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姓 아라이는 아라가야에서 나온 겁니다"

아라가야는 咸安에 있었다. 나는 함안 趙氏이니 고향사람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며칠 전 한국 남자와 일본 여성의 결혼식 피로연에 갔다가 일본의 대기업 사장 출신 70代 인사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그의 명함을 보니 성이 荒井이었다. 그가 말을 꺼냈다.

'저의 姓은 아라이라고 합니다. 阿羅가야에서 나온 말입니다. 저의 먼 조상이 아라가야가 망한 뒤 일본으로 건너와서 관동지방(동경 부근)에 정착했다고 합니다. 저는 경상남도 출신인 셈입니다. 백제 사람들은 망한 뒤 일본의 중심지인 近畿지방(나라 근방)에 와서 정착하여 관료로 출세했습니다'

내가 말을 받았다.
'阿羅가야는 安羅가야라고도 표기하는데 지금의 咸安 지방에 있었습니다. 제가 咸安 趙氏입니다. 오늘 고향 사람을 만났습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아라가야는 경상남도 함안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나라로 전한다. 다른 기록에는 아야(阿耶)·안라(安羅) 등으로도 표기되고 있는데, 이는 우리말을 한자식으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차이다. 중국의 正史 三國志 魏志東夷傳에 변한(弁韓) 12국 중의 하나로 나오는 안야국(安耶國)이 그 모태가 된 것으로 생각된다.

아라가야는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한 前期가야연맹의 구성원으로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낙랑·倭 등과의 교류를 독자적으로 전개하기도 했다. 6세기 이후 가야사회의 중심지가 경상도 내륙인 고령지역(대가야)으로 옮겨가면서 후기 가야연맹이 성립되자 아라가야도 새로운 연맹의 일원으로 들어갔으나, 대가야가 쇠퇴함에 따라 백제와 신라의 갈등관계를 이용해 가야의 새로운 맹주국으로서 지위상승을 꾀하기도 했다. 결국 531년 백제의 침공을 받아 크게 타격을 받은 후로 서서히 소멸되어갔다. 함안지역의 말이산(末伊山)에 있는 가야시대 무덤들은 그들의 세력이 강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라이씨는 그러고 보니 한국인의 전형적 얼굴이었다. 5년 전 한국에 왔는데 호텔에서 종업원이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 오인하더라고 했다. 자신의 門中은 가야 후손이란 의식을 갖고 살고 있다고 했다.

가야와 일본 天皇家의 관계에 대해서 그는 '天皇家는 가야계입니다. 즉위식은 공개되지 않는데 완전히 가야식이라고 합니다'라고 했다. 그는 일본에서 왜 新羅를 '시라기'라고 읽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일본으로 건너온 백제 유민들이 조국을 정복한 신라에 대해서 낮춤말로써 '신라것들'이라고 부른 것이 시라기로 변했다고 했다. 일본인들은 百濟를 '구다라'라고 읽는다. '구다라'는 '큰 나라'가 변한 것이라고 한다.

아라이씨는 '가마쿠라 막부를 만든 源(미나모토)씨는 신라계입니다'라고 했다. 이렇게 솔직하게 한국과의 관계를 말하는 일본인들이 더러 있다. 다만 공식문서를 통해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 최근까지만 해도 많은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조상들이 신라, 가야, 백제, 고구려계통이란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도쿄대학의 에가미 나미오 교수가, 한반도를 거쳐온 기마민족이 일본을 정복하고 고대 국가를 건설했다는 주장을 한 뒤, 그리고 많은 발굴과 DNA 조사로 해서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됨으로써 고대사의 韓日교류에 대한 비교적 솔직한 논문과 저술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런 경향은 韓日 두 나라 사람들의 상호 이해를 돕고 친근감을 높일 것이다. 두 나라 관계는 연간 500만 명이 왕래하는 친선관계로 발전되었다. 古代에도 한반도와 일본의 교류는 상상 이상으로 활발했다. 이 흐름은 신라의 삼국통일과 일본 古代국가의 발전으로 라이벌 의식이 커지면서 쇠퇴한다.

요사이 한일 관계는 역동적인 고대사로의 회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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