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건달세력 퇴출시킬 우파 건설세력

우파 건설세력은 다시 대한민국의 조종간을 잡는다
한국사회의 변동과 좌파세력의 필연적 종말 ('조갑제 현대사 토요강좌' 강연원고)

해방 후 한국사회에 대한 기능주의적 해석 - '한방, 그 비합리적, 위선적, 요행적 충동의 종말'

이번 대통령 선거는 '한 방'의 유혹에 빠져있는 집권 좌파세력이 가지고 있는 위선적이고 요행적인 충동을 끝내는 것이다. 개미처럼 근면하게 일하여 대한민국을 이렇게 번창시킨 우파 건설세력(산업화세력)은 티끌 모아 잘살아 보자는 생각을 가진 실용주의자들이다. 그러나 몽상하고 신화적인 정치구호로 군중들을 선동하면서 한국의 정체성과 안보를 허무는 건달세력(민주화세력)은 근본적으로 한방의 혁명을 노리는 反실용주의자들이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인정하는 건설세력과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인하는 집권 좌파세력의 이념전이 전개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 달 이명박 후보 진영이 '이념과 안보와 같은 문제를 다루는 가치논쟁을 피하겠다'는 선거전략을 내놓은 것은 한국정치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넌센스이다. 모든 선거는 이념과 가치를 기초로 한 세력들 간의 총성 없는 전쟁이다. 민주, 평화, 개혁, 통일 등의 몽상한 구호로 정치신화를 조성하여 국민들을 선동하는 좌파세력을 퇴출시키는 선거는 근본적으로 이념전이다.

오늘날 집권 좌파세력의 남북한 평화공세, 대한민국 파괴, 그리고 남한국토 떼주기 등의 반국가적 행각이 극에 달하고 있다. 집권 말기가 되면 모든 것을 마무리 지워야 하는 것이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국정운영인데, 노무현 좌파정권은 마치 마지막 단말마처럼 반한적 대북지원을 강화하는 협약을 북한과 맺어나가고 있다. 노무현 좌파정권이 있을 동안에 남한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를 북한에 해두려는 국정운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란 직권을 유지하는 노무현은 민주적인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국민여론과 국법질서를 무시하면서, 북한에 남한을 예속시키는 방향으로 대북정책을 끌고갈 것이다. 베트남 공산당총수를 한국에 초빙하여 극진히 대접하면서 그의 자서전을 찬양하는 노무현 대통령이나 베트남 공산당총수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남한 국민들을 배반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좌파세력은 곧 국민들의 소리없은 선거혁명에 의해서 곧 퇴출될 것이다. 좌파세력 특유의 '한방'이 작동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다시 좌파 건달세력이 아니라 우파 건설세력의 손으로 운영될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정점으로 하는 집권 좌파세력의 온갖 반역적이고 망국적인 행위에 지친 국민들은 철저하게 집권 좌파세력를 외면하고 퇴출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이제 이명박과 이회창 후보가 대선에 출마를 해도 1등과 2등을 겨룰 만큼 국민들은 김대중-노무현 좌파세력의 퇴출을 준비하고 있다. 비록 이명박 진영의 흐릿한 이념적 정체성과 좌파세력과의 대결회피로 인하여, 이회창의 출마가 정당화되고 우파가 분열되는 모습을 취하고 있지만, 결국 우파진영의 영토는 일단 확장되고 있다. 선거 마무리에 우파진영이 집권 좌파세력의 분할통치(divide and control)전략을 잘 관리만 하면, 이번 대선에서 한국민들은 좌파세력을 한국에서 밀어낼 수 있다.

비록 BBK의 김경준이 이 시기에 긴급 공수되어 한국 대선의 마지막 깜짝쇼를 연출하겠지만, 국민들은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우파성향의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할 것이다. 이회창은 이명박의 위기시에 안전판이 될 가능성이 있다. 김대중-노무현 좌파세력의 공작정치, 선동정치, 평화공세가 방송을 통하여 단말마적인 극한상황으로까지 도달하겠지만, 국민들은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좌파세력은 민주화의 이름으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동원민주주의, 중우정치, 선동정치로 몰아감으로써, 민주주의 발전에 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좌파세력의 후안무치함은 김경준이 인천공한으로 입국하던 날 보여준 뻔뻔한 미소로 잘 상징된다. 좌익세력은 특징은 패륜적 사고와 후안무치한 행동이다.

