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을 誤導했던 韓完相의 부정적 역사관

14년 전의 인터뷰 기사를 다시 읽어본다. 냉전이 끝나지 않은 한반도에서 냉전적 사고가 왜 나쁜가?
金泳三 민자당 후보는 1992년 12월호 대통령 선거에서 약200만 표 차이로 김대중 후보를 눌러 당선되었다. 안정적인 보수연합 정당인 민자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 있게 國政운영을 해나갈 수 있었다. 보수정치인을 자처해온 그는 대한민국 헌법을 이념으로 하는 한국의 보수세력을 배신했다. 한국 현대사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좌파들이 좋아할 정책만 골라서 했다. 장기수 이인모를 북송해주고, 전교조 해직 교사들을 복직시키는 등 좌파들이 좋아할 일들만 골라서 했다. 그는 결국 좌파의 宿主 역할을 하여 보수세력을 분열시키고 김대중씨가 대통령 당선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좌파 10년을 만든 가장 큰 공로자가 그였다.

출신성분이나 경력에서 보수일 수밖에 없는 김영삼씨가 좌파 비호자가 되어버린 데는 韓完相 통일원 장관 같은 참모들의 영향이 있었다. 1993년 여름 월간조선 편집장이던 기자는 韓 장관을 인터뷰했다. 韓 장관이 김영삼 대통령의 對北정책과 역사관을 오도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3시간에 걸친 인터뷰였다. 한국의 보수층이 李明博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시킬 것 같다. 당선된 뒤에 李씨가 김영삼식으로 보수층을 배신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 인터뷰 기사가 하나의 참고자료가 될지도 모르겠다.


<1993년 9월호 月刊朝鮮>

냉전적이라는 말의 의미

지난 7월31일 정부 종합청사 4층 부총리실에서 만난 한완상(韓完相)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은 감색 싱글 양복 차림에 검은 테의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韓장관은 기자 일행을 국무위원 식당으로 안내했다. 쇠고기국에 청어구이를 곁들인 점심식사를 하면서 韓장관은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고향은 경상북도 금릉인데 주로 대구에서 살았습니다. 태어난 곳은 충남 당진이지요. 아버님이 학교 선생님이셨는데 잠시 당진에 계셨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어느 교수가 한 일간지의 「잊을 수 없는 스승」코너에 저희 아버님 이야기를 쓰셨더군요. 일제시대 저희 아버님이 일본어 시간에 조선 역사를 가르치셨답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다시 부총리실로 돌아오니 12시30분이 조금 지나 있었다. 韓장관은 메모지를 옆에 두고 질문 내용과 대답할 사항들을 간간이 메모하면서 하나 하나 답을 해 나갔다. 차를 마시면서 시작된 인터뷰는 세 시간 넘게 계속되었다.

―1974년 12월로 기억되는데 그때 韓장관이 부산에서 열린 한 기독교 집회에 참석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당시에 그 집회를 취재하러 갔었는데 韓장관의 강연을 듣고 「말을 어떻게 저렇게 글 쓰는 것처럼 딱 떨어지게 할 수 있을까」 감탄을 한 일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 韓장관을 가까이서 뵙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韓장관께서 지금까지 쓰신 글과 책을 여러 권 읽다 보니 「냉전」이라는 용어가 자주 나오더군요. 「냉전적 논리」「냉전적 통일관」식으로 「냉전적」이라는 말에는 대체로 비판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냉전적 통일관」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냉전적」이라는 말을 쓸 때는 의식과 행태(行態)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하는데 그 의식과 행태는 특정시대와 제도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행태로서 「냉전적」이라고 하는 것은 독선적 권위주의라는 말과 상통합니다. 상대방의 생각은 본질적으로 악하고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상대방과는 의미 있는 사귐이나 대화를 할 수 없다고 보고 상대방을 타도나 제거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태는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이나 최근 회교 근본주의자들에게서도 나타납니다만 이것을 냉전적인 태도라고 할 때는 그것을 특정시기와 그 시대의 구조와 연결시켜 생각해야 합니다. 즉 정치분야에서 보면 냉전적 사고는 2차대전 이후 兩極체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미국과 소련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서로를 대했습니다. 미국은 소련을 악마의 제국이라 비난했고 소련은 미국이 악마의 제국주의라고 비난했습니다. 이러한 구조하에서 냉전 이데올로기가 제도화된 것이 양체제 안에 법제도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사고의 차원에서도 권위주의 사고형태로 나타납니다』

―과거 정권에서 추진해온 통일정책 중에서 「냉전적 통일관」의 구체적인 예가 될 수 있는 것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먼저 이 점을 분명히 합시다. 냉전적 통일관은 남북한에 다 공통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우리는 북한을 고립과 봉쇄, 초전박살의 대상으로 보았고 북한도 우리를 타도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이것이 냉전적 통일관의 기본구도입니다』

냉전적 통일관은 남북 공통 현상

―지금 말씀하신 취지의 냉전적 통일관은 1974년 7·4 공동성명 이후 적어도 우리 정부의 통일정책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북한을 적으로 보지 않고 동반자로 본다는 7·4공동성명은 수사상(rhetoric) 그렇게 표현된 것이지요』

―만일 우리 정부가 냉전적인 사고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그토록 많은 희생자를 낸 아웅산 사건 직후에 북에 대해 선전포고를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아웅산 사건 불과 1년 뒤에 수해가 났을 때 북한이 보내준 수해구호물자를 받아주었습니다. 북한이 우리에 대해 냉전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도 냉전적이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좀 억울한 평가가 아닙니까. 韓장관의 말은 지난 정권의 통일정책에 대한 부당한 비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정권에 냉전적인 통일관이 없었다고 범주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웅산 사건의 피해자 입장에서는 북한의 가장 냉전적인 도발에 대해서 근원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 정부는 그런 대응이 가져올 부정적인 효과를 계산해서 그렇게 하지 않은 겁니다. 북한이 우리에게 해온 도발에 비해서 우리 정권이 덜 냉전적이었음은 사실입니다. 노태우 대통령의 7·7 선언 같은 것은 매우 전향적인 것이었지요. 그러나 범주적으로 지난 정권에 냉전적 통일관이 없었는데 내가 없었던 것을 갑자기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냉전적 사고나 의식이 약화됐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없어졌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냉전의 강조는 극복의지의 표현

―강경대군 폭행치사 사건이 났을 때(1991년 5월) 어느 신문에 기고하신 글을 보니 「강경대군이 냉전시대의 희생자」라는 표현을 쓰셨더군요. 공안정권의 살인이라고도 하셨던데 강군은 학내문제인 등록금 인상 반대를 위한 시위에서 우발적인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이 사건까지 냉전과 연결시키는 것은 과잉 인식 아닙니까.

