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甲濟 기자의 하버드 대학 연수 보고(3) - 淸富정신 對 淸貧정신
청교도 정신의 핵심-정신과 물질의 통합
미국 청교도 정신의 보루인 하버드 대학의 뿌리는 칼빈주의에 닿아 있다. 근면과 절약에 의한 부(富)의 축적을,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로 평가했던 청교도의 윤리는 자본주의의 정신을 만들어냈다. 반면에 주자학(朱子學)은 청빈(淸貧)정신을 내세워 돈벌이를 경멸함으로써 국가의 권위를 뒷받침할 수 있는 수단(경제력과 군사력)을 키우는 데 실패하였다. 정신과 물질이 서로 싸우면 나라와 국민들이 상처를 입는다. 정신 없는 물질은 타락이며 물질 없는 정신은 위선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자본주의의 천민성(賤民性)과 지식사회의 위선성을 초극하는 통합의 윤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1997년 11월 월간조선>
기금 1백10억 달러
하버드 대학을 창립하기로 결의했던 1636년 매사추세츠만(灣)회사의 이사회는 그 의의(意義)를 이렇게 설명했다.
[하느님이 우리를 뉴 잉글랜드에 안전하게 인도해주신 뒤에 우리는 집을 짓고 일용품을 만들었으며 신을 찬양하기 위한 적당한 처소도 마련했다. 그리고 자치기구도 설립했다. 이제 우리가 다음에 할 일은 교육을 발전시키고 이를 후손들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우리의 성직자들이 흙으로 돌아갈 때 글을 모르는 목사들한테 교회를 맡겨 놓는 일이 벌어질까 염려한 나머지 이 학교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 대학은 일종의 신학교로 출발한 셈이다. 하버드의 첫 번째 교수직도 신학교수였다. 지난 6월말로 끝난 하버드 대학 1997년 회계년도의 통계에 따르면 재단의 기금이 1백10억 달러로 불었다. 미국의 경제가 좋아지니 기금이 엄청난 속도로 팽창중이다. 1991년에 47억 달러, 1995년 6월30일 현재 74억 달러였던 이 대학재단의 기금은 한 해 뒤에는 91억 달러대(臺)를 돌파하더니 올해에는 필리핀(1백억 달러)과 체코(1백8억 달러)보다는 많고 러시아(1백59억 달러) 보다는 약간 적은 달러 보유고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지난 2년간 하버드 기금관리 회사(Harvard Management Company)는 이 현금을 효율적으로 투자하여 年평균 이자수익이 26%나 되었다. 이는 미국 기업의 평균 수익률보다 네 배쯤 높은 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학보(學報)인 크림슨紙에는 가끔 기금관리회사가 독재국가들에 투자하고 있다는 폭로기사가 실리기도 한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상과대학원)을 비롯하여 돈벌이에 관해서는 최고의 두뇌들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기금증식이 이처럼 경이적으로 잘되고 있는 것은 철저한 돈 본위의 대학경영 때문이다.
하버드 대학교 닐 L 루딘스틴 총장은 1994년에 앞으로 5년 동안 21억 달러의 기부금을 모집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약 4억3천만 달러를 모금했다. 이 기금을 운영하는 회사는 직원들이 수백 명이나 되는 금융회사이다. 기금운용 책임자의 연봉은 4백만∼6백만 달러 수준이다. 미국 메이저 리그의 일류선수와 비슷한 봉급이다. 기자가 청강한 케네디 스쿨(정치행정대학원)의 [역사로부터의 추론] 강좌를 가르친 老교수는 대통령학의 태두(泰斗) 리처드 뉴스타트였는데 그의 공식직함은 [더글러스 딜런 행정학 교수]이다. 더글러스 딜런이란 사람이 낸 기금으로 운영되는 교수직이란 뜻이다.
서울방송 윤세영(尹世榮) 회장이 하버드에 기부한 3백만 달러로 만들어지게 될 교수직에도 그의 이름이 붙게 된다. 하버드란 대학 이름도 젊었을 때 죽은 존 하버드란 목사가 도서를 기증한 것을 기리기 위하여 붙여준 것이다. 돈을 기부한 사람이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철저하게 돈값을 매겨주는 것이다. 하버드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일 뿐 아니라 가장 부자 대학이다. 미국에서 가장 부자이니 세계에서 가장 부자 대학일 것이다. 기금과 5백여 개소의 건물 값을 보태면 하버드 대학의 자산가치는 2백억 달러에 육박한다. 여기에는 90개가 넘는 도서관에 소장된 1천3백만 권의 책과 특수자료,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7대 박물관과 미술관에 소장된 희귀(稀貴)유물, 예술품, 동식물 표본 같은 것은 포함되어 있지도 않다.
기금을 기준으로 미국에서 두 번째로 부자인 대학은 예일로서 58억 달러, 세 번째가 텍사스 대학(53억 달러), 이어서 李承晩이 박사학위를 받았던 프린스턴 대학(48억 달러), 캘리포니아주에 있어 서부를 대표하는 명문 스탠포드 대학(30억 달러)이다. 이 다섯 대학 중 텍사스 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네 대학은 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가 매년 실시하는 미국 대학 순위 매김에서 늘 10등 안에 든다. 줄곧 1위를 차지하던 하버드는 지난해 3위로 밀렸다가 올해는 다시 1위로 복귀했다. 명문대학을 만드는 두 요소는 돈과 시간이다. 기금(基金)과 역사란 얘기이다. 기금은 급조할 수가 있지만 역사는 그럴 수가 없다.
