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내각책임제 정부는 세계의 대세다. 비교적 안정되고 잘 나가는 나라들은 대부분 내각책임제 국가들이다.
[오는 12월에 있을 제17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보여 주는 저질(低質) 대통령의 ‘막가파’ 식 국정 운영 행태로 인한 전반적 국정파탄 양상과 소위 ‘네거티브’를 주 무기로 하는 ‘대중인기 영합주의’(Populism)가 판치는 대통령선거전의 파행상(跛行相)은 당면한 정치제도 개선 과제로 ‘내각책임제’(Cabinet Responsible System)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검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제15대 국회의원 시절 발표했던 내각책임제 개헌에 관한 글 가운데서 발췌한 내용을 다음에 수록한다. 많은 분들이 일독(一讀)한 뒤 관심을 표명해 주기 바란다. - 李東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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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略]
3. 왜 내각제라야 하는가.
그동안 오랜 기간 권위주의시대를 살아오는 동안 우리 국민에게는 국가의 권력체제에 관하여 심하게 왜곡된 편견이 생겼다. 그 결과, 내각책임제에 대해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특히 식자층에서 매우 감정적인 편견이 표출되는 것을 보고 있다. 사실은 국가경영에 있어서 대통령책임제가 좋으냐, 내각책임제가 좋으냐 하는 것은 상대적 차원의 문제에 불과하지, 절대선(絶對善)의 차원에서 시비할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이 두 권력체제는 한 체제를 일정기간 운용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부정적 측면이 축적되어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다른 체제로 바꾸어서 또 일정기간 이를 운용하는 가운데 또다시 부정적 측면의 축적으로 체제전환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대성을 보여 주고 있다.
일찍이 플라톤은 그의 ‘국가론(The Republic)’에서 국가의 권력구조는 ‘귀족체제(Aristocracy)'에서 ’과두체제(Oligarchy)', '민주체제(Democracy)', '전제체제(Despotism)을 거쳐 다시 ‘귀족체제’로 순환하고 있으며 그 틈틈이 ‘군주체제(Monarchy)', '금권체제(Timocracy)', '중우체제(Mobocracy)', '독재체제(Tyranny)'가 역시 순환하면서 출현한다고 보았었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정부수립 전에는 많은 정치인들이 내각제를 선호했으나 이들이 이승만(李承晩) 박사의 외고집을 꺾지 못해 결국 건국 초기부터 대통령중심제로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도중에 1960년 4.19 혁명 이후 내각책임제 개헌이 이루어져 그 해 7.29 총선거에서 이긴 ‘민주당(民主黨)’이 내각제 정부를 출범시켰으나 이 정부가 그 다음 해 5.16 군사혁명으로 무너짐에 따라 내각책임제 정부는 단명으로 막을 내렸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우선 한 가지 사실만 가지고 보더라도 대통령중심제는 무언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음이 들어나고 있다. 그 것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예외 없는 불행한 퇴임 후가 웅변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그동안 도합 7명의 대통령이 재임했다. 이승만(1948~60), 윤보선(尹潽善: 1960~62), 박정희(朴正熙: 1963~79), 최규하(崔圭夏: 1979~80), 전두환(全斗煥: 1980~88), 노태우(盧泰愚: 1988~93), 김영삼(金泳三: 1993~98) 대통령이 그들이다.
이들의 말로(末路)는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불행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60년 4.19로 사임한 뒤 그 해 하와이로 망명했다가 그 곳에서 1964년 병사했다. 윤보선 대통령은 1961년 5.16 군사혁명을 당한 뒤 시위소찬(尸位素餐) 생활 끝에 1962년 사임했으며 그 뒤 박정희 정권에 대한 극한투쟁으로 일관하다가 1990년 병사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김재규(金載圭)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권총으로 암살당했다. 최규하 대통령은 군부의 강요에 의해 1980년8월16일 타의로 사임했다. 전두환․노태우 두 대통령은 퇴임 후 내란 및 수뢰 등의 혐의로 각기 무기징역과 17년 징역형을 살다가 형기(刑期) 감면으로 방면되었으며 김영삼 대통령은 IMF 관리를 초래한 실정(失政)과 이권을 농락한 아들, 그리고 측근 인물들의 부패 문제로 퇴임 후도 편안치 않은 형편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중심제는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대통령중심제는 유교문화 및 아직도 많은 국민의 의식구조 속에 남아 있는 왕조(王朝) 문화의 잔재와 결합하여 특유의 정치문화를 형성하는데 이바지해 왔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국민의식구조 속의 ‘나랏님’ 증후군(症候群)과 결합하여 대통령이 법 초월적 존재가 되어 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대통령들은 임기를 남긴 대법원장과 국회의장을 자의로 도중하차 시키는 월권(越權)을 항다반사(恒茶飯事)로 휘둘렀을 뿐 아니라 TV 뉴스의 보도방향과 내용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해 왔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키면서 검찰권을 남용해 왔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은 ‘임기’중 모든 책임 추궁으로부터 면제되어 있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무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 대통령직에 재임하는 데서 오는 많은 위험부담이 있다. 그 중 가장 위험한 일은 ‘인기’ 위주의 ‘한탕주의’ 정책의 남발이다. 한 때 중앙청으로 사용되었던 구 일본총독부 청사를 철거한 ‘역사 바로 세우기’나 금융․토지실명제 및 OECD 졸속 가입, 그리고 이인모 북송과 대북 쌀 지원 등이 그러한 범주의 사례들이다.
게다가 입으로는 ‘인사만사(人事萬事)’라고 하면서 인사를 사물화(私物化)하는 작태도 문제다. 이로 인하여 김영삼 정권 때는 5년간의 임기 중 6명의 국무총리, 6명의 통일부총리, 7명의 경제부총리, 그리고 무려 102명의 각료를 ‘양산(量産)’하는 기록을 세워 놓았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등산화 부대’니, ‘나사본’이니, ‘PK’니, ‘K2’니 해서 정부공직이 사물화 되고 ‘김현철(金賢哲)’ 사건이 보여 주는 것처럼 국정운영을 ‘사조직(私組織)’으로 하여금 좌지우지하게 함으로써 ‘공조직’이 형해화(形骸化)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로써 ‘인사’는 ‘망사(亡事)’가 되어 버렸다.