『그런 이야기가 나온 배경에 깔려 있는 논리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해방 이후 지난 정권까지 역대 정권의 정통성이 결핍되어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정통성 문제를 들고 나오는 비판세력을 탄압할 때 정부는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을 앞세워 왔습니다. 국내 정치의 부끄러운 부분 즉 인권탄압이나 폭행치사 등을 합리화할 때 일관되게 써온 논리가 냉전의 논리였습니다. 그러한 현실에 비추어 강경대군 사건을 보면 냉전이 이런 것을 쉽게 합리화시켜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해방 이후 계속돼온 이러한 현실에 주목하여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강경대군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 않습니까. 그 사건은 당시 정부에서 그 학생들이 주사파라고 해서 강경대응을 한 결과 발생한 것도 아니고 단순 학내시위에 대응하다가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오히려 사건은 그 이후에 정치화됐지요. 강군의 죽음 자체는 냉전이나 공안정권과는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질문의 뜻은 이해합니다만 사건을 분단과 그것을 밑받침해준 냉전 이데올로기라는 큰 시야에서 본다면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지요』

―韓장관께서는 한반도의 현실을 냉전으로 보십니까, 아니면 평화로 보십니까.

『불안한 평화지요. 전쟁이 없다는 의미에서 평화라는 뜻입니다. 요즘은 북한 핵문제 때문에 불안하기도 하고…. 지구상에서 냉전시대가 아직 지나가지 않은 곳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한반도입니다』

―그렇다면 즉 한반도에 아직 냉전이 끝나지 않았고 평화상태도 아니라면, 이 시대를 사는 사람 특히 백만 대군을 가진 북한을 지척에 두고 있는 나라의 정부에 있는 사람들은 냉전적 사고를 하는 것이 더 안전한 것이 아닐까요.

『한반도의 불안한 평화가 안정된 평화로 가려면 우선 냉전적인 현실을 합리적으로 똑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북한이 얼마나 냉전적인가를 이해하고 남북관계가 얼마나 불안한가를 알아야 극복방안이 나온다는 뜻입니다. 제가 냉전을 강조하는 것은 현실 속의 냉전적 측면에 대한 인식을 강조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이 상황을 현실적으로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하는 겁니다』

주사파를 진보적이라 한 일 없다

―韓장관의 뜻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려면 韓장관이 쓰시는 용어가 먼저 정리되어야 할 것 같아서 용어의 문제를 먼저 다루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진보」가 사회주의 성향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 경우에는 긍정적인 가치판단이 들어간 「진보」라는 말을 피하고 정직하게 「좌파」나 「사회주의」라는 말을 써야 되는 것 아닙니까. 북한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수구적인 정권이고 사회주의는 무너져가는 낡은 이데올로기이니 진보가 아니라 「守舊」입니다. 언론에서도 일반적으로 운동권을 진보와 동일시 하는데, 그 운동권이 주사파라면 어떻게 진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저는 국내정치 문제와 관련해서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국내 기존구조가 다수 국민들에 의해 부당하다고 생각돼 그것을 타파하려고 할 때 그것은 진보이고 그 구조를 옹호하는 쪽은 보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는 좋은 가치로 봅니다. 그러나 남북관계를 진보와 보수의 개념과 연결시킬 때는 주의해야 합니다. 어느 체제에서나 교조주의는 가장 보수적인 것입니다. 지금 학생운동의 특정 세력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저는 한번도 주사파가 진보적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대통령 취임사에서나 제가 통일원 장관으로 취임 할 때 「감상적 통일주의는 지양해야 한다」고 한 것도 다 그들을 두고 한 이야기입니다』

―韓장관께서는 金泳三 대통령의 취임사를 준비하는 일에 참여하셨는데, 취임사 내용 중에 「사상과 이념보다 민족이 중요하다. 동맹국보다 민족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 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을 6·25에 적용시키면 우리의 동맹국 미국이 동족간의 전쟁에 참여한 것은 부당하다는 뜻이 됩니다. 근대 국가는 같은 민족이 아닌 같은 이념의 결집체입니다. 동맹국보다 조국이 중요하다면 이해가 되지만 민족이 이념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은 근대 국가의 개념에도 맞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취임사가 쓰여질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달리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금년 초 취임사를 작성하던 시기에는 냉전체제가 와해돼 어제의 적성국이던 소련과 중국이 우리의 우방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 민족은 4천년 동안 같은 언어와 문화로 동질성을 이어왔고 1천3백년 동안 단일국가를 이뤄온 상수의 개념인데 비해 동맹과 우방의 개념은 변수라는 뜻입니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미국과의 우방관계를 약화시키는 뜻으로 해석될 위험이 있지만 그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언어는 진실의 전부를 담지는 못하지요. 그러나 그 당시의 상황에서 언어가 지시하는 바를 정확하게 밝혀야 할 것입니다. 특히 이 취임 연설문 부분에서 북한 당국자를 청중으로 정해놓고 한 말이기에 여기서 동맹국이라는 것은 북한의 동맹국인 소련과 중국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문민은 反군사권위주의를 의미

―그러나 「동맹국보다 민족이 중요하다」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북한은 통일전선 전략상 민족을 중시해왔는데 대통령의 취임사가 마치 북한의 주장에 화답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러한 우려가 있다는 점은 시인을 할 수 있습니다만 그 뜻은 민족의 논리를 정권과 이데올로기의 강화를 위해서 활용하려고 하는 특정 세력에 대한 하나의 쐐기로서 진짜 민족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 말은 민족의 정통성은 우리 쪽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최근 韓장관의 연설문을 보면 「현 정권은 정통성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지난 정권이 정통성이 없거나 약하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韓장관께서는 盧泰愚 정부를 어떻게 보십니까. 군사정부로 보십니까 아니면 문민정부로 보십니까.

『범주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盧泰愚 정권은 권력획득 과정을 중심에 놓고 보면 문민정부의 성격이 강합니다. 지지율이 낮았다 하더라도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성립된 정권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그런 의미에서 선거에 의한 정통성은 갖췄다고 봅니다. 그러나 盧정권의 지배 엘리트의 구성을 보면 권위주의 시대의 주역들의 상당수가 주요 위치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앞의 정권과 연속선상에 있는 정권이라고 봅니다. 권위주의적 요소를 완전히 청산하지는 못했던 정권이라는 뜻이지요. 따라서 盧정권을 군사정권이다 아니다 범주적으로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권위주의에서 문민정부로 넘어가는 징검다리로서 과도기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문민정권」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저는 金대통령이 대통령 선거기간 중에는 그런 말을 쓰더라도 취임한 후에는 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취임 후에 오히려 문민정부라는 말을 더 자주 쓰면서 지난 정권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문민이라는 말을 너무 자주 쓰면 국민들 중에는 문민이 아닌 이들도 있으므로 더러 섭섭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통합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文民을 너무 강조하는 것은 독선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생각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민이라는 용어가 「반(反)군사」 즉 대다수의 군인들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쓰여지는 말은 아닙니다. 여기서 문민이란 반(反)군사권위주의 즉 소수의 정치화된 군인들을 반대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문민을 군사 전반에 대한 반대의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음은 인정합니다. 그런 오해는 빨리 풀어졌으면 좋겠습니다』

