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와 국가정체성 회복 위한 대토론회
주최: 한국안보포럼, 한미안보연구회, 뉴라이트전국연합
일시: 2007년9월20일 (木)
장소: 전쟁기념관 뮤지엄 홀 2층 코스모스 볼룸
-----------------------------------
對北政策의 올바른 전개방향
李東馥 [전 국회의원/남북고위급회담 대표]
1. ‘햇볕정책’과 ‘대북포용정책’ - “주어서 變化시킨다”(?)
2000년6월 金大中(당시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다. 이를 통해 남북한 간에는 1948년 ‘국가분단’ 이후 처음으로 ‘정상회담’이 실현되었다. 이 무렵 李會昌(당시 한나라당 총재)은 그로부터 7년의 시간이 흘러 간 지금까지도 기억에서 지워버리지 못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李會昌은 평양에서 金正日과 ‘6.15 남북공동선언’에 합의하고 서울로 돌아 온 金大中을 청와대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 사이에는 설전(舌戰)(?)이 오갔다. 李會昌은 “남북관계에서는 ‘상호주의’가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에 대해 金大中은 反論을 폈다. “우리가 ‘상호주의’를 고수하면 북한이 우리가 주는 것을 받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북한은 변화하지 못한다”는 것이 金大中의 反論이었다. 金大中은 “북한은 주어서 變化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더라고 李會昌은 회고한다.
2003년 金大中 정권에 이어 등장한 盧武鉉 정권은 金大中 정권의 <햇볕정책>을 이어받았다. 명칭은 <대북포용정책>으로 바꾸었다. 문제의 <대북포용정책>은 ‘평화공존, 화해, 그리고 민족통합’이라는 거창한 ‘로드 맵’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실체는 한 마디로 시종일관 ‘상호주의’와는 완전히 담을 싼 대북 ‘퍼주기’였다. 2000년6월에 있었던 金大中의 평양방문도 따지고 보면 ‘검은 돈’을 대가로 하여 성사된 ‘검은 흥정’의 産物이었다. 金大中의 평양방문은 4억5천만 달러 이상의 ‘검은 돈’을 북한의 金正日에게 지불하고 나서야 실현될 수 있었다.
2000년6월 金大中의 평양방문 이후 그 동안 남한으로부터 북한으로 제공된 경제지원 규모에 관해서는 엇갈린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盧武鉉 정권의 <통일부>는 작년 10월 현재 1995년부터 2006년까지 정부와 민간의 대북 경제지원 규모는 2조5천3백억원이라는 수치를 내놓았다. 그러나, 이 수치의 신뢰성은 의문스러운 것이다. 당연히 포함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누락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미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의 취소로 결손 처분이 불가피해 진 대북 ‘경수로’ 건설 분담금(1조8천억원)과 대북 지원용 국산 쌀 가격 차이 보전을 위해 결손 처리한 ‘양곡관리특별회계’(양특) 자금(2조3천억원) 등이 그 경우에 해당된다.
작년 9월 국회에서의 국정감사 때 <한나라당>의 진영 의원은 <통일부>가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1995년부터 2006년까지 12년 동안에 남한의 정부, 지방자치단체 및 민간단체가 북한에 제공한 경제지원 규모가 총 6조6억원 또는 그 이상이라는 집계결과를 제시했다. 2000년 金大中이 평양방문 대가로 金正日 앞으로 송금해 준 ‘검은 돈’ 4억5천만 달러 + 알파는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진 의원에 의하면 6억6천만 달러 가운데 2천3백만 달러는 金泳三 정권 때(1995-1997), 1조5천억원은 金大中 정권 때(1998-2002), 그리고 3조1천억원은 盧武鉉 정권 때(2003- 2006) 각기 집행되었다. ‘경수로’ 분담금을 제외한 대북 지원의 64%가 盧武鉉 정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 액수에 2007년 발생 분이 포함되면 그 액수는 더 늘어나게 되어 있다.
작년 정기국회에서의 재정경제부에 대한 국정감사의 중요 이슈의 하나도 대북 지원 규모였다. 이를 통해 金大中 정권 이후 이루어진 대북 ‘현금’ 지원 총액이 30억 달러에 이른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 내역에는 ①金大中의 방북 대가 4억5천만 달러, ②‘개성공단’ 사업권, 노동자 임금, 세금, 통신료 등 5억 달러, ③‘금강산 관광’과 ‘아리랑 축전’ 대가로 4억5천만 달러, ④금강산 관광 관련 건물 매입에 1억5천만 달러,ㆍ‘통일축전’ 행사비용 등 4천만 달러ㆍ경의선/동해선 철도 건설 토목사업 자재구입비 등 7천만 달러ㆍ북한 방문 합산 비용 2억 달러 등 5억 달러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나라당>의 최경환 의원은 “여기에 남북한 교역적자액 13억 달러까지 합하면 대북 ‘현금’ 지원 총액은 30억 달러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金大中ㆍ盧武鉉 정권 하에서 일어난 대북 경제지원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잣대가 있다. <통일부>가 관리하는 ‘남북 경제협력 기금’ 조성 규모다. <통일부> 자료에 의하면 1991년부터 2006년까지 조성된 ‘남북경제협력 기금’의 총규모는 7조4천억원이다. 이중 金大中 정권 출범 이전의 조성 규모는 전체의 8.3%인 6천억원에 불과하다. 金大中 정권 기간 중 조성 규모가 33.5%인 2조5천억원, 盧武鉉 정권 기간 중의 조성규모가 58%인 4조3천억원으로 전체 기금의 88.8%인 6조6천억원이 金大中의 평양방문이 실현된 2000년 이후에 조성되고 또 사용되었다. 이 돈의 일부가 그 동안 245만톤의 양곡(쌀 225만톤; 옥수수 20만톤)과 225만톤의 비료를 북한에 제공하는데 사용되었다. 이쯤 되면 ‘퍼주기’ 논란은 필연적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 같은 천문학적 규모의 대북지원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에 관하여 ‘햇볕정책’의 元祖 金大中이 제시한 명분은 북한을 상대로 “주어서 變化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천문학적 규모의 대북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變化’는 없었다. 盧武鉉 정권의 <통일부>는 특히 2000년의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북한이 ‘新思考’(2001년 1월 ‘연두 공동사설’)와 ‘경제관리 개선조치’(2002년7월1일 시행) 등을 통해 ‘變化’의 길을 걸어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의 ‘變化’는 있었더라도 ‘油頭粉面(유두분면)’의 무의미한 겉치레 ‘변화’에 불과했다. 그 동안 중국은 金正日의 베이징 ‘中關村 과학단지’ 시찰(2001), 샹하이 ‘푸동(浦東) 개발구역’ 시찰(2002년), 중국 남부 시찰(2006) 등을 주선하면서 “중국식 ‘改革ㆍ開放’의 모방”을 극력 종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의 북한은 좀처럼 ‘意味 있는 變化’로의 발길을 내디디지 않고 있다.