수업료 年푸 3만 달러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 전체 학생은 약 1만8천명이다. 하버드 대학(Harvard College)의 학생수는 그 3분의 1인 6천여 명이고 나머지는 대학원생들이다. 교수들은 약 2천1백 명이다. 그들 중 정교수는 약 8백 명이다. 정교수들만이 항구적 고용이 보장되어 있다. 부교수, 조교수는 계약제이므로 항상 불안하다. 미국에서 이혼율이 매우 높은 편에 속하는 것이 이들 조, 부교수 직종이다. 정교수가 되기 위하여 휴일도 없이 공부에 열중하다 보니 가정을 제대로 돌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버드의 행정직원들은 9천3백여 명이다. 여기에 하버드 의과대학 부속병원들에 속해 있는 의사들 약 7천4백명을 보태면 하버드 대학교의 고용인원은 약 1만9천명이다. 학생수를 더하면 약 3만5천명이 하버드라는 작은 지구촌을 형성하고 있다. 지난 해 하버드의 예산은 15억1천8백만 달러였다. 약 32%는 학생들로부터 받은 수업료와 기숙사비이다. 기금투자에 의한 수입이 예산의 약 24%를 차지했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연구지원비가 22.4%였다. 하버드의 전체 예산 가운데 49.5%가 인건비이다. 학부 학생들의 약 70%가 장학금이나 수업료 대출, 또는 부업의 혜택을 학교로부터 받고 있다.
학부 학생들의 수업료는 기숙사비를 포함하여 年 3만 달러 정도이다. 하버드에서는 학교가 한 학생에게 지출하는 돈은 주 4만 달러에 이른다고 말한다. 학생들이 매년 1만 달러씩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얘기이다. 하버드 대학 시설물들은 케임브리지市를 중심으로 하여 여기저기 분포되어 있다. 건물이 5백40개이고 연건평은 약 60만 坪이다. 총건평의 3분의 1이 기숙사, 6분의 1이 교실과 사무실, 5분의 1이 실험실이며 12분의 1이 도서관이 차지한 공간이다.
하버드가 가진 이 시간의 무게, 역사가 단절되지 않고 쌓여갈 때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 맛이 우러나는가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하버드 야드라고 불리는 중앙 교정(校庭)이다. 이 교정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은 중앙도서관 와이더너의 정면 계단이다. 이 계단은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장소로 애용된다. 아침에 이 앞을 지나칠 때 자주 부딪치게 되는 것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사진을 찍는 한국인 부모들이었다. 부모로부터 {너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 대학에 들어오도록 해봐}란 말을 듣고 있을 저 아이들이 자라서 하버드에 다닐 때쯤 다시 시간을 내어서 이 너그러운 대학에서 한 일년을 더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와이더너 도서관
이 와이더너 도서관은 다른 대부분의 건물들처럼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다. 인물과 건물에 신화나 전설을 붙이기를 좋아하는 미국 사람들. 이것이 바로 역사가 짧은 그들의 역사 만들기 수법이다. 이 도서관의 이름은 1912년 처녀 항해에서 유빙(流氷)과 충돌하여 침몰했던 영국의 호화여객선 타이타닉號에 탔다가 죽은 하버드 졸업생 해리 엘킨스 와이더너에서 딴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아들을 잊지 못해 2백만 달러를 하버드에 기부하여 도서관을 신축하도록 했던 것이다. 이 어머니는 기부금을 내면서 두 가지 조건을 붙였다고 한다.
하나는 모든 학생들에게 수영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기숙사 식당에서 하루에 한번씩은 아이스크림(아들이 좋아했다고 한다)을 내놓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두 가지 조건은 잘 준수되지 않고 있으나 이 도서관은 3백만 권을 소장한 미국 제2의 도서관(1위는 의회도서관)이 되었다. 아무 책이나 읽다가 거기에 적혀 있는 참고 도서나 논문을 구해보려고 이 도서관에 오면 거의 틀림없이 찾아낼 수가 있다. 이 하버드 야드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구경거리는 존 하버드 동상이다. 워싱턴에 있는 링컨 기념관의 링컨 동상을 제작한 조각가 다니엘 체스트 프렌치의 작품이다.
이 동상은 [세 가지 거짓말]로 유명하다. 1884년에 제작된 이 동상에 적혀 있는 [존 하버드, 창립자, 1638]이 다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하버드의 초상화는 남아 있지를 않아 조각가 프렌치는 셔먼 호어라는 학생을 모델로 삼아 조각을 했다. 하버드는 창립자가 아니고 기부자일 뿐이다. 창립년도도 1636년이다. 그래도 이 존 하버드의 구두코를 잡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 도금이 허옇게 벗겨져 있을 정도이다. 하버드의 이름이 붙은 건물이 하버드 야드에는 하나가 남아 있다. 하버드 홀이 그것인데 두 번 불이 나 지금 건물은 같은 장소에 세워진 세 번째 건물이다.
두 번째 건물시절에 여기에는 물리학 실험실이 있었다. 미국 독립의 한 주역(主役)으로서 피뢰침을 발명했던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 건물에서 실험을 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이 건물에는 하버드가 기증했던 도서들이 소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불이 나는 바람에 다 타버렸다. 다만 한 학생이 슬쩍하여 가지고 나왔던 한 권의 책만 남게 되었다. 이 학생은 이 귀중한 책을 총장에게 자진신고형식으로 돌려주었다. 총장은 감사를 표한 뒤에 즉각 그 학생을 제적해버렸다고 한다. 건물의 크기에서 와이더너 도서관과 쌍벽(雙壁)을 이루고 있는 것이 맞은편에 보이는 전몰자 추모교회이다.
5백만명 중의 1천8백명
1932년에 세워질 때는 1차세계대전에서 전사한 하버드 출신들을 추모하기 위한 건물이었다. 그 뒤에 치러진 2차대전, 한국전쟁, 월남전쟁 전사자도 함께 추모한다. 매일 추모기도회가 열리고 매주 예배가 있어 일반 시민들도 참여한다. 이 추모교회의 뒤편에 있는 성당처럼 보이는 높은 건물은 추모당(Memorial Hall)이라 불리는 건물이다. 이것은 남북전쟁 때 북군편에서 싸우다가 전사한 하버드 출신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1878년에 건축한 것이다. 하버드 교정(校庭)의 대표적인 두 건물이 전사자를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은 이 대학의 성격을 말해준다.
청교도들의 정신적인 구심점으로서 또 미국의 건국과정과 궤(軌)를 함께 하면서 발전해온 이 대학은 지금 세계를 내려다보면서 미국의 국익을 수호하는 엘리트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애국심을 깔고서 진리를 추구하는 국가주의적인 교육기관이다. 국가 국민 국익을 떠난 보편적 지식의 추구가 전무(全無)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쪽은 소수파이며 다수파를 깨어 있게 하는 역할로 존재할 뿐이다. 하버드 학풍의 주류는 어디까지나 미국을 중심으로 하고 미국적 가치관을 기준으로 한 보편성의 추구인 것이다.