대통령중심제는 또한 대통령선거에서 오는 엄청난 부담이 있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북풍(北風)’, ‘총풍(銃風)’ 등 여러 ‘바람’을 겪어 왔지만 아직까지도 꺼지지 않고 불고 있는 ‘바람’이 있다. 소위 ‘세풍(稅風)’이 그 것이다. 이 ‘세풍’은 바로 막대한 대통령선거자금의 실체와 부정한 방법에 의한 이 자금 마련의 실태를 보여 주고 있다. 선거가 끝나면 후보자들은 하나 같이 선거법의 선거비용 한도액의 테두리 안에서 선거자금을 집행했다고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순진하게 이 같은 신고내용이 성실신고였다고 믿어 주지 않는다. 유권자들이 실제로 피부로 느끼는 선거자금의 규모에 비한다면 신고되는 사용금액은 ‘새 발의 피’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느끼고 있다. 신고액과 사용액간의 엄청난 차이는 그 것이 바로 불법이고 부정의 실체다.
대통령선거는 또한 지역감정 조장의 원흉이다. 지금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후 지역감정 타파를 위해 역설에 역설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선거가 있는 한 지역감정은 시간이 흘러 갈수록 악화되었으면 되었지 절대로 순화되지 않게 되어 있다. 김 대통령 자신이 지역감정에 뿌리를 둔 ‘한(恨)’ 풀이 정치가 아니었으면 결코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다. 이제는 경쟁상대인 다른 쪽 지역의 유권자들이 ‘한’ 풀이를 다짐하고 있다.
대통령선거는 영어로 “Winner Takes All”의 ‘독식(獨食)’ 게임이다. 이기면 천하(天下)를 얻고 지면 세상(世上)을 잃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우리 고장에서 뽑자”는 지역주의가 판을 치게 된다. 지역감정의 격화는 필연적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지연(地緣)에 근거한 인사를 강요하게 된다. 과거의 역대정권이 예외 없이 지연 위주의 인사를 관례화했거니와 비록 김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이 문제에 관하여 원론적 입장을 밝히지만 실제로는 현 정부도 지연 위주의 인사 관행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오늘날 우리의 국가사회가 대통령중심제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다기능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권력의 속성상 대통령중심제에서는 국정의 모든 구석구석을 대통령이 직접 챙기게 된다. 권력의 집중이 불가피해 집니다. 그러나 자연인으로서의 대통령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집단지도 방식이 필요하다. 주식회사 방식의 국정운영이 필요한 것이다. 내각책임제 정부가 바로 주식회사 식 정부다. 내각책임제 정부에서는 국회의 의석이 주식이고 정당들이 주주다. 내각책임제 정부는 주식회사의 주주에 해당하는 정당들이 주식에 해당하는 보유 의석에 비례하는 발언권과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있으면 단독으로, 없으면 과반수 의석을 형성하는 복수의 주주가 ‘연합’하여, 집행부를 구성하는 제도다.
이 같은 내각제 정부의 핵심적 특징은 두 가지다. 첫째로는, 내각책임제 정부의 수반으로 국정의 책임자인 수상은 주어진 임기 동안 완벽한 ‘면책특권’의 혜택을 향유하는 대통령중심제의 대통령과는 달리 ‘임기’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둘째로는, 내각책임제 정부의 수반인 수상은 법 초월적인 제왕적 지위를 누리는 대통령중심제의 대통령과는 달리 그가 수행하는 국사에 관하여 항상 국회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된다. 국사에 관하여 책임 져야 할 일에 대하여 내각책임제 정부의 수상은 임기에 구애됨이 없이 책임을 지게 되어 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불신임’ 결의를 하여 물러나라고 요구하면 임기와 상관없이 물러나야 한다. 이로써 정치가 국민의 머리 위에 군림하는 일은 지양되게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각책임제하에서는 정치가 불안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질이 떨어지는 국회의원들이, 그리고 그 같은 국회의원들로 구성되는 정당들이, 내각불신임권을 남용할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 내각책임제 정부를 가지고 있는 외국에서 그러한 예가 있기 때문이다. 이태리나 이스라엘에서 그러한 현상이 관찰되고 있고 과거 한 때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도 볼 수 있었던 현상이다. 내각불신임 공세의 남발로 정부 수명이 수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후계 내각이 성립될 수 없어서 무정부 상태가 생기기까지 했던 것이 사실이다. 바로 이 때문에 이번에 자민련이 준비한 내각책임제 개헌안은 두 가지의 안전판을 마련하고 있었다.
첫째로는, 하나의 내각이 성립되었을 경우 그로부터 1년 이내에는 국회가 내각, 즉 수상에 대한 불신임 표결을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물론 그 기간 중에라도 수상 이외의 개별 각료들에 대한 불신임 표결은 허용된다. 둘째로는, 이에 더하여 독일식 ‘건설적 내각불신임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국회에서 수상에 대한 불신임안이 가결되더라도 그 즉시 불신임된 내각이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후임 수상이 임명되고 국회가 이 임명에 동의하여 새 내각이 성립될 때까지 불신임된 내각이 계속 국정을 맡아 수행하는 것이다. 이 제도를 두는 이유는 이렇다. 대체로 경험치를 가지고 보면, 내각책임제하에서는 국회에서 단독으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정당이 잘 나오지 않게 되어 있다. 그래서 많은 경우 2개 이상의 정당들이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되어 있다.
지금 내각책임제 정부가 보편화되어 있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보면 대다수의 국가에서 이 같은 ‘연립정부’가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경우 자칫하면 오히려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정당중 소수당들이 그들이 빠지면 ‘연립정부’ 구성이 어려워지는 약점을 악용하여 무리한 요구를 과도하게 함으로써 ‘연립정부’ 구성을 실제로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하여 나가는 내각과 들어오는 내각 사이에 공백이 생기는 정치불안이 생겨나는 것이다.
