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스라엘 같으면 연일 한국인 납치자들이 피살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1972년 뮨헨 올림픽에 참석한 이스라엘 선수단을 습격한 팔레스타인 테러단이 10여 명의 선수들을 살상하자 이스라엘의 골다 메이어 수상은 정보기관 모사드 아래 특수 수사팀을 만들어 테러단 全員을 죽이도록 명령한다. 그 후 10년안에 테러단 全員이 유럽의 곳곳에서 이스라엘 기관원에 의해 사살되었다. 이스라엘은 포로나 실종자를 끔직히 아끼면서 동시에 自國民을 다치게 한 외부 세력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보복을 감행한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스라엘을 경멸하고 우습게 보는 이들은 없다. 그들은 홀로코스트의 경험에 의하여 국민과 국가가 우습게 보이면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던 것이고 그런 보복을 생활화, 습관화하고 있다. 우리도 한국인 인질들을 죽인 조직과 범인들을 반드시 추적, 검거하여 응징하여야 한다. 그런 보복은 국가의 의무이다. 그런 보복이 어렵다고, 인기가 없다고 포기하는 조직은 국가가 아니라 협회이다. 국가정보원이 주로 이런 임무를 맡아 해야 한다. 대통령을 즐겁게 하는 도청, 미행, 뒷조사 같은 데 용기를 내지 말고 아프가니스탄으로 잠입하여 목숨을 걸고 싸워보라!
노무현 대통령은 이라크에서 김선일씨가 피살되었을 때 왜 거기에 파견되어 있던 국군에 보복명령을 내리지 않았는가? 한국은 한국인을 죽인 조직이나 나라에 대해선 반드시 보복하는 원칙을 가진 나라라는 인상을 세계 만방에 알려놓아야 안전해진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인질로 많이 잡히지 않는 이유도 그런 것 아닐까?
자신들의 유족과 시신을 국가가 책임지고 수습하고 보살펴주며 가해자에 대해서는 만난을 무릅쓰고 正義의 복수를 해주리라는 확신이 있을 때만 국민들과 군인들은 국가를 위해 싸운다. 참고로 이스라엘의 특공작전 사례 등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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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특공작전 약사(略史)
-아이히만 납치에서 엔테베 작전까지
● 1960년 5월 이스라엘 해외담당 첩보기관 모사드는 하렐 부장의 현지 지휘 아래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을 납치, 국영항공회사 엘 알(EL AL)편으로 데리고 왔다. 유태인 학살의 한 주역(主役)인 前 나치 비밀경찰 간부 아이히만은 공개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1962년 5월31일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스라엘 형법은 다른 범죄에 대해선 사형을 금지하고 있으나 유태인 학살 범죄만은 예외이다. 아이히만은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에서 사형된 유일한 인간이다.
● 이스라엘과 프랑스의 우호·협력관계는 1950년대에 시작되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알제리아 독립운동 조직에 대한 정보를 프랑스에 제공했다. 프랑스는 이스라엘에 무기를 제공했다. 核무기의 비밀개발에도 두 나라는 협력했다. 이집트의 나세르에 대한 공동전선도 형성했다. 그러나 드골의 재집권 이후 알제리아가 독립해 버린 뒤 협력의 기반이 약화되었다. 1967년 6월 전쟁 전야 드골은 이스라엘 정부에 대하여 선제공격을 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으로 대승하자 드골은 對이스라엘 무기 금수조치를 취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들은 합동공작을 벌여 스위스가 만들고 있던 프랑스의 미라즈 전투기 설계도를 훔쳤다. 이것을 바탕으로 만든 전투기가 케피어(Kfir)이다. 1967년 크리스마스 이브 날 이스라엘군의 무기조달처는 특공대를 조직하여 프랑스의 쉘부르그 항구에 있던 미사일 발사함 5척을 공해상으로 빼돌려 1970년 새해 첫날에 이스라엘 하이파 항으로 몰고 왔다. 이 배들은 對이스라엘 금수조치에 의하여 주문국인 이스라엘로의 인도가 거부돼 있었다. 이스라엘은 노르웨이 석유회사가 구입하는 식으로 위장한 다음 특공대를 선원으로 변장시켜 승선시킨 뒤 배 5척을 소매치기한 것이다.
