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는 再起할 것인가?
민주-개혁세력으로 위장하여 정권을 잡은 뒤 조국을 적대시하고 主敵을 상전처럼 대해온 세력을 선거로 몰아낼 수 없다면?
'한반도의 이념-무장대치상황의 본질은 민족사의 정통성과 삶의 양식을 놓고 善과 惡, 거짓과 진실이 대결하는 타협이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이다'
1. 彼我구분의 顚倒: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主敵으로 삼아 공격했고 主敵 김정일 정권을 상전처럼 섬기고 굴종했다.
2. 좌경이념: 이런 彼我 식별능력의 마비현상은 그의 反헌법적-反국가적 좌경이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좌경이념은 대한민국적 가치(헌법, 정통성, 국군, 보수층, 韓美동맹)에 대한 증오심, 계급투쟁적 분열책동, 從金(김정일에 대한 추종)정책으로 표현되었다. 盧 정권은 헌법에 담긴 대한민국의 국가이념과 반대되는 가치관에 사로잡혀 국가의 進路를 근본적으로 잘못 잡았기 때문에 이 정권의 정책의 타당성과 효율성을 따진다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
3. 선동에 의한 國憲문란: 그의 국정운영 방식은 좌파적 거짓 선동과 法治(헌법 및 사법부)파괴를 특징으로 한 國憲문란행위의 연속이었다.
4. 좌익의 국가조종실 장악: 그는 측근과 정권 핵심부에 전향했다는 증거가 없는 極左공산주의활동가들(386 主思派)과 親北前歷者들을 대거 배치하여 식민지型 관료집단을 지휘하게 하였다. 90만 관료집단은 이들의 반역적(反헌법-反국가적) 정책을 맹목적으로 집행하는 부역집단이 되었다.
5. 간첩 등 비호: 노무현 정권은 송두율 민경우 강정구 한통련 한총련 등 反국가단체, 利敵단체, 간첩, 反국가 행위자 등의 反대한민국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거나 비호하고 이런 반역행위를 저지하려는 공무원 등에게 불이익을 주었다. 김정일 정권의 對南赤化戰略에 동조하는 위헌적 정당 민노당에 대한 해산절차를 밟지 않고 友黨으로 대우했다.
6. 좌익의 외곽포진: 정부기관 및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관의 핵심부서에 좌익운동권 출신들을 대거 배치하였다.
7. 좌익무장폭동 방조: 盧 정권은 평택 등지에서 反美좌익무장폭동이 발생하자 군인들을 무장해제시킨 채 내어보내 얻어맞고 도망다니게 했다. 좌익들의 불법폭력 시위를 강경 진압한 경찰청장을 몰아냈다.
8. 태극기세력 구박: 盧 정권은 반역세력을 비호하는 한편으로 애국운동 세력을 감시, 탄압하고 태극기를 구박했다. 친북좌익의 깃발 한반도기를 위해 태극기를 내렸다.
9. 對南적화노선 동조: 盧 대통령은 6.15 선언이 열어젖힌 반역의 문을 통해서 김정일 정권의 對南적화공작을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핵무장 허용, 국가보안법 폐지기도, 韓美연합사 해체 추진, 연방제赤化통일 찬성 등.
10. 北核비호: 특히 김정일의 핵개발을 '일리가 있다' '방어용이다'라고 적극적으로 비호하고 지원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최악의 위기에 빠뜨리는 利敵행위를 저질렀다. 그는 北核에 대한 유일한 억지력인 韓美연합사 체제를 붕괴시키고 韓美동맹을 껍데기로 만들어감으로써 국가를 敵前무장해제시키려 하고 있다.
11. 조총련 비호: 盧 정권은 한통련과 짜고 民團이 反국가단체 조총련에 굴복하여 투항하도록 배후에서 조종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
12. 反軍선동 및 害軍정책: 국군통수권자인 盧 대통령은 국군을 '인생 썩히는 곳'이라고 폄하하고 국군의 역대 지휘부 장성들을 공개적으로 저주함으로써 군 지휘계통을 문란시키는 反軍선동에 앞장섰다. 군복무기간 단축 계획 추진, 50만 감군 추진, 휴전선의 對北방송 중단 등 일관된 害軍정책으로써 국군의 戰力을 약화시켰다. 이런 反國軍 행위를 함에 있어서 허위사실 유포(자신은 戰時작전통제권이 없다는 식으로)에 의한 對국민사기숫법을 동원했다.
13. 국군포로 및 납북자 외면: 북한정권, 즉 김정일과 북한노동당 및 북한군을 강화시키는 對北퍼주기를 계속하고 김정일에게 충성한 간첩, 反국가단체(한통련)를 감싸거나 제휴하면서 국군포로, 탈북자, 납북자의 인권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국제사회의 對김정일 인권 압박을 방해함으로써 오히려 동족말살과 인권탄압을 비호했다.