와이더너 도서관의 계단에 서서 교정을 내려다보면 건물들을 통해서 전달되는 이미지가 神, 국가, 진리이다. 이 이미지를 나는 [진리=교양에 기초한 전문지식, 국가=애국심, 신=보편적인 인류애]로 해석해보았다. 개인 국가 세계를 관통하는 교양, 지식, 애국심, 인류애라는 이 단어들을 하나의 행동윤리로 내면화할 수 있는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 하버드의 목표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개인과 국가와 세계가 서로 싸우지 않고 교양과 애국심과 인류애가 서로 질투하지 않으면서 하나의 논리로써 연결되고 통합되는 그런 인간과 국가와 세계를 우리는 선진(先進)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버드 학부 신입생들은 고교 졸업생 5백만명 중 최상층부에 속한 1천8백명으로 보면 된다. 2000년 졸업생이라 하여 관심을 끌었던 지난 해 신입생의 경우 1만8천2백명이 입학 신청을 하여 10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신청자 중 1백64명은 미국판 수능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학생들이었다. 1987년 이후 [USA 투데이]가 매년 선정한 최우수 고교 졸업생 1백99명 중 1백1명이 하버드에 입학했다.
대학의 명성을 상징하는 로드 장학생 선발수에 있어서도 하버드는 5년 연속 전국 1등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국교포 학생이 명단에 들어있었다. 하버드 교정에서 한국인들이 기가 죽지 않는 이유는 신입생들의 민족구성 통계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신입생들의 19%가 아시아인들이다. 그들 중 3분의 2가 동양4개국(중국, 대만, 일본, 한국)이다. 학부, 대학원생을 다 포함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 학생수는 캐나다, 일본, 중국, 대만, 영국 다음의 제6위이다. 인구 비율로 치면 대만 다음으로 2위가 된다. 일류 지향의 한국인들이 국내를 벗어나 세계에 도전하다가 이런 성적을 남기게 된 것 같다.
밥 돌의 농담
지난 4월 하버드 대학의 정치행정대학원인 케네디 스쿨의 초청연사로 나온 밥 돌 前 공화당 대통령후보는 농담을 몇 번 했다. 하버드가 있는 케임브리지市의 전화번호부에서 1백명을 무작위로 뽑아 미국을 통치하라고 해도 클린턴보다 더 잘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하버드 대학 덕분에 21세기에 가면 내 주소가 워싱턴 DC의 펜실베이니아街 1600번지가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돌은 미국적십자사 총재로서 하버드 법대 출신이다.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후보가 되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하버드는 케네디, 프랭클린 루스벨트, 시어도어 루스벨트 등 여섯 명의 미국 대통령을 배출했다. 교수진에서는 34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하버드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란 책은 이 대학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하버드 출신들을 람보에 비교했다. 냉전의 지휘자들이 주로 하버드 출신이고 특히 월남전을 망친 많은 고관들이 하버드 출신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6월5일의 하버드 대학 졸업식은 이런 하버드의 국가주의적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이날 행사는 마셜 플랜 발표 50주년을 기념하여 매들린 K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졸업식 기념연설을 했다.
1947년에 당시 미 국무장관이던 조지 마셜이 하버드의 졸업식 기념연설에서 西유럽의 경제재건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西유럽을 소련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원대한 구상을 발표하였다. 이 마셜 플랜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덕분에 서방 자유세계가 냉전에서 소련에 승리하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졸업식에서 하버드 총장 닐 L 루딘스틴은 [하버드는 미국 대학이다]는 말로써 연설을 시작했다.
{많은 학자들과 학생들이 하버드로 오는 이유는 우리가 미국 대학이기 때문이다. 하버드는 뚜렷한 국가적 개성을 가진 사회에 뿌리를 둔 대학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버드의 미래가 국제화의 추세를 넓혀갈 것임은 분명하지만 우리는 그런 국제화를, 확립되어 있는 우리의 가치관과 정통의 틀 안에서 추진해갈 것이다}
요컨대 미국 중심의 국제화를 하버드의 진로(進路)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국익과 미국적 가치관의 수호 및 확산이 하버드의 대명제인 것이다.
하버드의 뿌리를 찾아서
하버드가 구현하고 있는 미국 사회주류의 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건국정신의 이해이면서 동시에 오늘날 이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英美계통 가치관의 본질을 이해하는 길이다.
2005년도 세계 111개국 삶의 질 랭킹(이코노미스트)에서 北歐의 다섯 나라가 모두 上位에 올랐다. 노르웨이는 3위, 스웨덴은 5위, 아이슬란드는 7위, 덴마크가 9위, 필란드는 12위였다. 이 다섯 나라 국민들의 선조는 바이킹 해적들이었다. 9-11세기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야만적인 사람들이었다.
바이킹(Norsemen: 北人)은 9-11세기 서유럽뿐 아니라 러시아, 시실리, 아프리카 북부까지 약탈했다. 일단의 바이킹은 그린란드를 발견했고 아메리카 대륙에까지 도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930년에 아이슬란드에 정착한 바이킹은 '알싱'이라 불리는 의회를 창설했다. 세계역사상 최초의 의회로 기록된다. 바이킹들은 '오딘'이란 전쟁神을 숭배하였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으면 천당에 가서 영원히 축제속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스칸디나비아와 덴마크에 살던 이들은 날렵한 배를 만들어 뛰어난 항해술로써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아일란드, 스페인, 시실리, 이탈리아, 북아프리카, 러시아를 침공했다. 바이킹은 러시아의 노보그라드와 키에프를 점령하여 기지로 만든 다음 강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 흑해에 도달했다. 이들의 활동범위는 지금 기준으로도 엄청 넓었다. 바이킹은 상인이자 戰士였다. 본토가 산이 많고 척박했으므로 살아남기 위해서 약탈을 하다가 정복민족이 되어버렸다.
