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0일은 최대규모의 촛불시위대가 서울 도심을 휩쓴 날이다. 나는 그날 오후 서울시청 광장에서 있었던 국민행동본부 주최 집회에서 연설한 뒤 서대문구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광화문에서 들려오는 함성이 여름 밤 하늘을 울렸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 마자 나는 '조갑제닷컴'에 이런 글을 올렸다.
<6월10일은 1987년 대시위가 촉발된 날이다. 盧泰愚 민정당 대표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날이었다. 이날 오후 중산층 시민들까지 거리로 뛰쳐나와 대학생들과 함께 '독재타도!'를 외치도록 한 원동력은 분노였다. 그 분노를 만든 가장 중요한 계기는 그해 1월에 있었던 박종철 학생 고문치사 사건과 은폐였다. 이 사건은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사회부의 특종으로 알려졌다.
어제 6만 군중을 거리로 내몬 가장 큰 동력은 지난 4월말 MBC의 광우병 관련 선동보도였다. 날조, 왜곡, 과장 등 온갖 숫법이 동원된 최악의 거짓말이 공중파를 통하여 확산되고 정부가 반박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많은 국민들이 속아넘어갔다. 21년 전의 군중은 진실에 기초한 분노로 뛰쳐나왔고, 어제의 군중은 거짓말 선동에 속아서 나온 점이 다르다. 어제 서울시내에서 만난 촛불시위대에선 正義의 분노가 느껴지지 않았다. 저주와 증오가 범벅된 구호와 피켓, 유행따라하기 심리로 놀러나온 이들, 왜 나왔는지도 모르는 어린이들, 광우병에 대해서 미신을 가진 이들, 국가와 사회에 대해서 일반적 불만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21년의 절박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한가한, 어쩌면 사치스런 분위기였다.
사실과 특종에서 나오는 분노와 거짓과 선동에서 나오는 증오심의 차이를 우리는 곧 알게 될 것이다. 정보화 시대, 국민이 뽑은 민주정부가 선동에 의해서 넘어가겠는가? 이런 혼란을 부른 MBC가 무사하겠는가?
거짓이 역사를 움직일 순 없다. MBC 는, 권위주의 정부시절 조선 동아 중앙 한국일보 기자들이 싸워서 지켜낸 언론자유를 공짜로 쓰면서 진실을 파괴하는 데 악용한다. 그럼으로써 스스로 선동원으로 전락했다. 이들이 무사하겠는가? 앞으로 MBC기자, MBC PD라는 명함으로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할 것인가? 두고 보자>
6월10일을 기점으로 하여 民心의 大反轉이 일어났다. 7월에 들어서면 'MBC 방송허가 취소 운동'이 번지고 MBC의 시청률은 지상파 4개 채널중 꼴찌로 떨어졌다. 진실의 횃불을 든 '성난 民心'이 칼자루를 잡았다. 칼날을 잡게 된 MBC는 '촛불이여, 우리를 지켜달라'고 매달렸다.
수많은 촛불시위자들이 외친 구호는 거의가 거짓이었다. 촛불반대 1인시위를 벌인 李世珍 학생의 피켓-'촛불은 어둠을 밝히는 데 써야 합니다. 자기 집을 태우는 데 써선 안됩니다'-이 진실이다. 진실은 다수결이 아니다.
언론을 지켜주는 것은 진실이다. 좌파정권하에서 진실을 포기한 MBC를 지켜준 것은 권력이었다. 그 권력도 사라지고 촛불도 꺼져가는 지금 무엇이 MBC를 지켜낼 것인가? '거짓의 촛불'을 만든 MBC는 그 촛불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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