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慶植 전 재졍경재부 장관 겸 부총리 인터뷰/'국내의사 말 안듣다가 IMF의사에 의해 수술'(3)
*월간조선 1998년 3월호
『우리 엘리트들의 리더십이 문제』
-강(姜)의원께서는 집권 말기의 허약해진 대통령을 믿고서 개혁을 해내려고 했다는 데 판단착각을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왜 김영삼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개혁을 정치적으로 뒷받침해주도록 만들지 못했습니까.
『대통령 중심제라고 해도 모든 것이 대통령의 리더십만 갖고는 안됩니다. 우리는 민주사회입니다. 개혁을 추진하는 정치세력이 국회 내에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 획기적인 개혁을 추진한 세력은 깅그리치 하원의장을 중심으로 한 공화당이었습니다. 엘리트 집단이 문제의식을 갖고 국론을 그런 방향으로 결집시키고 끌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박정희 전두환 시대는 정부가 주도하던 시기였습니다. 노태우 김영삼 시대에는 민주화도 되고 웬만큼 살 만해 지니까 경제를 등한시하는 자만심도 가세하여 어줍지 않은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압도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집단 이기주의에 굴복하고 인기 위주의 정책을 편 지난 10년간 우리 경제는 구조적 모순을 누적시켜온 것입니다.
당연히 망해야 할 기업과 은행을 정부 출자와 한은 특융이라는 편법으로 살려주기를 정부에 강요하고 이러한 조치가 불러올 도덕적 해이와 대외적 신뢰의 실추가 결국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이해하지 못하는 풍토만 남은 것입니다. 이런 풍토가 IMF 사태의 원인인데 아직도 며칠 먼저 더 알았더라면 IMF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는 시각으로 접근하니 답답합니다』
-금융개혁법안이 통과 안된 것은 국민회의가 자민련의 반대가 있었다 해도 결국은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책임이 아닙니까.
『개혁법안의 처리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에게만 협조요청을 한 것이 아니고 국민회의에도 했고, 자민련에게도 했고 활걋?했어요.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있어 아무도 움직여 주지 않았습니다. 안 들어준 것은 그들이지만 설득못한 저에게 결과적으로 책임이 있는 것이지요』
-이들 정치권과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큰 벽이라고 느끼셨는지요.
『대통령 선거 기간에는 특정후보의 당선이라는 정치적 목표에 집착하고 나라 경제문제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잘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어요』
-IMF를 몰고온 외환위기가 대통령 선거직전이 아니고 다른 때였으면 피할 수 있었으리라고 봅니까.
『평상시였다면 금융개혁법안만이 아니라 더 강력한 개혁이라도 강도 있게 추진했을 겁니다. 금융개혁법안은 무난하게 통과됐을 것이고요. 대선정국이기 때문에 표에만 정신이 팔려서 다른 문제가 잘 다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나라의 경우에도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임기 초에 개혁의 포석을 놓았어야 했을 강경식 의원이 임기 말에 기용된 것이 대통령의 인사 실패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저도 비슷한 이야기는 들었는데요. 막상 임기 말에 실질적으로 일을 해보니까 정권 말기라는 제약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불난 집에 불끄러 들어왔다가 불도 못 끄고 불낸 사람으로 지목 받고 있어요. 한 예로 ㅁ?초기 같으면 기아가 그렇게 막무가내로 버틸 수 있었겠습니까』
『종금사 구조조정 못해 아쉽다』
-종금사가 이번 IMF 사태의 또 하나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왜 정부는 종금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습니까. 야생마처럼 그냥 놓아둘 것이 아니라 돈의 흐름을 관찰하고 고삐를 쥘 수 있는 장치를 해두어야지, 우리 나라에서는 규제완화가 곧 방치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규제를 완화할수록 오히려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은 더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대가를 지금 톡톡히 치르고 있지요. 한보 기아 사태로 연타를 맞은 제일은행과 부실 종금사들을 한은 특융과 정부 출자를 해주면서 구조조정을 하려고 했습니다. 우리로서는 특혜요소를 거의 제거했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를 초래하지 않을 것이고 국제사회도 이해해 줄 것이라 착각했었습니다』
-재경원 실무선에서 종금사에 대한 규제방안으로 은행처럼 자기자본(BIS) 비율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 건전성 지표를 만들려고 했는데요, 이에 대해 보고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종금사에 대한 다른 규제방안이나 조치도 안(案)으로서는 여러 개가 있을 수 있었겠지요. 아무리 좋은 안이 있더라도 대선(大選)을 앞둔 시점에는 그런 방안들이 채택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 같은 조치들은 대선(大選) 이후에나 가능했을 것으로 봤습니다.