이번 (조갑제 현대사 토요강좌) 강연에서 연사(필자)가 노리는 목적은 해방 후 한국사를 어떻게 번역하는가는 바로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정치사회적 현상들을 어떤 가치관과 시각으로 판단하느냐를 결정한다는 점을 확인시키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해방 후 건설세력(산업화세력)의 기능적 적합성과 도덕적 정당성을 확인하고, 민주화세력의 기능적 부적격성과 도덕적 위선을 밝히는 것이 이번 강연의 목적이다. 역사는 사실의 세계가 아닌 해석의 영역이다. 헤로토도스와 투키디데스가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펠로포네소스 전쟁을 번역하면서 다른 역사관 혹은 해석학을 적용시켰듯이, 역사적 사실을 번역하는 시각은 다를 수 있다. 사회적 사실과 역사적 사실은 실제로 사회와 역사에서 일어난 것을 객관적으로 기록한 것 이상의 해석학적 시각이나 기준이 포함되어 있다. 역사는 해석하기에 따라 매우 달라진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해방후 건설세대가 살아온 지난 20세기 후반부이다.

해방 후에 남한의 역사를 정통성이 없는 수치와 실패의 역사로 보는 집권 좌파세력과 남한이야 말로 유일한 합법적이고 정통성이 있는 성공한 국가라고 보는 보수 우파세력의 충돌이 바로 이번 선거의 역사적 의미이다. 이번 대선에서 집권 좌파세력이 가지고 있는 비실용적인 한방의 추억은 끝이 날 것이다. 평소에 온갖 반역적이고 망국적인 국정운영을 자행하다가 마지막에 우파진영의 후보이게 한방의 도덕주의적 공격으로 집권을 연장하는 좌파세력의 추억은 이제 못된 역사의 전설로 남을 것이다. 혁명적인 선동으로 한국인을 기만한 좌파세력의 집권은 이번 대선을 통하여 종식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대선은 해방 후 초토화된 한국사회를 선진국의 반열에 끌어올린 '건설세력(산업화세력)'이 민주화의 이름으로 한국사회를 망가뜨리고 있는 위선적인 '건달세력(민주화를 빙자한 좌파 선동세력)'을 종식시키는 기회가 될 것이다.

正: Dreaming Innocence - 미몽의 전통사회

한국민족은 법보다는 양심을 존중한 도가적 사회에 적합한 민족이다. 식민지 지배와 동족상잔의 혼란 속에서도 한국인들은 국법의 세계가 아닌 양심의 세계를 더 중시하는 고유한 심성구조를 유지해왔다고 볼 수 있다. 전통사회에서 한국인들은 '나'가 없는 '우리'의 공동체를 유지해왔다. 한국인들이 얼마나 마을공동체나 혹은 씨족공동체에서 얼마나 긴밀하게 '우리'가 되어 생활했지는 예일대학의 코넬리우스 오스굿(The Koreans and their Culture, 1951)과 하버드 대학의 빈센트 브란트(A Korean Village, 1971)가 수십년 전에 잘 객관적으로 관찰해서 기록해두기도 했다. 이들은 한국사회가 비록 식민지와 전화로 피폐화 되었지만, 여전히 자신이 헌신할 공동체를 가지고 있고, 동시에 공동체 안에서 삶의 의미를 충분히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마을과 씨족집단은 '깨지 못한 천진난만성(dreaming innocense)을 가진 공동체였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씨족과 부락 안에서만 통하는 보편주의(in-group solidariity or universalism)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것을 공유할 듯한 마을공동체(씨족공동체) 안의 연대감이나 보편주의는 곧 타집단이나 타부족에 대한 극심한 배타주의(out-group hostality or particularism)로 나타날 수가 있었다고 한국의 변동사회를 관찰한 신유길 교수는 지적한다. 한국의 전통사회가 가지고 있는 같은 패거리 안의 절대적 연대감과 타집단에 대한 절대적 배타성이 나중에 현대화, 서구화, 민주화 과정 속에서 어떤 부정적인 요소가 되었을 가능성도 신유길은 배제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기심을 전혀 개발하지 않다가, 한번 이기적이 되기 시작한 군중은 누구보다더 더 이기적이 되기 쉽다. 중이 고기맛을 들이면 더하다는 속담처럼, 이기심에 눈을 뜬 변동사회의 군중들은 악랄한 이기주의자가 된다.