‘북한의 변화’는커녕 金大中ㆍ盧武鉉 정권의 <햇볕정책>과 <대북포용정책>은 부메랑이 되어서 북한이 아니라 남한에서 엉뚱한 내용과 방향으로 ‘變化’를 불러일으키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이후 金大中ㆍ盧武鉉 정권에 대해서는 ‘친북ㆍ좌파’ 정권 시비가 계속 증폭되어 왔다. 한 정권의 이념적 정체성을 판단하려면 그 정권의 ‘인적 구성’ㆍ‘지지 기반’ㆍ‘정책 노선’ 등의 세 가지를 판단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면 盧武鉉 정권은 “좌파 정권이 아니라”고 부인하기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이에 관해서는 ‘범여권’의 ‘헤쳐 모여’ 과정에서 “盧武鉉 대통령을 비롯해 당내 좌파세력과 결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정도에 이르고 있다.
盧武鉉 정권의 구체적 行步는 관심 있는 사람들의 우려를 증폭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우선,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 정부가 자랑해 마지않는 남북 간 ‘인적 교류’의 虛構性이다. ‘6.15’와 ‘8.15’를 계기로 하고 ‘민족’과 ‘평화’를 명분으로 하여 지난 7년간 서울과 평양, 그리고 금강산과 제주도를 오가면서 진행되어 온 각종 ‘축전 행사’는 물론이고 ‘금강산 관광’을 비롯한 대부분의 남북 간의 ‘인적 교류’는 예외 없이 남한 사회의 주류 세력인 ‘보수ㆍ우파’는 배제된 가운데 북한과 남쪽의 ‘친북ㆍ좌파’ 세력만의 ‘잔치 판’이 되어 “북을 變化”시키는 것이 아니라 “북의 주문대로 남쪽이 길들여지는 空間”으로 구실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의 남북관계는 북한의 ‘남조선혁명’론의 테두리 안에서 형성되는 ‘상층 통일전선’의 ‘무대’를 제공하는 내용과 모양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국내적으로 한편에서는 정부가 ‘주한미군’ 철수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주한미군’ 기지의 평택으로의 이전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 정부의 국무총리의 夫君은 “미군의 평택으로의 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좌익’ 단체의 간부이고, 또 그 정부의 대통령 부인은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 반대 운동의 주동자를 그의 ‘부속실장’으로 기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정부 아래서 “맥아더 장군 동상의 철거를 주장”하고 “평택으로의 기지 이전에 반대”할 뿐 아니라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좌경 시민단체’들에게 국고로부터 ‘보조금’이 지급되고 있고 ‘남로당’ 참가자들은 물론 ‘4.3 사건’을 비롯하여 과거 ‘좌익’ 관련 사범으로 법원의 판결에 의해 實刑을 살았던 사람들이 법원에 의한 판결의 번복도 없이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둔갑시키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보수ㆍ우파’로부터의 ‘左傾化’ 시비는 당연한 귀결이다. ‘보수ㆍ우파’ 진영에서는 “아직 ‘赤化統一’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대한민국은 이미 ‘共産化’되었다”는 주장이 제기하고 있을 정도이다. 흥미를 자아내는 사실은, 이 같은 남쪽의 ‘보수’ 진영의 診斷에 대해 북한이 和答하고 있다는 것이다. 金正日의 북한은 金大中ㆍ盧武鉉 정권을 싸잡아서 공공연하게 ‘친북ㆍ聯共’ 정권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북한의 주장에 의하면 2000년의 <6.15 남북공동선언> 이전의 남한에서는 “반공ㆍ보수 세력이 주류”였지만 그 이후의 남한에서는 “반공ㆍ보수 세력은 소수의 변방 세력으로 전락했고 그 대신 친북ㆍ聯共 세력이 주류가 되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 같은 ‘남조선의 變化’가 “위대한 (金正日) 장군이 역사적인 <6.15 북남공동선언>을 마련하여 남조선에서 진보세력의 활동공간을 넓혀주고 극소수 반공ㆍ보수 분자들을 철저히 고립시킨 결과”라는 自畵自讚까지 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金大中ㆍ盧武鉉 정권의 대북 ‘퍼주기’가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받는 쪽’인 북한을 ‘變化’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는 쪽’인 남한을 ‘變化’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들은 ‘오아시스’를 건설한다고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오아시스’가 아니라 ‘蜃氣樓’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4. 統一論議의 憲法的 限界 - 북한의 體制變化가 先決條件
분단된 한반도의 남북관계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궁극적으로 통일을 지향하는 관계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분단 한반도의 통일은 세 개의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①‘대한민국의 체제’로 이루어지는 통일, ②‘북한의 체제’로 이루어지는 통일, 그리고 ③두 체제 가운데 어느 것도 아닌 ‘제3의 체제’로 이루어지는 절충형 통일이다. 그런데, ‘통일의 체제’ 문제에 관해서는 모두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남북한의 두 체제 간에는 이미 지난 60년 간 치열한 체제 경쟁이 진행되어 왔고 그 체제 경쟁의 승패는 이미 가려졌다는 사실이다.
이 체제 경쟁을 통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 실험은 5천년 민족 역사를 통해 전례가 없는 기념비적 ‘成功譚’으로 實證되었다. 반면, 북한의 ‘공산주의독재’와 ‘계획경제’ 실험은 비참하기 짝이 없는 ‘失敗作’이라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따라서, 이 같은 체제경쟁의 결과로 우리가 고려할 수 있는 세 개의 통일 시나리오 가운데서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지는 이미 분명하게 밝혀져 있다. 즉, 통일은, 당연히, ‘실패한 체제’, 즉 북한의 ‘공산주의독재’와 ‘계획경제’ 체제가 아니라 ‘성공한 체제’, 즉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어 있는 것이다. 더구나 ‘성공한 체제’와 ‘실패한 체제’를 절충ㆍ혼합하는 ‘비빔밥 식 통일’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선례가 없는 비현실적 탁상공론에 불과할 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참고해야 할 역사적 사실들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등장했던 다른 분단국가들의 통일 사례들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더불어 ‘鐵의 帳幕’을 사이에 두고 막을 연 냉전시대의 양극 구조 속에서 지구상에는 좌ㆍ우로 이데올로기를 달리 하는 4개의 분단국가들이 생겨났었다. 우리나라와 함께 독일, 베트남, 예멘이 그러한 국가들이다. 이 4개국 가운데 우리나라만을 남겨 놓고 다른 3개국에서는 그 동안 통일이 이루어졌다. 독일의 통일은 ‘공산국가’였던 동독이 스스로 무너져서 서독에 흡수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반면, 베트남의 통일은 비참한 국제적 대리전쟁에서 ‘공산국가’인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무력으로 정복하는 형태로 실현되었다. 통일 후의 베트남에서는 베트남 판 개혁ㆍ개방인 ‘도이모이’의 추진을 통해 공산주의로부터의 이탈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합의통일’의 유일한 경우였던 예멘의 통일은 역설적으로 이념을 달리 하는 ‘분단국가’ 간에 ‘합의통일’이 비현실적인 것임을 보여 준 사례였다. 예멘의 ‘통일’은 일단 ‘협상’과 ‘합의’를 통해 남북 예멘이 화학적으로 ‘熔融’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共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국가의 모든 ‘자리’에 남ㆍ북 예멘 출신의 사람을 二重的으로 중복 임명하는 형태를 취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통일은 오래 가지 못했다. 얼마 안가서 ‘반공’을 표방하는 북예멘 세력이 무력으로 남예멘의 ‘공산주의’ 세력을 공격하여 격파하고 북예멘 중심의 ‘반공’ 통일을 성취했다. 1940년대 중국에서 예멘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진행되어 중국대륙의 공산화를 초래한 ‘國共合作’ 협상의 경우와 함께, 예멘의 경우는 이데올로기를 달리 하는 ‘분단국가’가 ‘합의’에 의한 ‘통일’, 즉 ‘제3의 체제’에 의한 ‘통일’을 이룩하는 것은 하나의 ‘蜃氣樓’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였다.