‘건설적 내각불신임 제도’는 이 같은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이다. 들어오는 내각이 성립되지 않으면 나가게 되어 있는 내각이 나가지 않고 집권을 계속하게 되므로 국정의 공백이 없어진다. 들어오는 내각에 참여할 소수당들도 그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면 오히려 나가야 할 내각의 수명 연장을 도와주는 결과가 되므로 무리한 요구를 자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자민련이 준비하여 국민회의가 받아들인 내각책임제 개헌안은 새로 들어오는 내각에 최소한 1년의 국정운영 기간을 보장해 주고 거기에 더하여 소수당의 횡포로 인하여 국정공백이 발생할 소지를 없애 주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이 제도의 운영이 정치불안을 조장한다는 일부의 비판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정치불안으로 말한다면, 우리나라의 경우 그동안 대통령중심제 정부를 운영하는 동안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가 안정되었던 기간이 과연 언제 있었느냐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가지 정치문화적 원인이 겹친 결과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통령중심제는 국정이 여당에 의해 ‘배타적․독점적’으로 운영되는 가운데 야당은 ‘거부 일변도’의 정치문화에 집착하여 어느 한 때 정국이 안정된 시기가 없었던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대부분의 중요사안이 국회 안에서 항상 계속되는 정쟁에 휘말려 신중을 결한 졸속심의 끝에 통상 정부․여당 수뇌부의 ‘작전지시’에 따라 ‘날치기’ 등 변칙적 방식으로 통과되어 왔고 그 결과 정치불신과 정국불안이 나날이 심화되어 온 것이다.
외국에서의 경험에 의한다면 내각책임제하에 정국이 불안해 진다는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먼 것임을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예컨대, 독일의 경우를 보면, 물론 서독의 경우이지만, 1949년 독립 이래 역대 수상의 재임기간은 아데나워가 14년, 에어하르트가 3년, 키징거가 3년, 브란트가 5년, 슈미트가 8년, 그리고 콜이 15년을 재임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태리와 최근의 일본 등 몇 나라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내각책임제 국가들이 장수 내각과 정국 안정을 구가하는 것을 보고 있다. 어떤 이들은 내각책임제 정부가 성공 가능성이 적다는 주장을 한다. 이 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제3세계에서 도합 76개의 신생국가가 탄생했다. 이들 나라 가운데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한 33개국은 모두 실패하여 권위주의 형 독재국가가 되었다. 반면, 내각책임제를 채택한 43개국 중 29개국에서 민주주의 정부가 착근에 성공하고 있다.
물론, 미국은 예외지만, 오늘날 내각책임제 정부는 세계의 대세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내각책임제를 정부형태로 채택하고 있다. 싱가폴, 이스라엘, 이태리, 인도, 핀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네델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룩셈부르크, 벨기에, 스페인, 폴투갈, 오스트랄리아, 뉴질랜드. 일본, 영국, 카나다 등 비교적 안정되고 잘 나가는 나라들은 대부분 내각책임제 국가들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다. 즉, 대체로 대통령중심제 국가는 중․남 아메리카, 동남아시아, 중동지역과 아프리카에 퍼져 있다는 것이다.
이제 21세기에 진입하는 시점에서 우리가 계속 이들 정치적 후진지역 국가들과 정치행태를 공유해야 할 것인가의 여부는 심각한 자기성찰의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어떤 이들은 과거1960년에 시도했던 내각책임제 정부의 예를 들기도 한다. 이 것 또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왜냐 하면 그 때의 우리나라는 개인당 국민소득이 1백 달러이 채 못 되는 저개발 국가였다. 게다가, 그 때의 내각책임제 정부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내각제 정부 성립 이전의 이승만 정부를 상대로 모의되고 준비되었던 5.16 군사혁명에 의해 타도된 것이었다.
일부에서는 내각책임제 정부에서는 강력한 리더십을 기대할 수 없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다른 나라들의 예를 보면 맞는 얘기가 아니다 외국의 사례들은 내각책임제 정부들일수록 난국에 처하여 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의 경우 처칠 내각은 나치독일의 V2 폭격에도 굴하지 않고 2차대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했고, 애틀리 내각은 원자폭탄을 개발했으며, 이든 내각은 스웨즈 운하 전쟁을 수행했고, 여성인 대처 내각은 포클랜드 전쟁을 수행했다. 구서독의 경우에도 아데나워 내각은 전후복구와 함께 베를린 봉쇄를 이겨 냈고, 에어하르트 내각은 ‘라인 강의 기적’으로 알려진 경제재건을 이룩했으며, 브란트 내각은 ‘동방정책’을 수행했고, 콜 내각은 독일통일의 위업을 성취했다. 이스라엘은 불과 6백만의 인구로 도합 2억이 넘는 인구를 갖는 아랍 국가들의 포위 속에서 독립을 수호하고 있고 일본 또한 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서서 정치와 경제를 재건하여 오늘날에는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각책임제 정부가 이룩해 낸 업적들인 것이다.
특히, 내각책임제 정부로서는 통일에 대비할 수 없다는 일부의 비판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거꾸로,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서 우리는 내각책임제 정부를 가질 필요가 있다. 내각제 정부를 가지고 통일 위업을 이룩해 낸 독일의 경우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필요가 있지만, 통일을 생각할 때는 우리는 통일이 이루어진 후 통일된 국가에서 2천2백만 북한출신 동포들의 권익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통일이 원활하게 완성되려면 통일국가의 정부 안에서 이들 북한출신 동포들의 의사와 이해관계가 충분히 대변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중심제하에서는 기껏해야 한․두 명의 국무위원이 북한출신 동포들 가운데서 나오는 것이 고작일 수밖에 없다. 이들은 전문성에 따라 일을 맡게 된다. 이들은 정부 안에서 정치적으로 북한출신 동포들의 의사와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할 수 없다. 이 문제는 내각책임제 정부에서만 해결될 수 있다. 내각책임제 권력구조에서는 북한 동포들을 대변하는 독자적인 정치세력이 독자적인 정당을 묶고 이 정당이 ‘연립정부’의 파트너로 정부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부와 국회에서 북한 동포들의 권익을 최대한 대변해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은, 이 문제는 지금 당장 국내의 진보․혁신 세력에게도 적용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필자는 1997년 국민회의와 자민련 간에 야권 대통령후보 단일화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김대중 후보로의 단일화방안을 가지고 필자를 설득하려 찾아온 국민회의의 김근태(金槿泰) 의원에게 이렇게 얘기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진보․혁신세력이 그들의 목소리를 국가시책과 정부정책에 반영시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내각제 개헌에 찬동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도 하나의 독립된 정치세력으로 ‘연립정부’ 구성에 참가하여 다른 정당들과 ‘단체교섭’ 차원에서 그들의 정책을 반영시킬 수 있게 된다. 대통령중심제에서는 한․두 명이 개별적으로 국무위원이 되거나 소수 의원이 국회의석을 차지하더라도 구우일모(九牛一毛)의 처지가 되어 다수의 보수 세력 속에 용해되어 버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번에 야권후보 단일화 보다는 차라리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협력하여 대통령선거 이전에 내각제 개헌을 실현시키도록 추진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취지였다.