朴정권의 경제발전은 차선일 뿐

―金泳三 대통령이 기자 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일본 기자의 질문에 「5·16은 쿠데타였고 그 이후의 역사 전체를 후퇴시키는 시초가 되었다」고 평가하셨는데 이와 같은 평가에 동의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5·16이 역사를 후퇴시켰다기보다는 정치적인 면에서 후퇴를 가져왔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는 5·16 이후에 세계가 인정하고 또 우리가 실감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경제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이 정치적 후퇴와 경제적 발전을 분리하지 앟고 뭉뚱그려서 역사가 후퇴했다고 평가해버리면 5·16 이후 30년 동안 국가발전에 앞장서서 기여한 기성세대가 섭섭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당시 대통령이 그 말을 한 자리는 기자회견장이기 때문에 그 말의 뜻을 자세하게 해명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대통령의 말에 주석을 단다는 의미에서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후퇴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최근 젊은 학자들 사이에는 「朴정권이 정치는 후퇴시키고 경제는 발전시켰다」는 평가에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와 경제의 관계는 반드시 제로 섬(zero sum) 관계인가, 즉 朴정권 하에서는 경제발전을 위해서 정치발전은 보류 또는 제약시킬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그것은 차선이었지 최선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朴대통령 시절에 정치발전을 도모하면서 동시에 경제를 발전시킬 가능성은 전연 없었는가 하는 것은 앞으로 더 연구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민주화는 경제발전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입니다. 1987년 6월 사태 때 국민들이 한달 동안 정치적 소용돌이를 겪으면서도 경제가 몰락하지 않고 그 위기를 충분히 흡수할 수 있었기 때문에 민주화가 가능했던 것 아니냐 하는 것이지요. 또한 현대사에서 정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룩한 나라는 없지 않습니까.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하려 했다가 오히려 혼란에 빠졌고 등소평의 중국은 정치적 통제를 계속하며 경제발전은 이루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우리나라는 분단이라는 부담을 안고 있었고….

『그래서 제가 차선이라고 하는 겁니다. 영국은 정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룬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의 경우는 민주제도는 확고하지만 경제가 형편없지요. 그러나 경제가 먼저 발전돼야 정치발전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에 도그마가 들어가면 위험합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것은 두 가지가 동시에 발전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朴대통령의 업적이 과찬할 일은 못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朴대통령이 그만큼 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역사에 최선이 있었던 적이 있을까요.

『…(웃음). 역사는 항상 최선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겠지요. 그 과정에서 기복이 심하겠지만…』

대통령의 말은 일반적·원론적

―金대통령이 하는 말 중에는 상황을 너무 단순화시킨 것이 많아 가끔 국민들의 오해를 사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내부의 적」이나 「많이 가진 자가 고통받게 하겠다」는 말 등이 그런 경우인데, 대통령의 말은 좀더 정확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점에는 어느 정도 동감합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꼭 이해해야 할 것은 대통령의 말씀이 너무 자세하면 오히려 문제가 된다는 점입니다. 대통령은 일반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고 해석의 여백을 남겨둬야 합니다. 「많이 가진 자가 고통받게 하겠다」는 것은 부당한 방법으로 치부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라 봅니다』

―특히 「내부의 적」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내부의 적이라는 말은 「인간의 가장 큰 적은 내 속에 있는 교만이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높은 수준의 도덕적 표현이라고 봅니다. 金대통령 자신이 대단한 신념과 신앙의 소유자인만큼 남을 탓하기보다는 내 속의 악을 탓하는 것이지요. 金대통령은 이런 말씀을 과거에도 많이 했습니다』

―韓장관께서는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구체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은 역사가 때로는 준엄하게, 때로는 아주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아니고 아직 살아 있는 분들이 계시므로 지금 하기는 주저된다는 뜻입니다』

―얼마 전에 金대통령이 국사편찬위원회 위원들과 원로 역사학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정부가 가까운 역사에 대한 평가를 내렸으니 역사학자들도 가까운 역사에 대해서도 평가를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셨는데 韓장관계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통령이 5·16이나 12·12 등 아주 최근 역사에 대한 평가를 역사학자에게 맡겼다는 것은 「역사의 심판에 맡긴다」는 뜻에서 매우 진솔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역사의 평가에 맡긴다」고 말하는 것은 12·12 등에서 피해를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는 너무 요원하고 또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대의 정치인들에게 평가를 맡기는 것은 불공정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객관적으로 엄정하게 현대사를 관찰하는 역사학자들에게 평가를 맡긴 것은 합리적이고 잘 하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역사의 평가에 맡긴다」는 말처럼 유행하는 말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어떤 뜻입니까. 역사학자가 평가하는 것이 역사가 평가한다는 의미가 됩니까.

『그것은 역사학 방법론에서도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관학파적인 역사관에서는 지배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판단할 수 있는 전문가에게 역사 평가를 맡겼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희생당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러한 전문가에게 맡기면 관학파적인 역사판단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지금 단계에서 역사학자에게 역사 판단을 맡기는 것이 관학파적인 판단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빌라도의 심판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빌라도는 예수가 무죄라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의 여론이 예수를 죽이라는 쪽이 강했으므로 빌라도는 여기에 따랐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평가에 따른 것이지요. 짧게 보면 자료 정리나 해석은 전문가의 일입니다만 역사적으로 멀리 볼 때 판단은 사람들이 하는 겁니다』

通時的 민심의 평가가 중요

―결국 역사의 평가는 민심의 평가 즉 동시대인들의 총의로써 평가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은 공시적(共時的)인 민심이지요. 제가 중요시하는 것은 통시적(通時的)인 민심입니다』

―재작년에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여론조사를 한 일이 있는데 그 결과 80%가 朴대통령이 잘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이 곧 통시적인 민심의 평가가 아닐까요.