국제사회의 기준에 조금 다가가려는 우리의 개혁 조치들이 국제사회에서는 기준에 미흡하다고 야단맞고 국내에서는 당연한 도움을 거절한다고 해서 재계와 금융계로부터 미운 털이 박히게 된 꼴이었습니다. 이들의 불만이 정치권과 언론에 부정적으로 전이되고 그것이 적절치 않은 시기에 제가 물러나게 된 요인 중 하나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김영삼 정권시대에 종금사 허가를 남발했는데 그 배후에는 정치권의 로비와 비자금 거래가 있었다는 말들이 많습니다.
『전혀 아는 바 없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좀더 서둘러 종금사에 대하여 과감한 조치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할 일을 못한 것이 어디 이것뿐이었겠습니까. 금융개혁법안만 해도 IMF에 의해 강요당하니까 그렇게 쉽게 통과시켜주면서 우리가 하려고 할 때는 왜 그렇게도 협조를 해주지 않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기아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기아를 삼성에 인수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갖거나, 검토한 적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정부에서는 그런 것은 검토할 필요도 없는 사안이었고 그럴 입장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기아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기아를 바로 부도 내는 것입니다. 둘째는 기아를 제3자에게 넘기는 것이고, 셋째가 기아가 요구하는 대로 달라는 돈을 다 대주는 것이지요. 당시에 기아 문제를 빨리 해결하라고 했던 사회적 분위기는 이중에서 세 번째 것이었습니다.
기아가 필요한 돈을 무한정 대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부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아직도 이전처럼 정부가 돈을 대주라고 하면 은행들이 자동적으로 돈을 대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WTO 체제 이후엔 정부가 그렇게 했다가는 보조금을 주었다고 해서 무역마찰로 몰매 맞기 십상입니다. 다른 한국 자동차의 수출 길까지 막히고 한국의 다른 수출 부문까지도 영향을 주는 것이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은 부도를 빨리 내든지 제3자 인수의 길이 남는데, 당시 이미 부도유예협약이란 제도가 있으므로 그 절차를 밟는 것이 순리라고 봤습니다.
『삼성과 음모했다는 증거 있으면 빨리 고발하라』
-강의원께서도 삼성 자동차 공장을 부산에 세워달라고 요구한 적은 있지요.
