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문제와 보수주의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정치 사회 분야에서 보수가 지향해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보수주의의 정치적 원칙일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근본규범이기도 하다.
따라서 폭력과 계급투쟁을 주창하는 공산주의, 개인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전체주의, 국가를 부정하는 아나키즘 등은 보수주의에 대한 적(敵)인 것임은 물론이고, 보수주의가 서 있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것이다.
보수주의가 ‘열린 사회’를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열린 사회’ 그 자체를 부정하는 전체주의적 악(惡)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는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수호하는 것이 더없이 중요하다고 본다.
보수주의는 또한 20세기의 거악(巨惡)인 공산주의가 소련과 동유럽에선 소멸되었다 하더라도 한반도에서는 그것이 북한의 김정일정권이라는 엄연한 위험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깊이 인식한다. 따라서 보수는 ‘반공(反共)’을 폄하하는 어떠한 세력도 단호하게 배척한다.
보수주의는 대중을 현혹하는 균등주의적 유토피아(egalitarian utopia)를 단호하게 배척한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잘 사는 세상’ ‘서민이 잘 사는 세상’ 등 막연한 유토피아를 내세우는 사회주의는 결국에 인간의 자유를 말살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돌이켜 보면 20세기의 거악(巨惡)인 전체주의와 공산주의는 모두가 유토피아를 내걸고 인간성을 말살했던 것이다.
걸핏하면 남북통일을 ‘꿈’으로 그리거나, ‘貧富차이가 없는 살맛 나는 사회’ ‘온 국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 등을 건설하겠다는 황당한 주장을 경계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수주의는 대의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본다. 따라서 ‘참여’라는 이름을 내건 포퓰리즘 정치는 보수의 적(敵)이다.
유토피아를 내거는 소수 집단들이 포퓰리즘에 호소하는 것을 보수가 경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보수는 대의민주주의가 항상 현명하지는 않다고 본다. 때문에 보수는 자유와 인권을 수호하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같은 사법기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관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에서 보수는 주민소환제 같은 직접민주정치 제도와 위원회를 양산하는 정치 행태를 의심의 눈초리로 본다.
보수주의는 가정, 지역사회 그리고 국가가 갖고 있는 전통적 가치를 존중하고 그것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한다. 따라서 가정이나 국가의 해체를 가져 올 수 있는 급격한 변화를 의심의 눈초리로 본다. 보수는 인간사회는 자체가 생명을 갖고 있는 유기체 같은 것으로, 급격한 혁신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보수주의는 국가, 지역사회, 가정 그리고 궁극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수호하는 군, 경찰, 소방대 같은 기관과 그런 기관에 봉사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을 특히 존중한다.
자유는 그것을 지킬 수 있는 각오와 자세를 갖고 있는 사회만이 향유할 수 있음을 인식해서, 필요한 경우에는 군사력과 경찰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국가와 사회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국가라는 공동체를 수호하기 위해선 필요한 경우 일정한 절차를 거쳐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주의는 개인의 자율성과 책임을 존중하며, 그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개입을 반대한다. 따라서 보수주의는 정부가 작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개인의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최소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수는 과도한 사회복지와 분배정책에 반대한다. 과도한 복지와 분배정책은 개인의 자율성, 창의성 그리고 책임성을 저해해서 결국은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의 사회복귀를 불가능하게 하는 역기능을 발휘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는 작고 효율적이어야 한다고 보는 보수는 정부가 새로운 기구를 세우고 예산을 투입하려고 할 때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하고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보수는 가정이 모든 사회적 가치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가정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고 보며, 따라서 보육시설을 확충하고 육아수당을 지급하면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되는 것으로 보는 사회주의적 발상을 단호하게 배척한다.
보수는 사회정책의 근간이 인간의 윤리와 책임에 근거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범죄가 범죄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책임이라고 보는 진보적 접근이 범죄를 양산했다고 본다. 아동을 성폭행했던 사람이 똑같은 범죄를 저지르고 아이를 살해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범죄자에 대한 막연한 동정이 빚어낸 것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보수는 각종 범죄에 대해 단호한 응징을 할 것을 주장하며, 작은 범죄를 엄격히 다루어야 사회를 보다 큰 범죄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수는‘다양성’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사회의 정체성 파괴를 경계한다. 동성애자를 차별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성애를 마치 정상적 인간관계의 한 형태로 보아야 한다는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을 단호히 거부한다.
보수는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낙태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한편으로는 사형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진보주의의 위선을 배척한다. 낙태로 없어지는 생명은 무고한 것인데 비해 사형선고를 받은 자들은 남의 생명을 해한 자이기 때문이다.
보수는 교육제도가 자율적이어야 하며 경쟁에 근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율과 경쟁에 입각한 교육제도가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이 교육의 기회를 가져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국민이 똑같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교육의 기본원칙에 반하기 때문이다.
보수는 환경과 보건 정책이 사회발전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환경과 보건 정책은 건전한 과학에 근거해야 한다고 믿는다. 막연한 이상향을 내세우면서 지구의 종말이 곧 닥쳐 올 것처럼 떠드는 환경주의자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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