● 1969년 12월 이스라엘 공수부대의 특공대 66명은 세 대의 헬기에 나눠타고 수에즈 운하를 건너 이집트 영토 내로 약 60km쯤 진입했다. 사막에 착륙한 그들은 소련제 P-12 레이다 기지를 습격, 2.5t 레이다를 해체하여 헬기에 싣고 돌아왔다. 소련정부는 최신무기가 이스라엘 손에 넘어간 데 화가 나서 이집트에 대한 최신 고급무기의 제공을 일시 중단했다.
● 1976년 7월 이스라엘 특공대는 네 대의 허큐리스 수송기에 나눠 타고 아프리카 깊숙이 날아갔다. 팔레스타인 테러단이 납치한 에어프랑스 여객기엔 2백46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고 그 중 77명이 이스라엘 시민이었다.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에 6일째 억류돼 있던 이들 인질을 구출한 엔테베 작전은 기발한 착상(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으로 변장한 이스라엘군인이 수송기에서 지프차를 타고 내리는 바람에 공항경비병들은 외국 순방중이던 아민이 귀국한 것으로 착각했다)과 대담한 공격, 그리고 최소의 인명손실로 하여 그 뒤에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완벽한 드라마였다.
● 1981년 6월 이스라엘 공군은 이라크가 핵무기 개발용으로 건설중이던 오시라크 원자로를 폭격했다. F-16, F-15 편대는 사우디 아라비아 상공으로 우회하여 이란쪽으로부터 공습을 단행하였다. 이라크 측에선 한동안 이란 공군기의 공습을 받은 것으로 착각했다.
● 1985년 10월1일 이스라엘 공군 F-15 편대는 튜니시아에 있는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 본부 건물을 폭격, 75명이 죽었다. 공중급유를 받아 가면서 1천9백km를 날아와 폭격한 이스라엘 편대는 단 한 대의 손실도 없이 귀환했다. 이 폭격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가 사이프러스에서 세 명의 이스라엘人을 죽인 데 대한 보복이었다.
● 1986년 10월 영국의 선데이 타임즈는 이스라엘의 비밀核개발에 참여했던 기술자 모르데차이 바누누의 증언을 게재하여 이스라엘이 이미 核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모사드는 미인계를 써 바누누를 로마로 유인한 뒤 선박편으로 데리고 왔다. 바누누는 반역혐의로 재판에 넘어가 징역 18년을 선고받아 복역한 뒤 풀려났다. 변호인들은 바누누의 폭로를 反核양심선언으로 몰고가려고 했으나 이스라엘 언론이 납치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바람에 성공하지 못했다. 유력 일간지 하아레츠의 칼럼은 「민주국가라 하더라도 그런 폭로를 한 인물은 시체로 발견될 것이다. 바누누가 아직도 송환되지 않고 있는 상태라면 우리는 정부에 대해서 왜 그를 내버려 두고 있느냐고 추궁해야 한다」고 했다.
● 1988년 4월16일 이스라엘 특공대는 튜니시아의 해안에 상륙,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의 주요인물인 아부지하드를 그의 집에서 암살한 뒤 철수했다. 이스라엘 군은 이 작전을 지휘하기 위하여 전자전 통제기를 지중해 상공에 띄웠다. 당시 이스라엘군 참모차장 에후드바락(뒤에 총장)이 이 비행기에 타고 지휘하고 있었다. 이 전자 정보기는 특공대가 침투한 지역의 전화 및 무전시설을 마비시켜 특공대의 탈출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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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핵무장과 페레스의 배짱
-이스라엘은 소련과 미국의 압력을 단호히 거부했다.
이스라엘 핵개발의 아버지는 시몬 페레스 전 수상이다. 페레스는 회고록에서 이 核개발 과정을 설명하면서 한번도 「核무기 개발」이란 용어를 쓰지 않았지만 그 대신 「核무장 선택권」이란 의미이지만 사실상 핵개발을 뜻하는 「뉴클리어 옵션」(Nuclear Option)이란 용어를 썼다.
