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姓氏 랭킹을 보고 있으면 수수께끼 같은 一点을 발견할 수 있다. 2000년 인구 센서스에서 인구수 1등은 金氏로서 약993만 명이었다. 全인구의 21.6%이다. 2위는 李氏로서 약679만 명. 14.8%이다. 3위는 朴씨로서 약390만 명, 8.5%이다. 金, 李, 朴씨는 王姓이다. 金씨는 신라와 금관가야의 王姓이고, 李씨는 조선, 朴씨는 신라의 王姓이다.
본관별 랭킹은 1위가 金海金氏로서 약412만 명, 2위는 밀양朴氏로 303만 명, 3위는 전주李氏로 260만 명이다. 4위는 경주金氏로서 174만 명이다.
그렇다면 金, 朴씨와 함께 신라의 3大 왕성인 昔氏는 몇등인가? 신라 56代 왕 가운데 朴씨 왕이 6명, 昔씨 왕이 8명, 金씨 왕이 42명이다. 朴씨보다 더 많은 왕을 배출한 昔씨이니 그 후손들도 번창하여 인구가 많아야 될 것이다.
그런데 昔씨는 2000년 인구 센서스에서 110등이었다. 인구가 2907호에 9544명이다. 王姓인 昔씨가 史씨(109등)나 夫씨(111등) 같은 稀姓이 되어버렸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 많던 昔씨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일본에서 더 유명한 역사학자 朴炳植씨는 미발표 논문 '昔氏王族의 600년 秘史'에서 昔氏 滅門之禍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가고 있다.
朴선생은 이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三國史記 문무왕條에서 구했다.
<本彼宮의 財貨, 田莊, 奴僕을 갈라서 그 半을 김유신과 김인문에게 나누어 주었다>
문무왕 2년(662년) 2월條에 적힌 내용이다. 本彼宮은 최초의 昔氏王인 昔脫解 집안의 근거지인 반월성 근방을 가리킨다. 朴 선생은 문무왕條의 이 문장이 金氏王朝에 의한 昔씨 탄압과 학살, 추방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문무왕이 昔씨 집안의 재산과 땅과 종들까지도 다 압수하여 부하들에게 나눠주었다는 것이다.
그때는 羅唐 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킨 지 2년이 되는 해였다. 백제 지역에선 부흥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어 羅唐 연합군이 작전을 펴고 있었고, 倭는 백제부흥운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대함대를 준비중이던 시절이다. 국내외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왜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신라정권은 昔씨 탄압에 나섰던가? 앞으로 알아보기로 하자.
왜 昔씨는 滅門之禍를 당했나?
- 趙甲濟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07-07-27, 13: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