마을공동체나 씨족집단 안에서 가능한 '나 없는 우리 공동체'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현대사회에로의 진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한국의 전통사회에서는 개인의 이익과 권리를 주장하는 이전투구의 싸움은 법 이전에 비윤리로 비난받았다. 공동체 안에서 보이지 않은 사회적 억제기능(social restraint)의 역할을 양심과 염치가 충분히 해준 것 같다. 국법 이전에 사회적 염치는 사회를 통제했다.하지만 부락공동체와 씨족집단 안에서 가능했던 절대적 보편주의는 민주사회의 필수요소인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내포하지는 못했다. 토크빌이 관찰한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발견된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에의 책임성'을 한국 전통사회의 구성원들이 동시에 가지지 못했다. 개인의 자유가 향유되지 못하는 공동체에의 연대감이나 소속감은 공산주의나 전체주의의 가능태가 될 수 있다. 북한은 '나'없는 공동체였던 한국의 전통사회를 더 이상 변화 발전시키지 못한 철저한 수구적 공산집단이다.

한국전통사회의 '개인 없는 공동체'는 현대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유발시키는 밑거름이었다. 민주주의의 핵심요소인 '자유'라는 개념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말한 홉스에 의해서 정립되기 시작했다. 남들을 고려하지 않는 나만의 자유(negative freedom)가 자유민주시민의 심리적 기초가 되었다는 것이 대체로 정론이다. 부락공동체나 씨족집단의 분위기에 눌려서 개인의 목소리가 살아남기 힘들었던 한국의 전통사회의 분위기는 현대화, 민주화, 산업화가 되면서 긍적적이고 부정적인 변수가 되었다. 한국의 전통사회는 후기현대사회에로의 진전에 극복되어야 할 장매물도 되고 동시에 회복되어야 할 전거도 된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말살된 전통사회는 지양되어야 하지만, 전통사회의 특징인 공동체에 대한 연대감과 책임감을 오늘날 후기현대사회에서도 부활시켜야 할 요소이다.

反: Existence - 모순(한계) 인정한 건설세력과 완벽주의에 빠진 건달세력의 대결구도

해방후 '우리'만 있던 전통사회가 붕괴되고 '내'가 살아있는 현대사회로 진전하면서 한국의 변동사회는 이전투구의 장이 되었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피폐했지만, 부락이나 씨족 공동체 안에서 깊은 연대감을 느끼면서 만족하게 살았던 한국인들은 해방 후 급격하게 진행된 현대화, 도시화, 서구화, 민주화의 과정 속에 깊은 개인적인 고통을 겪어야 했다. 도시화로 인하여 고향을 등진 사람들은 마치 뿌리가 뽑힌 나무처럼 많은 정신적 고난을 극복해야 했다. 해방 후 한국의 변동사회에서 한국인들은 사회적 이질성과 익명성 그리고 인간관계의 비인격성와 파편화를 겪어야 했다. '뿌리 뽑힌 군중'들의 정체성 상실, 원자화, 불안정성, 비합리성, 이기주의, 방자함, 사회적 무질서, 강압적 자기주장과 자해적 자기포기, 그리고 과잉민주주의의 폐해는 변동사회의 특징들이었다. 변동사회의 병리증상을 악용한 정치선동가가 설치기도 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장애물은 군부독재보다 무자격 군중들과 이를 이용한 정치선동가였다. 민주주의를 할 수 없는 군중(crowd)을 미혹하여 완벽한 민주주의를 하겠다고 선동세력이 바로 민주화를 빙자한 좌파 건달세력이었다.

