화뇌동하는 한나라당 경선주자들에 대한 자질검증 게임은 처음부터 무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승리의 비결이다. 좌파세력의 반역적이고 무능한 국정운영을 어떻게 우파세력이 극복할 것인가에 촛점을 맞춘 자질검증을 한나라당이 벌여야, 자질검증을 빙자한 좌파세력의 사악한 정치게임에 놀아나지 않는다.
마키아벨리의 비유를 들자면, 이익과 권력을 위하여 교활한 여우와 폭력적인 사자가 설치는 정치판에서 성인군자의 개인윤리를 함부로 찾아나서는 것은 멍청하고 악한 결과에 봉착한다. 종교영역, 교육영역, 윤리영역에서는 도덕적인 패배자를 부도덕한 승리자보다 더 숭배하는 전통이 정당할지 모르지만, 전쟁터, 기업활동, 정치판에는 승리한 자만이 도덕적 기준을 설정한다. 돈이 목표인 기업가에게 도덕을 함부로 찾는 것도 무지하고 악한 짓이 될 수 있다. 정치인과 부자는 천당에 가기 어렵다는 예수의 훈계는 사회과학적 가르침이다. 집권 좌파세력이 조종하고 선동하는 자질검증의 게임에 기능적으로 동조하는 우파세력의 지극한 도덕주의는 결과적으로 보수세력의 분열과 좌파세력의 승리에 공헌하는 지극한 부도덕으로 귀결될 것이다. 지금 이명박에게 강요하는 극우세력의 극단적 도덕주의는 명분만 도덕적이다가 實利는 좌파세력에게 넘겨주는 우매한 결과를 몰고오는 악덕에 불과하다.
이명박의 족보까지 뒤지면서, 이명박을 부도덕하게 몰아가는 극우분자의 도덕적 행위는 사실상 자신의 非호감(말초적 감정)과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근거하여 상대방을 매도하는 가장 부도덕한 편파적 행위에 불과할 수 있다. 극우분자들이 아무리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완벽해도, 우파세력의 분열과 패배에 공헌하고 좌파세력의 전략에 크게 도움을 주는 행위를 한다면, 한국정치판에서는 가장 악덕스러운 행위를 국민들에게 행하게 되는 것이다. 집권 좌파세력은 자신들의 실정과 부패가 드러날까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도덕한 방법으로 우파세력을 때리더라도, 우파세력은 이것 저것을 생각하면서 우파세력을 비판하고 공조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도덕주의적 정죄의식에 사로잡인 과격한 우파세력이 인간적 흠이 있는 유연한 우파세력의 인사들을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악덕한 꼴을 보니 난감하기 그지 없다.
오직 전략적 게임만 통하는 정치에 어떻게 갑자기 도덕적 원칙을 그대로 극우세력은 들이대는가? 오늘날 이명박을 죽자고 도덕적으로 매도하는 교조주의적 극우세력에게 충고하고 싶은 것은 '도덕적 판단은 다양하고 상대적이고 전략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명박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우파 정치인들은 부도덕하고, 깨끗한 척하는 좌파정치인들은 위선적이다. 정치판이 도덕적으로 질퍽한 진흙뻘인데, 어떻게 하얀 두루막을 입은 선비같이 정치판에서 깨끗하라고 극우세력은 강요하는가? 극우세력의 주도자들은 그렇게 깨끗하게 정치를 해왔는가? 그것도 집권 좌파세력이 지저분한 도덕게임으로 망국적 반역을 연장시켜려 하는데, 어떻게 우파세력을 해코지 하고 힘을 분산시키는 데에 극우분자들은 그렇게 광분하고 있는가? 지금 한나라당의 자질검증에 개입된 집권 좌파세력의 드러운 도덕게임에 극우세력이 동조하는 구도를 극우세력은 파악하지 못하는가, 아니면 파악하고도 공조하고 있는가?