14. 국가이념 變造: 국가위원회를 많이 만들어 이를 좌익들이 장악하게 한 뒤 대한민국의 과거와 약점을 캐도록 하는 한편 사법부의 확정판결을 뒤엎고 김일성 추종 공산폭력혁명 분자들의 반역행위를 표창하도록 하여 국가이념과 정체성의 變造를 계속하고 있다.
15. 세금폭탄: 盧 정권은 高額납세자를 적대시하고 양극화를 선동하면서 세금폭탄으로 거둔 세금을 김정일과 북한군을 돕는 데 낭비하였다. 자기 편의 억지(지율 단식투쟁)에는 쉽게 굴복하여 國富를 축냈다 .
16. 조국에 대한 적개심: 盧 대통령과 열린당 정권이 저지른 이상의 반역적 행태를 일관하는 흐름은 대한민국에 대한 적개심이고 김정일 정권에 대한 好感과 굴종이다. 대한민국은 그의 主敵이고 김정일 정권은 그의 主人이었다.
* 총괄: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국가인 대한민국의 건국을 북한의 김일성 괴뢰정권과 같은 '분열정권의 수립'이라고 저주했다. 그는 북한정권의 對南赤化전략의 핵심인 연방제안을 지지했다. 이는 대한민국을 反국가단체인 북한정권과 同格으로 격하시키고 대한민국 영토인 북한지역을 포기하자는 뜻이다. 그는 국가위원회가 대한민국 전복을 목표로 한 공산폭력혁명기도자들을 민주화운동가로 결정하여 국가의 이름과 예산으로 표창하고 보상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그는 또 지지자들을 향해서 '시민혁명'을 선동했다.
그는 反국가적 인사들과 조직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이런 反국가적 활동의 총본산인 김정일 정권에 대해선 굴종과 비호로 일관했다. 그는 한국의 대통령은 의무적으로 김정일 정권을 主敵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헌법의 명령을 거역했다. 그는 국군이 김정일 정권을 主敵으로 보지 말고, 북한군의 미사일과 핵을 위협으로 보지 말도록 강요하는 한편 대한민국의 敵인 북한정권, 간첩, 反국가단체, 利敵단체들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했다. 대한민국 수호 세력인 국군, 애국단체, 정통언론, 보수층에 대해서는 전면적인 危害행위로써 국가수호 의지를 약화시키려 했다.
그는 정부의 공권력을 利敵목적으로 악용하고 거짓말을 퍼뜨리고 계급투쟁적 양극화를 선동하는 숫법으로 대한민국에 대한 총공세를 지휘했다. 국군통수권자가 좌경이념-좌익인맥-좌경정책을 일체화한 정권의 힘으로써 국민국가와 민주제도를 공격한 것이다.
헌법제66조2항은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 영토의 保全,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고 규정했다. 그는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를 추행했다. 잘 속는 국민들, 특히 북한동포의 떼죽음에 대한 동정심과 김정일에 대한 분노와 대한민국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는 국민들, 잃을 것이 많을수록 싸움을 피한 비겁한 부자들, 어떤 형태의 권력이든 무조건 추종하는 식민지型관료집단, 애국심이 없는 기업인들, 위선적 지식인들이 '노무현의 亂'을 불렀다.
2007년 大選과 2008년 총선은 국민들이 대각성하여 민주적 방법, 즉 선거에 의한 방법으로, 평화적으로, 이 國憲문란 사태를 진압할 수 있는가의 여부를 보여줄 것이다. 평화적 해결이 불가능해지면 피를 흘리는 內戰的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로서는 속느냐, 죽느냐의 싸움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인의 10가지 오해
-민주주의는 투쟁이다? 민주국가에서 민주주의는 준법이다.
1. 민주화는 민주투사들이 이룩했다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국민국가로 건국시킨 이승만 등 건국세력, 공산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호국세력, 박정희 등 산업화 세력, 학생 등 민주투사들의 합작품이다.
2. 민주주의는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이다.
-민주주의는 안전, 복지,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와 法治를 만드는 이념이다. 평화적 정권교체는 민주주의의 일부이며 수단이다.
3. 군사문화는 민주주의의 敵이다.
-군사문화가 강한 나라, 즉 유럽과 일본에서 민주화가 먼저 이뤄졌다. 군사문화가 富國强兵과 法治를 만들고 이 토양에서 질서 있는 민주주의가 꽃핀다. 진정한 군사문화는 민주주의의 온실이다. 한국에서도 군인출신들이 산업화와 민주실천을 주도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적은 관념론, 명분론, 그리고 위선이다.
4. 민주주의는 자동적으로 공산주의를 이긴다.
-어린 민주주의는 공산주의에 추행당한다. 성숙한 민주주의만이 공산주의를 이길 수 있다.
5. 가난한 나라라도 민주주의를 하는 데는 지도자의 결심만 있으면 된다.