특히 한국의 변동사회는 정치적 '군중현상'을 만들어내었다. 정신적으로 소외되고, 방자하고, 익명적이고, 이기적이 된 변동사회의 군중들은 강압적인 자기주장을 하는 독재자들이 되었고, 오르테가 가세트가 말한 민주적 독재(democratic tyranny)를 한국의 변동사회에 구현했다. 정신적 고향을 잃고 방황하는 군중들에게 정치선동가, 종교선동가, 문화선동가들은 하나의 메시야로 등장했다. 한국사회가 급격하게 변동할 때에 사회적 불평등, 물질적 부족, 정치적 불만, 심리적 불안을 완전히 해소해주겠다고 등장한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구세주들이 있었다. 이들은 모든 불만과 불안을 한방에 해소하겠다는 '큰 거짓말'을 하면서 혼미해진 군중들을 미혹했다. 자아정체성을 상실하고 방황하는 군중들은 정치집회, 종교집회, 연예공연 등의 선동굿들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귀신들린 자들이 되었다. 콘하우저는 전통적 권위의 붕괴가 전체주의 선동가의 등장에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현상이 민주화의 이름으로 한국의 변동사회에 발생했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불만스러운 변동사회의 군중들은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불편한 진리(불완전한 현실)'에 대한 불만을 일거에 해소할 '메시아'를 찾아 나섰다.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한국사회에 뿌리를 내리면서 소유욕에 미친 군중들은 전통사회에서 가지고 있던 체면이나 염치를 완전히 포기하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부자가 되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많이 소유하는 것(to have)이 변동사회의 군중들이 가진 궁극적 목표가 되었다. 그 결과 재산과 권력의 축적을 위하여 부정과 부패와 변칙이 난무하는 것은 변동사회의 자연스러운 병리증상이 되었다. 라인홀드 니버가 말한 것처럼, 한국의 변동사회에서도 부의 축적에 부정과 위선은 필수적이었다. 자신의 정체감과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 잃은 무책임한 군중들은 인간이 가진 근본적 폭력성과 야만성을 억제없이 노출시켰다. 20세기 후반은 한국인들이 물질적으로 가장 많은 것을 성취하기도 했지만, 한국인들이 정신적으로 가장 많이 잃은 시기로 기록될 지도 모른다. 많은 물질적 성취 위에 많은 정신적 상실을 가진 시기로 평가될 지도 모른다.

산업화, 서구화, 도시화를 겪은 한국의 변동사회는 무법천지와 같은 아비규환의 공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아비규환의 시기에 질서를 유지시키는 독재자는 사회기능적 측면에서 민주주의에 가장 많이 공헌한 자로 평가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탄생된 국가들이 공통으로 겪은 변동사회와 군중현상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자유가 아니라 질서였다. 변동사회의 군중들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은 자기의 군익을 방자하게 주장하는 것이었다. 지도자의 독재보다 군중들의 방자가 민주주의 발전에 더 큰 문제였다고 문명비평가 사무엘 헌팅턴은 주장했다. 헌팅턴은 전통사회에서 민주사회로 가는 변동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합법적 공공질서'라고 강조했으며, 데이비드 엡터는 지난 세기 후반의 한국사회와 같은 변동사회에는 강요적 기관(institution of coercion)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군부세력은 적어도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질서유지와 국부의 축적에는 크게 공헌했다. 인간실존의 불완전성을 인정하지 않고 완벽한 정의나 도덕을 강요하는 도덕주의자나 전체주의자는 본질적으로 민주주자가 아니라고 라인홀드 니버는 주장한다.

물론 북한과 같이 자유가 완전히 말살된 '절대 질서(absolute socisl order)와 능력의 차이가 완전이 말살된 '절대 평등(absolute justice)'은 '절대 폭력(aosolute violence)'이지만, 그 이외의 해방 후 신생국가들에서 질서는 민주화의 절대적 요소가 되었다. 북한은 자유 없는 질서와 권위만 있어서 가장 실패한 2차대전 후의 신생국가가 되었다. 군중들의 방자한 자기주장과 욕구분출을 통제할 권위와 질서는 민주화의 필수적 요소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변동사회의 군중들이 가진 방자와 광기를 억제한 개발독재 혹은 교도민주주의는 살신성인의 정치사회적 표현으로까지 평가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 분신자살한 정치적 광신도보다는 오히려 민주주의의 기초인 질서유지를 위해서 독재를 했다고 평가되는 이승만과 박정희가, 기능적으로 판단하면, 민주화에 더 공헌한 민주투사로 평가될 수 있다. 교도민주주의가 필요악이라고 주장하는 정치학자들이 많았다. 성숙한 민주시민인 공중(public)이 되지 못한 무책임한 군중(crowd)을 상대로 완전한 민주주의를 강요한 민주투사들의 행동은 기능적으로 정당화되기 힘들다.