윤리적 판단은 본질적으로 다양하고 복잡하다. 특히 정치적 사안이나 사람에 대한 판단은 더욱더 복잡하고 애매하다. 도덕적 판단이 간단치 않다는 것을 깊이 고만한 사람 중에 벤드빌트 대학의 윤리학 교수였던 메킨타이어(Alsrdair MacIntyre)를 꼽을 수 있다. 그는
'누구의 편에서 보는 정의이고, 어떤 합리성(기준)에 따라 판단하는가'에 따라, 사회정치적 사안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매우 달라진다는 것이 메킨타이어의 전제이다. 한나라당의 자질검증은, 좌파세력의 기준에 따르거나 경직된 원칙주의에 따라 판단하면, 부도덕하고 해로운 결과를 낳을 것이다. 좌파세력의 工作정치를 분명히 계상해서 전략적으로 판단을 해야, 가장 유리하고 윤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이미 세계화되고 다원화된 한국사회의 정치판에서 정치인의 도덕성을 따지는 자질검증의 광풍이 불고 있는데, 개인적 예절과 도덕을 중시하는 유교윤리(Comfucian ethics)만 고집할 수는 없다. 유교윤리에 근거하여 정치인의 개인적 비리만 따질 것이 아니라, 이미 다양한 가치기준이 경쟁하는 한국정치판에 적용될 다양한 윤리적 근거들을 참고하여 정치인들을 판단해야 할 것이다. 깨끗한 정치인이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치인이 정치판에서 깨끗했는가? 조작된 역사기록만 보고 어느 정치인이 깨끗하다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 김일성, 박정희, 김대중에게서 보았듯이, 성공한 정치인들은 교활하든지 폭력적이어여 한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는 유교의 기준이 사회윤리로서 지배적 역할을 해왔지만, 불교의 정치윤리 기준도 있을 것이고, 기독교의 정치윤리도 한국사회에서 영향력이 있을 것이다. 정치지도자로 聖人군자를 바라는 왕조시대의 윤리기준은 반드시 맞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윤리적 판단이란 때로는 도덕적으로 옳은(right) 것이지만, 다른 때에는 도덕적으로는 옳지 않지만, 기능적으로 적당한(proper)한 것을 뜻하기도 한다. 교활하거나 폭력적인 자들이 쉽게 성공하는 정치판에서 아무리 도덕적으로 옳아도, 정치적 승리에 적당하지 않으면, 결국 도덕적으로 부도덕한 것이 되는 수가 많다. 그래서 정치적 판단에는 최대한 다양한 도덕적 혹은 기능적 판단기준을 적용해봐야 한다. 한국사회에 오직 성인군자적 정치인을 찾는 유교윤리는 정치현실과 많이 유리되면서, 허구적이고 위선적인 도덕률이 되기 쉽다. 예를 들면, 한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 좌파세력과 극우세력의 도덕성 검증에 합격할 윤리적인 지도자가 누구인가? 교활하거나 폭력적이지 않은 '윤리적인' 대통령이 한국인들에게 유능하다는 소리를 들었는가? 지금 교조적 도덕주의 기준으로 이명박을 죽이지 못해 안달한 좌우파 세력들이 숭배하는 김대중이나 박정희 같은 정치인들은 과연 이회창과 이명박이 당하는 도덕적 심판을 견딜 수 있겠는가?
이명박을 죽이는 데에 들이댄 유교적 정치윤리의 기준은 자본주의체제를 부강시키는 데에 별로 적당한 기준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아주 깨끗하지는 않지만, 富國이 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는 실리적인 정치이념이다. 지금 우파세력는 집권 좌파세력이 벌이는 무지막지한 정치게임에 직면해 있다. 좌파세력은 도덕이나 체면도 없이 마구잡이로 공작하고 조작하는데, 이명박에게 적대적인 일부 우파세력은 고고한 도덕성이나 따지고 있는 것 같다. 과연 이러한 행태가 전략적으로 적당한가? 敵이 몰도덕하게 싸우는데, 고고한 도덕만 강조하는 전략가는 지혜로운가? 그리고 집권 좌파세력이 저지른 반역성, 망국적 실정, 국민배반의 행각 등은 유교적 개인윤리로는 따지기 어려운 죄악이다. 꼭 유교도덕을 끌어들이려면, 국가와 국민을 배반하는 지도자는 처단해야 한다는 도덕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제 보수세력은 개인적 부도덕을 물고 늘어질 것이 아니라, 다양한 도덕기준과 다양한 전략으로 후안무치하고 교활한 좌파세력을 對敵해야 한다. 뱀과 같은 교활함이 없는 우매한 소는 하이에나의 밥이 된다.
이 세상에는 다양하고 효율적인 윤리적 기준들이 많다. 개인적 도덕성에 촛점을 맞춘 도덕적 定罪는 좌파세력의 정치인 제거술이지, 좌파세력의 배반과 반역을 문제삼아야 할 우파세력에게 효율적인 전술은 아니다. 좌파세력에겐 단순한 도덕주의가 무기이지만, 우파세력에겐 다양성과 관용성이 무기이다. 우파세력은 앞으로 다양한 윤리적 기준으로 좌파세력의 망국적이고 인륜파탄적 국정운영을 따져야 한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윤리적 기준들이 많다는 점을 마르크시즘이나 주체사상에 빠진 좌파세력은 철저하게 부인한다. 공산주의자들에게 햇볕은 곧 다원주의이다. 우파가 좌파에게 반드시 이길 수밖에 없는 것은 경직된 시스템에 묶여 있는 좌파세력과 극우세력은 다양성과 창의성을 두려워하고 억제하지만, 합리적 우파세력은 경직된 시스템을 거부하고 다양한 의견과 창의적 시각을 존중하면서 더 나은 미래와 더 넓은 세계로 열려있는 세력이기 때문이다. 좌파든 우파든 교조적인 정치세력은 인간의 역동성과 창의성과 개방성을 매도하고 사장시킨다.