-민주주의는 부자 나라만 할 수 있다. 가난한 나라가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시도하면 반드시 후퇴하고 혼란에 빠져 독재화된다.
6. 민주주의는 당장 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富와 경험의 축적이 필요하다.
7. 민주주의는 약하다.
-민주주의는 실수를 견딘다. 유연하기 때문에 충격을 흡수한다.
8. 민주주의는 투쟁이다.
-민주국가에서 민주주의는 준법이다.
9. 민주주의는 도덕주의이다.
-민주주의는 관용이다.
10. 민주주의는 집단주의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주의이다. 개인의 사생활, 사유재산, 양심의 자유를 신성불가침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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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발전과 국민참여의 확대과정
민주주의의 선진국 영국에서도 1754년에 투표권을 가진 사람은 당시 인구 약800만 명의 3.5%인 28만 명에 불과했다. 이들은 물론 귀족들이었다. 차츰 선거권이 확대되어 갔다.
1884년에 가면 세금을 내는 모든 家口主가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1918년엔 세금을 내는가의 여부와 관계 없이 모든 성인 남자들이 투표권을 가지게 되었고, 여자들에 대한 보통 선거권은 1928년에 주어졌다.
프랑스에서도 1790년 일정규모의 재산을 가진 납세자에게 투표권을 주었다. 1815년엔 30세 이상의 年 300프랑 이상 납세자가 투표권을 가졌다. 1820년엔 일정 재산 이상을 가진 유권자는 1인 두 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1830년엔 25세 이상의 200프랑 이상 납세
자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그 인구는 전체 성인의 170분의 1이었다. 1848년 모든 남자 성인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가 2년 뒤 3년 이상 거주 납세자로 제한되었다. 1851년에 다시 남자보통선거권으로 돌아갔다. 1945년에 모든 여성 성인이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이상의 사실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선거권 확대란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참여폭이 확대되는 과정이란 사실이다. 동시에 선거권 확대는 점진적이었고 신분중심(봉건체제)-납세중심(부르조아 체제)-남여 모두(대중 민주주의 시대)로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이런 수백년에 걸친 점진적인 과정을 생략하고 1948년 헌법 제정과 동시에 보통선거를 하게 되었다. 재벌 총수도 한 표, 직원도 한 표이다. 무직자도 한 표, 교수도 한 표이다. 세금을 수백억원 내는 사람도 한 표, 안내는 사람도 한 표이다. 선거권의 점진적
확대 과정은 투쟁의 과정이고 민주주의 학습과 실천의 과정이었다.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그 결과물로서의 男女 불문한 1인1표제를 도입한 것은 어떻게 보면 서양사람들이 피와 땀과 눈물을 쏟아부어 만들어낸 민주주의 제도에 무임승차한 셈이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유럽 민주주의 국가 사람들의 苦鬪를 인정하고 감사하면서 민주주의의 본질을 공부하고 실천해야 할 의무를 진 셈이다.
1948년 이후 한국의 민주화 과정은 서양에서 수백년 걸려(영국의 경우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제정부터 시작하면 보통선거 쟁취까지 약800년이 걸렸다) 발전시킨 민주주의 제도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압축적으로 겪고 있는 과정이라고 보여진다. 우리는 민주주의란 연극, 민주주의란 연습을 해온 셈이다. 연극과 연습을 많이 하면 實演이 되긴 하지만 외래 제도나 사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선 엄청난 代價를 치러야 한다. 西歐의 민주주의를 기
준으로 하여 李承晩과 朴正熙를 독재자라고만 단정하는 것은, 메이저 리그의 통계를 기준으로 삼아 동네 야구 선수들을 혹평하는 것과 같다. 세종대왕에게 왜 민주주의를 하지 않았느냐고 욕설을 퍼붓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구의 선진 민주주의를 판단기준으로 하여 李承晩, 朴正熙가 독재를 했다고 주장하고싶은 사람은 민주주의가 도입된 지 10~30년만에 선진국 수준의 민주주의를 성취한 나라를 발견해야 한다. 세계사에는 물론 그런 예가 없다. 李, 朴 두 대통령 시절의 민주주의는 19세기의 유럽 민주주의보다 더 민주적이었다. 당시 한국의 10~30년짜리 민주주의가 유럽의 700년짜리 민주주의보다 더 발전되었다면 두 전직 대통령을 과연 자신 있게 독재자라고 매도할 수 있을까.
일본에 비교하면 李, 朴 두 대통령 시절의 민주주의는 1910~20년대의 다이쇼 데모크라시보다 못하지 않다. 북한과 중국은 아예 비교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무슨 기준으로 盧정권 사람들은 朴正熙를 파쇼라고 욕하는 것일까. 그들이 가진 기준은 지상의 것이 아니라 천국의 기준이든지 자기 꿈속의 기준일 것이다. 그들의 잣대는 북한정권에 들이댈 때는 갑자기 눈금이 넓어지는 요술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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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正熙의 항변-'민주주의 소화불량증을 개탄함'
* 아래 글은 1975년1월14일 朴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 내용중 일부이다.