민주주의에 부적격한 정치의식과 심리구조를 가진 변동사회의 군중들에게 민주화를 선동질하여 권력쟁취에 매진한 민주투사들이 진정한 민주화에 얼마나 공헌했는지 장차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 야스퍼스는 '민주주의는 인간의 다양성을 존중한다. 누구도 멸시당하지 않고 누구도 숭배당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다'라고 했다. 상대에 대한 절대부정과 자신에 대한 절대긍정을 신봉한 민주화세력은 민주주의에 부적절한 집단이다. 정치문화이론을 들어서 사회기능적으로 판단하면, 소위 한국의 민주투사 혹은 민주화세력은 미성숙한 한국의 민주주의에 강간을 자행한 反민주적 정치집단으로도 평가될 수 있다. 민주주의의 기초는 정신적으로 시민문화(civic culture)를 가져야 한다고 가브리엘 아몬드나 시드니 버바와 같은 정치사회화 이론가들이 주장하지만, 사실은 물질적 풍요가 민주정치의 성립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물질이 풍부해야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잘살아 보기 위해 물리력 동원한 '독재자' 박정희는 민주화를 위한 물질적 기반과 사회적 질서를 확보하게 함으로써 한국의 민주화에 가장 중요한 공헌자로 평가될 수 있다. 한국의 건설세대(산업화세력)는 한국사회를 훌륭한 합법사회, 합리사회, 이익사회로 만들고 민주사회의 기초인 질서와 국부를 확보한 유래를 찾기 힘든 성공적인 세대이다.

소위 민주화세력의 사실상 민주주의 강간행위와 소위 산업화세력의 민주주의 부양사실은 앞으로 더 규명되고 선전되어야 한다. 오늘날 집권 좌파세력에 의하여 독재세력이라고 매도당하고 있는 산업화세력이 사실은 민주화세력보다 한국의 민주화에 더 근원적으로 공헌한 사실은 반드시 학문적으로 판명되고 사회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민주화 구호를 앞세워서 기능적으로 불가능한 민주주의를 한국에 강요하면서 권력쟁취에 민주주의를 악용한 민주화세력의 민주주의 강간행위는 앞으로 분명히 학문적으로 규명해야 한다. 민주화의 명분을 팔아서 권력을 추구한 좌파 선동세력의 폐해는 지금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변동사회의 군중들이 가진 사회심리적 취약성을 선전선동에 악용하여 권력을 쟁취한 좌파 선동세력은 사실상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한 민주화의 최대 장애세력이다. 대부분의 정치학자들은 독재자보다 과잉민주주의를 부추기는 선동가를 더 큰 민주주의의 공적(公敵)으로 규정한다.

한국의 변동사회에서 민주화를 빙자한 좌파 선동세력은 좌파이념이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파괴본성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도 끊임없이 집권 좌파세력이 계급갈등을 기초로 한 사회갈등과 정치대결을 선동하는 것은 좌파이념이 가징 계급갈등론에 근거한 행태이다. 절대평등의 잘못된 정의론에 의해서 한국사회의 계층갈들을 유발시키는 자들이 바로 집권 좌파세력이다. 한국의 세금을 자기들 멋대로 사용하면서도, 빈자의 편으라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집권 좌파세력의 위선이다. 집권 좌파세력은 좌파이념의 파괴성, 몽상성, 몰상식성 때문에 오늘날 상식을 파괴하고, 전통을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국가를 파괴하는 못된 국정운영을 국민들에게 연출하고 있다. 집권 좌파세력은 남한의 모든 기존의 제도와 풍습들을 부정적으로 보고 깽판을 부리는 건달세력이다. 집권 좌파세력은 변동사회의 모순들을 일거에 제거하겠다는 '한방의 혁명'을 여전히 믿는 정치종교 신봉자들이다.