『삼성자동차가 공장 입지를 물색할 때 부산에 공장을 세워달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자동차 공장은 바다와 면해 있어야 하는데 이 같은 입지에 부산이 좋을 것이라고 설득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역 국회의원으로서의 활동이었습니다. 경제부총리에 이르고 3선 의원으로 지역 입지가 탄탄한 지금 무엇이 아쉬워 재벌의 앞잡이가 되어 정치적 장래를 망칠 모험을 하겠습니까. 누구라도 좋으니 내가 삼성과 유착되어 기아를 죽이려고 한 사실이 있다고 확인했으면 이제라도 빨리 저를 사직당국에 고발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삼성에 자동차공장 신설을 정부가 허가해준 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정부에서 공장 허가해주고 말고 하는 시대는 이제 끝났습니다. 기업에서 영리를 기준으로 하고 말고 하는 것이지요. 이제는 정부에서 신규 참입에 대해 된다 안 된다 규제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문제는 돈을 대줄 은행에서 판단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미국과 같은 데서나 가능한 이야기이고, 한국에서는 은행이 자율적 판단을 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삼성자동차 공장 신설이 우리 자동차산업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아직 이야기할 수 있는 시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업종이 자동차이니까 안되고 국내과잉이니까 안되고 이럴 수는 더더욱 없는 겁니다. 기업이 글로벌 전략을 갖고 한다면 하는 것이지요』
-일본은 기업들이 자율조정을 해서 중복투자를 피하는 지혜를 발휘합니다. 우리나라는 중복투자를 자율 조정하는 기업 윤리도 없고, 은행세계의 시장원리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에 의해서 결정된 삼성 자동차 신설은 결국 국가 재원의 낭비로 귀결된 것 아닙니까.
『시장원리가 통하는 곳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일시적으로는 낭비인 것처럼 보이지만 개혁도 경쟁도 없는 계획 경제의 낭비성을 구(舊) 소련의 예에서 볼 때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기업이 자기 책임으로 자기 돈으로 한다는데 된다 안 된다 이럴 수는 없는 겁니다. 기업 입장에서 자기가 망할 일을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돈이 국내에서 부족하면 해외에서 자기들이 알아서 빌려오는 것이고 그런 것인데 이것 자체를 안 된다 이렇게 막을 수는 없는 겁니다. 일본의 경우에도 기업들이 기업윤리보다는 이윤추구를 위해 각자 알아서 협의해나가는 것일 뿐이라고 봅니다. 다만 교통정리를 금융기관들이 하지요』
-삼성 자동차에 대한 강의원의 시각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지금은 2004년도 아니고 1998년입니다. 삼성 자동차 설립 허가 당시에는 기업윤리에 관한 한 은행도 엉망이고 재벌도 엉망인데 국익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주체는 정부밖에 없었던 것이 아닙니까. 경쟁원리가 먹히지 않는 상황에서는 한시적으로 정부가 중복투자를 피할 수 있도록 조정해주어야지요.
『삼성자동차 신설은 정부로서는 허가해줄 사안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상황에서 보면 「정부의 영향력」정도라고 판단할 수는 있겠는데, 이런 영향력조차도 이제는 정부가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법에 따라 해야 합니다』
『大馬不死 신화 깨는 게 힘들어』
-앞서 강의원께서는 한국의 대외적 신인도를 떨어뜨린 첫 번째 실수는 부실은행과 종금사들에 대한 특융이라고 했는데, 두 번째 실책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합니까.
『저의 두 번째 실책은 역시 기아의 법정관리를 신청하되 산업은행의 채권을 출자로 전환하기로 한 방침일 것입니다. 일반 기업이든 금융기관이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 가차없이 처단하라는 것이 IMF의 요구이고 국제사회에서 당연히 요구되는 준거인데 국내의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고 기아를 살리는 방향 이외의 다른 대안을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국내에서는 이 방침이 환영을 받았지만 국제적으로는 한국의 경제팀은 시장원리와 국제 기준을 존중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닌가 보다 하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본인의 능력과 경력도 출중하지만 지역정서도 고려하여 전북 출신의 진념(陣捻) 전 장관을 관리 책임자로 앉혀 국내에서는 환영받았으나 해외에서는 전직 장관이라고 해서 정부의 개입으로 해석되어 상당한 불신을 초래한 것 같습니다. 대마불사(大馬不死)신화가 너무 뿌리 깊기 때문에 대기업의 부도를 방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결정적인 신뢰 상실 요인은 금융개혁법의 국회통과 실패였지요. 정치적 고려 때문에 화급을 다투는 입법이 무산되는 나라를 누가 믿고 돈을 빌려주겠습니까』
『희생양 만들고 끝내면 도로아미타불』
