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 아침에-'헌법애국주의'를 생각할 때다!

자유-번영의 바탕인 헌법과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으로 민족주의의 주술을 극복해야.
*1년 전 글을 再錄한 것이다.





독일의 ‘역사 바로세우기’



1970년대 초 서독 사회는 국가정체성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사회민주당의 집권과 동서독기본조약 체결 등이 그 원인이었다.




1871년 독일통일 이래 독일인들의 의식을 강력하게 지배해 왔던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였다.

하지만 민족주의를 극단으로 이끌었던 나치 제3제국이 붕괴한 이후 ‘민족주의’는 독일 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민족주의’를 앞세우는 정치인이나 정치집단, 사회단체는 ‘나치의 잔당’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각오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민족주의가 전면적으로 부정된 것은 아니었다. 분단현실 속에서 소비에트의 속박으로부터 동독 동포들을 해방시켜 하나된 독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있었던 것이다.

1960년대까지 독일 사회를 이끌던 인사들이 대개 독일 민족주의가 왕성했던 19세기말~20세기 초에 출생한 인물들이었다는 점, 1949년 이래 보수적인 기독교민주당이 계속해서 집권했다는 점 등도 독일 민족주의가 수면 아래에서나마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던 요인이 되었다.




하지만 1969년 사회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상황은 일변했다. 1969년 3월 연방대통령이 된 구스타프 하이네만은 일종의 독일판 ‘역사 바로세우기’에 나섰다. ‘1968년 혁명’의 여진(餘震)이 가라앉지 않은 상황 속에서, 종전부터 권위주의적 전통의 청산과 민주주의의 확대, 시민사회의 역할 증대,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 등을 주장해 온 하이네만은 취임사에서 “이제 우리는 우리 역사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시기가 시작하는 출발점에 와 있다. 어디에서든지 권위와 전통은 그것이 정당한 지에 대한 의문에 대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이네만은 흔히 얘기하는 독일적 전통, 즉 권위에 순종적이고 집단주의적인 독일인들의 심성을 뜯어고쳐 자유민주주의 시대에 걸맞는 주체적이고 참여적인 시민상을 정립할 수 있기를 소망했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서독에서 연방대통령에게 실권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종래의 역사관-세계관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인사가 국가원수가 됐다는 사실은 시대가 바뀌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나 다름없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독일의 젊은 역사학자들은 독일민족의 대외팽창이나 통일독일국가의 형성 등을 강조하던 종래의 역사인식에서 벗어나 독일 역사 속에서의 민중봉기,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하이네만이 대통령이 된 지 반년 후 연방수상이 된 빌리 브란트는 독일 사회의 변화를 본격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생아로 태어나 젊은 시절 나치에 저항하는 지하운동을 했던 이 사회민주주의자는 종래 독일인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브란트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유럽의 질서와 ‘두 개의 독일’이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새로운 외교정책, 대(對)동독 정책을 전개했다. 이른바 ‘동방정책’이었다.

그는 소련, 폴란드 등 동구권 국가들과의 조약을 맺어 제2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하면서 소련과 폴란드에게 빼앗긴 독일영토를 포기할 것을 분명히 했다. 이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쫒겨 옛 독일 동부지역이나 동구권에서 서독으로 탈출해온 실향민들에게는 ‘배신’이나 다름없었다.




분단현실과 동독의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는 ‘동서독기본조약’은 더욱 커다란 충격이었다. ‘동방정책’의 주역인 빌리 브란트와 에곤 바르, 이들을 뒷받침한 구스타프 하이네만과 발터 쉘에게는 ‘공공의 적’,‘조국 없는 녀석’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보수세력의 반발로 빌리 브란트는 한때 불신임 직전까지 갔지만, ‘동방정책’의 종말을 우려한 동독이 첩보기관 슈타지를 통해 독일 국회의원들에 대한 매수공작을 전개하는 바람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헌법애국주의’의 등장




전통적 역사인식의 변화, 그리고 ‘동방정책’의 결과로 실지회복과 통일이라는 전망마저 사라져 버린 독일 사회가 심각한 정체성 위기를 겪게 된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헌법애국주의’였다. ‘헌법애국주의’는 한 마디로 1949년 ‘기본법(헌법)’ 제정 이래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이 이룩한 성취들에 대한 자부심에서 출발한다.




민족통일을 이룩하고 급속한 산업화를 이룩하기는 했지만 정치적으로는 낡은 프로이센 융커계급의 전근대적 통치를 감수해야 했던 독일제국(제2제국), 당시로서는 가장 선진적인 민주헌법을 제정하기는 했지만 갈등과 혼란 속에서 자멸해 버린 바이마르 공화국, 한때 질서와 번영으로 향하는 듯하다가 독일인들은 물론 세계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끝에 폐허와 분단을 유산으로 남기고 무너져 버린 나치독일(제3제국), 여전히 압제와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독일민주공화국(동독)과 비교할 때 서독은 분명 당대 서독인들이 자부심을 가질만한 국가였다.