덴마크의 바이킹은 한때 영국과 아일란드를 거의 점령하다시피했다. 시실리를 점령한 바이킹은 善政을 베풀어 이 섬나라를 유럽에서 가장 번영한 곳으로 만들었다. 바이킹은 정복지를 식민지로 만들어 통치하기도 했다. 이들은 싸움밖에 모르는 종족이 아니었다. 기독교 등 정복지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정착하고 개화되었다.
이중에서도 프랑스의 노르만디 지역에 정착하여 공국을 세웠던 바이킹은 11세기 중엽 영국으로 쳐들어가 현지 왕국을 정복하여 오늘날 영국의 기초를 놓았다. 영어의 뿌리는 노르만語이고 노르만語의 뿌리는 프랑스語이고 프랑스語의 뿌리는 로마-라틴語이다. 노르만의 영국 침공으로 영국사람들은 유럽의 선진문물을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바이킹이 유럽, 특히 프랑스 독일을 약탈하자 보통사람들은 내륙과 산속으로 도망가서 지방귀족들의 보호를 구했다. 이것이 중세 봉건제도의 출발점이 되었다. 바이킹들은 곧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엔 신교도가 되었다.
戰士, 商人, 신교도의 組合이 되면 유럽에서는 선진국이 된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보호를 믿고서 열심히 싸우면서도 장사해서 돈을 버는 습관이 생기면, 또 이 돈으로써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라고 확신하면 대충 富國强兵이 된다. 위선과 말장난과 관념의 포로가 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전통이 오늘날 북구 다섯 나라가 선진국이 된 배경일 것이다.
선진국은 거의가 옛날에 전쟁과 장사를 많이 한 나라들이다. 이것이 세계사의 한 법칙이다. 투쟁과 경쟁은 인간과 국가를 단련시킨다. 거기에 따른 고통은 별개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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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流국가 연구: 미국의 청교도 정신
칼빈의 구원예정설
1517년 독일의 가톨릭 승려 마르틴 루터가 [95개 명제]를 발표하여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 교황과 성당의 부패를 고발함으로써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났다. 루터가 주장한 핵심은 인간은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지 가톨릭처럼 권위주의적인 계급구조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인간과 절대자 사이에 있는 교회의 중계역할을 부정한 것이다. 이 주장에 동조하는 봉건영주와 국가들이 생겨나면서 유럽은 백년을 넘게 종교분쟁에 휩싸였다. 이 종교 분쟁에서 어느 쪽에 섰느냐에 따라서 나라의 성격이 바뀌게 되었다. 대체로 영국 독일 스칸디나비아 같은 투톤族 나라들이 루터 편을 들어서 개신교(改新敎) 국가가 되었고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같은 라틴系 국가들이 가톨릭 국가로 남았다. 종교개혁을 받아들인 나라들에서는 그 뒤에 산업혁명과 민주화가 상대적으로 잘 진행되어 이 나라들이 제국주의 시대의 패권을 잡게 되었다. 스위스에서도 종교혁명을 받아들여 많은 州가 로마 교황의 지도력을 거부하게 되었다. 제네바市는 프랑스 신학자로서 종교박해를 피해서 망명한 존 칼빈을 종교개혁의 지도자로 모셨다. 칼빈은 이 도시를 자신의 신학에 따라서 통치하게 되었다. 그의 유명한 저작인 [그리스도교의 원칙](1536년)은 아주 주목할 만한 구원관(救援觀)을 내놓았다.
그는 인간이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는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하느님이 창세기(創世記) 때부터 이미 누가 구원을 받을 것인가를 결정해 놓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인데 칼빈은 무궁한 하느님의 지혜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간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구원이 예정되어 있지 않다면 천국에 갈 수가 없다. 그러면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자포자기 상태에서 타락한 생활을 할 것인가. 칼빈은 누가 구원을 받을지는 알 수 없으나 누가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인가 하는 사실은 확실히 알 수가 있다고 했다. 타락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확실하게 지옥으로 떨어질 자들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지옥행(地獄行) 열차를 타지 않으려면 평소 사회생활과 신앙생활을 건실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엄격한 도덕률과 근면성을, 그는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는 인간의 조건으로 제시한 것이다. 인간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건실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절묘한 논리가 탄생했다.
칼빈의 淸富사상
이 윤리는 그때 유럽에서 형성되고 있었던 시민계층의 행동철학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적합하였다. 말하자면 역사의 흐름과 맞는 神學이 되었다. 이 사상은 그 뒤에는 프로테스탄트의 윤리로 확대되고 자본주의의 정신으로 연결되었다. 돈을 버는 행위를 천한 것으로 보는 종교의 일반적인 경향과는 달리 칼빈주의는 인간의 경제활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파악했다. 돈벌이가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신성한 가치를 지니려면 돈을 벌고 특히 쓰는 행위가 정당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인간이 돈을 버는 것은 개인의 부(富)를 증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느님의 몫을 잘 관리하여 크게 키우는 행위이다.
그리하여 그 富를 사회에 환원하여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하느님의 영광을 빛내는 행위이다. 이러한 칼빈주의의 경제관은 청부(淸富)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활동을 경멸했던 주자학의 청빈(淸貧)사상과 정반대이다. 청빈사상은 위선적이고 선언적이며 패배적인 생각이라면 淸富사상은 적극적이고 실용적이며 실천적이다.
이 칼빈주의는 개신교의 주류(主流)신학이 되어 프랑스의 위그노派, 독일과 네덜란드의 개혁교회,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그리고 영국 청교도의 신학적 근거가 되었다. 미국의 建國정신은 이 영국 청교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렇게 된 데는 재미있는 역사의 우연이 있었다.
16세기 초 영국왕 헨리 8세는 원래 로마 교황과 사이가 좋았다. 헨리 8세는 루터의 영향을 차단하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로마 교황으로부터 [신앙의 수호자]란 칭호까지 받았다. 그런데 헨리 8세와 결혼한 스페인의 아라곤 왕국 캐서린 공주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 남아(男兒)를 출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헨리 8세는 로마 교황에게 이혼을 허락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보통 때 같으면 이런 요청은 허락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는 사정이 묘하게 꼬이게 되었다. 헨리 8세의 왕비 캐서린은 스페인의 전성시대를 연 카를로스 5세의 숙모였다. 카를로스 5세는 합스부르그 왕조(王朝) 출신으로서 스페인왕뿐 아니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겸하고 있었다. 스페인과 네덜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이탈리아의 일부도 통치하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세속적인 권력은 카를로스 5세가, 정신적 권위는 로마 교황이 나누어 갖고 있는 형국이었다.