유연성이 곧 자유주의 세력의 특징이다. 극우세력과 극좌세력의 특징은 경직된 지적, 도덕적, 권력적, 영적인 틀에 갇혀있다는 것이다. 창의성과 개방성이 합리적 보수세력의 무기이다. 상황에 따라 인간의 윤리적 판단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 조셉 플레처는 그의 '상황윤리(Situation Ethics)'라는 책에서 '경직된 시스템은 인간의 역동성, 자유, 그리고 다양성에 가장 적대적인 것'라고 주장했다.
현대사회에서 거대조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시스템은 후기현대사회에서는 불합리한 것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플레처는 지적했다. 時空에 따라 유연성과 다양성이 없는 판단 그 자체가 곧 악덕이고 죽음이다. 윤리적 판단은 시대상황과 사회영역에 따라 매우 다를 수 있음을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였던 마이클 왈쩌는 '정의의 영역들(Spheres of Justice)'이라는 책에 잘 정리해 두었다. 돈을 몰라야 하는 목사의 윤리와 돈밖에 몰라야 하는 기업가의 윤리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는 것이 왈쩌의 지론이다. 한 시대에 추앙받던 미덕이 다른 시대에는 악덕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하버드의 기능주의적 사회윤리학은 권위주의 시대에는 복종이, 법치사회에서는 준법이, 이익사회에서는 이익극대화가, 그리고 유흥사회에서는 감수성이 최고의 미덕으로 교체되어 등장한다고 정리했다.
정치인을 판단하는 데에 윤리적 판단기준은 결코 유교적 개인윤리에만 국한될 수 없다. 사회영역과 시대에 따라 윤리적 판단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해야 한다. 예를 들면, 서구사회의 윤리전통도 매우 다양하다. 최대의 사람들에게 최대의 이익과 행복을 가져올 결과를 중시하는 영국식 공리주의(utilitarianism), 동물의 세계과 다를 바 없은 인간세계에서 벌어지는 승부를 중시하는 정치적 현실주의(political realism), 그리고 새로운 상황에 새롭게 대처하는 능력을 중시하는 미국식 실용주의(progmatism), 그리고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과 같은 인본주의적 그리스-로마 윤리철학(Greco-Roman philosophy)도 있으며, 인간은 모두 유한하고 약점이 많아서 도덕적 정죄가 어렵다는 것을 중시하는 유태-기독전통(Judeo-Christian tradition)도 있다. 그 결과 오늘날 서구사회와 서구화의 영향을 입은 동양사회에서도 윤리적 기준은 결코 단순하지 않고 다양하다. 하나의 도덕적 관점이나 정치적 판단을 절대화시켜서, 다른 도덕적 판단이나 관점을 이단시하는 것은 아주 해롭고 부도덕한 독선이다.
그리고 동양사회의 윤리적 전통도 서구사회만큼 풍부할 것이다. 法家의 윤리는 서양의 정치적 현실주의처럼 냉철하고 실리적이다. 사회생활에서 예의범절을 중시한 유가의 도덕률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이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잠 잘 수 있게 하는 것을 최고의 사회윤리로 본 도가의 도덕률도 있다. 유가에서는 도덕이 배부름보다 더 중시하지만, 도가에서는 배가 부르면 도덕은 없어도 된다고 주장한다. 맑스는 '모든 도덕은 빵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듯이, 빵이 빈곤하면 도덕도 각박해진다. 북한에서 아무리 김일성과 김정일이 도덕적으로 고상하고 깨끗한 척해도, 빵이 없으니까, 그들은 흉악범의 원흉이 되고, 모든 인민들은 부도덕해진다. 빵이 풍부하면, 빵을 훔치는 자들이 줄어든다. 모든 부도덕은 궁핍함을 충족시키려는 인간의 욕구에 근거해있다. 권력에 굶주린 자가 권력을 탐하고, 굶주린 자가 빵을 탐한다. 그래서 부족한 물질을 풍부하게 하면, 그 물질에 관한 범죄가 상당히 줄어든다. 넉넉한 쌀뒤지에서 인심도 나오고 도덕도 나온다. 도덕을 국가흥망의 근원으로 본 성 어그스틴이 말한 '도덕'은 동양의 유가적 성인군자 개인윤리가 아니라, 조직과 기능을 중시한 서구의 희랍-히브리적 사회윤리를 지칭한 것이다.