『좀더 지켜봅시다. 아직 너무 가까운 시대의 일이라서…. 더 멀리 보면 정확한 평가가 나올 겁니다』

―金대통령의 역사인식이나 민주계의 역사인식을 살펴보면 이런 특성이 있습니다. 「5·16이나 12·12는 불법이다. 따라서 그 이후 그들이 주체가 된 역사도 불법이다」라고 보는 겁니다. 한 사건과 그 이후의 역사를 섞어서 생각을 하는 것인데 이런 방식에는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예를 들어 어떤 여자가 강간을 당해 사생아를 낳았다고 합시다. 강간을 당한 것이야 나쁜 일이지만 그 아이가 훌륭한 사람으로 자랐다면 그것은 좋은 일 아닙니까. 그 아이가 강간을 당해 태어난 아이라고 해서 다 나쁘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보아서는 안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은 비유가 잘못되었습니다. 강간당한 여성의 아들은 맞지 않는 예입니다. 강간당한 여자는 억울한 희생자입니다. 강간한 남자가 잘못한 것이지요. 그 강간한 남자가 그후에 좀 좋은 일을 했다고 합시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 남자가 옛날에 강간을 했다고 하면 그 평가가 좋을 수가 없지요. 또 강간당한 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 남자가 그 후에 아무리 좋은 일을 했다 하더라도 좋은 평가가 나올 수 없지요. 그 남자가 나중에 잘한 일은 강간했다는 원죄를 희석시키기 위한 제스처로 보일 뿐이지요. 정통성 없는 정부는 집권 이후 정책집행 과정에서 도덕성이나 합법성을 지니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정통성이 없다는 말은 집권과정에서 결정적인 하자가 있다는 뜻입니다. 집권과정에서 온당하고 도덕적이며 합법적인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집권했다는 것이지요.

정부가 집권과정의 하자로 인해 정통성이 결여되었을 때는 반드시 비판 세력이 있게 마련입니다. 비판세력을 그대로 둔 채 정치권력을 유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비판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악법이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집행과정의 부도덕성이 다시 비판받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통치는 점점 어려워지니 정통성 없는 정권은 통치비 조달을 위해 정경유착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돈 준 사람을 부패시켜 부정부패가 나오게 됩니다. 이와 같이 집권과정이 잘못 되면 집행과정에서 잘못될 개연성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한번 강간을 한 사람은 다시 그와 비슷한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과 같습니다. 강간한 사람은 강간을 비판하는 세력이 없는 한 강간 비슷한 일을 또 하게 되는 겁니다. 한번 잘못한 일이 있다고 해서 그 후에 잘한 일까지 나쁘게 보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일부 옳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놓친 주장입니다』

국민이 정부의지를 믿느냐가 중요

―제 이야기는 복잡한 역사를 너무 단순하게 보아서도 안되고 또 너무 도덕주의적으로 보아서도 안된다는 뜻입니다. 5·16의 경우를 볼 때 5·16이 무너뜨린 정부가 과연 정통성이 있었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정권은 국민들이 세워준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그 정권을 유지할 능력이 있어야 정통성이 있는 정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면씨나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박정희가 쿠데타를 꾸미고 있다는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고 쿠데타가 나자 총리는 수녀원으로 달아나 연락두절, 육참총장은 쿠데타 세력에 즉시 붙었습니다. 국민들이 만들어준 정권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 순간 정통성이 상실된 겁니다.

저는 5·16에 대한 비판이 장면 정권에 대한 옹호로 이어져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또 5·16 이후 朴정권은 민정이양과 윤보선과의 대통령 선거로 부분적인 정통성은 회복했다고 봅니다. 물론 유신 이후에는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이런 복잡한 상황을 너무 단순화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또한 역사를 이야기할 때 지난 30년의 역사가 마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세 사람의 전유물인 것처럼 이야기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역사란 동시대인들의 땀과 눈물로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과거 정권을 비판할 목적으로 역사 전체를 대통령의 전유물인 것처럼 이야기하면 그 시대의 역사 건설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을 섭섭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조부장의 염려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장면 정권이 정통성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칩니다. 정통성은 있었는데 그것을 지킬 능력이나 리더십이 없었다고 해야 더 정확하겠지요』

―韓장관께서는 신정부의 통일정책의 가장 중요한 기조가 국민적 합의라고 보시는 것 같은데 그것은 지금까지의 통일정책에는 국민적 합의가 없었다는 뜻입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뜻입니까.

『금방 지적한 것처럼 정통성이 결여되었거나 부족한 정부는 저항세력을 생산합니다. 저항세력은 정부 정책 전반에 대해 비판을 하는데 통일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을 합니다. 지난 날 정통성이 부족했던 정권의 경우를 보면 통일정책이 국내의 의견을 분열시키는 작용을 해왔습니다. 통일정책을 둘러싸고 이른바 「진보세력」과 정부 간에 갈등이 심각했지요. 다만 7·4 공동성명 때는 다같이 기뻐했는데 그 직후 유신체제가 출범하면서 7·4 공동성명이 체제유지를 위한 방안임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그 이후 통일정책을 더욱더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저는 이 과정을 몸으로 관찰해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통일정책을 책임있게 관장해야 하는 자리에 앉고 보니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국민의 자발적인 지지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의 합의에 기반을 둔 통일정책이라는 기본적인 사항을 새삼스럽게 강조하는 것입니다. 저는 정통성 있는 정부의 경우에는 국민의 합의를 구성할 수 있는 여건은 쉽게 갖추었다고 봅니다』

내가 감상적 통일주의자라니…

―저는 지금까지 통일정책에 대한 국민적인 합의가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 합의가 70%냐 99%냐 하는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기본적으로 평화 통일,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이어야 한다는 큰 원칙에 대해서 국민들이 합의하고 있다고 봅니다. 비당국자 일부의 반대는 있었지요. 그러나 비당국자의 핵심이 김일성주의자들이라고 볼 때 과연 이들까지 설득해서 합의의 수준을 높여야 하는가는 의문입니다.

『논의에 약간 혼란이 생긴 것 같은데…. 물론 합의는 있었지요. 통일은 민주적·단계적 통일이어야 한다. 그리고 통일된 조국은 인권과 자유가 신장된 조국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지요. 그러나 제가 말하는 합의는 통일과정이나 통일된 조국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의 합의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을 강조하는 정권의 의지를 국민들이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이지요. 비록 정부가 바른 말을 하더라도 정통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은 한 항상 합의는 깨어졌습니다. 정통성이라는 문제를 고려하지 않으면 조부장의 말이 옳습니다. 그러나 정통성 문제를 고려하면 달라집니다.

과거에 정부의 통일정책을 비판했던 비당국자들은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의 대상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방법은 그들 중 상당수를 껴안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안에 김일성주의자들은 포함되기 어렵다는 조부장의 말에는 동감입니다. 그래서 감상적 통일지상주의자들은 이 합의구조 안으로 들어오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저보고 감상적 통일주의자라니…. 이 점에 대해서는 일부 언론의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韓장관께서 국민적인 합의를 강조하시고 또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한총련 간부들도 만나셨는데, 그러다보니 오히려 국민적 합의가 깨어지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공안당국은 한총련의 핵심세력이 김일성주의자들이라고 분석하고 있는데 이들까지 끌어안으려고 하다 보니 고유의 안정희구 세력이 불안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숫자로 보면 저는 안정희구 세력을 더 많이 만났습니다. 또 제가 한총련 간부들을 만났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 가운데 극단적으로 나아가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흡수통일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바람직하지 않아