<무슨 외국 언론 기관에, 미국 국회 의원들한테, 어느 학자들한테, 무슨 정치인들한테…, 그것도 사실을 사실대로 써서 보내면 좋겠는데 전혀 허위 날조된 그런 사실을 가지고 우리 정부가 마치 무슨 인권을 크게 침해하는 것처럼 이렇게 선전을 해서 외국에서 어떤 세력을 끌어들여 가지고 우리 정부에다가 압력을 넣어서 그 사람들을 석방시키겠다 하는, 그런 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데 대해서 나는 지극히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솔직이 말하면 이것은 사대주의 근성입니다.
민주주의도 좋고 자유도 좋지만, 우리 나라가 하나의 자주 독립 국가로서 앞으로 이 지구상에서 뻗어 나가자면, 우선 우리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뿌리 깊은 사대주의 근성을 뽑아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민주주의 얘기가 나왔으니까 또 몇 마디 언급을 하겠습니다만,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2차 대전 후 이 지구상에는 신생 민주주의 국가가 많이 생겼습니다. 내가 알기에도 한국 전쟁 당시 유엔 회원국이 한 50여 개 국이었는데 지금 현재는130여 개 국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이들 국가 중에 공산주의 국가를 빼놓고 기타 서방 진영에 속하는 국가들은 거의 대부분 서구 민주주의를 자기 나라에 받아들여서 시행을 해 보았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것을 직수입해서 성공해 가지고 지금 잘 해 나가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몇 개나 되느냐, 여러분들 한 번 꼽아 보셔요. 지도를 내놓고 보십시오.
동남 아시아든지 중남미라든지 아프리카라든지…, 내가 알기로는 거의 한 번씩 다 홍역을 치르고 중병을 앓았어요.
지금도 민주주의 소화 불량증에 걸려서 신음하고 있는 나라가 한두 나라가 아닙니다.
그래도, 그 중에서 조금 잘 해 나가는 나라는 서구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되, 자기 나라의 실정을 감안해서 가급적 실정에 알맞게끔 이것을 잘 조화해 나간 나라는 비교적 잘 하고, 그렇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직수입을 한 나라는 열이면 열 전부 다 민주주의 병에 한 번씩 걸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엄연한 사실이 아닙니까. 민주주의 제도라고 하는 것도 민주주의가 그 나라에서 자랄 수 있는 토양과 풍토가 조성되어야만 자라나는 것이지, 그런 것 없이 그냥 갖다 심어 가지고는 잘 자라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같은 우리 한국 내에 있지만 제주도에 있는 밀감나무를 서울 근처에 심어 보아도 살지 못하지 않습니까? 같은 국내라도, 서울에 갖다 놓고 밀감나무가 자라나게 하려면 특별히 防風을 잘 한다든지, 온실을 만든다든지… 무언가 제주도하고 비슷한 토양이나 기후나 이런 조건을 갖추어 주어야지, 서울의 영하 20도가 되는 데다 그냥 갖다 놓았다면 당장 다 얼어 죽을 것입니다.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맛이 좋은 음식이라도 자기 체질에 맞지 않으면 소화가 안 되는 것입니다.
좀 쑥스러운 얘기입니다마는, 나는 지금도 목장 우유라든지 끓이지 않은 우유를 먹지 못합니다. 왜냐? 체질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깡보리밥에 깍두기를 먹고 자란 뱃속이 되어서 그런지 목장 우유라든지 생 우유는 맞지 않아 먹으면 배탈이 나고 설사가 납니다. 그러나, 우리집 아이들은 잘 먹습니다. 어릴 때부터 먹어서 훈련을 시켰으니까….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도 역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나라에도 해방 후에 서구 민주주의를 받아들여 가지고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별별 것을 다해 보았습니다.
자유당 때 헌법, 민주당 때 헌법, 또 5·16후에 민정 이후 제3공화국 헌법, 다해 보았지만 우리 나라의 특수 여건을 감안하지 않고 우리의 풍토에 잘 맞도록 조정을 하지 않으면 여기에서 자라날 수 없다는 결론을 우리는 얻지 않았습니까?
일부에서 유신 헌법을 철폐하고 옛날 헌법으로 다시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과연 옛날 상태로 돌아가서 나라가 잘 되고 국민들이 모두 행복스럽게 잘 살 수 있겠느냐…, 몇몇 정치인들은 좋아할 것입니다. 옛날 그런 헌법 체제로 돌아가면 정치인 만능 시대가 되고 그들이 활개를 치고, 여러 가지 좋은 점이 많을는지는 모르지만, 과연 그것이 국민 전체의 행복이 되고 국가 전체에 이익이 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요즈음 그 사람들은 우리 나라 건국 이후에 어느 헌법이 제일 좋았느냐, 이렇게 물으면 제2공화국 헌법이 제일 좋았다고 그래요, 즉 민주당 때의 헌법이지요.