-금융개혁법안이 통과되었더라면 IMF에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금융은 신용이고 신용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라면 한국 정부가 문제를 스스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할 역량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고서야 정부가 외채를 보증하겠다는 말까지도 의미 없어지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마지막까지도 금융개혁법 통과와 동첼?국제금융계가 요구하는 강력한 대책을 내놓음으로써 신뢰를 회복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서 단기외채의 만기 연장률을 높이는 것 이외에 다른 대책이 있을 수가 없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 판단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실제로 당시 상황에서 어떤 다른 대책이 있었는지 지금이라도 알고 싶습니다. 한국 정부와 금융기관을 믿지 못하고 돈을 빼 가는 데 다른 데서 돈을 새로 꾸어서 갚을 길도 없는 것이고 결국 돈을 회수하지 않고 다시 연장해주어도 좋다는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는 길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정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일부 의원들과 일부 언론들은 그저 재경원-한은의 밥그릇 싸움에서 유리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위협 정도로만 받아들이고 있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 IMF 협상을 국치니 주권상실이라 하여 격앙된 감정으로 받아들인 여론,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재협상 발언, 국고가 텅비어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다는 너무 솔직했던 발언, 이 모든 것이 국제사회가 한국을 보는 시각에 악영향을 미친 것이지요』
-지금은 어쩌면 이 위기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여론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엄청난 기회지요. 이것을 살리지 못하면 안됩니다. 나라 전체가 써도 너무 많이 쓴 것입니다. 그것도 상당부분을 실력 이상으로 썼습니다. 장사가 잘 안 되는 기업에 돈을 빌려주게 되어 있는 우리 체제가 잘못된 것이지, 제대로 돈 빌려주는 체제를 새로 만들겠다는 IMF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IMF는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서라도 한국 경제의 회생을 위해 좋은 정책을 권고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조금 한국의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도 발견됩니다.
그러나 먼저 우리 스스로가 바뀌어야 합니다. 정치인, 정부, 금융, 언론 등등 이 사회의 공론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도 의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사고 방식을 바꾸어야 하는 겁니다. 엘리트가 정신 차려야 합니다. 이번 한국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지도층 사람들이 초래한 위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개혁을 막고 낡은 틀을 고수(固守)하는 데 앞장섰으니까요. 1백만 명 실업 시대라고 불안하게만 생각하는데 이것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사회보장의 충실화와 구조조정을 통해 풀어가야 합니다.
그 동안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 못했으니 이제는 고통스럽게 배울 따름이지요. 공부는 어차피 해야 하는 건데 IMF선생이 온 김에 지금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경제청문회나 외환특감에서 몇 명을 희생양으로 만들고 그것으로 되었다고 한다면 도로아미타불입니다. 금융시장이 개방된 앞으로는 언제든지 작년 11월과 같은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달러를 찍어내기만 하면 되는 미국을 빼고는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아시아의 외환위기를 아시아적 가치의 몰락으로 설명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일본 모델을 참고한 한국형 개발 모델의 한계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가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 아시아적 가치의 패배라기 보다는 한국적 가치의 패배라고 보여집니다. 시장원리라는 외래사상을 자국(自國)의 실정과 수준에 맞게 점진적으로 받아들인 나라는 외환위기를 견디고 우리처럼 시장원리라는 말만 사대적으로 받아들여 선동적으로 써먹고는 시장원리가 정착할 만한 제도를 만들어 내는 데는 게으름을 피운 나라는 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강(姜)의원께서는 어느 나라식의 시장원리를 주장하시는 겁니까.