―한총련 간부들과 나누셨던 대화중에 「끔찍스럽던 과거에는 생각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정통성 없는 정부는 여러분에게도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한 부분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부총리가 김일성주의자들과 말을 맞춰 전(前) 정권을 욕한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한총련 간부들이 이 방에 왔을 때 사진을 찍으면서 한 이야기 중에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틀린 것은 아닐지라도 부분적으로 한 이야기를 강조하다 보니 균형이 깨어진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서 당시 한총련 간부들과 한 이야기를 소개하지요. 그 젊은이들과 식사를 하면서 한 시간 반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제가 북한의 통일전선전략은 전혀 변한 것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북한은 새 정부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지요. 또한 그들 가운데 「고려연방제」가 타당하다고 보는 학생들에게 고려연방제는 통일이 아니라 분단고착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니까 그들이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한시간 반 정도 이야기를 하고 나서 그들의 반응이 「정부는 타도의 대상인 줄만 알았는데 대화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국과 비당국이라는 말을 쓰시는데 비당국이라고 하면 학생들뿐 아니라 일반 국민을 지칭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더 좋은 말이 있으면 추천해 보세요』

―최근 묘하게도 남북간에 「흡수통일은 반대한다」는 데 합의가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북한은 먹고 먹히는 통일은 반대한다고 했고 金대통령도 「우리는 흡수통일 할 필요도, 의사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흡수통일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한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독일 통일 이후 우리가 동서독식 통일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그것이 흡수통일이라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독일통일은 동독이 무너지면서 이루어진 민주통일이지 흡수통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흡수통일이라고 하면 무력통일을 말하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가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흡수통일에 반대하는 기본논리는 양쪽에 다른 정치체제를 가진 상태를 지속하자는 것 즉 분단고착화가 아닙니까. 흡수통일 반대론에 합의해 주면 그것은 마치 「북한의 민주화」에 의한 독일식 통일까지도 반대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韓장관께서는 북한의 민주화도 통일 이후에 하자는 「先통일 後민주화」를 주장하는 것 같은데 이래서는 안되는 것 아닙니까.

독일식 통일은 어렵다

『흡수통일은 곧 무력통일이고 여기에 반대하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동서독 통일은 흡수통일이 아니지요. 사회학에서는 명시적 기능(manifest function)과 잠재적 기능(latent functio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명시적 기능이란 제도나 정책이 의도했던 결과를 의미하고 잠재적 기능이란 의도하지 않았는데 나온 결과를 말합니다. 동서독 통일의 경우 명시적 기능으로서는 흡수통일이 아니지만 잠재적으로는 흡수통일의 요소가 있습니다.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동독인들은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서독인들의 생활을 알게 되었지요.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흡수통일과 같은 결과를 낳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에는 북한 사람들이 남한의 삶의 질, 개방성, 체제유연성 등을 알 수 있는 통로가 완전히 차단되어 있습니다. 현 단계에서는 동서독처럼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다른 각도에서 생각을 해보지요. 북한이 자체 모순에 의해 또는 외부의 충격에 의해 붕괴되었다고 가정합시다. 과연 우리가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두달 전 헬무트 슈미트 전 서독 총리가 와서 독일통일이 빚어낸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요즘 동독에 땅을 가지고 있던 서독인들이 통일 후에 송사를 벌이는데 2백만건이 넘는다고 합니다. 향후 10년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엄청난 국력이 낭비되리라고 합니다. 잘 사는 서독인 네 사람이 못사는 동독인 한 사람을 먹여 살리기도 힘들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경제상황이 나쁘니까 2대 1이라고 해도 굉장히 힘들 겁니다. 또한 동독인들의 사회 심리학적 열등감이 매우 심각한 사회 문제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급류에 휩쓸려 가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물가에 있던 형이 뛰어들었다고 합시다. 서독은 동독을 끌어내 물가로 나와 저렇게 허덕이고 있는데 우리는 뭍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급류에 같이 휩쓸릴 것」이라고 말입니다. 북한이 갑자기 붕괴해 수백만의 북한 사람이 갑자기 남으로 몰려온다면 큰 문제입니다. 시장 교란 같은 경제적인 어려움은 물론이고 문화적 충격, 질서유지 등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것입니다. 우리가 흡수하려는 의도도 전혀 없지만 흡수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의 흡수통일도 바람직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또한 정부는 모든 가능성에 대해 면밀한 대비를 하고 있습니다. 슈미트 총리가 제게 한국의 통일방안이 뭐냐고 묻기에 3단계 통일론을 이야기했더니 점진적이고 현실적인 통일론이라고 칭찬을 합디다.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준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흡수통일은 불행한 사태

―그렇다면 韓장관께서는 상당히 보수적인 통일관을 갖고 계십니다. 그런데 흡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반대한다는 것은 지금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렇다는 것이지 10∼20년 후에 그런 상황이 생기는 것은 괜찮을 것 아닙니까.

『어느 미국학자가 북한이 빨리 붕괴할수록 통일비용이 싸다고 했는데, 지금이건 나중이건 흡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2천2백만의 북한동포를 일방적으로 먹여살리는 일은 10년내에는 어렵습니다. 점진적으로 통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흡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가까운 시일 안에 일어나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흡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방안으로 정부가 내세운 것이 공존공영의 기조입니다. 북한을 타도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탈냉전의 시각에서 동반자로 보면서 교류를 통해 북한을 개방시키고 삶의 질을 높여주자는 것이지요. 우리 정부에서는 북한이 중국식 모델로 가는 데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핵문제가 터져 중단이 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물자교역, 임가공교역은 꾸준히 이루어져 금년 상반기에 9천만 달러의 교역이 이루어졌고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흡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피하려면 북한에 중앙통제력을 가진 정부가 유지되고 휴전선은 그대로 둔 상태에서 군사도발을 포기한다는 원칙하에 경협을 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핵문제 해결을 전제로 단계적 협력관계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먼저 화해 협력 단계에서 경협을 통한 신뢰구축을 하고 2단계에서 남북연합을 이룹니다. 이 단계에서 휴전상태가 평화체제로 이행되지만 정치적 통합의 단계는 아닙니다. 이 상태에서 북한의 삶의 질을 점차 높여 나중에 완전 통일될 때 비용이 안들고 평화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국민정서에 비추어볼 때 그런 통일정책의 설득력이 약한 것은 김일성 김정일 체제가 당분간 계속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 사이에 북한의 인권 즉 민주화 문제는 어떻게 됩니까. 경협을 하면서 우리가 북한의 인권신장에 적극적으로 힘을 써야 하는 것 아닙니까. 통일과정이 3단계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북한의 인권문제는 거론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신지….