마지막으로, 많은 국민들은 내각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로 정치인들의 자질, 그리고 자질의 차원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정치인과 이권의 결탁에 의한 정경유착과 이로 인한 부패정치의 구조화를 걱정하고 있다. 그동안 끊임없이 언론에 의해 부각되어 온 정치인들의 부패행각에 대해서는 자괴(自愧)를 금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필자 자신,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정치현장에 들어 와서 정치를 직접 경험하는 과정에서 느껴온 좌절감과 환멸감 때문에 단임으로 국회의원 생활을 청산할 생각을 굳히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아직도 대통령중심제하에서 절대 권력과의 연계 속에서 일어나는 부정부패의 규모와 정치인들이 연루되는 부정부패의 규모 간에 존재하는 엄청난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경구(警句)가 있는 것을 우리는 안다. 바꾸어 말하면 “절대 부패는 절대 권력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대통령선거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과 우리 국민정서의 권력지향 성향이 맞물려서 엄청난 권력형 비리를 양산해 왔다. 전직 대통령들의 천문학적 액수의 ‘비자금’ 조성 및 관리 실태, 전직 대통령의 영식인 ‘김현철’ 사건, 대통령 측근가신들의 방만하기 이를 데 없는 부패행각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이 연루된 부분은 대개의 경우 ‘떡고물’에 비유되는 것들이었다. 실제로 외국의 경우, 최근 일본과 이태리에서 논란이 일고 있지만, 내각책임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다수의 국가들이 정경유착에 의한 부패구조와는 상관없는 건전한 정치구조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작금 정가(政街)의 큰 숙제인 정치개혁의 핵심 이슈가 바로 이 정경유착에 의한 부패구조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공통된 화두(話頭)는 ‘고효율․저비용’의 선거운동이다. 선거비용을 억제함으로써 부패의 불씨를 지우자는 것이다. 이 역시 말은 근사하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정치개혁 논의는 모두 정곡(正鵠)을 빗나가는 분식(粉飾)의 화술에 불과하다. 왜냐 하면, 그렇게 해가지고는 거론되고 있는 선거비용 억제 효과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비용의 과도한 사용은 두 가지 원인에서 초래되는 결과다. 첫 번째 원인은 후보 개인에게 득표운동을 허용하기 때문에 후보들이 당선을 위하여 반칙과 불법을 무릅쓰면서 경쟁적으로 선거운동을 과열화시키는 데 있다. 두 번째의 원인은 정당들이 선거운동을 주도하기 때문에 자당(自黨)의 공천후보 가운데서 보다 많은 당선자를 내기 위하여 관계법령의 허점(虛點)을 이용하거나 아예 이를 무시․외면한 채 원천적으로 구조적인 부정선거운동을 조직적으로 감행하는 데 있다.
이 모든 문제는 후보 또는 후보를 공천한 정당들로 하여금 득표운동을 하게 허용하는 데서 초래되는 현상이다. 따라서 이 같은 부정선거운동을 막고 그렇게 함으로써 과다한 선거비용의 지출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은 딱 한 가지가 있다. 그 것은 선거에서 득표운동은 완전히 공영화하는 것이다. 후보는 ‘신언서판(身言書判)’만을 가지고 출마를 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그들에게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후보들의 인적 사항과 정책 공약에 관한 ‘자료’만을 가지고 지지후보를 결정해야 한다. 여기에 첨가할 수 있는 것은 후보 상호간에 공평성과 공정성이 보장되는 가운데 실시되는 TV․라디오를 통한 자기 소개 연설과 신문이나 지정된 공개간행물을 통한 자기 소개의 기회를 갖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후보나 후보를 공천한 정당들이 유권자와 직접 물리적으로 접촉하는 기회를 철저하게 차단해야 한다. 후보와 유권자들을 연결시키는 고리 역할은 선거관리위원회가 철저하게 담당해야 한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후보들에게 공평성과 공정성에 입각하여 후보들을 유권자들에게 소개해 주고 나머지 판단은 유권자들이 독자적으로 하도록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후보나 후보를 공천한 정당이 유권자들을 직접 물리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바늘구멍만 한 기회만 허용해도 부정선거운동은 마치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되는 식으로 것 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 자행될 것이다.
문제는 어느 정당도, 특히 여당의 경우, 이 같은 ‘완전 선거공영제’를 고려하지 않는 데 있다. 그 이유 또한 자명하다. 그 이유는 어느 정당도, 특히 여당의 경우, 그 같은 완전 선거공영제를 가지고는 선거에서 이긴다는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들은 입으로는 공명선거를 말하고 공명선거를 명분으로 하여 자주 선거관련법령을 손질하지만 그 때마다 어떻게든지 상대방을 속이거나, 아니면 상호 묵시적인 양해 아래, 실제 선거 때는 적당한 선에서 불법․비법․탈법적 선거운동을 하는데 이용될 수 있는 허점을 묻어 두는 관행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거의 언제든지, 이 같은 부정선거운동은 ‘적당한 선’에 머물지 않고 ‘적당한 선’을 넘는 과열 현상을 보이기 마련이다. 이 같은 상황 하에서는 공명선거와 이를 위한 정치개혁은 한낱 구두선(口頭禪)이 될 수밖에 없다. 정경유착의 부패구조는 그 뿌리를 여기에 두고 있다.
