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나 儒敎가 가장 강조하는 인간됨의 기초는 겸손이다. 孔子의 論語엔 “가난한 사람이 원한을 품지 않는 것보다는 富者가 겸손해지기가 더 쉽다”라는 말이 있다. 신약성경 빌립보서 2장엔 사도 바울의 이런 말이 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 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겸손은 단순히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다.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남을 배려하는 자세이다. 자신을 자랑하더라도 동시에 남을 더 높여주면 이는 오만이 아니고 겸손이다. 겸손은 상대적 개념이다.
겸손의 반대말은 오만이고 교만이다. 교만한 자는 상식을 모르기 때문에 세 가지를 할 줄 모른다. 감사할 줄 모르고, 사랑할 줄 모르며, 분노할 줄 모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교만한 자의 행태가 이를 증명한다. 그는 6.25 학살자의 사위와 딸을 청와대로 보내준 국민들과 대한민국의 너그러움에 대하여 감사할 줄 모르고 조국을 저주한다. 그는 독재자에게 맞아죽고 굶어 죽어가는 북한동포를 사랑할 줄 모른다. 그는 대부분이 同族인 700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학살집단에 대해서 분노할 줄 모른다.
오만한 자들은 사랑, 분노, 감사할 줄 모르는 대신 세 가지를 잘 한다. 그들은 僞善, 기만, 선동의 명수이다. 한국에서 제일 교만한 자는 요트를 즐기고 富者로 살아왔으면서도 민중의 챔피언이라고 僞善해왔다. 그는 속임수를 정책의 필수적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그는 인간이 가진 질투심을 선동하는 기술자이다.
교만한 자는 반드시 멸망한다. 하늘, 民心, 그리고 역사가 逆天者(역천자)인 그를 버리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교만한 두 인간이 평양에서 만난다고 한다. 하늘, 民心, 역사의 분노가 폭발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복수가 시작될 것이다.
교만한 자의 최후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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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9-30, 12: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