로마 교황은 카를로스 5세의 후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숙모 캐서린과 영국왕 헨리 8세가 이혼하는 것을 허용하기가 어려웠다. 이에 화가 난 헨리 8세는 영국 교회와 로마 교황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는 앤이라는 여자와 결혼해버렸다. 이 사건은 유럽에서 로마의 교황권이 약화되는 중대한 계기가 된다. 하나 재미있는 것은 헨리 8세가 아들을 얻기 위해서 맞아들였던 앤은 딸을 낳았다는 사실이다. 이 딸이 커서 엘리자베스 1세가 되고 그의 치세(治世)에 영국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여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극단적인 개혁파 청교도, 미국으로
그런데 영국 교회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로 논쟁이 일어났다. 칼빈주의의 원칙을 도입하여 영국 교회에 남아있는 가톨릭적인 잔재를 청소하자는 개혁세력을 퓨리턴(Puritan)이라고 불렀다. 영어로 퓨리파이(Purify), 즉 청소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이 퓨리턴, 즉 청교도 중에는 영국 교회자체를 부정하고 완전히 결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단적인 개혁파가 있었다. 이들을 분리교도(Separatists)라고 부르게 되었다. 미국에 건너간 것이 이 분리주의자들이었다. 당시로서는 가장 개혁적인 기독교도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미국으로 건너가 이상향을 건설하려고 했다는 이 점이 미국의 국가적 성격을 상당 부분 규정했다.
영국의 동쪽 스크루비에 있던 분리주의 집단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서 1607년에 네덜란드로 이주하였다. 여기서 10여 년 살다가 보니 문제가 생겼다. 네덜란드의 칼빈주의 신도들은 영국에서 온 분리주의자들에게 종교의 자유는 허용했으나 일자리는 하층민 수준으로 제한하였다. 선원, 병사로 나아가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네덜란드의 습관에 동화되어 조국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생기게 되었다. 이들이 영국을 떠난 것은 조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인데 이곳에 오래 살다가는 후손들이 同化되어버리겠구나 하는 걱정이 생겼다. 그렇다고 영국으로 다시 돌아가기는 싫고, 그리하여 이 분리주의자들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새로운 영국, 즉 뉴 잉글랜드를 건설하자는 꿈을 키우게 되었다.
그때, 즉 1620년 무렵 워싱턴 남쪽에 있는 지금의 버지니아 지방에서도 영국인들이 식민지를 개척하고 있었다. 버지니아 회사라는 식민지 회사가 개척민을 데리고 와서 농사를 짓고 담배를 재배하고 있었다. 분리주의자들 35명은 이 버지니아 회사로부터 토지사용권을 얻어서 주식회사를 설립한 뒤에 이 회사소속으로서 총 102명의 이주자들을 모집하여 1620년 9월 영국의 플리머스항(港)을 떠나 미국으로 출발하였다. 이들을 태운 180t짜리 메이플라워호(號)가 대서양을 건너 그해 12월에 도착한 곳이 지금 매사추세츠州에 속하는 해변으로서 플리머스라고 이름지었다. 이들은 원래는 버지니아로 가려고 했으나 폭풍 때문에 이곳에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메이플라워는 다음해 4월까지 머물면서 겨울에는 이주민들의 피난처로 쓰였다. 혹독한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순례자(Pilgrims)로 불리게 된 이들 중 반이 죽었다. 근처 인디언들에게 약점을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시체를 묻어도 표시를 남기지 않았다. 다음해에는 인디언들로부터 옥수수 재배법을 배워서 풍작을 이루었다. 이를 기념하여 추수감사절이 생겼다. 보스턴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쯤 달리면 도착하는 플리머스港에는 메이플라워號의 복제품과 최초의 상륙자가 밟았다는 돌, 그리고 민속촌으로 재현된 농장이 있다.
플리머스의 교회, 감옥, 요새
이 플리머스 농장에는 청교도 복장을 한 사람들이 영국 억양의 중세영어를 써가면서 관광객들을 즐겁게 한다. 비행기가 상공으로 날아가는 것을 가리키면서 '무슨 새가 저렇게 크지'라고 능청을 떨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코리아, 코리아, 그런 나라도 있나'라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청교도들이 건설한 이 농장에는 교회, 감옥, 요새가 있다. 인간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시설인 것이다. 종교적인 열정으로써 뭉쳤다고 해도 질서를 유지하면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감옥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순례자들은 영국의 보호로부터도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당시로선 어느 나라의 주권 아래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들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규율을 잡지 않으면 공멸(共滅)할 것이라는 공포에서 자신들이 선출한 대표자들이 만든 법에 복종하겠다는 서약을 하게 되었다. [메이플라워 맹약]이라고 불리는 이 약속을 기초로 하여 자치기구를 설립했다. 교회의 간부들이 자치기구의 간부를 겸하였다.
메이플라워 맹약에 서명한 사람들이 총회(General Court)를 구성하고 여기서 지사를 뽑았다. 이렇게 하여 미국은 교회를 요람으로 하여 탄생하게 되었다. 이런 배경을 이해해야 왜 아직도 미국에서 청교도적 정신의 영향이 그토록 뿌리깊은지를 알 수가 있다. 버지니아보다도 매사추세츠 지방의 개척이 늦게 되었는데도 미국의 발상지라고 하면 이곳 뉴 잉글랜드가 연상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버지니아의 개척은 영국사람들이 돈벌이를 위해서 식민지로서 경영을 한 것이고 매사추세츠 코네티컷 등 뉴 잉글랜드는 여기에 새로운 영국을 건설하겠다는 신념을 공유한 사람들이 세운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먹고 산다는 차원과 정신적인 자유를 목적으로 삼아 모험을 결행한 것의 차이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철학적인 바탕을 깔고 하는 것과 그냥 편의대로 하는 것 사이에는 시간이 흐르면 크나큰 차이가 나게 되는 것이다.
