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층은 왜 좌파에 등을 돌렸는가?

左派는 이렇게 패주(敗走)하고 있다...황성준 前 조선일보 러시아 특파원 강연
◎ 편집자 주 ; 아래는 조갑제 현대사강좌에 강사로 나선 황성준 前 조선일보러시아특파원의 「젊은층은 왜 좌파에 등을 돌렸는가」 강연 중 한 부분이다. 황성준氏는 서울대 정치학과와 동대학원 석·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러시아(당시 소련)로 유학 가 상트페테프부르크대학 정치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강사를 지냈다. 조선일보 모스크바 특파원을 거쳐 94년 시베리아에서 활동 중인 북한 벌목공들을 특종 취재, 탈북자(脫北者)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체첸·아프가니스탄 등 중근동 분쟁지역을 취재하는 종군기자로 활동하다, 2001년 귀국해 현재까지 우파(右派)운동을 벌이고 있다.
황성준 씨
젊은 세대가 좌파(左派)에 등을 돌리고 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현실(現實)의 변화(變化), 노무현의 실정(失政). 메신저 문제의 해결 등이 그 이유들이다.

첫째, 현실의 변화란 「좌파조차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스스로 등을 돌리고, 변해버렸다」는 말이다. 이런 현실의 도래는 물론 좌파가 만든 게 아니다. 여기 계신 선배 여러분의 뜨거운 노력의 결과였다.

달걀10개 배급받으려 줄서는 이상향(理想鄕)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저는 공산주의 소련을 이상향으로 생각해서 모스크바로 유학까지 갔었다. 그러나 소련에선 한 달간 먹을 달걀 10개를 배급(配給)받기 위해 줄을 서야했다. 간신히 배급받은 담배는 그야말로 「피우지 못할 맛」이었다.

사람은 참 이상한 동물이다. 그러면서도 좌파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건 소련지도부의 잘못이다. 막스-레닌이즘은 옳지만, 일부 간부가 잘못한 것이다!」이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이념을 공부하려 했다. 하지만 소련에서 박사논문을 써내려 갈수록,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됐다.

노숙자도 버릴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소련의 현실에 좌절할 무렵, 조선일보 기자신분으로 탈북자 취재에 나섰다. 북한과 러시아 국경 핫산 역은 북한 벌목공(伐木工)들이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이곳엔 일주일에 두 번 기차가 지나간다. 그때마다 벌목공과 세관원 사이에선 싸움이 벌어진다. 실어 나르는 짐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평범한 북한인의 모습을 그려보자. 운동화 세 켤레 정도를 목에 멘다. 노숙자도 못 쓸 쓰레기 같은 신발들이다. 브라운관이 1m는 될법한 중고 TV를 싣는다. 줘도 안 가질 고물들이다. 벌목공들은 그런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열차에 오른다.

이들의 표정이 어떠할 것 같은가? 표현 못할 기쁨에 넘쳐 미소를 띠고 있다. 폐품 같은 운동화를 들고 가면서도 우리 순이, 우리 철수 좋아할 생각에 가슴 벅차는 것이다. 이데올로기? 평등의 이상? 그런건 없었다. 남북한 좌우(左右)의 게임은 이미 끝난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필리핀처럼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생각이 바뀐 결정적 계기는 중근동 분쟁(紛爭)지역 취재를 나서면서다. 한국에 살면서 최소한의 안전(安全)이 보장되는 나라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 그런 나라는 북미, 유럽, 호주, 일본 그리고 한국 등 소수에 불과했다. 아프리카, 중동 이런 곳의 사지(死地)를 돌아다니며 대한민국을 다시 보게 됐다.

90년대 조선일보 사사(社史)를 들추다 재밌는 사진을 발견했다. 64년 조선일보 모 기자가 필리핀 출장을 간다고, 사장을 비롯한 주요 간부가 찍은 기념사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해방 이후 첫 번째 기자(記者) 출장이었다. 이 사람은 갔다 와서 시리즈 기사를 썼는데, 주제는『우리는 언제나 필리핀처럼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였다.

나이 마흔, 연봉 8천의 노동자들

83년 대학생 신분으로「공활(工活)」이라는 이름의 「위장취업」을 했다. 매일 12시간씩 일을 했는데, 받은 임금은 8만3700원이었다. 월급봉투를 받으면 동료들과 소주를 마시면서『이놈의 세상 뒤집어버리자』고 입을 모았다.

당시 동료들은 고교 졸업 후 공장에 취직한지라 지금 나이가 마흔 살 정도인데, 대개 7,800만원에서 8,200만원 정도의 연봉을 받는다.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고 발버둥 쳤던 이들이지만, 대한민국? 정말 괜챦은 나라다. 소중히 지켜야 할 곳이다.