그것이 자유 황금 시대라 그 말이에요. 그런데, 요즈음 여러분들이 그 시대의 기록을 보십시오. 내가 본 어떤 기록에는, 어떤 날은 하루에 전국에서 데모가 1천 여 건이나 일어났어요.
국민 학교 아동들까지도 거리에 나와서 데모를 하고, 이러한 무질서, 자유를 빙자한 방종, 혼란, 비능률, 또 선거 때만 하더라도 과거의 그 선거 제도를 우리가 다 여러 번 겪은 것 아닙니까. 얼마나 거기에서 많은 돈이 낭비되고, 사회적인 혼란, 국민 도의의 타락, 또 그 병폐라는 것은 일일이 우리가 열거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 상태로 우리가 다시 돌아가고 지금 체제를 철폐해 버리고 그런 낭비와 혼란을 되풀이하면서도 자주 국방도 잘 되고, 자립 경제도 잘 되고, 민주주의도 잘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병폐를 깨끗이 일소하고 국민의 모든 능력을 한 곳에 집중해서 국력의 가속화를 해 보자는 것이 유신 체제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도 서서히, 착실히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우리도 남부럽지 않게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아 올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현행 헌법은 고쳐서는 안 되겠다, 유신 헌법을 철폐하고 옛날 헌법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솔직히 말하면 나라 망하는 길이다, 나는 이렇게 단언하여 얘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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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盧武鉉 대통령을 민주주의자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런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그를 '헌법무시자' '상습적 위헌행위자'라고 비판한다. 헌법무시자, 상습적 위헌자가 민주주의자가 될 수 있는가. 없다.
이런 착각은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한국 사람들은 '민주주의=선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선거를 통해서 당선된 정치인은 자동적으로 민주주의자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히틀러도 선거를 통해 당선되었으니 민주주의자라야 한다.
민주주의적 정치인이 되려면 선거를 통해서 권한을 부여받고나서 헌법과 그 하위 법률을 지켜야 한다. 히틀러는 선거를 통해서 집권했으나 법치를 무시하고 독재로 갔기 때문에 독재자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서 집권했으나 그 권력을 남용하여 헌법위반을 다반사로 하고 있으므로 민주주의자라고 할 수 없다.
헌법에도 없는 국민투표에 의한 재신임 추진, 헌법을 위반한 수도이전 추진, 그 遷都가 위헌이란 지적을 받은 뒤에도 수도분할이란 편법동원, 국민들의 의사를 들어보지 않고 對北송전 추진 등등 헬 수 없을 정도의 위헌적 행태로 해서 한국의 法治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민주화 요구는 거리의 투쟁으로 할 수 있지만 민주주의 실천은 법치로써 해야 한다. 특히 권력자가 준법하지 않을 때는 그로부터 민주주의자라는 명예를 박탈해야 한다. 더구나 그는 변호사가 아닌가. 변호사에 의한 헌법파괴는 가중처벌감이다. 법률지식을 흉기화한 경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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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하느님이 아니다'
박정희는 국민들이 성숙되지 않는 상태에서 형식적으로 하는 민주주의는 선동꾼들의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때 한국은 중산층이 든든하여 그런 선동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으나, 남북한 좌익 선동꾼이 방송 등 주요언론 매체를 장악하여 對국민선동을 해대니 건전한 중산층도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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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공한 혁명에는 논리와 철학이 있다. 20세기의 가장 성공적인 박정희식 근대화 모델을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이 근대화 혁명을 가능하게 만든 논리로서의 철학을 말하는 사람은 적다.
박정희 사상이 지금까지 별로 정리되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자신의 논리를 어렵고 고상하고 정교하게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설적으로 투박하게 툭툭 여기저기 던져놓기만 했던 몇 줄의 글들을 다시 모아서 지나간 세월의 캔버스에 배열해놓으면 비로소 이 혁명아가 그리고 있었던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의 설계도, 그 밑그림이 나타나는 것이다.
박정희는 우리 민족사의 위대한 1급 지식인이자 사상가였고, 그 사상을 실천에 옮겨 민족이 처한 상황을 타파해간 혁명가였다. 삼국통일로써 우리 민족사에서 공간적인 현상 타파를 가져온 金庾信, 그리고 한글 창제로써 정신적인 현상 타파를 꾀했던 세종대왕과 같은 반열에 서게 될 당대의 진보적 사상가였다. 그는 淸貧을 위선자와 패배자의 변명이라고 경멸하고 우리 민족의 숙명처럼 따라다니던 가난을 물리침으로써 민족사의 물질적인 제약을 타파해간 사람이다.