페레스 현 부수상은 이스라엘이 주로 프랑스의 도움으로 비밀核개발을 성공시키는 과정에서 돌파해야 했던 여러 난관들을 설명했다. 그 중의 하나. 페레스 당시 국방차관이 1959년 아프리카의 세네갈을 방문하고 있는데 벤 구리온 수상으로부터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귀국하라는 연락이 왔다. 비상사태가 발생한 줄 알고 돌아오니 벤 구리온 수상, 골다 메이어 장관, 해외 정보기관인 모사드 책임자 하렐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상의 설명인즉, 소련의 첩보위성이 네게브 사막의 核시설 건설공사 현장을 촬영했고 이 사진을 갖고 그로미코 소련 외무장관이 지금 워싱턴으로 날아갔다는 것이다. 포스터 덜레스 美국무장관에게 그 사진을 들이대고서 미국과 소련이 힘을 합쳐서 이스라엘에 대해 核개발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넣으려 하는 것 같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는 것이다.
특사를 미국으로 보내 간청을 해보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때 페레스가 단호하게 반대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우리가 미리 이실직고하면 약점을 잡히게 된다. 그냥 가만히 있자. 도대체 소련 첩보위성이 찍은 사진에 뭐가 나오나. 땅을 판 구멍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딱 잡아떼면 그만이다』
이런 취지의 설득이 통해서 이스라엘 정부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서 核개발을 계속 추진해 지금은 核강대국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이미 1960년代에 核폭탄 제조에 성공했고 지금은 약 4백개의 탄두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을 운반할 장거리 미사일 제리코 1, 제리코 2호도 실전용으로 배치된 지 오래이다. 小國이 강대국의 감시망 속에서 비밀리에 核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은 核무기 개발에는 성공했으나 국제적인 압력으로 경제난에 봉착, 한때 核무기 제조는 보류하였던 인도를 비롯, 박정희의 좌절과 북한의 경우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스라엘이 유독 核무장에 성공한 것은 벤 구리온과 페레스 같은 배짱 있는 정치인의 리더십과 자주국방에 대한 정치권의 전면적(全面的)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韓美국방장관 회담 때 럼스펠드 美국방장관은 서종철(徐鐘喆) 한국 국방장관에게, 『만약 한국이 핵개발을 시도한다면 미국은 한미 상호 방위조약의 폐기를 포함한 외교·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양국관계를 전면 재검토할 것이다』고 통보한 적이 있다.
박정희의 核개발 등 자주국방 의지에 대하여 미국 편에 서서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이가 바로 김재규(金載圭) 당시 정보부장이었음은, 그의 항소이유서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카터 행정부가, 자주국방 노선을 추진,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박정희에 대해서 한국內의 일부 재야 및 정치 세력을 조종하고 인권외교라는 위선적 명분론을 들고나와 코너로 몰았고 여기에 동조하는 사람이 박정희 주변에도 많았던 것도 이스라엘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국론분열이 생기면 핵무장에 대한 국가의지가 꺾여버리게 되는 것이다.
韓美연합군이 해체되고 核우산의 제공여부가 애매해질 때 한국의 主流層이 '우리도 핵무장하자'고 나설 경우, 그것을 밀고나가는 과정에서 진정한 애국심과 민족주의를 동원할 수 있는지가 關鍵(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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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포로를 잊지 않는다
이스라엘에서 출판되는 연감은 1982년 레바논 전쟁에서 포로가 된 공군항법사 론 아라드와 네 명의 실종자에 대한 구출 노력의 진행상황을 반드시 언급한다. 1994년 5월21일 이스라엘 특공대는 시리아가 통제하고 있는 베카 계곡의 한 가옥을 급습하여 시어파(派) 테러조직의 간부인 무스타파 디라니를 납치, 헬리콥터로 싣고 와서 감옥에 집어넣었다. 디라니는 아라드를 데리고 있다가 30만 달러를 받고 이란 혁명수비대에 넘겨주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포로나 조국에 의해 결코 잊혀지지 않고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 억류된 6.25 전쟁 포로와 휴전 후 북한이 납치해간 어부 4백여명에 대한 한국 정부·언론·국민들의 무관심과 한번 비교해 보라.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려는 의지력을 보일 때만이 협회나 기업과는 다른 특별한 공동체임을 증명할 수 있다. 그럴 때만이 국가는 국민에게 충성을 요구할 수 있는 권위를 갖게 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가 연예인과 스포츠 선수들을 이야기하는 식으로 장군들의 이름을 외고 있었다. 1982년 레바논 베카 계곡 상공에서 시리아 공군과의 공중전에서 87대(격추된 시리아공군기) 대 0(격추된 이스라엘 공군기 없음)의 스코어를 기록했던 공군사령관은 누구이며 1976년 엔테베 작전의 특공대장은 누구이고 나치독일의 비밀경찰 간부 아이히만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납치해온 모사드의 간부는 누구라는 식으로 줄줄 외는 것이다.