'도덕이 먼저냐, 빵이 먼저냐'는 논쟁에서 필자는 단연 빵이 먼저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도덕적 판단을 하는 데에 완벽한 대답은 아니다. 단지 한국에 지금 빵을 도외시하고 도덕만 따지려는 좌파세력과 그에 부화뇌동하는 극우세력이 준동하니까, 필자는 도덕을 경시하는 상황윤리를 택한 것이다. 윤리적 판단은 그와 같이 상황적이고 전략적이다. 우파세력이 지금 도덕주의를 앞세워서 부도덕한 짓을 하는 교활한 좌파세력과 싸울 때에, 윤리적 원칙만 내세우면 우매하고 사악한 판단이 될 수가 있다. 도덕적 판단은 절대로 고정되거나 절대적이 될 수가 없다. 특수한 세력이나 파벌에 고정되고 편협된 도덕적 판단은 인간을 어리석고 악하게 만든다. 지금 한나라당 경선에서 특정 경선주자의 진영에 붙어서 경쟁상대 죽이기에 편집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부도덕한 자들이 도덕성 검증을 강요하고 있다. 가장 부도덕한 자들이 도덕성 검증을 강요하는 것이 바로 정치와 윤리의 현실적 관계이니, 함부로 정치판에서 도덕을 논하는 위험성을 깨달아야 한다.
어그스틴, 루터, 마키아벨리, 니체 등이 지적한 것처럼, 정치에 윤리가 설 자리는 참으로 비좁다. 그래서 정치에 윤리를 강요하는 정치인이나 언론인은 무지하거나 악덕할 수도 있다. 도덕을 앞세워서 권력게임을 하는 정치인은 쉽게 악덕스러워진다. 한나라당의 도덕성 검증은 전략적이고, 유연하고, 절제되어야 한다. 특정 파벌의 이익에 몰두하여 다른 파벌의 경쟁자를 마치 파렴치범으로 몰아가는 한나라당의 도덕싸움은 가장 악덕스럽고 멍청한 짓이다. 범우파세력 내의 극우세력은 좌파세력이 우파세력을 분열시키기 위하여 벌이는 자질검증에 이용당하지 말아야 한다. 자질검증의 이름으로 우파세력이 두번이나 대선에서 패한 것은 이회창으로 충분하다. 교조주의적 광신과 자기교만에 빠진 극우세력은 광신적 극좌세력과 방향을 틀리지만, 온건한 보수세력을 공격하는 데에 공조하게 되어 있다. 극좌세력의 사악한 자질검증 게임에 극우세력은 멍청하고 부도덕하게 공조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집권 좌파세력에 의해서 국가 자체가 국민의 여망을 배반하는 구조로 변질하는 한국정치판에서 부동산투기 수준의 부도덕, 그것은 별로 대단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 우파세력이 정상적인 국가윤리와 개인윤리를 가지고 있다면, 좌파정권에 의한 망국적 실정과 국가정체성의 상실과 같은 문제를 따져야 한다. 왜 좌파정권은 국민적 동의도 없이 핵무기와 미사실로 남한을 위협하는 북한에 수조원을 퍼주면서 남북정성회담을 구걸하는가를 따져야 한다. 보수세력의 관점에서 보아 국가와 국민에 대한 반역에 가까운 현 정권의 실정을 모른 척하고, 수십년전 이명박의 출생과 이름이나 비방하는 극우세력의 악덕은 참으로 멍청하고 해롭다. 지금 한나라당은 좌파세력의 반역과 배반을 가장 큰 비윤리적 문제로 보고, 이에 대한 경선주자들의 입장과 대책을 격렬하게 논쟁해야 제대로 된 자질검증을 하는 것이다. 좌파세력의 반역적 수준의 실정을 남겨두고 경선주자들의 시시한 과거사에 몰두하는 한나라당의 도덕성 검증은 방향과 대상이 크게 잘못되었다. 서민경제가 죽어나가는데, 도덕성 검증을 광적으로 방송하는 좌파세력의 어용언론들은 악덕스럽다.
필자 趙榮煥: 1958년 출생, 경북 울진. 예일大 석사(사회윤리), 하버드大 석사(사회윤리), UC 버클리-GTU 박사과정(사회윤리) 수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