혁명가 박정희의 진정한 혁명성은 해방 이후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민주주의는 하느님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면서 실천적인 한국적 민주주의를 모색했다는 점이다. 또 다른 혁명성은, 그가 생전에 자신의 혁명논리를 체계화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던 점에 있다. 혁명이 이념화되면 우상숭배로 전락하고 혁명을 타락시킨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 어떤 주의나 학설의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고 그 어떤 주의나 학설도 거부하지 않고 자유자재로 활용했던 실용성과 주체성이 그의 진정한 혁명논리였다. 그는 섣부른 이념이 없을 때 영구혁명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는 한민당에 뿌리를 둔 해방 후의 정치세력을 민주주의의 탈을 쓴 봉건적 수구세력으로 규정했다. 그들 舊政治人이야말로 '덮어놓고 흉내낸 식의 절름발이 직수입 민주주의'를 맹신하는 사대주의자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그의 혁명적 역사관은 서구식 민주주의 맹신자들이야말로 조선시대의 당파싸움 전문가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위선적 명분론자라고 규정하도록 했다.
그는 그런 관점에서 4.19와 5.16혁명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고 있다. 즉, 4.19혁명은 '피곤한 5천년의 역사, 절름발이의 왜곡된 민주주의, 텅 빈 폐허의 바탕 위에 서서 이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라는 명제를 던졌고 이 명제에 해답하기 위한 '역사에의 민족적 총궐기'가 5.16이란 것이다. 4.19와 5.16을 동일선상에 놓는다는 것은 자유당과 민주당을 똑같은 봉건적.수구적 세력, 즉 근대화 혁명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뜻이다. 그는 1963년에 낸 '국가와 혁명과 나'라는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4.19학생혁명은 표면상의 자유당 정권을 타도하였지만 5.16혁명은 민주당 정권이란 가면을 쓰고 망동하려는 내면상의 자유당 정권을 뒤엎은 것이다.'
그가 지금 살아 있다면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을 몽땅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내면상의 독재守舊정권'이라고 규정할 것이다.
다수의 국민들과 지식인들이 자유당을 독재, 민주당을 민주세력으로 보고 있었던 데 대하여 박정희는 그런 형식논리를 거부하고 그들의 본질인 봉건성을 잡아채어 둘 다 역사 발전의 반동세력이라고 단정하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 語錄 어디에서도 合憲정권을 무너뜨린 데 대한 죄의식과 변명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박정희가 이런 혁명적 시각을 자신의 신념으로 내면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원(不遠)한 장래에 망국의 비운을 맛보아야 할 긴박한 사태를 보고도 인내와 방관을 미덕으로 허울 좋은 국토방위란 임무만을 고수하여야 한단 말인가. 정의로운 애국군대는 인내나 방관이란 허명(虛名)을 내세워 부패한 정권과 공모하고 있을 수는 도저히 없었다. 말하자면 5.16혁명은 이 공모를 거부하고, 박차고 내적(內敵)의 소탕을 위하여 출동한 작전상 이동에 불과하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는 서구식 민주주의의 강제적 移植과 맹목적 추종을 비판했으나 자유민주주의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자주정신이 강한 그로서는 외래 정치사상을 부정하고 싶고 그리하여 민주주의란 이름이 붙지 않는 한국식 정치원리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지만 자신과 한국의 처지를 자각하고 있었다.
'엄격한 의미로서 혁명의 본질은, 본시 근본적인 정치사상의 대체와 사회 정치구조의 변혁을 뜻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런 점에 있어 한계가 제약되어 있고, 그 혁명의 추진에 各樣의 제동작용이 수반되고 있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원칙으로 함에는 벗어날 수가 없다. 민주주의의 신봉을 견지하는 한 여론의 자유를 막을 수는 없다. '토론의 자유' 속에 '혁명의 구심력'을 찾아야 하는 혁명. 바로 이것이 본인이 추구하는 이상혁명이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힘이 들고 어려운 길이다.'
박정희 근대화 혁명이 성공한 요인은 유교의 실용성과 집단주의적 희생정신을 동원하여 이를 서구 자본주의의 시장원리에 연결시킴으로써 경쟁체제의 작동에 의한 영원한 自轉力을 얻어냈다는 점에 있다. 동양과 서양문화의 장점을 뽑아내어 종합한 셈인데 이런 유연성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주체적 관점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유연한 실용적 행동은 자신감과 자주성에서 나온다.
朴대통령은 1970년대의 한국인들은 민주주의를 할 만한 성숙성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고 보았다. 이런 조건하에서 형식적 민주주의를 실천하면 국가의 이익과 안전이 정치논리에 의해 망가지고 위선자와 거짓말쟁이와 선동가들이 민주주의를 악용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 세대가 흐른 2006년에도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선동에 잘 속아 넘어가는 국민의 존재'이다. 민주주의는 主權在民의 원리에 기초하는데 권력을 만들어내는 국민들이 거짓과 선동의 밥이 될 때 그들이 선택하는 정권도 거짓말장이와 선동꾼들일 수밖에 없다. 파키스탄, 필리핀,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가 그런 꼴이다.
