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국군 통수권자로서 확실한 ‘주적’ 신념이 요구된다는 데서 그는 대통령으로서 중대 요건을 결여하고 있다.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15일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그는 수락연설을 통해 “오늘 이 순간부터 과거 세력과의 대결에서 당당히 승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당당히 승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당당하지 못했던 대표성·도덕성·정체성에 얽힌 문제들을 되돌아보며 겸허한 자세로 임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선, 정 후보의 대표성 문제는 유례없이 저조했던 대통합민주신당의 후보 경선 투표율에서 제기됐다. 대통합민주신당의 후보 경선 투표참여율이 16%에 불과했던 데 연유한다. 그토록 저조한 투표참여율은 대표성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유보케 한다. 더욱이 경선 과정에서 정 후보에 대해 ‘차떼기 동원’ ‘명의 도용’이란 비난이 난무했음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뿐만 아니라 그를 지지한 몰표가 그의 출신 지역 호남에서 쏟아져 나왔다는 데서 지역정치의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감을 떨칠 수 없게 한다. 지역 후보라는 대표성 문제를 거듭 떠올리게 한 것이다.
다음으로, 정 후보의 도덕성 문제는 그가 정치인으로서 지켰어야 할 신의(信義)와 도리를 여러 차례 저버렸다는 데 있다. 그의 잦은 탈당과 배신적 언행들이 그것들이다. 그는 2000년 8월 당 최고위원 경선 때 자신에게 2000만원을 지원했던 권노갑 민주당 고문에게 그로부터 불과 4개월 만에 2선 후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정치적 동기야 어디에 있었던 간에 인간으로서 신의 결여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2003년 말 민주당을 ‘반개혁 수구세력’ ‘지역 정치세력’이라고 몰아붙이는 탈당파와 함께 민주당을 박차고 나와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정치적 배신으로 간주되기에 족했다.
열린우리당으로 변신한 정 후보는 당의장을 두 번 지냈으며 통일부 장관의 감투도 썼다. 그는 2004년 열린우리당을 위해 “최대한 20∼30년 집권세력의 토대를 구축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는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땅에 떨어지자, 30년은커녕 3년 만에 탈당을 주도해 대통합민주신당을 급조해 냈다. 곤경에서 도망치는 비굴한 행위였다.
그런데 그는 이번에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자, 후보 수락연설에서 자신이 차버리고 떠난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적통성을 갖고 있는 후보”라고 천연덕스럽게 주장했다. 김대중과 노무현 세력의 지원이 대선을 위해 다시 필요해서였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킨다는 비아냥을 면치 못했다. 그는 두 정권의 ‘적통성’을 주장하기 전에 친북좌파 정권의 중심 인물로서 잃어버린 10년의 국정실패와 자신의 거듭된 탈당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했어야 옳았다.
끝으로, 정 후보의 불확실한 정체성 문제점도 여러 측면에서 나타났다. 그는 통일부 장관 시절 북한이 ‘주적’ 아니냐는 헨리 하이드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의 질의에 대해 “적절하지도 않고 동의하지도 않는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자로서 확실한 ‘주적’ 신념이 요구된다는 데서 그는 대통령으로서 중대 요건을 결여하고 있다.
그 밖에 그는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을 통해서도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케 했다. 20%만 잘 살고 80%가 버려지는 한나라당식 정글 자본주의 경제를 거부한다고 했다. 그는 중국 공산당조차 떠받드는 자본주의를 “거부한다”고 털어놓았다. 북한의 ‘주체경제’를 추종하겠다는 말인지 헷갈리게 한다.
정 후보가 대선에서 ‘당당히 승리’하기 위해서는 당당치 못한 대표성·도덕성·정체성의 문제점들을 먼저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들을 정리 하지 못할 경우, 그동안의 10%대 국민 지지율을 크게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정용석 / 단국대 명예교수·정치학]]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15일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그는 수락연설을 통해 “오늘 이 순간부터 과거 세력과의 대결에서 당당히 승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당당히 승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당당하지 못했던 대표성·도덕성·정체성에 얽힌 문제들을 되돌아보며 겸허한 자세로 임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선, 정 후보의 대표성 문제는 유례없이 저조했던 대통합민주신당의 후보 경선 투표율에서 제기됐다. 대통합민주신당의 후보 경선 투표참여율이 16%에 불과했던 데 연유한다. 그토록 저조한 투표참여율은 대표성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유보케 한다. 더욱이 경선 과정에서 정 후보에 대해 ‘차떼기 동원’ ‘명의 도용’이란 비난이 난무했음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뿐만 아니라 그를 지지한 몰표가 그의 출신 지역 호남에서 쏟아져 나왔다는 데서 지역정치의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감을 떨칠 수 없게 한다. 지역 후보라는 대표성 문제를 거듭 떠올리게 한 것이다.
다음으로, 정 후보의 도덕성 문제는 그가 정치인으로서 지켰어야 할 신의(信義)와 도리를 여러 차례 저버렸다는 데 있다. 그의 잦은 탈당과 배신적 언행들이 그것들이다. 그는 2000년 8월 당 최고위원 경선 때 자신에게 2000만원을 지원했던 권노갑 민주당 고문에게 그로부터 불과 4개월 만에 2선 후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정치적 동기야 어디에 있었던 간에 인간으로서 신의 결여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2003년 말 민주당을 ‘반개혁 수구세력’ ‘지역 정치세력’이라고 몰아붙이는 탈당파와 함께 민주당을 박차고 나와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정치적 배신으로 간주되기에 족했다.
열린우리당으로 변신한 정 후보는 당의장을 두 번 지냈으며 통일부 장관의 감투도 썼다. 그는 2004년 열린우리당을 위해 “최대한 20∼30년 집권세력의 토대를 구축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는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땅에 떨어지자, 30년은커녕 3년 만에 탈당을 주도해 대통합민주신당을 급조해 냈다. 곤경에서 도망치는 비굴한 행위였다.
그런데 그는 이번에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자, 후보 수락연설에서 자신이 차버리고 떠난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적통성을 갖고 있는 후보”라고 천연덕스럽게 주장했다. 김대중과 노무현 세력의 지원이 대선을 위해 다시 필요해서였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킨다는 비아냥을 면치 못했다. 그는 두 정권의 ‘적통성’을 주장하기 전에 친북좌파 정권의 중심 인물로서 잃어버린 10년의 국정실패와 자신의 거듭된 탈당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했어야 옳았다.
끝으로, 정 후보의 불확실한 정체성 문제점도 여러 측면에서 나타났다. 그는 통일부 장관 시절 북한이 ‘주적’ 아니냐는 헨리 하이드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의 질의에 대해 “적절하지도 않고 동의하지도 않는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자로서 확실한 ‘주적’ 신념이 요구된다는 데서 그는 대통령으로서 중대 요건을 결여하고 있다.
그 밖에 그는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을 통해서도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케 했다. 20%만 잘 살고 80%가 버려지는 한나라당식 정글 자본주의 경제를 거부한다고 했다. 그는 중국 공산당조차 떠받드는 자본주의를 “거부한다”고 털어놓았다. 북한의 ‘주체경제’를 추종하겠다는 말인지 헷갈리게 한다.
정 후보가 대선에서 ‘당당히 승리’하기 위해서는 당당치 못한 대표성·도덕성·정체성의 문제점들을 먼저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들을 정리 하지 못할 경우, 그동안의 10%대 국민 지지율을 크게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정용석 / 단국대 명예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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