『그 점에 대해서는 오해가 있었습니다. 지난 번에 방송기자협회 기초강연에서 통일정책과 핵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1차적 중요성은 핵문제에 있다. 핵문제가 이토록 시급한데 지금이 인권문제를 거론할 때인가 하는 것은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말은 북한의 인권문제가 3단계에서 갑자기 나오는 것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인권문제는 서서히 펴나가야 하는 것이지 어느 단계에서 갑자기 활짝 꽃피는 것은 아닙니다. 초기 단계에서 북한의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는 것도 인권신장의 하나입니다. 또한 단계론을 주장하는 것은 북한지배체제의 정당성을 인정하겠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북한을 갑작스럽게 흡수할 경우 엄청난 비용과 고통이 들것이므로 그것을 치르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인도주의 문제는 계속 제기할 것

―인권 문제외 관련하여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민주화된 국가로서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중국의 천안문 사태와 관련, 경제 제재를 가한 것은 국가의 도덕적 원칙에 의거해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인모 노인을 송환하면서 인도주의적 원칙에 입각해 조건 없이 돌려준다고 했는데 그때 납북된 동진호 선원을 언제까지 돌려달라는 식으로 확실하게 이야기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왜 이인모 노인에게 적용되는 인도주의가 동진호 선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지, 이런 원칙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국가가 자기 국민에 대한 보호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문제에 관한 비판은 많이 들었습니다. 이인모 노인의 북송은 신정부의 기반이 되는 도덕성과 인도주의와 관련이 있습니다. 인도주의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조건이 없는 것이고 내가 이만큼 하니 너도 무엇을 해달라는 식의 교환가치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당시에는 이인모 노인의 건강이 국제적인 문제가 돼 부담이 되고 있었습니다. 신정부로 들어오기 전에 이미 그런 상태였지만…. 이인모의 북송은 조건 없는 북송을 통해 신정부의 도덕적 우월성이랄까 인권존중의 정책을 구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렇지 못한 북한에 인도주의 정책의 자극을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동진호 선원들의 인권을 무시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이 문제는 반드시 거론할 것입니다. 둘 다 할 일이지만 상호연결시키지 않은 것뿐입니다. 이인모 문제는 신정부로 넘어온 큰 문제 중의 하나였습니다.

저는 북에 대해 「너희가 그렇게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불구하고」의 윤리와 논리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없을 수도 있고 손익계산이라는 측면에서는 손해만 보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있어서는 장기적인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

―이인모 문제가 신정부에게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그것을 문제 삼아서 꼭 그래야 한다고 강하게 원했던 것도 아니고 국제적인 압력이 컸던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북한에게 큰 문제였습니다. 북한이 제기한 문제를 전략적으로 무시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너무 선의로 대하다 보면 거꾸로 힘없고 위선적인 인도주의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산적이고 전략적으로 나가서 이인모 송환을 동진호 선원문제와 연결시켰을 때 결과는 훨씬 더 인도주의적인 것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비판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인모 북송은 특단의 조치로서 인도주의적인 의지를 국내외에 보여줬고, 북한이 앞으로 교환가치적인 협상을 할 때 부담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 조치는 비현실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했고 현실적인 계산도 했습니다. 인도주의 문제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핵문제가 아무리 심각해도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와 생사확인을 위한 우편물 교환소 설치, 동진호 선원 문제 등은 앞으로 계속 제기할 것입니다』

북한 현실 알수록 고민 커져

―지난 번에 미국 가셨을 때 타노프 차관과 만나서 「우리 정부는 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에 군사제재를 하는 것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보도되었는데….

『그것은 잘못 알려진 것입니다. 다만 우리 정부는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외교적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하는 원칙은 통일관계 장관회의에서 결정된 일이 있습니다. 즉 핵문제가 유엔의 제재를 받기 前단계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경제제재는 있을 수 있는 방식입니다. 경제제재가 효과가 있으려면 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반(半) 군사적인 방법인데, 우리 정부로서는 군사제재까지 포함한 카드를 갖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단계에서는 외교적,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원칙 외에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는 곤란합니다』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타노프 차관과 그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학자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북한의 對 자본주의 시장 경제 의존도가 낮으므로 중국의 협조가 없다면 효과가 있을까라는 의문은 제기한 일이 있습니다』

―다시 통일 이야기로 돌아가면, 많은 사람들이 결국 통일은 북한의 민주화에 의해 동서독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냐고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곧 先민주 後통일 방식인데, 韓장관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거에도 제 입장은 先민주 後통일이었고 그것은 지금도 변함 없습니다. 물론 과거에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의문인 것은 북한을 어떻게 민주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민주화도 이렇게 어려웠는데 북한을 어떻게 더 나은 상태로 만들 수 있을지 고심 중입니다. 휴전선으로 완전히 차단된 상태인데 이런 상황에서 북한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겁니다. 원칙은 중국 모델인데 북한이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삶의 질이 개선되면 상당한 변화가 오겠지요』

―최근 북한의 현실로 사형제도를 예로 들겠습니다. 북한에서는 공개처형이 일반화되어 있고 사형을 집행할 때는 김일성 부자에게 욕을 하지 못하도록 입에 돌을 물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돌을 주어 던지게 한답니다. 사형의 기준도 없어서 소매치기가 많다고 하면 일벌백계로 소매치기를 사형시키기도 합니다. 판사가 판결을 할 때도 법전에 얽매이지 말고 상황에 따라 정치적 해석을 하도록 지시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현실은 과거에 반공교육을 통해 알려졌던 상태보다 더 나쁜 것 같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도 1천 달러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3∼4백 달러에 불과하고 그 중에서 군사비를 빼고 나면 2백 달러 정도 될 겁니다. 북한의 이런 참혹한 현실에 대해 울분을 공유해야만 북한인민의 인권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이 나올 수 있을 겁니다.

95년 남북연합단계 희망

『통일정책을 주관하는 자리에 있다보니 북한의 딱한 현실에 대해서는 더 잘 알게 됩니다. 이런 현실을 보고 대개 두 가지 반응을 나타냅니다. 하나는 저토록 못살게 한 데 대한 적개심이고 또 하나는 아타까운 마음으로 효과적인 개선방안을 찾는 것이지요. 현실을 절박하게 알수록 고민은 커집니다』

―현재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는 10만명 이상이 수용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 상황은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고 들었습니다. 북한의 인권문제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이를 지렛대로 이용하여 그들의 인권을 조금씩이라도 고양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겠습니까.