좌파이념의 온갖 본질적 결함들을 배태한 김대중 선동세력과 노무현 좌파세력이 가진 모순적이고 파괴적인 행태는 이제 그 절정에 달하고 있다. 집권 좌파세력의 위선과 배반은 이제 국민들의 인내를 넘어서고 있다. 한국 좌파세력은 현대화의 필연적 병리증상들을 절대로 발생되지 말아야 할 악으로 규정하여 사회의 부조리와 한계를 정치적으로 착취하였다. 김일성과 김대중은 한국적 전통사회가 붕괴되고 서구적 현대사회로 넘어가는 길목인 변동사회에서 나타나는 전형적 군중선동가이고 정치적 거짓예언자다. 변동사회의 군중인간들에게 모든 모순과 불만을 해결할 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데, 김일성과 김대중이 그 메시아로 등장하였는데, 김일성은 크게 성공했고, 김대중은 절반만 성공했다. 변동사회의 메시아로 등장하는 거짓예언자들은 아무런 모순도 없은 유토피아를 혼란과 고난 속에 있는 선전하여 군중들을 미혹한다. 불가능한 도덕적 순수성이나 정치적 고상함을 자랑하는 김대중의 위선과 파괴 기운은 아직도 한국사회를 배회하면서 군중들을 미혹한다.

좌파세력의 마지막 폐해가 유령처럼 한국사회에 전전하고 있다. 오늘날 노무현 좌파정권의 어용방송, 어용단체, 어용학자들은 좌파선동세력의 악덕을 그대로 유지하고 활용하고 있다. 요즘 보수야당 이명박 후보와 보수기업 삼성그룹 겨냥한 좌파세력의 극단적 도덕주의 강요와 마녀사냥은 모두 좌파세력의 위선과 마성이 선동되는 것이다. 좌파세력은 정치적 광신주의, 이념적 신비주의, 세력적 분파주의, 대중인기 영합주의를 이용하여 군중들을 미혹한다. 좌파세력은 적대세력에 대한 군중들의 공격성을 극대화시키고 좌파세력에 대한 예속성 강화한다. 좌파세력은 후안무치한 양심을 가지고 위선적 행동을 하며, 군중들의 판단을 '적과 동지'라는 이분법적으로 단순화시켜서 자유민주세력과 대결을 부추긴다. 그리고 좌파세력은 배반과 반역을 일상적으로 생각하며, 사실왜곡에 근거한 큰 거짓말을 자연스럽게 하고, 지속적으로 명분과 구호를 교체하면 군중들을 속이면서 운명공동체에의 종교적 충성을 강요한다.

변동사회의 군중인간들을 악용하고 착취하던 집권 좌파세력의 정당성이나 설득력은 이제 수명이 다했다. 이제 군중들에게 '새하늘과 새땅이 있다'고 외친 김대중-노무현 좌파세력의 선전은 완전히 허구적이고 기만적인 것이 되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부패는 박정희와 전두환의 부패를 능가하는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지역주의와 좌파이념에 경도된 군중들로부터 90%이상의 지지를 받으면서 정치적 구원세력으로 등장한 집권 좌파세력은 이제 군중들로부터 환멸과 지탄의 대상으로 판명하고 있다. 변동사회에서 당연히 발생되는 사회적 병폐와 모순을 완전히 일소하겠다고 선전선동한 집권 좌파세력의 '큰 거짓말'은 이제 종말을 고하고 있다. 오히려 선동세력의 파괴성과 반역성을 표출하는 노무현 정권은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산업화를 이룩한 건설세력을 독재세력으로 매도했지만, 이제 민주화세력이 오히려 공권력과 방송을 이용한 조작과 선동을 일삼는 건달세력으로 판명되고 있다.