사실은, 우리가 이룩해야 할 통일의 ‘방법’과 ‘내용’에 관하여 국가 기본법인 헌법이 통일을 이룩하는 방법은 ‘평화통일’이어야 하고 통일이 지향해야 할 가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일반적으로 無視ㆍ外面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우선 제3조의 영토 조항에서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 전역과 부속도서’로 명시함으로써 이 영토 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하나의 주권국가로 존재할 수 있는 법적 공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정부’를 ‘참칭’한다”는 이유로 ‘반국가단체’로 보는 국가보안법의 법적 토대가 바로 헌법 제3조의 영토 조항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은 제4조에서 “통일을 지향한다”는 표현으로 대한민국이 ‘분단국가’임을 또한 분명히 해 놓았다. ‘통일’의 ‘상대방’이 되는 또 하나의 ‘분단국가’의 존재를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제4조는 통일이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국가적 과제임을 분명히 함과 동시에 통일의 ‘방법’은 ‘평화적 통일’이어야 하고 통일의 ‘내용’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보장되는 것이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 헌법은 ‘분단국가’인 상태에서는 물론 ‘통일’ 이후에도 보장되어야 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구체적 내용을 여러 조항에 걸쳐 열거해 놓고 있다.
헌법은 제1조에서 대한민국이 ‘主權在民의 민주공화국’임을 명시하고 있다. 제11조에서 헌법은 대한민국에는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고 “어떠한 사회적 특수 계급도 인정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분단체제하에서의 대한민국에서는 물론 앞으로 이루어질 통일국가에서도 ‘계급사상’이나 ‘계급관념’에 기초한 제도가 용인되는 것을 봉쇄한 것이다. 더구나 제8조에서 헌법은 “복수 정당을 보장”할 뿐 아니라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배치되는 정당”은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해산’될 것임을 분명히 해 놓았다. 대한민국에서 <공산당>은 합법적인 활동 공간이 거부되고 있는 것이다.
헌법은 제14조에서 제23조에 걸쳐 ‘민주공화국’으로서 대한민국은 물론 통일한국에서 보장되어야 할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를 열거하고 있다. ‘거주이전의 자유’(제14조), ‘직업선택의 자유’(제15조), ‘주거의 자유’(제16조), ‘사생활의 자유’(제17조), ‘통신의 자유’(제18조), ‘양심의 자유’(제19조), ‘종교의 자유’(제20조), ‘언론ㆍ출판ㆍ집회ㆍ결사의 자유’(제21조), ‘학문ㆍ예술의 자유’(제22조), ‘재산권 보장’(제23조) 등이다. 그리고 헌법은 제10조에서 이 같은 기본권과 자유의 ‘불가침성’을 명시하고 있다.
이 같은 헌법의 명문 조항들은, 이들 조항들이 사전에 개정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이 추구할 수 있는, 그리고 추구해야 하는, 통일에는 ‘방법’과 ‘내용’면에서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말해 준다. 2000년6월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의 소산인 <6.15 남북공동선언> 제2항의 통일방안에 관한 합의가 대한민국 헌법에 저촉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대표적으로 違憲 논란의 대상인 제2항이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내용이 문제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점은 <6.15 남북공동선언>이 ‘낮은 단계’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는 했지만 북이 말하는 ‘연방제’를 “통일을 지향시켜 나갈 하나의 방향”으로 사실상 수용했다는 것이다. ‘낮은 단계’이든지, ‘높은 단계’이든지, 한반도에서 ‘연방제’에 의한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남북한이 ‘하나의 주권국가’로 통합되어 ‘중앙정부’는 ‘공동’으로 구성하고 남북의 두 ‘분단국가’는 각기 ‘주권이 없는 지방정부’로 격하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문제는 그 같은 ‘연방제’를 대한민국 헌법이 용인하느냐의 여부다.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사실이 있다. 북한 땅에 실존하는 사실상의 ‘주권국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자체의 헌법과 함께 그 헌법에 의거하여 “국가보다 上位의 정치실체”인 <조선노동당>의 규약이 명시하고 있는 것처럼 ‘주권’이 ‘노동자, 농민, 근로인테리와 근로인민’에게 국한되어 있는 ‘계급국가’라는 사실이다. 또한 북한은 ‘노동계급이 영도하는 노농동맹에 기초한 전체 인민의 정치사상적 통일’과 ‘계급노선’ㆍ‘군중노선’ㆍ‘인민민주주의 독재’를 추구하는 ‘공산주의 국가’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북한이 ‘공산주의 체제’를 해체하거나 변화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고 이를 불허하는 대한민국 헌법이 여전히 발효 중인 상황에서, ‘연방’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된 ‘통일국가’에 북한이 참가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현행 헌법이 용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이 때문에 <6.15 남북공동선언> 제2항은 대한민국 헌법에 저촉되는 것이고 따라서 <6.15 선언>은 무효일 수밖에 없다는 논란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5.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 - 盧武鉉ㆍ金正日의 위험한 二人三脚
오는 10월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盧武鉉 대통령과 金正日 사이에 있게 될 두 번째의 <남북정상회담>은 남한의 두 ‘친북ㆍ좌파’ 정권이 지난 10년 동안 추진해 온 대북 宥和政策의 壓卷이 될 전망이다. 지난 8월8일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된 정상회담 개최 합의에 관한 공동발표문에는 이번 평양 회담에서 다루어질 案件이 무엇이 될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공동발표문’은 특히 <6.15 남북공동선언>과 함께 ‘우리 민족끼리 정신’을 따로 거론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①한반도 평화와 ②민족 공동번영 및 ③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공동발표문’의 내용에는 주목할 대목이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에는 2개의 ‘문제 항목’이 있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통일원칙’을 밝힌 ①항과 ‘통일방안’에 관하여 ‘남의 연합제’와 ‘북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사이의 ‘공통성’을 ‘인정’한 ②항이다. 그런데, 8월8일자 ‘공동발표문’에서 남북은 <6.15 선언>을 언급하면서 굳이 ①항의 ‘우리 민족끼리’라는 ‘통일원칙’ 항목만을 따로 언급했다. 이로써 남북은 이번 평양 회담에서 ②항이 상징하는 ‘통일’ 문제보다 ①항이 상징하는 ‘평화’ 문제가 主題가 되리라는 것이 보다 분명해졌다.