『저는 아시아적 가치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MIT크루그만 교수의 분석에 동의합니다. 시장원리는 간단한 것입니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것이지요. 저는 미국식 시장원리의 힘을 믿습니다. 말레이시아와 중국이 괜찮은 것은 투자환경을 좋게 만들어 해외차입보다도 직접투자에 주로 의존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바보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IMF로 가서도 해결 안 되는 문제들을 IMF에 가지 않고 어떻게든지 해결해보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IMF의 대한(對韓) 정책중 고금리 유지 정책은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고금리 처방은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도개혁을 하려고 해도 우리가 하면 시간을 두고 완급을 조절하면서 할 수 있는데 남이 들어와서 강제적으로 하니 그것이 안 되는 것이지요. 이제는 IMF를 보는 시각을 현실화해야 합니다. 우리 경제가 빨리 살아나도록 해줄 고마운 존재로 봐야 합니다. 우리가 병에 걸렸는데도 국내의사의 말은 안 듣다가 외국의사의 말을 들어야 고칠 수 있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지요』
강경식의 神
강경식 의원은 시장원리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한참 설명해갔다. 시장원리는 민주주의와 함께 지금 세계를 거의 통일한 신(神)이다. 이 신은 그리스-로마-히브류의 전통을 이어받은 앵글로색슨계통(系統)국가의 작품이자 인류국가의 논리이다. 이 시장원리는 인간이 개방된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하면 그 결과는 좋게 나타난다는 경험적 확신이다. 정부는 시장이 공정하고 개방되어 있도록 관리만 하여야 하고 직접 이경기장에는 선수로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업과 개인이 선수이고 정부는 심판 또는 관리자가 된 것이다. 민주주의나 시장원리는 공정한 경쟁이 인간의 자율성을 극대화시킨다는 확신을 기초로 하고 있다. 작은 정부와 강력한 기업 및 소비자를 미덕으로 삼는 이 이념은 따라서 개인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영미법(英美法)이 채택하고 있는 배심원 제도는 이런 시장원리를 재판에 적용한 경우이다. 배심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검사와 변호사가 공정한 시합을 하고 재판장은 그 시합이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관리하는 심판관 역할만 한다. 배심원들은 보통 사람들이지만 전문가인 재판장이 재판을 공정하게 진행시켜주기만 하면 아주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채택한 대륙법에서는 머리 좋은 재판장이 신의 대리인으로서 유무죄를 판단한다. 재판이든, 선거든, 시장이든 경쟁의 과정만 공정하면 그 결과는 저절로 좋게 나올 것이라는 이 무서운 신념은 그러나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한다. 오판(誤判)과 혼란과 시행착오를 「불가피한 필요악」으로 치부하여 견딜 수 있는 확신과 실력이 그 사회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의 일반원칙
영국과 미국은 약 1천 년에 이르는 민주화과정을 통해서 그러한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 만들어낸 두 가지 하느님-민주주의와 시장원리가 보편적 진리라고 자신 있게 지금 우리들에게 선교(宣敎)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영미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하느님을 믿으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요구에 저항하는 행동이 시장원리자들 에게는 개혁을 반대하는 것으로 비쳐지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시장원리란 이 새로운 신을 소개하는 데 앞장서온 강경식 의원과 「강경식 스쿨」로 불리는 경제관료들은 IMF 사태를 맞고도 시장원리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고 있다. 시장원리는 그들에게 하나의 종교인 것이다. 요사이 그들이 겪고 있는 시련은 무신론자들에 의한 「박해」인 것이다. 조선조 선비들에게 주자학이란 외래사상이 종교가 되었듯이, 해방 후 우리 정치인들에게 민주주의가 종교가 되었듯이 우리는 지금 미국과 IMF라는 대형(大兄)이 모시고 들어온 시장원리라는 신상(神像)앞에서 움츠려 있다.
기자는 강의원의 아파트를 나오면서, 주자학이든, 민주주의든, 시장원리든 외래이념을 종교화하여 극단적으로 추구하면 조국과 민중의 현실을 떠나 결과적으로는 사대주의로 귀결되고 만다는 우리 역사의 일반 원칙을 생각해보았다.
"국내의사 말 안듣다가 IMF의사에 의해 수술"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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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9-19, 08: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