合: Fulfillment - 좌파세력의 퇴출

이제 70%의 국민들은 변동사회의 병리증상을 민주화의 명분을 앞세워서 정권쟁취에 악용한 좌파세력을 종식시키려고 한다. 북한동포를 아사시키는 북한의 좌익정권이나 남한의 안보와 정체성을 망가뜨리는 남한의 좌파세력은 시대추세로 보나 정치기능의 측면에서 보나 반드시 퇴출되게 되어있다. 단지 어떻게 더 평화적으로 퇴출시키느냐의 문제만 남아있다. 거짓에 의거한 좌파이념의 폐기와 시대착오적이고 몽상한 좌익세력의 종말을 변동사회의 군중에서 벗어나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한 국민들이 강요하고 있다. 그러한 국민적 압력이 강화될수록, 집권 좌파세력의 반동은 심해질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임기말에 親北利敵행위가 더 강화되는 것은 역사적 반동세력에게 우연이 아니다. 이제 한국의 국민들은 좌파세력의 몽상한 구호와 허황된 명분에 속아넘어가지 않는다. 비록 좌파이념에 물든 386세대의 한계가 오늘날 절정에 달했지만, 대다수 386세대의 자성과 건설세대의 활동과 포스트386세대의 각성은 좌파세력의 퇴출을 강요하고 있다. 비록 이명박 진영과 이회창 진영이 현재 따로 집권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보수세력의 집권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집권 좌파세력이 김경준과 같은 '한방'의 무기를 대선용 깜짝쇼에 긴급 투입시키지만, 대세는 좌파세력 축출과 우파세력 집권으로 흐르고 있다. 이명박과 이회창은, 어떤 극점에 도달하면, 자기희생을 통하여 국가와 국민에 봉사하는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이로써 건설과 법치의 마지막 상징인물인 이명박과 이회창은 건설세대의 대표주자들로서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을 성숙한 민주사회로 안착시키는 공헌을 할 수 있다. 정권이 교체되면, 국가의 공조직과 관변조직에 10년 동안 깊이 스며든 좌익세력을 청산해야 한다. 어차피, 세계적으로 좌익세력의 배후가 모두 사라져서, 남한의 좌익세력도 도태될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를 몽상한 헛구로 강간해온 사이비 민주화세력을 이번에 정권교체로 청산하고, 부서지기 쉽지만 정교한 민주주의를 한국땅에 안전하게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위하여 우파 애국인사들은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행동하는 자는 생각이 죽지 않고, 생각하는 자는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 교만하거나 나태한 자들은 만사에 성공할 수 없다. 산의 정상으로 끝까지 바위를 굴러올리는 시지프스의 끈기를 가지고 해충과 같은 좌익세력을 한국땅에서 척결하는 우파 애국지사들은 노력이 긴요하다.

나이든 산업화세대 혹은 건설세력은 한국을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사회를 만들어서 많은 국부를 축적한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세대이다. 패륜적 좌파세력으로부터 '수구꼴통 부패집단'으로 매도당하기도 하는 건설세력은 이제 자신들이 성공적으로 구축한 한국의 합리사회, 합법사회, 이익사회를 넘어서 삶의 질과 재미를 중시하는 후기현대사회로 넘겨줄 마지막 소명을 완수하고 있다. 비록 이 세상의 구조적 모순과 애매성을 잊지 말아야 하지만, 그리고 좌익 선동가들처럼 유토피안적 헛꿈을 팔아먹지 말아야 하지만, 한국을 선진국으로 끌어올린 나이든 건설세대는 이제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군중들이 선동가의 헛구호에 잘 속는 것은 그들이 절망의 메시지를 근원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이다. 해방 후 초토화된 한국사회를 이렇게 크게 성공적인 국가로 만든 건설세대는 자신들의 공로를 모범으로 자랑하고 선전해야 한다. 건강한 시민들의 자부심(자존심) 유지와 주장은 자유와 민주의 기본이다. 특히 우파 건설세력이 좌파 건달세력에게 짓눌린 현상태는 부당하다. 건설세력의 공로를 인정받고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이 곧 망국적 좌파세력 축출의 초석이다.

성공한 건설세대가 죄의식을 갖고 큰 소리 못치는 현상황이 바로 집권 좌파세력이 한국사회에 조성한 가장 큰 모순이고 폐악이다. 한국땅에서 암적 존재인 좌파세력을 몰아내는 첫번째 출발점은 바로 나이든 건설세대의 업적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self-esteem)을 회복하는 자강(self-empowerment)운동이다. 몽상적 신념과 종교적 광기에 물든 좌파세력을 몰아낼 우파세력의 신념이 필요하다. 한국의 정치와 사회를 해방전후사로 이끌어가려는 집권 좌파세력의 수구성,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부인하려는 반역성, 그리고 한국의 국방을 해체하고 경제를 망가뜨린 망국성에 대하여 건설세력은 강하게 '아니오'라고 외쳐야 한다. 좌파이념에 은근히 세뇌된 오늘날의 건달세대는 집권 좌파세력이 어떻게 남한을 파괴하고 반역하고 망국하는 지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무지하다.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심성, 그리고 아름다운 몸을 가진 한국인들을 인류의 자랑스러운 주체세력으로 만들어 놓기 위한 삶의 마지막 소명을 건설세대는 이번에 정권교체를 통하여 완수해야 할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우파세력의 승리를 통한 대한민국 건설세력의 부활이 가까왔다.


[조영환 편집인: http://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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