이것은 남의 盧武鉉 대통령과 북의 金正日 사이의 그 동안의 ‘물 밑’ 흥정을 통해 이번 회담을 ‘평화’ 문제로 도배질을 할 생각임을 들어내 주는 것이다. 아마도 金正日은 소위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金日成의 遺訓”이며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할 생각이 없다”는 낡은 세리프를 다시 읊을 것이고 이를 토대로 두 사람은 ‘平和宣言’에 합의할 가능성이 커졌다. ‘平和宣言’의 내용도 어느 정도 예고되고 있다. 두 사람은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한국전쟁의 종결”과 “미-북간의 敵對關係 청산”을 요구하면서 이를 위하여 남북한과 미국 및 중국이 참가하는 ‘4개국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한국전쟁 終戰宣言”과 “미-북간의 平和協定 체결”을 논의하자는 제안을 내놓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남의 盧武鉉 정권과 金正日의 북한이 공동으로 연출하는 12월 大選 戰略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12월 大選을 앞두고 사실상의 ‘반 한나라당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한나라당> 집권 저지에 올인 하고 있는 金正日의 북한과 남한의 ‘친북ㆍ좌파’ 세력의 手中에는 <공직선거법>의 盲點을 이용하여 동원할 수 있는 秘藏의 마지막 카드가 또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공직선거법의 法定 大選 선거일인 12월19일이 가지고 있는 虛點으로 인한 12월3일부터 19일까지의 死角地帶를 이용하여 북한으로 하여금 테러 행위로 <한나라당> 후보의 大選 참여를 봉쇄하는 惡役을 수행하게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극단적 상황을 일단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남의 盧武鉉 정권과 북의 金正日 정권이 상호 협력을 통하여 大選 결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마지막 카드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
물론, 이 카드의 成事 여부는 미국이 이를 수용할 것인가의 여부에 달린 일이다. 그러나, 남의 盧武鉉 정권과 金正日의 북한은 이 카드의 成敗에 대비한 계산을 모두 하고 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만약 미국이 문제의 ‘4개국 정상회담’ 제안을 수용하면 그 결과는 不問可知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어서 <4개국 정상회담>이 일으키는 ‘평화’라는 이름의 회오리바람으로 임박한 大選 版圖를 휩쓸어서 <한나라당>을 결정적으로 ‘왕따’시킬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희망적 계산일 수 있다. 반면, 미국이 수용치 않을 때에 대해서도 이들의 對備는 있다고 보여 진다. 이렇게 되면 남북한은 함께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며 남북관계를 확대 발전시키고 민족의 공동 번영, 그리고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를 미국의 거부로 인하여 상실되게 되었다”고 미국을 비난하고 나서는 것이다.
남한의 ‘친북ㆍ좌파’ 세력은 이렇게 함으로써 ‘4개국 정상회담’ 문제를 가지고 2002년 ‘효순ㆍ미선 파동’의 再湯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하여 <4개국 정상회담>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규모 촛불시위가 전개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 문제로 특히 젊은 유권자들의 반미정서를 자극ㆍ선동함으로써 이를 이용하여 이들을 투표소로 끌어내고 그들로 하여금 <한나라당> 후보를 버리고 ‘범여권’ 후보에게 표를 던지도록 유도하는 것을 시도할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일은 12월 大選에서 남쪽의 ‘친북ㆍ좌파’ 정권의 再執權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임이 명백한 이번 ‘남북정상회담’과 ‘4개국 정상회담’을 제안하는 ‘平和宣言’을 金正日의 북한이 수용하는 代價로 남쪽의 盧武鉉 정권이 어떠한 反對給付를 제공하는 것이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는 8월8일자 ‘공동발표문’의 ‘민족 공동번영’이라는 문구에 감추어져 있다. 그 동안 盧武鉉 정권과 ‘범여권’ 세력에서 연기를 피워 오던 북한판 ‘마셜 계획’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궁금한 것은 盧武鉉 대통령이 평양으로 들고 갈 북한판 ‘마셜 계획’의 내용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자료가 있다. 盧武鉉 정권이 작년에 <한국산업은행>에 의뢰하여 작성한 <중장기 남북경협 추진방안>이라는 ‘대외비 정책보고서’에 담겨진 내용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 ‘정책보고서’는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에 걸쳐 ① 경제협력 기반 구축기 (북핵 상황 지속기 2006~2007년), ② 경제협력 도약기 (북핵 동결 및 폐기 2008~2010년), ③ 경제협력 심화 발전기 (북핵 폐기단계 2011년 이후) 등 3단계로 나눠 총 6백5십억2천만 달러(62조원)를 투입하는 대북 경제 지원을 제안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정부의 대북 지원은 ①사회간접자본(SOC) 건설, ②개성공단, ③금강산관광, ④에너지자원, ⑤북한산업 정상화지원 등 5가지 분야에 집중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를 위한 재원은 ①증세 (13조7천억원), ②목적세 신설 ③국채발행 (16조5천억원)은 물론 심지어 ④군사비 예산전환(5조8천억원) 등 모두 40조원 가량을 정부 차원에서 조달하고 나머지 부족분 22조원은 민간이나 외자를 통해 조달한다는 것이다.
62조원은 큰 돈이다. 대한민국 국민을 5천만명으로 계산한다면 1인당 124만원을 부담시키겠다는 것이다. 盧武鉉 정권은 이미 지난 4년 동안에 국가채무의 규모를 130조원에서 170조원으로 늘려 놓은 정권이다. 국민 1인당 340만원의 빚을 늘려 놓은 것이다. 이 국가채무액은 2007년분은 계상하지 않은 액수이기 때문에 盧 정권 하에서 늘어나는 국가채무액은 170조원 + 알파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 盧武鉉 정권은 거기에 북한판 ‘마셜 계획’으로 62조원을 더 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지적해 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이 62조원은 그가 임기 중에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6월15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盧武鉉 대통령의 회견 기사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盧武鉉 대통령은 “전임 사장이 발행한 어음은 후임 사장이 결제하는 것”이라면서 “두 달이 남았든 석 달이 남았든 내가 가서 도장 찍어 합의하면 후임 사장 거부 못 한다”고 말한 것으로 인용되었다. ‘善心’은 그가 쓰고 그 ‘부담’은 적어도 3명의 후임 대통령들에게 떠 넘겠다는 發想인 것이다. 8월8일 정상회담 개최 합의 발표와의 時差를 감안한다면 6월15일자 <한겨레신문> 회견은 문제의 북한판 ‘마셜 계획’의 내용이 이미 북한에게 ‘물 밑’으로 전달되었을 가능성과 함께 정권교체가 임박한 시점에서 문제의 ‘마셜 계획’의 이행 여부에 대한 북한측의 疑懼를 잠재우기 위하여 그의 絢爛한 ‘話術’을 동원한 것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이번 평양 회담에서 남측이 북측에 양보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다른 사안들도 있다. 첫째로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다. 그 동안 盧武鉉 정권의 청와대와 통일부, 그리고 국방부 등에서 나오고 있는 엇갈린 소식들은 NLL 문제에 관하여 북측으로부터 강도 높은 양보 요구가 있으며 이에 대해 盧 정권은 북측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 문제가 있다. 그 뿐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盧武鉉대통령의 金日成 墓所 참배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고 그에 더하여 <6.15 남북공동선> ②항의 “‘남의 연합제’와 ‘북의 낮은 단계의 연합제’ 사이의 ‘공통성’에 입각한 ‘통일방안’ 협의”를 위한 남북간의 ‘정치협상회의’ 문제가 거론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상황은 12월 大選을 통해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時點이 되면 남북관계는 것 잡기 어려울 정도로 더욱 헝클어져 있게 될 가능성을 예고한다. 우선, <한나라당>의 執權이 이루어질 경우, 남한의 대북정책은 수습하기 어려운 不渡 상황을 직면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盧武鉉 대통령의 6월15일자 <한겨레신문> 회견 발언에도 불구하고 바통을 이어받는 <한나라당> 정권으로서는 그 동안 ‘햇볕정책’과 ‘대북포용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친북ㆍ좌파’ 세력이 이끌어 온 金大中ㆍ盧武鉉 정권의 대북 宥和政策의 遺産을 그대로 계승할 수도 없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더구나, 10월 초에 있을 <남북정상회담>에서 盧武鉉 대통령이 풀어 놓을 ‘경협’과 ‘안보’ 분야의 不實 ‘어음’ 보따리들을 <한나라당> 정권이 고지식하게 ‘決濟’해 줄 필요도 없고 또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어음’의 ‘不渡’는 必至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제는 북핵 문제의 向方이다. 지금 베이징 6자회담은 일시적인 유포리아(euphoria)에 휩싸여 있다. 금년 말까지 <2.13 합의>에 입각한 북한 핵의 ‘全面申告’와 ‘不能化’(disablement)가 이루어질 가능성에 관한 幻想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의 상황이 아니다. 북한은 어떻게든 남한에서의 12월 大選까지는 版을 깨뜨리지 않는 상황 관리에 협조할 태세임에 틀림없다. 이를 위해 북한은 ‘영변 소재 5개 핵시설’이라는 ‘파먹은 김치 독’의 ‘폐쇄’(shut-down)를 수용하는 線까지의 ‘도마뱀 꼬리 자르기’작전을 수행 중에 있다. 문제는 거기서 부터다. ‘폐쇄’ 다음에는 ‘불능화’가 문제고 ‘全面申告’가 문제다. 그런데, 미국과 북한 간에는 ‘불능화’의 實體에 관하여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한때 ‘일시정지’를 운운했던 북한이 이제는 ‘무력화’(neutralization)를 운운하고 있다.