플리머스 정착촌의 인구는 7천 명을 넘은 적이 없었다. 뉴 잉글랜드의 중심지는 곧 그 북쪽에 있는 보스턴으로 옮겨갔다. 순례자들(분리주의자)보다는 다소 온건한 영국 청교도들이 1620년대 말부터 보스턴으로 건너오기 시작했다. 변호사이자 청교도 지도자인 존 윈스롭의 지휘하에 이들은 청교도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장소를 보스턴에서 구하여 [언덕 위의 도시], 즉 신시(神市)를 만들겠다고 1630년에 알벨라號를 비롯한 일곱 척의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왔다. 그들은 매사추세츠만(灣)회사라는 일종의 무역회사를 만들었다. 이 회사의 이사회에 해당하는 사령탑에는 [자유인]이라고 불린 교회의 간부들이 주주(株主)의 자격으로 포진하였다. 이사회는 정착민들의 자치기구 책임자를 선출하였다. 이민자가 많아지자 이사회의 구성원은 교회가 아닌 마을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확대되게 되었다.
이것이 교회에서 회사가 생기고 회사에서 정부와 의회가 생겨난 과정이다. 교회로 상징되는 정신, 회사로 상징되는 물질, 그리고 정부로 상징되는 권력, 이 세 가지 상반되는 요소가 미국에서는 그 요람기에서부터 한 덩어리로 결합되어 있었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점을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 국가의 3대 구성요소인 종교(또는 이념), 경제, 권력의 관계가 갈등하면 그 국가는 통합성을 상실한다. 이 관계가 견제와 균형을 바탕으로 하여 한 덩어리로 되어 있을 때 그 국가는 건실하고 생동한다.
우리 역사에 이 공식을 대입한다면 朝鮮朝에서는 주자학이 경제논리를 무시하여 국가의 권위를 뒷받침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을 조성하는 데 실패한 대표사례이다. 신라에서는 불교와 世俗권력이 손을 잡고 그 융합에너지를 통일大業으로 쏟아 부은 성공사례이다. 하버드 대학의 설립을 결의한 것은 청교도들이 만든 이 매사추세츠灣회사의 이사회였다. 出自가 이러한 하버드 대학은 지금도 교회 회사 국가의 3대 요소를 근간으로 하는 보편적 진리의 탐구를 목표로 삼고 있다. 200억 달러 이상의 기금을 관리하는 하버드 경영회사, 전몰자 추모교회, 미국 파워 엘리트의 산실(産室)인 케네디 스쿨 같은 것은 유형적인 상징물이고 국익을 바탕으로 하여 보편성을 추구하는 하버드 학풍(學風)은 보이지 않는 흐름이다.
돈도 신을 믿는다
미국의 화폐와 동전에는 [우리는 신을 믿는다](In God We Trust)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 글은 1861년에 처음 화폐에 등장했다. 남북전쟁기간이었다. 北軍이 처음에는 패전을 거듭했다. 이때 한 지방의 목사가 재무장관에게 편지를 써 땅에 떨어진 북쪽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서 이런 글을 돈에 넣자는 제안을 했고 체이스 장관이 이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 뒤로는 이 글을 넣다가 안 넣다가 했는데 1956년에 의회가 이를 미국의 국가적 모토(The United States National Motto)로 결의하여 모든 화폐에 이를 반드시 새겨넣도록 법제화해 버렸다.
돈과 하느님, 다른 말로 하면 정신과 물질이다. 상충하는 두 개념을 조화시키고 있는 것이 이 모토이다. 물질의 뒷받침 없이는 정신의 순수성이 지켜질 수 없고 정신이 빠진 물질은 타락의 수단이 되기 쉽다는 의미가 이 모토에 들어 있다. 이를 동양사상적으로 해석한다면 [恒産이 있어야 恒心이 있다]는 뜻이고 氣(물질)와 理(정신), 야성과 지성의 통합을 말한다. 성공한 인간, 성공한 사회, 성공한 국가는 예외없이 이처럼 상반되는 요소들을 충돌시키지 않고 하나의 큰 질서 속에서 조화시키고 있다. 미국은 극도로 개인주의적인 국가이면서도 극도로 국가주의적인 나라이다. 개인주의와 국가주의라는 상반되어 보이는 요소를 이처럼 한 덩어리로 묶는 논리는 무엇인가. 이런 통합의 비밀을 알아낸다면 한국 사회에도 응용이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위선적 명분론과 속물적 물신주의를 어떻게 지양(止揚)할 것인가. 정신이 빠진 野性과 힘이 없는 知性을 어떻게 묶어 지성적 野性을 만들어낼 것인가.
미국의 건국 과정을 이해하면 미국인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미국의 국가적 성격의 상당 부분은 미국인의 성격 속에 녹아 있다. 한 미국영어 교사에게 한국인들이 덕목으로 생각하는 단어는 겸손과 성실이라고 하니까 '미국에서는 어서티브니스(Assertiveness)가 최고의 덕목이다'고 주장했다. 어서티브니스, 즉 확실한 자기 주장이 그 사회가 기리는 장점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겸손하고 성실한 사람은 바보 취급을 당할 수 있고 반대로 유교문화권에서는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사람은 무뢰한이나 건방진 사람으로 매도될 것이다.
미국인들은 개인이 어떤 단체, 예컨대 가족 국가 교회 회사 종족에도 종속될 수 없는 신성한 존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들은 부모와의 관계조차도 역사적이고 생물학적인 우연의 결과라고 본다. 父子관계도 인연을 뗄 수 없는 그런 불가피한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부모가 18세 정도까지만 양육을 해주면 그 뒤로는 집을 나가서 독립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만 20세가 지났는데도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청년들은 독립심이 부족한 얼치기로 취급받는다.