돈만 있으면 다 되는 건 『좋은』 사회

저희 세대는 시장경제, 자본주의,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자랐다. 이런 시스템의 혜택을 공기처럼 생각했다. 흔히 『돈만 있으면 다 된다』는 말을 욕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제3세계를 돌아다니며 이것이 좋은 말임을 알게 됐다. 돈만 있으면 편의점에서 물건을 살 수 있는 사회가 많지 않은 것이다. 돈만 있으면 다 돼. 그게 욕이 아님을 알게 됐다. 예컨대 돈만 있으면 편의점에서 마음대로 물건을 살 수 있는 사회가 많지 않은 것이다.

연봉 4,500만원이면 세계 상위 1%

60억 세계 인구 중 상위 1% 연봉이 4만7천500불이다. 한국 돈 4,500만원이면 상위 1%가 된다. 상위 10%면 2만5천400불, 연봉 2400만원이다. 50%는 850달러, 연봉80만원이다.

운동권은 좌파이론의 대부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을 달달 외우며 컸다. 한국은 매판자본이어서 80년대 후반이면 자연스럽게 무너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건 모두 틀린 말이 됐다. 「빨갱이들」눈에는 황당한 일이었다. 이미 망해야 할 한국이 성장을 거듭한 탓이다. 현실은 좌파이론으로 합리화시키기 어려운 단계까지 가버렸다.

20대, 근본적으로 우파

지금 20대는 근본적으로 우파일 수밖에 없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좋아한다. 이 친구들은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고 한반도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안다. 「북한 정권」에 대해선 경멸을 금치 못한다. 다만 이들이 아직 우파가 되지 못한 이유는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가리키는 이들이 아직도 좌파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시 설명하기로 한다.

부채의식 386세대의 탈(脫)좌파

젊은 층이 좌파에 등을 돌린 두 번째 이유는 노무현 정권의 실정(失政)이다. 사람이란 현실을 보고도 잘 변하지 않으려 한다. 억지로 꽤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 저 역시 소련에서 생각이 바뀌는 데 5년이나 걸렸다.

그러다가 노무현 정권이 등장했다. 이들은 철저한 무능(無能)을 보여줬다. 386세대라고 다 좌익(左翼)운동권은 아니고, 뭔가 양심적 가책을 느끼는 다수의 그룹이 있다. 독재에 저항한 소수에 대해, 자신은 동참하지 못했다는「역사적 부채(負債)의식」을 느낀 세대가 많다. 이런 사람들은 2002년 대선 당시 압도적으로 노무현을 지지했었다. 그런데 이들 「직업인(職業人)386」이 「운동권(運動圈)386」에 의문을 품게 됐다.

운동권386에 『실은 더한 놈들이었군』

직업인386들은 기업에 있건, 사업을 하건 경쟁에서 살아남아온 전문인들이다. 외국도 최소한 몇 차례 돌아다녔고, 열심히 일해 자기 분야에서 실력도 갖춘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부채의식으로 운동권386에게 정권을 몰아줬다. 그런데 현실은 참담했다. 무능할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깨끗지 못했다. 일을 못해봤다는 건 더 이상 핑계가 될 수 없었다. 각종 스캔들, 게이트를 보며 『사실은 더한 놈 들이었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메신저로서의 애국세력 등장

젊은 층이 좌파에 등을 돌린 세 번째 이유는 메신저 문제의 해결이다. 여기 계신 어르신들이 옳은 일을 했음에도 꼴통으로 낙인찍혀진 것은 세상에 전달하는 채널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우파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 개가 짖어라. 이런 식이었다.

「메시지」가 옳아도 「메신저」가 안 좋으면 나쁜 것, 틀린 말이 된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에 들어서 메신저 문제가 해결됐다. 여러분 같은 애국(愛國)세력이 일어났다. 성실하고 조용하게 살던 분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뉴라이트에 대해 여러 평가가 있지만, 어쨌든 좌파출신이 좌파에게 「너희는 틀렸다」고 떠들기 시작했다.

새정권은 右派 아닌 脫좌파실용주의 정권, 할 일 많아

한국사회는 이제 관념적(觀念的) 사회에서 실용적(實用的) 사회로 바뀌고 있다. 물론 젊은 층이 확실한 우파가 된 것은 아니다. 우파 쪽으로 오고 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너무 조급한 분들이 많다. 우파 쪽으로 오려고 하는데, 『아직도 빨갱이』라고 비난하면 오다가 돌아가 버린다. 어르신들 심정은 이해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주길 바란다.

이번에 정권이 바뀐다고 확실한 우파정권이라고도 생각지 않는다. 다만 脫좌파 실용주의 정권이라고 본다. 장기적으로 할 일이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이 젊은이를 가르칠 교육재단을 만드는 것이다. 미국의 보수주의 씽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 리더십 인스티튜트 등이 필요하다. 미국도 60년대 좌파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그리고 노력했고 보수주의 레이건 정권을 만들었다.

