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換위기 10년의 반성(1)

姜慶植 인터뷰/"국내의사 말 안듣다가 IMF의사에 의해 수술당한 꼴"

'實錄' IMF사태의 내막(下) - 지상(紙上)청문회:강경식(姜慶植) 당시 경제부총리 직격인터뷰(1)

국내의사 말 안 듣다가 IMF 의사에 의해 수술 받고 있는 상황
● 『경제관료들만 희생양으로 만들고 끝난다면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 『김영삼 대통령의 청문회 출석은 필요 없다』
● 『불을 끄러 들어갔는데 불낸 사람으로 몰리고 있다』
●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생각하면서 해왔다』
● 『홍콩증시(證市) 폭락과 기아사태가 2대 원인』
● 『오늘의 위기는 국가 지도층이 초래한 엘리트 문제』
● 『IMF로 가고서도 해결이 안되는 문제를 안가고 해결하려고 했으니…』
● 『김선홍 회장 조사에는 우리가 반대』

<1998년 4월 월간조선>

'『사실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강경식(姜慶植) 전 경제 부총리와의 인터뷰는 1998년 3월8일 오후 그의 자택에서 5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별다른 장식이 없는 아파트 거실에서 기자들과 마주한 그는 약간 수척한 모습이었지만 예의 그 배짱과 소신은 변함이 없었다. 후회는 많지만 죄책감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 시장 원리에 의한 구조개혁을 자신의 신념으로 선택한 지 20년이 흘렀다고 하니 그런 그에게 『잘못 했다고 고백하라』고 다그치는 것은 그를 일종의 「양심수」로 만들 위험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작년 11월19일 부총리직에서 해임된 이후 3개월 이상 칩거를 해왔고 일체 언론과의 접촉도 피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지역구나 국회 이외에는 거의 안나가고 있습니다』

-어느 신문에 골프장에서 봉변을 당했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는데요.

『골프장 출입은 안하고 지냈는데 사실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기사를 실은 세계일보에서도 그런 사실이 없었다는 기사와 함께 사과보도까지 했어요. 언론보도에 따른 피해는 감당을 못할 지경입니?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고 해명기사가 나가봐야 이미 나간 기사만 알려지니까 말이지요』 (姜 전 부총리는 3개월 동안 칩거하면서 室內 운동기를 이용해 체력단련을 했으며 체중이 4kg 빠져 입각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무소속 국회의원이기도 한데 지역구에서는 반응이 어떻던가요.

『지역구 분들께는 구정(舊正) 전후부터 크고 작은 모임에 나가 그간의 경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이야기만을 듣고 있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런 대로 이해가 간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 동안의 언론 보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적은 있습니까?

『아직 소송을 제기한 적은 없고 해명 요청이나 정정 보도를 요청한 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문화일보에서 공직자 재산을 축소 신고했다고 보도한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 일단 정정 보도를 요청했습니다』

-최근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에 난 기사입니다만 지난 11월16일 서울에 들어온 캉드쉬 IMF총재에게 「당신 미쳤냐, 우리의 시스팀은 작동되고 있다(You're crazy. Our system works).」라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는데 사실입니까.

『여러 신문에서 보도를 해서 해명자료를 보내기도 했는데, 터무니없는 이야기입니다. 일부 신문에서는 그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이를 취합한 정확한 보도를 내줬어요』

-비슷한말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보도한 것 아닙니까.

『그런 뉘앙스의 말을 한 적이 없어요. 게다가 당신 회담은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되어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보도에는 캉드쉬가 자청해서 한국을 찾아온 것처럼 되어 있는데, 우리가 11월14일에 IMF로 가기로 결정(대통령 재가를 의미)하고, 캉드쉬를 비밀리에 초청한 것이었어요. 따라서 이날의 모임 자체가 IMF로 가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그 자리에서 이경식 총재가 3백억 달러라는 구체적인 지원희망 액수까지 제시하여 합의했던 것입니다. 오해가 될 만한 비슷한 말도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청문회에서 다 이야기한다』

- 캉드쉬는 한국 정부 당국자들이 경제위기와 함께 정체성의 위기(Identity Crisis) 상태에 있었다고 말했다는데요.

