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10년의 반성(2)

姜慶植 외환위기 당시 경제부총리 인터뷰/"국내의사 말 안듣다가 IMF의사에 의해 수술받았다"(2)




'『치료 미루다가 대수술 받게 돼』

-한국 경제가 위기상황이었기 때문에 개혁을 추진했다는 논리인데요. 어떤 경제평론가는 강경식 경제팀의 기용에 대해, 구원 투수가 필요한 때에 선발 투수를 내세운 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정권 말기라 권력기반이 취약할 때 개혁 드라이브 정책을 편 것 자체가 판단 착오 아닙니까.

『위기의 원인이 개혁을 하지 않았던데 있었던 것 아닙니까. 당시 우리의 경제는 구조개혁 없이는 적당히 살아날 그런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병이 워낙 깊이 들어가 이젠 약이나 몇 첩 써서 회복될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결국 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 동안은 당장 입에 쓰니까 약도 안 먹겠다, 수술도 싫다 이러면서 미루다가 IMF라는 병원에 강제 입원해 대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된 것입니다』

-금융개혁법안의 국회통과 시도에서 보듯, 금융개혁에 중점을 둔 것으로 보였는데, 갑작스런 외환보유고의 감소에서 사태가 발단된 것이라고 본다면 우선적으로 외환관리에 더욱 힘을 써야 했던 것이 아닐까요.

『외환보유고를 늘리는 정공법은 적자를 줄이는 것입니다. 국제수지 적자를 줄이려면 수출은 늘리고 수입은 줄여야 합니다. 기업들의 경쟁력 개선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우선은 수입을 줄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출을 줄인 초 긴축예산을 편성하고 경기부양 요구에도 일체 응하지 않았던 겁니다. 돈을 외국에서 빌려오려면 신용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외국의 신용을 얻으려면 우리 금융제도를 고치고 기업의 투명성을 높여야지요. 그것이 작년에 추진한 개혁의 일관된 방향이기도 했습니다』

-너무 장기적이고 본질적인 개혁에 치중하다가 보니 동남아 외환위기의 북상(北上)에 긴급히 대응하는 시기(時機)를 놓친 것이 아닙니까.

『당시에 가능한 단기적이고 긴급한 처방 중에서 제대로 못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네요. (한보 사태 이후)국제 신인도가 떨어지는 데 대해 우리가 가만히 손놓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신인도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외채의 보증까지 해준다는 이야기를 하고 그런 것 아닙니까. 이제 돈은 빛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돈은 아프리카 초원의 야생마들처럼 군중심리로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런 군중심리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우리 경제의 기초는 튼튼하다고 강조한 것인데 그것을 꼬투리 삼아 제가 경제를 낙관하고 있었다고 몰아붙이더군요』

'『IMF로 갈 줄은 예상 않아』

-기아부도(7월15일) 직후인 7월23일 재경원 경제정책국 정책조정과에서 「바트화와 기아 : 상이한 문제인가」라는 극비보고서를 냅니다. 이미 이 보고서는 동남아 사태와 한국과의 연관성을 지적하면서 외환위기의 도래를 경고하고 시급한 대책 수립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왜 7월에 이 같은 보고서가 있었음에도 외환 대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입니까.

〈이 보고서는 한국의 외환위기 가능성을 경고한 최초의 재경원 내부 보고서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국제금융 시장에서의 우리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회복을 촉구한 같은 정책조정과의 보고서(8월25일), 금융문제 해결을 위한 조언(9월2일), 변양호(邊陽浩) 정책조정과장의 워싱턴과 뉴욕 출장보고서(9월15일)가 계속 이어진다〉

『세간에서 이야기하듯이 당시 그 보고서의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거나 무시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정책이 뭐냐 하는 겁니다. 당시 금융정책실에서는 금융정책 법안을 밤을 세워가며 만들고 있을 때입니다. 부실 채권문제도 7월 임시 국회에서 부실채권정리기금법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습니다. 금융거래의 투명성 제고(提高)와 감독 체제 정비를 위해 금융개혁법안도 준비중에 있었습니다. 그 보고서를 포함해 당시 일련의 보고서들은 기업 지배 구조의 선진화와 금융감독기능의 강화 등 구조개혁조치를 강력히 추진함으로써 외국금융기관들에게 우리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추진하고 있던 대책들을, 더욱 확신을 갖고 밀고 가도록 한 내용들이었지, 제가 무슨 이견이 있어 묵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7월23일의 그 보고서를 보시고 한국에 태국이나 인도네시아와 같은 상황이 올 가능성이 몇% 정도나 된다고 보셨습니까.