『커피전문점이나 내겠다』며 사표 쓴 청와대관리

정권을 두 번이나 빼앗긴 우파는 노이로제 음모론에 빠져있다. 그러나 장담한다. 좌파는 패주(敗走)하고 있다. 지금 청와대에는 행정관으로 오려는 사람이 없다. 있던 사람도 사직을 한다.

알고 지내던 청와대 관리 한 사람도 어제 사표를 쓰고 나왔다. 하는 말이 『선거는 이미 진 것이니, 커피전문점이라도 내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동심원 2, 외곽의 좌파들이다. 동심원 1에 있는 골수 좌파들은 최후의 발악을 할 것이다. 그리고 끝까지 김정일과 같이 갈 것이다.

정리 김성욱 기자 [koreaofkorea@naver.com]

사교(邪敎)에 빠진 좌파와 생계형(生計形) 좌파들

좌파이념이 현실 앞에 붕괴됐음에도 왜 386좌파가 남아있을까? 여기는 근본적으로 두 가지 그룹이 있다.

첫째는 정말 골수들이다. 「사이비 종교화」된 자들이다. 이들은 일종의 구제불능이다. 자신들의 조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믿는 이들이다.

서원에 토치카를 건설한 좌파

그 정도까진 안 가더라도, 학교(學校)엔 좌파가 진을 치고 있다. 건국 이후 경제 성장, 안보 건설을 하면서 군인(軍人), 상인(商人)이 등장했고, 과거의 물적(物的) 토대를 빼앗긴 좌파들은 일종의 서원(書院)으로 들어갔다. 대학에 가 명분론(名分論), 관념론(觀念論)을 가지고 토치카를 건설한 것이다.

좌파운동, 부자출신이 끝까지 한다

서구의 귀족은 기사, 군인, 상인이 주도했다. 반면 한국은 500년 넘게 문인이 통치했다. 근대화과정에서 좌파성향 관념주의·명분주의에 빠진 문인그룹은 대학으로 몰려갔다.

실제 가난한 고학생이 좌파이론가가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돈 없는 친구들은 운동을 하다가도, 현실로 돌아간다.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끝까지」좌파 운동을 하는 사람은 잘 사는 사람들이다. 백낙청 같은 사람, 재벌 아들이다. 노회찬? 역시 먹고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부자이다.

전교조, 박물관 화석으로 보내야 할지도

저희 세대에서 생각이 가장 안 바뀌는 집단은 전교조이다. 회사 같은데 들어가면 소위 때도 묻고, 국제정세 알게 되고 바뀌게 된다. 그런데 지적(知的) 충격을 받기 어려운 집단이 교사들이다. 항상 만나는 사람은 자신보다 생각이 낮은 아이들이다. IQ는 교사보다 더 높을지 모르지만, 지적 고민은 안 해도 된다. 이런 곳에서 나온 전교조는 80년대 화석(化石)과 같다. 박물관에서 화석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대세는 애국세력으로 왔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사상적 내전을 치러야 할 집단이 전교조, 그만큼 안 바뀌는 것이 교수집단이다.

盧정권 들어 첫 취직한 청와대2급 이야기

두 번째는 생계(生計)형 좌파들이다. 예를 들어보자.

알고 지내던 대학 2년 선배가 있다. 이 사람은 盧정권 이전 단 한 번도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다. 사업한 적도 없다. 아내가 학습지 교사를 해서 생계를 꾸렸다. 장모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이 XXX 서울대 나왔다고 딸을 보냈는데 돈 한 번 번 적이 없다. 때려 XXX도 못하겠고...』뭐 이런 식이다.

이 사람이 盧정권 들어 3급 공무원이 됐다. 현재는 청와대 2급이다. 처음으로 월급을 받아봤다. 그러다가 2004년 노무현 탄핵이 이뤄졌다. 장모가 나서 온 친척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시청 앞 촛불시위에 나오라는 것이었다.

『이 짓 그만두면 뭐해먹고 살겠냐?』

제 동기 한 명이 있다. 환경운동으로 상당히 이름이 난 친구이다. 한번 만났는데, 술이 취하니까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네가 옳다. 시장경제가 옳고 사회주의 다 틀렸다.』제가 그렇다고 왜 우냐고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이 스물에서 25년간 이 짓을 했다. 명성도 쌓고, 후배도 많다. 이걸로 생계도 꾸린다. 그런데 이 짓 그만두면 뭘 해먹고 살겠냐?』

그렇다. 좌파운동 하면서 수십 년간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큰돈이건 적은 돈이건 생계를 유지해왔다. 지금 와서 좌파운동을 그만두는 건 목사님이 갑자기 『예수는 신이 아니라』고 외치는 격이다. 이런 386들이 너무나 많다.


정리 김성욱 기자 [koreaof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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