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75년에 처음으로 해외 여행을 했다. 일본을 17일간 돌아다녔다. 그 전해 한국기자상을 받았는데 상품이 해외여행이었다. 여권, 그것도 1회용인 단수여권을 내는 데 한 달 걸렸다. 특히 신원조회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경찰관이 찾아와서 인터뷰를 했다.
김포공항에서 도쿄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요사이는 비행기를 타면 불안한데 그때는 신기하고 재미 있었다.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내려 메구로 구역에 있는 오래 된 호텔에 든 다음 저녁에 거리로 나와서 맨처음 한 것이 바나나를 한 송이 사가지고 와서 밤 새워 다 먹어치우는 것이었다. 국내에선 한 개 사기도 힘들 때였다.
그때 일본여성들은 화장을 짙게 했다. 지하철을 타면 화장품 냄새가 많이 났다.
1977년에 처음으로 미국에 갔다. 하와이를 경유하여 로스 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뉴욕, 워싱턴을 돌아다녔다. 뉴욕의 타임 스퀘어에 있던 카터 호텔에 들었다가 도난을 당했다. 바깥 구경을 하고 객실로 돌아오니 도둑이 들어 가방을 뒤진 다음 녹음기 등 귀중품만 훔쳐 간 것이었다. 직접 파출소에 신고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세번째 외국여행은 1984년이었다. 히로뽕 관련 취재로 일본에 갔다. 그 뒤로는 세는 것이 귀찮을 정도로 자주 간다. 2002년에 마음 맞는 분들과 함께 여행클럽 尙美會를 만들었고, 2년 뒤 주식회사가 되었다. 여행이 직업이 되다시피했고, 나는 어느 새 가이드로 변신했다. 올해 해외여행 회수가 벌써 10회를 넘었다.
2004년부터는 일본을 집중적으로 여행하고 있다. 47개 道都府縣 가운데 35곳을 여행했다. 유럽을 여행하고 일본을 여행하기 시작했는데 일본이 작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대였다. 일본이 오히려 전보다 더 크게 보이는 것이었다. 특히 일본의 시골은 탄탄하고 기름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본은 나라를 세운 이후 한번도 제대로 침략 당한 적이 없다. 실패한 몽골의 침공과 태평양전쟁중 미국의 폭격 정도였다. 1600년의 역사와 건설이 축적되어 있으니 속이 꽉 찬 나라인 것이다.
수년 전부터는 국내 여행도 많이 한다. 유럽과 일본, 즉 一流국가를 많이 보았으니 한국이 시시하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대였다. 한국이 전보다 더 크게 보이는 것이었다.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내 고향인 경북 청송은 결코 부유한 농촌이 아닌데 인구 3만 명에 승용차가 1만대를 넘는다. 전국에서 두번째로 작은 郡인 강원도 양구군은 인구 2만 명에 공무원 숫자는 800명이다. 활주로 같은 도로, 길이가 3km를 넘는 터널들, 서울시민들과 다름 없는 옷차림의 시골 사람들, 이런 변화를 몰고온 힘은 도덕성이 아니고 돈이었다.
한국의 2大 대통령 이승만과 박정희도 여행을 많이 한 사람이다. 이승만은 미국을 근거지로 삼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국제정세를 실감했다. 박정희도 1930년대 아시아의 서부였던 만주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 그리고 해방 뒤엔 미국을 여행했다.
역대 대통령 중 여행을 가장 적게 한 사람이 노무현씨였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그가 구경한 유일한 외국이 일본이었다고 한다. 60세가 된 사람이, 돈도 많은 사람이, 국회의원도 한 사람이 일본밖에 가 보지 않았다는 것은 자랑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다. 이것이 그의 識見형성에 결코 긍정적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으리라.
김일성, 김정일 또한 외국여행의 경험이 매우 얕다. 이들이 여행한 곳은 공산국가뿐이다. 3류, 4류만 체험한 것이다. 두 사람 다 비행기를 타기 싫어 기차여행을 했다. 이 바쁜 세상에 모스크바를 근 한달간 기차로 왕복하는 자가 다스리는 북한이 어떤 모습이겠는가?
모택동도 스탈린도 해외 여행을 거의 하지 않았다. 독재자들의 공통점이다. 독재자들은 본질적으로 골목대장이다. 국내의 무대를 떠나서 광명한 세계로 나가면 초라해진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김정일이 한국에 올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옷차림과 그런 말투로써 누구를 감동시키겠는가?
비행공포증은 비행기를 많이 탄 사람일수록 잦다. 비행기를 처음 탈 때는 신기하고 구경꺼리도 많고 잠도 잘 온다. 자주 타면 난기류에 걸려 흔들린 경험도 생기고 오작동으로 산소마스크가 떨어져 가슴이 철렁하기도 한다. 비행장이 눈이나 비로 폐쇄되어 구름 속에서 여러 번 선회하다가 기름이 떨어지기 직전에 다른 공항으로 간 적도 있을 것이다. 통계로는 비행기 안에 있는 것이 어떤 공간보다도 안전하다. 이건 이론이고 공중에 인간이 떠 있다는 것 자체가 공포인 것이다. 활주로에 쿵 찍고 내리기 전까진 불안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일조하는 것이 비행사고를 다룬 영화나 다큐멘터리이다.
여행을 하면 교양이 붙는다. 책으로 안 머리속의 지식과 눈과 귀로 見聞한 살아 있는 지식이 결합되어 입체적으로 교양화된다. 여행 동반자들과 나누는 대화도 좋다. 여행중에 일어나는 사건들도 아찔하고 재미 있다. 여행은 地球를 독서하는 일이다.
올해 연인원으로 한국인 약1200만 명이 해외로 나갈 것이다. 20년안에 약1억 명의 중국인이 매년 해외로 나가게 된다. 해외여행에 돈을 가장 많이 쓰는 사람들이 독일인이다. 곧 중국인이 제1위가 될 것이다.
작년 일본에 간 한국인은 243만 명, 한국을 찾은 일본인은 241만 명이었다. 올해는 이 격차가 더 커진다. 일본의 질서, 청결, 친절, 그리고 요사이는 싼 물가가 한국인을 불러들인다. 한국은 무엇으로 외국인을 불러들이겠다는 것인가. 좌파정권의 등장 이후 눈에 뜨이는 것은 도시가 더러워졌다는 점이다. 서울역은 노숙자의 천국이 되었다. 좋은 화장실에선 발을 씻는 시민들도 눈에 보인다. 서울 한복판인 광화문 일대엔 휴지, 담배꽁초, 껌이 어지럽다. 좌파는 원래 法治를 파괴하고 질서를 무너뜨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선 휴지 버리는 시민과 청소를 게을리 하는 미화원에게 잔 소리할 사람도 드물다.
한국에 들어와 정착한 탈북자가 1만 명을 넘었다. 이들이야말로 북한의 제1세대 해외여행객들이다. 여행은 자유의 표현이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강을 넘고, 목숨을 걸고 대사관 담을 넘고, 목숨을 걸고 한국行을 감행했다. 북한에선 평양으로부터 지방으로 가는 여행이 한국인의 미국여행보다 더 어렵다. 내년부터는 한국인이 미국으로 여행할 경우 비자를 받을 필요도 없게 된다.
여행을 금지하는 독재정권이야말로 인간의 행복권을 말살하는 反인륜집단이다. 북한사람들이 매년 100만 명씩만 해외로 여행해도 체제가 바뀔 것이다. 여행은 위대한 경험이다.
여행은 地球를 독서하는 일이다.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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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8-01, 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