한때 한국은 중산층이 든든하여 그런 선동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으나, 남북한 좌익 선동꾼이 방송 등 주요언론 매체를 장악하여 對국민선동을 해대니 건전한 중산층도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선 언론의 이런 행패와 국민들의 미성숙을 보완해야 할 국가적 엘리트層도 얇아졌다. 국가적 엘리트란 인문적 교양(문학, 철학, 예술, 역사)을 체득하고 국가를 위하여 私益과 지역적 이해관계를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런 엘리트층은 전문성과 주체성을 두루 갖추어야 한다.
한국어의 약70%를 차지하는 漢字語를 한글로 표기함으로써 한국인들의 언어생활을 암중모색의 암호풀이로 전락시킨 것이 국가적 엘리트층 역할을 맡아야 했던 언론 교육담당자들이었다. 모든 인문적 교양의 바탕이 되는 國語를 파괴하는 데 앞장 섰던 언론 교육 지식인들에게 엘리트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2大 위기인 좌경화와 저질화는 한글전용에 의한 국어파괴를 토양으로 하고 있다. 이 國語파괴가 소위 엘리트층의 상업주의와 대중영합에 의하여 이뤄졌다는 점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진정한 국가 엘리트의 원동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이 한국의 위기, 그 핵심이다. 한글전용은 엘리트층의 자살이었다. 이 한글전용을 朴正熙 대통령이 한때 응원했다가 후회했다는 점도 역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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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민주주의 안했다고 화내는 격
-부자나라에서만 민주주의가 되고 가난한 나라에서는 민주주의가 短命한다는 통계.
富者나라가 아니면 절대로 民主국가가 될 수 없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정치학자 아담 프저워스키와 페르난도 리몽기가 만든 통계이다. 1950-1990년 사이 1인당 국민소득 1500달러(현재 가치 기준) 이하인 나라가 민주주의 체제를 시험했을 경우 그 평균수명은 8년밖에 되지 않았다. 1500~3000 달러 사이에선 평균수명이 18년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6000달러 이상인 민주국가가 전복되어 독재로 돌아갈 가능성은 500분의 1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9000달러 이상인 32개 민주국가는 단 한 나라도 체제가 붕괴된 적이 없다. 반면, 그 이하 69개 국가중 39개가 민주체제를 유지하지 못했다. 약56%의 사망률이었다.
부자나라가 되는 길이 바로 자유로운 나라가 되는 길이다. 가난한 나라가 되는 길이 바로 억압으로 가는 길이다. 淸貧이란 말은 사기인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80달러도 되지 않았던 李承晩 정부 시절에 왜 완벽한 민주주의를 하지 않았느냐고 욕하는 것은(李대통령은 불완전한 민주주의는 했다), 세종대왕에게 왜 직선제로 왕이 되지 않았느냐고 욕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한국을 부자나라로 만드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朴正熙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무리인가도 알 수 있다.
30년간 한국의 인권은 향상 추세
-프리덤하우스 조사 자료 분석. 군사정부 시절에도 「부분적으로 자유」로 분류돼-
미국의 세계 인권 감시 관찰 기구인 프리덤 하우스(www.freedomhouse.org)는 매년 세계 192개국의 인권상황을 세 등급으로 나눠 발표한다. 기준은 정치적 자유와 시민적 자유의 합산이다. 평균 점수가 1에서 2.5점이면 「자유」(free), 3점에서 5.5점 사이는 「부분적으로 자유」(partly free), 5.5-7점 사이는 「자유롭지 못함」(not free)로 분류한다.
2003년 보고서에 따르면 34개국이 「자유」국가중에서도 1등급인 1점 국가였다. 대부분이 유럽 국가와 北美 국가들이다. 우루과이(南美), 투바루(남태평양), 마샬군도, 키리바시(남태평양의 영연방 소속 島嶼 국가), 도미니카, 사이프러스, 바베이도스(남미), 호주, 산마리노(이탈리아 반도의 小國)의 이름이 보인다. 자유국가들 중 2등급인 1.5점 국가로는 불가리아, 체코, 그리스, 파나마, 남아프리카, 폴란드, 헝가리 등 28개국이 여기에 포함된다. 일본과 칠레도 이 그룹이다.
한국은 자유국가중 3등급인 2점 국가인데 보츠와나, 크로아티아, 멕시코, 몽골, 루마니아, 사모아, 대만 구야나, 이스라엘, 도미니카 공화국 등 11개국이다. 무장대치상황하에 있는 세 나라, 이스라엘 대만 한국이 같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흥미롭다.