[下略]
[오는 12월에 있을 제17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보여 주는 저질(低質) 대통령의 ‘막가파’ 식 국정 운영 행태로 인한 전반적 국정파탄 양상과 소위 ‘네거티브’를 주 무기로 하는 ‘대중인기 영합주의’(Populism)가 판치는 대통령선거전의 파행상(跛行相)은 당면한 정치제도 개선 과제로 ‘내각책임제’(Cabinet Responsible System)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검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제15대 국회의원 시절 발표했던 내각책임제 개헌에 관한 글 가운데서 발췌한 내용을 다음에 수록한다. 많은 분들이 일독(一讀)한 뒤 관심을 표명해 주기 바란다. - 李東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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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略]
3. 왜 내각제라야 하는가.
그동안 오랜 기간 권위주의시대를 살아오는 동안 우리 국민에게는 국가의 권력체제에 관하여 심하게 왜곡된 편견이 생겼다. 그 결과, 내각책임제에 대해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특히 식자층에서 매우 감정적인 편견이 표출되는 것을 보고 있다. 사실은 국가경영에 있어서 대통령책임제가 좋으냐, 내각책임제가 좋으냐 하는 것은 상대적 차원의 문제에 불과하지, 절대선(絶對善)의 차원에서 시비할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이 두 권력체제는 한 체제를 일정기간 운용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부정적 측면이 축적되어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다른 체제로 바꾸어서 또 일정기간 이를 운용하는 가운데 또다시 부정적 측면의 축적으로 체제전환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대성을 보여 주고 있다.
일찍이 플라톤은 그의 ‘국가론(The Republic)’에서 국가의 권력구조는 ‘귀족체제(Aristocracy)'에서 ’과두체제(Oligarchy)', '민주체제(Democracy)', '전제체제(Despotism)을 거쳐 다시 ‘귀족체제’로 순환하고 있으며 그 틈틈이 ‘군주체제(Monarchy)', '금권체제(Timocracy)', '중우체제(Mobocracy)', '독재체제(Tyranny)'가 역시 순환하면서 출현한다고 보았었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정부수립 전에는 많은 정치인들이 내각제를 선호했으나 이들이 이승만(李承晩) 박사의 외고집을 꺾지 못해 결국 건국 초기부터 대통령중심제로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도중에 1960년 4.19 혁명 이후 내각책임제 개헌이 이루어져 그 해 7.29 총선거에서 이긴 ‘민주당(民主黨)’이 내각제 정부를 출범시켰으나 이 정부가 그 다음 해 5.16 군사혁명으로 무너짐에 따라 내각책임제 정부는 단명으로 막을 내렸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우선 한 가지 사실만 가지고 보더라도 대통령중심제는 무언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음이 들어나고 있다. 그 것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예외 없는 불행한 퇴임 후가 웅변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그동안 도합 7명의 대통령이 재임했다. 이승만(1948~60), 윤보선(尹潽善: 1960~62), 박정희(朴正熙: 1963~79), 최규하(崔圭夏: 1979~80), 전두환(全斗煥: 1980~88), 노태우(盧泰愚: 1988~93), 김영삼(金泳三: 1993~98) 대통령이 그들이다.
이들의 말로(末路)는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불행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60년 4.19로 사임한 뒤 그 해 하와이로 망명했다가 그 곳에서 1964년 병사했다. 윤보선 대통령은 1961년 5.16 군사혁명을 당한 뒤 시위소찬(尸位素餐) 생활 끝에 1962년 사임했으며 그 뒤 박정희 정권에 대한 극한투쟁으로 일관하다가 1990년 병사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김재규(金載圭)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권총으로 암살당했다. 최규하 대통령은 군부의 강요에 의해 1980년8월16일 타의로 사임했다. 전두환․노태우 두 대통령은 퇴임 후 내란 및 수뢰 등의 혐의로 각기 무기징역과 17년 징역형을 살다가 형기(刑期) 감면으로 방면되었으며 김영삼 대통령은 IMF 관리를 초래한 실정(失政)과 이권을 농락한 아들, 그리고 측근 인물들의 부패 문제로 퇴임 후도 편안치 않은 형편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중심제는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대통령중심제는 유교문화 및 아직도 많은 국민의 의식구조 속에 남아 있는 왕조(王朝) 문화의 잔재와 결합하여 특유의 정치문화를 형성하는데 이바지해 왔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국민의식구조 속의 ‘나랏님’ 증후군(症候群)과 결합하여 대통령이 법 초월적 존재가 되어 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대통령들은 임기를 남긴 대법원장과 국회의장을 자의로 도중하차 시키는 월권(越權)을 항다반사(恒茶飯事)로 휘둘렀을 뿐 아니라 TV 뉴스의 보도방향과 내용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해 왔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키면서 검찰권을 남용해 왔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은 ‘임기’중 모든 책임 추궁으로부터 면제되어 있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무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 대통령직에 재임하는 데서 오는 많은 위험부담이 있다. 그 중 가장 위험한 일은 ‘인기’ 위주의 ‘한탕주의’ 정책의 남발이다. 한 때 중앙청으로 사용되었던 구 일본총독부 청사를 철거한 ‘역사 바로 세우기’나 금융․토지실명제 및 OECD 졸속 가입, 그리고 이인모 북송과 대북 쌀 지원 등이 그러한 범주의 사례들이다.
게다가 입으로는 ‘인사만사(人事萬事)’라고 하면서 인사를 사물화(私物化)하는 작태도 문제다. 이로 인하여 김영삼 정권 때는 5년간의 임기 중 6명의 국무총리, 6명의 통일부총리, 7명의 경제부총리, 그리고 무려 102명의 각료를 ‘양산(量産)’하는 기록을 세워 놓았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등산화 부대’니, ‘나사본’이니, ‘PK’니, ‘K2’니 해서 정부공직이 사물화 되고 ‘김현철(金賢哲)’ 사건이 보여 주는 것처럼 국정운영을 ‘사조직(私組織)’으로 하여금 좌지우지하게 함으로써 ‘공조직’이 형해화(形骸化)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로써 ‘인사’는 ‘망사(亡事)’가 되어 버렸다.