그보다도 문제는 ‘全面申告’다. ‘영변 소재 5개 핵시설’이라는 ‘꼬리’가 아닌 ‘몸통’이 문제인 것이다. 여기에는 ‘우라늄 고농축’(HEU) 문제는 물론 북한이 그 동안 개발ㆍ생산하여 보유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 數 未詳의 ‘핵폭탄’과 이번에 ‘폐쇄’된 ‘영변 소재 5개 핵시설’ 이외의 영변이 아닌 다른 지역에 위치하는 핵시설 문제가 포함된다. 예컨대, 함경북도 길주 무수단 소재 핵실험 설비 같은 것들이다. 이 같은 ‘몸통’ 부분에 관한 의혹을 해소하는 데 북한이 어디까지 호응할 것인지는 여전히 未知數로 남겨져 있다. 이 같은 현안들에 관한 북한의 입장은 명백히 밝혀진 것이 없다. 더구나, 북한은 이들 현안에 관하여 소위 ‘행동 대 행동’ㆍ‘말 대 말’의 차원에서 철저한 ‘주고받기’(give and take)를 고집하고 있을 뿐이다.
9월7일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참석 도중 이루어진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나의 목표는 ‘평화조약’(Peace Treaty)을 통해 한국전쟁을 종결시키는 것”이라면서 “이를 위해서는 金正日이 (핵) 프로그램을 검증 가능하게 폐기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한ㆍ미 정상회담에서의 이 같은 부시의 발언은 盧武鉉 대통령이 10월 초 평양에서 있을 金正日과의 정상회담에서 ‘평화’ 문제에 관한 논의를 부각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부시는 이날 회담에서 “평화체제 문제는 金正日에게 달렸다”는 점을 분명하게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盧武鉉 대통령 쪽에서는 부시의 발언 가운데 ‘종전선언’과 ‘평화조약’ 언급 부분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베이징 6자회담을 舞臺로 하는 북핵 해결을 위한 국제적 노력은 앞으로 금년 말까지는 潛伏性 소강상태가 지속되리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그 이유는 “영변 소재 5개 핵시설 폐쇄” 이후 핵문제에 관한 북한의 讓步線이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6자회담의 어느 참가국도, 각국이 가지고 있는 同床異夢의 이해관계 때문에, 회담을 破局으로 몰아 갈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6자회담의 주 당사국인 미국과 북한, 그리고 남한은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6자회담을 남한의 12월 大選과 連繫시켜 운영하고 있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盧武鉉 대통령과 金正日이 이끄는 南北韓 정권의 이해관계는 의심의 여지없이 일치하고 있다. 그들의 공동 관심사는 남한에서의 12월 大選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12월 大選에서 ‘평화’의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이것으로 특히 청년 유권자들을 유혹하여 <한나라당>의 승리를 저지하는 데 상호 共助하겠다는 것이다. 남한에서 지금 <대통합민주신당>(가칭)이라는 이름으로 재집결되고 있는 ‘범여권’의 ‘친북ㆍ좌파’ 세력과 金正日의 북한 간에는, <민주노동당>을 포함하여, 12월 大選에서 <한나라당>의 승리에 의한 政權交替를 저지하기 위한 ‘반 <한나라당> 연합전선’이 실질적으로 胎動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때문에 남의 盧武鉉 정권과 金正日의 북한의 입장에서는 베이징 6자회담에서 적어도 大選까지 破裂音은 禁物이다. 미국과의 탱고는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반면 미국의 가장 큰 걱정은 남한에서의 이번 大選 과정에서 행여 2002년의 ‘효순ㆍ미선 사건’과 유사한 사건에 말려들어서 새로운 ‘反美感情’의 噴出을 자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게는 최소한 12월 大選의 결과가 판명될 때까지는 남한은 물론 북한의 脾胃를 건드리는 일이 禁忌다. 9월7일 시드니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있었던 부시의 발언은 결국 미국이 한국의 盧武鉉 정권이 추진하는 <남북정상회담>에 걸림돌이 되지 않으면서 오는 年末까지 6자회담의 틀 속에서 가능한 한 북한을 달래고 얼러서 핵문제에 관하여 얻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를 얻어내는 實利作戰에 치중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임에 틀림없다.
6. 몇 가지의 提言 - 대북정책을 이렇게 바꾸어야 한다
12월 大選에서 <한나라당>의 승리를 통하여 실현되는 政權交替는 통상적 政權交替가 아니다. 이것은 그 동안 10년 간 계속된 ‘친북ㆍ좌파’ 정권의 退出과 ‘보수ㆍ우익’ 정부의 復歸를 의미한다. 대한민국의 非正常 상태가 正常化되는 것을 의미하고 이에 걸맞게 국정 전반에 걸쳐 정책과 체제의 革新이 이루어지게 될 것임을 뜻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정책 혁신의 영역은 대북정책의 영역이다. 무분별한 대북 ‘퍼주기’와 함께 남한 사회의 위험한 左傾化를 통해 남북관계를 극단적으로 歪曲시켜 놓은 金大中의 ‘햇볕정책’과 盧武鉉의 ‘대북포용정책’에는 혁명적인 메스가 가해져야 한다.