이스라엘 공군에선 한때 조종사들을 상대로 「홀로코스트 퀴즈」문답을 실시하여 상을 주곤 했다. 어느 조종사가 유태인 대학살에 관하여 가장 정확한 상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한 행사였다. 질문은 이런 식이다. 「트레브린카 수용소에서 몇 명이 학살 되었지요?」 「부켄발드 수용소에선?」 「리비아에 만들어진 수용소엔 몇 명이 수용돼 있었나요?」
학살과 전쟁은 이스라엘人들에겐 악몽과 추억뿐만이 아니라 문화이고 생활 그 자체이며 항상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게 하는 각성제이다. 엔테베 작전의 특공대장 요나단 네탄야후 중령은 현장(우간다 엔테베공항)에서 인질 구출작전을 지휘하다가 전사했다. 이 작전의 유일한 전사자가 지휘관이었다는 것은 장교들이 앞장을 서 장교사망률이 유달리 높은 이스라엘 군대의 전통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동생 빈야민 네탄야후는 야당인 리쿠드당(黨)의 당수로 있다가 수상까지 올랐다. 그는 정치인으로서보다는 「특공대장 요니의 동생」으로 더 유명하다. 엔테베작전을 감행한 것은 이스라엘이 지금까지도 지키고 있는 중요한 원칙 때문이었다. 그 원칙이란 테러리스트와는 어떤 협상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군과 정보기관의 특공작전은 그 발상의 기발함과 행동의 대담성에 있어서 「다이하드」와 같은 영화를 연상시킨다. 이들 특공작전은 이스라엘식(式) 생존방식을 보여준다. 학살과 핍박의 희생양으로 오랫동안 경멸받던 나약한 유태인이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신생국가 이스라엘의 결의에 찬 행동, 또 그러한 과거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건너온 다리에 불을 질러버리는 모진 자기다짐인 것이다. 그들은 국제법을 어기고 국제여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특공작전도 사양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렇게 해야만 국가로서 살아남을 수 있다. 6백만 유태인이 학살될 때 당신네들은 어디에 있었는가』라고 쏘아붙이면서 『믿을 사람은 우리뿐』이라고 서로를 일깨우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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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애국자 대접과 한국
강철군화(프리존)
1.서해교전의 영웅 한상국 중사의 미망인 김종선씨가 24일 고국을 떠났다. 남편이 목숨을 버려가며 지킨 조국을 떠나면서 그녀가 남긴 말들이 가슴을 무겁게 한다.
“나라를 위해 간 분을 홀대하는 것은 (나라가) 썩은 거 아닙니까?”
“(전사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했는데 영 아니더라고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침몰했던 배(해군 고속정 참수리호)를 전쟁기념관에 옮겨 달라고 했는데 2함대에 그대로 남아 있어요. 작년엔 정부 고위 관계자가 (추모본부는) 행동하지 말라고 해 너무 서러웠어요. 2002년 장례식 때는 민간인도 못 들어오게 했으니까요. 영웅인데도 영웅 대접을 못 받은 것은 분명 잘못 아닙니까.”
더 가슴이 아픈 것은 김종선씨 기사 뒤에 달린 악플들이었다. 그 아픈 가슴을 달래주지는 못할망정 '니 남편 죽음만 특별나게 대우 해달라고 하지마라'거나,'조선은 서해교전 유가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 포퓰리즘을 비판하면서 도대체 무엇을 선동하려고 조용히 한국을 떠나려는 유가족 기사를 내보내는가?'라는 따위의 글들을 보면, 도대체 이 국민들에게 염치라는 것이 남아 있나 싶다.
정부 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나라 위해 죽은 영웅들을 홀대하는 나라,이 나라가 과연 건강한 나라인가?
2. 엘리 코헨은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스파이이다. 아르헨티나를 거쳐 자신의 신분을 세탁한 그는 사업가로 위장해 시리아로 침투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사귀었던 알 하페즈가 군사쿠데타로 시리아 대통령이 된 후, 그는 대통령의 최측근 가운데 한 사람으로 떠올랐다.