절대 공간
성년이 지나서도 부모와 함께 살 때는 일종의 하숙비조로 돈을 내는 것이 보통이다. 부모가 가난해서가 아니라 의존적인 인간이라는 인상을 주기 싫기 때문이다. 개인은 누구에도 종속될 수 없고 누구의 명령도 아닌 오직 스스로의 결단에 따라서 나의 운명을 결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진다는 것이 미국식 개인주의의 핵심이다. 보수와 진보도 이런 개인주의를 보는 시각을 기준으로 하여 나뉘어진다. 인간의 운명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편이 보수이고 사회와 환경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 진보이다. 이런 개인주의에서 프라이버시(Privacy)의 개념이 등장한다. 누구한테도, 즉 국가 회사 부모 그 누구에 의해서도 침범되지 않는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프라이버시의 철학이다. 이것은 물리적인 공간일 뿐 아니라 심리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그들은 고독한 시간과 공간이 있어야 인간은 소진된 정신적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이 시절부터 나의 방, 나의 장난감, 나의 책, 나의 옷을 가지고 나만의 절대공간을 확보하는 데 이력이 난 미국인들은 마음속에 하나의 분명한 선을 그어놓고 그 안쪽을 남에게 열어놓지 않는다. 이 선을 건드리면 그들은 신경질을 내거나 냉담해지거나 굳어진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하는 독립선언의 인간관은 미국인들의 생활 속에 정착되어 있다. 인종 남녀의 불평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회가 지향하는 목표는 분명히 평등한 인간 세계이다. 미국인들은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들을 특별하게 대우하는 것과 그렇게 대우받는 것을 굉장히 거북하게 생각한다. 이런 인간관에서 나온 생활습관이 인간관계나 옷차림, 대화, 행사에 있어서의 간편성이다.
미국인들은 시간의 흐름을 항상 느끼면서 살아가는 존재처럼 긴장되어 있다. 시간을 즐기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건설하고 생산하며 성취해야 하는 자원으로 생각한다. 능률에 대한 미국인들의 집착도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표현이다. 미국인들이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잘 정리되어 있고 두서와 절도가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맥도널드 햄버거 같은 [패스트 푸드]를 발명한 것도 미국인들이다. 이런 시간관으로 해서 그들은 일을 열심히 하고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며 행동파를 존경하고 물질지향적인 태도를 비판하지 않는다.
결투
미국인들은 솔직하고 직접적인 대화를 좋아한다. '우리 카드를 이 탁자위에 모두 펼쳐놓고 이야기를 시작합시다'느니 '우리 이제 말장난을 그만 두고 핵심으로 들어갑시다'는 식이다. 그래서 분쟁이 있을 때는 당사자들끼리 속을 털어놓고 해야지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하든지 중개인을 내세우는 것을 허약한 인격의 탓으로 보고 경멸하기도 한다.
미국 사회는 경쟁사회인데 이것을 지탱하는 규칙은, 경쟁은 공정해야 한다는 合意이다. 정부 판사 언론은 이 공정한 게임을 관리하는 심판자의 역할을 한다. 미국 형사재판에서는 피고인과 검사가 배심원들을 심판관, 재판장을 사회자로 두고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벌이는 하나의 결투를 연출한다. 재판장의 역할은 이 결투가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유의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살인혐의자도 보석을 받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도록 하는 이유도 그렇게 해야 피고인이 검사와 공평한 조건에서 싸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언론이 어떤 사람에게 불리한 보도를 할 때는 그 사람의 반론을 실어주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공무원의 부정 부패가 나쁜 이유도 그것이 특정한 사람에게 특혜를 주어 공정한 게임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런 공정한 게임을 유지하려면 심판관의 권위에 대한 존경이 있어야 한다.
1996년 미국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 뉴욕 양키즈의 타자가 친 외야 플라이를 볼티모어 오리올즈의 외야수가 받기 직전에 외야석에 있던 어린이가 끼고 있던 글러브를 내밀어 받아버린 사고가 있었다. 그때 외야심판은 이것을 홈런으로 판정했다. 텔레비전 중계방송을 보면 명백한 수비방해로서 소년의 개입이 없었다면 아웃을 당했으리라는 것이 확실했다. 당시의 언론이나 팬들은 잘못 판정한 심판을 비판하기보다는 이 소년의 애교어린 행동을 소개하는 식으로 처리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즈는 결국 이 사고가 원인이 되어 그 시합도 지고 시리즈도 놓쳤지만 재시합 운운하는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았다. 공정한 게임을 위해서는 심판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가 있어야 하고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니까 그런 실수는 불가피한 것으로 치부하여 참아야 한다고 하는 성숙한 자세를 읽을 수 있었다.
젊게, 때로는 철없이 보이는 미국인, 항상 결투하듯이 살아가는 사람들, 이 세상의 어느 누구에게도 자존심을 굽힐 수 없다고 생각하는 미국인, 얌전하다는 평을 수치로 아는 사람들…. 이런 미국인들을 보면서 나는 이들이야말로 민간인 복장을 한 군인이란 생각을 해보았다.
변명의 논리
지금 선진국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서양의 나라들은 거의 예외 없이 기사들이 지배층으로서 오랫동안 민중을 다스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동양에서 유일하게 선진국에 들어간 일본도 오랜 무사계급의 통치를 받은 적이 있다. 군인통치와 선진화의 관계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군인은 칼이나 총을 갖고 다니기 때문에 서로 조심하지 않으면 칼부림, 총부림이 나게 된다. 자연히 상대방에 대한 경계와 함께 조심성이 따라야 하고 사람을 대할 때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言行을 정확하게 또 정중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총이나 칼을 갖지 않는 민간인들끼리의 싸움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지만 무장한 사람에게 그랬다간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른다. 기자는 미국에 있었던 1년간 고함을 치면서 싸우는 모습을 정말이지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총기의 소지가 사실상 허용되고 있는 나라에서 상대방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모욕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 家口의 약 40%가 권총 단총 장총 등의 총기를 소지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개신교 신도들의 총 소지율이 46%로서 가톨릭 신도들의 30%, 유태교 신도들의 10%보다도 높다는 점이다. 미국의 개척을 선도했던 청교도정신의 영향과 총기 소지율은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정치적 성향에서는 보수파인 공화당 지지자의 소지율이 민주당 지지자보다도 약간 높았다. 군사문화의 전통을 가진 사회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우선 [상대방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아야 내가 안전하겠다]는 계산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러다가 보니 서로가 서로를 조심하는 시민윤리가 정착되며 이런 공중도덕의 바탕 위에 민주주의가 들어오니 자유롭지만 질서가 있는 민주주의, 즉 부드럽지만 무서운 얼굴을 한 민주주의가 가능한 것이다.