우선 새로운 대북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새로운 대북정책의 核心은 가장 먼저 ‘햇볕정책’과 ‘대북포용정책’에서 亡失되어 있는 ‘통일정책’을 復元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대북정책의 大尾는 통일이다. 따라서 ‘통일정책’이 빠진 대북정책은 대북정책이 아니다. 그 같은 대북정책은 하나의 似而非에 불과할 뿐이다. 새로운 대북정책의 核心을 이루는 ‘통일정책’은 당연히 헌법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즉, “전쟁이 아닌 평화적 방법”이라는 ‘통일의 방법’과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와 시장경제를 내용으로 하는 통일”이라는 ‘통일의 像’을 충족시키는 통일이라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사회의 ‘개혁ㆍ개방’과 이를 통한 ‘자유화’와 ‘민주화’라는 북한의 ‘체제변화’가 통일을 위한 필수적인 先決條件이라는 사실을 또한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당면한 대북정책은 현실적으로는 북한의 이 같은 ‘체제변화’가 적어도 당분간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인식에 토대를 두고 수립되고 추진되어야 한다. 북한의 金正日 독재정권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대북정책은 우선 그 같은 북한의 ‘체제변화’가 발생할 때까지의 過渡期間 중 한반도의 분단 상태를 효율적, 생산적으로 관리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라야 한다. ‘분단관리’인 것이고 이를 위한 수단이 ‘南北對話’다. 이와 관련하여 지적되어야 할 문제는 우리 사회 안에는 ‘통일정책’과 ‘南北對話’를 混同하는 흐름이 있고 이 같은 誤導ㆍ歪曲된 흐름이 정권 세력에 의하여 助長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대북정책을 통하여 이것이 시정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金正日을 비롯한 북한의 ‘공산 당국자’들은 ‘南北對話’의 相對方이기는 하지만 ‘통일논의’의 相對方은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이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공산주의’를 불법화시키고 있는 대한민국의 헌법이 먼저 개정되거나 아니면 북한이 ‘공산주의’를 공식적으로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이 대한민국과 형성하는 ‘연방’이라는 이름의 하나의 ‘주권국가’ 안에서 ‘中央政府’ 구성에 참여하고 또 ‘支邦政府’의 하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에 <6.15 남북공동선언>은 대한민국 헌법을 위반하는 違憲文書이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폐기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북한의 ‘공산 당국자’들을 상대로 통일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또한 지난 60년 간 북한지역에서 지속되어 온 독재와 억압을 追認하는 것일 뿐 아니라 앞으로 실현될 ‘통일국가’에서 그 같은 독재와 억압의 主役인 그들에게 ‘株主’의 위상을 부여하며 나아가서 그 같은 독재와 억압을 ‘통일국가’에서 수용하겠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1990년대 초 독일의 통일 과정은 한반도에서 앞으로 전개될 통일의 과정에서도 북한의 현 '공산 당국자'들이 설자리는 없다는 것을 증언해 주었다. 우리의 통일의 상대방은 북한의 동포들이지 그들이 아니다. '통일국가'에서 오늘날 북한의 '공산 당국자'들은 '淘汰'의 대상, '審判'의 대상이며 백보를 양보하더라도 그들의 '改悛' 여하에 따라 '寬容'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 이전의 ‘분단관리’ 단계에서 우리는 金正日을 ‘南北對話’의 相對方으로 상대해야 한다. 분단체제 하에서는 그들이 북한의 '지역'과 '인구'를 실질적으로 통제 관리하고 있는 實權者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을 상대로 하는 ‘南北對話’를 통하여 우선 현존 停戰體制를 유지하는 가운데 이를 남북 간의 平和體制로 전환시키는 문제를 논의해야 하고 상호 신뢰구축 조치들을 강구하여 전쟁재발을 막고 서로 위협을 느끼지 않는 平和共存을 과도적으로 제도화해야 하며 그 테두리 안에서 이산가족을 포함하여 인적 왕래와 물적 교류를 추진해야 한다. ‘南北對話’를 통해 분단으로 인한 고통과 불편을 최소화 하고 가능한 한 한도 안에서 통일된 것과 최대한 같은 상태로 남북관계를 변화시켜야 한다.
이것이 곧 ‘南北對話’를 통하여 추진되어야 할 ‘분단관리’의 과제들이다. 이 같은 과제들의 해결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남북한은 이미 1992년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약칭 <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하여 이를 발효시켜 놓은 바 있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은 당연히 북한의 이행 거부로 인하여 冬眠 상태에 있는 <남북기본합의서>를 되 살려서 이에 입각한 ‘南北對話’의 추진과 이를 통한 남북관계의 개선ㆍ발전을 모색하는 것이라야 한다.
‘분단관리’ 단계는 이처럼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관리하면서 북한의 ‘체제변화’를 기다리는 기간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북한의 ‘체제변화’를 앉아서 기다리기만 할 만큼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정책영역이 등장한다. ‘對北工作’이 그것이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북한의 ‘체제변화’를 촉진하고 加速化시켜야 한다. 그러나 ‘對北工作’은 매우 민감한 영역이다. 북한이 반발할 경우 안보의 위기를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對北工作’은 문자 그대로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할 정도”의 고도의 보안조치가 요구된다. 이와 함께 또 하나의 정책영역이 있다. 북한에서 1989년에 발생했던 東獨의 붕괴와 같은 ‘急變事態’가 예고 없이 발생했을 때 이에 대해 대응할 수 있도록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분단관리’ 단계의 남북관계는 이상에서 살펴 본 것처럼 四重의 정책영역을 제시하고 있다. 즉 ①'통일정책'과 ②'분단관리'의 영역, 그리고 ③‘對北工作’과 ④‘急變事態’ 대비의 영역이다. 이 같은 四重의 정책영역에 동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에 적합한 대북정책 수행 체제와 진용을 정비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문제의 四重의 대북정책 영역을 영역 별로 차별화 하고 영역 별 分業體制를 구축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대북정책 추진 分業体制에 관해서는 합리성과 과학성을 자랑하는 西獨 사람들이 統獨 이전의 시기에 바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他山之石으로 참고할 필요가 있다. 西獨은 '통일정책'은 우리의 통일부에 해당하는 <내독관계성>(<전독성>의 後身)에 전담시켰다. <내독관계성>은 우리의 <민족통일연구원>에 해당하는 <전독문제연구소>를 산하에 두고 순수한 독일 통일정책 연구와 통일 이후에 대비한 정책 개발 및 이에 관한 교육ㆍ홍보 업무를 전담하여 수행했다. 반면 東獨과의 협상, 즉 ‘분단관리’ 업무는 <내독관계성>은 손을 떼고 <내각수상실>의 <특수임무 담당 무임소국무상>으로 하여금 전담케 했다. 그는 정부의 관계 부처에서 차출된 담당분야 국장급 간부들로 구성되는 '협상 전담반'을 태스크 포스로 편성하여 東獨과의 협상을 전담했었다.
東獨과의 ‘협상 전담반’을 <내각수상실>에 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그 하나는 兩獨 협상이 '고도의 통치행위'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의 수반인 수상이 이를 직접 책임지고 장악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또 하나는 兩獨 협상의 현안들이 정부 전반에 걸친 사안들이고 복수의 이해 당사부처들이 관계되기 때문에 이들 복수 부처의 입장들을 조정 통제하기 위해서는 <내각수상실>의 '權威'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東獨의 ‘체제변화’를 위한 工作은 西獨의 국가정보기구인 BND가 다른 어느 정부부처도 모르게 엄격한 보안조치 속에서 비밀리에 추진했음은 물론이다.
