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윌리엄 버클리의 보수노선

진정한 보수주의란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역사적 진리를 위해 일어설 수 있는 용기이다.
美 정치 사회 지형 바꾼 ‘보수주의 운동의 아버지’


50여 년간 균형감과 여유 잃지 않고 지식인·젊은이들에게 어필

우리 나라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지난달 말 82세를 일기로 타계한 윌리엄 버클리(Buckley) 내셔널리뷰誌 전 발행인은 미국에서는 한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지성인이자 활동가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디즈니 만화영화 ‘알라딘’에서 그를 묘사하는 캐릭터가 나올 정도로 대중적 인기와 유명세를 누리던 인물이기도 하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달 “버클리는 보수주의가 미국 정치사회의 주류가 되도록 만들었고 냉전에서 미국이 승리하도록 하는 이념적 기초를 세웠다”며 그를 추모했고, 이코노미스트지는 최신호에서 한 면 전체를 할애해 “황야의 예언자로 사역을 시작한 그는 미국사회의 정치적 지형을 바꿨으며 새로운 시대의 아버지가 됐다”며 그의 업적을 설명했다.

진보언론인 뉴욕타임스도 “세계대전이후 진보주의 일색이던 미국사회에서 보수주의가 존경 받도록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과연 버클리가 누구길래 이 같은 찬사가 이어지고 있으며, 눈부신 그의 업적의 비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가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이미 대학 졸업 직후인 1950년 ‘예일대의 신과 인간(God and Man at Yale)’이라는 저서를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이 책을 통해 진보주의로 경도된 미 대학의 세속적 교육과 지식인들을 비판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1955년 불과 29세의 나이에 격주간지 ‘내셔널리뷰(National Review)’를 창간해 그의 보수주의 사상을 미국사회에 본격적으로 전파하기 시작했다.

세계전쟁 이후와 베트남전쟁을 겪던 50, 60, 70년대 미국사회는 ‘진보’라는 미명아래 기독교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보수적 가치가 무너지고 히피 문화와 포스트모더니즘 등 새로운 사회적 실험이 실행되고 있던 시기였다.

마치 한국의 지난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또는 최근 5년간 극에 달했던 소위 ‘보수와 진보’의 갈등 가운데 지식층이라면 으레 ‘진보주의’를 택하고 ‘보수주의’라고 하면 왠지 뒤떨어진 듯하고 눈총 받던 사회적 분위기와도 닮아 있던 듯하다.

이때 버클리가 ‘내셔널리뷰’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목표가 지금은 유명한 구절이 된‘역사를 가로질러 (진보주의를) 막아 선다(standing athwart history, yelling stop)’는 것이었다. 진정한 보수주의란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역사적 진리를 위해 일어설 수 있는 용기라는 신념이었다. 그는 현대의 진보주의가 기독교 진리에 바탕을 둔 서구문명과 가치를 파괴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지난 2월 27일 자신의 서재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55여 권의 저서와 5,600여 편의 칼럼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집필활동을 펼쳤으며, 1966년부터 1999년까지 33년간 ‘Firing Line’이라는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함으로써 미국 TV역사상 최장수 프로그램진행자로 기록되기도 했다.

그의 신념은 글과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도 그대로 옮겨졌다. 1965년 그는 현대 미 선거 역사상 가장 중요한 선거 중 하나로 평가 받는 뉴욕주지사 선거에 뛰어들었다. ‘당선이 된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재검표를 요구하겠다’고 농담을 할 정도로 그의 당선가능성은 처음부터 낮았지만, 최초로 보수주의 이슈에 초점을 맞춘 그의 캠페인은 이후 미 선거 분위기와 틀을 일거에 바꾸어놓았다.

그는 또 ‘자유를위한미국청년들(Young Americans for Freedom)’ 등 단체를 조직해 젊은층에 보수주의 사상을 교육시켰고 레이건 정부 시절에는 그에게 직접 배웠거나 영향을 받은 정부관료가 5,000여 명에 달했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였다.

그가 다른 보수주의자들과 구분되는 또 다른 큰 차이점은 평생 보수주의 신념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신랄한 풍자와 유머, 균형감을 유지함으로써 보수주의가 반지성적이거나 ‘구닥다리’라는 인식을 불식시키고 끊임없이 지식인층과 젊은이들에게 어필했다는 점이다.

그가 발행한 내셔널리뷰는 자유시장주의, 사회적 보수주의, 전통주의, 반공주의 등 다양한 보수주의 내 계파를 한 곳으로 묶는 역할을 했는데, 동시에 음모론 등 사실에 근거를 두지 않은 극단적 보수주의를 비판하고 배제시키는 데 앞장섰다. 그는 또 16만 부 정도가 발행되고 있는 이 잡지의 운영을 위해 개인적으로 후원금을 모으고 자신의 강연료 및 저작료를 쏟아 부었다.

그는 레이건 정부와 두 차례 부시 정부를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최근에는 현 부시행정부의 이라크정책과 지나친 팽창주의 등에 대해 비판하는 등 끊임없이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삶과 성공 뒤에는 귀족적 배경도 작용했다. 1925년 뉴욕의 독실한 가톨릭신자이자 석유재벌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을 영국과 프랑스의 가톨릭사립학교에서 보냈으며, 예일대에 진학해서는 교내 데일리 신문의 편집장과 최고 전통의 비밀단체인 ‘스컬스앤본스’의 멤버 등을 지내고 졸업생 대표로 선출되는 등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저서 중에는 정치이념에 대한 것 뿐 아니라 추리소설과 여행에 대한 저서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그는 휴가 때 자신의 배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기도 하고 음악에 심취하는 등 삶을 즐겼고 미국사회의 대표적인 진보주의적 인사들과도 두터운 친분을 유지했다. 자신의 이념이 떳떳하고 합리적인 것이라면, 반대자들과도 언제든지 토론할 수 있고 개인적 친분을 쌓는 것도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만약 전쟁의 폐허와 가난으로 점철되고 전통의 단절이 이루어진 현대 한국사회에서 태어났거나 남북 군사 대치 같은 절대절명의 상황에 처해 있었더라도 여유를 유지하며 그 같은 업적을 이룰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그러한 가정은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그리고 특히 보수계층이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올바른 사상을 전파하며 이를 사회적으로 내재화하고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균형감각과 객관성, 유머와 여유를 끊임없이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보스턴=김범수 특파원
bumsoo@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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