대통령중심제는 또한 대통령선거에서 오는 엄청난 부담이 있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북풍(北風)’, ‘총풍(銃風)’ 등 여러 ‘바람’을 겪어 왔지만 아직까지도 꺼지지 않고 불고 있는 ‘바람’이 있다. 소위 ‘세풍(稅風)’이 그 것이다. 이 ‘세풍’은 바로 막대한 대통령선거자금의 실체와 부정한 방법에 의한 이 자금 마련의 실태를 보여 주고 있다. 선거가 끝나면 후보자들은 하나 같이 선거법의 선거비용 한도액의 테두리 안에서 선거자금을 집행했다고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순진하게 이 같은 신고내용이 성실신고였다고 믿어 주지 않는다. 유권자들이 실제로 피부로 느끼는 선거자금의 규모에 비한다면 신고되는 사용금액은 ‘새 발의 피’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느끼고 있다. 신고액과 사용액간의 엄청난 차이는 그 것이 바로 불법이고 부정의 실체다.
대통령선거는 또한 지역감정 조장의 원흉이다. 지금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후 지역감정 타파를 위해 역설에 역설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선거가 있는 한 지역감정은 시간이 흘러 갈수록 악화되었으면 되었지 절대로 순화되지 않게 되어 있다. 김 대통령 자신이 지역감정에 뿌리를 둔 ‘한(恨)’ 풀이 정치가 아니었으면 결코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다. 이제는 경쟁상대인 다른 쪽 지역의 유권자들이 ‘한’ 풀이를 다짐하고 있다.
대통령선거는 영어로 “Winner Takes All”의 ‘독식(獨食)’ 게임이다. 이기면 천하(天下)를 얻고 지면 세상(世上)을 잃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우리 고장에서 뽑자”는 지역주의가 판을 치게 된다. 지역감정의 격화는 필연적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지연(地緣)에 근거한 인사를 강요하게 된다. 과거의 역대정권이 예외 없이 지연 위주의 인사를 관례화했거니와 비록 김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이 문제에 관하여 원론적 입장을 밝히지만 실제로는 현 정부도 지연 위주의 인사 관행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오늘날 우리의 국가사회가 대통령중심제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다기능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권력의 속성상 대통령중심제에서는 국정의 모든 구석구석을 대통령이 직접 챙기게 된다. 권력의 집중이 불가피해 집니다. 그러나 자연인으로서의 대통령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집단지도 방식이 필요하다. 주식회사 방식의 국정운영이 필요한 것이다. 내각책임제 정부가 바로 주식회사 식 정부다. 내각책임제 정부에서는 국회의 의석이 주식이고 정당들이 주주다. 내각책임제 정부는 주식회사의 주주에 해당하는 정당들이 주식에 해당하는 보유 의석에 비례하는 발언권과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있으면 단독으로, 없으면 과반수 의석을 형성하는 복수의 주주가 ‘연합’하여, 집행부를 구성하는 제도다.
이 같은 내각제 정부의 핵심적 특징은 두 가지다. 첫째로는, 내각책임제 정부의 수반으로 국정의 책임자인 수상은 주어진 임기 동안 완벽한 ‘면책특권’의 혜택을 향유하는 대통령중심제의 대통령과는 달리 ‘임기’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둘째로는, 내각책임제 정부의 수반인 수상은 법 초월적인 제왕적 지위를 누리는 대통령중심제의 대통령과는 달리 그가 수행하는 국사에 관하여 항상 국회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된다. 국사에 관하여 책임 져야 할 일에 대하여 내각책임제 정부의 수상은 임기에 구애됨이 없이 책임을 지게 되어 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불신임’ 결의를 하여 물러나라고 요구하면 임기와 상관없이 물러나야 한다. 이로써 정치가 국민의 머리 위에 군림하는 일은 지양되게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각책임제하에서는 정치가 불안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질이 떨어지는 국회의원들이, 그리고 그 같은 국회의원들로 구성되는 정당들이, 내각불신임권을 남용할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 내각책임제 정부를 가지고 있는 외국에서 그러한 예가 있기 때문이다. 이태리나 이스라엘에서 그러한 현상이 관찰되고 있고 과거 한 때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도 볼 수 있었던 현상이다. 내각불신임 공세의 남발로 정부 수명이 수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후계 내각이 성립될 수 없어서 무정부 상태가 생기기까지 했던 것이 사실이다. 바로 이 때문에 이번에 자민련이 준비한 내각책임제 개헌안은 두 가지의 안전판을 마련하고 있었다.
첫째로는, 하나의 내각이 성립되었을 경우 그로부터 1년 이내에는 국회가 내각, 즉 수상에 대한 불신임 표결을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물론 그 기간 중에라도 수상 이외의 개별 각료들에 대한 불신임 표결은 허용된다. 둘째로는, 이에 더하여 독일식 ‘건설적 내각불신임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국회에서 수상에 대한 불신임안이 가결되더라도 그 즉시 불신임된 내각이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후임 수상이 임명되고 국회가 이 임명에 동의하여 새 내각이 성립될 때까지 불신임된 내각이 계속 국정을 맡아 수행하는 것이다. 이 제도를 두는 이유는 이렇다. 대체로 경험치를 가지고 보면, 내각책임제하에서는 국회에서 단독으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정당이 잘 나오지 않게 되어 있다. 그래서 많은 경우 2개 이상의 정당들이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되어 있다.
지금 내각책임제 정부가 보편화되어 있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보면 대다수의 국가에서 이 같은 ‘연립정부’가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경우 자칫하면 오히려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정당중 소수당들이 그들이 빠지면 ‘연립정부’ 구성이 어려워지는 약점을 악용하여 무리한 요구를 과도하게 함으로써 ‘연립정부’ 구성을 실제로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하여 나가는 내각과 들어오는 내각 사이에 공백이 생기는 정치불안이 생겨나는 것이다.