『다만 한 가지 16일에 IMF에 가는 것에 합의하고 캉드쉬가 떠나간 다음에 일본과 미국에도 이 같은 내용을 통보했는데 19일 새로 취임한 임창렬(林昌烈) 부총리가 IMF로 가지 않는다고 발표하니까 한국 정부가 뭐 하느냐, 한국정부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냐 이런 의구심을 잠시 가졌을 수는 있겠지요. 이처럼 사실과 다른 이야기들 투성이라 우선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지에 해명요청을 해놓았고, 캉드쉬에게도 「사실과 다른 보도로 오해를 받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놓았습니다.

-16일의 회담에 대한 녹음이나 기록은 없나요.

『없었습니다』

-감사원으로부터 조사를 받으셨는데요.

『제3의 장소에서 한번, 5시간 정도 받았습니다. 그 동안 언론에 보도된 것이나 알려진 것들을 하나씩 짚어서 해명해달라는 것이었고, 저에게도 해명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쓰고 있는 회고록은 잘 진척이 되고 있습니까.

『기록을 남기는 작업이라 시간 나는 대로 정리하고 있으나 출판 시기 자체는 경제 청문회 이후로 조금 시간을 두고 볼 생각입니다』(姜 전 부총리는 수년 전부터 노트북에 자신의 일기를 入力하고 있다. 인터뷰 중에도 자주 시간과 장소, 대화 내용 등을 확인하기 위해 노트북을 열고 자신의 기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경제 청문회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습니까.

『청문회를 하게 되면 있는 그대로 제가 겪었던 일들을 솔직하게 다 이야기 할 그런 자세입니다』

-청문을 받게 되는 입장에서 청문회에 바라는 것이 있습니까.

『어떻게 IMF까지 가게 되었는지 그 원인에 대한 혼선을 제대로 가리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제 희망입니다. 이 원인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는 당면한 경제난에 대한 해결책도 나올 수 없습니다. 누가 잘못해서 그런 결과를 낳게 되었는지 잘잘못도 가려내야겠지만 그보다는 우리 경제의 잘못된 점을 제대로 짚어 어떻게 하면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을지 국민들이 다 같이 알게 되고 또 깊이 생각하는 그런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지요』

-청문회를 하게 되면 필시 책임 문제가 나올 것이고 인신공격도 당하고 몰매도 맞게 되고 그럴 텐데요,

『공인(公人)은 재임중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문제와는 별도로 왜 경제가 이렇게 되었나, 정말 한두 사람의 잘못으로 경제가 이렇게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분명하게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김(金) 전(前) 대통령과 만난 이야기

-책임을 진다는 뜻에는 공직사퇴에서부터 민사 형사상의 책임 등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요.

『실정법 위반에 대한 책임은 진다 안 진다 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반면 정책에 대한 책임은 두 가지인데 정치적 책임과 행정적 책임이겠지요. 정치적 책임은 정당이 국민의 지지를 받아 국가와 경제를 운용하다가 잘 안되면 국민이 선거를 통해 정권을 바꾸는 것이 정치적인 책임의 해결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다음은 각료로서 판단을 잘못한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이냐 하는 행정적 문제인데 이 문제는 그 자리를 떠나는 것으로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저에게는 경제 부총리로서의 행정정적 책임과 公人으로서의 도의적 책임이 있겠지요. 이런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 대한 「무한 책임」을 통감하고 저 나름대로 自省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과는 11월19일 해임 이후 두 번 만나셨다고 들었습니다.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것은 1월12일로 기억합니다. 지금 확인해 드려요? (姜 전 부총리는 예의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 파일을 검색한 후 답했다) 네 맞습니다. 1월12일 저녁이네요. 청와대 상춘재에서 김용태(金瑢泰) 비서실장과 김영섭(金永燮) 경제수석, 그리고 저와 김인호(金仁浩) 전 경제수석 이렇게 대통령과 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6시 반쯤 시작해서 한 3시간 정도 식사하고 그건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언쟁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만.