세 나라는 선진국 문턱에 있는 나라란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무장대치상황에선 인권을 제약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국가」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에선 대단한 것이다. 이스라엘과 대만과 한국은 국민국가를 만들어 운영한 햇수로는 50여년에 불과하지만 찬란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민족임이란 점에서 공통성이 있다. 한 국가의 선진성을 좌우하는 3대 요소는 국민국가 운영 경험의 길이, 문명사의 깊이, 지정학적 위치의 組合이다. 한 요소에 결함이 있어도 다른 요소가 월등하면 선진국 수준에 육박할 수가 있다.
자유국가중 4등급은 2.5점 국가이다. 페루, 필리핀, 타일랜드, 인도 등 16개국이다.
북한은 이 조사가 실시되기 시작한 1972년 이후 한번도 「자유롭지 못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유롭지 못한 국가들도 4등급이 있는데 북한은 최악중의 최악인 7점 국가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북한주민들은 평화시에도 300만 명이 굶어죽을 정도의 절대 빈곤 속에서 살고 있는데다가 가장 억압받는 주민이란 이야기이다.
물질적, 정신적 조건에서 다 최악의 상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북한동포들이다. 이 지국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 지경으로 만든 金日成 金正日은 최악중의 최악이란 이야기다. 예컨대 북한과 함께 7등급으로 분류된 나라들중 북한처럼 주민들이 굶어죽는 나라는 없다. 버마, 쿠바, 이라크, 사우디 아라비아, 리비아, 수단, 시리아, 투르크메니스탄 중 수단이 10년 전 內戰으로 100만 명이 굶어죽은 적이 있을 뿐이다. 북한은 내전이 아닌데도 평화시에 수백만 명이 한 마디 항의도 없이 조용히 굶어죽은 곳이다.
한국은 1972-73년과 1976-77년 사이 두번 「자유롭지 못한 국가」로 분류되었다. 朴正熙 대통령의 유신통치기였다. 이 두번을 뺀 朴正熙, 全斗煥 통치기간 내내 한국은 「부분적으로 자유로운 국가」로 분류되었다. 한국은 盧泰愚 정권이 들어선 1988년에 처음 「자유로운 국가」로 승격했는데 점수는 정치적 자유에서 2점, 시민적 자유에선 3점이었다. 점수는 작을수록 자유롭다는 이야기이다.
金泳三 정부가 들어선 1993년부터는 「자유국가」중 한 등급이 올라 2점 국가로 되었다.
위의 통계는 한국의 인권상황이 소위 군사정부 시절에도 말살된 적은 없었으며 부분적 자유는 항상 누리고 있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의 인권상황이 꾸준히 향상되어오다가 1993년도에 2점 국가가 된 이후엔 10년이 지나도록 1.5점 국가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문민정부, 국민정부, 참여정부란 구호는 좋지만 인권향상의 속도에선 권위정부 시절보다도 오히려 떨어지는 셈이다.
朴正熙 全斗煥 정권을 비난하는 이들은 파시즘이니 전체주의니 스탈린 체제와 같다느니 하는 비교법을 쓴다. 프리덤하우스의 통계는 이런 비난이 과장된 것이며 「권위적 정부」라고 표현하는 정도가 맞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적 자유 이외에 물질적 자유, 즉 굶주리지 않을 자유를 소위 군사정부가 국민들에게 준 점까지 감안한다면 박정희, 전두환 정부의 인권 점수는 더 올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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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권위 있는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www.freedomhouse.org)의 세계인권상황에 대한 최신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쟁과 테러의 와중에서도 자유를 향한 인류의 진보는 계속되고 있다.
이 조사가 맨첨 시작되었던 1973년에 조사대상 150개국중 '자유국'으로 분류된 나라는 43개국(29%)이었다. 올해(2003년) 조사대상 192개국중 89개국(46%)이 자유국으로 분류되었다. '부자유국'은 지난 30년 사이 69개국(46%)에서 48개국(25%)으로 줄었다. 자유의 확대란 것이 세계사의 진보임을 잘 보여준다.
이 세계사의 진보에 저항하고 있는 것은 북한 김정일 정권이다. 지난 30년간 단 한번도 프리덤 하우스의 '최악의 인권탄압국' 명단에서 빠지지 못하고 있다. 김일성-김정일 정권이 자유를 기준으로 할 때 세계사의 흐름을 역류한 守舊세력이란 것은 이런 통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1973년 아시아-태평양 국가 32개국중 자유국은 8개국이었다. 30년이 흘러 이 지역의 자유국은 18개국으로 늘어났다. 북한은 이 지역의 자유의 확대 행진에서도 탈락했다. 세계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자유국으로 분류된 89개국(조사대상 192개국중 46%)의 국내총생산 합계는 세계 전체의 89%나 되었다. 부분자유국의 비중은 5%, 부자유국은 6%에 불과했다. 이는 정치적 자유가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 주는 지름길임을 보여준다. 프리덤하우스는 정치적 권리와 시민적 자유를 기준으로 하여 자유, 부분자유, 부자유를 결정한다.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는 再起할 것인가?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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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1-14, 21: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