물론 권위주의적 전통의 미청산, 급속한 경제발전의 와중에서 발생한 소외계층,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이마르공화국과 나치독일 시절을 겪으면서 전쟁의 참화 속에서 살아남아 ‘라인강의 기적’을 이룩한 세대와 그들이 겪었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 “당신은 나치 시대에 무엇을 했느냐?”고 대드는 젊은 세대간의 갈등과 같은 문제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연방공화국은 독일인들이 일찍이 누려보지 못했던 자유와 인권과 민주주의, 경제적 풍요와 문화적 다양성을 보장해주는 사회였다.




이런 ‘독일연방공화국’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새로운 형태의 애국심이 형성됐다. 종래의 애국심이 혈연-문화-운명공동체로서의 ‘민족’을 중심에 놓는 것이었다면, 이 애국심은 독일연방공화국이 이룩한 성취와 기본법(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긍지를 중심에 놓는 것이었다. 이를 ‘연방공화국 애국주의’ 내지 ‘헌법애국주의’라고 한다.




1974년 서독에서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통일국가를 건설하려 했던 프랑크푸르트 국민회의 125주년, 바이마르 헌법 제정 55주년,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 제정 2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도처에서 열렸다. 이러한 행사들을 통해 서독인들은 민족주의와 국수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체화(體化)해 나갔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이 ‘헌법애국주의’를 전파하는데 앞장섰다는 점이다. 그들로서는 ‘동방정책’으로 인한 정체성의 위기를 ‘헌법애국주의’를 통해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정치적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서독의 사회모순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면서도 서독의 기본법과 기본법이 규정하고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인정하고 그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지 않았기에 ‘헌법애국주의’의 깃발을 내걸 수 있었던 것이다.




‘헌법애국주의’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일부에서는 “너무 합리적이고 차갑고 오직 이성에 기초한 주장'이라거나, '떳떳하게 내세울 수 없는 ’정상적인‘ 민족의식을 위로하는 대체물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독일인들이 다른 나라 국민들에 비해 민족의식은 매우 약한 반면, 헌법과 민주주의의 기본가치에 대한 국민들의 일체감은 매우 높다는 여론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헌법애국주의’가 독일인들 사이에 뿌리를 내렸다는 평가도 있다.




이제 ‘헌법애국주의’를 생각할 때




오늘은 제헌절이다. 4대 국경일 가운데 삼일절이나 광복절에 대한 관심에 비해 제헌절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덜한 느낌이다. 삼일절이나 광복절에는 대통령이 직접 기념식에 참석해 사회와 국민을 향해 무엇인가 메시지를 던지고, 경축 사면을 행하지만, 제헌절 행사는 언제부터인가 국회의장이 주관하는 조촐한 행사로 전락했다. 그것이 위정자들의 헌법에 대한 무시, 국민들의 헌법에 대한 무지와 관련있다면 지나친 얘기일까?



그러나 헌법은 대한민국을 대한민국답게 하는 바탕이다. 우리가 누리는 정치적민주주의와 경제적 번영의 토대가 헌법이다. 1945년 이후 독립한 나라들 가운데 이만한 정치-경제적 성취를 이룩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거의 유일한데, 그러한 성취를 가능케 한 것이 자유와 인권과 시장경제를 보장하고 있는 우리 헌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노무현 좌파 정권 아래서 대한민국사를 폄하하고 헌법을 무시하는 일들이 횡행하고 있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우리 현대사를 어떻게 욕보이고 헌법을 어떻게 능멸했는지는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다.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과 헌법에 대한 애정을 대신해 그들이 들이민 것은 철지난 민족주의, 그나마 자유와 민주주의와 번영에 대한 희망은 사라진 ‘우리민족끼리’류의 낡은 종족주의적-쇄국주의적 민족주의였다. 식민과 분단을 경험한 많은 이들에게 ‘우리민족끼리’는 거역할 수 없는 주술이었다.




여기에 맞서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헌법애국주의’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1948년 이래 대한민국헌법은 자유롭고 풍요로우며 통일된 자유민주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분투노력해 온 모든 이들의 노력의 산물이었으며, 특히 현재의 1987년 헌법은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은 바로 그 헌법질서의 산물이다.

이만하면 자부심을 가질 만 하지 않은가? 이 토양 위에서 한국판 ‘헌법애국주의’가 싹터야 마땅하지 않은가?

물론 아직은 ‘헌법’이라는 말의 울림이 ‘민족’이라는 말보다 작다. 하지만 그 헌법 속에 우리나라가, 더 나아가 북한동포까지 아우르는 우리 민족이 가야할 길이 있다.

[ 2007-07-17, 1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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