이 같은 西獨 방식을 우리의 대북정책 추진체제에 椄木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북정책을 ‘통일정책’ 및 ‘분단관리’(‘남북대화’)와 ‘對北工作’ 및 ‘急變事態 대비’의 4개 정책영역으로 구분하여 分業體制를 구축하면 된다. ‘통일정책’ 관련 업무는 ‘통일부’가, ‘분단관리’ 차원의 ‘남북대화’ 업무는 장관급 직제를 대통령 직속으로 신설하여 각기 주관하게 해야 한다. 특별히 보안조치가 요구되는 ‘對北工作’과 ‘急變事態 대비’는 당연히 국가정보기구인 國家情報院이 그 동안의 대북 宥和政策의 侍女 노릇을 걷어치우고 이를 주관하게 해야 한다. 이 같은 교통정리의 일환으로 통일부는 ‘남북대화’에서 손을 떼고 ‘통일정책’의 연구와 교육 및 홍보에 주력해야 한다. 통일부가 ‘南北對話’에서 손을 떼야 하는 이유는 통일부가 상호 역기능 관계에 있는 ‘통일정책’과 ‘남북대화’를 함께 관장하면서 ‘남북대화’에 沒頭하는 과정에서 ‘통일정책’이 失踪되는 결과가 초래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북정책 수행체제의 人的 ‘물갈이’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南北對話’의 영역에서 주로 ‘386’ 출신의 ‘친북ㆍ좌파’ 人脈이 판을 치는 ‘秘線’ 활용이 억제되고 남북 간의 모든 通信線(lines of communication)이 公的 通路로 통합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盧武鉉 정권 하에서 국가는 물론 공공기관의 要所들을 대거 占據하고 있는 ‘친북ㆍ좌파’ 人脈에 대한 淸掃도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南北對話’와 ‘통일정책’이 헌법 수호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사람들에 의하여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간 金大中 정권의 ‘햇볕정책’과 盧武鉉 정권의 ‘대북포용정책’으로 扮飾되어 온 대북 ‘퍼주기’는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새 대북정책이 일체의 대북지원을 획일적으로 중단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대북지원은 인도적 지원과 비인도적 지원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실시되어야 한다.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인도적 지원은 계속 허용되어야 하지만 개별적 사업이 인도적 지원의 기준에 합치하는지의 여부에 대한 사전 심의와 실수요자가 수령하고 있는지의 여부에 대한 사후 확인을 위한 관ㆍ민 합동 심의기구를 설치ㆍ운용해야 한다.
정부는 인도적 차원을 벗어나는 정책적 대북 경제지원에 대해서는 우선 그 같은 지원을 통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확고한 정책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그 동안처럼 회담을 위한 회담의 개최 또는 1회성 이산가족 상봉 실현 등의 대가로 북측이 요구하는 대로 응해 주거나 아니면 주로 정권세력이 정략적 목적을 위하여 제공하는 무분별하고 방만한 지원 방식은 지양되어야 한다. 정부가 대북 경제 지원을 통해 추구할 목표는 이를 통해 북한이 개혁ㆍ개방과 함께 ‘시장경제’를 수용하게 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고 정치적 민주화를 촉진하는 것도 대북 경제지원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정부의 새 대북정책은 북한의 經濟自立의 토대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대북 경제지원 계획을 마련하고 개별적인 대북 지원은 반드시 이 같은 종합계획의 틀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 통일부가 恣意로 관리하고 있는 ‘남북협력기금’의 관리체제를 개선ㆍ보강해야 한다. ‘남북협력기금’의 관리 책임은 통일부로부터 대통령 직속으로 신설되는 장관급 ‘남북대화’ 책임자에게 이관되고 관ㆍ민 합동의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심의ㆍ의결기구가 구성되어 관리의 책임을 맡도록 해야 한다.
비인도적 차원의 정책적 대북 경제지원은 철저하게 ‘상호주의’에 입각하여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상호주의’를 이유로 북한이 우리의 경제지원을 거부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金大中이 李會昌에게 말한 것처럼 “상호주의 때문에 북한이 받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대북지원은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 그 같은 경우에는 북한으로 하여금 혹독한 ‘禁斷症狀’을 경험하도록 함으로써 “反對給付 없는 곳에 지원이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스스로 깨우치게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대북 식량지원은 민간 차원의 인도적 지원을 제외하고는 반드시 북한 농민들의 增産 의욕을 제고시킬 수 있는 농업 개혁 수용을 전제로 하여 제공되어야 한다. 이 같은 농업 개혁은 반드시 현재의 ‘협동농장’ 위주의 集團農 방식을 지양하고 中國에서와 같이 家族農 등 個人農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그 主軸이 되어야 한다.
새 대북정책은 국가안보의 차원에서 “북한을 상대로 평화를 求乞한다”는 發想과는 단절되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는 1953년 이래 54년간에 걸쳐 한반도에서 효과적으로 전쟁재발을 방지하고 평화를 지켜 온 평화보장 장치들의 훼손 없는 유지와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는 조정을 통해 확고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국가안보에 관해서는 ‘힘에 의한 평화’가 대북정책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새 정부는 미국과 原點의 차원에서 한국군에 대한 ‘전시 작전통제권’ 문제 해결 방안을 再論하고 이를 통해 ‘韓美同盟’을 확고부동하게 復元시켜야 하며 북한과는 ‘신뢰의 구축’을 토대로 ‘상호주의’에 입각한 ‘군비통제’ ‘군비감축’이 추진되어야 한다.
새 대북정책에서 북핵 문제에 관한 정부의 입장에는 一大轉換이 필요하다. 북핵 문제는 결코 ‘民族共助’의 차원에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南北對話’를 통하여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결국 현재 진행 중인 베이징 6자회담이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하여 해결되어야 할 국제적 문제다. 다만, 경제적 난국이 가중되고 있는 북한의 입장에서 북한 경제의 대남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다는 일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를 이용하여,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調律 아래, ‘채찍’과 ‘당근’을 배합하는 ‘南北對話’의 효율적 추진을 통해 북한의 핵 포기를 유도하거나 강요하는 데 기여할 여지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새 정부는 수수한 인도적 지원을 제외한 나머지 일체의 비인도적 대북 경제지원은 핵문제와 확실하게 連動시키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서 제기되는 당면한 문제는 오는 10월 초 평양에서 열리는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 결과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문제다. 이번 평양 회담의 결과를 豫斷할 길은 없다. 그러나, 가능성의 차원에서, 지금의 시점에서 거론되고 있는 ‘결과’들이 있다. ‘4개국 정상회담’ 제안을 담은 ‘平和宣言’이라던가, 천문학적 규모의 대북 ‘마셜 계획’이라던가 ‘연방제’ 실현 추진을 위한 ‘정치협상회의’ 같은 것들과 함께 NLL 문제를 비롯한 안보 이슈들이 거론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민감한 <남북정상회담> 의제들이 이제 남은 임기를 5개월 앞두고 있는 盧武鉉 대통령에 의하여 아무런 국민적 합의 도출 과정도 없이 帳幕 속에서 준비되고 있다는 데 있다.