『제 이야기는 북한의 인권을 고양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고심중이라는 것이지요. 현실적인 고려를 하면, 북한은 매우 특수한 종교적인 집단과 유사합니다. 따라서 강경론적인 대책을 쓰면 쓸수록 내부의 단결은 공고화됩니다. 그것은 결국 북한이 더 비생산적인 일에 돈을 쓰도록 만드는 결과를 낳습니다. 강경론적인 방법으로는 북한의 상태를 더 바람직한 상황으로 변화시키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현실상황을 감안할 때 현실적인 한계를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낭만적인 것으로 보지는 말아주십시오』

―우리나라가 북한에 대해 군사적인 위협을 가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경협을 카드로 이용해서 인권문제 등에서 효과를 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경협이 갖는 카드로서의 효력은 물론 매우 큽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을 행사할 시점이 아닙니다. 적절한 시기가 아닌 때에 경협이라는 카드를 써서 그 전략적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말아야 합니다. 경협이라는 카드를 중요시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국이라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함부로 이야기하지 못할 뿐입니다』

―韓장관계서는 정말로 오는 95년부터 남북연합단계에 들어가리라고 보십니까.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지요. 핵문제가 금년 안에 해결된다고 가정할 때 북한이 세 가지 조건 즉 NPT복귀와 IAEA 사찰 수용 그리고 남북상호사찰을 수용해 핵문제에 대한 투명성이 보장되면 화해협력단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때는 본격적인 경협도 가능합니다. 그렇게 2∼3년 지나서 빠르면 95년이나 96년에는 남북연합단계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렇게 되기 힘들지요』

핵문제는 시간 끌지 않을 것

―핵문제의 투명성이 보장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 않겠습니까.

『현재 북한의 NPT 복귀는 사실상 해결된 것이고 IAEA 사찰 수용은 아직 이 시점까지 북한과 IAEA의 협의에서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제네바 성명에 의하면 북한과 IAEA가 빠른 시일 안에 완전하고 공평한 사찰을 받기 위한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따라서 이 협의가 조만간 시작된다면 영변지역의 두 개 미신고 시설에 대한 사찰은 두 달이라는 시한을 넘기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오는 9월 22일 IAEA이사회가 열릴 예정이므로 그 전에 해결되기를 희망합니다. 문제는 남북상호사찰인데 이 문제는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과 미국간의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 남북 상호사찰의 수용인 만큼 시간을 질질 끌지는 못할 겁니다. 특히 북한으로서는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통해 체제수호와 경제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북한이 남북한 상호사찰에 합의한다고 해도 사찰이 직접 이루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지 않을까요. 북한이 빼돌린 플루토늄을 찾아내서 IAEA관리하에 두는 데까지 이르러야 하는데 그것은 요원한 일 아닙니까. 북한이 그 사이에 핵폭탄 제조에 성공한다든가 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데….

『제네바 합의에 충실하다면 시간을 그렇게 끌지는 못할 겁니다. 바로 유엔이 제재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이 작심을 하고 시간을 끌면서 2∼3년 내에 핵폭탄을 제조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북한이 최소한의 합리성을 갖추고 있다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며 그렇게 되도록 허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 북한이 가장 원하는 것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인데 지금 몇 가지 조건만 만족시키면 미국이 관계정상화를 위한 협의를 하겠다는 단계까지 와 있습니다. 북한이 이것을 다 무산시키면서까지 경제제재를 받는 길로 들어가리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적습니다. 다만 북한의 핵개발 의지가 강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북한이 핵개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과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대한 손익계산은 끝냈을 것으로 봅니다. 최악의 경우라는 것은 우리에게는 물론 그들에게도 최악입니다. 한미간 그리고 국제적 공조체제는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 않게 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핵보유 선언을 해버리면 최악의 경우 우리 정부가 무너질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고 남북관계도 불안정해질텐데….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서 한번 해볼 만한 가치는 있는 가정입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가정이므로 거기에는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신한국의 기초작업

―지금까지 金대통령의 개혁은 주로 과거의 잘못에 대한 사정이었습니다. 대통령은 검찰을 제대로 부리기만 하면 거기에 언론이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식으로 사정이 아주 쉽게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래지향적으로 무엇을 만들고 건설하는 적극적 개혁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국민들도 한때 열광했다가 지금은 그 집중되었던 열망이 산란되는 상태입니다.

『그런 비판을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 청와대에서도 더욱 효과적인 개혁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신한국이라는 집을 짓기 위해 기초작업을 한 것입니다. 집을 짓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요소를 제거한 것이지요. 국민들은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초공사를 하는 중인데 왜 집이 안보이느냐고 하면 안되지요. 집을 짓는 사람이 기초공사를 하면서 집 모양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 리가 있습니까. 곧 집 모양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즉 제도를 통한 줄기찬 개혁추진의 청사진이 나올 것입니다』

―新한국 창조라는 말은 舊한국의 파괴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대통령은 국가의 수호자인 동시에 역사의 계승자이기도 합니다. 金대통령이 지난 역사와 전임자의 공적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말을 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김대통령이 역사의 계승자인가 아니면 파괴자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최근 한 논문을 읽었는데 그 내용은 지난 81년 중국 공산당이 등소평의 지시에 의해 모택동에 대한 평가를 한 것에 관한 겁니다. 저는 이 논문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모택동에 의해 두 번이나 숙청당한 피해자로서의 등소평이 모택동에 대한 평가를 하는데 그 태도가 매우 객관적입니다. 문화대혁명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도 가급적이면 모택동 개인과는 분리시켜서 모택동에 먹칠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모택동은 중국 공산당의 역사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으므로 모택동에 대해 너무 구체적으로 평가하다 보면 중국 역사 전체에 대해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등소평이 전임자에 대해 평가를 하는 자세는 역사를 계승하려는 사람으로서의 성숙한 자세와 역사관을 보여줍니다.

『金대통령을 평가하는데 역사의 계승자냐 파괴자냐 둘로 나누어서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잘못된 역사는 고치고 좋은 역사는 계승해야 하지요. 金대통령도 그런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모택동과 등소평의 관계를 한국의 현재와 지난날에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1960년대 이후 지난 30년 동안 우리에게 모택동 같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택동·등소평, 박정희·김영삼

―모택동 같은 지도자가 있어도 등소평이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봐야지요. 등소평은 문화대혁명 같은 엄청난 시련을 일으킨 모택동이 잘한 일이 7이라면 못한 것은 3이라는 정도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1965년에서 80년까지 15년간의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GNP성장률은 연 평균 9·5%로서 세계 9위, 80∼89년엔 10·1%로 세계 1위입니다. 물론 중국과 나라의 크기는 다르지만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이 이룩한 것이 이 정도인데 모택동보다 나쁘게 평가를 받아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그 시기에 우리나라 GNP 성장률이 매우 높았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지도자 개인의 역량이었느냐 민주시민의 역량이었느냐의 평가는 다른 겁니다』

―그것을 분리시켜 생각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지도자에게는 지도자의 몫이 있고 그것을 따라간 국민들에게는 국민들의 몫이 있는 것 아닙니까.

『지도자의 몫도 부분적으로는 있지만 국민들의 공이 더 크다고 봅니다. 국민들이 문제 있는 지도자 밑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성숙하고 근면한 자세로 열심히 노력한 결과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중국의 모택동에게는 그에 의해 고통받은 사람들이 있었다 할지라도 잘한 일이 7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한 공적이 있었습니다』

―한 나라의 발전을 가늠하는 데는 여러 가지 지표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GNP가 매우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또 삶의 질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유엔 통계로 우리나라가 37위입니다. 그러나 모택동은 문화대혁명을 통해 1천만명을 희생시켰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피비린내 나는 일은 상대적으로 적지 않았습니까.