‘건설적 내각불신임 제도’는 이 같은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이다. 들어오는 내각이 성립되지 않으면 나가게 되어 있는 내각이 나가지 않고 집권을 계속하게 되므로 국정의 공백이 없어진다. 들어오는 내각에 참여할 소수당들도 그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면 오히려 나가야 할 내각의 수명 연장을 도와주는 결과가 되므로 무리한 요구를 자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자민련이 준비하여 국민회의가 받아들인 내각책임제 개헌안은 새로 들어오는 내각에 최소한 1년의 국정운영 기간을 보장해 주고 거기에 더하여 소수당의 횡포로 인하여 국정공백이 발생할 소지를 없애 주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이 제도의 운영이 정치불안을 조장한다는 일부의 비판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정치불안으로 말한다면, 우리나라의 경우 그동안 대통령중심제 정부를 운영하는 동안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가 안정되었던 기간이 과연 언제 있었느냐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가지 정치문화적 원인이 겹친 결과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통령중심제는 국정이 여당에 의해 ‘배타적․독점적’으로 운영되는 가운데 야당은 ‘거부 일변도’의 정치문화에 집착하여 어느 한 때 정국이 안정된 시기가 없었던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대부분의 중요사안이 국회 안에서 항상 계속되는 정쟁에 휘말려 신중을 결한 졸속심의 끝에 통상 정부․여당 수뇌부의 ‘작전지시’에 따라 ‘날치기’ 등 변칙적 방식으로 통과되어 왔고 그 결과 정치불신과 정국불안이 나날이 심화되어 온 것이다.
외국에서의 경험에 의한다면 내각책임제하에 정국이 불안해 진다는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먼 것임을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예컨대, 독일의 경우를 보면, 물론 서독의 경우이지만, 1949년 독립 이래 역대 수상의 재임기간은 아데나워가 14년, 에어하르트가 3년, 키징거가 3년, 브란트가 5년, 슈미트가 8년, 그리고 콜이 15년을 재임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태리와 최근의 일본 등 몇 나라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내각책임제 국가들이 장수 내각과 정국 안정을 구가하는 것을 보고 있다. 어떤 이들은 내각책임제 정부가 성공 가능성이 적다는 주장을 한다. 이 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제3세계에서 도합 76개의 신생국가가 탄생했다. 이들 나라 가운데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한 33개국은 모두 실패하여 권위주의 형 독재국가가 되었다. 반면, 내각책임제를 채택한 43개국 중 29개국에서 민주주의 정부가 착근에 성공하고 있다.
물론, 미국은 예외지만, 오늘날 내각책임제 정부는 세계의 대세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내각책임제를 정부형태로 채택하고 있다. 싱가폴, 이스라엘, 이태리, 인도, 핀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네델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룩셈부르크, 벨기에, 스페인, 폴투갈, 오스트랄리아, 뉴질랜드. 일본, 영국, 카나다 등 비교적 안정되고 잘 나가는 나라들은 대부분 내각책임제 국가들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다. 즉, 대체로 대통령중심제 국가는 중․남 아메리카, 동남아시아, 중동지역과 아프리카에 퍼져 있다는 것이다.
이제 21세기에 진입하는 시점에서 우리가 계속 이들 정치적 후진지역 국가들과 정치행태를 공유해야 할 것인가의 여부는 심각한 자기성찰의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어떤 이들은 과거1960년에 시도했던 내각책임제 정부의 예를 들기도 한다. 이 것 또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왜냐 하면 그 때의 우리나라는 개인당 국민소득이 1백 달러이 채 못 되는 저개발 국가였다. 게다가, 그 때의 내각책임제 정부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내각제 정부 성립 이전의 이승만 정부를 상대로 모의되고 준비되었던 5.16 군사혁명에 의해 타도된 것이었다.
일부에서는 내각책임제 정부에서는 강력한 리더십을 기대할 수 없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다른 나라들의 예를 보면 맞는 얘기가 아니다 외국의 사례들은 내각책임제 정부들일수록 난국에 처하여 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의 경우 처칠 내각은 나치독일의 V2 폭격에도 굴하지 않고 2차대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했고, 애틀리 내각은 원자폭탄을 개발했으며, 이든 내각은 스웨즈 운하 전쟁을 수행했고, 여성인 대처 내각은 포클랜드 전쟁을 수행했다. 구서독의 경우에도 아데나워 내각은 전후복구와 함께 베를린 봉쇄를 이겨 냈고, 에어하르트 내각은 ‘라인 강의 기적’으로 알려진 경제재건을 이룩했으며, 브란트 내각은 ‘동방정책’을 수행했고, 콜 내각은 독일통일의 위업을 성취했다. 이스라엘은 불과 6백만의 인구로 도합 2억이 넘는 인구를 갖는 아랍 국가들의 포위 속에서 독립을 수호하고 있고 일본 또한 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서서 정치와 경제를 재건하여 오늘날에는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각책임제 정부가 이룩해 낸 업적들인 것이다.
특히, 내각책임제 정부로서는 통일에 대비할 수 없다는 일부의 비판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거꾸로,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서 우리는 내각책임제 정부를 가질 필요가 있다. 내각제 정부를 가지고 통일 위업을 이룩해 낸 독일의 경우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필요가 있지만, 통일을 생각할 때는 우리는 통일이 이루어진 후 통일된 국가에서 2천2백만 북한출신 동포들의 권익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통일이 원활하게 완성되려면 통일국가의 정부 안에서 이들 북한출신 동포들의 의사와 이해관계가 충분히 대변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중심제하에서는 기껏해야 한․두 명의 국무위원이 북한출신 동포들 가운데서 나오는 것이 고작일 수밖에 없다. 이들은 전문성에 따라 일을 맡게 된다. 이들은 정부 안에서 정치적으로 북한출신 동포들의 의사와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할 수 없다. 이 문제는 내각책임제 정부에서만 해결될 수 있다. 내각책임제 권력구조에서는 북한 동포들을 대변하는 독자적인 정치세력이 독자적인 정당을 묶고 이 정당이 ‘연립정부’의 파트너로 정부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부와 국회에서 북한 동포들의 권익을 최대한 대변해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은, 이 문제는 지금 당장 국내의 진보․혁신 세력에게도 적용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필자는 1997년 국민회의와 자민련 간에 야권 대통령후보 단일화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김대중 후보로의 단일화방안을 가지고 필자를 설득하려 찾아온 국민회의의 김근태(金槿泰) 의원에게 이렇게 얘기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진보․혁신세력이 그들의 목소리를 국가시책과 정부정책에 반영시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내각제 개헌에 찬동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도 하나의 독립된 정치세력으로 ‘연립정부’ 구성에 참가하여 다른 정당들과 ‘단체교섭’ 차원에서 그들의 정책을 반영시킬 수 있게 된다. 대통령중심제에서는 한․두 명이 개별적으로 국무위원이 되거나 소수 의원이 국회의석을 차지하더라도 구우일모(九牛一毛)의 처지가 되어 다수의 보수 세력 속에 용해되어 버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번에 야권후보 단일화 보다는 차라리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협력하여 대통령선거 이전에 내각제 개헌을 실현시키도록 추진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취지였다.