『대통령과 언쟁이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저희들이 그만두고 난 다음 처음 저녁 자리를 같이한 그런 자리였어요. 반주도 곁들인 그런 자리니까 심각한 이야기를 나눌 자리는 아니었는데 자연스럽게 外換위기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지요. 언론에 몇 가지 엇갈리게 보도된 부분에 대해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그런 기회는 됐었어요. 김영삼 대통령은 옛날에 정치하면서 겪은 일화 등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이 자리에서 김인호 전 수석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금융개혁법안이 국회에 계류중일 때 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전화를 안 하셨느냐」고 따지듯 물었다는데 사실입니까? (이 질문에는 다른 배경이 있다. 금융개혁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고 외환위기는 날로 격화되던 11월 중순, 김인호 수석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김대중 대통령 후보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전화를 걸어달라고 건의했으나 김영삼 대통령은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런 일 없었어요. 다만 이 기억은 납니다. 왜 11월19일에 당초 하기로 한대로 IMF로 간다고 발표를 안 했습니까 하는 질문은 있었어요』

-대통령은 무어라고 답변했습니까.

『명확한 설명이 없었어요』

'『대통령 출석 필요 없다』

-이번 경제 청문회에 김영삼 대통령의 출석 문제가 쟁점이 될 것입니다. 89년 12월31일 5공(共) 청문회를 마무리하면서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이 출석하여 증언한 전례가 있기는 합니다만 김영삼 전 대통령의 출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뭐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닙니다만 개인적 생각으로는 경제관계 청문회에 대통령이 직접 출석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라고 모든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 않습니까. 특히 경제 분야에 대해서는 경제부총리인 제가 총체적인 책임을 진다는 자세로 일을 해왔기 때문에 김영삼 대통령을 출석시킬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이번 청문회에서 새로 밝힐 사실은 거의 없습니다. 사실관계는 아시다시피 감사원이 오랜 기간 특감을 해왔기 때문에 이번 청문회는 사실 청문회라기보다 정책 청문회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국민들의 소망은 경제에 대해 책임이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말을 듣고 싶다는 것인데요.

『이번 청문회의 성격상 경제에 책임을 진 사람들(관료들)을 대상으로 경제 정책의 타당성 여부를 가리는데 주안점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5공 청문회와는 달리 관계 전문가들도 청문회에 불러 의견을 듣는 이런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청문회가 아니라 세미나가 되어 버리는데요.

『그것이 미국식 의미의 진정한 「히어링(hearing:청문회)」이지요. 본래 청문회의 성격이 국회가 입법 활동에 참고를 하기 위해 전문가들을 불러 이야기를 듣는 것이거든요. 김대중 대통령께서도 대통령선거 운동 기간 중 여러 번 이런 형태의 청문회를 외국에서는 늘상 갖는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청문회 자체가 처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책에 어떤 잘잘못이 있었나를 찾아서 국정에 참고하기 위한 것이라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청문회의 방식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김대중 대통령이 조선일보(朝鮮日報) 창간 인터뷰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는 책임이 별로 없고 강경식 부총리를 포함한 경제관료들의 책임이 크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5년 동안 김영삼 대통령을 보좌한 7명의 경제부총리 등 보좌한 사람들을 통틀어 하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 아니겠어요』

-근대국가에서 대통령이 경제전문가일 필요는 없지만 기본적인 경제 개념들에 대한 이해는 있어야지요. 지난 3월 호 월간조선(月刊朝鮮)의 「IMF의 내막‥대통령은 없었다」는 추적기에서 지적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이 외환위기를 국가위기로 빨리 인식하지 못했고, 경제관료들에게 정책 추진을 위임했다 하더라도 이들이 힘에 부쳤을 때 대통령이 해야 할 정치적 지원은 했어야 하는데 그걸 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라고 봅니다. 대통령이 국가위기에 대해서 방관자적 입장을 취한 것이 사실 아닙니까.