『그런 점에서 본다면 모택동보다는 등소평의 공이 훨씬 큽니다. 등소평의 등장 이후 중국이 오늘날까지 이룩한 발전은 모택동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정도입니다. 신한국이 출범한 지 이제 5개월 남짓 되었습니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뭔가 해보겠다고 하는데 국민들이 이것을 지켜보는 데 그치지 말고 밀어줘야 합니다. 오늘의 중국이 있기까지 중국인들은 많은 인내심을 발휘하고 협조를 해왔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모택동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등소평이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등소평이 모택동을 격하했다면 오늘의 모택동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항상 정권을 잡으면 전임자를 격하하고 계승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택동이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 가지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할 것은 朴정권 이후 지난 정권까지 전(前) 정권을 부정적으로 보는 대통령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최규하 대통령도, 전두환 대통령도 朴정권을 비난하거나 파괴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계승할 필요가 없는 것까지 온존시켜왔지요. 金대통령은 경제성장처럼 계승할 필요가 있는 것은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정통성 없는 정부가 저지른 문제는 청산하려고 합니다. 과거 朴대통령이 윤보선 대통령을 비난했던 것과 신정부를 동일시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金대통령의 개혁에는 기독교적인 성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은데 같은 장로교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로교는 칼빈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金대통령에게 칼빈적인 요소가 있기는 합니다. 깨끗한 정치를 해보겠다는 것 깨끗한 권력을 강조하는 것 등이 그러한 특성입니다. 그러나 金대통령은 온건개혁주의자입니다』

―金대통령이 공무원들에게 「소신 없는 공무원은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도덕성을 강조한다는 효과는 있겠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보면 온 국민은 부패하고 지도자 한 사람만 그렇지 않다는 의미로도 들립니다. 金대통령이 너무 과도하게 도덕성을 강조하는 것은 기독교적인 영향 때문이 아닐까요.

『저도 그런 염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염려는 金대통령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기초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소신 없는 공무원은 나가라는 말은 무사안일주의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개혁을 한다니까 공무원들 중에는 책임을 지지 않고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국민을 위해 과감하게 해야 할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것을 배격하기 위한 것이지요.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경제적 물량으로는 성장했지만 이제 겨우 정치 선진국에 진입한 상태입니다. 그것은 결구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 도덕적 가치관을 갖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위물 맑기 운동을 전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요. 대통령 취임사의 마지막 부분에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金대통령의 이미지는 포용과 여백이지 혼자 질주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물론 위기에 빠졌을 때 돌파하는 능력은 대단하지요. 그러나 평상시에는 안고, 품고, 손잡고 가는 스타일입니다』

―그러나 개혁이라는 것도 민족성에 맞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독일이나 일본처럼 규율을 세워 거기에 딱 맞추는 것은 우리에게는 잘 맞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정을 느끼고 격려하면서 같이 고생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 때 동참하게 되지 않습니까. 정이 말라버리면 신바람도 사라질 겁니다. 또 모든 사람이 다 과거에 족쇄가 채워져 있습니다. 司正 대상이 되어 잡혀 들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을 하고 또 나도 언젠가는 잡혀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는 지난날의 잘못에 대해서는 대사면을 하고 앞으로 잘못한 사람은 처벌한다는 식으로 마음을 놓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金대통령도 개혁의 원칙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물론 우리 국민성 중에서 가장 좋은 점은 정(情)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일을 하기 위해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해 정을 느끼는 것이지, 지난날 오만하게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잘못한 사람들이 사정 대상이 될 때 그러한 사람들에 대해 정을 느끼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난날 많은 사람들이 부정을 관례처럼 당연시해왔기 때문에 사정 대상이 되면 재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을 중심으로 어떻게 새 역사를 창조합니까. 지금 우리는 우리가 지불해야 할 최소한의 값을 치르는 겁니다』

―지금 진행되는 司正을 보면서 느끼는 것인데, 金대통령도 과거와 연결된 사람입니다. 같이 진흙 속에 있다가 어떤 사람은 잡혀가고 어떤 사람은 잡아가는 자리에 있습니다. 또 대통령과 정치자금이라는 성역이 존재합니다. 이런 사정이 도를 넘어 계속되다 보면 언젠가는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이제는 합리적인 선에서 정리를 하고 새출발을 하는 것이 어떨까요.

『다 같이 진흙 속에 있다가 핀 꽃이라고 하셨는데 꽃의 종류가 다릅니다. 선거자금을 받아 사욕을 채운 사람과 사욕 없이 진짜 선거에 쓴 사람은 구분해야 합니다. 金대통령이 야당 총재 하면서 엄청난 자금을 관리했으리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다 알겁니다. 그러나 사욕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기에 김대통령과 지금 잡혀 들어가는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장관직 물러나면 학계로 갈 것

―韓장관계서 미국에서 한국 기자들을 만나 국내 언론이 정확하게 보도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셨는데 이 자리에서 언론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해주시지요.

『해방 이후 지금까지 오늘날처럼 언론인의 역할이 중요했던 때는 없었습니다. 朴정권 이후 지난 정권까지 30년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힘있는 집단 중에 언론이 끼어본 일은 없었습니다. 언제나 핍박의 대상이었지요. 朴정권 초기에는 군부가, 그리고 후기에는 군부·재벌·학생·정치인, 이 네 집단이 우리 사회에서 지배적 힘을 행사해 왔습니다. 이 네 집단은 시기마다 힘의 우위는 달랐지만 가장 강한 집단이었습니다. 金대통령 시대에 와서는 군부와 학생의 힘이 약해졌고 기업과 정치인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돋보이게 강해진 세력이 있다면 그것은 언론입니다. 언론은 민족을 바로 이끌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앞으로 경제발전이나 정치적 성숙 그리고 남북관계의 개선에 언론이 중요한 일을 하리라고 생각됩니다』

―韓完相 부총리는 통일원 장관으로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에 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제가 남북관계에 대해 어떤 말을 할 때 고려하는 청중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남한에 있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평양 당국입니다. 내 말이 남북관계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하는데 대해 항상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청중은 역사입니다. 역사가 과연 이것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가 편하게 살기 위해서 어떤 말을 하고 싶은 충동을 받을 때도 있지만 이런 세 가지 청중의 평가 때문에 항상 자제하고 신중하게 대응하려고 합니다. 이 세 청중 가운데 제일 무서운 것은 역사의 평가입니다』

―앞으로 장관직을 그만두면 다시 학계로 돌아가실 계획입니까.

『그렇습니다. 학교로 돌아가는 것은 학교에서 받아주면 가능한 일이고…. 평생을 학교에서 보냈기 때문에 아직도 마음은 연구실에 있습니다. 장관직을 물러나면 글 쓰고 책 읽으면서 지내고 싶습니다』

―장시간 성실하게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리 : 姜仁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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