마지막으로, 많은 국민들은 내각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로 정치인들의 자질, 그리고 자질의 차원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정치인과 이권의 결탁에 의한 정경유착과 이로 인한 부패정치의 구조화를 걱정하고 있다. 그동안 끊임없이 언론에 의해 부각되어 온 정치인들의 부패행각에 대해서는 자괴(自愧)를 금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필자 자신,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정치현장에 들어 와서 정치를 직접 경험하는 과정에서 느껴온 좌절감과 환멸감 때문에 단임으로 국회의원 생활을 청산할 생각을 굳히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아직도 대통령중심제하에서 절대 권력과의 연계 속에서 일어나는 부정부패의 규모와 정치인들이 연루되는 부정부패의 규모 간에 존재하는 엄청난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경구(警句)가 있는 것을 우리는 안다. 바꾸어 말하면 “절대 부패는 절대 권력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대통령선거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과 우리 국민정서의 권력지향 성향이 맞물려서 엄청난 권력형 비리를 양산해 왔다. 전직 대통령들의 천문학적 액수의 ‘비자금’ 조성 및 관리 실태, 전직 대통령의 영식인 ‘김현철’ 사건, 대통령 측근가신들의 방만하기 이를 데 없는 부패행각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이 연루된 부분은 대개의 경우 ‘떡고물’에 비유되는 것들이었다. 실제로 외국의 경우, 최근 일본과 이태리에서 논란이 일고 있지만, 내각책임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다수의 국가들이 정경유착에 의한 부패구조와는 상관없는 건전한 정치구조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작금 정가(政街)의 큰 숙제인 정치개혁의 핵심 이슈가 바로 이 정경유착에 의한 부패구조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공통된 화두(話頭)는 ‘고효율․저비용’의 선거운동이다. 선거비용을 억제함으로써 부패의 불씨를 지우자는 것이다. 이 역시 말은 근사하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정치개혁 논의는 모두 정곡(正鵠)을 빗나가는 분식(粉飾)의 화술에 불과하다. 왜냐 하면, 그렇게 해가지고는 거론되고 있는 선거비용 억제 효과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비용의 과도한 사용은 두 가지 원인에서 초래되는 결과다. 첫 번째 원인은 후보 개인에게 득표운동을 허용하기 때문에 후보들이 당선을 위하여 반칙과 불법을 무릅쓰면서 경쟁적으로 선거운동을 과열화시키는 데 있다. 두 번째의 원인은 정당들이 선거운동을 주도하기 때문에 자당(自黨)의 공천후보 가운데서 보다 많은 당선자를 내기 위하여 관계법령의 허점(虛點)을 이용하거나 아예 이를 무시․외면한 채 원천적으로 구조적인 부정선거운동을 조직적으로 감행하는 데 있다.
이 모든 문제는 후보 또는 후보를 공천한 정당들로 하여금 득표운동을 하게 허용하는 데서 초래되는 현상이다. 따라서 이 같은 부정선거운동을 막고 그렇게 함으로써 과다한 선거비용의 지출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은 딱 한 가지가 있다. 그 것은 선거에서 득표운동은 완전히 공영화하는 것이다. 후보는 ‘신언서판(身言書判)’만을 가지고 출마를 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그들에게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후보들의 인적 사항과 정책 공약에 관한 ‘자료’만을 가지고 지지후보를 결정해야 한다. 여기에 첨가할 수 있는 것은 후보 상호간에 공평성과 공정성이 보장되는 가운데 실시되는 TV․라디오를 통한 자기 소개 연설과 신문이나 지정된 공개간행물을 통한 자기 소개의 기회를 갖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후보나 후보를 공천한 정당들이 유권자와 직접 물리적으로 접촉하는 기회를 철저하게 차단해야 한다. 후보와 유권자들을 연결시키는 고리 역할은 선거관리위원회가 철저하게 담당해야 한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후보들에게 공평성과 공정성에 입각하여 후보들을 유권자들에게 소개해 주고 나머지 판단은 유권자들이 독자적으로 하도록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후보나 후보를 공천한 정당이 유권자들을 직접 물리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바늘구멍만 한 기회만 허용해도 부정선거운동은 마치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되는 식으로 것 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 자행될 것이다.
문제는 어느 정당도, 특히 여당의 경우, 이 같은 ‘완전 선거공영제’를 고려하지 않는 데 있다. 그 이유 또한 자명하다. 그 이유는 어느 정당도, 특히 여당의 경우, 그 같은 완전 선거공영제를 가지고는 선거에서 이긴다는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들은 입으로는 공명선거를 말하고 공명선거를 명분으로 하여 자주 선거관련법령을 손질하지만 그 때마다 어떻게든지 상대방을 속이거나, 아니면 상호 묵시적인 양해 아래, 실제 선거 때는 적당한 선에서 불법․비법․탈법적 선거운동을 하는데 이용될 수 있는 허점을 묻어 두는 관행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거의 언제든지, 이 같은 부정선거운동은 ‘적당한 선’에 머물지 않고 ‘적당한 선’을 넘는 과열 현상을 보이기 마련이다. 이 같은 상황 하에서는 공명선거와 이를 위한 정치개혁은 한낱 구두선(口頭禪)이 될 수밖에 없다. 정경유착의 부패구조는 그 뿌리를 여기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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