『대통령은 경제뿐 아니라 國政 전반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책임의 성격은 주로 정치적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전문가로서의 책임을 대통령에게까지 묻는다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은 행정적 책임을 지고 있는 부총리가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姜) 전 부총리께서는 박정희(朴正熙),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도 다 보좌해왔는데요. 만일 두 사람이 그런 위기를 당했더라면 어떤 리더십을 보였으리라 생각합니까.

『글쎄요. 박정희 대통령은 회의 방식을 자주 택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회의보다는 소수의 관계 책임자나 전문가와 이야기를 하는 방식을 선호하였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어떠했습니까.

『김영삼 대통령은 경제팀에 위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미국의 예를 보면 레이건도 아이젠하워의 경우도 실무진에 위임하면서도 성공적인 리더십을 발휘한 예가 많습니다. 문제는, 맡겨놓고 뒤에서 밀어주느냐 아니냐, 혹은 챙기지도 않고 밀어주지도 않느냐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이 분야 학자들의 연구에 맡겨두고 대통령 이야기는 그 정도만 합시다』

'『천재(天災)는 아니다』

-지난 2월2일 한 상가(喪家)에서 「부임 때부터 한국은 국가 부도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징후에 어떤 대책을 취했습니까.

『취임한 첫날인 3월6일에 임명장을 받고 과천 청사에 기자마다 환율 문제가 거론되었어요. 당시 외환보유고가 2백90억 달러 수준으로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 문제가 되었습니다. 97년 1, 2월에는 보유 외환을 투입해가면서 환율을 8백50원 선에서 막고 있었는데 간부들의 의견은 대체로 「외환보유고도 한정이 있고 국제수지 적자도 계속되고 있으니 시장에 맡겨서 실세화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3백30억 달러선을 유지하던 외환보유고가 연초에 환율 상승을 막기 위해서 40억 달러 가까이 사용하여 남은 외환이 2백92억 달러로 떨어져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한 해에 2백37억 달러나 적자를 내고 외채가 연(年) 33%나 증가하는 속에서 환율이 이렇게 유지된다는 것은 분명 비정상이라고 생각한 우리는 바로 환율부터 현실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환율 상승을 억제하고자 했던 전임자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는 바는 아니지만, 외환보유고의 여력도 없다고 판단한 우리는 환율을 시장에 맡겨두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단기간에 환율은 달러 당 8백97원선까지 올라갔고, 그 이후 7월까지 8백90원을 약간 웃도는 수준에서 움직였습니다. 외환보유고도 7월에는 3백39억 달러에 이르러 IMF가 권고하는 3개월치 수입액에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기아 사태가 또 터져 외환보유고가 다시 줄어들지 않습니까. 당시 외환보유고를 더 늘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까.

『외환보유고를 5백억 달러 정도까지 늘려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대규모의 신규차입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지난 11월과 12월에 우리 모두가 겪어보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신뢰상실로 채권회수가 시작되면 50억 달러나 1백억 달러 정도 외환보유고를 더 확보했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금융은 결국 신뢰의 문제이고 외환보유고는 그 신뢰를 유지하는 하나의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고 봐야 합니다. 우리의 경우 외환보유고를 높게 유지하는 경우 내외금리 차에서 오는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평소에는 무한정 보유고를 늘려가기도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IMF 사태의 본질과 관련해 묻겠는데요. IMF 사태는 인재(人災)라고 봅니까. 아니면 천재(天災)라고 봅니까. 이 사태는 막을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까, 아니면 막을 수 없었습니까.

『저는 IMF 사태를 막을 수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막을 수 있었습니다. 막을 수 있었지만 그 방법이란 것이 우리의 구조적인 문제는 그냥 놓아둔 채 관료 몇 사람이 잘했더라면 가능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우리의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과거 10년 정도 지속된 문제이고 그래서 91년 월간조선에 「국산품 애용식의 논리로는 나라 망한다」는 기고도 했고요. 제가 정부에 들어가게 된 것도 그런 문제들을 바로 잡지 않으면 파국으로 간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비록 8개월 여의 짧은 재임기간이었지만 저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했습니다. 우리가 충분히 할 수 있었던 구조개혁 등을 제대로 못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결코 천재(天災)가 아닙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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