일본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한국인 민속학자는 '교수로 부임하니 동료 교수가 주의를 주는데 일본인들에게는 절대로 인격적인 모욕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하면 보복을 당한다는 것이었다. 그 한국인 교수는 그러면서 '오랜만에 한국에 와 보니 사회생활에서 인격 모독적인 언행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데 정말 놀랐습니다'라고 했다. 우리 모두가 총을 소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세상은 한결 조용해질 것이다. 한국은 결투의 전통이 없는 사회이다. 승부에서 지면 재빨리 변명의 논리를 개발하여 승복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말장난에 놀아나는 낮은 민도(民度)인 것이다. 약 40%의 한국인들이, 이상에 불타야 할 젊은 층에서 특히 많이 李仁濟의 경선불복 출마강행에 대하여 '나쁘지 않다'고 대답하고 있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참으로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약 180만 명이 감옥에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정신사적인 측면에서의 미국이다. 미국의 실상을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면 통계책을 보아야 한다. 미국인들 중에서 기독교 교회나 유태교 시나고그에 등록된 사람들은 68%이고 지난 일주일 사이에 한 번 이상 교회에 가서 예배를 올린 사람은 전체 국민들의 약 42%이다. 이 정도의 종교적 열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약 80%의 미국인들이 아직도 천국의 존재를 믿고 있다. 개신교와 舊敎의 비율은 60對 24이다. 30년 전에는 이 비율이 67대 25였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최초의 가톨릭 신도가 1961년에 취임한 케네디 대통령이었다.
약 180만 명의 미국인들이 지금 감옥에 있다. 약 60만 명은 유치장 소년원에 수감된 경범죄인들이고 약 120만 명은 기결수이다. 인구 1000명 중 일곱 명이 감방에 있다는 얘기이다. 우리나라의 옥중인구는 약 6만 명이므로 인구 비율로는 미국이 우리나라의 약 6배나 많은 죄수들을 갖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대강 1990년대 초를 기점으로 하여 범죄율이 떨어지고 있다. 뉴욕에서도 악명 높았던 웨스트 사이드에서조차 요사이는 밤에 거리를 활보해도 큰 위협을 느끼지 않을 정도이다. 줄리아니 시장은 검사 출신인데 범죄율을 떨어뜨려서 아주 인기가 높아졌다. 미국의 1980년대에는 10만명당 10명 정도가 매년 살인으로 죽어갔는데 90년대엔 10만명당 8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보스턴의 경우 2년간 청소년 살인사건이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약범죄만은 증가일로. 미국 정부가 마약범죄를 단속하고 중독자들을 재활시키기 위해서 쓰는 예산이 연간 150억 달러.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한 달 사이에 마약을 사용한 적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이 全인구의 약 4%나 되었다. 미국으로 밀수되고 있는 마약의 약 70%가 멕시코를 통해서 들어오고 있다. 이것은 또 멕시코의 가장 큰 산업이 마약밀매임을 의미한다. 미국법원이 범죄자에게 선고하는 형량은 한국보다 훨씬 엄격하다. 강간의 경우 평균 선고형량이 우리나라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징역 8년이고 강도는 징역 6년, 폭력은 징역 4년이다.
사형을 기다리는 3000명
약 3000명이 사형확정판결을 받아서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인구의 약 12%인 흑인이 사형수들 가운데서는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1970년에 미국의 어른들 중에서 이혼을 경험한 사람은 28%였는데 지금은 그 비율이 약 40%로 높아졌다. 이 때문에 어린이들의 73%만이 양(兩)부모와 같이 살고 있고 22%의 어린이들은 어머니하고만 살고 있다. 약 30%의 가구(家口)는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가정은 결혼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고정관념이 크게 위협을 받고 있는 셈이다. 독신자들의 친구는 텔레비전이다. 독신자들이 혼자 텔레비전을 보면서 먹고 마시도록 개발된 음료수와 과자류가 잘 팔리고 있다.
미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세금을 적게 거두는 나라이다. GDP, 즉 국내총생산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스웨덴은 약 50%이고 프랑스가 약 44%, 영국이 약 34%인데 미국은 일본과 거의 같은 29.7%이다. 대체로 유럽국가들이 세금을 많이 거두는 것은 사회보장 지출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런 유럽형 복지 국가가 국가경쟁력을 죽인다면서 요사이는 공화당을 중심으로 하여 사회보장적 성격의 지출을 줄이려고 애쓰고 있다.
미국의 예산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부문은 군사비가 아니다. 군사비는 전체 예산의 16%인 데 비해서 4700만 명에 달하는 은퇴자 장애자 및 그들의 가족에게 매월 내주는 사회보장비가 22%를 차지하여 가장 많다. 세 번째로 많은 예산 지출은 정부의 차입금에 따른 利子 지급비로서 전체 예산의 15%를 점하고 있다. 1960, 70년대에는 이런 이자 부담이 7%에 지나지 않았는데 적자예산을 오랫동안 편성하다가 보니 이자 부담이 군사비 부담과 거의 같아진 것이다.
미국에서는 흑인들을 아프리카-아메리칸이라고 부른다. 아프리카系 미국인이란 뜻이다. 미국에서 범죄가 줄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 흑인들의 교육수준과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흑인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살인사건은 미국 평균보다도 네 배나 된다. 따라서 미국에서 범죄를 줄이려면 흑인들 사회에서부터 줄여야 한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흑인들의 평균 부부당 소득은 백인의 약 90%까지 접근했고 고교 졸업자 비율을 기준으로 한 학력도 흑인과 백인이 비슷해졌다는 것이다.
흑인들은 백인과 흑인의 능력 차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흑인의 문제는 교육을 통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一流국가紀行/미국의 건국과 청교도 정신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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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0-29, 2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