『예를 들어 홍콩 증시 폭락 사태가 있는 10월23일 이후 우리가 무너지는데는 한 달도 안 걸렸지만, 동남아의 통화위기 이후 우리는 7, 8, 9, 10 이렇게 넉 달 동안이나 견뎠습니다. 태국사태로 한국이 IMF까지 갈 정도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외환위기의 가능성을 경고한 한은(韓銀)과 안기부 보고서를 보고 받은 적이 있습니까.

『7월23일 재경원 보고서 이외에 제가 본 기억은 없습니다. 안기부 보고서 같은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김인호 당시 경제수석은 외환위기를 사전에 경고했다는 안기부 보고서를 본 적은 있다고 했다. 그의 증언. 『보고서는 있었는데, 외환관계의 일반 적인 현상을 나열한 다 아는 내용이어서 별다른 의미가 없었습니다. 당시 한국기업의 부채가 엄청난 수준이고 따라서 시급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식의 우리가 다 아는 내용의 보고서는 여러 연구원에서 올라 왔었습니다. 이제 와서 「그때 내가 뭐라 했노」라고 그러는 데 참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그렇습니다』)

'『기아 부도 바라지 않았으나 억지로 막을 수는 없었다』

-동남아 외환위기 사태의 소용돌이 속에서 불어닥친 기아 부도 사태는 한국을 외환위기로 몰고 가는 또 하나의 계기였습니다. 7.23보고서에서도 「기아문제로 본격화하고 있는 금융위기는 앞으로 통화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제, 기아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대응방안을 조속히 발표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하고 있습니다. 당시 처리가 지연된 기아문제에 대해 밖에서는 강경식 당시 부총리와 김선홍(金善弘)회장의 감정싸움처럼 비쳐진 측면이 있는데요.

『김선홍 회장하고 한 자리에 앉아 처음 이야기 한 것이 기아가 부도나기 직전인 6월23일이었습니다. 저의 사무실에 찾아 와서 종금사의 자금회수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것만 자제해준다면 좋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김(金)회장과의 오기싸움 운운은 말도 안 되는 오해였습니다. 추측입니다만 기아 쪽에서 그런 쪽으로 홍보 전략을 몰고 갔을 가능성은 있겠지요. 공개된 기아 내부 보고서를 보고 그들이 기업 홍보라기보다는 정치 홍보적인 전략을 갖고 있었던 것을 보고 놀랐어요. 당시 상황에서 정부는 제3자 였습니다. 기아 문제는 기본적으로 채권단과 기아 사이의 문제였습니다』

-대통령이 기아를 부도내지 말라고 지시한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일했던 8개월간 연속되는 대기업의 부도사태로 김영삼 대통령은 부도 노이로제에 걸려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부도나는 것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경제부총리나 경제수석 입장에서도 어떻게든 기업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살리고 싶어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기아를 부도 내지 않는 방향으로 정책을 유도했으면 됐을 것 아닙니까.

『그러나 가급적 부도가 나지 않도록 하고 싶다는 것과 정부가 개입해 부도내지 말도록 금융기관들에게 지시하고 종용한다는 것과는 천양지차가 있습니다. 완전히 별개의 일입니다. 금융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바로 정경유착의 근원이 됩니다. 대출금을 약속한 때에 갚지 못하고 있는 기업에게 더 돈을 빌려주라는 지시를 할 수는 없습니다. 한보사태 이후에 정부가 뭐라고 해도 금융기관이 결국 자기 책임이기 때문에 협조해주지 않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도유예협약을 만들게 된 겁니다.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통해 금융기관들이 자율적으로 부도를 내는 과정의 충격을 줄이고자 한 것이지요』

'『기아에 배신당해 법정관리 결심』

-그런 기아를 왜 법정관리로 끌고 가게 되었습니까.

『기아자동차에 대한 인수 합병을 통한 해결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을 살리기 위한 유일한 대안(代案)은 법정관리일 것입니다』

