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정집 마당에서 녹슬어가는 이승만 동상을 보며
서울 명륜동 한 가정집 마당 구석에는 이승만 초대(初代) 대통령의 동상 두 개가 몸뚱이가 잘린 채 녹슬어가고 있다. 이승만 정권기인 1950년대 후반 세워졌다가 4·19혁명 때 끌어내려진 것들이다. 서울 남산에 있던 동상은 머리만 남은 채 푸른 노끈에 감겨 있고, 상반신만 있는 탑골공원 동상은 그 옆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고철상을 전전하던 동상들이 그나마 이 집 마당이라도 차지하게 된 것은 이승만 정부 때 노총 최고위원을 지낸 어느 인사가 1960년대 후반에 이것을 챙겼던 덕분이다. 지금 집주인은 그 사람이 이민을 떠나자 동상도 함께 넘겨받았다고 한다.
지구상에 웬만큼 나라 모습을 갖춘 나라치고 건국 초대 대통령 동상이 이런 꼴로 굴러다니는 나라가 있을까. 올해가 대한민국 건국(建國) 60년이라는데 건국 주역 이승만을 기리는 제대로 된 동상 하나, 기념관 하나 없다. 26일 탄생 133주년 추모행사도 이승만이 다니던 정동제일교회에서 신도와 기념사업회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우리 역사에서 이승만처럼 훼예포폄(毁譽褒貶)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인물도 드물다. 한쪽에서는 오늘의 번영된 대한민국의 진로를 잡았던 국부(國父)로 받들지만 좌파 쪽에서는 독재자로 깎아내리고 분단의 책임마저 그에게 떠밀고 있다. 6·25를 통일전쟁이라고 우기는 북한과 한 배를 탄 사람들의 이야기다. 역사 교육을 둘러싼 좌·우파 사상 대립에서도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첨예한 대립의 중심에 놓인다.
이승만 집권 말기에 본체만 높이 7m, 기단(基壇)까지 합쳐 25m나 되는 초대형 동상이 남산에 세워졌다는 것이 당시 비정상적인 정치·사회 상황을 말해준다. 그래서 그의 동상마저 이런 수모와 곡절을 겪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승만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이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갈림길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길을 선택하고 그 선택을 전쟁으로부터 지켜 나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공산주의가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을 장악했던 상황에서 국제정세를 정확히 읽고 미국과 손잡았던 그가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느 정치지도자에게나 공과(功過)는 있게 마련이다. 유난히 파란만장했던 한국 현대사에선 빛과 그늘이 더 심하게 교차한다. 이승만 시대에서 5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이제는 그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에게 역사의 제자리를 찾아주어야 한다. 장독과 철사와 나뭇가지가 뒤엉켜 있는 마당 구석에서 초라하게 녹슬어가는 초대 대통령의 동상 얼굴과 몸뚱이를 바라보며 착잡했을 국민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建國 대통령을 구박하는 나라!
- 조선일보 사설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08-03-28, 00: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