개각때면 공보장관으로 그가 입각하리라는 소문이 돌았다. 하페즈 대통령은 우선 그를 국방차관으로 임명했다가, 후일 국방장관으로 임명하겠다는 언질을 주기도 했다. 이는 하페즈가 그를 후계자 물망에 올려 놓고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리아 정계의 숨은 실력자가 된 그에게 각종 정보가 몰리게 된 것은 당연하다. 시리아군의 무기도입, 골란고원의 병력배치,이스라엘로 흘러들어가는 강물의 수로변경공사 계획, 시리아공군조종사들의 리스트 등이 코헨의 손을 거쳐 이스라엘로 흘러들어갔다.
1965년 코헨은 시리아군 방첩기관에 체포됐다. 500여명의 시리아인들이 그와 연루된 혐의로 체포됐다. 그를 가까이 두었던 하페즈 대통령은 군부 내 반대파들의 공격에 전전긍긍했다. 결국 하페즈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코헨을 처형할 수 밖에 없었다.
코헨이 체포되자 이스라엘 정부는 코헨을 구명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기울였다. 프랑스 대통령과 총리, 동구권 국가지도자들, 로마 교황, 하페즈의 목숨을 구했던 의사 등 하페즈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사들이 총동원됐다. 이스라엘이 수감하고 있는 시리아 간첩 전원과 코헨을 맞교환하자는 제안도 했다. 하페즈와 친한 프랑스군 장교를 통해 시리아에 비밀리에 현금과 민수물자들을 지원하겠다는 제안도 들어갔다.
이 모든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엘리 코헨은 1965년 5월 다마스커스의 순교자 광장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코헨이 처형되자 이스라엘 전역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시위와 행사가 열렸다. 텔아비브에서의 추도 시위는 코헨이 시리아로 파견될 당시, 이스라엘 수상이었던 벤구리온이 앞장서서 이끌었다. 여러 도시들에서 거리나 공원, 광장에 엘리 코헨의 이름을 붙였다.
엘리 코헨의 아내 나디아에게 한 외국 기자가 물었다. '국가로부터 충분한 보상을 받았느냐'고.
나디아는 엄숙한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전세계의 다른 어떤 정부가 해 주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상의 일을 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13살이 되면 성년식을 치른다. 1977년 합동성년식이 열렸다. 이 행사에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들의 아들들이 초대됐다. 행사에는 베긴 수상을 비롯해 국방장관, 軍참모총장 등이 참석했다.
이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엘리 코헨의 아들이었다.
생일보다 몇 달 앞당겨 특별히 행사에 초대받은 그는 '주위의 친구들을 보며, 내게도 아버지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주위가 숙연해졌다. 하지만 소년은 '나는 영웅의 아들'이라며, 아버지가 목숨을 바쳐 지킨 나라를 사랑할 것을,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될 것을 다짐했다.
1990년대 중반, 이스라엘과 시리아간에 평화회담이 진행됐다. 이때 이스라엘이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엘리 코헨의 유해 반환을 시리아측에 요구하고 있다는 얘기가 솔솔 흘러나왔다. 이는 이스라엘이 시리아에게 보내는 무언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한 기자가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에게 그것이 사실인지를 물었다.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엘리 코헨의 유해 반환이 회담의 전제 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시리아가 엘리 코헨의 유해를 반환한다면, 이는 분명히 평화협정 타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3. 이스라엘과 대치하고 있는 그 어떤 아랍국가들도 이스라엘을 무시하지 못한다.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은 주위의 모든 나라들로부터, 심지어는 북한으로부터도 무시당하고 있다.
그 차이는 어디서 나오는가?
필자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국가와 사회가 어떻게 대우하느냐에서부터 그 차이가 나온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스라엘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웅의 미망인이 '우리나라 정부는 전세계의 다른 어떤 정부가 해 주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상의 일을 해 주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나라다.
반면에 대한민국은 서해교전 전사자의 미망인이 “나라를 위해 간 분을 홀대하는 것은 (나라가) 썩은 거 아니냐?” 며, 결국 남편이 목숨을 던져 지킨 나라를 떠나가게 만드는 나라다.
이스라엘의 군인과 정보요원들은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군인과 정보요원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처자식 생각에 목숨을 아낄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 않는 군인과 정보요원들을 가진 나라는 이웃나라들이 두려워한다. 그렇지 못한 나라는 이웃나라들이 무시한다. 이것은 당연한 얘기다.
국민들이 기꺼이 목숨을 던질 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졌을 때 국가와 국민들이 그를 기억해 주는 나라-그런 나라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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