-기아 측과 벌이던 협의는 왜 마지막 단계에서 중단되었습니까. 임창렬(林昌烈) 통산장관이 나서서 상당한 막후 접촉이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법정관리로 가면 기업은 좋지만 채권단은 장기간 채권이 동결되어 매우 불리합니다. 그래서 기아와 채권단의 협약으로 풀어보고자 추석연휴(9월14∼17일) 중 집중적인 협의를 했었습니다. 「기아가 9월21일까지 구체적 조건이 명시된 대우의 아시아 자동차 인수 확약서 및 대우 현대의 기아 특수강 공동경영에 관한 약정서, 부도유예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86개 금융 채권단의 채권상환기한 연장 동의서를 받아온다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채권단 역시 채권상환기한 연장 등 정상화를 위한 지원방안을 제시한다」는 데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기아는 9월22일 정부나 채권은행단과 협의나 사전통보도 없이 전격적으로 기아 자동차 등 4개사에 대한 화의를 신청한 것이지요. 화의신청을 위하여 재산목록이나 채권 채무 목록을 만드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으리란 점을 감안한다면 결국 이 신청은 오래 전부터 준비된 것이 틀림없고 그렇다면 그 동안 정부와 벌여온 협의는 시간 벌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다는 것을 그때까지도 몰랐습니다. 이렇게 된 상태에서는 법정관리로 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아문제가 난항을 겪고 있을 당시 검찰과 국세청 측에서 기아를 조사하자는 방안이 제시되었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김선홍(金善弘) 회장의 경영권 포기에는 이 같은 검찰의 내사 설이 일조 했다는 시각이 많은데요.

『그런 이야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때마다 우리는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 방법으로는 기아 문제를 풀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기아의 실체를 백일하에 드러나게 하는 것은 좋지만 부실기업의 문제를 공권력 행사로 해결할 경우 기아가 「권력에 잘못 보여 망했다」는 식으로 호도를 할 것이고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할 우려가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납품 비리나 탈세의 의심이 있다면 규명을 하는 것이 당연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부실기업 처리 문제와 혼동되는 것은 막아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홍콩증시 폭락이 최대원인』

-10월22일 기아의 법정관리가 발표되고 바로 다음날인 10월23일 홍콩증시( 市)의 폭락으로 한국은 IMF사태를 부른 블랙 먼데이인 11월3일에 한발 더 가까이 가게 됩니다. 지금에 와서 11월초의 외환위기를 부른 요인을 외국인 투자자들에게서 들어보면 대개 기아의 공기업화에 대한 실망, 홍콩 증시 폭락 그리고 당시 1위를 달리고 있던 김대중(金大中) 후보의 정책 노선에 대한 불안감을 꼽습니다. 이 세 가지 원인 중 어떤 것이 국가부도 사태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보시는지요.

『역시 홍콩 증시의 폭락이 제1의 원인이라 봅니다. 다음은 역시 기아문제겠지요. 기아의 법정관리 발표에 대한 국내의 반응을 집약한 것이 당시 증시( 市)입니다. 기아 대책 발표 날 주가 주가는 5백66.85에서 6백1.32로 폭등했습니다. 언론의 논조도 기아를 비판하는 쪽으로 돌아가고 있었으므로 우리는 한 시름 던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바로 다음날 홍콩증시( 市)의 폭락이 보도되면서 24일 증시는33.15포인트나 폭락했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탈출이 시작되었으니 정말 운이 나빴습니다』

-국내와는 달리 기아 처리에 대한 국제적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영국의 피낸셜 타임스는 10월23일자 신문에서 「변화와 개혁을 강조하던 강경식은 기아 처리에서 전혀 다른 태도를 보여 주었다. 기아를 국유화한 것은 개혁과정에서 엄청난 후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금융기관에 대한 국제금융 사회의 신뢰가 붕괴되고 그 결과로 단기 외채의 만기가 돌아오는 대로 상환 요구를 받게 되는 상황에서 돌이켜 보면 이 모든 것이 우리 정부의 문제인식과 해결 의지 및 능력을 의심받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국내에서는 어떤 욕을 먹더라도 제일은행, 종금사들, 그리고 기아를 국내시각과 타협하지 말고 원리원칙대로 처리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 데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기업을 부실화시킨 데 대한 최소한의 경영책임을 묻고자 했을 뿐 기아 자체는 살리고자 최선을 다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국제사회의 불신을 키워 외환위기를 초래한 데 일조(一助)한 셈이 되었는데, 국내에서는 제가 기아를 죽이려고 했다는 오해를 받고 있으니 참 기가 막히는 노릇입니다』

-외신의 보도와 관련, 정부의 홍보대책이 미흡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기아의 법정관리가 어떻게 외국 언론에서 「국유화(nationalization)」로 번역되도록 했습니까.