이에 대해서는 새 정부 출범 이후의 새로운 대북정책의 차원에서는 물론이지만 大選을 코앞에 두고 있는 時點에서 차기 정권 담당을 노리고 있는 <한나라당> 입장에서 문제의 정상회담에 앞서서 입장을 밝혀 둘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은 이 문제에 관한 입장 표명과 12월 大選의 票心 사이의 函數關係에 관하여 복잡한 利害打算을 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최소한 이번 평양 회담에서 국민적 합의 도출도 없이 국민에게 과도한 재정 부담을 초래하거나 또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저해하고 국가안보에 有害한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내년에 출범할 <한나라당> 정권은 무조건 이에 의하여 拘碍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반드시 분명하게 천명해 두는 것이 옳다.
마지막으로 새 정부의 새 대북정책이 가장 重點을 두어야 준비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비록 그 같은 상황이 과연 가까운 시일 안에 전개될 것인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북한에서 ‘急變事態’가 발생할 때에 대비하는 일이다. 북한의 ‘急變事態’는 발생하더라도 구체적으로 어떠한 내용으로 발생할 것인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북한이 처해 있는 내외 정세와 상황은 ‘急變事態’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沸騰點에 와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 동안 金大中ㆍ盧武鉉 정권 안팎의 ‘친북ㆍ좌파’ 세력들은 북한에 ‘急變事態’가 날 경우 그 부담을 우리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북한의 ‘急變事態’를 무기한 지연시키기 위해서라도 대북 ‘퍼주기’가 필요하다는 터무니없는 억지 논리를 펼쳐 왔다. 그러나, 이 같은 ‘친북ㆍ좌파’의 논리에는 근본적 잘못이 있다. 북한에서 일어날 ‘急變事態’는 대북 ‘퍼주기’라는 호미로 막아질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새 대북정책에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한 對備가 포함되어야 한다. 그 같은 對備의 차원에서 검토해 볼 代案이 있다. 그것은 ‘一國兩制’에 대한 검토다. 북한이 ‘急變事態’로 스스로 무너지는 일이 발생할 경우 우려해야 할 두 가지 상황이 있다. 하나는 미국의 南北戰爭 후 북부로부터 남부로 몰려간 ‘카펫배거’(carpetbagger)들처럼 남한의 협잡군들이 대거 북한으로 몰려가서 ‘한 탕’을 노리는 상황이고 또 하나는 독일통일 후 많은 元 東獨人들이 그랬던 것처럼 ‘시장경제’의 경쟁체제에 숙달되지 못한 북한 동포들이 통합에 적응하는 데 실패하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 대한 대비책으로 남북간의 과도적인 ‘一國兩制’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북한에서 ‘急變事態’가 발생할 경우 남북한 간의 경계선을 과도적으로 유지하면서 북한 동포들을 남한의 협잡군들에 의한 있을 수 있는 늑탈 행위로부터 보호하는 한편 북한 주민들에게 ‘시장경제’의 경쟁체제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허용하면서 북한 경제의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체계적으로 진행시키는 것이다. 지금 중국이 홍콩과 마카오에서 실시하고 있는 ‘一國兩制’를 逆의 입장에서 북한을 상대로 실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정책 개발 차원의 연구는 아직 未盡하다. 앞으로 ‘분단관리’로부터 ‘통일’로의 이행 과정을 순탄스럽게 하는 방안의 차원에서 ‘一國兩制’에 대한 보다 깊은 연구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끝]
=================================
#첨부: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1992년2월19일 공포ㆍ발효]
남과 북은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뜻에 따라, 7 4남북 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원칙을 재확인하고,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여 민족적 화해를 이룩하고, 무력에 의한 침략과 충돌을 막고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며, 다각적인 교류․협력을 실현하여 민족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도모하며,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하면서,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제1장 남 북 화 해
제1조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제2조 남과 북은 상대방의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아니한다.
제3조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비방 중상을 하지 아니한다.
제4조 남과 북은 상대방을 파괴 전복하려는 일체 행위를 하지 아니한다.
제5조 남과 북은 현 정전상태를 남북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 이러한 평화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현 군사정전협정을 준수한다.
제6조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대결과 경쟁을 중지하고 서로 협력하며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
제7조 남과 북은 서로의 긴밀한 연락과 협의를 위하여 이 합의서 발효 후 3개월 안에 판문점에 남북연락사무소를 설치 운영한다.
제8조 남과 북은 이 합의서 발효 후 1개월 안에 본회담 테두리 안에서 남북정치분과 위원회를 구성하여 남북화해에 관한 합의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구체적 대책을 협의한 다.
제2장 남 북 불 가 침
제9조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하여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상대방을 무력으로 침략하지 아니 한다.
제10조 남과 북은 의견대립과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한다.
제11조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 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
제12조 남과 북은 불가침의 이행과 보장을 위하여 이 합의서 발효 후 3개월 안에 남 북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 운영한다.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는 대규모 부대이동과 군사연습의 통보 및 통제문제,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문제, 군인사교류 및 정보교환 문제, 대량살상무기와 공격능력의 제거를 비롯한 단계적 군축실현문제, 검증문제 등 군사적 신뢰조성과 군축을 실현하기 위한 문제를 협의 추진한다.
제13조 남과 북은 우발적인 무력충돌과 그 확대를 방지하기 위하여 쌍방 군사당국자 사이에 직통전화를 설치 운영한다.
제14조 남과 북은 이 합의서 발효 후 1개월 안에 본회담 테두리 안에서 남북군사분과위원회를 구성하여 불가침에 관한 합의의 이행과 준수 및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 대책을 협의한다.
제3장 남 북 교 류 협 력
제15조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통일적이며 균형적인 발전과 민족전체의 복리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자원의 공동개발, 민족내부교류로서의 물자교류, 합작투자 등 경제교류와 협력을 실시한다.
제16조 남과 북은 과학 기술, 교육, 문학예술, 보건, 체육, 환경과 신문, 라디오, 텔레비젼 및 출판물을 비롯한 출판 보도 등 여러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실시한다.
제17조 남과 북은 민족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왕래와 접촉을 실현한다.
제18조 남과 북은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자유로운 서신거래와 왕래와 상봉 및 방문을 실시하고 자유의사에 의한 재결합을 실현하며, 기타 인도적으로 해결할 문제에 대한 대책을 강구한다.
제19조 남과 북은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해로, 항로를 개설한다.
제20조 남과 북은 우편과 전기통신교류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 연결하며, 우편 전기 통신 교류의 비밀을 보장한다.
제21조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경제와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서로 협력하며 대외에 공동으로 진출한다.
제22조 남과 북은 경제와 문화 등 각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실현하기 위한 합의의 이 행을 위하여 이 합의서 발효 후 3개월 안에 남북경제교류협력공동위원회를 비롯한 부문 별 공동위원회들을 구성 운영한다.
제23조 남과 북은 이 합의서 발효 후 1개월 안에 본회담 테두리 안에서 남북교류․협력분과위원회를 구성하여 남북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구체적 대책을 협의한다.
제4장 수정 및 발효
제24조 이 합의서는 쌍방의 합의에 의하여 수정 보충할 수 있다.
제25조 이 합의서는 남과 북이 각기 발효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그 문본을 서로 교환한 날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
남북공동선언
2000년6월15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13일부터 6월15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하였으며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 정상들은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對北政策의 올바른 전개방향
- 이동복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07-09-22, 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