『우리가 외신기자들과는 따로 기지회견을 한 것이 없고 국내용으로 발표를 한 것인데, 서울 발 외신기사들이 「국유화」 혹은 「공기업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산업은행 채권의 출자(出資)로의 전환(debt-eqity swap)이 「국유화」로 번역되어 해외에서 큰 오해를 불러온 것입니다. 아마도 산업은행 부채의 출자전환 방침에 대해 산업은행은 정부 출자 은행이니 국유재산 관리로 들어간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우리 쪽의 설명 부족이지요』

-이런 일이 다시 있다가는 나라를 망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국제금융 시장이 언론의 보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특별히 대책이 있어야겠는데요.

『가장 좋은 언론대책은 정직입니다. 투명하게 우리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번 같은 경우는 한글로 된 발표문만 가지고 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영문 보도자료를 동시에 만들어 같이 발표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정부 조직도 그래요. 이런 개방시대에 재경원에 국제금융국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요』

'아쉬웠던 대일(對日)경제외교

-당시 긴급하게 추진해야 했을 조치중의 하나가 대일(對日) 경제 외교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외채를 빌려준 나라가 일본으로 20%를 넘고 그 액수는 독일과 미국 분을 합친 것보다도 많습니다. 홍콩, 증시 폭락 이후 일본 은행들이 우리나라로부터 일제히 외채를 회수하기 시작한 것이 위기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일본에 대한 외교노력은 나름대로 긴밀하게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미츠즈카(三塚博) 대장성 장관과는 친밀한 사이인데, 지난해 4월의 APEC 재무장관회의에서도 만나 협조를 부탁했고 8월 하순의 비공식 방문 때도 외채의 상환기간 연장을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초 엄낙용 차관보가 일본에 가서 협의를 했을 때는 이미 「개별 지원은 안되고 IMF테두리 내에서 협조한다」는 원칙이 정해진 상황이었습니다. 당시는 동남아 위기의 여파로 일본 금융기관 자체의 사정이 나빠지고 있어 그들도 외채회수에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하시모토 총리에게 협조 요청을 한다든지, 고위차원에서 막후 교섭이 진행되었어야 했던 것 아닙니까?

『외채 문제는 민간 은행들의 문제이고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협조 요청을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그런 전화를 했거나 막후에서 거물들이 움직였다면 바로 보도되어 사태는 더 빨리 악화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한일관계는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는 김영삼 대통령의 이야기는 일본 엘리트들 사이에서 회자됐고, IMF 사태가 오자 「누구 버르장머리가 고쳐지나 보자」는 농담이 오갈 정도였습니다. 우리 외채의 20% 이상을 갖고 있는 일본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IMF 사태같은 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리의 약점을 직시했더라면 그 동안 대통령과 경제관료, 언론이 일본에 대해서 보여온 태도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우리 스스로가 실력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요』

-이번 사태를 「미국과 유럽의 아시아 길들이기」란 음모적 시각으로 보는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우리가 당한 것은 우리가 구조개혁을 실천하지 못했던 데 원인이 있는 것이지 다른 데서 원인을 찾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냉전체제의 붕괴 이후 안보관계의 틀도 변하고 있어 혈맹적 유대관계는 기대할 수도 없고 기대해서도 안됩니다. 모든 문제를 냉정하게 경제적으로 보고 우리가 스스로 개혁하고 힘을 기르는 수밖에는 없지요. 음로론으로 남 탓만 하면 우리 병은 누가 고쳐줍니까』

-한국을 보는 외국의 시각을 대표하는 것 중의 하나가 부즈 앨런 보고서입니다. 이중에서 『한국은 말은 많고 행동은 안 따르는 나라』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세계화를 한다고 소리쳤지만 소비풍조만 조장하고 세계화의 진정한 의미인 세계적 수준의 국가경영 시스팀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강경식 팀도 금융개혁을 한다고 했지만 결국은 임기 중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고 시장논리를 적용한다고 하면서 그런 식의 부실기업 정리는 안되고, 이런 말과 실천의 괴리가 국제사회의 불신을 부른 근본원인이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왜 실천에 자신도 없으면서 말만 앞세웠습니까.

『부즈 앨런 보고서는 한국에서 한국 경제의 여러 문제에 대해 광범하고 심도 있는 연구가 되어 있는데 놀랐고, 그럼에도 그것들이 안 고쳐지고 그대로 넘어 가는 것에 더 놀랐다는 시각을 보이고 있습니다. 개혁이 잘 안 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불이익을 보는 기득권 층은 분명한데, 개혁에 따른 이익이라는 것은 서서히 나타나거든요. 새 신이나 새 옷이 몸에 맞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듯 새로운 것에 대해서는 본능적인 거부감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 정치력이고 이런 정치가 나름대로 역할을 해왔다면 개혁도 이뤄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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